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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113화 (113/331)

〈 113화 〉 111. 서지연 넌 내거야

* * *

* * *

나는 송도의 목숨줄이 되어주는 천산그룹의 회장 이유진을 찾았다.

이번에는 회사에 있길래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지어볼 생각이었다.

“아니, 저. 그건 진짜 무리입니다. 그것만은 저희 사정을 봐주세요. 다하카님. 안 그래도 하정석이 이번 무기공급일 때문에 감찰 나왔었습니다.”

당연한 반응이지. 도시재건에 돈내놓으라는 건 진짜 도둑놈 심보니까.

하지만 말이다. 백화는 빌런이거든?

나는 무언의 압박을 넣기로 했다.

“그렇게 무리인 일입니까?”

“일단 방벽을 다시 넘는 일이 이제 불가능해졌고. 사회 인프라 까는 일은 적당한 명분이 없잖아요. 걸리면 진짜 우리 천산그룹 위험합니다.”

“그런가.”

하긴 빌런의 땅에 인프라를 깔겠다는데 가능할까. 심지어 도시를 아주 새롭게 세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세워지는 도시를 빌런에게 준다는 뜻이다.

한국정부나 협회는 절대 봐주지 않겠지. 천산 그룹이라 해도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 격리지역 다하면 어느 정도 나라의 구실도 갖출 수 있을 만한 영토에요. 태반이 폐허 상태일 테고, 자금 푸는 것도 지금은 힘들어요.”

“왜죠?”

“놀부 우주산업 놈들 때문에 우주경쟁에 나섰거든요.”

“그 놀부가 한다는 그?”

놀부우주산업. 대한민국 천산그룹과 쌍두마차를 달리는 놀부가 돈을 밀어 넣어 투자하고 있는 사업이다.

말 그대로 우주 관련한 사업.

원작에서는 그냥 놀부 관련해서 그런 내용이 없었는데. 갑자기 추가되었다.

[마스터. 지금의 천산은 원작의 천산보다 더 잘 나갑니다. 하여 놀부는 천산을 견제하기 위해 온갖 사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 그랬나.

마도 공학의 발달로 한국은 이참에 부족한 우주기술을 확보하게 된 걸까. 원래 한국은 기술이 있나.

“네. 이거 한 번 보세요.”

이유진은 노트북을 두드리는가 싶더니, 뉴스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영상에는 욕심 가득하게 생긴 이놀부가 기자들을 모아두고 뭔가 당당히 연설하고 있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마침내 화성을 테라포밍할 골렘과 설비들을 실은 우주선이 준비되었습니다. 저 이놀부는 반드시 화성으로 갈 겁니다! 자, 모두 함께 가십시다! 저 드넓은 우주를 향해!”]

오오, 이 참신하게 미친놈 보소.

지금 이 시대는 21세기 말이다.

안타깝게도 대격변 이후에 과학문명이 퇴보하고 괴수와의 전시체제 및 마도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상은 한동안 발전이 없는 듯했다.

그런 마당에 테라포밍까지?

“현실적인 일이에요?”

“네. 마력을 이용한 테라포밍이 가능하다고 하니까요. 성공만 하면 게이트가 열리는 지구를 버리고 화성으로 이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천산도 뒤늦게나마 뛰어들었어요.”

대단하다. 이 세계의 한국! 아니, 놀부가 대단한 걸까?

“성공 가능성은요?”

“이미 마도 공학으로 개발한 우주선 자체는 우리 천산 것도 몇 번 화성에 갔었으니, 거의 확실하다 보면 됩니다. 애초에 이전과 달리 우주선 자체는 마도공학으로 개발 자체는 쉬워졌어요. 문제는 화성에 갈 때까지 마력이 존재하냐, 얼마나 버티느냐 하는 것이었죠. 마력이 지구에서만 사용 가능한 거라던가. 배터리 식으로 밖에 못 쓰면 큰일이니까요. 뭐 몇 번 날린 끝에 화성에 불시착할 뿐이지 마력은 통한다는 사실은 입증했습니다.”

“테라포밍까지 하면 놀부산업 주가가 확 뛰었겠군요.”

그렇다면 지금 천산이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안 되겠지. 괜히 빌런의 동시개발 계획에 투자했다가는 돈만 날리는 격이고.

“네. 일단 저희도 우주선을 만들기는 만들었지만, 예민한 시기라 주주들 문제도 있고. 죄송합니다. 백화님.”

아니, 죄송할 필요는 없다. 나한테 해결책이 있으니까.

결국 지금은 놀부 우주 산업보다 먼저 우주선을 날리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럼 놀부우주산업보다 먼저 띄워 올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야. 문제없습니다. 놀부보다 저희 천산 마도 우주공학이 더 잘 만들었으니까요. 애초에 감찰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먼저 날렸을 겁니다. 감찰 때문에 순서가 밀렸죠. 뭐 하정석이 뒤에 있을 것 같지만요.”

이유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투자 못 하는 이유는.”

“최초로 테라포밍을 날렸으면 저희는 물량으로 승부를 봐야 하니까요. 이번에 놀부에게 밀리면 아마 놀부는 본격적으로 천산을 먹어치울 생각도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우주선을 대규모로 보내 테라포밍성능이라도 증명해야죠.”

음. 망하면 곤란하지. 일단 이유진은 내 암컷인 이유정의 언니기도 하고, 천산 그룹은 우리를 지원해주고 있으니까.

“명분은 우리가 마련해주지.”

좀 머리를 굴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가능해요? 정말로?”

“우주선 띄우는 날이나 알려주세요. 내가 기가 막힌 방법으로 엿먹이는 것을 보여줄 테니. 안 그래도 놀부 그놈이 송도 노려서 빡치던 차였으니까.”

그 개XX가 송도에 투자하겠다고 하정석을 꼬신 것도 하정석놈이 백화를 토벌하게 만드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내가 그래도 노인공경은 나름 하는 용용이라 직접 두들겨 패는 짓은 하지 않겠다만. 보복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겠습니다. 백화님.”

이유진도 말을 참잘 들어서 좋다.

자 그럼 다음은 서지연인가.

* * *

그 무렵, 한국 헌터계의 2인자 서지연은 집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당연히 유은하와 유진석의 문제였다.

앞으로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함.”

유진석이나 유은하나 둘 중 한 명.

솔직히 이제는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몇 번이나 좋아한다고도 말했었지. 하지만 유진석은 여전히 묵묵부답. 특히 최근에는 김지혜와 붙어 다닌다고 한다. 솔직히 유은하의 말대로 이대로 젊음을 낭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무 남자랑 엮일 수도 없고, 유진석에게 미련도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함. 이거.”

유진석은 거부는 아니라도, 최소한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는다. 어차피 이어질 가망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끝까지 유진석을 따라갈까?

­그럼 유진석을 대신한다고 생각해 봐. 나 목소리도 비슷하잖아?

유은하가 유진석을 대신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유은하를 유진석과 같게 여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건 순전히 유은하의 호의를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솔직히 의심스럽잖아. 유진석이. 그 인간과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지. 아니야?

자꾸 유은하가 했던 말이 쿡쿡 쑤신다.

­유진석의 주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충분히 많잖아. 너 한 명 정도는 괜찮잖아? 지금까지 목 빠지게 어필했으면 됐지. 알아주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니까? 나는 네가 진심으로 필요해. 괴인이기 때문에 도움받을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맞다. 유진석은 이미 많은 사람이 있다.

당장 자기가 아니더라도 김지혜, 레베카, 차지은 및 상당히 많은 여자가 곁에 있다. 그리고 그를 도울 인맥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어쩌면 그래서 일지도 모르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유진석은 지금의 관계를 깨트리기 싫을 테지.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아니까. 그 누구와도 이어질 수 없는 것.

결국 유진석 본인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그래서 야속한 것도 사실이다. 유진석에게 자신은 절대 특별한 여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진석의 입에서 듣고 싶은 내용을 여동생인 유은하에게서 들었다.

­저번에 그걸 보고도? 잘 생각해 봐. 나는 네가 너무 필요해.

­너를 믿고 알려줬어. 뭐 내가 싫다면 언제든 까발려도 돼. 그런 거 각오하고 나는 알려준 거니까.

심지어 협회에 꼬지르면 사회적으로 묻힐 수도 있는 일을. 평생 자유롭지 못할 비밀을 말해줬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믿고 맡길 수 있다면서.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인정해야만 했다. 자신은 그런 적극적인 행동에 약했다. 무엇보다도 은하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유진석은 대줄 생각도 안 하는데 양다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니, 유은하가 해줬던 말들을 계속 생각하면 가슴속이 따듯하게 채워지는 것 같다.

점점 유은하의 말을 계속 떠올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뭐라고 말했더라.

­사실 마음속의 첫 번째.

­무슨 소리임?

­몇 년 전부터 계속 노리고 있었으니까. 오빠가 아카데미 다닐 때 처음 너를 봤을 때 그대로 반해버렸으니까.

유은하는 저에게 마음속의 첫 번째라고 해줬다.

즉, 자신이 최우선이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가슴속의 울림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은하의 말을 생각할수록 가슴이 불타는 듯 뜨거워지고, 좋아했던 유진석을 배신하는 것 같아 가지고 있던 죄책감은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졌다.

은하의 말이 맞다. 유진석은 고자다. 좋은 남자일지언정, 여자를 가지겠다는 강단이 없다. 여자인 은하보다 못하다.

앞으로도 유은하처럼 적극 저에게 구애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이어져야 진정 행복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날 레즈로 만든 게 너라니까? 지금까지는 오빠한테 양보하려 했는데. 이제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

그 날 영화관 이후, 계속 유은하와의 만남을 생각하면서 몸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다.

백화와 차지은의 대결도 방송으로 보게 되었다.

차지은은 자신도 정면으로 싸우면 전력을 다해야 할 상대다. 유은하가 지금 유진석 때보다 기대를 받는 몸이라고 해도 생도. 심지어 고유능력인 백염조차 사용 못하는데, 차지은을 이길 거라 여기지 않았다.

해일이 덮칠 때는 얼마나 걱정이 많았는지.

솔직히 그때 죽었으면 차지은을 향해 사진을 찍어 찢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절대 협회 소속 헌터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을 품었다.

“그래도 다쳤으면 어떻게 함?”

은하를 생각하면 할수록, 유진석에 대한 사랑이 식고, 오로지 머리는 유은하고 가득 찼다.

혹시나 다쳤으면 어떻게 할까.

더는 무시할 수 없다. 명백히 자신은 유진석이 아니라 유은하에게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그러니 이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은하를 만나고 싶었다.

“혹시 나를 미워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분명히 말해 자신은 참가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정보도 알렸으니까. 은하도 분명 인정해줄 것이다.

설마하니 차지은에게 많이 다쳤다고 삐쳤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그래도 방송에서는 멀쩡해 보였으니까.

아니면 혹시 정말로 차지은에게도 마음이 있나?

방송에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차지은에게 데이트 신청했던 것 같다.

빌런이 길드 마스터를 상대로 데이트 신청이라니 먹히지도 않을 테지만, 결국 유은하의 의지가 아닐까.

그건 싫다. 유은하를 놓치기 싫었다.

“혹시 벌써? 그건 싫은 거임. 유은하가 보고 싶음.”

이기적이어도 상관없다. 한 번만 만나서 한 번만 안기면 뭔가 달라질 것 같다. 마음에 확신이 설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문득 방안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 보고 싶다고?”

“어? 언제 내 집으로?”

어느새 집에 들어와 있던 걸까. 남장 유은하가 당당히 눈앞에서 심술궂게 웃고 있었다.

“말했잖아. 너는 내 첫 번째라고(마음속) 그러니까 내가 내 거 집에 온다는 게 뭐가 문제?”

“아니, 그러니 잠시.”

유진석과 비슷한 모습으로 내 집에 침입한 그녀는 나를 사랑스럽다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바라보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따스한 눈길과 내 거라는 발언. 그 모든 것이 마음 속 빈공간을 따듯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가슴이 미칠 듯이 두근거린다.

아래가 뭔가 뜨거워진다. 특히 하복부가 근질근질하게 떨려온다.

서지연은 이 근질거림이 무엇인지 본능에 따라 알고 있었다.

그래. 자신은 유은하에게 발정하고 있었다. 씨를 뿌리지 못하는 같은 암컷을 상대로 발정하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궁이 떨리고 근질거리는 느낌이 있을까. 어서 본능에 솔직해지라고 자궁이 말하는 것 같았다.

서지연은 마침내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참을 수 없었다. 알 수 없지만 싸구려 멘트만 날리는 것 같지만, 유은하에게 강렬하게 끌리는 자신이 있었다.

“더는 무리임.”

더는 이 충동을 이겨낼 수가 없다.

어쩌면 자신은 금사빠일지도 모르겠다.

저를 적극적으로 원하는 이 여자를 놓치고 싶지도 않고 오로지 사랑으로 대하고 싶었다.

서지연은 이성의 끈을 풀어 유은하를 꼭 껴안고 그대로 입술을 포개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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