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장 (193/194)

제 36장 구멍 난 계획

그는 다시 땅바닥에 얼굴을 댄 채 쓰러져 있었다. 숲냄새가 콧속 가득 밀려왔다. 그는 뺨 아래에 닿은 차갑고 단단한 땅을 느낄 수 있었고, 쓰러질때의 충격으로 안경의 연결 모서리가 관자놀이에 박힌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몸 구석구석이 욱신거렸고, 살인 저주에 맞은 자리는 마치 강철 주먹으로 세게 얻어맞아 멍이 든 것 같았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쓰러진 바로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왼팔은 이상한 각도로 꺽이고 입은 떡 벌어져 있었다.

해리는 자신의 죽음을 기뻐하는 승리의 환호성을 듣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환호성 대신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다급한 발소리와 속삭임, 그리고 걱정스런 웅성거림 뿐이었다.

“주인님.........주인님........”

그것은 벨라트릭스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마치 연인에게 하듯 속삭이고 있었다. 해리는 감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대신 다른 감각들을 통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해 보려고 애썻다. 그는 자신의 지팡이가 망토 속에 그대로 꽂혀 있음을 깨달았다. 가슴과 땅바닥 사이에 지팡이가 배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배 언저리에서 뭔가 받쳐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걸 보니, 투명 망토 역시 보이지 않게 잘 집어넣어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주인님..........”

“그만하면 됐다.”

볼드모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더 많은 발소리가 들렸다. 몇몇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황급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너무도 궁금한 나머지, 해리는 눈을 실낱같이 가느다랗게 떳다.

볼드모트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수많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황급히 그의 곁을 떠나서, 공터 주위에 늘어선 무리 속으로 돌아갔다. 오직 벨라트릭스 만이 볼드모트 옆에 무릎을 꿇은 채 남아 있었다.

해리는 다시 눈을 꼭 감고, 방금 본 광경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볼드모트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고, 볼드모트는 바닥에 쓰러졌던 것 같았다. 그가 살인 저주로 자신을 공격햇을 때 무슨 일인가 벌어진 것이다. 볼드모트 역시 쓰러졌던 걸까? 그런 것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잠깐 동안 의식을 잃었다가, 이제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주인님, 부디 제가 하도록.........”

“나는 도움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볼드모트가 싸늘하게 말했다. 비록 볼 수는 없었지만, 해리는 벨라트릭스가 내밀었던 손길을 거두어들이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 있었다.

“저 녀석은.........저 녀석은 죽었나?”

순간 공터에 완벽한 정적이 감돌았다. 아무도 해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들의 따가운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꼇다. 그 시선들은 마치 그를 땅바닥에 더욱 세게 짓누르는 것만 같앗다. 해리는 손가락 하나, 눈꺼플 하나라도 움찍거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너”

볼드모트가 말했다. 그리고 쾅 소리와 함께 고통스런 비명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저 녀석을 조사해 봐라.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고해라.”

해리는 확인을 하도록 보내진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잇는 것이라고는 오직 제멋대로 쿵쿵 뛰는 가슴을 안고 그 자리에 누워서 조사당하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드모트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기를 꺼린다는 것, 그리고 과연 모든 게 작전대로 된 것인지 의심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순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손이 해리의 얼굴에 닿았다. 그 손은 계속해서 한쪽 눈꺼플을 뒤집어 보더니, 셔츠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가슴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그의 심장 박동을 짚어 보았다. 해리는 그 여자의 가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얼굴을 간질이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 여자가 그의 갈비뼈 밑에서 규칙적으로 뛰고 있는 생명의 고동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드레이코는 살아 잇나? 성안에 있니?”

그 속삭임은 거의 귀에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녀는 그의 귓가에 바싹 입술을 댄 채 깊숙이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을 구경꾼들로부터 가려 주고 있었다.

“네.”

해리는 가느다랗게 대답했다.

순간 그의 가슴 위에 얹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손톱이 그의 살을 파고 들엇다. 그러고 나서 그 손은 거둬졌다. 그리고 그녀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 아이는 죽었습니다.”

나시사 말포이가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비로소 함성이 터져 나왔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일제히 승리의 환호성을 내지르며 발을 굴렀다. 한편 가르다랗게 눈을 뜬 해리는 이 일을 축하하는 붉은색과 은색의 불꽃들이 허공으로 쏘아 올려지는 것을 보았다.

해리는 여전히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척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시사는 자신이 호그와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하여 아들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선 행렬에 동참하는 것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볼드모트가 승리를 거두든 말든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알겠느냐?”

그 엄청난 소란 속에서 볼드모트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해리 포터는 내 손에 죽었다. 그리고 이제 살아 있는 그 어떤 자도 나를 위협할 수 없다! 보라! 크루시오!”

해리는 이런 일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자신의 시신이 훼손당하지 않은 채 숲 바닥에 그대로 남겨지지는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시신은 볼드모트의 승리를 입증하기 위해 능욕당할 것이 분명했다. 공중으로 높이 들어 올려진 해리는 계속해서 축 늘어져 있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가 예상했던 것과 같은 고통은 닥치지 않았다. 그저 한 번, 두 번, 세 번 허공에 내동댕이쳐졌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안경은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고, 지팡이는 망토 속에서 조금씩 삐져나왔다. 하지만 해리는 계속해서 축 늘어진 채, 죽은 척 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공터에는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야유가 울려 퍼졌다.

“이제!”

볼드모트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성으로 간다. 그리고 저자들에게 그들의 영웅이 어떻게 되엇는지 보여 줄 것이다. 누가 시체를 끌고 가겠나? 아니지, 잠깐.......”

또다시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고, 잠시 후 해리는 몸 아래에서 땅이 진동하는 것을 느꼇다.

“네놈이 그를 들고 가라”

볼드모트가 명령했다.

“네놈 품에 안겨 잇으면, 저 녀석의 꼬락서니가 더 멋지게 잘 보일 테니까. 안 그러냐? 당장 네 꼬마 친구를 들어 올려라, 해그리드. 그리고 안경, 안경을 씌워라. 사람들이 이놈이 누군지 똑똑히 알아볼 수 있도록.”

누군가 해리의 얼굴에 마구잡이로 안경을 쒸웠다. 하지만 그를 들어 올리는 거대한 손길은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해리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느라 해그리드의 두팔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그리드가 해리를 품에 안아 올리자, 굵은 눈물방울이 그의 몸 위로 후두두둑 떨어졌다. 그래도 해리는 감히, 몸을 움직이거나 말을 해서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라고 넌지시 알려 줄 수가 없었다.

“이동!”

볼드모트가 호령했다. 해그리드는 몸을 비틀거리며 빽빽이 서 잇는 마무들을 헤치고, 다시금 숲을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해리의 머리카락과 망토 자락이 자꾸 나뭇가지에 걸렸지만, 그는 입을 헤벌리고 눈을 꼭 감은채, 가만히 안겨 있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그들 두 사람을 에워싸고 환성을 지르며 나아갔고, 아무것도 모르는 해그리드는 계속 흐느껴 울엇다. 하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느 누구도 해리 포터의 드러난 목에서 맥박이 뛰고 잇는지 어떤지 유심히 보려고 하지 않았다.

또 다른 거인 두 명이 지축을 울리며 죽음을 먹는 자들의 뒤를 따랐다. 해리는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나무들이 부러지고 쓰러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내는 엄청난 소음 때문에 새들은 날카롭게 울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심지어 죽음을 먹는 자들의 환호성마저 묻힐 지경이었다. 개선 행렬은 탁 트인 운동장을 향해 계속해서 행진했다. 잠시 후에 해리는 꼭 감은 두 눈 너머로 어둠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감지하고, 나무들이 적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잇엇다.

“베인!”

느닷없이 들려온 해그리드의 성난 울부짖음 때문에, 해리는 하마터면 눈을 번쩍 뜰 뻔 했다.

“이제 만족하느냐? 너희는 싸우지 않았지. 이 겁쟁이 말 떼들 같으니, 이제 만족하느냐? 해리 포터가 주.......죽어서.........”

해그리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또다시 눈물만 펑펑 흘릴 뿐이었다. 해리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켄타우로스 들이 그들의 행렬을 지켜보고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감히 눈을 뜰 수는 없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 중 몇 명이 켄타우로스들을 뒤로하고 지나가면서 그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잠시 후 해리는 신선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아, 그들이 숲의 가장자리에 이르럿음을 깨달았다.

“정지!”

해리는 해그리드가 볼드모트의 명령에 강제로 따르고 있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해그리드가 몸을 움찔했기 때문이다. 그때 무시무시한 냉기가 그들이 서 있는 곳을 엄습해 왔다. 해리는 숲 바깥쪽을 순찰 중인 디멘터들의 씨근덕 거리는 숨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제 디멘터들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속에서 활활 불타오르며 디멘터들을 물리치는 부적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마치 아버지의 수사슴이 가슴속에 수호자로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 누군가 해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해리는 그것이 바로 볼드모트 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잠시 후 그가 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법을 통해 크게 키워진 그의 목소리는 해리의 고막을 때리며 운동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해리 포터는 죽었다. 너희가 그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동안,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다가 살해되었다. 우리는 너희의 영웅이 죽었다는 증거로, 그의 시신을 너희에게 가져다주겠다.

너희는 전투에서 패했다. 너희는 전사들의 반을 잃었다. 나의 죽음을 먹는 자들은 너희보다 훨씬 수가 많으며, ‘살아남은 아이’는 이제 죽었다. 더 이상 전쟁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계속해서 저항하는 자는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그자의 가족까지 모조리 도살될 것이다. 지금 당장 성에서 나와,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 너희의 부모님과 아이들, 형제자매들은 모두 살아남을 것이고, 용서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 함게 건설해 나갈 새로운 세계에서 나와 함께할지어다.“

운동장에도, 그리고 성에도 정적만이 감돌았다. 볼드모트가 그와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해리는 감히 다시 눈을 뜰수가 없었다.

“가자.”

볼드모트가 말했고, 해리는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곧 해그리드가 억지로 그 뒤를 따랐다. 그 순간에 아주 살짝 눈을 뜬 해리는 볼드모트가 이제는 마법의 우리에서 나온 거대한 뱀 내기니를 어깨에 두른 채, 앞장서서 당당히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들키지 않고 망토 밑에 숨겨진 지팡이를 뽑을 수 잇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두 사람의 양옆에 서서 차츰 옅어지는 어둠을 뜷고 행진하고 있었다.

“해리.”

해그리드가 흐느꼇다.

“오오, 해리.....해리........”

해리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그들이 성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죽음을 먹는 자들의 환호성과 쿵쿵거리는 발소리 너머로, 성안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살아 있다는 신호가 들려오는지 분간하기 위해서 귀를 바짝 곤두세웠다.

“정지!”

그러자 죽음을 먹는 자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해리는 그들이 활짝 열린 학교의 현관을 마주 보며 일렬로 늘어서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꼭 감고 있는데도 불그스레한 빛이 느껴졌다. 현관 복도에서부터 흘러나온 빛이 그를 비추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는 기다렸다. 이제 곧, 그가 목숨을 던져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그 사람들이 해그리드의 품에 죽은 듯 안겨 있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안 돼!”

그 비명 소리는, 한 번도 그런 소리를 낼 거라고 기대하거나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던 맥고나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기에, 한결 더 끔찍하게 들렸다. 뒤이어 가까이에서 또 다른 여자가 킬킬대며 웃어 대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벨라트릭스가 비통해하는 맥고나걸을 보고 희희낙락하고 잇음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눈을 가늘게 뜨고 사람들로 가득 찬 문가를 보았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들의 정복자를 대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해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현관 층계로 나오고 있었다. 그는 볼드모트가 하얀 손가락으로 내기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앞쪽에 서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안 돼!”

“그럴 리 없어!”

“해리! 해리!”

론과 헤르미온느, 그리고 지니의 부르짖음은 맥고나걸의 비명 소리보다 더 처절했다. 해리는 당장 소리쳐 대답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들의 울부짖음은 일종의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했다.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도 그 이유를 깨닫고는 뒤를 이어 비명을 질렀고, 죽음을 먹는 자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조용!”

마침내 볼드모트가 소리쳤고, 그와 동시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밝은 광선이 번쩍였다. 그러자 그들 모두 입이 봉해졌다.

“이제 다 끝났다! 그를 내 발밑에 내려놓아라, 해그리드. 여기가 바로 그 녀석이 있어야 할 자리다!”

해리는 자신의 몸이 잔디밭 위에 내려지는 것을 느꼇다.

“알겠는가?”

볼드모트가 말했다. 해리는 자신이 누워 있는 곳 바로 곁에서 볼드모트가 왔다 갔다 하고 잇음을 알아차렸다.

“해리 포터는 죽었다! 이제 잘 알겟는가, 현혹된 자들이여? 이 녀석은 전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타인들에게 의지했던 꼬마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널 이겼어!”

론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곧장 침묵 마법이 깨져 버렸다. 호그와트 성을 지키던 사람들은 다시 함성을 외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잠시 후 더 커다랗게 쾅 소리가 나자, 그들의 목소리는 다시 완전히 사라졌다.

“이 녀석은 성의 운동장을 몰래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살해되었다.”

볼드모트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거짓의 기미가 느껴졋다.

“제 목숨을 구하려다 죽음을 당한......”

그때 볼드모트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해리는 허둥지둥 달려오는 발소리와 고함소리를 들었다. 곧이어 또 한 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번쩍하더니 고통스런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아주 살짝 눈을 떳다. 누군가 군중 속에서 뛰쳐나와 볼드모트를 향해 돌격한 것이었다. 해리는 그 사람이 무장해제 마법을 맞고 바닥에 털썩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볼드모트는 도전자의 지팡이를 한쪽으로 내동댕이치더니 소리내어 웃었다.

“그런데 이놈은 누구냐?”

볼드모트는 뱀처럼 나지막이 쉭쉭거리는 소리를 내며 물었다.

“누구란 말이냐? 전투에 패배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싸우려고 덤비는 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몸소 보여주기 위해 자원한 녀석은?”

벨라트릭스가 신이 나서 웃었다.

“이 녀석은 네빌 롱바텀입니다, 주인님! 줄곧 캐로우 남매의 골치를 썩여 온 녀석이지요! 둘 다 오러였던 부부의 아들놈입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아아, 그래. 기억하지.”

볼드모트가 네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빌은 무기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다시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생존자들과 죽음을 먹는 자들 사이의 빈자리에 우뚝 일어섰다.

“그런데 넌 순수혈통이 아닌가! 안 그런가, 용감한 친구?”

빈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그를 마주 보고 있는 네빌을 향해 볼드모트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쩔 거냐?”

네빌이 큰 소리로 받아쳤다.

“너는 용기와 기백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몸이다. 너는 매우 쓸모 있는 죽음을 먹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네빌 롱바텀.”

“난 절대로 네놈 편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네빌이 말했다.

“덤블도어의 군대여!”

네빌이 소리치자 군중으로부터 그에 응답하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아마도 볼드모트의 침묵마법도 그들을 완전히 제지하지는 못하는 듯 했다.

“아주 훌륭해!”

볼드모트가 말했다. 해리는 비단같이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에서 가장 강력한 저주를 외칠 때보다도 더 커다란 위험을 감지했다.

“네 선택이 그러하다면, 롱바텀. 우리는 원래의 계획으로 돌아가야겠다. 네 머리에.........”

볼드모트가 조용히 말했다.

“그것을 씌어주지.”

여전히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지켜보던 해리는 지팡이를 휘두르는 볼드모트를 보았다. 잠시 후 성의 창문 중 하나에서 괴상한 새 같은 것이 튀어나오더니 어슴푸레한 대기를 뜷고 날아와 볼드모트의 손에 내려앉았다. 볼드모트는 곰팡이가 슨 그 물건의 뽀족한 끝을 잡고 흔들었다. 속이 비고 너덜너덜 한 그것은 허공에서 대롱대롱 흔들렸다. 그것은 바로 마법의 모자였다.

“호그와트에서 더 이상 기숙사 배정은 없을 것이다.”

볼드모트가 말했다.

“더 이상 여러 개의 기숙사들도 없을 것이다. 내 고귀한 조상인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문장과 방패, 깃발이면 모든 학생들에게 충분할 것이다. 안 그러냐, 네빌 롱바텀?”

볼드모트는 네빌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점차 뻣뻣해지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자가 네빌의 머리에 강제로 씌워지더니 그의 눈 아래까지 미끄러져 내려왔다. 성 앞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술렁거리자, 죽음을 먹는 자들은 일제히 지팡이를 치켜들어 호그와트의 전사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제 여기 있는 네빌이, 나에게 계속해서 반항할 만큰 어리석은 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 주겠다.”

볼드모트가 말했다. 곧이어 그가 지팡이를 한 번 까딱 움직이자, 마법의 모자는 불꽃을 튀기며 확 타올랐다.

비명 소리가 새벽 공기를 찢어 놓았다. 네빌은 제자리에 못박힌 듯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불길에 휩싸였다. 해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뭔가 행동을 취해야만 했다.

바로 그때 많은 일들이 동시에 벌어졌다.

저 멀리 학교의 경계 너머에서부터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수백 명의 인파가 우르르 떼를 지어 시야 밖에 있는 벽을 뛰어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전투의 함성을 내지르며 성을 향해 질주해 왔다. 그와 동시에 그롭이 성의 옆쪽에서 쿵쿵거리며 나타나더니 “해거!” 하고 소리쳤고, 여기에 맞서 볼드모트의 거인들도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수코끼리들 처럼 그롭을 향해 지축을 울리며 돌진했다. 뒤이어 말발굽 소리와 휭 하고 활 시위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죽음을 먹는 자들의 한복판으로 갑자기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깜짝 놀란 죽음을 먹는 자들이 비명을 질렀고, 대열은 무너져 버렸다. 해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망토 속에서 투명 망토를 꺼내 쓰고는 벌떡 일어 났다. 때마침 네빌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날쌔고 유려한 동작으로 네빌은 자신을 묶고 있던 동작 그만 저주를 깨뜨렸다. 순간 활활 타오르던 마법의 모자가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네빌은 모자 속에서 손잡이에 루비가 박힌, 반짝이는 은빛의 무언가를 뽑았다.

은빛 칼날을 내려치는 소리는 다가오는 군중들의 함성 소리와 맞붙어 싸우는 거인들의 소리, 그리고 앞 다투어 달려오는 켄타우로스들의 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장면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듯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네빌은 거대한 뱀의 머리를 베어 버렸다. 뱀의 머리통은 현관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불꽃을 받아 반짝거리며, 빙글빙글 돌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 한편 볼드모트는 입을 딱 벌린 채, 소리 없는 분노의 비명을 내질렀다. 이윽고 뱀의 몸통이 그의 발치에 쿵 떨어졌다.

투명 망토 아래 숨어 있던 해리는, 볼드모트가 미처 지팡이를 치켜들기 전에 네빌과 볼드모트 사이에 방패 마법을 쳤다. 다음 순간, 비명 소리와 함성, 결투하는 거인들의 우레와 같은 발소리를 뜷고 해그리드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해리!”

해그리드가 소리쳤다.

“해리, 해리가 어디 있지?”

혼돈이 판을 치고 있엇다. 돌진하는 켄타우로스들은 죽음을 먹는 자들을 쫓아내고 있었고, 사람들은 쿵쿵거리는 거인들의 발을 피해서 달아나고 있었다.딱히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사방에서 몰려든 지원군들이 사나운 기세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해리는 날개 달린 거대한 생물들이 볼드모트 편 거인들의 머리 주위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세스트랄들과 히포그리프인 벅빅은 거인들의 눈을 할퀴었고, 그롭은 거인들을 향해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이제 마법사들은, 호그와트 성을 지키던 사람들이나 죽음을 먹는 자들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성안으로 밀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해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죽음을 먹는 자들을 향해 주문과 저주를 쏘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무엇이 혹은 누가 자신을 공격했는지도 모르는 채 쓰러져 후퇴하는 사람들의 발에 짓밟혔다.

해리는 여전히 투명 망토 아래 몸을 숨긴 채, 현관 복도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열심히 볼드모트를 찾던 그는 저편에 있는 그의 모습을 곧 발견했다. 볼드모트는 지팡이로 주문을 쏘면서 대연회장으로 후퇴하고 있었는데, 좌우로 연방 저주를 날리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큰 소리로 지시를 내리고 있엇다. 한편 해리는 더 많은 방패 마법을 걸었고, 볼드모트의 희생양이 될 뻔했던 시무스 피니간과 한나 아보트가 그의 곁을 지나쳐서 연회장 안으로 돌진했다. 대연회장에 들어간 두 사람은 그 안에서 이미 절정에 이르러 잇던 전투에 합류했다.

곧이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현관 층계를 황급히 뛰어 올라왔다. 해리는 찰리 위즐리가 여전히 에메랄드 빛 파자마를 입고 있는 호레이스 슬러그혼을 앞질러 달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은 계속 남아서 싸우는 호그와트 학생들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호그스미드의 주민들과 가게 주인들로 보이는 무리를 이끌고 돌아온 것 같았다. 한편 켄타우로스 베인과 로넌, 그리고 마고리안이 거대한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현관 복도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때 해리의 뒤편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부서지며 왈칵 열렸다.

호그와트의 집요정들이 저마다 고기 써는 칼과 식칼을 휘두르고 함성을 지르며 현관 복도로 뛰어나온 것이다. 그들의 선두에는 바로 크리처가 있었는데, 그의 가슴팍에서는 레귤러스 블랙의 로켓이 통통 튀고 있었다. 이 북새통 속에서도 황소개구리 같은 크리처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싸워라! 싸워라! 집요정들의 수호자인 나의 주인님을 위해 싸워라! 어둠의 마왕을 무찔러라! 용맹한 레귤러스의 이름으로! 싸워라!”

집요정들은 죽음을 먹는 자들의 정강이와 발목을 마구 내리찍었다. 그들의 조그만 얼굴은 사나운 적의로 불타고 있었다. 사방 어디를 봐도 죽음을 먹는 자들이 완전한 수적 열세로 밀리고 있었다. 그들은 쏟아지는 주문에 맥을 못 추었고, 상처에서 화살을 뽑아내려고 낑낑거리다가 집요정들에게 다리를 찔렸다. 그것도 아니면 그저 달아나려고 하다가 밀어닥치는 인파에 휩쓸려 버렸다.

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난게 아니었다. 해리는 결투하는 사람들을 뜷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몸부림치는 포로들을 뒤로 한 채, 대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볼드모트는 전투의 한복판에 있었는데, 손 닿는 자는 누군든 닥치는 대로 찌르고 공격하고 있었다. 해리는 깨끗하게 명중을 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습을 감춘 채, 점점 더 가까이 비집고 나아갔다. 걸을 수 잇는 사람은 모두 다 대연회장 안으로 밀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곳은 점점 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해리는 악슬리가 조지와 리 조던에게 맞아 바닥에 쓰러지는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돌로호브가 플리트윅의 손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것을 보았고, 해그리드에게 내동댕이쳐진 월든 맥네어가 연회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돌벽에 부딪히더니 의식을 잃은 채 바닥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보았다. 또한 론과 네빌이 펜리 그레이백을 제압하고, 애버포스가 록우드에게 기절마법을 쏘고, 아서와 퍼시가 씨크니스를 바닥에 쓰러트리는 것을, 그리고 루시우스와 나시사 말포이가 싸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큰 소리로 아들을 찾으며 군중 속을 달리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이제 볼드모트는 맥고나걸과 슬러그혼, 킹슬리를 한꺼번에 상대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싸늘한 증오가 서려 있었다. 세 사람은 그를 처치하지 못하고, 그의 주위를 맴돌며 이리저리 몸을 피하고 있었다.

볼드모트로부터 5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벨라트릭스도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과 마찬가지로 한꺼번에 세 명과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와 지니, 루나는 최선을 다해 싸웟지만, 벨라트릭스는 그들 세 사람과 맞먹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해리의 눈길이 다른 곳으로 향하려던 찰나, 살인 저주가 아슬아슬하게 비껴가서 지니는 간발의 차이로 죽음을 모면했다.

해리는 당장 발길을 돌려서 볼드모트가 아니라 벨라트릭스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그가 몇 발짝을 옮기기도 전에 누군가 그를 옆으로 휙 밀쳐 버렸다.

“내 딸은 안 돼, 이 못된 년!”

위즐리 부인이 망토를 벗어 던지며 활개를 치고 달려왔던 것이다. 벨라트릭스는 제자리에서 휙 돌아서더니, 새로운 도전자를 확인하고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는 썩 물러서!”

위즐리 부인은 세 소녀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지팡이를 휙 휘두르며 결투를 시작했다. 해리는 몰리 위즐리의 지팡이가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며 재빠르게 돌아가는 광경을, 공포와 전율을 느끼며 바라보았다. 그러자 벨라트릭스 레스트랭도 웃음을 멈추고 사납게 이빨을 드러냈다. 양쪽 지팡이에서 불꽃이 터져나오고, 두 마녀들 주위의 바닥이 뜨거워지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반드시 상대를 죽이겠다는 각오로 싸우고 있었다.

“안 돼!”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돕기위해 앞으로 달려 나오자 위즐리 부인이 소리쳤다.

“물러서! 물러서! 이 여자는 내가 맡겠다!”

이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벽에 줄지어 붙어 서서 이 두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볼드모트와 세명의 상대, 벨라트릭스와 몰리. 해리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모습을 감춘 채 서 있었다. 그는 공격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보호하고 싶었으며, 괜히 무고한 사람을 맞힐까 봐 두려웠다.

“내가 널 죽이면 네 애새끼들은 어떻게 될까?”

자신의 주인만큼이나 화가 난 벨라트릭스가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주위에서 춤추는 몰리의 주문들을 까불대며 피했다.

“프레디처럼 엄마가 죽고 나면?”

“넌.......결코.........다시는.......우리 애들을 건드릴 수 없어!”

위즐리 부인이 소리쳤다.

그때 벨라트릭스가 마구 웃어 댔다. 그것은 그녀의 사촌 시리우스가 베일을 뜷고 뒤로 쓰러질 때 냈던 것과 똑같은 격앙된 웃음소리 였다. 해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지를 불현듯 깨달았다.

그러나 미처 그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몰리의 주문이 벨라트릭스의 쭉 뻗은 팔 밑에서 붕 솟아오르더니 그녀의 가슴에, 심장 바로 위에 명중했다.

순간 의기양양한 벨라트릭스의 미소는 얼어붙었고, 두 눈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달았고, 곧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러자 구경을 하던 군중은 우레와도 같은 함성을 내질렀고 볼드모트는 비명을 질렀다.

해리는 마치 자신이 슬로 모션으로 몸을 돌리고 잇는 것처럼 느껴졋다. 바로 그때 맥고나걸과 킹슬리, 슬러그혼이 한꺼번에 뒤로 홱 밀려나면서 허공에서 팔을 휘저으며 몸부림치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남은 최고 부관의 몰락에 볼드모트의 분노가 폭탄처럼 강렬하게 폭발했던 것이다. 볼드모트는 지팡이를 들어서 몰리 위즐리를 겨누었다.

“프로테고!”

해리가 큰 소리로 외치자, 방패 마법이 연회장 한 가운데에 펼쳐졌다. 볼드모트는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해리는 마침내 투명 망토를 끌어내렸다.

“해리야!”

“그가 살아 있어!”

충격에 찬 비명 소리와 함성, 그리고 외침이 사방에서 터져나오다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볼드모트와 해리가 서로를 노려보는 동시에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들이 바싹 겁에 질려서 당장 굳게 입을 다물고 말았던 것이다.

“저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않습니다.”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완벽한 침묵 속에 그의 목소리는 트럼팻 소리처럼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제가 해야만 합니다.”

그러자 볼드모트가 쉭쉭거리듯이 말했다.

“포터의 말은 진심이 아니다.”

새빨간 눈을 크게 뜨고 볼드모트가 말을 이었다.

“그건 그의 방식이 아니지, 안 그런가? 자, 오늘은 누구를 방패로 쓸 작정인가, 포터?”

“어느 누구도 아니다.”

해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은 호크룩스는 없다. 이제는 너와 나뿐이다. 다른 한 쪽이 살아 있는 한, 그 어느 쪽도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 한 사람은 영영사라져야 한다.”

“우리 중 하나?”

볼드모트가 비아낭거렸다. 그의 온몸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잇었고, 새빨간 눈은 당장이라도 공격을 가하려는 뱀처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너는 살아남는게 너 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안 그러냐, 요 우연히 살아남은 꼬마야? 왜지? 덤블도어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냐?”

“어머니가 나를 구하려다 돌아가셨을 때, 내가 살아남은게 우연이란 말이냐?”

해리가 물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완벽한 원을 그리며, 서로에게서 똑같은 거리를 유지한 채 옆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해리의 눈에는 볼드모트의 얼굴 말고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우연이라고? 내가 그 공동묘지에서 싸우기로 결심했을때도? 모두가 우연이란 말이지? 오늘 밤 내가 스스로 방어하지 않고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다시 싸우러 돌아온 것도?”

“다 우연이고말고!”

볼드모트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하지만 여전히 공격은 하지않았다. 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치 돌처럼 굳어지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 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고, 대연회장의 수백 명 중 그들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숨조차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우연과 운이었다. 그리고 네 녀석이 더 큰 남자와 여자들의 치마폭 뒤에 숨어서 훌쩍거리며, 내가 너 대신 그들을 죽이도록 내버려 둔 덕분이지!”

“오늘 밤 너는 더 이상 누구도 죽이지 못할 것이다.”

해리가 소리쳤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원을 그리며 대적했고, 초록색과 빨간색의 두 눈이 서로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너는 다시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나는 네가 이 사람들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꺼이 죽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넌 죽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럴 작정이었고, 그렇게 했다! 나는 내 어머니가 했던 대로 한 것이다. 이제 저 사람들은 너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받고 있다. 네가 그들에게 건 주문들이 조금도 그들을 속박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넌 아직도 깨닫지 못했느냐? 이제 너는 그들을 괴롭힐 수 없다. 넌 그들을 건드릴 수 없단 말이다. 넌 그토록 실수를 하고도 깨닫는 바가 없구나, 리들! 안 그런가?”

“네놈이 감히 그런......!”

“그래, 나는 감히 그럴 수 있다.”

해리가 말을 이엇다.

“나는 네가 모르는 사실들을 알고 잇으니까, 톰 리들. 나는 네가 모르는 중요한 것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단 말이다. 말해 줄까?”

볼드모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다만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었다. 해리는 자신의 말에 순간적으로 볼드모트가 깜짝 놀라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마지막 남은 비밀 하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박한 가능성 때문에 그가 주저하고 있다는 것을.....

“또 그 사랑 타령이냐?”

이윽고 볼드모트가 입을 열었다. 뱀같이 생긴 그의 얼굴에 조소가 떠올랐다.

“덤블도어가 제일 좋아하는 해법인 ‘사랑’말이냐? 그자는 시랑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 그런데 사랑은 그 작자가 탑에서 떨어지는 걸 막아주지도 못했고, 낡아 빠진 밀랍 인형처럼 부서져 버리는 것도 막아 주지 못했다. 안 그러냐? 사랑, 그건 내가 한낱 바퀴벌레처럼 네 잡종 어미를 짓밟아 버리는 것도 막지 못했어. 포터, 게다가 이번에는 앞으로 뛰어나와 내 저주를 대신 맞아 줄 만큼 널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구나. 그렇다면 내가 널 공격하면 이번에는 네가 죽는 걸 뭐가 막아 주겟느냐?”

“딱 한가지가 있지.”

해리가 대꾸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몰두한 채 원을 그리며 돌았다. 단 한가지 마지막 비밀만이 그들을 갈라놓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이번에 너를 구해 줄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네놈은 내가 터득하지 못한 마법을 자신이 할 줄 안다고 믿고 있는게 분명하군. 아니면 내가 가진 것 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냐?”

볼드모트가 말했다.

“나는 두 가지 다 믿는다.”

해리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비록 금세 사라지긴 했지만, 뱀처럼 생긴 볼드모트의 얼굴에 충격이 스치는 것을 목격했다. 볼드모트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고, 그 웃음소리는 그의 비명보다도 더 무시무시했다. 유머라곤 전혀 없는 광기 어린 그 웃음소리는 적막한 연회장 안에 메아리 쳤다.

“네 녀석이 나보다도 더 많은 마법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느냐?”

볼드모트가 물었다.

“나보다 더? 덤블도어 자신조차 꿈도 꿔 보지 못한 마법을 부려 온 바로 나, 볼드모트 경보다 더 말이냐?”

“오오, 그분도 그걸 꿈꾸시긴 했었다.”

해리가 대꾸했다.

“하지만 그분은 너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셧어. 네가 한 짓을 하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알고 계셨지.”

“네 말은 곧 그가 나약했단 뜻이지!”

볼드모트가 소리쳤다.

“너무 나약해서 감히 그럴 수 없었던 거야. 너무 나약해서 자기 것이 될 수도 있었던 그것을 차지하지 못했지. 결국은 내것이 될 그것을 말이야.”

“아니, 그분은 너보다 똑똑하셨던 거다.”

해리가 말했다.

“더 훌륭한 마법사였고, 더 훌륭한 사람이었어.”

“알버스 덤블도어를 죽게 한 건 바로 나였어!”

“물론 넌 네가 그랬다고 생각하겠지.”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네 생각은 틀렸어.”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술렁거렸다. 벽 앞에 둘러서 잇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쉬었다.

“덤블도어는 죽었어!”

볼드모트는 해리를 향해 내뱉듯 말햇다. 마치 그 말들이 해리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기라도 할 것처럼.

“그자의 시체는 이 성의 운동장에 있는 대리석 무덤 속에서 썩고 있단 말이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포터. 그는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래, 덤블도어 교수님은 돌아가셨다.”

해리는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분을 죽인 건 네가 아니야. 그분은 스스로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셨어.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이미 선택을 하시고, 네가 너의 부하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함께 모든 걸 준비하셨던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어린애 장난 같은 소리냐?”

볼드모트가 소리쳤지만, 여전히 공격은 가하지 않았다. 새빨간 그의 두 눈은 해리에게 고정된 채, 흔들리지 않았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네 부하가 아니었다.”

해리가 말했다.

“스네이프는 덤블도어 교수님의 사람이었다. 네가 나의 어머니를 뒤쫓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덤블도어 교수님의 사람이었어. 그런데 넌 전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지. 왜냐하면 네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 너는 스네이프가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지. 안그래, 리들?”

볼드모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상대를 갈기갈기 물어뜯으려고 하는 늑대들처럼 계속해서 서로를 노리며 맴돌았다.

“스네이프의 패트로누스는 암사슴이었다.”

해리가 말했다.

“내 어머니의 것과 똑같았지. 왜냐하면 두 사람이 어린아이였을 때 부터, 스네이프는 평생토록 그녀를 사랑햇기 때문이다. 넌 그걸 알아차렸어야만 했어.”

볼드모트의 콧구멍에서 뜨거운 숨이 뿜어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해리가 말했다.

“스네이프는 너에게 그녀를 살려달라고 간청했지, 안 그런가?”

“그는 그저 그 계집을 욕망했을 뿐이야, 그게 전부였다.”

볼드모트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 계집이 죽고나자, 세상에는 다른 여자들도 많다는 걸, 자신에게 걸맞는 순수혈통의 여자들이 많이 있다는 걸 그도 인정했다.”

“물론 너한테는 그렇게 말했겠지.”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네가 그녀의 목숨을 위협한 그 순간부터, 스네이프는 덤블도어의 첩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줄곧 너를 막기 위해 노력해 왔던 것이다! 스네이프가 덤블도어 교수님을 죽엿을 때, 교수님은 이미 죽어 가고 계셨단 말이다!”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볼드모트가 빽 소리쳤다. 지금까지 열중해서 한 마디 한 마디 귀 기울여 듣고 있던 그는, 이제 낄낄대며 미친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스네이프가 내 사람이었는지, 덤블도어의 사람이었는지, 그딴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 작자들이 내 앞길에 어떤 시시한 장애물들을 놓으려 했었는지도 말이다! 나는 스네이프의 위대한 짝사랑 상대였던 네 엄마를 박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자들을 모두 박살내 버렷으니까! 오오 그런데 모든 게 다 이해가 가는구나, 포터. 물론 네 녀석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덤블도어는 내가 딱총나무 지팡이를 내가 갖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썻다! 그는 스네이프가 그 지팡이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나는 너보다 그 사실을 먼저 깨달았지. 이 꼬마야. 네가 그 지팡이에 손도 대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지팡이를 손에 넣었다. 네 녀석이 따라잡기 전에, 난 그 진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세 시간 전에 벌써 죽였다. 딱총나무 지팡이, 죽음의 지팡이, 운명의 지팡이는 이제 진정한 내 것이 되었다! 덤블도어의 최후의 작전은 결실을 보지 못했어, 해리 포터!“

“그래, 그랫지.”

해리가 수긍했다.

“네 말이 옳다. 하지만 네가 나를 죽이려 들기 전에, 너에게 충고 하나 하고 싶군........네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생각을 해봐라. 그리고 약간의 가책이라도 느껴 보아라, 리들.....”

“그게 무슨 소리냐?”

해리가 그에게 햇던 모든 말 가운데, 이 말만큼 볼드모트를 충격에 빠트린 것은 없었다. 그것은 그 어떤 폭로나 비아낭거림도 능가했다. 해리는 그의 동공이 가느다랗게 수축하는 것을, 그의 눈가가 하얗게 질리는 것을 알아챘다.

“이것이 네게 남은 마지막 기회다.”

해리가 말했다.

“이것이 네게 남아 있는 전부란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어떻게 될지 난 이미 보았다. 제발 사람답게 굴어라. 노력해 보란 말이다. 조금이라도 가책을 느껴 보도록 해.”

“네놈이 감히”

볼드모트가 다시 외쳤다.

“물론 나는 감히 그럴 것이다.”

해리가 받아쳤다.

“왜냐하면 덤블도어 교수님의 마지막 계획은 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기 때문이지. 그것은 역으로 널 공격했다, 리들.”

딱총나무 지팡이를 쥔 볼드모트의 손이 덜덜 떨렸다. 한편 해리는 드레이코의 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는 그 순간이 코 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 지팡이는 여전히 너를 위해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엉뚱한 사람을 죽였으니까.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결코 딱총나무 지팡이의 진짜 주인이 아니었다. 그는 덤블도어 교수님과 싸워 이긴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스네이프가 죽였.....”

“내 말을 똑똑히 듣고 있는 건가? 스네이프는 단 한 번도 덤블도어 교수님을 이긴 적이 없단 말이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죽음은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 교수님은 싸워서 패배당하는 일 없이 죽을 작정이었어. 그 지팡이의 진정한 마지막 주인으로서 말이야! 만약 모든 게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그 지팡이의 힘 또한 교수님과 함께 소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결코 지팡이를 빼앗긴 적이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포터! 덤블도어는 그 지팡이를 나에게 그냥 안겨준 것이나 다름없다!”

볼드모트의 목소리는 사악한 희열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지팡이를 마지막 주인의 무덤에서 훔쳐 왔으니까 말이다! 난 그 지팡이의 마지막 주인의 의지에 반해서 그것을 빼앗아 왔다! 그러므로 그 지팡이의 힘은 이제 내 것이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 군, 리들. 안 그래? 그 지팡이를 소유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손에 쥐고 사용하는 것 만으로 그 지팡이를 진짜 네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단 말이다. 넌 올리밴더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군? 지팡이가 마법사를 선택한다. 딱총나무 지팡이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죽기 전에 새 주인을 알아보았어. 그 지팡이에 손 한번 대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지. 그 새로운 주인은 덤블도어 교수님의 뜻을 거슬러서 그로부터 억지로 그 지팡이를 빼앗았어. 정확히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채, 다시 말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팡이가 그에게 충성을 바쳤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야.”

볼드모트의 가슴이 빠르게 들썩거렸다. 해리는 곧 저주가 발사될 것임을 느낄 수 있엇다. 그의 얼굴을 향해 겨누어진 지팡이 안에서 서서히 솟아오르고 있는 저주의 힘이 느껴졋다.

“딱총나무 지팡이의 진짜 주인은 드레이코 말포이였다.”

한순간 얼빠진 듯한 충격의 표정이 볼드모트의 얼굴에 스쳤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게 뭐가 문제지?”

볼드모트가 조용히 물었다.

“비록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포터. 그건 너와 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넌 더 이상 불사조 지팡이를 갖고 있지 않지, 이제 우리는 오직 실력을 겨룰 뿐이라고, 일단 널 죽이고 난 다음, 드레이코 말포이에게 신경을 쓰면 되겠지.”

“하지만, 넌 이미 늦었다.”

해리가 말했다.

“넌 기회를 놓쳤어. 내가 먼저 성공했거든. 난 드레이코를 몇주 전에 이겼다. 그리고 이 지팡이를 그로부터 빼앗았다.”

해리는 산사나무 지팡이를 홱 휘둘렀다. 그는 연회장에 잇는 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 지팡이에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엔 이렇게 된 거지, 안 그래?”

해리가 속삭였다.

“네 손에 있는 그 지팡이는 자신의 마지막 주인이 무장해제 마법에 당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면.......그 딱총나무 지팡이의 진짜 주인은 바로 나니까 말이야.”

갑자기 불그스레한 황금색의 강렬한 빛이 마법에 걸린 천장을 가로질러 그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눈부신 태양의 가장자리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창문턱 위로 살짝 고개를 내민 것이다. 찬란한 햇빛은 두 사람의 얼굴을 동시에 비추었고, 그러자 볼드모트의 얼굴이 갑자기 번쩍이는 반점처럼 보였다. 해리는 높은 목소리가 날카롭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고, 동시에 그 역시 드레이코의 지팡이를 겨누며 자신의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도록 큰 소리로 내질렀다.

“아바다 케다브라!”

“엑스펠리아르무스!”

마치 대포를 쏘는 듯이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폭발한 금빛 불꽃들은, 그들이 따라 걷고 있던 원은 한복판, 즉 그들의 마법이 충돌한 지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리는 볼드모트의 초록색 광선이 자신의 주문과 부딪히는 것을 보았고,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까많게 보이는 딱총나무 지팡이가 높이 날아오르더니, 마법이 걸린 천장을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다. 그 지팡이는 내기니의 머리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허공을 뜷고 날아왔다. 마침내 자신을 완전히 손에 넣은, 그러므로 결코 죽일 수 없는 주인을 향해서.

해리는 수색꾼다운 완벽한 솜씨를 발휘해 아무것도 쥐지 않고 있던 손으로 그 지팡이를 붙잡앗다. 한편 볼드모트는 두 팔을 벌린 채 벌러덩 쓰러졌다. 새빨간 눈의 가느다란 동공은 위로 휙 뒤집어졋다. 톰 리들은 바닥에 쓰러져 평범한 최후를 맞았다. 그의 몸은 힘없이 움츠러들었고, 새하얀 두 손은 텅 비었으며, 뱀처럼 생긴 얼굴은 공허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햇다. 볼드모트는 거꾸로 튀어나온 자기 자신의 저주에 맞아 죽은 것이다. 해리는 양손에 각기 지팡이를 하나씩 쥔 채, 껍데기만 남은 적의 모습을 뜷어지게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전율하는 찰나의 순간동안, 침묵과 충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곧이어 해리의 주위에서 소동이 벌어졌고, 구경꾼들의 고함과 갈채와 함성이 하늘을 찔럿다. 강렬하고 새로운 태양이 유리창을 눈부시게 비우었고, 사람들은 그를 향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럿다. 그리고 해리를 향해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론과 헤르미온느였다. 그들의 팔이 그를 꼭 감싸 안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외침 소리에 해리는 귀가 멍할 지경이었다. 곧이어 지니와 네빌, 루나가 달려왔고, 위즐리 가족 모두와 해그리드, 킹슬리, 맥고나걸, 플리트윅, 그리고 스프라우트가 다가왔다. 하지만 해리는 그들이 외치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를 붙잡고 끌어당기고, 조금이라도 안아 보려 애쓰는 이 손길이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는데, 모두 살아남은 이 아이를, 마침내 이 모든 일이 끝났다는 증거인 이 아이를 한번 만져 보기로 단단히 결심한듯 했다.

태양은 점점 호그와트 위로 떠올랐고, 대연회장은 빛과 활기로 찬란하게 빛났다. 환희와 애도, 축하와 비탄이 뒤섞인 이 들끓는 격정 속에서 해리는 빠질 수 없는 한 부분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이자 상징이며 구원자이자 길잡이인 그가 그곳에서 그들와 함께하길 바랐다. 그가 한잠도 자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들 중의 몇 사람하고만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 따위는 어느 누구의 머리에도 떠오르지 않는 듯 했다. 결국 해리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의 눈물을 지켜보고, 그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이제 아침이 밝아오는 것과 더불어 사방팔방에서 속속 날아드는 소식들을 전해 들어야만 했다. 온 나라 안에서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렸던 자들이 제정신을 찾았다는 소식. 죽음을 먹는 자들이 도망을 가거나 검거되고 있다는 소식. 아즈카반에 잇는 죄 없는 수감자들이 바로 그 순간 석방되고 있다는 소식, 그리고 킹슬리 샤클볼트가 임시 마법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다는 소식..........

사람들은 볼드모트의 시신을 프레드와, 통스, 루핀, 콜린 트리비, 그리고 볼드모트와 싸우다 죽은 50명의 다른 전사자들로부터 따로 떼어 놓기 위해서, 대연회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잇는 방으로 옮겼다. 맥고나걸이 기숙사 테이블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지만, 아무도 더 이상 자신이 속한 기숙사에 따라 앉지 않았다. 선생과 제자가, 유령과 학부형들이, 켄타우로스들과 집요정들이 모두 한데 뒤섞여 있었다. 한편 구석에 누운 피렌체는 기력을 되찾고 있었고, 그롭은 박살난 유리 창너머로 건물 안을 엿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입 속으로 음식을 던져 주었다. 잠시 후, 해리는 자신이 기진맥진한 몸으로 루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너라면, 좀 평화롭고 조용한 데 있고 싶을 것 같아.”

루나가 말했다.

“정말 그러고 싶어.”

해리가 대답했다.

“그럼 내가 사람들의 주의를 딴 데로 끌어 볼게.”

루나가 말했다.

“투명 망토 써.”

그러더니 해리가 뭐라고 한마디 말할 틈도 없이, 루나가 큰 소리로 외치며 창밖을 가리켰다.

“우와, 저것 좀 봐. 블리버링 험딩어야!”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해리는 그 틈을 타서 투명 망토를 슬쩍 뒤집어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는 방해를 받지 않고 연회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는 두 테이블 건너에 있는 지니의 모습을 발견했다. 지니는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잇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을 것이다. 몇 시간이든 며칠이든, 어쩌면 몇년이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그리핀도르의 칼을 접시 옆에 둔 채, 열광하는 숭배자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음식을 먹고 있는 네빌의 모습을 보았다. 또한 테이블 사이의 통로를 따라 걸어가던 중에 말포이 가족 세 사람도 발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걱정스러운 듯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어디든 다시 모인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가장 함께 있고 싶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나야.”

두 사람 사이로 몸을 숙이며 그가 속삭였다.

“나 좀 따라올래?”

그들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리와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함께 연회장에서 나왔다. 대리석 계단의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렸고, 난간의 일부도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밟고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계속해서 잔해와 핏자국이 눈에 띄었다.

멀리 어딘가에서 피브스가 복도를 따라 휭 날아가면서, 자신이 직접 작곡한 승전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해냈다네.

우리가 그들을 무찔럿다네.

우리의 포터가 해냈다네.

볼디는 곰팡이가 슬어 버렸지.

그러니 이제 재미나게 놀아보세!

“이 일의 전모와 비극성에 대한 감정을 정말 잘 전달해 주고 있군, 안 그래?”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지나가도록 문을 열며 론이 말했다.

해리는 정말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에는 극도의 피로감이 모든 걸 압도해 버렸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프레드와 루핀, 통스를 잃은 아픔이 몸을 찌르듯이 그를 뜷고 지나갔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안도감과 함께 잠을 자고 싶은 갈망이 밀려왔다. 하지만 우선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모든 걸 설명해 주어야만 했다. 두 사람은 그와 너무나 오랫동안 함께해 왔고, 진실을 알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펜시브에서 본 내용들와 숲에서 일어났던 일을 힘겹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하여 비록 그둘 중 어느 누구도 행선지를 언급하지 않앗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걸음이 저절로 향하고 있던 그곳에 마친내 도착했을 때, 그들 두 사람은 엄청난 충격과 놀라움을 미쳐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해리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래로, 교장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무기 석상은 부서져 있었다. 그것은 약간 얻어맞고 얼빠진 표정으로 비스듬하게 서 있었는데, 해리는 과연 그것이 더 이상 암호를 알아들을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올라가도 될까요?”

해리가 이무기 석상에게 물었다.

“마음대로 해.”

석상이 끙끙대며 말했다.

그들은 이무기 석상을 타 넘었다. 그리고 나선형 돌계단에 올라서자, 계단은 에스컬레이터처럼 서서히 위쪽으로 움직였다. 꼭대기에 이른 해리는 문을 밀어 열었다.

그는 자신이 책상 위에 두고 간 펜시브를 흘끗 곁눈질했다. 바로 그때 귀청이 찢어질 듯한 큰 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해리는 비명을 질렀다. 어디선가 저주가 날아오거나 혹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되돌아오거나, 볼드모트가 부활했을 거란 생각이 언뜻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박수갈채 소리였다. 벽을 빙 둘러싼 남녀 교장선생님들이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모자나 가발을 들고 흔들고 있었고, 액자 너머로 팔을 뻗어 서로의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혹은 그림 속에 그려진 의자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딜리스델왠트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흐느껴 울었고, 덱스터 포테스큐는 나팔 모양의 보청기를 흔들고 있엇으며,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높고 새된 목소리로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슬리데린 기숙사가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우리의 공로가 잊히지 않도록!”

하지만 해리는 오직 교장 선생님의 의자 바로 뒤에 걸린, 가장 커다란 초상화 속에 서 있는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이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에서부터 긴 은빛 수염속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의 얼굴에 가득한 자부심과 고마움은 불사조의 노래처럼 해리의 마음에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마침내 해리가 양손을 들어 올리자, 초상화들은 일제히 정중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환한 웃음을 띤 채, 눈물을 훔치며 열렬히 그의 연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리는 덤블도어를 향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주 신중하게 어휘를 선택했다. 기진맥진해서 자꾸만 눈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ㅡ 해리는 최후의 조언을 한마디 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야만 했던 것이다.

“스니치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을.........”

해리가 말문을 열었다.

“숲 속에서 떨어뜨렸어요.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걸 다시 찾으러 가지 않을 생각인데, 교수님도 찬성하시나요?”

“그렇단다, 애야.”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반면 그림 속에 있는 그의 동료들은 어리둥절하고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참으로 현명하고도 용감한 결정이로구나. 내가 기대했던 대로야. 그런데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것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고 있니?”

“아무도 몰라요.”

해리가 대답하자, 덤블도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전 이그노투스의 선물은 간직하고 싶어요.”

해리가 말했다. 그러자 덤블도어가 활짝 웃었다.

“그건 물론이지, 해리. 그건 영원히 네 거란다. 네가 그걸 물려줄 때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이거요.”

해리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내밀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경외심을 품고 그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해리는 정신이 혼미하고 잠이 밀려오는 상태에서도 그 지팡이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전 이걸 원치 않아요.”

해리가 말했다.

“뭐?”

순간 론이 큰 소리로 외쳤다.

“너 제정신이야?”

“저도 이게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걸 알아요.”

해리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전 제 지팡이를 쓸 때가 더 좋았어요. 그래서.........”

그는 목에 건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더니, 두 동강 난 서양호랑가시나무 지팡이를 꺼냈다. 그것은 아직도 아주 가느다란 불사조 깃털 한 가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손상이 너무 심해서 다시 고칠 수 없다고 말했었다. 이제 해리가 아는 것이라곤, 만약 이것도 효과가 없다면 더 이상 어떤 방법도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해리는 부러진 지팡이를 교장 선생님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딱총나무 지팡이로 그것을 건드리며 말했다.

“레파로.”

그러자 지팡이가 다시 붙으면서, 그 끝에서 빨간 불꽃이 뿜어 나왔다. 해리는 자신이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서양호랑가시나무와 불사조 깃털 지팡이를 집어 드는 순간, 지팡이와 손이 다시 만난 것을 기뻐하기라도 하는 듯이, 갑자기 그의 손아귀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졋다.

“저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해리는 엄청난 애정과 찬탄이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덤블도어를 향해 말했다.

“그것이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놓겠습니다. 그건 그 자리에 있어야 해요. 제가 만약 이그노투스처럼 자연사 한다면, 그 지팡이의 힘은 사라지겠죠, 그렇죠? 지팡이의 이전 주인이 결코 패배를 당하지 않은 셈일 테니까요. 그렇게 하면 그걸로 끝이 날거예요.”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여 웃엇다.

“정말로 그럴 작정이야?”

론이 물었다. 딱총나무 지팡이를 바라보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희미한 갈망이 느껴졌다.

“해리 생각이 옳은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말했다.

“저 지팡이는 귀중한 것이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말썽거리야.”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해리는 초상화들로 부터 등을 돌렸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리핀도르 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네 기둥 달린 침대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과연 크리처가 침실로 샌드위치를 하나 가지고 올라올 수 있을지 그것만이 관심거리였다.

“말썽이라면 난 이미 평생 신물이 나도록 겪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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