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 장 킹스 크로스
그는 가만히 엎드린 채, 정적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혼자였다.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거기에 정말 혼자 있는 것인지 완벽하게 확신할 수가 없었다.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아니 어쩌면 아예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자신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는, 몸에서 떨어져 나간 정신 이상의 존재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그에게 떠올랐다. 왜냐하면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히 어떤 표면위에 누워 있었다. 그에게는 촉감이 있는 것이고, 그가 몸을 대고 누워 있는 그 무언가도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자마자, 그는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하지만 자신이 완벽하게 혼자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런 사실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고, 오히려 약간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자신이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연 볼 수도 잇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눈을 뜨는 순간 그는 자신이 눈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환한 안개 속에 누워 있엇다. 물론 그것은 예전에 경험했던 그 어떤 안개와도 달랐다. 그의 주변은 그 구름 같은 증기로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구름 같은 증기가 아직 주변 환경을 완전히 형성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옮을 것이다. 그가 누워 잇는 바닥은 하얀색인 것 같았는데,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냥 거기 잇으면서, 그 위에 무언가 존재할 수 있도록 비어 있는 평평한 무엇이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다친 곳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더 이상 안경을 끼고 있지 않았다.
그때 그를 둘러싼 무정형의 무(無)를 뜷고 무슨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파닥거리면서 짓찧고 몸부림치며 내는 작고 미약한 고동소리였다. 듣기에 애처롭기도 했으나, 동시에 약간 추잡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어떤 소리를 엿듣고 있는 것만 같아서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그는 옷을 입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가 머릿속에서 그런 소원을 떠올리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 옷가지가 나타났다. 그는 옷을 집어서 몸에 걸쳤다. 그것은 부드럽고 깨끗했으며 따뜻했다. 어떻게 해서 그가 원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처럼 옷이 나타난 건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를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거대한 필요의 방에 와 있는 것일까? 바라보면 볼수록, 점점 더 눈에 띄는 것도 많아졌다. 머리 위로는 높이 솟은 거대한 반구형 유리 천장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엇다. 아마도 이곳은 궁전인것 같았다. 안개속 가까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그 기이한 쿵쿵 소리와 낑낑거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고요하고 정지되어 있었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주변의 풍경이 그의 눈앞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 같았다. 탁 트인 공간은 밝고 깨끗했는데, 대연회장보다도 훨씬 넓었으며, 투명하고 둥근 유리 천장이 덮여 잇는 회당 같았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그곳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단 한가지를 제외한다면........
그는 무심코 뒷걸음질을 쳤다. 그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잇는 것의 정체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은 벌거벗은 조그만 어린아이의 형상을 하고서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마치 살갖이 벗겨진 듯 거칠고 빨간 살이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한 의자 밑에, 아무도 바라는 이 없이 보이지 않게 버려진 채, 숨을 쉬기 위해서 악착같이 용을 쓰며 떨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두려웠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연약하며 부상을 입엇을 지라도, 결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라도 뒤로 물러설 태세를 갖추고 천천히 다가갔다. 곧 그것을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섰지만, 그는 그렇게 할 마음이 들지 않앗다. 자신이 겁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것을 위로해 줘야 마땅했지만, 그것은 혐오감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넌 도울 수 없단다.”
그는 몸을 휙 돌렸다. 알버스 덤블도어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활기차고 꼿꼿한 모습의 덤블도어는 바닥가지 끌리는 암청색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해리!”
덤블도어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의 손은 양쪽 모두 다친데 하나 없이 온전하고 하얬다.
“요 놀라운 녀석. 용감무쌍한 사나이 같으니라고. 좀 걷자꾸나.”
덤블도어가 살갗이 벌겨진 채 누워서 낑낑대고 있는 어린아이로부터 성큼성큼 걸어가 버리자, 해리는 어리둥절해서 그 뒤를 쫓아갔다. 덤블도어는 해리가 미처 잇는 줄도 알아채지 못했던 두 개의 의자 쪽으로 그를 인도했다. 그 의자들은 반짝거리는 드높은 천장 아래 약간 거리를 두고 놓여 있엇다. 덤블도어가 그중 하나에 앉자, 해리는 늙은 교장 선생님의 얼굴을 뜷어지게 바라보며 다른 의자에 앉았다. 덤블도어의 긴 은색 머리카락과 턱수염, 반달 모양의 안경알 너머에 있는 꿰뜷을 듯한 파란 두 눈과 휘어진 코, 모든 것이 그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교수님은 돌아가셨잖아요.”
해리가 말했다.
“오오, 그렇지.”
덤블도어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저도 죽은 거죠?”
“아하!”
더욱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게 궁금했구나, 그렇지? 전체적으로 보면, 요 녀석아, 꼭 그런건 아닌것 같다.”
두 사람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노인은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니라고요?”
해리가 물었다.
“그래, 아니야.”
덤블도어가 말했다.
“하지만........”
해리는 본능적으로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번개 모양 흉터로 가져갔다. 웬지 흉터가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전 죽어야만 했어요. 전 방어하지 않았어요! 그자가 저를 죽이도록 내버려 둘 작정이었다고요!”
“내 생각엔, 바로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 놓은 것 같구나”
덤블도어가 말했다.
기쁨이 덤블도어로부터 빛처럼, 혹은 불길처럼 마구 뿜어 나오는 것 같았다. 해리는 그처럼 순수하게, 그처럼 드러내 놓고 만족스러워 하는 덤블도어의 모습을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설명해 주세요.”
해리가 부탁했다.
“하지만 너도 이미 알고 잇을 텐데.”
덤블도어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저는 그가 저를 죽이도록 내버려 두었어요.”
해리가 말했다.
“아닌가요?”
“물론 그랬지.”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계속 말해 보렴!”
“그래서 제 안에 있던 그의 영혼의 일부가......”
덤블도어는 훨씬 더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해리가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부추겼다. 그의 얼굴에는 격려하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사라졌나요?”
“오오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그래, 그자가 그것을 파괴했지. 이제 너의 영혼은 온전하고 완전히 네것이란다, 해리”
“그런데 저건......”
해리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그 조그만 생명체가 의자 밑에서 떨고 있는 쪽을 어깨 너머로 힐끗 쳐다보았다.
“저건 뭔가요, 교수님?”
“저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능력 바깥에 잇는 것이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하지만 만약 볼드모트가 살인 저주를 썻다면.......”
해리가 다시 말을 이엇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도 저를 위해 대신 죽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거죠?”
“넌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덤블도어가 말했다.
“곰곰이 돌이켜 보렴. 그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 탐욕과 잔혹함에 눈에 멀어 무슨 짓을 했는지.”
해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만약 그들이 앉아 있는 곳이 정말로 궁전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기묘한 궁전이었다. 의자들 몇개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고, 여기저기 철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해리와 덤블도어, 의자 밑에 잇는 자라다 만 생명체가 그곳에 있는 전부였다. 바로 그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입에서 선뜻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는 제 피를 뽑아 갔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바로 그거야!”
덤블도어가 맞장구를 쳤다.
“그자는 네피를 뽑아서 그걸로 자신의 살아있는 육신을 다시 만들었어! 너의 피가 그자의 혈관을 타고 흐르게 되면서, 해리. 릴리의 보호마법이 너희 두 사람 모두의 몸속을 흐르게 된 거란다! 결국 그자가 살아 있는 한, 그자는 너의 생명을 붙잡아 두고 있는 셈이야!”
“제가 살아 있단 말인가요? 그자가 살아 있는 동안요? 하지만 저는........저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햇는데요. 우리 두 사람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래도 결국 마찬가지인 가요?”
해리는 뒤쪽에서 괴로워하며 낑낑거리고 팔딱거리는 생명체의 소리에 이끌려서, 그것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우리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게 분명한가요?”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 설명해 주세요........좀 더요.”
해리가 조르자, 덤블도어가 미소 지었다.
“너는 바로 일곱번째 호크룩스 였단다, 해리. 사실 그자가 의도적으로 만든 호크룩스는 결코 아니었어. 다만 자신의 영혼을 너무나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자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행. 즉 네 부모님을 죽이고 어린아이 마저 죽이려는 시도를 하는 동안, 그의 영혼이 산산조각 나 버렸던 거란다. 결국 그 방에서 달아난 것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어. 그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거기에 남겨 두고 떠난 것이지. 그의 일부가 너에게, 바로 희생양이 될뻔했지만 살아남은 아이에게 달라붙은 거야. 그리고 그의 지식은 끝까지 가여울 만큼 불완전 했단다, 해리! 볼드모트가 결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절대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 그 점에 있어서 말이다. 볼드모트는 집요정이나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에 대해서, 사랑과 신의와 순결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단다. 아무것도 말이야. 그런 것들 모두가 그를 능가하는 힘을, 모든 마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자가 결코 깨닫지 못했던 진실이었어.
그자는 자신을 강력하게 해 줄거라고 믿고서 네 피를 빼앗았단다. 네 어머니가 너를 위해 죽으면서 너에게 부여해 준 마법의 아주 작은 부분을 자기 몸에 받아들인 것이지. 그러므로 그의 몸은 네 어머니의 희생을 여전히 살아 있는 채로 간직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 마법이 살아남는 한 너도 살아남고, 볼드모트 자신에 대한 마지막 희망 역시 살아남을 거란다.“
덤블도어가 해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교수님은 이렇게 될 걸 알고 계셨던 거예요? 줄곧.......알고 계셧어요?”
“짐작했던 거지. 하지만 대개 내 짐작은 아주 잘 들어맞아왔단다.”
덤블도어가 기뻐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길게 느껴지는 시간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한편 그들 뒤에 있는 생명체는 계속해서 몸을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또 있어요.”
해리가 입을 열었다.
“또 궁금한 게 잇어요. 어째서 제 지팡이가 그가 빌린 지팡이를 부러뜨렸던 거죠?”
“거기에 대해선 나도 확실치 않다.”
“그럼, 짐작이라도 말씀해 보세요.”
해리가 다그치자 덤블도어는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해리. 너와 볼드모트 경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고, 입증된 적도 없는 마법의 영역까지 함께 지나왔다는 사실이야. 물론 내 나름대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 거라고 짐작하는 바는 있지. 하지만 그것은 유례없는 일이었어. 그러니 내 생각엔, 그 어떤 지팡이 제작자도 그런 일을 예상하거나 볼드모트에게 설명해 줄 수는 없었을 게다.
이제 너도 알고 있듯이, 볼드모트 경은 인간의 모습을 되찾으면서 본의 아니게 너희 두 사람 간의 결속을 더욱 강화시켜 버렸지. 그의 영혼의 일부가 여전히 네 영혼에 붙어 있는 상태에서, 그자는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 목적으로 네 어머니의 희생의 일부를 자기 안에 받아들였던 거야. 만약 그가 그 희생의 명확하고 끔찍한 위력을 이해할 수만 있었더라면, 감히 네 피를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하지만 만약 그자가 그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그는 애당초 볼드모트 경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절대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앗을 거야.
이렇듯 이중의 결속이 확실이 맺어지고, 역사상 그 어떤 마법사들보다도 더욱 굳건하게 너희 두 사람의 운명이 함께 얽혀 있는 상태에서, 볼드모트는 계속해서 너의 지팡이와 똑같은 심으로 만들어진 지팡이로 너를 공격했던 거지. 그러자 그때, 너도 알다시피, 무언가 아주 기묘한 일이 벌어졌단다. 두 개의 지팡이 심이 볼드모트 경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을 일으킨 거지. 그자는 네 지팡이가 자신의 지팡이와 쌍둥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
그날 밤에 그자는 해리, 너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혔단다. 너는 죽음의 가능성을 인정했고, 심지어 기꺼이 받아들였지. 그런데 그런 볼드모트 경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 결국 너의 용기가 승리를 거두고, 너의 지팡이가 그의 지팡이를 제압했던 거야. 그러는 와중에, 두 지팡이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단다. 두 주인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 보여 주는 일이 말이야.
내 생각에, 그날 밤 네 지팡이는 볼드모트의 지팡이에서 힘과 특징의 일부를 흡수한 것 같다. 말하자면 그 지팡이가 볼드모트의 일부를 포함하게 된 거지. 그래서 그자가 너를 쫓아오자, 네 지팡이는 그자를, 동족인 동시에 불구대천의 원수인 그 사람을 알아보앗던 거란다. 그리고 그자가 가진 마법의 일부를 바로 그에게 되쏘게 된 것이란다. 그건 루시우스의 지팡이가 여태껏 행했던 그 어떤 마법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마법이엇지. 이제 네 지팡이는 너의 엄청난 용기와 볼드모트의 치명적인 마법기술들을 모두 담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 루시우스 말포이의 그 보잘것 없는 막대기가 무슨 승산이 있었겠니?“
“그렇지만 제 지팡이가 그렇게 강력했다면, 어째서 헤르미온느가 그걸 부러뜨릴 수 있었던 거죠?”
해리가 물었다.
“애야, 그 지팡이의 놀라운 능력은 오직, 마법의 가장 심오한 법칙들을 그토록 무분별하게 함부로 위반한 볼드모트만을 겨냥한 것이었단다. 오직 그를 향해서만, 그 지팡이는 이례적으로 위력적인 힘을 발휘햇던 거야. 그 점을 제외한다면, 그 지팡이 역시 다른 지팡이들과 마찬가지였어. 물론 장담컨데, 좋은 지팡이이긴 했지만.”
덤블도어가 다정하게 말을 마쳣다.
해리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단 몇 초 동안이엇는지도 모른다. 이런 곳에서 시간과 같은 것에 확신을 갖기란 매우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자는 교수님의 지팡이로 저를 죽였어요.”
“그자는 내 지팡이로 너를 죽이는 데 실패햇어.”
덤블도어가 해리의 말을 바로잡아 주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네가 죽지 않앗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잇을 것 같은데. 물론.......”
덤블도는 자신의 말이 감정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되는 듯 한마디 덧붙였다.
“네가 겪은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란다. 분명 아주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사실 전 그 순간에 기분이 엄청 좋았어요.”
해리는 깨끗하고 흠집 하나 없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정확하게 여기가 어디죠?”
“글쎄, 그건 내가 너에게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덤블도어가 말했다.
“네 생각에 여기가 어딘 거 같으냐?”
덤블도어가 묻기 전까지는 해리는 알지 못했엇다. 그런데 이제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잇음을 깨달았다.
“여기는......”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킹스 크로스 역 같은데요. 물론 훨씬 더 깨끗하고 한산하다는 점만 빼놓고요. 보아하니, 열차가 한대도 없네요.”
“킹스 크로스 역!”
덤블도어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킬킬거리며 웃었다.
“아이고 세상에나, 정말이냐?”
“글쎄요, 그럼 교수님은 여기가 어딘거 같으세요?”
해리가 조금 자신없는 어조로 물었다.
“요 귀여운 녀석. 나도 모르겟구나. 그들 말로는, 이게 너를 위한 잔치라던데.”
해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덤블도어는 마치 약을 올리려는 것 같았다. 해리는 그를 노려보다가, 문득 지금 그들이 어디 잇는가 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긴급한 질문이 떠올랐다.
“죽음의 성물 말이에요.”
해리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말에 덤블도어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가시는 것을 보니 흡족했다.
“아, 그래.”
덤블도어는 심지어 약간 걱정스러운 낯빛이었다.
“그건요?”
해리가 그를 만난 이래 처음으로, 갑자기 덤블도어가 평범한 노인보다도 초라하게, 훨씬 더 초라하게 보였다. 한순간 그는 못된 짓을 하다가 붙잡힌 조그만 사내아이 같아 보였다.
“날 용서해 주겠니?”
덤블도어가 물었다.
“널 믿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너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을? 해리, 나는 단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 역시 실패할까 봐 두려웠단다. 내가 저지른 것과 똑같은 실수를 너 역시 범할까 봐 걱정이 됐던 거야. 부디 나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 해리. 네가 그보다는 더 훌륭한 사람이란 걸 나는 얼마 전부터 알고 있었어.”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해리는 덤블도어의 말투와 갑작스레 그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고 그만 깜짝 놀라서 물었다.
“성물 말이다. 성물”
덤블도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절망한 자의 꿈!”
“하지만 그것들은 진짜잖아요!”
“그래, 진짜지. 그리고 위험하기도 하지. 바보들을 낚는 미끼랄까.”
덤블도어가 말했다.
“내가 바로 그 바보였단다. 하지만 너도 알고 있지. 그렇지 않니? 난 더 이상 너에게 아무 비밀이 없으니까, 너는 알고 있어.”
“제가 뭘 안다는 거죠?”
덤블도어는 몸을 돌려 해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새파랗게 빛나는 두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죽음의 지배자! 해리, 죽음의 지배자 말이다! 궁극적으로 과연 내가 볼드모트보다는 나은 사람이었을까?”
“그거야 당연하죠”
해리가 대꾸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죠.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있으세요? 교수님은 아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누굴 죽이거나 하지 않으셨어요!”
“사실이다, 사실이야”
덤블도어가 수긍했다. 그는 마치 안심시켜 주길 바라는 어린아이 같았다.
“하지만 나 역시 죽음을 정복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단다, 해리.”
“하지만 그자가 했던 방식은 아니었어요.”
해리가 말했다. 덤블도어에 대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여기, 이 높은 아치 모양의 천장 아래에 앉아서 스스로를 힐난하는 덤블도어를 변호하고 있으려니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성물이지 호크룩스는 아니었잖아요.”
“그래, 성물이었지.”
덤블도어가 중얼거렸다.
“호크룩스는 아니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 뒤에 있는 생몇게가 낑낑거렷지만, 해리는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았다.
“그린델왈드도 그것들을 찾고 있엇나요?”
해리가 물었다.
덤블도어는 잠깐 동안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었던 것이었어.”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했다.
“똑같은 집념을 가진 두 명의 총명하고 오만한 소년들을 말이다. 그린델왈드는 고드릭 골짜기로 오고 싶어 했단다. 분명 너도 짐작했을 테지만, 이그노투스 피브렐의 무덤때문이었지. 그는 삼 형제 중 셋째가 죽은 곳을 조사하고 싶어 했던 거야.”
“그럼 그게 사실인가요?”
해리가 물었다.
“전부 다 사실인가요? 피브렐 형제가......”
“.........그 이야기에 나오는 삼 형제란다.”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오, 그래. 내 생각에 그렇다는 거란다. 물론 그들이 외진 길에서 죽음을 만났을지는 모르겟지만........아마 피브렐 형제는 단지 그토록 강력한 물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잇을 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위험천만한 마법사들이었을 게다. 그 물건 들이 죽음에게 받은 성물이라는 이야기는 내 생각에는 그런 창조물을 둘러싸고 흔히 생겨나는 일종의 전설인 듯 하구나.
너도 알다시파, 그 투명 망토는 여러 시대에 걸쳐 물려 내려왔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이그노투스의 살아 있는 마지막 후예까지 곧장 말이다. 그는 이그노투스와 마찬가지로 고드릭 골짜리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지.“
덤블도어가 해리를 보며 웃엇다.
“저요?”
“너란다. 넌 아마도 네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 밤, 어째서 그 투명 망토가 내 수중에 있엇는지 짐작했을 게다. 제임스는 그 일이 있기 바로 며칠 전에 나에게 그 투명 망토를 보여 주었단다. 그 망토는 그가 학교에서 들키지 않고 저지를 수 있었던 온갖 비행들을 설명해 주었지! 나는 내 눈으로 보고 잇는 것을 거의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어. 나는 그걸 빌려달라고 부탁해서 시험해 보았단다. 세 가지 성물을 한데 결합하겠다는 꿈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지만, 나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단다.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었지..........그것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투명 망토였어. 어마어마하게 오래되엇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했지........그런데 바로 그때 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난 마침내 두 개의 성물을 혼자서 독차지 하게 되었지 뭐냐!”
그의 어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씁쓸했다.
“투명 망토가 있다고 해서 두분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해리가 재빨리 말했다.
“볼드모트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 곳을 알고 있엇어요. 투명 망토는 그들을 저주로부터 막아 주지 못했을 거예요.”
“사실이다.”
덤블도어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이야.”
해리는 잠자코 기다렸다. 하지만 덤블도어가 아무 말도 없자 그는 다시 물었다.
“그럼 그 투명 망토를 보았을 때, 교수님은 성물을 찾는 걸 이미 포기하고 계셨던 건가요?”
“오, 그랬지.”
덤블도어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해리의 눈길을 피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너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잖니.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경멸하는 것만큼 네가 나를 경멸할 수는 없을 게다.”
“하지만 전 교수님을 경멸하지 않아요.”
“곧 그렇게 될 거야.”
덤블도어가 이렇게 말하더니, 숨을 깊이 들어쉬었다.
“너는 내 여동생의 건강이 안 좋았다는 비밀을 알고 있지. 그 머글들이 한 짓을, 그래서 내 동생이 어떻게 됐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불쌍한 아버지가 복수한 것도, 그 죗값을 치르다가 아즈카반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 또한 어머니가 아리애나를 보살피기 위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포기했는지도 알게다. 나는 그일이 너무나도 분했단다.”
덤블도어는 그 문장을 아주 직설적이고 냉정하게 말했다. 이제 그는 해리의 머리 꼭대기 너머,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엇다.
“나는 많은 재능을 타고났고 총명했단다. 난 벗어나고 싶었어. 난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영예를 얻고 싶었단다. 그렇다고 나에 대해서 오해는 하지 말거라.”
그가 말했다. 그 순간 고통이 그의 얼굴을 스쳤고, 그는 다시 폭삭 늙은 것처럼 보엿다.
“나는 그들을 사랑했어. 우리 부모님을 사랑했고, 나의 남동생과 여동생도 사랑했단다. 하지만 난 이기적이었어, 해리. 놀랍도록 이타적인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이기적인 사람이었지.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성치 않은 여동생과 제멋대로인 남동생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지게 되엇을 때, 난 분노와 쓰라린 마음을 안고 내가 살던 마을로 돌아왔단다. 마치 덫에 걸려 망가진 느낌이었지! 그 무렵.........그래 그가 찾아온 거야.....“
덤블도어는 다시 해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린델왈드. 너는 그의 생각이 얼마나 나를 사로잡았었는지, 나의 마음을 타오르게 했엇는지 상상조차 못 할게다, 해리. 머글들을 힘으로 굴복시킨다. 우리 마법사들을 승리로 이끈다. 그린델왈드와 나, 바로 혁명의 자랑스러운 젊은 지도자들이 말이야.
오오, 물론, 나는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단다. 하지만 내 양심을 공허한 말들로 달래려 했지. 이건 모두 더 커다란 선을 위한 일이 될 것이며, 설사 어떤 해를 입힌다 하더라도, 마법사들을 위한 권익을 통해서 백배로 보상할 수 있을것이다. 어쩌면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겔러트 그린델왈드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눈을 감아 버렸지. 만약 우리가 꾸미고 있는 계획들이 결실을 거둔다면, 내 모든 꿈들이 실현될 거라고 말이야.
우리 계획의 핵심은 바로 죽음의 성물이었어! 그것들이 얼마나 그를 매혹시켰던지! 아니, 우리 두 사람을 매혹시켰던지! 무적의 지팡이는 우리를 권력으로 인도해 줄 무기였지! 그리고 부활의 돌은, 비록 난 모르는 척했지만, 그에게 인페리우스 군단을 의미했단다! 한편 나에게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것은 곧 부모님의 귀환과 더불어 내 어깨에 놓인 그 모든 책임들을 벗는 것을 뜻했지.
그리고 투명 망토....어쩐 일인지, 우리는 투명 망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단다. 해리, 우리 두 사람 모두 투명망토 없이도 자신을 충분히 잘 감출 수 있었거든. 물론 투명 망토의 진정한 마법은 망토의 주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보호하고 막아 줄 수 있다는 점에 있지. 난 생각했단다. 만약 우리가 그걸 찾게 된다면, 아리애나를 숨기는 데 유용할 거라고, 하지만 투명 망토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주로, 그것을 가져서 세 가지 성물을 완성시킨다는 데 있었지. 왜냐하면 전설에 따르면, 세 개의 물건을 모두 가진 사람이 진정한 죽음의 지배자가 된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패배하지 않는’ 이란 뜻으로 받아들였던 거지.
패배하지 않는 죽음의 지배자, 그린델왈드와 덤블도어! 광분과 잔혹한 몽상에 사로잡힌 두 달 동안, 난 내게 남겨진 단 두 사람의 가족에게 소흘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때...너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게다. 거칠고 제대로 배우진 못했지만 훨씬 더 존경스러운 내 동생, 애버포스의 모습을 하고 현실이 내 앞에 되돌아온 거야. 나는 애버포스가 나를 향해 외치는 진실들을 듣고 싶지 않았지. 나는 연약하고 불안정한 여동생을 끌고서 성물을 찾아 떠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단다.
그 언쟁은 싸움으로 번졌단다. 그린델왈드는 자제력을 잃었지. 비록 모르는 척했었지만, 내가 언제나 그에게서 느끼고 있었던 점들이 바로 그때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났단다. 그리고 아리애나가....어머니가 그토록 돌보고 아꼈던 바로 그 아이가...숨진 채 바닥에 쓰러졌지.“
덤블도어는 숨을 헐떡거리더니 진짜로 울기 시작했다. 해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를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덤블도어의 팔을 꼭 잡아 주었고, 덤블도어는 차츰 마음을 진정했다.
“그래, 그린델왈드는 달아났어. 나만 몰랐을 뿐, 그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 그는 종적을 감췄단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계획과 머글을 학대하려는 계략을 품은 채, 그리고 죽음의 성물에 대한 꿈, 내가 그에게 부추겼고 또 협력했던 그 꿈을 간직한 채로, 그는 달아났지만 나는 남아서 여동생을 땅에 묻었어. 그리고 죄책감과 무시무시한 슬픔 속에서, 내 수치스런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지.
그리고 세월이 흘렀단다. 그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지. 그가 엄청난 힘을 가진 지팡이를 획득했다는 말도 들리더구나, 한편 나는 마법부 장관직을 제안받았지.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여러 차례 말이다. 당연히 나는 거절했단다. 내가 권력을 맡아도 될 만큼 믿을 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교수님이 퍼지나 스크림저 보다 나았을 거예요, 훨씬, 훨씬 더 말이죠.”
해리가 불쑥 소리쳤다.
“과연 그랬을까?”
덤블도어는 무거운 목소리로 반문했다.
“난 그렇게까지 장담은 못하겠구나. 나는 이미 아주 젊었을때, 권력이 나의 약점이며 치명적인 유혹이란 사실을 증명한 셈이었어. 권력이란 아주 묘한 것이란다. 해리. 아마 권력을 갖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은 한 번도 권력을 추구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게다, 너처럼 지휘자의 역할을 떠맡게 되고, 그리고 의무감 때문에 어쩔수 없이 권력자의 옷을 입게 되지만, 놀랍게도 그걸 잘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사람들 말이다. 어쨋든 나는 호그와트에 있는 게 더 안전했다. 그리고 난 괜찮은 교사였던 것 같구나....”
“교수님은 최고셨어요.”
“.......넌 참으로 다정하구나, 해리. 하지만 내가 젊은 마법사들을 훈련시키느라 분주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그린델왈드는 군대를 일으키고 있었단다. 사람들은 그가 나를 두려워한다고 말했어. 어쩌면 정말 나를 두려워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생각엔 내가 그를 두려워한 것보다야 덜했을 게다. 오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했던 건 아니란다.”
해리의 의아해하는 표정을 보고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그가 마법을 써서 내게 어떤 짓을 할지는 두렵지 않았단다. 우리 실력이 거의 막상막하였지만, 내가 아주 약간 더 솜씨가 좋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내가 두려워한건 바로 진실이었단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우리 중의 누가 그 끔찍했던 마지막 다툼에서 내 여동생을 죽게 만든 저주를 쏘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단다. 너는 날 겁쟁이라고 나무랄지도 모르겠다. 네 말이 맞다, 해리. 난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내가 여동생의 죽음을 초래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게 두려웠어. 비단 내 오만함이나 어리석음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 내 여동생의 목숨을 앗아 간 그 일격을 내 손으로 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던 거야.
나는 그린델왈드가 그 사실을 알고 잇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내가 뭘 두려워하는지 그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와 만나는 것을 미루고 또 미루다가, 결국 더 이상 거절하면 수치스러워질 지경에까지 이르럿지.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었고, 그를 막을 방법이 없는것 같았어. 그래서 난 내가 할 수 잇는 것을 해야만 했단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너도 알지? 난 그 결투에서 이겼단다. 난 그 지팡이를 획득했지.“
다시 한 번 침묵이 흘렀다. 해리는 덤블도어에게 결국 누가 아리애나를 죽였는지를 알아냈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는 알고 싶지 않았다. 덤블도어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이야기해야만 하는 상황은 더더욱 바라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덤블도어가 소망의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때 무엇을 보았을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 거울이 해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에 대해서 덤블도어가 어째서 그토록 깊은 이해심을 보엿는지도 깨달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 뒤에 있는 생명체의 낑낑거리는 소리는 이제 더 이상 해리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았다.
마침내 해리가 입을 열었다.
“그린델왈드는 볼드모트가 지팡이를 쫓는 걸 막으려고 했어요.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그는 거짓말을 했죠. 그것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척 했어요.”
덤블도어는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부러진 콧날에는 여전히 눈물방울이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들 말로는, 말년에 그가 뉘우치는 기색을 보였다고 하더구나. 누멘가드의 독방에 혼자 갇힌 채 말이다. 난 그저 사실이길 바란다. 난 그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공포와 수치심을 느꼇다고 생각하고 싶구나. 아마도 볼드모트에게 한 그 거짓말은 사죄하려는 시도였겠지. 볼드모트가 성물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려는....”
“........아니면 혹시 교수님의 무덤을 파헤치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해리가 넌지시 말했다. 그러자 덤블도어는 눈물을 흘렸다.
다시 한 번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해리가 말했다.
“교수님은 부활의 돌을 사용하려고 하셨죠?”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나긴 세월의 끝에, 나는 곤트 집안의 폐가에 그것이 묻혀 있다는 걸 알아냈지. 내가 무엇보다도 가장 갈망했던 바로 그 성물이 말이야. 비록 젊은 시절에는 그것을 전혀 다른 이유 때문에 원하긴 했었지만, 어쨌든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말았단다, 해리. 난 그것이 이제 호크룩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 반지에 분명 저주가 걸려 있을 거란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야. 그리고 그것을 집어서 손가락에 끼웠단다. 한 순간, 나는 상상했단다. 아리애나를,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 내가 얼마나, 얼마나 많이 미안해하고 있는지 얘기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난 그렇게도 어리석었단다, 해리. 그 오랜 세월 동안 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던 거야. 난 죽음의 성물을 모두 가질 만한 자격이 없는 놈이었어. 난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해 보인 셈이지. 이게 그 마지막 증거란다.“
“왜죠?”
해리가 반문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교수님은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던 거예요, 그게 뭔가 문제죠?”
“아마도 백만 명 중에 한 명 정도만이 그 성물들을 모두 소유할 수 있을 게다, 해리. 그런데 나는 오직 그것들 가운데 가장 비열하고, 가장 덜 경이로운 것 하나만 소유하기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난 딱총나무 지팡이를 소유하기에 적임자였지. 하지만 그 지팡이를 뽐내거나, 그것으로 살인을 저지르기에 적합했다는 뜻은 아니다. 난 오직 그것을 길들이고 사용하는 일만 할 수 있었어. 왜냐하면 나는 어떤 이득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지팡이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그것을 취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투명 망토는 그저 괜한 호기심에서 가져갔던 것이고, 그러니 그 망토가 나를 위해서, 그것의 진정한 주인인 네가 사용할 때와 같은 기능을 할 리가 전혀 없었지. 그리고 그 돌의 경우에는 평화롭게 잠든 이들을 다시 끌어내려고 사용했던 거야. 네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희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이지. 그러니 너야말로 이 성물의 진정한 소유자란다.“
덤블도어는 해리의 손을 토닥였고, 해리는 노인을 올려다보며 미소지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가 덤블도어에게 여전히 화를 낼 수 있겠는가?
“왜 이렇게 일을 어렵게 만드신 거예요?”
덤블도어의 미소가 흔들렸다.
“너의 행보를 늦추기 위해서 그레인저 양에게 의지했던 건 유감으로 생각한다, 해리. 나는 너의 성급한 마음이 네 선한 마음을 지배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단다. 그 유혹적인 물건들에 대한 정보가 너에게 곧장 전달된다면, 내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너 역시 좋지 않은 때에 좋지 않은 목적을 위해 성물을 차지하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웠거든. 만일 네가 그것들을 찾아낸다면, 나는 네가 그것들을 안전하게 소유하기를 원했단다. 이제 너는 진정한 죽음의 지배자가 되었단다. 왜냐하면 진정한 지배자는 죽음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지. 죽음의 지배자는 자신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는 죽는 것보다도 휠씬 더 끔찍한 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이란다.”
“그러면 볼드모트는 성물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나요?”
“그랬던 것 같다. 그자는 자신이 호크룩스로 만들어 버린 것이 부활의 돌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어. 설령 그가 그것들에 대해 알았다 한들, 해리, 나로선 그가 첫 번째 성물 이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 관심이나 가졌을지 의문이로구나. 그자는 자기에게 투명 망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돌로 말할 것 같으면, 그자가 죽음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도로 데려오길 바라겠니? 그는 죽은 자들을 두려워했어. 사랑한 게 아니라 말이야.”
“하지만 교수님은 그가 지팡이를 쫓을 거라고 예상하셧잖아요?”
“나는 리틀 행글턴의 공동묘지에서 네 지팡이가 볼드모트의 지팡이를 무찌른 이후로 줄곧, 그자가 그 일을 시도할 거라고 확신했단다. 처음에 그자는 네가 월등한 솜씨로 자신을 제압했다는 사실에 겁을 먹었지. 그러다가 올리밴더를 납치하고 나서야, 똑같은 지팡이 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그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됐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빌린 지팡이 역시 네 것을 이길 수 없었어! 그런데 볼드모트는 과연 네 지팡이를 그토록 강력하게 만들 만한 어떤 자질이 네 안에 있는지, 자신이 갖지 못한 어떤 재능을 네가 갖고 있는지를 자문하는 대신에, 당연하게도 그 어떤 지팡이라도 무찌를 수 있다는 그 단 하나의 지팡이를 찾기 시작한 게다. 그에게 딱총나무 지팡이는 너에 대한 집착에 필적할 만한 또 다른 집착이 되었지. 그는 딱총나무 지팡이가 자신의 마지막 약점을 제거해주고 자신을 정말로 무적으로 만들어 줄 거라 믿었단다. 불쌍한 세베루스.......”
“만약 교수님께서 스네이프 손에 죽을 것을 계획하셨다면, 교수님은 스네이프가 마지막으로 딱총나무 지팡이를 갖게 할 생각이셨던 거로군요, 그렇죠?”
“그것이 내 계획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마.”
덤블도어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뜻한 대로 되지 않았지, 안 그러냐?”
“네, 아니었어요. 그 부분은 잘 되지 않았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그들 뒤에 있는 생명체는 이제 몸을 뒤틀며 신음했다. 해리와 덤블도어는 이제껏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기나긴 몇 분이 흐르는 동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깨달음이 서서히 해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부드럽게 떨어지는 눈처럼.
“전 돌아가야겠죠, 그렇죠?”
“그건 네게 달렸단다.”
“제게 선택권이 있다고요?”
“오오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그를 보며 웃었다.
“네 말대로 우리는 킹스크로스에 있잖니? 만약 네가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너는....말하자면......열차에 오를 수 있다는 거란다.”
“그러면 그건 절 어디로 데려갈까요?”
“위로.”
덤블도어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볼드모트가 딱총나무 지팡이를 차지했어요.”
“사실이다. 볼드모트가 딱총나무 지팡이를 갖고 있지.”
“그래도 제가 돌아가길 바라세요?”
“내가 생각하기에......”
덤블도어가 말했다.
“만일 네가 돌아가는 쪽을 택한다면, 그자가 영원히 파멸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구나. 물론 난 장담은 못하겠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알고 있단다, 해리. 그자가 두려워하는 것만큼, 너는 여기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리란 걸 말이다.”
해리는 다시 멀리 떨어져 있는 의자의 그늘 속에서 몸을 떨며 낑낑거리고 있는, 살갖이 벗겨진 것처럼 보이는 그것을 흘끗 쳐다보았다.
“죽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마라, 해리. 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라. 그중에서도 사랑 없이 사는 사람들을 가장 불쌍하게 여기렴. 네가 돌아간다면 넌 분명히 불구가 되는 영혼이 더 적어지도록,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이 덜 생기도록 할 수 잇을 거야. 만약 그것이 너에게 가치있는 목표인 것 같다면, 그럼 우리는 일단 작별 인사를 하자꾸나.”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을 떠나는 것이 숲 속으로 걸어들어갈 때만큼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따뜻하고 밝고 평화로웠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고통과 더 큰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향해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곧이어 덤블도어도 일어섰다. 한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한 가지만 알려 주세요.”
해리가 말했다.
“이건 현실인가요? 아니면 그냥 제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요?”
덤블도어는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비록 눈부신 안개가 또다시 내려와 그의 형상을 흐려놓고 있었지만, 덤블도어의 목소리가 해리의 귓가에 또렷하고 우렁차게 들려왔다.
“물론 이것은 네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란다, 해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대체 왜 그게 현실이 아니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