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127. 용용이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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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가 설계했는지 모르지만, 함정 배치도 그렇고 어지간히 귀찮은 모양이다.
그리고 뭔가 거대한 기요틴 같은 것이 보였다.
기구로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장에 거대한 칼날이 있어서 그 밑으로 들어가면 날이 떨어져 사람 목을 몸을 그대로 반갈죽 하는 것 같다.
"이런 건 실험해 봐야지!"
그래서 내가 직접 한 번 실험해 보았습니다.
용용이는 머리를 살며시 기요틴에 들이댔어요.
“뭐하는 거야. 이 멍청한 도마뱀이!”
살짝 목을 들이밀자 아니나 다를까 위에서 칼날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날을 레이나가 정령화살로 파괴했다.
콰앙!
아주 사르르 부서졌다. 사르르. 공중에서 그 두꺼운 기요틴의 날이 인정사정없이 박살 났다.
그럼 저것도 상당히 고철이었겠네.
“아무리 안 죽는다고 해도 그렇지 식겁했잖아!”
“맞아요. 정말 미쳤어요?”
모녀가 나한테 잔소리한다.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왜 그리 화를 내.
“그냥 실험해본 건데 뭐 어때. 심심하잖아.”
“뭐 이런 여자인 건 원래 알았지만. 그런데 진짜 사룡은 어디 있는 거예요?”
그러게. 어디 있을까.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사룡은 어딘가 있겠지.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복도 가장 끝의 작은 입구로 들어가니 거대한 돔 같은 공간에 들어왔다.
여기는 벽이 자연 발광하는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검은색 비늘로 몸을 뒤덮고 있는 도마뱀 한 마리가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음 저놈인가?”
“엄청 크네요. 황룡급 아니에요?”
크기는 황룡급 덩치기는 하다.
“황룡은 뱀 같은 느낌이지만, 이건 서양식 드래곤이네. 원래 이런 것은 먼저 쳐야지.”
황룡급이라고 가정하면 먼저 후려쳐서 나한테 종속하게 하여야 한다.
“자고 있는 건데 괜찮겠어요?”
“선빵필승! 파이어펀치!”
일단 기선을 제압하고 수하로 만들어야지.
나는 주먹에 불을 두르고 드래곤의 면상을 후려쳤다.
퍼어억!
타격감 한 번 죽인다. 그래서 몇 대 더 후려쳤다.
퍽! 뻐억!
“찰지구나.”
“나 가끔은 이혼하고 싶어.”
“혼인신고는 하셨어요?”
뒤에서 아내와 딸이 나를 버리려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와아아아아악! 어떤 놈이 감히 잠자는 드래곤을!”
덩치 큰 사룡이 몸을 비틀면서 크게 울부짖었다.
인제 보니 상당히 크다. 두 앞발로 이마를 문지르는 꼴을 보니 상당히 귀여웠다.
그런데 이놈 나한테 처맞은 놈들 중, 유일하게 멀쩡하다.
이건 세게 때려도 다치는 정도가 아닐까.
“상당히 단단한걸? 보통 사람이라면 머리가 터질 정도의 힘인데.”
“고작 엘프 계집 둘과 용인 계집인가!”
“에라잇!”
철썩!
아직도 자기 주제를 모르는 모양이라 일단 뺨따귀를 후려쳤다.
아주 술술 대가리가 옆으로 돌아간다.
“끄아아아앍!”
“와 씨. 이런 걸로 황룡을 잡을 수 있다고? 레이첼. 암만 봐도 아니야.”
쓰러지지는 않아도 몇 대 처맞고 정신없어하는 놈이 황룡을 이길 수 있다? 아니지 이건. 분명 깐프들은 나약해서 이런 놈도 못 이긴 것이 아닐까?
“아니, 얘 엄청 강해. 얘 때문에 엘프 왕국 부흥 말아먹었어. 봐봐 너한테 맞고 또 일어나잖아.”
그 말 그대로였다. 맷집하나는 좋은 새끼구나.
“감히 세계최강의 용인 이 사룡 마그뉴트를 두고 다른 용을 언급하다니! 대체 네년은 누구야?”
“나? 악룡 아지다하카다!”
심리전에서 질 수 없지. 암. 이 새끼가. 어디 한 번 계급장 대고 함 싸워볼까.
악룡과 사룡의 싸움이다. 벌써 가슴이 웅장해진다.
“잠깐. 네 년 지금 뭐라고 했냐. 악룡 아지다하카?”
한참 싸울 준비를 하는데 목소리가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싸우려고 살기를 내뱉던 아지다하카는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지금이야말로 그 기세를 찍어누를 때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사룡 마그뉴튼지 뭔지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자만심 정성가득 담겨있는 발언에 사룡은 한동안 넋이 나가더니, 내 몸에 몸을 킁킁거렸다.
애가 왜 이 지랄이지.
그리고 마침내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처든 마그뉴트는 조금 전과는 달랐다.
“마.마망?”
일전을 치르려 했던 나와 다르게 정작 마그뉴트는 눈매도 순해지더니 나를 마망이라 불렀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뭔 개씹소리.”
“마망! 보고 싶었어!”
갑자기 목소리 톤이 높아지면서 이 망할 도마뱀은 나를 앞발로 잡고 얼굴에 부비적거렸다.
심지어 혀로 내 턱살이 들어올려질 정도로 핥아 침을 묻혔다.
왜 이래. 이거. 이 다 큰 용 대가리가 무슨 수작이지?
그렇게 나는 한참 이 망할 도마뱀이 부비적거리는 걸 느끼다가 레이첼에게 그대로 끌려갔다.
“유은하. 이건 무슨 소리일까? 나는 대체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거야? 언제 이런 큼지막한 아이를 낳은 거야?”
레이첼이 내 멱살을 붙들고 흔들었다. 옆에서 레이나도 나를 노려본다.
아니, 상식적으로 저 거대한 놈이 아무리 작았다 쳐도 내 자궁에서 나올 리 없잖아.
“아니야. 안 낳았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잖아!”
“엄마. 아무리 은하가 걸레라고 해도 그러지는 않을 거야. 일단 진정해. 애초에 은하가 배부른 모습 본 적도 없어.”
레이나가 실드쳐주기는 했지만, 기분이 이상하다.
걸레 취급받으니 기분이 묘한데 진짜.
“아무튼 나는 얘 마망이 아니야.”
“마망!”
“야, 귀에 울리니까 그만 소리 질러! 내가 왜 네 마망이야?”
내가 강한 부정을 보이자 마그뉴트의 토파즈색 눈동자에 눈물이 매달렸다.
아니, 저 덩치로 눈물을 쥐어짜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결국 동정심 유발 즙짜기에 나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마망. 저를 낳아주시면서 마그뉴트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잖아요. 아직도 기억해요 숨기고 있던 꼬리를 꺼내서 제 몸을 안아주셨던.”
꼬리? 내가 꼬리 있는 걸 어떻게 알.
그리고 난 또 멱살이 잡혔다.
“유은하. 딱 걸렸어. 너 꼬리 있는 거 쟤가 아는 거 보니 진짜 같은데? 하다하다 자기 아이도 버리는 거야? 가만히 보니 눈 색도 같잖아!”
“억울해. 잠깐. 내 용생을 걸고 맹세해. 나는 얘 낳은 적 없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기억에 전혀 없다.
“저기 은하. 그냥 인정하세요. 이제 와 은하가 애 엄마라고 우리가 뭐라 하지는 않을 테니까.”
“맞아. 어미가 아이를 버려두는 것은 최악의 행위야.”
심지어 레이나 마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니, 너는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지금껏 나와 함께 한 주제에.
“아니, 정말이야.”
“그래요. 그럼 그렇다 쳐요. 일단 마그뉴트를 구워삶아야 하지 않습니까?”
레이나의 말이 맞다. 지금은 무슨 짓이라도 해서 마그뉴트를 구워삶아야 한다.
“아, 그러니까 내가 마망으로 여기는 걸 이용하면 되나?”
“그래. 저리 멍청한 것을 보니 미래에서는 저 녀석 아마 누군가에게 세뇌당한 건지도 모르겠어.”
그래. 지금은 양심적이게 내가 마망이 아니라고 밝힐 수도 없다.
어떻게든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지경이다.
그럼 나를 엄마라고 생각하는 이 아이를 이용해먹어야지.
나는 조금 전과 달리 자상한 모습으로 마그뉴트에게 다가갔다.
“마그뉴트 내가 네 엄마라고 치자. 그럼 이 엄마를 위해 도와주겠니?”
“밖으로 나가야 해?”
“응.”
당연하지. 이 좁디좁은 곳에서 내가 바랄 게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걸까?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이놈은 고개를 휙 돌렸다.
“싫어. 그건. 귀찮단 말이야.”
이놈이 어디서 싫은 척을 하고 있어. 덩치에 안 맞게.
나는 멀리 돌아가 엉덩이를 몇 대 때렸다.
찰싹! 찰싹!
“아니, 이 히키코모리 도마뱀 같으니. 너 그래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
“그야 인간이나 엘프나 다들 나 무서워한단 말이야. 그리고 여기서 잠자는 게 편해.”
설마 날 마망이라고 부르는 아이가 이렇게 히키코모리였다니. 놀랄 노자다.
“걱정하지 마. 내가 사는 세계로 데려가 줄게. 거기서 너를 영웅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따라와.”
“어떻게?”
내 말에 마그뉴트는 두 눈을 샛별처럼 반짝였다.
“황룡을 조진다면 너는 거기 인간들의 영웅이 될 거야.”
그래도 안 된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데려가야지.
솔직히 이놈을 두들겨 팰 정도라면 황룡은 내 밥이 아닐까 싶은데. 죄악과 합쳐진 핑타오의 전투력을 가늠하지 못하는 지금 괜히 무리할 이유가 없다.
“마망도 내 옆에 있어 주는 거야?”
마그뉴트가 눈을 반짝거렸다.
조금 양심에 찔리지만 어쩔 수 없지. 전쟁부터 막고 봐야한다.
“그래. 그 세계가 내 고향이니까.”
“좋아. 나 갈게!”
그 두꺼운 몸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양심에 찔리기는 하는데. 그래도 설득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면 뭐 마망으로 부르게 해줘도 괜찮다.
* * *
송도
슈우웅 콰아앙!
서해에서는 까마귀 130대가 미사일을 쏟아부으며 황룡의 동진을 저지시키고 있었다.
말이 저지지 속도를 늦출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황룡의 속도가 느리다는 점과 황룡보다 기동성이 뛰어난 헌터 공군의 피해가 전혀 없다는 것 정도였다.
송도에서 tv를 통해 황룡과 까마귀의 전투를 지켜보던 히로인들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러면 안 되는 거였어. 차라리 모선을 이용해서 공중에서 황룡을 저지하고 길드 연합이 중국군을 상대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특히 이미 회귀를 한 최시우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잖아.”
“하지만 이건.”
“게다가 은하는 아카식 레코드를 가지고 있어. 은하가 저런 전략을 제안할 정도라면 너희가 생각한 그 효율적인 계획들이 모두 실패한다는 증거 아닐까.”
이유정의 말에 최시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아카식 레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 이게 승리하는 법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번 작전을 써먹은 거겠지.”
한수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이 방법은 유은하의 방법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하지 않을까.
그때 레이가 나타나 히로인들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앉았다.
“뀨뀨!”
“레이. 언니들이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이잖니. 은하 방에 들어가서 자렴.”
“뀨이잇!”
자기를 봐주지 않자 삐진 레이는 콧김을 내뿜더니 고개를 휙 돌려 방을 나갔다.
“어머 쟤 삐친 모양인데.”
“은하랑 너무 달라서 좀 웃기네.”
“귀여우니까 뭐. 그러니까 레이라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송도를 사수해야 해.”
히로인들은 저 어린 애라도 지키자며 굳게 각오했다.
한편, 레이는 그런 히로인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은하의 방으로 들어가 혼자 놀다가 기이한 공간을 발견했다.
그곳은 마도 미사일을 조종하는 마도미사일 제어시스템실이었다.
“뀨! 뀨! 뀨! 뀨?”
레이는 유은하가 숨겨두었던 마도미사일 컨트롤러 제어시스템실에서 유은하의 젖과 비슷하게 생긴 요상한 기구를 발견했다.
그건 미사일 발사 버튼으로 조금도 유은하의 것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으나 레이는 꿩 대신 닭이라도 필요했다.
“뀨!”
그래서 가까이 거기에 머리를 박는 순간.
[삐빅대괴수 요격 마도미사일 시스템이 가동되었습니다. 유은하님 환영합니다.]
“뀨?”
갑자기 제어실에서는 이상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안에 떨던 레이는 그 버튼을 몇 번 막 눌렀다.
쿠구구구구궁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송도에서는 모든 주민이 놀랄 만큼 지진이 일어났다.
* * *
Side 박윤철
“젠장. 미사일 다 떨어졌잖아.”
어떻게든 속도를 늦췄으나 이대로 가다가는 황룡이 쏘는 브레스의 사거리 안에 서울이 들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서울은 불바다가 될 터. 박윤철이 백수처럼 사는 몇 년 동안 옆에 있어준 여자친구도 죽게 될 것이다.
“그래. 이가 없으면 잇몸이지.”
미사일이 없으면 전투기를 갖다 박으면 된다.
“일본 놈들 2차 세계대전에서 자폭하는 짓이 정말로 병신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쓰게 되네.”
[“너 뭐해? 뒤로 안 빠져?”]
한때 같은 아카데미에 다녔던 동기들이 말리지만, 지금 각오를 다졌을 때, 해야만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지. 뒤로 튀고 싶은 겁쟁이들은 빠져.”
전투가 일어난 이후, 이제 미사일을 쏘는 까마귀는 거의 볼 수 없었다. 다 떨어졌다는 증거겠지.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단 1초라도 더 저지할 방법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선택한 것이 까마귀를 황룡에 들이박는 것이다.
마력으로 날아다니는 전투기니 데미지를 입힐 수 있겠지.
박윤철은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꺼내어 눈물 콧물 질질짜며 보다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사랑했다 씨발년아!”
그리고 싸구려 멘트를 외치며 마치 불나방처럼 그의 까마귀가 황룡을 향해 돌진했다.
콰아아아앙!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