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회: 신세계 -- >
"밥은 먹었니?"
집에 늦게 돌아온 신운성은 자다 말고 나오는 어머니를 보며 먹었다고 대답하고는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현재 시간은 새벽 1시. 밥을 먹기에는 굉장히 늦은 시간이었지만 신운성의 어머니는 항상 늦게 돌아오는 아들에게 밥을 먹었는지 묻는다.
하나뿐인 아들이 어디 가서 굶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챙기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신운성은 매번 반복되는 질문에도 웃으며 대답했다.
화장실에서 대충 씻은 신운성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자야할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가슴 속에 타오르는 불안과 독기는 아직 모자라다고 말하고 있었다.
'좀 더 공부해야 해. 나한테는 이 길 밖에 없어.'
신운성의 집은 흔한 서민 집안이었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운성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서 한 번 떨어졌다. 신운성이 15살 때 신운성의 아버지는 말했다.
"사실 널 대학까지 보내주긴 어려울 것 같다. 차라리 공무원이 되는 건 어떠냐?"
아버지의 말을 들은 신운성은 냉정하게 생각했었다. 집은 부유하지 못했다. 대학에 가려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게 다 빚이었다. 결국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못하면 빚만 남을 뿐이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청년 실업에 대한 얘기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얻지 못해 빚만 남은 사람들의 얘기는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사연이었다.
미래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한 신운성은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공무원 되면 시간 아끼지 월급 나오지.'
물론 합격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경쟁이 굉장히 심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운성은 대입보다는 공무원 시험을 택했다. 대학을 나오면 아주 잠깐은 어깨에 힘 좀 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취업 못하면 말짱 헛일이었다.
그래서 신운성은 맹렬하게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다. 이것도 기한을 정해두었다. 22살이 될 때까지 합격하지 못하면 공장이든 어디든 뛰어들 각오를 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직업 군인도 해볼 생각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합격해야해. 이제 감 잡았어!'
한 번 떨어지긴 했지만 아주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었다. 영어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운성은 잠잘 시간을 아껴가며 영어 독해에 매달렸다.
새벽 3시까지 영어에 매달린 신운성은 알람시계를 맞춰놓고 잠을 청했다.
'자기 전에 영어를 공부했으니 꿈에 좀 나오려나?'
미치도록 공부하다보면 가끔 꿈속에서 시험을 보기도 했었다. 꿈에 나온 문제가 시험에 고스란히 나온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꿈속에서 시험을 봤을 때 대체적으로 점수가 좀 더 높게 나왔기에 신운성은 기대했다.
6시. 달랑 3시간 자고 일어난 신운성은 어렵사리 눈을 떴다. 매일 3시간씩만 자고 버틴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틈나는 대로 잠을 자주기에 신운성은 버티는 것이 가능했다.
'화장실.'
얼른 잠에서 깨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갑자기 축축한 공기가 느껴졌다.
'응?'
비오는 날의 축축함이 집안에서 느껴지자 신운성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
'뭐야?'
보이는 것은 나무가 울창한 숲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이 덜 깼나?'
얼른 문을 닫고 문에 기댄 신운성은 눈을 비볐다. 잠에서 깨기 위해 뺨도 때렸다. 얼얼한 느낌이 들자 꿈속이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잘못 본 걸 거야.'
신운성은 다시 문을 열었다.
풍경은 똑같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이번엔 뒤로 넘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고개를 밖으로 살짝 내밀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축축한 공기는 현실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집이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집 근처에는 숲 따윈 없었기 때문이었다.
'납치도 아니고. 오즈의 마법사처럼 내가 어디론가 날아온 건가?'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믿기 힘들기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충격 받았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 됐건 상황을 파악해야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였다.
'신발이 없다.'
밖으로 나가려던 신운성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신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있나?'
옷장을 뒤지기 시작한 신운성은 슬리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세일한다고 해서 싸게 하나 사둔 것이었다. 아직 한 번도 신지 않았던 슬리퍼는 발에 딱 맞았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뒤 밖으로 나가려던 신운성은 멈췄다.
'밖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무기가 필요했다. 이상한 놈들이 수작 부린 거라면 제압할 수 있어야 했다. 방을 둘러봤지만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커터칼.'
무기로 쓰기에는 너무 작고 약했지만 일단 챙겼다.
'아, 다시 못 돌아올지도 모르니 중요한 건 다 챙기자.'
혹시 모르기에 가방에 커터칼과 편한 트레이닝복과 양말을 몇 개 넣고는 일어섰다. 그때 의자가 보였다.
신운성은 의자를 부셨다. 부서진 의자의 잔해에서 의자 다리를 챙겼다. 다리 두 개를 챙겨 하나는 가방에 넣고 하나는 손잡이 부분에 테이프와 천을 섞어 감아 미끄러지지 않게 했다.
'만약 이게 꿈인데 의자만 부서진 거면 돈 좀 깨지겠네.'
챙길만한 걸 다 챙긴 신운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비가 오네.'
밖으로 나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몸이 축축하게 젖기 시작하자 갈등이 생겼다.
'비 맞으면서 움직이면 감기 걸리는데.'
돌아갈까 말까 고민하던 신운성은 그대로 계속 움직였다.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를 따라 계속 움직이자 점점 가까워졌다.
"누구 없어요!"
점점 가까워지자 한 남자가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하는 인간일까?'
신운성은 남자를 경계했다. 평상시라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니 신운성은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나무 뒤에 숨어 고개만 슬쩍 내밀었기에 남자는 신운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거리도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일단 좀 더 지켜보자.'
가까이 다가가서 불안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함부로 믿기가 꺼려졌다.
그때였다.
"그어어어어."
어디선가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막힌 목구멍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것 같은 소리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여기선 멀다.'
소리치는 남자가 괴상한 소리와 더 가까웠다.
남자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저기요. 괜찮아요?"
나무 그늘 아래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존재를 본 남자는 도와주기 위해 다가가다가 멈췄다.
"어, 어어."
우산이 바닥에 떨어졌다. 덜덜 떨던 남자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으아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른 남자는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신운성은 급히 몸을 숨겼다.
'왜 저러지?'
멀어지는 남자의 등을 본 신운성은 비틀거리는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왜 저러는지 알아야 해.'
정보가 필요했다. 정보가 없으면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다. 신운성은 비틀거리는 존재에게 다가가면서 우산을 들었다.
우산을 쓰자 비에 더 이상 젖지 않게 되었다.
"그어어어어어."
비틀거리는 존재는 굉장히 느렸다. 신운성은 좀 더 다가갔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괴물!'
피부가 썩어가는 시체였다.
'좀비!'
생각나는 존재는 오직 하나였다. 좀비.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외형이었다. 전신이 썩어 악취를 풍겼다. 신운성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어떻게 한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침착하자.'
두려운 마음이 자꾸 도망가라고 재촉했지만 필사적으로 누르며 주변을 살폈다.
'더 있을지도 몰라.'
깨어나 보니 이상한 곳이었다. 거기다 만난 것은 좀비로 추측되는 괴물. 어딘가에 더 무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싸우는 건 위험해.'
신운성은 일단 물러났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건물에서 뜯어낸 것 같은 콘크리트 덩어리를 발견했다.
'나랑 비슷하네.'
신운성의 방도 밖에서 보면 똑같은 모습이었다.
'일단 가보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괴물을 상대할만한 무엇인가 찾아야만 했다.
남자가 나왔을 곳으로 추측되는 덩어리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사무실이었다. 한쪽에는 간이침대가 놓여 있었다.
'야근 하던 사람이었나?'
도망친 남자의 직업을 잠시 생각하던 신운성은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무기. 무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움직이다가 과도를 찾았다.
'커터칼보다는 낫다.'
과도와 테이프를 찾은 신운성은 기다란 물건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창대로 쓸 만한 게 없다.'
신운성은 낙담했다. 하지만 주저앉을 시간은 없었다. 그때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다. 한쪽에 굴러다니는 아령과 운동화였다.
'일단 신발부터 신자.'
운동화는 발에 딱 맞았다. 운이 좋았다.
'이런 투척 무기로 쓰자.'
신운성은 끈으로 쓸 만한 것을 찾았다. 사무실에 있는 기다란 케이블을 뜯어 아령을 묶었다. 적당한 길이로 자른 뒤에 남는 케이블로 올가미를 만들었다.
'나가자.'
아직 싸울 생각은 없었지만 무기가 될 만한 아이템들을 손에 넣으니 든든해진 신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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