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 회: 신세계 -- >
무기의 필요성. 허기. 비로 인해 체온 저하. 공포.
계속해서 겹치는 악재로 인해 신운성은 점점 지쳐갔다. 정보가 쌓이면 쌓일수록 절망이 더 커져만 갔다. 절망에 짓눌려 미칠 것 같았다. 그냥 어딘가 틀어박혀 누군가 구해주길 기다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한테 왜 이러냐고. 돌려보내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래봐야 소용없겠지.'
하지만 차가운 이성은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이상한 곳에 떨어트려놓은 존재가 애원한다고 구원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쓸모없다며 죽여버릴 가능성이 더 커보였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절망에 대항하는 오기가 치솟았다. 체력 저하로 무너져 내리던 마음에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그때였다.
- 스탯 '체력'이 생성되었습니다.
- 스탯 '정신력'이 생성되었습니다.
'어?'
낯익은 음성에 서둘러 확인해본 유저 정보창에는 체력과 정신력이라는 스탯이 추가되어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둘 다 0?'
말 그대로 스탯만 추가 되었을 뿐이었다.
'기어를 합성해 올리란 소린가? 아니면 계속 뭔가 하면 자연스럽게 올라갈까?'
조금 전까지 이를 악물고 버텼던 일이 떠올랐다.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버텨서 체력과 정신력이 생겼다고 판단한 신운성은 희망을 보았다.
'그래 그냥 죽으란 법은 없다.'
힘이 불끈 솟았다. 어쩌면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었으나 신운성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걷다가 새로운 콘크리트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덩어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좀비 한 마리가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조심해야 해.'
신운성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좀비에 물린 남자를 떠올리니 모골이 송연해지며 긴장이 전신으로 퍼졌다.
살금살금 좀비로 다가간 신운성은 있는 힘껏 무기를 휘둘렀다.
퍼걱!
단 한 방에 좀비의 머리가 박살났다. 쓰러진 좀비의 가슴 위에 생긴 유저의 기어를 합성한 신운성은 콘크리트 덩어리를 향해 걸어갔다.
'응?'
문을 열려는데 열리지 않았다.
'안에 사람이 있다!'
기쁨이 신운성의 가슴에 퍼졌다. 처음에는 사람을 경계했었다. 하지만 이젠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옆에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신뢰할 수 있을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위험부터 벗어나야 해.'
지금은 힘을 모아야 할 때였다.
"안에 누구 있어요? 여보세요!"
문을 두드리며 외치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세요."
"지나가던 사람인데요. 밖에 좀비 잡았어요.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요."
"정말요?"
"네, 확인해보세요."
문이 슬며시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신운성과 비슷한 키의 좀 뚱뚱한 소녀였다.
소녀는 좀비가 서있던 곳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좀비가 머리가 박살 난 채 쓰러져 있었다.
"아!"
끔찍한 모습에 놀란 소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괜찮아요?"
"네, 네. 고맙습니다."
긴장이 풀린 소녀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했다.
"잠시 비를 피하고 싶은데 안으로 들어가도 되죠?"
"네, 네. 들어오세요."
낯선 남자를 방으로 들인다는 것은 소녀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가웠다.
"제 이름은 신운성이에요. 그쪽은요?"
"전 서은하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서은하는 자기소개를 하면서도 연신 고맙다고 했다.
서은하는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떴다. 늦게까지 공부하고 겨우 일어난 은하는 방에 있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그리고 문제집을 펼치고 공부를 시작했다. 주말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지만 공부를 쉴 순 없었다.
풍족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고3이 되면 수능을 치러야만 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서은하의 목표였다. 딱히 꿈은 없었지만 좋은 대학에 가서 친구들을 사귀고 마음껏 자유를 누려보고 싶었다.
공부를 하다가 허기가 지면 챙겨놓은 에너지 바를 먹으며 공부했다. 밥 차려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아깝다는 말에 서은하의 부모님은 방에 작은 냉장고와 간단하게 먹을 것들을 사주었다.
한참 공부하던 서은하는 화장실에 갈 필요를 느꼈지만 화장실도 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방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기에 서은하는 계속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다 방문을 연 것은 점심때가 다 되었을 때였다.
아침을 거른 상태에서 에너지바만 먹고 버티는 것도 힘들었다. 제대로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필수 영양소와 에너지를 공급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문을 열었는데 세상이 변했다.
방 밖은 숲이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서은하는 놀라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서은하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걷지도 않은 상황에서 좀비를 보았다.
부패된 시체가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서은하는 너무 놀라 다시 방안으로 도망쳤다. 문을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었다.
'이건 꿈이야. 그래. 자고 일어나면 다시 모두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서은하는 잠을 청했다. 그리고 살짝 선잠을 자고 다시 일어났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누가 좀 도와줘!'
절망과 공포로 인해 서은하는 계속 떨고만 있었다. 그때 신운성이 찾아온 것이었다.
신운성은 서은하의 얘기를 들으며 에너지바를 먹고 음료를 마셨다. 서은하의 방에는 에너지바가 커다란 상자로 하나 가득 있었다.
'덕분에 살았네.'
얘기를 들으며 허기를 달래자 살 것 같았다. 오래 버틸 순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생존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중요했다.
"저 그런데 어떻게 된 거죠? 여긴 도대체 어디에요?"
서은하는 자신의 상황을 얘기한 다음 질문을 던졌다.
"저도 여기가 어딘지는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같은 사람이 많고 근처에 꼭 한 마리씩 좀비가 있다는 거예요."
좀비가 더 있다는 말에 서은하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밖에 있는 좀비는 제가 잡았으니까 안심해요."
"네, 네."
서은하는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안심할 순 없어요. 좀비에게 물리면 금방 죽어요. 독이 있는 것 같아요."
상황을 설명해주자 서은하는 크게 몸을 떨었다. 질린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일단 힘을 합해야 해요."
서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래서야.'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몸도 뚱뚱해서 체력이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앉아서 공부만 한 탓에 살이 찐 걸로 보였다.
'공부만 했으면 체력도 별 볼일 없을 거 같은데.'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신운성은 슬쩍 에너지바 상자를 보았다.
'저거 빼면 필요 없을 거 같은데.'
서은하를 버리고 갈 이유가 넘쳐났다. 냉정한 모습이라도 보여줬다면 그래도 도움이 될 만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서은하는 굉장히 여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 이제 어떻게 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눈물을 흘리며 서은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것을 보며 신운성은 평가를 조금 수정했다.
'충격에서 아직 못 벗어난 탓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지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일을 생각한다는 점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신운성이었다.
"일단 같이 움직여야죠. 제가 시키는 대로 잘 할 수 있죠?"
"네, 뭐든 시켜 주세요. 잘 할게요."
서은하는 고분고분했다. 이를 보며 평가는 다시 수정되었다.
'계산이 빠르네.'
자존심이 강한 타입이라면 발끈 했을 수도 있다. 남자를 호구로 생각하며 어장 관리 하는 여자라면 종처럼 부려먹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은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금방 이해하고 신운성에게 맞춰나가겠다고 바로 대답했다.
'머리 나쁜 애는 아닌 것 같다.'
버릴 이유가 많았지만 데리고 갈 이유가 드디어 보였다.
"일단 좀 쉬었다가 움직이죠."
신운성은 그렇게 말하며 윗도리를 벗었다. 흙이 잔뜩 묻어 더러운 상태였기에 그대로 자기가 꺼려졌다.
방이 더럽혀졌지만 서은하는 화내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옷장에서 신운성이 입을 만한 것을 꺼내주었다.
"이거 입어요."
"고마워요."
헐렁한 트레이닝복은 신운성에게도 맞았다. 서은하가 몸이 뚱뚱해서 큰 사이즈를 가지고 있던 덕분이었다. 보통 여자의 옷이었다면 맞지 않을 확률이 더 컸다.
"조금만 잘 게요."
"네, 주무세요."
피로에 지친 신운성은 바닥에 누웠다. 그때 서은하가 자신의 베개와 이불을 주었다.
"이거 쓰세요."
샤워도 하지 않아 더럽혀 질 텐데도 서은하는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고마워요."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은 신운성은 금방 잠들었다.
서은하는 잠든 신운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잠시 뒤 신운성이 덮은 이불을 들추고는 옆에 누워 팔을 잡고는 눈을 감았다.
다시 깨어난 신운성은 옆에서 느껴지는 숨결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서은하가 편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뭐야?'
잠깐 황당했지만 이내 금방 상황을 이해했다.
'무서운 건가?'
신운성은 좋게 생각했다.
몸을 일으킨 신운성은 다시 에너지바를 먹고 물을 마셨다. 그러자 서은하가 몸을 일으켰다.
"잘 잤어요?"
"네."
서은하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신운성을 따라 했다. 에너지바를 먹고 물을 마셨다. 이후 신운성은 방을 둘러보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뭔가 기다란 것 없어요?"
"기다란 건 왜요?"
"지금 쓰는 무기가 망가질 것 같아서요. 새 무기가 필요해요."
그러자 서은하는 옷장을 뒤져 기다란 봉을 꺼냈다.
"이거면 되나요?"
그것은 행거의 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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