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필로그 (194/194)

에필로그 19년 후

그해에는 가을이 갑자기 들이닥친 것 같았다. 9월의 첫날 아침은 사과처럼 신선했고 황금빛으로 빛났다. 일가족은 그을음 투성이인 커다란 기차역을 향해서 소음으로 가득한 도로를 잽싸게 건너갔다. 자동차 배기구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와 보행자들의 입김이 차가운 공기에 닿아 거미줄처럼 반짝였다. 부모가 밀고 잇는, 짐을 가득 실은 손수레 위에는 커다란 새장 두 개가 덜컹거리고 있었다. 새장 안에서는 부엉이들이 성이 나서 부엉부엉 울어 댔고, 빨간 머리 소녀는 아빠의 팔을 꼭 붙잡은 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두 오빠를 쫓아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너도 갈 텐데 뭘 그러니.”

해리가 소녀에게 말했다.

“2년이나 남았잖아.”

릴리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난 지금 가고 싶단 말이야!”

이 가족이 9번과 10번 승강장 사이의 개찰구를 향해 요리조리 뜷고 나아가자, 출근을 하던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부엉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때 알버스의 목소리가 주위의 소음을 뜷고 해리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두 아들은 자동차 안에서 시작한 입씨름을 다시 하고 있었다.

“아니야! 난 슬리데린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제임스, 그만 좀 해!”

지니가 타일렀다.

“전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한 것뿐이에요.”

제임스가 동생을 향해 씩 웃으면서 말했다.

“잘못한 거 아무것도 없어요. 쟨 어쩌면 슬리데린이 될지도.........”

하지만 제임스는 엄마와 눈이 딱 마주치자 그만 입을 다물었다. 다섯 명의 포터 가족은 개찰구를 향해 다가갔다. 제임스는 약간 뻐기는 듯한 눈빛으로 남동생을 힐끗 돌아보더니, 엄마 손에서 수레를 낚아채서는 냅다 뛰어갔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저한테 편지 쓰실 거죠, 그렇죠?”

알버스는 잠깐 형이 없는 틈을 타서, 당장 부모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매일 쓸게, 만약 네가 바란다면 말이야.”

지니가 대답했다.

“매일은 아니고요.”

알버스가 잽싸게 대답했다.

“제임스 형이 그러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 달에 딱 한번만 집에서 오는 편지를 받는다고 해서요.”

“우리는 작년에 제임스에게 일주일에 세 번씩 편지를 보냈단다.”

지니가 말했다.

“네 형이 호그와트에 대해서 해 주는 말을 전부 믿으려는 건 아니겠지?”

해리가 옆에서 거들었다.

“네 형은 장난치는 걸 좋아하잖니.”

그들은 나란히 서서, 속력을 내어 두 번째 수레를 밀었다. 그들이 개찰구에 닿았을 때, 알버스는 잠깐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 가족은 9와 4분의3번 승강장 위에 들어섰다. 그곳에서는 진홍색 호그와트 급행열차가 내뿜는 하얀 증기 때문에 앞을 잘 볼 수 없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안개 속으로 몰려가고 있었고, 제임스는 이미 그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다들 어디 있죠?”

그들이 승강장을 따라 걸어가는 동안, 알버스는 흐릿한 형체들을 열심히 바라보며 초조하게 물었다.

“곧 찾을거야.”

지나가 달랬다.

하지만 짙은 수증기 때문에 누군가의 얼굴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해리는 퍼시가 큰 소리로 빗자루 단속에 대해 떠들어 대는 소리를 언뜻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핑겟거리가 있다는 사실이 자뭇 기뻣다.

“저 사람들 같은데, 알버스.”

지니가 불쑥 말했다.

네 명의 사람들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제일 마지막 객차 옆에 서 있었다. 해리와 지니, 릴리와 알버스가 그들에게 바짝 다가갔을 때, 비로소 그들의 얼굴이 분명하게 보였다.

“안녕.”

알버스가 몹시 안심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로즈가 그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그녀는 이미 새로 산 호그와트 교복을 입고 있었다.

“주차는 잘 했겠지?”

론이 해리에 물었다.

“난 제대로 했거든. 헤르미온느는 내가 머글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 안 그래? 내가 시험관에게 혼동 마법을 써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니까.”

“아니, 난 안그랬어.”

헤르미온느가 대꾸했다.

“난 당신을 전적으로 믿었다고.”

“사실은, 시험관에게 혼동 마법을 쓴 게 맞아.”

해리가 알버스의 트렁크와 부엉이를 열차에 함께 실어 올리고 있을 때, 론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지만 겨우 사이드미러 보는 걸 깜빡했던 것뿐인데 뭐.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런 일에 초감각 마법을 쓸 수도 있다고.”

다시 승강장으로 내려온 그들은 릴리와 로즈의 남동생인 휴고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나중에 호그와트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어느 기숙사에 배정될지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만약 그리핀도르에 배정되지 않았다간, 쫓겨날줄 알아라.”

론이 말했다.

“뭐 그렇다고 부담 주려는 건 아니다.”

“론!”

릴리와 휴고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알버스와 로즈는 아주 심각한 표정이었다.

“정말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건 아니란다.”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타일렀다. 하지만 론은 더 이상 거기엔 신경도 쓰지 않고 잇었다. 해리와 눈이 마주치자, 론은 은근히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을 턱으로 슬쩍 가리켰다. 한순간 증기가 옅어졌고, 그곳에는 세 사람이 서서히 움직이는 안개와 또렷한 대조를 이루며 서 있었다.

“누군지 봐.”

그곳에는 드레이코 말포이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그는 어두운 색 코트와 단추를 목까지 바짝 채우고 있었는데, 머리가 약간 벗겨져서 뾰족한 턱이 더욱 강조되어 보였다. 처음 보는 소년은 알버스가 해리를 닮은 것 만큼이나 드레이코를 쏙 빼닳은 모습이었다. 드레이코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그리고 지니가 자신을 주시하고 잇음을 알아차리고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하더니 돌아섰다.

“그럼 저게 어린 스콜피우스 녀석이군.”

론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로지, 넌 모든 시험에서 반드시 저 녀석을 눌러야 한다. 정말이지 네가 엄마의 머리를 물려받아서 천만다행이라니까.”

“론, 제발.”

헤르미온느가 단호하면서도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애들을 갈라놓으려 들지 마.”

“당신 말이 맞아, 미안.”

론이 수긍하는 듯 하더니, 그만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저 애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는 마라, 로지. 할아버지는 네가 순수혈통하고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절대로 용서치 않으실 테니”

“여기요!”

그때 제임스가 다시 나타났다. 트렁크와 부엉이와 손수레는 벌써 다른 곳에 놓아둔 채, 새로운 소식을 알리려고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테디 형이 저기에 와 잇어요.”

제임스는 어깨 너머로 소용돌이 치고 있는 증기 구름 속을 가리키며 숨 가쁘게 말했다.

“방금 형을 봤어요! 글쎄 뭘 하고 잇엇는지 아세요? 빅투아르 누나랑 키스한대요!”

제임스는 어른들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분명히 실망한 기색이었다.

“우리의 테디! 테디 루핀 말이에요! 우리 빅투아르 누나랑 키스한다니까요! 우리 사촌 누나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형한테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물어봤는데.......”

“너 그애들을 방해했니?”

지니가 말했다.

“넌 정말이지 론 삼촌을 쑥 빼닮았구나.”

“.........그런데 테디 형은 누나를 단지 배웅하러 온 거라고 말했어요! 그러더니 저한테 썩 꺼지라고 그러더라구요, 글쎄, 테디 형이랑 빅투아르 누나가 키스했다니까요!”

제임스는 과연 자신의 말이 정확히 전달된 건지 의심스러운 듯 다시 한 번 덧붙였다.

“아아, 그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테디 오빤 진짜 우리 가족이 되는 거잖아요!”

릴리가 들떠서 속삭였다.

“테디는 이미 저녁을 먹으러 일주일에 네번이나 오고 있잖아. 그러지 말고 그냥 테디에게 우리랑 같이 살자고 하고, 그 문제를 매듭짓는 게 어떨까?”

해리가 말했다.

“그래요! 전 알버스랑 한방을 써도 상관없어요. 테디 형이 제 방을 쓰면 돼요!”

제임스가 흥분해서 말했다.

“그건 안 돼!”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집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고서야, 너와 알버스가 한방을 쓰는 일은 없을 거다.”

해리는 한때 파비안 프레웨트의 것이었던 낡아빠진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열한 시가 다 됐구나. 너희는 열차에 오르는 게 좋겠다.”

“네빌 선생님께 우리의 사랑을 전해 주는 거 잊지 마라!”

지니가 제임스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엄마! 전 교수님에게 사랑을 전해 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넌 네빌 선생님을 잘 알잖니!”

제임스가 어이없다는 듯 눈알을 굴렸다.

“학교 밖에서야 그렇죠.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분명히 롱바텀 교수님이잖아요, 안 그래요? 전 절대로 약초학 수업에 들어가서 선생님께 사랑을 전해 줄 수는 없다고요.”

제임스는 어머니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알버스를 향해 한 번 걷어차는 시늉을 하면서 찜찜한 기분을 털어냈다.

“나중에 보자, 알버스. 세스트랄을 조심해.”

“그건 안 보이는 건 줄 알았는데? 형이 안 보인다고 그랬잖아?”

하지만 제임스는 그거 웃으면서, 어머니가 그에게 키스하도록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짧게 포옹을 한 후에, 빠르게 승객들이 차고 있는 열차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들은 손을 한 번 흔들고는, 친구들을 찾아서 열차 통로를 후다닥 달려가는 제임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세스트랄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것 없단다.”

해리가 알버스에게 말했다.

“그 녀석들은 아주 얌전하고, 하나도 무섭지 않아. 게다가 넌 학교에 마차를 타고 올라가지 않을 거야. 배를 타고 갈 테니까.”

지니가 알버스에게 작별 인사로 키스를 해 주엇다.

“크리스마스 때 보자.”

“잘 가렴, 알버스.”

아들이 와락 껴안자. 해리가 말했다.

“다음 주 금요일에 해그리드가 차 마시러 오라고 초대했다는 걸 잊어버리면 안된다. 피브스랑 엮여서 말썽부리지 말거라.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전까지는 절대 누구하고도 결투하면 안 돼. 그리고 제임스 형한테 휘둘리지 말고.”

“슬리데린이 되면 어떡하죠?”

그 속삭임은 오직 아빠 귀에만 들렸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 코앞에 다가오자, 알버스는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이 얼마나 크고 심각한 것인지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해리는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알버스의 얼굴이 그의 얼굴보다 약간 위쪽에 있었다. 해리의 세 아이 중 오직 알버스 한명만이 릴리의 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알버스 세베루스.”

해리는 조용히 속삭였다. 지니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지니는 눈치 빠르게 열차에 오르고 있는 로즈를 향해 손을 흔드는 척했다.

“네 이름은 호그와트 교장 선생님 중 두 분의 이름을 따온 거란다. 그중 한분은 슬리데린 출신이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용감한 분이셨어.”

“그래도 만약......”

“........만약 그렇게 되면, 슬리데린 기숙사는 아주 뛰어난 학생을 한 명 얻게 되는 거지, 안 그래? 우리는 그런 거 상관하지 않아, 알버스. 하지만 그게 너한테 그토록 중요한 일이라면, 슬리데린보다 그리핀도르 쪽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 마법의 모자는 네 선택을 존중해 주거든.”

“정말로요?”

“내 경우에는 그랬단다.”

해리가 말했다. 지금껏 자식들 중 누구에게도 그 얘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 알버스의 얼굴에 놀라운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진홍색 열차의 문이 잇달아 탕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고, 흐릿하게 보이는 학부모들이 마지막 키스와 당부를 하기 위해 열차 가까이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알버스는 객차안으로 펄쩍 뛰어들었고, 지니가 뒤에서 문을 닫아 주었다. 학생들은 가장 가까운 창문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타고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모두 해리 쪽을 돌아보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이 왜 다들 쳐다보죠?”

알버스가 물었다. 알버스와 로즈는 목을 쑥 빼고 다른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신경 쓸거 없다.”

론이 말했다.

“바로 나 때문이란다. 내가 워낙 유명하거든.”

알버스와 로즈, 휴고와 릴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열차가 움직였고, 해리는 이미 흥분으로 발개진 아들의 수척한 얼굴을 바라보며 열차를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아들이 미끄러지듯 멀어져 가는 것을 계속해서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마치 그 순간이 짧은 사별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느덧 수증기의 마지막 자취까지 가을 하늘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곧 열차는 모퉁이를 돌았다. 해리는 여전히 손을 높이 들어 올린 채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저 애는 괜찮을 거예요.”

지니가 중얼거렸다.

해리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려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마에 난 번개 모양 흉터로 가져갔다.

“나도 알아.”

지난 19년 동안 그 흉터는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사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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