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 회: 신세계 -- >
좀비를 사냥하고 기어를 합성했다. 그리고 행운을 올린 순간 기어에서 하얀 빛이 터지며 음성이 들렸다.
- 실패 없이 행운 30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됩니다.
정보창을 살펴보니 '상점' 탭이 생겼다. 눌러보니 아이템 목록이 떴다. 상단에는 '포인트: 0'라고 표시 되어 있었다.
'무기를 구할 수 있어?'
아이템 목록 중에는 무기가 있었다. 새로운 무기의 필요성을 느끼던 신운성에게는 가장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무기인 할버드를 구입하기 위해선 10 포인트가 필요했다.
'포인트를 어떻게 얻는 거지?'
알 수 없었다. 정보를 주는 존재는 없었다. 친절한 설명은 하나도 없는 빌어먹을 상황이었다.
'개새끼.'
누군가를 향해 속으로 욕을 하던 신운성은 그래도 웃었다. 원하는 무기를 얻을 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상점 목록에는 물과 음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포인트만 올리면 최소한 죽지는 않아.'
"오빠 뭐 좋은 일 있어?"
옆에서 지켜보던 서은하는 신운성이 웃자 궁금함이 일었다.
"어, 상점 기능이 생겼어. 행운 30까지 실패 없이 만드니까 생기네."
정보를 숨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거짓말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결속을 무너트린다. 믿을만한 동료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에서 결속을 무너트릴 행동은 금물이었다. 무엇보다 24시간 계속 붙어있기 때문에 속이는 것이 더 피곤한 일이다.
"정말?"
얘기를 들은 서은하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질투의 감정 같은 것은 없었다. 서은하의 표정에서 순수한 호의가 느껴졌기에 신운성은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일단 오늘은 쉬자. 날 어두워진다."
두 사람은 휴식을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새롭게 찾은 방은 여자가 쓰던 곳으로 보이는 원룸이었다. 옷이 굉장히 많았다. 화장대 위에는 화장품이 쌓여 있었다. 한쪽에는 고가의 명품 백들과 구두들이 정돈되어 있었다.
'먹을 것이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없었다.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냉장고는 깔끔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물 한 병 찾을 수 없는 원룸이었다.
서은하는 재빠르게 움직여 잠자리를 만들었다. 방구석에 있는 겨울에 쓰는 침구를 깔자 잠자리가 금방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잠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하자 서은하가 질문을 던졌다.
"아마 숲에서 다들 헤매고 있겠지."
"좀비한테 당한 사람 있을까?"
"있겠지."
대화를 나누려고 했지만 몇 마디 하다 보니 잠이 솔솔 밀려왔다. 하루 종일 긴장한 상태로 빗속에서 움직여서 체력은 저하된 상태였다. 에너지바로 필요한 열량은 공급했지만 속은 허했다.
'빨리 음식을 더 구해야 할 텐데.'
신운성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잠들었다. 서은하도 피곤이 밀려와 더 대화를 잇지 못했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신운성은 유저 정보창을 보고 고민했다.
'다음에는 체력을 올릴까?'
아침에 일어나자 몸이 무거웠다. 전날보다 더 무거운 상태. 이대로 가다가는 쓰러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포인트를 얻어 체력을 올리려던 생각은 접었다.
'인벤토리가 더 필요해.'
현재 30칸의 인벤토리를 쓸 수 있었다. 인벤토리를 차지한 것은 대부분 물이었다. 비가 오고 있었지만 빗물을 받아 마실 생각은 없었다. 얼른 믿을만한 동료를 만들어 숲을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 사항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만약 비가 그치고 물을 구할 수 없게 되면 심각해진다.'
문명이 발달한 도시에서 물은 구하기 쉬운 자원 중 하나였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온다. 하지만 숲에서는 달랐다. 콘크리트로 된 방에선 생수병에 담긴 물 이외에는 마실만한 물이 없었다.
숲을 벗어나기 전에 식수로 쓸 수 있는 물을 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도 생각해야만 했다.
'최악의 경우 물을 못 구한다면 사막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지금은 어떻게 버틴다고 하지만 나중에 가면 물이 귀해지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포인트가 있으면 상점에서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 포인트를 올리는 방법은 확인되지 않았다. 확인 되지 않은 것에 희망을 걸 순 없는 법. 그렇기에 신운성은 최대한 많은 물을 인벤토리에 저장하고 싶었다. 인벤토리에 넣으면 무게로 인한 부담도 없고 남들에게 발각되어 빼앗길 염려도 없기 때문이었다.
'참자. 어쩌면 그냥 오를 수도 있어.'
신운성은 체력 스탯이 기어의 합성 없이도 생성된 것을 떠올리며 희망을 가졌다.
"오빠, 좀 더 쉬었다가 움직이자. 피곤해 보여."
고민하고 있는데 서은하가 걱정해주었다. 살이 찌긴 했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래. 조금만 더 쉬자."
신운성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도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다가는 쓰러질 수도 있었다.
"오빠, 밥 한 번 해먹을까?"
"밥? 뭐로?"
"여기 버너 있잖아."
서은하는 방을 뒤져서 찾아낸 버너를 보여주었다.
"좋은 거 찾았네."
신운성은 인벤토리에서 쌀과 생수를 꺼냈다. 원룸에 있는 냄비에 쌀을 씻었다. 한 번 쌀을 씻은 물은 버리지 않고 빈 병에 담아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물이 조금 많은 거 같은데?"
"그럼 죽처럼 먹지 뭐."
"그래."
쌀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신운성은 더 따지지 않았다.
밥을 하는 동안 서은하는 방을 계속 뒤졌다. 명품이 쌓여있는 곳을 뒤지더니 운동화를 찾아냈다. 발에 맞는 운동화를 몇 켤레 찾아내더니 신운성에게 다가왔다.
"오빠, 나 신발 더 챙겨도 돼?"
"인벤토리에 넣어두려고?"
"응. 발에 맞는 신발 구하기 힘들잖아."
신운성은 한쪽에 벗어놓은 서은하의 운동화를 보았다. 앞에 구멍 난 운동화를 계속 신고 다녔던 서은하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래, 신발도 잘 챙겨야 해.'
신운성 자신도 신발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을 떠올리며 허락했다.
'신발이 없으면 활동에 지장이 온다.'
서은하나 신운성이나 도시인이었다. 신발 없이 어딜 돌아다닌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신발을 챙기는 것을 허락하자 서은하는 신발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후 원룸을 더 뒤졌지만 당장 가지고 다닐만한 물건은 옷을 걸어놓은 행거봉 이외에는 더 발견되지 않았다.
방을 뒤지고 나서 빗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했다. 열린 창문으로 빗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빗물이 안으로 들어와 물건들을 적셨지만 두 사람은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 있을 곳이 아니었다.
밥이 다 되자 수저로 열심히 퍼먹었다. 물이 많았지만 오랜만에 쌀을 먹는 두 사람에게 문제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찬장에서 찾은 간장을 찬으로 죽 같은 밥을 뚝딱 해치웠다.
"아, 살 것 같다."
"나도."
잠시 휴식을 취한 두 사람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행운을 올리는 일은 계속 진행되었다. 한참 움직이며 좀비를 잡고 방을 뒤져 간단한 물이나 쌀을 챙기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인벤토리는 어느새 꽉 찼다.
'행운을 더 늘려야 해.'
한참 움직였는데 짐승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를 살펴도 열매는 없었다. 물이 흐르는 곳도 없었고 샘도 없었다. 새 둥지 같은 것도 없었다. 꽃 같은 것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버섯 같은 것도 없었다.
'먹을 것을 최대한 챙겨야 해.'
신운성은 불안을 느꼈다. 숲에서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다는 가능성이 계속 떠올라 불안했다.
불안 속에서 이를 악물고 움직이던 중, 신운성은 반가운 메시지를 들었다.
-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체력이 상승했다는 메시지에 불안이 조금 가라앉았다. 몸이 살짝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좋았어!'
스탯 포인트를 투자 하지 않고도 스탯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불안이 조금 가셨다.
'노력한 만큼 능력이 오르는 시스템인가?'
스탯이 오른 사실을 전해들은 서은하도 표정이 밝아졌다.
'나도 오를 수 있어.'
서은하도 희망을 가졌다. 신운성과 달리 서은하는 스탯이 행운뿐이었다. 다른 것을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신운성이 열심히 움직인 결과 스탯이 올랐다고 하니 희망을 가졌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계속해서 움직이던 두 사람은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이번에는 남녀가 각각 3명씩 있는 그룹이었다.
멀리서 이들을 바라보던 신운성은 약간 망설여졌다.
'뭔가 분위기가 험악해 보인단 말이야.'
정확하게는 남자 2명이 건들거리고 있었고 남자 하나와 여자 셋은 짐을 잔뜩 지고 뒤따르는 중이었다.
'이곳에 오게 된 사람들이 다 선인이란 법은 없으니까.'
신운성은 조폭 같은 사람들이 왔을 가능성을 떠올리고는 갈등했다.
'저 인간들이 싸움은 좀 할 테니 도움은 될 텐데.'
만약의 상황이 오면 그대로 싸울 수 있으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냥 도움 받기는 그른 상태로 보였다.
'그냥 지나치자니 아깝고.'
어쩌면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더구나 등짐을 보니 먹을 것을 상당량 가진 것으로 보였다.
"조용히 따라가 보자."
신운성은 다가가기 보다는 조금 더 따라다니며 살피기로 결정했다.
좀비 사냥은 뒤로하고 따라갔다. 얼마 뒤, 콘트리트로 된 구조물이 나타났다.
"빨리 잡자!"
두 남자는 기다란 쇠파이프와 금속 야구 배트를 가지고 있었다. 한 남자가 다리를 걸어 좀비를 넘어트리고 몸통에 쇠파이프를 꽂아 넣자 다른 남자가 다가가 배트로 머리를 박살내서 잡았다.
좀비는 순식간에 죽었다. 뒤따르던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야! 다 끝났으니까 안에 들어가서 뒤져봐!"
리더로 보이는 남자의 명령에 여자들이 구조물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그만 쉬자."
기다란 막대를 든 남자가 안으로 들어가며 여자를 불렀다. 아울러 혼자 남은 남자의 등짐을 빼앗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등짐을 졌던 남자는 홀로 문 앞에 앉아 우두커니 머리가 박살난 좀비를 바라볼 뿐이었다.
'썩을.'
신운성은 혀를 찼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남자 둘이 여자들을 끌고 다니며 관계를 맺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봐선 거의 강제로 맺은 것으로 보였다.
등짐을 진 남자가 왜 도망가지 않고 있는지는 영문을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은 신운성이었다.
'무시하자.'
신운성은 서은하를 이끌고 다시 좀비 사냥을 시작했다.
'약하면 당한다.'
행운이 아닌 다른 스탯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을 다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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