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56. 엘프유적엘프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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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 엄마아. 흐윽. 흐아아아앙!”
레이나가 레이첼이 남긴 편지와 이름표. 팬던트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이유정은 그런 레이나을 위로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얼떨떨하다.
저기 말이야. 나는 내 딸이 어떤 성격인지. 어떻게 자랐는지 전혀 몰라. 알려줄래?
저기 유은하. 여자애한테 이런 부탁하게 될 줄 몰랐는데. 앞으로도 내 딸을 사랑해줘. 약속해줄 수 있지?
지금은 그래. 그거면 됐어. 고마워. 너만 믿을게.
아직도 레이첼의 말들이 귀에 생생했다.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레이첼 실버류크란 인물은 서고에 왔다가 죽으면서 기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레이첼의 기록이 담긴 책이 있는 곳에서 멀리 끌고 왔으니. 레이첼은 점점 움직이기 힘들어진 것이다.
안전수칙의 내용에서 사람이 한명 밖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도 유념했어야 했다.
그 안전수칙을 만든 것은 엘프. 엘프왕국에서 엘프는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평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전수칙의 글자와 달리 시신의 이름표를 읽지 못했던 것도 전부.
“시발.”
내 모녀덮밥은 어떻게 되는 건데?
꿈에도 그리던,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모녀덮밥은 어쩌자는 건데?
유은하가 울부짖었다. 구와아아아아악!
안 된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여기서 내 목표를 그만둘 수는 없지.
“아카식 레코드. 그 서고로 다시 진입할 수 있어?”
[가능은 합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시공간이 뒤엉킨 공간입니다. 마스터가 서고로 재진입시 발생하는 미래의 경우의 수는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가야지.”
일단은 나중에 나만 따로 가야지.
지금 중요한 것은 엘프왕국의 이벤트를 끝내는 것이다.
“레이나. 일단 지금은 일어나자. 기록보관소에 들어왔으니,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시작이야.”
“서고로. 서고로 다시 들어갈 수 없어요?”
“레이나. 진정해.”
“유은하. 나는 들어가고 싶어요.”
“너는 진입할 수 없어. 나는 격이 달라서 들어갈 수 있지만, 이미 네 피로 기록보관소를 가동한 이상 너는 못가.”
기록보관소에 들어온 순간, 레이나의 고귀한 피가 기록보관소를 가동시켰다. 이미 마스터로 인식되었을 텐데.
“흐아앙. 으아앙.”
울고 있는 레이나를 살포시 껴안았다.
“뚝. 대신에 내가 확실히 네 어머니 살려줄게.”
“어떻게?”
“나는 진입할 수 있으니까. 이제 앞으로 벌어질 이벤트만 끝내고 말이야. 다 끝나고 내가 책임지고 살려줄게.”
단순히 레이나만을 위해서도 아니다. 나를 놀려먹은 그 깐프에게 철저한 가위치기로 혼내주지 않으면 내 화가 풀리지 않는다.
“이벤트라니?”
“저기. 저기로 진입해야 해.”
기록보관소의 중간 제어실에는 거대한 포탈이 있었다.
외관만 보면 한국에서 쓰는 포탈과는 달라서 그냥 장식물 또는 어떤 기능이 있는 마도구처럼 보이는데, 시공의 폭풍이라는 느낌이다. 놀랍게도 저건 기록의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포탈이다.
포탈에 다가가자 마치 뇌에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엘프왕국은 500년 전, 용사와 함께 마왕을 무찌른 초대 실버류크 여왕이 세운 국가. 전후, 분열된 엘프들을 통합하여 남쪽의 풍요로운 땅에 건국한 나라다. 그러나 나라가 흥하면 쇠하기도 하는 법 500년이 지난 시간. 인류 최대의 국가인 제국의 황제가 마왕과 손을 잡고 전세계를 침공. 제국을 우방이라 여겼던 엘프왕국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 그 한스러운 세월을 이곳에 보관하니, 실버류크의 고귀한 혈통이여. 이 기록을 본다면 자랑스러운 엘프의 역사를 잊지 말지어다. 반드시 엘프의 나라를 재건하여 제국을 무찌르라. 마왕으로부터 핍박받는 동포들을 구하라!
어우. 글로만 보다 이렇게 들으니 어마어마한데. 가슴이 웅장해진다.
슬쩍 레이나를 보니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다. 엘프는 엘프라는 거다. 엘프의 피가 끓고 있는 거겠지.
"일단 여기 들어가자.
“아니, 눈물나기는 하는데. 한눈에 봐도 수상해 보이지 않아요?”
“딱히 수상할 건 없어 보여. 말 그대로 포탈의 한 종류야.”
역시 이유정. 저 포탈의 정체에 대해 바로 파악했다.
이유정의 인증이 떨어진 포탈은 레이나에게도 안전권이엇는지, 우리 셋은 포탈로 함께 들어갔다.
스파아아앗!
눈부신 빛이 우리의 몸을 뒤덮으며 몸이 빙빙 돌았다. 정말 시공의 폭풍인지 온몸이 한참 돌다가 속에서 올라올 즈음에 천지가 개벽했다.
마침내 새로운 세계가 우리를 반겼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소설이나 애니에서나 볼 수 있는 판타지 세계였다.
“음?”
그리고 우리를 반긴 것은 매섭게 우리를 경계하는 엘프들이었다.
뵤족하고 기다란 귀, 특유의 하얀 피부에 금발의 오목조목하게 잘 갖춘 미형.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이 한눈에 봐도 꼴린다.
하지만 속으면 곤란하다.
설정상 시우는 엘프왕국에서 남자도 여자처럼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 절규했으니까. 즉, 아무리 예뻐도 남자같이 입고 가슴이 절벽이면 아래에 쥬지가 있을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복장은 전부 군복이다. 그중에서는 기사처럼 중무장한 자들도 있다.
“지금 여기까지 와서 그러고 싶어요?”
레이나와 이유정이 양옆에서 꼬집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원래 성욕에 대해서는 항상 솔직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엘프들은 검과 창, 활등으로 우리를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경계하고 있다.
지금은 이 뿔난 엘프들을 다독이는 것이 먼저다.
“아, 저희는.”
“대장! 두 명의 인간과 한 명은 엘프와 인간의 혼혈입니다!”
엘프들끼리 멋대로 대화하는 원작대로의 스토리가 쭉 이어지면서 나는 흥이 식었다.
“인간과 혼혈? 제국의 첩자인가? 네놈들은 누구냐?”
엘프 병사 중 한명이 창 끝으로 쿡쿡 찔렀다.
무례해도 정도가 있다. 안 그래도 토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있는데. 확 머리를 뜯어버릴라.
“시발. 좆같네.”
“인간 중 한 명은 ‘시발’‘좆같네’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럼 이름이 시발, 좆, 같네라는 건가? 어느 나라에도 그런 이름은 없는데. 제국에서 그런 이름은 없고 그런 말도 없다. 너희는 대체 누구냐?”
세상에 그딴 이름이 어디 있어.
“정신차리고 보니 이곳에 있었는데요. 그리고 그런 이름 아니에요.”
사람을 뭐로 보고.
“그럼 제국과 관련이 없다는 말이냐?”
“제국이 뭔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복식도 다르지 않습니까?”
제국은 중세유럽같은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옷차림이다.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 인간의 것. 원작에서 제국군을 본 시우의 묘사가 그랬다.
“확실히. 그렇군. 제국놈들이나 마물이 아니라면 답은 하나지. 혹시 자네들 마법이나 무기를 다룰 줄 아나?”
“예? 무슨 일 있습니까?”
“빌어먹을 제국놈들이 마왕과 함께 쳐들어오고 있네. 이미 수많은 요새가 함락당하고 이제 이곳까지 얼마 안 남았네. 자네들이 어떻게 이곳에 온지 모르겠다만, 제국인이나 마물이 아니라면 예언에 나오는 이방인일 터. 이렇게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도와주었으면 하네.”
고작해야 며칠 밖에 안 남았나? 그럼 즐길 틈이 없겠군. 레이나는 나름 이곳이 고향일 텐데.
당장이라도 골렘을 생산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거다. 나 혼자 무쌍찍기에는 엘프들을 다 구할 수도 없고.
“음. 잠시만 우리끼리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알겠네.”
얼마나 밀렸으면 갑자기 나타난 놈들을 붙잡아두지도 않고 대뜸 전력으로 쓰려 하냐.
내가 서고에 있던 탓에 시간이 좀 흘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만.
“유은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예상은 했겠지만, 우리는 엘프왕국 멸망하던 시점으로 온 것 같아.”
엘프들이 열심히 전쟁준비를 서두르는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여기서 뭐해야 하는데?”
“왕국의 멸망을 막던가. 엘프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던가.”
애초에 멸망을 막기에는 무리로 보이지만 말이다.
“아카식 레코드는 뭐라는데?”
“골렘이 있다면 막을 수 있데. 한마디로 유정선배가 도와줘야 해요.”
원래 원작에서는 왕국을 구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시우와 히로인들이 엘프들이 살던 옛땅으로 도망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
그 보상으로 지금의 엘프 여왕이 레이나에게 완전한 엘프가 될 수 있는, 각성의 촉매제를 넘긴다.
그런데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여기까지 온 이상 엘프왕국을 구한다. 그럼 더 좋은 걸 얻겠지.
그리고 레이첼도 구할 것이다. 모녀덮밥을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
“어떻게 할 건데?”
원작에서는 왕성이 먼저 공격받는다.
꼼짝없이 마왕군과 제국군에 포위당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그 가운데 시우와 히로인들이 할 수 있던 것은 고작해야 결계를 유지하다가 도망치는 것 뿐.
“제가 가서 시간을 벌어둘게요. 유정선배는 골렘을 제작해주세요. 거기 엘프님들. 여기 마정석을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여기도 마석이라는 개념은 있다. 그것이 이 세계관에서도 골렘을 제작할 수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결계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 너희들을 어찌 믿고.”
“지금은 뭐라도 필요하기는 한데.”
조금 전까지 우리를 경계하던 엘프들은 우리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로 논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망할 때까지 그 마석들은 다 소모하지도 못한다. 나중에 시우가 마석창고를 터트려 적군에게 일격을 먹인 것이 끝이었지.
그렇다면 그 마석들을 사용해도 되잖아?
“그럼 여기 이유정 선배가 필요한 것들만 지원해주세요. 그리고 선배가 만든 물건을 보고 그때 결정해주세요.”
“그건 가능하지.”
여기서 합의점은 찾았다.
이유정 선배는 골렘을 제작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 설계도가 머리에 있는 시점에서 만드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작은 로봇을 만들었다. 마력석으로 충전하면서 마력포를 발사하는 작은 골렘이다.
“너무 작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서 더 필요하다는 거죠. 이런 것들이 크고 많아진다면 제 아무리 제국군과 마왕군이라도 버티기 힘들 걸요.”
원작에서 제국군이나 마왕군은 시우와 히로인들이 상대할 만했다. 이유정이 만든 골렘도 어지간한 헌터 수준은 될 테니, 머릿수만 된다면 제국, 마왕군을 상대로 선방할 거다.
“음. 일단 여왕님께 허락을 받아야 하네.”
“예.”
엘프의 여왕. 엘프왕국은 대대로 여자가 왕위를 이었다.
여성우월주의 사회라던가. 그래서가 아니다. 그저 단순히 모두를 품어안을 자애로운 외관을 가진 자가 왕이 되는 전통이 있는데, 당연히 그런 몸은 여성 밖에 없으니까다.
남자가 아무리 자애롭게 생겨도 모두를 품어안을 정도로 압도적인 불륨감이라던가. 바디라인이 임신최적화 몸매일 리가 없지 않은가?
엄청 과거에는 폰에 최면어플이 깔려있을 것 같은 푸짐한 남성들이 왕이 되었다고 하는데. 엘프들은 미모를 중시 여기는 탓에 남성 엘프들이 시위해서 여자들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
즉, 내가 하는 말은 이런 거다.
지금 우리는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여왕을 알현하고 있다.
“그대들이 이방인인가.”
“헛!”
저 풍만한 가슴! 압도적으로 육덕진 몸매! 자애로운 눈빛! 바로 저런 것을 갖춘 자야말로 진정한 여왕이며.
“마.마망.”
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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