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 회: 신세계 -- >
새로운 무기를 만드는 작업은 빠르게 이뤄졌다. 커터칼을 이용해 테이프와 케이블을 잘라내자 아령이 떨어져 나왔다. 대걸레 봉은 여러 차례 강한 충격을 받아서 거의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제길.'
신운성은 행거봉 끝에 달아보려 했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아령이 제대로 고정이 되지 않아 휘두르면 힘에 의해 자꾸 뒤틀렸다.
'이런 식이면 몇 번만 내려쳐도 망가진다.'
T자 모양으로 달려다가 되지 않자 신운성은 행거봉에 11자 형태로 아령을 대고 묶는 방식으로 갔다.
'위에서 내려치기만 하면 되니까.'
테이프를 잔뜩 감아 고정한 뒤에 케이블로 마구 감은 뒤 테이프로 감았다.
'얼마 못 갈 것 같지만 아쉬운 대로 쓸 수 있어.'
이후 신운성은 새로운 무기를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급조한 창이었다. 행거봉이 하나 더 있기에 과도를 봉 끝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창을 만들었다.
"이건 그쪽이 쓸 무기에요."
"네?"
지켜보던 서은하는 눈을 껌뻑거리며 창을 받았다.
"밖은 위험하니까요."
서은하는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움직일 준비 하죠."
신운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에너지바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 있는 생수와 주스를 모조리 꺼냈다. 그때 서은하가 머뭇거리다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저보다 한 살 많은데 그냥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럴까? 너도 편하게 말해."
"네, 오빠."
별 것 아닌 일이기에 신운성은 다시 짐 싸는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서은하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버림 받으면 안 돼.'
무서운 좀비를 해치운 남자였다. 더구나 무기도 척척 만들고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아는 것 같았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 신운성은 무척이나 든든한 존재였다. 때문에 서은하는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신운성이 먹을 것을 챙기기 위해 움직이자 서은하도 얼른 일어나 짐을 챙겼다.
'일단 너무 많이 가져갈 순 없으니까 가방 하나.'
누군가 곁을 지켜주자 서은하의 머리는 팽팽 돌아갔다. 겁에 질려 있을 때와는 정반대였다.
책가방의 내용물을 모두 꺼낸 서은하는 날카로운 도구를 먼저 챙겼다. 커터칼과 가위를 있는대로 챙긴 이후에는 필통과 연습장 하나를 챙겼다. 혹시 무엇인가 기록할 일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이후 신운성이 테이프를 많이 사용한 것을 보고 넓적한 테이프를 찾아 몽땅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신기한 것을 보았다.
"어?"
신운성이 생수병을 들고 앞으로 내밀자 갑자기 생수병이 사라졌다.
깜짝 놀란 서은하는 꼼짝도 못하고 계속 지켜보았다. 생수병과 주스가 몽땅 사라졌다.
"어떻게 한 거예요?"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났지만 의지하는 사람이 행한 일이기에 서은하는 겁먹지 않았다.
"이거? 유저의 기어란 걸 쓰면 할 수 있어."
신운성은 유저의 기어에 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좀비를 잡으면 생긴다는 것과 다른 기어와 합성하는데 성공하면 행운이란 스탯을 얻고 행운의 숫자에 따라 인벤토리 칸이 생긴다는 설명이었다.
"그럼 이건 꿈인가요? 아니면 게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순 없잖아."
"네......."
서은하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이라면 죽은 뒤에 현실에서 다시 깨어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신운성의 말대로 목숨은 소중했다. 죽으면 그걸로 끝일 수도 있었다.
"외계인 납치도 염두에 두고. 어쨌든 너도 나중에 이걸 쓰게 될 거야."
신운성은 이불을 접어서 인벤토리칸에 밀어 넣었다. 이불이 갑자기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서은하는 정신을 다잡았다.
'정신 차려. 여기서 망가지면 끝이야.'
한편, 신운성은 서은하가 현실도피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쓸 만하네. 같이 다녀도 되겠어.'
만약 현실도피를 하거나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면 망설이지 않고 에너지바를 몽땅 챙겨서 튈 생각이었다. 유저의 기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 이유는 위험을 함께 헤쳐 나갈 동료를 얻기 위해서였다. 위험이 도처에 깔려있는데 짐 덩어리를 지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신발 있어?"
"네, 있어요."
짐을 다 챙기고 떠날 시간이 왔다. 서은하는 옷장에서 예전에 사두었던 운동화 상자를 꺼냈다. 중학생 시절 운동화가 마음에 들어 사뒀다가 신지 않고 모셔둔 것이었다.
'발에 맞네.'
오래 전에 산 신발이라 그런지 살짝 작은 감이 있었다.
"너무 꽉 끼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이것뿐이니까요."
서은하는 커터칼로 신발 앞부분을 잘라냈다. 구멍이 나자 발가락이 쑥 나왔다. 걷기에는 불편할지 몰라도 발바닥을 보호하기 위해선 신어야만 했다.
두 사람은 방을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신운성은 서은하가 준 방수 자켓을 벗고 소매를 잘라냈다.
"왜요?"
"너무 더워서."
서은하도 느끼고 있는 것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잠시 멈췄던 두 사람은 다시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한 방향으로 계속 걷던 두 사람은 또 다른 콘크리트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전히 좀비 한 마리가 멍하니 서있었다.
신운성은 가방을 내려놓고 달려가 냅다 무기를 휘둘렀다. 새로운 무기는 여전히 효과적이었다.
퍼걱!
좀비는 머리가 박살나며 쓰러졌다. 그리고 유저의 기어를 떨궜다.
"이거 주워."
기어를 톡 쳐내자 좀비의 몸에서 떨어지며 멀리 굴러갔다. 서은하는 얼른 달려가 기어를 주웠다. 좀비의 몸에 닿은 것이었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무서워하던 좀비를 너무나 쉽게 잡는 신운성이 시키는 일이었다. 서은하는 얼른 왼손에 기어를 찼다. 그리고 신운성이 알려준 대로 유저 정보창을 띄웠다.
'아.......'
기어를 차게 되자 뭔가 얻은 느낌이 든 서은하는 신운성에게 다가가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고맙긴. 어쨌든 얼른 움직이자. 하나만 더 잡고 쉬게."
"네."
"말 편하게 하라며. 너도 편하게 하라니까."
서은하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자 신운성도 편하게 대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옆에 있으니 신운성도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응, 오빠."
"일단 저기 살펴보자."
콘크리트는 그냥 방이었다. 안에는 별로 쓸모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았지만 서은하는 꼼꼼하게 뒤져 필기구와 가위, 그리고 휴지를 챙겼다.
더 챙길 것은 없어 보였다. 챙기고 싶은 물건은 많았지만 두 사람이 전부 들고 다닐 순 없었다.
"얼른 움직이자."
비가 오던 숲에 점점 어둠이 내려앉는 것 같아 신운성은 길을 재촉했다. 이후 서은하는 새로운 기어를 얻어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행운 스탯을 얻고 인벤토리를 얻게 되자 기뻐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리고 또 다시 기어를 얻었을 때 신운성은 서은하에게 기어를 양보했다. 계속해서 양보해 서은하는 행운이 3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서은하의 행운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 합성에 실패했습니다.
실패의 대가로 서은하의 행운은 2로 떨어졌다.
'실패하면 행운이 떨어지는 건가. 다행이네.'
신운성은 안도했다. 지금까지 계속 서은하에게 기어를 양보한 것은 바로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실패의 여파로 인벤토리 칸에 들어 있던 물건 하나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신운성은 물건을 주워들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쉬자."
주변에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원룸이었다.
'남자가 쓰던 곳인가 보네.'
운동기구와 남자 옷이 잔뜩 걸린 행거가 보였다. 한쪽에는 목검과 죽도가 놓여 있었다. 그 외에는 컴퓨터와 주방용품이 보일 뿐이었다.
신운성은 서둘러 냉장고를 열어 확인해보았다.
'김치다.'
반찬은 달랑 김치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쌀 포대와 라면 박스를 보자 기분이 든든해졌다.
'당분간 먹을 것 걱정은 없겠어.'
신운성은 쌀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쌀은 다행히도 전부 들어갔다. 쌀알을 하나의 아이템이라고 인식했다면 절대 안 들어갔겠지만 인벤토리는 쌀 포대를 하나로 인식했다.
"여기 주인은 어떻게 됐을까?"
라면 봉지를 뜯어 생라면을 씹으며 서은하는 질문을 던졌다.
"도망갔겠지. 내가 처음 본 사람도 놀라서 도망갔던데."
"그래도 이 방 주인은 운동한 것 같은데."
"운동했다고 다 잘 싸우는 건 아니야. 남자도 겁 많은 사람 많아."
"그래도 이상해."
확실히 이상했다. 하지만 신운성은 간단하게 생각했다.
"밖에 있는 좀비는 느려. 그럼 무서워서 도망갔다기보다는 위험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봐야지."
"그렇긴 하네."
이상한 시체가 서서 움직이는데 위험을 일부러 감수하며 싸울 생각을 하기보다는 피하고 보자는 생각을 하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였다. 우선 자신부터도 도망쳤기에 서은하는 신운성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단 문 잠그고 자자."
"응."
라면 다섯 개를 억지로 씹어 먹은 두 사람은 물을 마시고는 누웠다. 잠자리는 편하지 않았다. 난방도 되지 않는 상황. 하루 종일 비를 맞은 콘크리트 덩어리는 차가운 돌덩이가 되었다.
차가움을 느낀 신운성은 쉽게 잠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매트리스가 한 장 있지만 무척 얇았다. 이불도 얇았다.
'입 돌아가겠네.'
벌떡 일어나 행거의 옷을 전부 바닥에 깐 뒤 위에 누웠다.
"이리 와."
"응?"
"거기 춥잖아."
서은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신운성이 누운 옆자리에 누웠다. 옷이 깔려 있어서 잠자리가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차가운 것보다는 나았다. 옷을 깔고 방주인이 쓴 것으로 보이던 작은 매트리스를 까니 좀 더 나았다.
"자자."
신운성이 눈을 감자 서은하는 살짝 신은성의 팔을 잡고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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