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외전용용이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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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유진석
유진석은 간만에 친우인 신지운과 함께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으니, 협회에서 내려온 휴식 명령 때문이었다.
애초에 언제든 멋대로 쉬어도 되지만 말이다.
신지운은 마캣에서 팔던 만이천원 짜리 마른오징어 다리를 뜯어 질겅거렸다.
“하정석 그 새끼 팔자 편해졌네. 흰둥이 덕에 대박 터졌는데, 정작 그 흰둥이도 미리 정계로 오지 못하게 끊어버렸으니.”
신지운의 시선은 빌딩에 설치된 마도스크린 속에서 하정석이 연설하는 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흰둥이?”
“네 동생 유은하 말이야. 머리가 백발이니 흰둥이지. 너도 평상시라면 흰둥이 때문에 하정석 죽이겠거니 할 줄 알았는데 잘도 참았는데?”
확실히 생각해보니 흰둥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기는 한다. 귀엽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도 언제 어떻게 각성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으나, 그만큼 동생에게 관심을 덜 줬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오라비로서 잘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하정석? 죽이고 싶었지. 협상 하나 잘했다고 기고만장해져서는 동생에게 빌련 수장 짓을 하라고 특수헌터 자리까지 넘겨줬다.
물론 백화교는 이미 자치령으로 승인도 받았고 의병으로도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으니 그저 그런 못된 괴인빌런 조직도 아니다.
그러니까 사실 나쁘게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정석 멍청이가 앞으로 동생을 이용하고 토사구팽이라도 할 셈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어린 나이에 유명해지면 고생이 많다.
당장 자신이 생도 시절부터 그렇게 겪지 않았던가.
심지어 은하는 저보다 훨씬 어린 시절에 겪고 있으니, 얼마나 귀찮아질까.
“본인도 괜찮다고 했으니 뭐. 어쩔 수 있나. 따지고 보면 그 젊은 나이에 유명해지면 피곤해.”
“확실히 너도 그랬지.”
“은하가 지금 상황에서 헌터가 된다? 외국에서 놔주려 하지 않을 거야. 심지어 외모 때문에 외국 팬들도 많아.”
여자아이라는 것이 더 크게 작용했다.
한국에서는 은하단이라며 불리는 팬클럽도 있고, 은하맘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은하맘들도 흰둥이라 불렀던 것 같다.
해외에서는 특히 일본이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은하를 영입하자 등등 소리를 하지만, 시노하라는 묵묵부답.
총리랑 달리 실권을 지닌 시노하라는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그 속은 모른다.
“흰둥이가 서양과 동양이 섞인 묘한 얼굴이니 어디서든 호감이라는 느낌이 들지.”
“너 설마.”
유진석이 허리춤의 검에 손을 올리자 신지운이 고개를 저었다.
“야, 나도 연하는 싫거든? 나는 조금 더 생김새에서 성숙함이 묻어나오는 나이 많은 여자가 좋다.”
“유부녀 취향 좀 버려라.”
생도시절부터 성숙하고 헌터출신이라 말이 통하며 집안일 잘하는 나이 많은 여자가 좋다더니 여전히 그런 취향은 접지 못한 모양이다.
요즘 세상의 헌터들은 노화가 느리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20대에서 30대 초 외모를 유지한다. 그래서 신지운이 바라는 타입의 여자는 찾기 힘들다.
‘뭐 일반인 중에서도 찾기 힘들지만.’
“그러는 너야말로 애들이 다 대시하는데 왜 싫어해?”
“여자한테 묶여 사는 건 싫거든.”
사실 자식을 위해서라도 여자와 결혼은 해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는데 적당한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무엇보다도 동생이 가장 불안하고.
분명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내새끼들이 들러붙는 것보다는 낫지만, 설마 서지연과 그런 관계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사실 신검을 아직 그리워하는 거 아니야?”
“신검은 검일 뿐이었어. 그 녀석의 숭고한 희생에 죄책감에 묶여 있는 것은 개도 바라지 않는 일일거야.”
정말로 단순히 아직은 아니라고 판단할 뿐이다.
자꾸 기다려주는 여자애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무리다.
“어, 야 저기 흰둥이다. 할 것도 없는데 미행해보실?”
신지운이 저 멀리 길을 걷는 아카데미 교복차림의 제 동생을 발견했다.
그런데 미행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라는 말인가.
“야 이 미친.”
역시 동생을 노리는 무뢰배였던 건가? 그렇다면 죽여야 하지 않을까.
“왜, 궁금하지 않아? 우리 전쟁영웅께서 평소 뭐하는 지를 말이야. 너도 흰둥이 일상에 대해 전혀 모르지 않냐?”
그런데 신지운의 말을 듣고 보니 또 뭔가 그럴듯하다.
“으으음.”
그러고 보니 평소 뭐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이참에 동생의 일상을 봐주는 것도 오빠로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유진석은 여동생을 미행하기로 했다.
은하는 더듬이처럼 솟은 머리카락을 흔들거리면서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은하는 혼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쟤. 걔 아니야? 백화랑 함께 나온 애. 백화교 걔네. 순간이동 능력자.”
“그러네.”
“갑자기 민초 6통을 샀는데? 아니, 저걸 어린애한테 먹여?”
“으음.”
민트초코라니, 이건 좀 충격적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제품이기는 하지만. 여동생이 민초를 어린 애에게 먹일 줄은 몰랐다.
어쩌면 상대가 백화교라 그런 것이 아닐까.
백화교를 맡더니 괴인이라고 상대에게 아무나 먹이는 것이 아닐까.
“와 흰둥이도 열심히 먹는데? 심지어 새로 주문했어.”
잘 못 생각했다. 여동생도 민초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여동생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와서는 꼬맹이와 작별인사를 했다.
꼬맹이는 혼자 게이트를 열더니 그 속으로 쏙 사라졌다.
다시 거리를 걷던 은하의 마도기어가 울렸다.
“오 지연이한테 전화 온 걸까?”
상당히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지연이한테 연락이 온 것일까.
그런데 동생은 어딘가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지연이가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커플들이 들어갈 모텔이나 호텔도 아니다.
“누님 오랜만입니다? 이거 전쟁영웅이라 만나기 참 바빠요?”
“오랜만이네 금태양.”
은하는 어떤 놈팽이와 만나고 있었다.
“뭐야, 저 재수없게 생긴 금발태닝 양아치는?”
“허. 설마 아니겠지.”
“가만히 보니 이미 아는 사이 같고 딱히 협박당하는 거 같지는 않은데, 굳이 흰둥이가 저 녀석과 만날 이유가 있나?”
신지운은 의심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확실히 이상하군. 일단 두고 보지.”
“어, 이런 말 하기는 뭐한데, 결국 흰둥이도 여자라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뭐?”
“쟤 바지 솟은 것 봐. 어마어마하지 않냐?”
신지운이 저 금태양이란 놈의 바지를 가리켰다.
확실히 어마어마하게 크다. 아주 바지 밖으로도 숨기기 어려울 정도로. 게다가 동생도 그걸 빤히 바라보고 있고.
“내 동생이 성욕에 미친 줄 알아?”
“그런 게 아니라 이왕이면 섹스란 건 더 기분 좋게 하고 싶은 법 아니겠냐. 아마 흰둥이도 비슷할지도 모르지. 지연이와는 따로 만나고 말이야.”
“그럴 리가 없어.”
여동생이 양다리나 걸치는 어리석은 아이일 리 없다. 암,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저 상황은 조금 미심쩍기는 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두 사람은 헤어졌다.
“오. 의외네. 금방 헤어졌네. 뭐야 혹시 비즈니스 관계인가?”
다행이다. 비즈니스 관계라니. 혹여 그대로 저 남자와 함께 모텔이라도 들어갔다면 저 사내새끼의 좆 뿌리를 뽑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거리로 나온 은하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큭큭큭. 좋은 피어스 얻었고요”
무언가 손에 들고 사악하게 웃는다.
“흰둥이 왜 저리 웃냐?”
“대체 무엇을 하고 온 거지?”
당장 뛰어가서 물어보고 싶지만, 미행하던 것이 들키면 동생이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참았다.
여자애의 비밀스러운 것을 괜히 건드리면 안 된다고도 들었으니까.
“혹시 아까 그 금발 태닝. 능력이 말로 사람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거나?”
“너 진짜!”
“어. 갑자기 여자애 한 명 꼬시고 있는데? 와 쟤 진성 레즈구나. 지연이 두고 여기저기 다리 거치네.”
개소리를 하는 신지운을 두들겨 패려다가 가만히 보니 동생은 정말로 길거리 여자를 꼬시고 있었다.
은근슬쩍 어깨동무에 손까지 잡아가면서 유혹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움직임이 서큐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동생은 꼬신 여자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이번에는 모텔?”
“아무래도 쟤랑 원나잇하려나 본데?”
정말이었다. 동생은 길거리에서 헌팅한 여자를 데리고 모텔로 들어갔다.
저리 쉽게도 꼬시다니. 아니, 같은 여자가 유혹한다고 넘어오는 저 여자는 뭔가. 진심으로 동생을 교육시켜줘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여자들끼리라면 이거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닥쳐.”
“어, 야 저기 봐봐. 지연이가 왔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지연이가 나타나 씩씩거리면서 조금 전에 동생이 들어갔던 모텔로 쳐들어갔다.
얼마 후 지연은 동생의 그 더듬이 같이 솟은 머리털을 잡아 모텔에서 질질 끌고 나왔다.
질질 끌려나오는 모습이 그 모습이 웃겨 신지운이 웃길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야야야. 이거. 이거 좀 봐줘.”
“아니, 조강지처 두고 이제는 하다하다 길거리 여자까지 꼬셔? 너어 아주 오늘 딱 걸린 줄 알아!”
귀도 쭉 잡아 늘어뜨리고 있으니 동생이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에 유진석이나 신지운은 경악스러워했다.
무려 지연이가 말을 놓지 않았나.
“닷시는 안 그럴게! 길거리 여자들은 안 건드릴 테니까!”
“인간아!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못 살아!”
모텔 밖에서 동생은 대놓고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엾지만, 자업자득이니 유진석은 꾹 참았다.
“길거리면 다른 여자들은 건드린다는 거 아니야?”
“신지운 닥쳐 좀.”
안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데 옆에서 자꾸 초를 치니 정말로 한바탕 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이 들었다.
“후 좋아.”
지연이는 그걸 또 용서하고 있다. 대체 얼마나 성격이 좋은 것인가.
“아니, 쟤는 뭐 저리 인심이 좋아? 유명한 여자면 바람 허용이라는 거야?”
지연이가 원래 저렇게 관대한 인물이었나? 자기 여자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그런데 그 다음 튀어나온 지연이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어차피 네가 여기저기 대주고 다니는 건 알고 있으니까.”
여기저기 대주고 있다? 이미 동생은 순결을 잃은 걸까. 남자를 이미 만나본 걸까?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이 되어 걱정이 밀려왔다.
아니, 레즈니, 아니겠지. 대충 그렇게 여기면서 다시 은하를 지켜봤는데,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어머 은하. 여기서 뭐 하는 걸까?”
은하를 아는 척하는 여인은 보기 드문 백금발의 엘프였다. 한국에 이계인들이 있으나 극소수다. 심지어 저리 귀가 긴 순혈 엘프는 진짜 보기 힘들 텐데.
대체 은하는 어떻게 저런 인연을 만든 걸까.
“레이첼?”
“뭐임? 이 여자는?”
동생이 레이첼이라 부른 여자와 서지연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굴린다.
“그 저. 음.”
“아, 저는 은하 부인이 되는 레이첼이라고 하는데요. 그쪽은?”
“나도 은하 부인임.”
레이첼이라고 밝힌 엘프와 서지연은 서로 기싸움을 벌였다.
한참을 서로가 정실이라며 주장하던 와중, 참다못한 동생은 입을 열었다.
“그만둬. 나 때문에 둘이 싸우지 마!”
“너 때문임!”
“어디서 비운의 공주님 같이 굴어?”
그리고 그 말에 지연이와 레이첼은 동생의 양 귀를 잡고 질질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거기까지 지켜보던 신지운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네 동생은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그러게 말이야. 나도 지금껏 동생에 대해 무관심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앞으로는 동생과 자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은 유진석은 유은하를 빤히 바라보는 신지운에게 진심으로 칼을 뽑을까 고민했다.
“너 진짜 은하 노리는 건 아니지?”
“아니야. 그보다 좀 궁금한 게 있어서.”
“왜?”
“흰둥이의 황금색 눈과 백염. 아지다하카 비슷하지 않냐?”
황금색의 뱀의 눈을 연상시키는 두 눈. 그리고 백염.
확실히 비슷하기는 한데,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설마 지금 동생을 아지다하카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래서 내 여동생이 아지다하카라고?”
“압도적인 힘도 그렇고. 아니 뭐 그냥 그렇다는 거야. 아지다하카가 가장 최근에 나타났던 기록 보면 너랑 흰둥이 태어난 이후잖아.”
“그걸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해?”
아지다하카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공포로 남는 최악의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귀여운 동생과 엮어버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한 대 후려칠 생각으로 노려보는데 신지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아지다하카랑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고 있으니 저 힘이라면 한국은 한동안 괜찮다. 이런 말 하려는 거야.”
그 말에 잠시 유진석은 벙쩌디가 끌려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설마 아닐 것이다.
유진석은 쓸데없는 소리를 한 신지운을 후려쳐 태화 길드 건물로 내던졌다.
“컥! 새끼 농담도 못하게 하냐! 이런 망할 시스콘!”
“아이고 마스터! 어쩌다가 이런!”
길드원들이 몰려나와 신지운을 일으켜세웠다.
“시발. 너희들 마스터 다시는 개소리 못하게 매일 길드에서 굴려라. 만날 때마다 개소리를 지껄이니 귀가 더러워지겠어.”
귀여운 여동생을 아지다하카와 엮다니. 한 번만 개소리를 늘어놓으면 그때는 다시는 쇠능력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유진석은 굳게 다짐했다.
“잠깐.”
그런데 집으로 가고 있자니 의문이 떠올랐다.
“오늘 아카데미 쉬는 날 아닌데?”
동생은 당당하게 아카데미를 빼먹고 놀고 있던 것이다.
이건 따지고 넘어가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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