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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2화 (2/331)

〈 2화 〉 1. 유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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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즉, 정신차리고 나니 이 모양이라는 거다.

다시 정리를 해보자.

관리하지 않아 눈을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온 백발의 머리카락.

칠흑같이 어두운 흑색의 눈동자.

기다란 속눈썹과 오목조목 잘 짜여진 얼굴.

가녀리지만 세상의 모든 남성을 사로잡을 잘 빠진 몸매.

가만히 거울을 보니 이 얼굴 형태는 유진석의 동생 유은하였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잘 나가던 오빠인 유진석과 비교되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쌓여 집안에만 있다보니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머리 엄청 길었네.”

문득 ‘내’ 책상을 보자, 언젠가 오빠라는 작자가 한성아카데미에 있는 친구에게 내 추천서를 쓰게 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 잠깐, 나는 왜 나를 유은하와 동일시 여기는 걸까?

나는 블랙기업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사내? 아니면 사회에 대한 온갖 불만을 가지고 있는 유은하?

모르겠다. 다만 유은하가 등장하는 소설의 작가와 키배를 뜨던 이름모를 사내와 지금의 유은하 내 기억이 공존한다.

그 기억들이 서로 존재하면서 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내가 남자였든, 아니면 정신이 나가서 남자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소녀든 간에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빠가 나 아카데미 보내면 나 정말로 자살할 거야!

­해라. 썅년아.

언젠가 ‘내’가 자살쇼를 벌였던 것이 떠오른다.

새삼 생각해보니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래도 아카데미에 가는 것은 기정사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내 사망플레그를 고칠 필요가 있다.

아카데미 나가는 날까지 앞으로 일주일. 문득 눈앞이 캄캄해진 나는 책상에 있는 담배갑을 열어 입에 담배를 물었다.

“후우.”

눈앞이 다시 환해졌다.

그런데 이 담배 뭐지. 뭔가 이상하게 기분이 들뜨는 기분이다.

됐고, 앞으로의 일을 궁리해야 한다.

응. 좋아. 꿈이라고 규정하자. 아닌 말로 이런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나. 유은하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나, 사실 이건 꿈인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신검무쌍같은 무서운 세계관이 현실에 존재할 리가 없다.

그럼 적어도 이 꿈이 깰 때까지는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내 능력을 이용한다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기는 한데.”

이전의 나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세상에 불만을 토해내며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는 책상 위에 있는 노트를 펴 ‘유은하’라는 인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작성해 보았다.

이름– 유은하

나이­ 17세

성별­ 여

고유능력

보유스킬

[검술][신체강화][마력운용]

칭호: 근원에 접근한 자.

‘내’가 소설속 캐릭터인지 뭔지 몰라도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검술도 이 집으로 추방되기 전에 오빠란 자한테 배웠었고. 신체강화는 몸 안의 마력을 해방시켜 일정시간 동안 신체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거다. 성능의 차이만 있을 뿐, 헌터 후보생들이라면 어지간히 다들 사용할 수 있다.

마력운용은 마력을 다루는 힘. 컨트롤이라고 봐야 한다.

놀랍게도 이 세계의 저명한 학자 김무력씨는 마력운용을 이용한 다이어트도 가능하다고 한다.

마력운용을 계속 유지하면 신체능력도 상승한다고 했다. 그 상태로 신체강화 후에 훈련을 하면 향상한다고 적어도 작가가 말했다.

어쨌든 이 몸은 기본적으로 갖출 것은 갖추고 있다.

: 두뇌, 마력을 병렬회로로 구성한다. 너무 깊게 사용시 부작용이 있음

: 개념, 행동 등을 가속시킨다.

: 게이트 내의 장독, 얼음지대, 용암지대 등에서 몸이 친화되어 내성이 생긴다.

고유능력만 3개.

평균적으로 각성자들은 능력이 1개다.

그런데 무려 나는 3개. 물론 이거 전부 다해도 주인공인 최시우의 신검 하나에 밀린다.

딱 봐도 보이지 않는가?

작가가 설정 잡으려고 만든 고유능력들 그냥 우겨넣은 거다.

그러니 저런 개판 5분 전 같은 설명이지.

분명 작가가 그랬다. 본래는 빌런한테 줄 용도로 만든 능력이라고. 그런데 그 빌런들이 나오지 않으니 이렇게 풀어버린 것이다.

“몸에 익숙해져야지.”

기이한 것은 이상한 기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은하로서 익숙해져 있었다.

문득 든 호기심이 있다.

두뇌를 병렬로 풀가속하면 어떨까? 세상의 이치라도 깨달을까?

고유능력이라 했다. 아마 내가 사용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겠지.

나는 스스로의 머리에 가속과 병렬회로를 구성했다.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병렬회로들은 수많은 공간을 만들어냈고, 그 안에 많은 것들로 찼다.

[가속][가속][가속]

[이것은 미친 짓. 머리가 아픈 경지를 넘어섰다. 편두통도 이 정도는 아니겠지. 정신나갈 것 같애]

[정신나갈 것 같애. 정신나갈 것 같애.정신나갈 것 같애.정신나갈 것 같애.정신나갈 것 같애.정신나갈 것 같애.­­­­­­정신나갈 것 같애. 정신나갈 것 같애.정신나갈 것 같애.정신나갈 것 같애.]

빠직!

“악, 졸라 아파!”

세상의 진리라도 깨우치라는 건가.

머리가 온통 지금까지 내 기억들이 뒤섞이고 생각을 하다 기어이 텍스트처럼 정리되었다.

아무래도 이런 미친 짓은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빨았다. 과열되었던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만 같다. 순대마냥 속이 꽉 차 있던 빈공간들이 사라졌다.

“머리에 쓰면 안 돼. 진짜 병신이 될 수도 있겠어.”

그렇다면 마력을 다루는 것이 좋겠군.

이 세상은 마력을 잘 다룰수록 늙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불로라고 할 수 있다. 뭐 늙지 않는다고 죽지 않는 건 아니지만.

두뇌에 적용하는 미친 짓과는 달리 마력에 사용하면 이보다 사기는 없을 것이다.

몸 안에 품고 있던 마력에 회로를 적용하자, 순식간에 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상태로 운동을 하면 그만큼 효과를 볼 것이다.

* * *

며칠이 지났다.

“……취소.”

어느새 방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생각을 잘 못했다. 약한 것은 아닌데, 신체 자체의 체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조금 단련할 필요성이 있다.

뭐 체력이 약하지 나머지가 약한 것은 아니다.

“갈 준비나 하자.”

며칠간 이 세상에도 꽤 익숙해졌다.

그 노예처럼 일하던 남자의 시선에서나 유은하의 시선에서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 남자. 아니, 저쪽 세상이라고 해야 할까. 저쪽과 이쪽은 대격변이 일어난 역사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같았다.

사람들의 문화나 생활도 그렇고.

“머리카락은 자르는 것이 좋겠지.”

일단 대충 머리를 잘랐다. 앞머리만 대충 보기 좋게 다듬었을 뿐인데 상당한 미녀가 거울 속에 보였다.

피어싱도 전부 새로 했다. 의외로 이게 어울리고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이번에 신검각성의 사용자가 입학한다면서?”

“뿐만인가. 순혈 엘프도 입학한다고 하지 않나?”

“신검의 여동생도 입학한다던데?”

신검용사 최시우, 정령의 엘프 레이나, 신검의 여동생 유은하.

신검 각성만으로 신검용사의 이명을 얻은 주인공 최시우, 순혈 엘프는 히로인 중 하나로 정령화살을 다루는 레이나일 테고, 신검의 여동생은 나.

저렇게 벌써 소문이 퍼지고 있는 탓에 유은하인 나는 더 히로인 자리를 굳히게 되었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확실히 이레귤러짓을 해주지.”

삐릭

이번에 새로 구입해준 은하의 마도기어에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불방망이: 너 오늘 늦으면 죽는다. 알았지?]

불방망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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