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의 기어-9화 (9/109)

< -- 9 회: 신세계 -- >

사냥을 다시 시작한 신운성은 예전과 다르게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체력 안배를 위해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주변을 살폈지만 이제는 달렸다. 사냥감을 찾기 위해서.

'시간이 없어.'

초조함이 신운성의 등을 자꾸 떠밀었다. 조직폭력배와 같은 이들의 행동을 보니 불안이 심해진 탓이었다.

'좀비도 무섭지만 사람도 무시할 순 없어.'

무엇보다 현재 상황에서 미친놈이 나올 수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 더구나 신고한다고 경찰이 오는 곳도 아니었다. 경찰이라는 억제력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지닌 가치관뿐이었다.

'가치관을 명찰처럼 가슴에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니야.'

잠깐 봐선 알기 힘든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신운성에게는 그나마 믿을만한 사람이 곁에 있었다.

"좀 쉬자."

빠르게 사냥을 하면서 이동하자 서은하는 힘겨워했다. 짐을 진 상태에서 뛰려니 힘들어했다. 땀을 흘리는 모습은 안쓰러웠다. 하지만 서은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오빠. 더 움직일 수 있어."

"무리하지 마. 무리하다가 아프면 널 보살펴줄 수 없어. 여긴 병원도 없다고."

"고마워."

휴식을 위해 빈방에 들어갔다. 사람만 떠나고 물건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식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밥 해먹자."

신운성은 에너지를 소비한 만큼 식사를 하기로 했다. 서둘러 강해지기로 결정한 이상 음식을 아껴먹을 순 없었다. 인간의 몸은 에너지를 사용한 만큼 공급해줘야만 제대로 기능한다. 만약 먹은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계속 무리하면 몸의 균형이 깨지고 결국 망가지게 된다.

"아껴 먹어야 하잖아."

"지금 아껴 먹을 때가 아니야."

사냥을 하면서 합성한 기어로 얻은 스탯 포인트로 체력을 올렸다. 체력을 5까지 올리자 몸이 더 가벼워졌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해. 그래서 음식도 더 확보하고. 최악의 경우 싸워서 빼앗아야 해."

적나라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서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냄비에 쌀을 넣고 예전에 쌀을 씻었던 물로 다시 한 번 씻었다. 쌀을 씻은 물은 여전히 버리지 않았다.

서은하는 힘들었다. 신운성이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체력 스탯이 생기고 포인트를 투자하니 좀 나아졌다. 이후 체력과 행운에 번갈아가며 포인트를 투자했다.

처음에는 신운성이 왜 갑자기 급하게 움직이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밥을 하면서 설명해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말 든든해.'

남과 싸워서 빼앗는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서은하에게는 그저 든든하게 느껴졌다. 절망 속에서 누군가 구해주길 바랐을 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신운성이었다.

그때부터 서은하는 신운성에게 이끌렸다. 어떻게 해서든 가까이 있고 싶었다. 그리고 점점 신운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멋있어.'

마음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연애를 꿈꾸지는 않았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오빠한테 짐이 되면 안 돼.'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신운성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짐이 된다 싶으면 버리고 갈 사람이었다. 서은하는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빠, 나 잠깐 머리 좀 잘라줘."

"나 머리 자를 줄 모르는데?"

"그냥 아무렇게나 잘라도 돼. 짧게만 해줘."

서은하는 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했다. 긴 머리카락이 앞으로 방해가 될 것 같아서였다. 몸을 씻을 물도 구하기 힘든 곳에서 머리카락을 길게 하고 있으면 관리하기도 벅차다.

머리를 자르는 것은 순식간에 끝났다. 신운성은 대충 잡고 가위로 잘라냈다. 머리카락 자르는 소리가 서은하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잘라내는 느낌이었다.

'잘라야 해.'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이 떠올랐다. 말만 하면 차려진 밥상. 꼭지만 돌리면 쏟아지는 물. 전화만 들면 음식을 배달할 수 있고 마트에 가면 먹을 것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생활. 안락하고 쾌적한 생활을 향한 그리움을 머리카락과 함께 모두 잘라냈다.

'여긴 그런 거 없어.'

서은하는 나름대로 각오를 다졌다.

"됐다."

신운성이 물러났지만 서은하는 잠깐 머리를 만져보고는 웃었다.

"고마워 오빠."

"고맙긴."

거울은 보지 않았다.

밥을 먹고 사냥을 하자 체력이 자동으로 하나 더 올랐다.

'활동을 더 하면 늘어나는 건가?'

정보에 대한 갈증을 느끼면서 신운성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더 빨리 올려야 해.'

신운성은 계산해보았다.

'먹을 것을 찾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이대로라면 싸워서 빼앗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

며칠 동안 움직였지만 숲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연 속에서 먹을 것을 찾지도 못했다.

'좀비도 위험하지만.'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신운성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좀비의 위협은 아직도 두렵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더 무서웠다.

'이 숲을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굶어죽는다.'

다른 생존 방법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보가 없는 신운성은 다른 길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더 오래 버티려면 더 강해져야 해.'

신운성의 눈에 독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오빠, 왜 그래? 화났어?"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에 서은하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서은하의 입장에서는 신운성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앞으로 일 좀 생각해봤어."

서은하는 침묵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하길 기다려주는 모습에 신운성은 신뢰를 느꼈다.

'그래, 얘가 있었지.'

혼자가 아니었다. 서은하가 싸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앞으로 사람을 습격해야 할지도 몰라."

"습격? 왜?"

"먹을 것이 부족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구나. 그럼 내가 뭘 하면 돼? 나 싸움 잘 못하는데."

하지 못한다는 둥. 나쁜 일이라는 둥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서은하는 신운성이 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무엇을 해도 동조해주는 서은하에게 신운성은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냥 지금처럼 날 보조해줘."

신운성이 손을 잡자 서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럴게. 걱정하지 마."

"그래."

잠시 휴식을 취한 두 사람은 움직였다. 그리고 사람을 만났다.

상대는 남자 하나였다. 남자는 신운성처럼 급조해서 만든 기다란 둔기를 가지고 있었다. 등에는 커다란 등산용 배낭을 진 상태였다. 몸에 착용한 복장도 등산복과 신발이었다. 여기에 우의를 입고 있었다.

'완벽하네.'

현재 상황에서 활동하기 딱 좋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만만치 않겠어.'

신운성은 거침없이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남자는 잠깐 놀랐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입니까?"

경계가 섞인 분위기. 신운성은 남자가 사람을 경계한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싸웠거나 아니면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이런 곳에 떨어져서 정말 당황스러웠는데 이렇게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네요."

"그런가요?"

남자의 경계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알고 계시나요?"

"모릅니다."

"아 예......."

남자는 끝까지 비협조적이었다.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는 어렵다.'

신운성은 빠르게 판단했다. 완벽한 복장을 하고 있고 손목에 기어도 차고 있기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경계하는 모습을 보아 협조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이런 사람 설득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어.'

"저기 근데 혹시 먹을 것 좀 있나요?"

"죄송합니다. 저도 없는데요."

남자는 딱 잘라 말했다.

"네."

신운성은 서은하를 끌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남자는 가만히 서서 신운성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움직였다.

적당한 곳까지 온 신운성은 뒤돌아서 남자를 조심스레 쫓았다.

'아군이 아니면 적이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남자의 언행에서 먹을 것이 있음을 직감한 신운성이었다. 아니, 먹을 것이 없어도 남자가 걸친 장비를 빼앗고 싶었다.

슬금슬금 남자를 뒤쫓았다. 남자는 계속 주변을 경계하며 움직였다. 굉장히 경계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살인은 나쁜 것이라고 교육 받으며 자라왔다. 당연히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행위였다.

'여긴 지구가 아니야. 살기 위해선 싸워야 해.'

신운성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급박한 현재 상황을 계속 떠올리며 자신을 합리화했다.

'여기서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다. 아무도 몰라.'

공권력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임을 떠올리니 부담감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죽는 건 싫었다. 신운성의 눈은 점점 더 독하게 빛났다.

'죽인다!'

좀비를 사냥하기 위해 접근하는 남자가 보였다. 신운성은 모든 짐을 벗고 야구 배트만 들고 살금살금 뒤에서 접근했다. 사냥감을 덮치기 전에 조용히 거리를 좁히는 맹수와 같았다.

좀비에 온 신경을 집중한 남자는 신운성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했다.

신운성은 좀비를 습격하기 직전의 남자의 머리를 가격햇다.

"윽!"

남자가 쓰러지는 순간 좀비와 간격이 좁혀졌다. 그때 좀비가 갑자기 남자를 향해 달려들며 물어 뜯었다.

"씨팔!"

좀비의 몸이 회복되는 것을 본 순간 신운성은 재빨리 야구 배트를 휘둘렀다. 좀비의 머리를 박살냈다. 남자를 뜯어먹던 좀비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이후 좀비에게 물린 남자의 머리도 박살냈다.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한 행동이었다.

'죽을 뻔 했네.'

정말 위험했다. 빠르게 공격해서 둘 다 해치웠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좀비가 될 뻔했다.

"어?"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전리품을 확인하려던 순간, 신운성은 뜻밖의 아이템을 발견했다.

그것은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동전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평가 코멘트 추천 후원 모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