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101.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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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연이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에 길드 마스터들은 한숨을 쉬었다.
“나오기 싫은 거지. 나도 그래서 봐줬다. 그 녀석이 괜히 나섰다가는 송도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릴 수도 있으니.”
“잘 선택했네.”
길드 마스터들은 서지연의 손가락 사진기에 맞설 수 있는 실력이 있으나, 지형지물은 아니다.
서지연이 어쩔 수 없이 협회의 명령으로 송도를 공격하게 된다면 백화는 몰라도 송도가 작살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우리보고 청와대 놈들이 뒈지든 말든 공격하는 척 빠지라는 건가.”
태화길드의 마스터 신지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혀를 찼다.
“그래.”
“청와대는 헌터병력이 적은 거로 아는데? 심지어 주전력이라고 해봐야 흥부와 놀부 형제 및 몇 명인데 백화는 스피드로만 김지혜를 압도하고 유진석이 봐줬다고는 하나 유진석과 맞서 싸웠지. 그 동료인 검사는 흥부를 상대로 싸웠다고 들었어. 심지어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괴인 궁수까지. 하정석의 헌터들이 그들을 뚫는다고?”
솔직히 생각할 수 없다. 당장 지금 하정석의 헌터들은 약화한 헌터협회를 제압할 능력조차 없는 상황이다.
“1만의 국군이 동원될 예정이다.”
“아하 1만의 국군. 뭐? 하정석 그 새끼가 미쳤어? 승리한다 해도 상대는 괴인으로 이루어진 부대라 피해가 어마어마할 것이 뻔하지 않나?”
1만의 국군이라니. 그렇다면 헌터아카데미도 다니지 못한 아주 극소량의 마력만 가진 군대가 아닌가. 헌터가 되지 못한 아카데미 생도 출신도 있지만, 당연히 일반인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 새끼 머릿속을 누가 알겠어?”
“아마 자기들 헌터까지 섞었겠지.”
그렇다면 국군을 고기 방패로 사용하고 어떻게든 백화를 잡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만일 그 과정에서 국군에 큰 피해가 보기라도 한다면 자연스레 국민들은 백화를 욕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안 도와줄 거라고 예상한 것이로군.”
백청강이 혀를 찼다.
“그렇지.”
정말 대통령이란 자가 제 국민들을 사지에 빠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쌓아 올린 백화의 이미지를 떨어트리려고 할 생각이다. 어쩜 이리도 독종이란 말인가.
토벌에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욕먹겠지만 백화도 단순한 빌런으로 떨어질 테니, 어디든 강자를 섭외해서 잡기만 하면 그만이 아닌가.
그렇다면 가장 나은 선택지는 백화가 피난을 가는 것.
어차피 지금쯤은 백화도 알 것이다.
최철식과 길드 마스터들은 백화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한참 송도가 전쟁 준비로 뜨거워질 무렵. 서지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마도 기어를 준 이후 처음이다.
[모레 국군 1만 명과 하정석 휘하 헌터부. 길드 연합이 백화 토벌 예정. 난 빠질 테니 알아서 해.]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모레면,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송도에 전운이 드리우겠지.
미리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조성하길 잘했다.
세상이 요지경이 되어도 아직 국군이라는 개념은 남아있다.
당연히 구시대 만큼은 아니고 오히려 헌터 위주로 키우면서 국군의 수는 한참 줄었다.
나는 급하게 히로인들을 소집했다.
“만일 하정석이 국군을 이용한 인해전술로 나온다 치면 우린 적들을 죽이지 않는다.”
“무슨 말이야? 그럼 어떻게 이기려고?”
한수지가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나는 아공간에서 마도 총들을 끄집어냈다.
대략 1,000자루. 전에 히로인들에게 보여준 것들이다.
아직 괴인들에게 주지 않고 살상력 조절만 했다.
아마 송도에서 당장 전투가 가능한 인원에게 보급하고도 반은 남을 것이다.
“천산에서 만든 이 마도 총은 마력석을 너무 비효율적으로 많이 사용하지만 나름 강도 조절이 가능해.”
“나도 그건 알아. 마력 충전하고 한 발에 마력을 얼마만큼 사용한다를 조절할 수 있지. 약하게 할수록 살상력이 낮고.”
최시우가 좋은 토막상식을 더했다.
그래. 이 총들은 살상력이 낮은 총이다.
죽으면 오히려 저 새끼 군인 왜 하나 싶을 정도로 이건 그냥 상처만 입는 정도의 따가운 총들이다.
“나는 괴인들에게 지급한 총기에 전부 살상이 아닌 수준으로 마력을 조절해뒀어. 그러니 우리는 버틴다.”
“언제까지요?”
“그래서 중요한 것이 레이나와 한수지야. 레이나는 적의 보급고를 싹 파괴해야 해. 한수지도 그렇고. 요즘 국군이야 게이트에서도 마력 작동식 보급고를 설치하니까. 일단 찾고 나면 파괴는 쉬울 거야.”
보급이 끊기고 길드 연합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아마 상대도 꽤 발이 묶일 것이다.
“보급고의 위치는?”
고개를 기울인 한수지가 물었다. 아, 그게 문제네.
잠시 고민을 하는데 이유정이 내 어깨를 건드렸다.
“내가 알아볼게.”
“유정 선배 가능해요?”
“송도 밖 백화교 세력권 내에 곳곳에 마도 기어가 있어. 어디든 걸리겠지. 하지만 서울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 보급이 털린다고 물러날까?”
그렇기는 한데. 바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다른 수단도 있다.
“마기를 사용하면.”
“그렇게 되면 길드 연합도 피해를 보게 돼. 은하 너도 알잖아.”
최시우가 고개를 저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마기에 익숙하다. 이유정이야 송도에서 마도 기어 컨트롤만 하면 되니 상관없고. 길드 연합은 결국 인간들이다. 간부급들은 몰라도 대량의 마기가 풀리면 길드에 속한 말단 헌터들은 죽어 나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정석이 그걸로 포기한다는 보장은 없어. 하정석은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잖아. 군대가 퇴각하겠다 해도 그래도 밀어붙일지도 몰라. 죽더라도 말이지.”
그래. 마냥 희망 회로만 돌릴 수는 없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역시 로자리아가 필요한데.”
로자리아는 힐러다. 괴인이든 인간이든 상관없이 회복을 할 수 있다 이 말이다.
그러니 이쪽으로 데려와서 상처를 입은 괴인들을 치료하게 하면 딱 맞는데. 심지어 국군 1만이라면 정말 작정하고 싸워야 한다.
“비빌 용도로요?”
레이나가 나를 톡 쏘아붙였다.
나를 너무 잘 아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아니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있으면 좋거든.
결국 시노하라가 움직이면 어떻게 하면 될까.
신선조는 까다롭기만 한데. 아무래도 곤란하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국군에 혼돈을 뿌리면 결국 자기들끼리 죽일 테니 말이지,
다만 그렇게 되면 훗날 죄악을 대비할 군대가 적다.
“어? 잠깐만.”
군대 1만을 무력화시킬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찾으면 많다. 아니, 굳이 무력화가 아니라 군을 물리게 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가 먼저 선제공격을 하면?”
“선제공격이라니? 우리 이미지가 있잖아? 애초에 서울을 우리가 공격해서 승산이 있어?”
선제공격에 의한 승산이라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이 있는데 무슨 걱정일까?
“내가 누구야?”
“아.”
“너희들이 누구의 암컷인지를 잊으면 곤란해?”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서울은 방벽이 쭉 둘러쳐져 있다. 그리고 동서남북 외부와 연결된 대로가 있으며 거대한 문이 평소에는 잠겨 있다가 검문소를 지키는 헌터들의 허락을 받으면 열린다.
물론 그건 내부에서고 외부에서 공격할 시에는 문을 공격하는 건 내가 아지다하카의 힘을 쓰지 않는 전제하에 솔직히 무리다.
놀랍게도 천산 그룹 표 대괴수 방지 포탑이 있는데. 이게 발동해서 막 쏴대면 상당히 귀찮아진다.
당연히 케이트를 써서 진입해야지.
청와대로 바로 돌격하는 것이다. 하정석 그 멍청이는 끽해야 청와대 지하에 있는 밀실에 있을 것이 뻔하니까.
하여간 음습한 새끼다.
“청와대만 조지면 그만이야.”
“청와대만?”
“응. 백화교랑 너희들만 동원할 거야.”
어차피 이쪽은 소수정예니까.
괴인들을 청와대에 바로 잠입시키면 끝이다.
그 멍청이든 길드 연합과 흥부, 놀부 형제면 다 된다고 여기겠지.
“어, 설마 우리보고 죽으라고?”
한수지가 무슨 자기가 어린 여자애라도 된 듯이 두 손으로 제 몸을 감싸며 약한 척을 하고 있다.
이 중에서 너도 강한 축에 속한다는 걸 모르는 걸까.
연약한 척은 잘도 한다. 나한테 위로받고 싶은 모양이다.
“어차피 빈집털이일 텐데 어때? 그리고 한수지 너. 이미 아주 강해. 아마 청와대에 남을 헌터 병력이라고 해봐야 하정석의 개들이고.”
하정석의 휘하 헌터들은 음습한 짓을 저지른 출신들이 많다.
범죄를 저질렀다던가. 하정석이 어린 시절부터 세뇌했다던가. 그런 놈들이다.
결국 끝에는 사상개조로 인해 그 헌터들은 인간이 아니게 된다.
당연히 오로지 하정석을 위해서 일할 뿐이다.
그러니까. 딱히 죽여도 상관없는 족속들이다.
국민들도 쉬쉬하지. 하정석의 헌터들이 음습한 놈들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으니 그놈들을 잡아조져도 여론이 우리에게 불리해지지는 않을 거다.
아마 그래도 좀 강하겠지. 그래봤자 우리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겠지만.
“그럼 케이트를 이용해서 가겠네?”
“응. 조금은 미리 떡밥을 뿌려두려고.”
“응?”
“우리가 그냥 청와대를 치는 것처럼 보이면 정말로 악당 같잖아.”
악당은 악당이지만 말이다. 나름 사정있는 미녀 악당이라는 컨셉이 중요하지.
* * *
오늘도 늘 그렇듯. 방송을 켰다.
다만 오늘은 다른 이유가 있다. 경고를 하기 위해서다.
“안녕하세요. 백화입니다. 오늘은 청와대에 경고하려고 방송을 켰어요.”
??
무슨 일임?
설마 테러?
아니나 다를까. 우리 음습한 헌터 친구들은 대낮부터 집구석에 처박혀서 내 방송만 기다렸는지 바로 수백 명이 들어왔다.
대충 눈에 보인 채팅만 저런 것들이다.
트위티에서 빌런인 내 아이디를 정지시키지 않은 것도 놀랍다.
일단 그 덕에 청와대를 조지기 위한 무대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 까지나 우리는 선공을 받은 입장에서 맞서 싸우는 입장이어야 한다.
나는 화면을 향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좆으로 보였나 본데.”
여기서 나는 보지입니다. 개드립칠까 하다가 참았다.
“최근 방벽 근처를 서성이고 있고, 자꾸 헌터를 보내는 것을 보니 우리를 곧 토벌할 셈인가 본데. 대통령에게 미리 경고합니다. 만일 방벽을 넘어 우리를 공격하고자 하는 낌새가 보이면 반격을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렇게 경고를 했는데도 구역을 침범해오면 조지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보였다.
시발 길드 소집령 떨어졌다더니, 백화 토벌 때문이었어?
ㄷㄷ 전쟁임?
왜 가만히 있겠다는 애 건드리고 그러냐.
빌런이 토벌당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님?
ㅋㅋㅋㅋ그래서 지금껏 격리지역에서 잡힌 빌런 수 얼마?
음, 적당하네. 시청자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다.
아주 보기 좋다. 이렇게 혼란스러울수록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국민들의 반응도 기대된다.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노친네라 그 귓구멍으로 못 들었을지도 모르니 다시 경고 드립니다. 괜히 가만히 있는 저희 건드리지 마십시오. 청와대 박살 나기 싫으면. 그 나이 먹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계집애한테 박살 나는 건 좀. 어떨까 싶어요?”
분명히 나는 경고를 했다.
백화 반격수단 있음?
설마 살림살이도 빠듯해 보이더만.
하정석 뚝배기 깨기 가능?
생각했던 대로 반응은 뜨거웠다. 역시 어느 세상이나 쌈박질은 좋은 구경거리지.
시청자들로 들어온 말단 헌터들은 말할 것도 없다.
“시청자 여러분. 청와대가 어떻게 박살 나는지 알고 싶다면 부디 하정석이 송도를 공격하도록 응원해주세요.”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방송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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