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37. 단체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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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몇 차례 대전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 혼자서 전부 끝냈다.
인과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굳이 최시우와 히로인들의 실력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이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고려와 서울아카데미 생도들은 하나같이 자멸해버렸다.
아, 정말 바보같다. 내가 보기엔 저 두 아카데미야 말로 혈전의 경기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서로의 깃발을 동시에 빼앗는 무승부가 나오지?”
“대놓고 10인 전투는 어떻고, 서로 마지막에 ‘훌륭했다.’,‘너야말로.’라고 지껄이면서 쓰러지는 것이 정말 웃겼어.”
실제로 그랬다. 아니, 원작도 그랬지.
작가 유은하가 쓰기 귀찮았던 건지. 아니면 이런 우정물을 그리고 싶었던 건지 몰라도 한성 아카데미의 주인공은 아주 처절하게 상대를 쓰러트리면서 올라가지만, 서울과 고려는 지들끼리 싸우면서 무승부 경기가 많았다.
그런데 원작에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현실에서는 고려와 서울만 서로 패하더라도 우정물을 찍고 있다.
한성아카데미는 정말3대 아카데미에서 아싸되게 생겼다.
[인과율 조정의 문제도 있습니다.]
“역시 그런가.”
그거라면 인정이지. 인과율의 조정 때문에 원작 그대로 개연성을 넣기보다는 실제 사람들이 우연히 우정물을 연출한 것이 된 것이다.
[특히나 한성은 마스터의 영향으로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되었습니다…….그 탓에 대진표도 영향을 준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성은 거의 한성끼리 부딪친 것 같다.
A반의 팀들은 역시 생각대로 집안빨이 큰 것 같다.
수준은 A반이 가장 높은데. 정작 B반이나 이런 애들과 실력은 비슷한 애들이 많다. 심지어 C반과도 무승부를 띄웠지.
“그럼 다음은 어디지?”
[한성아카데미 A반 1조 VS 한성아카데미 B반 1조]
B반 1조면. 그 척준경의 환생인지 성좌인지가 있는 조인데.
어차피 결승전. 나는 내 팀원들과 함께 시험장으로 들어왔다.
“아, 저놈인가.”
맞은 편에서 우리를 노려보는 B반. 흙수저들의 모임. 그리고 그 중앙에는 원작의 전개와 달리 최시우에게 철저히 무시당한 박준혁군이 있었다.
꽤 날렵하게 생겼는데, 양아치 인상이다. 머리가 금태양과 친구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색깔인데.
그런데 금태양 이놈은 아카데미다닌다면서 정작 단체전에 안 나온 것 같다.
나왔으면 그 구리빛 피부 때문에 보였을 텐데.
생각난 김에 놈한테 문자를 보내봤다.
유은하: 너 단체전 안 나옴?
NTR전문배우: 누님. 이러지 맙시다. 누님 이명 내가 뻔히 아는데. 죽기 싫소.
답변 바로 오는 것봐라. 얘 할 일 없나.
유은하: ㅅㅂ와서 나 응원이라도 해야지 새끼야.
NTR전문배우: 와 양심어디.
민트초코나 좋아하는 이놈은 금태양 주제에 겁이 많다.
금태양 답게 임자있는 여자를 암컷타락이나 시킬일이지. 쯧쯧.
“나를 앞에 두고 문자라니 아주 팔자피셨어?”
그때 앞에서 괜히 시비를 거는 남자애가 있었다.
“응?”
“A반은 너희 밖에 안 남았는데. 어때?”
어차피 A반에서 실력면으로는 B급을 넘는 애들은 없다.
끽해야 주인공과 히로인 파티.
아카데미물이면서 스케일이 큰 헌터물이다 보니, 아카데미에서의 인맥관계는 히로인을 제외하고는 많이 다루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있어 남캐는 히로인과의 스토리를 스킵하는 개새끼일 뿐이다.
하필 저 박준혁에게 주인공 취급받는 것이 나라는 점이 또 원작을 비틀고 말았다.
“그런데?”
“A반에 있다고 지들이 잘 난 줄 아는 놈들.”
박준혁. B반에서 전투실력만으로는 1등이라는 놈.
하지만 A반에 열등감을 가지고 최시우에게 덤비다 패배. 끝까지 자기 갈 길만 고집하며 원작에서 트롤로 고구마를 먹이는 인물.
사실 박준혁과의 만남은 조금 더 빠른데,최시우가 박준혁과 만나는 이벤트를 스킵한 모양인지 여기서 급발진이다.
“너는 왜 그리 삐뚤어졌냐?”
“내 말 틀렸냐? A반은 특권계층이잖냐. B반은 아무리 노력해도 A반에 올라갈 수도 없다!”
굳이 반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원작의 최시우의 대사가 떠올랐다.
확실히 그럴지도 몰라. A반에는 가문의 힘이나 부유해서 들어온 애들이 많아.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
정의로운 주인공 최시우는 꽉 막히고 다혈질인 박준혁을 설득하기 위해 온갖 멋진 말들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선인도 아닌 내가 최시우를 따라할 필요는 없다.
“너는 막 A반이 아니면 입안에 가시가 솟냐? 아니면 특권을 지닌 애들만 보면 울화가 치밀어?”
내 말에 그는 그저 나를 노려볼 뿐이다.
워낙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살아왔던 박준혁이다.
지금도 아카데미의 허가해준 덕에 알바로 먹고 사는 박준혁. 학비는 장학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B반 모두가 A반에 올 자격이 있는 건 아니지. 어디 한 번 네 실력을 보여주지 그래? 네가 그리도 싫어하는 나를 이겨봐!
최시우는 주인공 캐릭터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로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그녀가 이번에는 내게 전부 맡기는 거 같다.
“이 새끼 봐라. 순전히 지 배 아파 그러는 거잖아. A반 애들 보면 꼬우냐? 그럼 네가 신화무기라도 쥐어보던가. 아니면 신검을 쥐어보던가. 아니면 이계출신이라거나 영웅의 동생이라도 되던가.”
“…….”
박준혁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그러고 보니 얘 설정이 고아에 찢어지게 가난하게 자랐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결코 선인이 되지 못한다. 방해물에게 내 존재를 이해시킬 생각도 갱생시킬 생각도 없다.
그렇다면 이걸 이용해서 엄청 까야 하지 않을까.
“네가 전생에 저지른 게 많아서 업보로 부모도 없이 찢어지게 가난하게 태어난 주제에 왜 우리한테 지랄? 뭐? 척준경? 그러다 처맞으면 어디 덜 아프냐?”
원작에서는 그리 정의롭게 외치던 최시우가 지금은 가만히 있다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나.
냉정하게 봤을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방해되는 존재라고.
얘도 회귀하면서 성격 많이 변한 것이 아닐까.
굳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보다 어디까지나 세상을 지키기 위한. 단 그 목적이 최우선사항일 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다.
박준혁이라는 인물은 빌런은 아니지만 주인공을 상당히 귀찮게 만들었다.
히로인도 아닌 주제에 열심히 츤데레마냥 튕겨대고 최시우의 말은 들어처먹지 않고 우직하게 굴어서 후일 아카데미 근처에서 일어날 마물의 대범람에 대해 대응하는 것도 늦어진다.
그래서 이왕이면 엮이기 싫었는데.
“그렇게 꼬우면 나한테 덤벼보던가.”
내가 손가락으로 까딱거리자 박준혁이 자기 전용무기인 언월도를 꺼냈다.
생각이라는 것이 없는 놈이다.
이 단체전은 어디까지나 깃발뺏기인데, 저렇게 개념이 없으니 만년 B가 아닐까.
그 팀원들 역시 내가 마음에 안 드는지 각자 무기를 꺼냈다.
그리고 가만히 내 곁에 있던 레이나와 한수지도 활과 창을 들었다.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군요.”
“깃발이고 뭐고 필요없어. 좀 쳐맞아야 정신차리지.”
괜히 쟤네들한테 낚여줄 이유가 없다. 최시우도 그냥 가만히 나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인다.
“어 잠깐, 너희 결승전이야? 말싸움할 때가 아니라고.”
학원장들이 시험장으로 와서 나와 박준혁 팀을 말렸다. 그런데 박준혁은 아직 끝낼 생각이 없는지 히죽 웃었다.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건가?
“어차피 이제 와 의미가 있나요? 한성끼리만 하는데, 규칙 좀 바꾸죠.”
“하아, 뭐로?”
김영희를 비롯한 아카데미 학장들이 한숨을 쉬었다.
저 어린 새끼가 기어이 학원 규칙을 어기려 하는구나 하는 얼굴이다.
“말이 깃발뺏기지 처음부터 서로 쥐어패고 쓰러트리는 것이 목적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
“여기서 5대 5 한 명씩 싸우는 게 어떻겠습니까?”
박준혁 이놈이 제정신이 아니구나.
깃발뺏기에서 당장 깃발만 노려도 모자랄 판에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생각보다 훨씬 오만한데. 자부심이 강한 놈인가.
“뭐 나쁘지 않겠네요. 올해는 아직 개인전 예정이 없잖아요? 더군다나 유은하와 박준혁은 한성에서도 알아주는 생도.”
“나도 나쁘지 않은 것 같군. 관전자들도 다 기대하는 것 같은데.”
학장들의 목소리에 관전석을 보니 다들 그런 기대를 거는 것 같다.
말이 깃발뺏기지 서로 쌈박질만 했으니 굳이 귀찮은 룰을 적용하지 말라는 것 같다.
그렇게 박준혁이 바라는 대로 개인전이 되어버렸다.
[유은하 vs 박준혁]
시험장에 선 박준혁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평소보다 날카로운 분위기다.
그래. 이 누나가 특별히 선공을 내어주마.
내가 손을 까딱거리자, 박준혁은 언월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오만하기는! 제 아무리 광속이라 해도 이걸 막을 수 있을까?”
아마 내가 가속을 쓰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박준혁도 속도로 나를 잡을 생각인 것 같다.
갑자기 내 앞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눈에 다 보인다.
각성하는 바람에 아지다하카의 힘을 다 얻은 지금은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아카데미를 굳이 계속 다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약골들만 상대하니 귀찮아졌다.
이미 내 미래가 바뀐 시점에서 아카데미는 별의미가 없어졌다.
히로인들도 아카데미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던전 실습을 다니는게 더 나을 거 같은데.
애매한 것이 결국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어야 스토리에 끼어들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살아남았으니 박준혁이 제 아무리 강해도 전력이 될 필요가 없어졌다.
적군보다 못난 것은 무능한 아군이 아닐까.
박준혁이 딱 그런 쪽이다.
본래는 원작에서 뛰어난 힘을 가진 동료라 할 수 있으나 트롤짓을 많이 하는 캐릭터.
여기서 묻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소용없는데.”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제 와 막으려 해도 소용없어!”
척준경의 환생이라 불리는 박준혁은 거대한 언월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A반에 한수지가 있다면 B반에는 박준혁이 있다는 식이다.
물론 그가 가진 무기는 신화급 무기도 아닌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남겨뒀다는 창이었다. 아마 보통의 인간이라면 저 공격을 피하지 않으면 그대로 반갈죽이 되겠다만.
까앙!
나는 그냥 맞아줬다.
안타깝게도 나는 몸만 인간형이지 그 속은 아지다하카.
신체 자체에 마력을 두르면 악룡의 비늘이 가진 방어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고작해야 성좌 싱크로도 못하는 놈이 악룡의 비늘을 뚫을 리가 없다.
염화의 창이나 마룡의창도 뚫지 못하는데, 그보다 급이 낮은 창으로 내 몸을 어떻게 한다니.
“말하지 않았냐. 소용없다고.”
한 대 맞아준 나는 놈의 창을 슬쩍 밀쳐냈다.
“어째서 이걸.”
이제 와 왜 놀라냐. 각오는 했어야지.
“맞아봤자 근질거리기만 하는 공격을 내가 굳이?”
막을 필요가 있어?
내가 끝에 중얼거린 말에 박준혁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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