< -- 10 회: 신세계 -- >
좀비에게 얻은 기어. 남자의 기어. 그리고 약 50개의 동전.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전리품이었다. 신운성은 동전도 중요하지만 일단 남자의 기어를 들어 합성했다. 합성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유저가 사용 중이던 기어를 합성했습니다.
- 스탯 '근력'이 생성됩니다.
- 스탯 '민첩'이 생성됩니다.
- 스탯 포인트 50을 얻었습니다.
연달아 울리는 음성은 작은 혼란을 불러왔다. 더구나 주변에 갑자기 빛이 일어나며 여러 가지 아이템이 떨어졌다. 보아하니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아이템으로 보였다.
'유저가 사용하던 스탯을 흡수한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좀비에게서 얻은 것은 합성해도 스탯 포인트 1밖에 주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사용하던 기어를 합성하니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이거 설마.......'
신운성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아무도 신뢰할 수 없었다. 신운성은 슬쩍 서은하를 바라보았다.
'쟤도 변하지 않을까?'
불안했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었다. 더구나 가장 강한 사람의 기어를 흡수하면 대부분의 힘을 고스란히 얻을 수 있었다. 강한 사람이 생성한 스탯을 생성하고 스탯 포인트를 얻어 자신이 원하는 스탯에 투자가 가능했다.
더구나 합성 확률 같은 것도 나오지 않았다. 즉, 유저를 죽여 얻은 기어의 합성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잠든 사이에 날 죽이고 기어를 빼앗는다면?'
신운성은 불안해졌다.
'제길.'
믿을만한 동료를 얻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정이 급변했다.
'말해줄까? 말하지 말까?'
갈등이 생겼다. 말해준다면 배신을 걱정해야만 했다. 말해주지 않는다면 언젠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실망하고 배신할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결과를 생각하면 어느 쪽을 선택해도 좋지 않았다.
'죽여?'
신운성을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남자는 꽤 높은 스탯을 보유한 유저였다. 그런데 뒤에서 기습 한 방에 무너졌다. 자신도 그런 꼴을 당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아무리 스탯이 높아도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 당하면 끝이다.'
그래서 동료가 필요했다.
'도박을 해야 하나?'
가슴이 벌렁거렸다.
신운성은 빠르게 동전을 챙겼다. 불안은 불안이고 전리품은 전리품이다.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동전의 문양은 본 기억이 있었다.
'기어에 나온 문양과 비슷하다.'
실험 삼아서 동전을 기어에 가져다 댔더니 동전이 사라졌다. 그리고 상점 탭에 나온 포인트가 1 올랐다.
'유저를 죽여서 얻는 거냐?'
상점을 이용할 포인트를 얻는 방법을 알아낸 것은 기뻤다. 하지만 동전을 얻는 과정이 유저를 죽여서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살기 위해선 결국 서로 죽이라는 건가?'
신운성은 동전을 모두 챙겨 50포인트를 챙겼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얻은 스탯 포인트도 50이었지.'
스탯 포인트만큼 동전이 떨어지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신운성은 남자의 장비를 벗겼다. 등산화는 다행히도 발에 맞았다. 신운성은 얼른 바지를 벗겨서 입었다. 좀비가 되기 직전의 남자가 입었던 것이지만 거리낌이 없었다.
바지는 약간 컸지만 입는데 지장은 없었다. 바지를 입고 신발을 신은 뒤에 상의는 내버려 두었다. 우의도 그렇고 좀비가 뜯어 먹느라 모두 엉망이 된 탓이었다.
'일단 행운을 좀 올려야겠다.'
남자의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아이템을 챙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남자는 놀랍게도 커다란 생수통을 3개나 보유하고 있었다.
'한 동안 물 걱정은 없겠어.'
생수통이 전부가 아니었다. 쌀도 4포대나 가지고 있었다. 버너와 냄비도 있었지만 버너의 가스만 챙기고 나머지는 버렸다.
등산 배낭에는 간단하게 갈아입을 옷과 작은 응급처치 가방이 들어 있었다. 손전등과 초콜릿도 상당히 많이 들어있었다.
신운성은 가방에서 꺼낸 상의를 갈아입고 배낭을 정리했다. 에너지바를 몽땅 옮기고는 등에 지자 처음 매고 다녔던 가방이 남았다.
"잠깐 얘기 좀 하자."
신운성은 좀비의 기어를 합성하고 기다리고 있는 서은하를 이끌고 근처에 있는 구조물 안으로 들어갔다.
밥을 짓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오빠가 왜 저러지?'
신운성의 표정은 무척이나 심각했다.
'죄책감을 느끼는 건가?'
서은하는 오해했다. 그래서 위로하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너무 신경 쓰지 마. 우리가 그 사람 안 죽였으면 더 힘들어졌을 거야."
남자를 잡고 얻은 물건들은 서은하도 봤다. 커다란 생수통과 쌀 포대를 본 순간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었다.
"그런 게 아니야."
신운성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사실을 알려주고 믿을 만한 동료를 얻기 위해 시도해야 한다는 쪽과 그냥 죽여서 배신당할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뉜 상태였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신운성은 자신이 한 행동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아무도 믿지 않고 혼자 움직이다가 갑자기 다가온 누군가에게 목숨을 잃는 미래가 그려졌다.
하지만 반대로 믿는 것도 어려웠다.
'연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고. 아니지. 연인이나 부부라고 배신하지 말란 법은 없지.'
골치가 아팠다. 인상은 더욱 험악해졌다.
말을 안 하니 사정을 모르는 서은하는 겁이 났다.
"오빠.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두려움에 사과부터 하는 서은하는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젠장.'
기분이 꿀꿀해졌다. 신운성은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곤 스탯부터 정리했다.
'일단 체력 근력 민첩에 10씩 넣고 나머진 행운에 넣자.'
좀 더 강해져야 하지만 행운도 중요했다. 식량을 좀 더 많이 챙겨서 움직이기 위해서 인벤토리는 필수였다.
이름: 신운성.
행운: 60
체력: 16
근력: 10
민첩: 10
정신력: 0
스탯 포인트: 0
스탯을 정리하니 몸에서 힘이 솟는 느낌이었다. 좀 더 가뿐해진 몸 상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신운성은 힘에 취하지 않고 바로 다음 할 일을 했다.
'상점이나 살펴보자.'
50 포인트가 있었다. 신운성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 있나 일단 살펴보기로 했다. 하지만 상점에는 무기와 도구, 그리고 음식 같은 것만 있었다. 도움이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미치겠네.'
답답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란 것이 안겨주는 불안은 정신을 계속 궁지로 몰았다.
죽이자니 혼자가 되는 것이 불안하고 죽이지 않자니 배신 당할 것이 불안했다.
'최악을 생각하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불안하다.'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하거나 아니면 혼자 버티거나.
'완전 도박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확인해 볼 수 없었다. 또한 지금은 믿을 만하더라도 나중에 변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람 마음이었다.
신운성은 고민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난 은하를 잘 몰라.'
불안의 이유를 깨달았다. 상대를 잘 모르기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될 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얘기는 보류하고 살펴보자.'
지금 당장 얘기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 나중에 늦게 알려줘서 배신을 당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 당장 알려주고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미안하다. 기분이 좀 안 좋아서."
신운성이 얼버무리기 위해 말을 꺼낸 순간 서은하의 표정이 흐려졌다. 이를 본 신운성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눈치 챘나?'
무엇인가를 숨기는 것을 눈치 챈 기색이었다.
'젠장.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더 숨기다가는 불신만 초래하겠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불안을 키우게 되면 어떤 짓을 하게 될 지는 빤히 보였다. 죽지 않기 위해 먼저 배신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중에 아무리 변명을 해도 믿지 않게 된다.
신뢰는 쌓기 어렵지만 깨기는 무척 쉽다.
"미안하다. 사실 거짓말 했어."
"응?"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너한테 알려주기가 꺼려지는 거라서."
신운성은 일단 대화를 시도했다.
"그랬구나."
서은하는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잖아. 그런데 갑자기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신뢰한다는 게 더 어렵잖아."
"난 오빠가 시키는 대로 다 할 생각이었어."
"그래 알아. 그렇지만 지금 알아낸 게 너무 중요해서 그래. 이걸 알게 되면 네가 어떻게 돌변하게 될지 모르겠더라. 솔직히 나라면 기회를 봐서 배신하고 이용하고 싶어질 정도의 정보거든."
"설마 돌아가는 방법이야?"
서은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표정이 밝아졌다.
"아니. 전혀 아니야. 돌아가는 방법하고는 전혀 관계없어."
"그럼 뭔데?"
신운성은 침묵했다. 서은하는 서운해졌다. 계속해서 믿고 따랐는데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니 야속하게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응? 알려줘. 다 할 게. 나한테 이러지 마 오빠."
눈물이 흘렀다. 서러웠다. 믿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의심하니 괴로웠다. 다시 홀로 무서운 곳에 내던져진 느낌에 몸이 덜덜 떨렸다.
"나 버리지 마. 응? 오빠가 시키는 거 다 할게. 방해도 안 할게.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마."
서은하는 계속 울먹였다.
'제길.'
신운성은 가슴 한구석이 살짝 아렸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쉽게 판단이 가지 않았다. 그때 결정적인 말이 들려왔다.
"그거 알려주지 않아도 돼 오빠. 말 안 해도 되니까. 그냥 지금처럼 계속 옆에 있게 해줘. 응?"
서은하는 애원했다.
"정말 말 안 해줘도 돼?"
"응. 그러니까 제발......."
서은하는 서럽게 울었다. 신운성이 자신이 굉장히 나쁜 놈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끝내 정보는 말해주지 않았다.
"좋아. 믿어볼게. 하지만 알려고 하지 마."
"응. 오빠가 시키는 대로 다할 테니까."
"고맙다."
신운성은 일단 서은하를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오빠, 흑."
미안함에 살짝 안고 토닥여주니 서은하는 품에 안겨 계속 울었다.
'빌어먹을.'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신세계의 가혹함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신운성은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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