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71화 (71/331)

〈 71화 〉 69. 막간(2)

* * *

* * *

“은하야! 유은하!”

잠에서 깨자 나를 반긴 것은 이유정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미녀가 반기는 것 만큼 상큼한것도 없다.

“유정선배. 보고 싶었어.”

나를 열심히 깨우고 있는 이유정의 머리를 당겨 입술을 탐했다.

“으읍. 아니, 잠깐만. 이건 밤에 하기로 하고. 할 말 있어.”

“할 말?”

“수지가 훈련실에서 나왔는데 머리에 뿔이 나 있어.”

그거 나 때문일 텐데? 나한테 침식당한 탓이지.

미리미리 스펙업은 중요하다.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멍청하게 원작 따라가겠다는 답답한 플레이는 내 취향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나는 후회하지 않아.

“아, 그거. 나한테 침식당해서 그래. 괴인이야.”

한수지의 변화는 히로인들의 흥미를 불러모았다.

“보나마나 이건 전부 유은하 탓이야.”

“그렇겠지.”

뭐만 터지면 내 탓이래.

정작 한수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뭐가 그리 좋아서는 머리에 난 뿔을 잡고 줄였다 늘였다 했다.

“이거 줄일 수 있다?”

당연하지. 나도 저건 자유롭게 조절하니까. 내 마기를 받아 각성한 한수지가 저것도 못하면 이무기다.

“아니 눈알이랑 눈동자는 왜 그래요? 뭐 어디서 맞고 왔나?”

“네가 다크엘프가 되는 거랑 다를 게 뭐 있어?”

“저는 그래도 ON/OFF되거든요? 곧 엘프각성도 한다구요.”

반반치킨 레이나의 말이었다.

“나도 줄이는 거 ON/OFF 되거든?”

뿔을 줄이고 있는 한수지의 말이었다.

“그런 걸로 치면 나도 ON/OFF 종잇장인데.”

“아니, 레이첼 너는 끼어들지 마.”

“나도 저기 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나는 네 애도 낳았는데.”

그거 심각하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그 애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해서 만들어진 아이는 아니니까.

더군다나 내 아이라면서 유정이를 더 따르고 있다.

지금도 유정이의 머리에 앉아서 자는 꼴이 확실히 나보다 유정이를 더 따르고 있어.

“애를 낳은 거랑 이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데. 아니, 왜 날 노려 봐?”

“잠깐 그 레이나 엄마라는 사람이 저 레이첼? 애도 낳았고?”

“아니, 의미가 조금 다르기는 한데. 일단은 맞아.”

“잠깐, 그럼 나는.”

한수지가 두 눈에 눈물을 매달았다.

여자들이 흘리는 눈물은 경찰서나 법정에서 흘리는 피해자 코스프레 즙짜기만 아니라면 각별하지.

핥아주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더 울리고 싶어서 한수지를 살포시 껴안으면서 그 귀에 속삭였다.

“수지야. 다시 말하는데. 너 같은 빌런을 봐줄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어. 그러니 내 마음에 들게 행동해야지?”

“자. 잘 못했어.”

“농담이야. 다만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알겠지?”

등을 툭툭 쳐주자 한수지는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 한숨을 쉬었다.

“이 중에서 가장 정상은 그럼 나네?”

이유정이 뭐가 그리 뿌듯한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대체 어디가요? 맨날 방구석에 처박혀서 노트북이나 두드리는 주제에.”

“맞아. 히키코모리 주제에.”

평소 무표정이던 이유정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작게 떠올랐다.

“나는 적어도 인간이잖니. 여기서 둘은 귀잡이에 한 명은 머리에 뿔도 났고 뭔가 분위기도 살벌해졌고. 인간인 내가 최종승자 아닐까?”

인간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유정이 승자기는 하지.

“훗 모르시나 본데. 엘프는 수명이 엄청 길거든요? 노화도 거의 없어요?”

“괴인이 되면 생리 안 해.”

캣파이트?

아닌데, 이건 그냥 누가 제일 정상인지 자존심을 건 것 같다. 확실히 지구의 주인이 인류이며, 절대 다수가 보통의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유정이 제일 정상이다.

아니, 아니아니. 능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미 보통의 인간은 아니지 않나?

“야, 유은하. 우리 중에 누가 제일 정상이야?”

“아니, 그냥 너희 다 이상한데.”

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걸로 싸우는지 모르겠어.

“아니, 네 아이 낳아준 나한테도 그러면 안 되잖아?”

레이첼이 레이를 내게 들이밀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다들 내게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기는 한데.

이런 상황에 나는 면역이 없다.

회사원 시절에도 따먹은 여자들이 유부녀가 많다 보니 여자들끼리 만나는 일도 없었고.

“에이씨 몰라!”

그래서 케이트를 이용해서 튀었다.

* * *

청와대

청와대에 만들어진 하정석의 비밀공간에서는 대통령 하정석과 일본의 시노하라 당주 시노하라 유즈키가 회담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보통의 정상회담과는 다르다.

일본은 형식적으로는 총리가 방한을 해야 옳았으나, 실권을 지닌 것은 시노하라 유즈키였다. 해서 외교적인 이미지 탓에 시노하라 유즈키는 하정석과 따로 밀담을 하는 식으로 접촉해야만 했다.

“저번에 내가 방일했으면 되었지. 뭐하러 방한하신다고.”

하정석은 인상을 찌푸렸다.

한성아카데미일로 협회장 최철식을 압박하려 했는데. 이렇게 일본의 실권자와 따로 만남을 가지는 것은 좋지 못했다.

“미국에 일본과 한국이 서로 우방이란 걸 보여줘야 하지 않습니까. 시노하라가의 당주로서 응당 방한을 해야지요.”

‘지랄하고 자빠졌네.’

시노하라 당주로서의 방한이라,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소녀다. 감히 그런 어린 년이 자신과 대등하게 앉으려 들다니. 대체 일본은 얼마나 회귀한 것인가. 정치에 대한 경험도 적은 여자가 이 자리에 앉아있다니.

당장 쫓아내고 싶어도, 현재 일본은 시노하라막부라고 할 정도로 시노하라가 아예 일본을 꽉 쥐고 있다. 마냥 내쫓을 수도 없다.

“음, 일리가 있으나, 우리가 더 할 말이 있는지.”

“최근에 한국제일의 헌터학교인 한성아카데미가 빌런아카데미 취급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음. 그렇지.”

“제가 편입해도 되겠습니까.”

한성이 빌런아카데미을 받는 것과 일본의 실권자가 한성에 편입하는 것이 무슨 상관인가. 혹시나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시노하라 당주면서 굳이? 교토든 도쿄든 유명 아카데미에 들어갔을 것이 아닌가?”

그 아카데미도 한국의 아카데미와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굳이 다시 한성에 들어오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시노하라의 힘으로 죄악과 관련된 일을 확인하기 위해 한성아카데미에 잠입하는 것. 그것이 미국 측에서도 바라는 것입니다.”

이미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무너진지 오래인데, 여전히 상국노릇을 하려는 미국은 하정석에게 일본만큼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이건 엄연히 내정간섭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아하하. 양국의 사적인 감정은 지우죠. 이건 결코 내정간섭이 아닙니다. 일제시대도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지금 한국과 일본을 과거로 비교하면 조선과 도쿠가와 막부의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일제시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다."

"그렇게도 부르지요."

그래. 뭐 수백년 과거까지 들먹이겠다면 사이가 나쁘지는 않겠지. 다만 대격변 이후 세계가 재정립되면서 한국은 헌터로 일본보다 강해져 공식적으로는 양국의 불편한 과거사도 끝을 맺었다. 하정석이 유독 일본을 경계하는 것은 가뜩이나 중국도 귀찮은 마당에 뒤에서 일본이 무슨 꿍꿍이를 벌여 제 정권에 정치적 타격을 줄지 알 수 없어서였다.

“말은 번지르르 잘하시는군. 허나 굳이 시노하라의 도움이 없어도 우리에게는 쟁쟁한 헌터들이 많은데 어째서 시노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마음만 먹으면 아카데미에 잠입시킬 쓸만한 헌터들은 넘쳐난다. 그런데 뭐하러 나중에 내정간섭의 건덕지를 줄지도 모를 일본의 실권자를 들인다는 말인가.

“청와대와 헌터길드의 관계는 매우 좋지 못하다고 들었습니다만. 한성에 잠입시키려면 길드 출신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고. 헌터의 도움을 받으면 협회나 길드의 권한이 더 커져 청와대의 권력은 줄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물밑에서 우리가 협력하면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흐음 그렇다고.”

하정석이 미간을 좁히자, 시노하라 유즈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국의 높으신 분들은 사과박스를 좋아하신다구요.”

“이건.”

시노하라 유즈키가 가신을 불러 아공간에서 사과박스를 꺼내었다.

그 상자를 열자 안에서 A급 코어로 가득 차 있었다. 간혹가다 S급 코어도 보이는 것이 다 팔면 어마어마한 액수가 될 것이다.

심지어 직접 돈을 받은 것이 아닌 코어로 받은 것이라 딱히 문제될 것도 없었다.

“우리는 결코 한국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뇌물이 아닌 일종의 호의라고 받아주십시오.”

“일단 성의라 하니 받아주지.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성에 편입시켜주는 것 뿐이네.”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협상은 성공했다.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사과박스까지 줬으니, 하정석이라고 마냥 일본을 무시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머리에 베일을 걸치고 밀실에서 나온 시노하라 유즈키에게 가신인 시노하라 마리코가 물었다.

“당주님. 필요 이상으로 한국을 돕는 것은 아닙니까? 저도 한국은 친하게 지내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총리에게 건덕지를 줄 수 있습니다.”

“총리는 언제든 자를 수 있어. 어차피 늦든 빠르든, 훗날의 한국은 헌터들이 쥐게 될 터. 미리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 그 유망주라 불리는 유은하란 애도 보고 싶고.”

청와대가 잘 버티고 있다지만, 한국은 결국 헌터에 의해 돌아갈 것이다. 하정석도 헌터로서의 재능은 없는 그냥 소리높여 짖는 갱 불과하니까. 어쩌면 앞으로는 헌터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지.

“본가는 어찌합니까? 당주님께서 자리를 오래 비운다면 총리가 트집을 잡을지도 모릅니다.”

시노하라 유즈키는 일본의 실권자. 비록 잠입이라 할지라도 굳이 한국의 아카데미에 편입하게 되면 구설수에 오를 것이 뻔하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가신 중에 변신능력을 가진 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카게무샤를 쓰지.”

“예. 당주님.”

이미 발판은 마련했다.

유은하라는 여생도. 시노하라 유즈키는 그녀에 대해 궁금했다.

생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뛰어난 실력을 지닌 존재. 죄악의 파편을 삼켜 최소 A급 이상의 괴인이 되어버린 생도를 단 몇 으로 쓰러트리는 힘을 소유한 인물.

미래에 한국을 이끌어갈 헌터와 친해지는 것은 시노하라에게 나쁘지 않을 것이다.

* * *

뉴욕

한국에서 나타난 죄악에 대해 미국 헌터계도 주목하고 있었다.

헌터연합에 미국대표로 나섰던 알렉스는 한국의 죄악에 대한 모든 것을 전담하고 있었다.

이미 한국에 딸이 머물 집까지 알아 봐뒀다.

생각 같으면 자신도 가고 싶었으나, 미국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 딸인 로즈마리를 보내기로 했다.

때마침 한국의 아카데미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아카데미니 그 점에서 금쪽같은 딸을 보내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님. 한국으로 가라는 말씀입니까?”

긴 금발을 잘 묶어 올린 모습이 매력적인 한 소녀가 알렉스에게 물었다.

“그렇다. 표면상으로는 유학이지만, 그 속은 죄악에 대한 조사탓이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몇몇 헌터들과 친해져라. 이 시대는 결국 헌터들의 시대. 특히 유은하라는 신검의 동생과 친해지는 것이 너에게는 좋을 것이다. ”

지금은 대헌터시대. 국경을 넘어서서 싹수가 보이는 헌터들이라면 일단 친분을 쌓고 보는 것이 좋은 시대였다.

“어떻게 생겼는데요?”

“이렇게 생겼지. 로즈마리야. 나는 내 딸이 가장 귀엽지만 이 아이가 네 곁에 있으면 더 좋지 않겠니? 신검의 생도시절보다 더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아이란다.”

로즈마리는 알렉스가 넘긴 사진을 보았다.

단체전의 한가운데서 하얀 불을 두른 검을 휘두르는 백발의 여인.

보자마자 로즈마리는 백발의 여자에게 흥미가 생겼다. 이렇게나 완벽한 외모와 몸매를 갖춘 여자는 처음 보니까.

‘어쩌면 이 여자애도 내 인형으로 삼을 수 있을지도.’

“음. 한성 아카데미라고 했죠? 가보죠 뭐.”

로즈마리는 미국에서 최연소 헌터가 되었다. 마땅히 할 일도 없다. 이참에 가서 인형을 늘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 * *

정체불명의 던전

­백화는 언제 나와?

­ㄹㅇ노예년은 빨리 주인 데리고 와라.

­왜 그럼? 시아도 귀여운데.

­시발 난 둘이 가슴 문대듯 껴안는 걸 보고 싶다고.

­보빔충 OUT!

­아니 솔직히 둘 다 얼굴 안 깠는데, 슬슬 깔 때 아님?

“아하하. 죄송해요. 주인님은 최근에 좀 바쁘셔서. 그럼 오늘의 백화TV는 여기서 끝입니다!”

최시아는 방송을 종료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할까.

아, 물론 주인님이 시키신 일이다, 시키면 기쁘게 해야겠지. 그런데 채팅에 섹드립이 보이면 화가 나서 채팅을 쓴 시청자들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다.

그야 이 몸을 언어로나 물리적으로나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주인님 뿐이니까.

최시아는 발에 밟히는 시신의 머리를 발로 터트렸다.

“이거 참, 그 유명한 송도의 학살자 아니야?”

“음?”

아무래도 쓰레기가 더 남아있던 걸까. 아니면 새로운 쓰레기가 들어온 걸까. 슬쩍 고개를 돌리니 검은 복장을 한 수십명의 빌런들이 눈에 보였다.

“여기 던전은 우리가 먹으려고 했는데 송도의 학살자가 여기 있을 줄이야.”

“몸매를 보니 존나 꼴리는데 어때? 저 년 잡아서 존나 박자.”

“얼굴은 모르는데?”

“얼굴이 엿 같아도 저 가면 씌운 상태에서 박아대면 될거야.”

천박하기 짝이 없는 언행들. 그냥 쓰레기들의 말들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귀를 자극 하는 것이 있었다.

주인님이 인정해준 얼굴에 대고 얼굴이 엿같다니. 이건 참고 넘기기 힘들다.

저런 쓰레기들에게 보여줄 얼굴은 아니지만, 최시아는 가면을 벗어 쓰레기들에게 얼굴을 보였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주인님도 칭찬한 얼굴을 감히 욕해?”

최시아는 검을 고쳐잡았다.

저 쓰레기들이 감히 지껄여서는 안 되는 말들을 지껄이고 있다.

그리고 저 쓰레기들은 얼굴을 보인 것만으로도 시선강간을 해오는 것이 어지간히도 굶주린 쓰레기인 모양이다.

“오오오. 제법 귀여운 면상이잖아?”

“목까지 펠라를 시키고 싶군.”

“그 암캐의 얼굴을 보인 것은 우리에게 강간당하고 싶어서인가 보지?”

어디서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으나, 귀가 더러워졌다.

“내가 얼굴을 보인 것은 너희들을 다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아하하. 바로 그거에요 신.아니, 마신검님. 얼른 죽이고 은하를 따먹으러 가자구요.]

‘이 아이는 주인님께 무슨 말버릇일까. 그래. 일단은 저것들을 죽여야지.’

시아가 입꼬리를 길데 늘어뜨리자, 손에 쥐고 있는 검이 불길한 빛을 번뜩였다.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