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장 (191/194)

제 34장 다시 숲에서

마침내 진실이 밝혀졌다. 해리는 한때 자신이 승리의 비밀을 전수받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바로 그 교장실의 먼지 낀 카펫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있었다. 드디어 그는 자신이 살아남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할 일은 활짝 벌린 죽음의 품 안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정해진 길을 따러서, 그는 볼드모트의 마지막 남은 생명의 끈들을 제거해야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가 스스로 몸을 던져 볼드모트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지팡이를 들어서 자신을 방어하지 않을 때, 모든 일이 깨끗하게 끝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때 비로소, 고드릭 골짜기에서 끝낫어야만 했던 그 일이 마무리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살아 있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해리는 자신의 심장이 가슴팍에서 거세게 쿵쿵 뛰는 것을 느꼇다. 그의 심장이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 훨씬 더 세차게 고동치며 용감하게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고 하다니, 이 얼마나 묘한 일인가? 하지만 그의 심장은 멈추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도 조만간. 심장이 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그가 몸을 일으켜 마지막으로 성을 걸어나가고, 운동장을 지나서 숲속으로 들어갈 때 까지, 과연 몇 번이나 더 뛸 수 있을까?

해리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서는 엄청난 공포가 장례식의 북소리를 울리며 물밑듯이 엄습해 왔다. 죽는 것은 고통스러울까?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런 때에도 죽음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삶에 대한 의지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훨씬 더 강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죽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볼드모트로부터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게 끝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달았고, 남아 잇는 것이라곤 오직 죽음, 그것뿐이었다.

차라리 마지막으로 프리벳가 4번지를 떠나던 그 여름밤에 죽었더라면! 고귀한 불사조 깃털 지팡이가 생명을 구해 주었던 그날에 죽었더라면! 차라리 해드위그처럼 죽었더라면, 너무 순식간이라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을 텐데. 아니면 사랑하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지팡이 앞에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엇더라면....이제 해리는 부모님의 죽음마저 부러울 지경이었다. 자기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 냉혹한 걸음은 또 다른 종류의 용기를 요구했다. 해리는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꼇다. 벽에 걸린 초상화들은 모두 텅 비어 있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썻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해리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동안, 더욱더 생생하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꼇고, 예전의 그 어느때보다도 살아 있는 자신의 몸을 선명히 의식했다. 어째서 그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뇌와 감각이 고동치는 심장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단 한번도 깨닫지 못했던가? 이제 곧 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아니면 적어도, 그런 것들과 헤어지게 될 것이다.......그의 호흡은 차츰 깊고 느려졌으며, 그의 입과 목구멍은 바짝 말라 버렸고, 그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덤블도어의 폭로는 아무것도 아니엇다. 당연히 더 커다란 계획이 존재했던 것이다. 단지 해리가 그런 사실을 깨닫기에는 너무나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는 이제껏 덤블도어가 자신이 살아남길 바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비로소 그는 자신의 수명이 줄곧, 호크룩스들을 모두 없애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에 따라 좌우되어 왔음을 깨달았다. 덤블도어는 호크룩스를 파괴하는 임무를 그에게 물려주엇다. 그리고 그는 고분고분하게 단지 볼드모트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연결되어 있는 생명의 매듭을 계속해서 조금씩 갉아먹어 왓던 것이다! 이 얼마나 교묘하고 우아한 술책인가! 괜히 또 다른 생명을 낭비하지 않고, 어차피 도살당하도록 이미 정해져 있는 아이에게 그런 위험한 임무를 맡기다니 말이다. 그의 죽음은 커다란 재난이 아니라, 오히려 볼드모트에 대한 또 한번의 치명적인 공격이 될 것이다.

게다가 덤블도어는 해리가 꽁무니를 빼지 않으리라는 것을, 끝까지, 설령 그것이 곧 자신의 끝이라고 해도, 계속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덤블도어는 해리, 그를 알기 위해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던가? 볼드모트가 알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덤블도어는 알고 있었다. 해리가 자신에게 그 일을 멈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결코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죽어서 대연회장에 누워 있던 프레드와, 루핀, 그리고 통스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 다시 물밑듯이 밀려왔고, 그는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죽음이 임박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그를 과대평가한 것이다. 그는 실패했다. 아직도 그 뱀은 살아 있다. 심지어 해리가 죽음을 당한 후에도, 하나의 호크룩스가 남아서 볼드모트를 이 지상에 묶어 둘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좀 더 쉬운 임무 한가지를 남긴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는 과연 누가 그 일을 할 수 잇을 지 생각해 보았다..... 물론 론과 헤르미온느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덤블도어는 해리가 그 두 사람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자신의 참된 운명을 조금 빨리 맞이하게 될 경우에, 그들이 그 임무를 계속 이어 갈 수 있도록.......

이러한 생각들이 차가운 유리창 위에 떨어지는 빗줄기처럼,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의 단단한 표면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그 진실은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죽어야만 한다. 그것은 끝나야 한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아주 멀고 먼 나라에 떨어져 있는 듯했다. 해리는 마치 오래전에 그들을 떠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작별 인사도, 어떤 설명도 없을 것이다. 그 점만은 확실했다. 이것은 그들이 함께할 수 없는 여행이었다. 그들은 해리를 말리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하겠지만, 그것은 괜히 귀중한 시간만 낭비하는 짓이 될 것이다. 해리는 열 일곱 번 째 생일날 받은 낡은 금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항복할 때까지 볼드모트가 기다리기로 했던 시간이 반 가까이 지났다.

해리는 일어섰다. 심장이 갈비뼈 속에서 광분한 새처럼 날뛰고 있었다. 아마도 심장은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잇는 듯 했다. 그리하여 끝이 오기 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만큼의 박동수를 채울 작정인 듯했다. 그는 교장실 문을 닫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성은 텅 비어 있었다. 홀로 성안을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해리는 마치 자신이 이미 죽어서 유령이라도 된 듯 한 기분이었다. 초상화 속의 인물들은 여전히 액자를 비우고 있었다. 성 전체가 섬뜩하리만치 고요했다. 마치 성안에 남아 있는 모든 생명력이 죽은 자와 애도하는 자들이 가득 모여 있는 대연회장에 집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투명 망토를 쓰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현관 복도로 통하는 대리석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어쩌면 자신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눈에 띄기를, 그래서 누군가 보고 자신을 막아 주길 바랐는지도 모르지만, 투명 망토는 언제나 그랬듯이 결코 꿰뜷어 볼 수 없었고 완벽했기에, 그는 쉽사리 현관문 앞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 네빌이 거의 부딪힐 듯이 그의 앞으로 걸어 들어왔다. 네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운동장에서부터 한 구의 시신을 운반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힐끗 밑을 내려다본 해리는 또 한 번 배에 둔탁한 충격을 느꼇다. 콜린 크리비는 미성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포이나 크레이브, 고일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몰래 다시 돌아왔던 것이 분명했다. 죽어 버린 그의 몸뚱이는 조그마했다.

“저기 말이야. 나 혼자서도 그를 들고 갈 수 잇을 거 같아, 네빌.”

올리버 우드는 이렇게 말하더니, 소방관처럼 콜린을 어깨에 들쳐 매고 대연회장으로 갔다.

네빌은 잠시 문설주에 기대서서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그의 모습이 마치 늙은이 같았다. 이윽고 네빌은 다시 계단을 내려가 또다른 시신을 찾기 위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해리는 대연회장 입구를 한 번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서로를 위로해 주려고 애쓰거나, 음료를 마시거나, 죽은 자 옆에 무릎을 끓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헤르미온느나 론, 지니, 혹은 다른 위즐리네 식구나 루나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그들을 볼 수 있다면, 그에게 남아 잇는 모든 시간을 바쳐도 아깝지 않으리라. 하지만 일단 그러고 나면, 그가 무슨 힘으로 그들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편이 나았다.

해리는 계단을 내려가 어둠 속으로 들어섰다. 새벽 네시가 거의 다 되었다. 죽음 같은 정적에 휩싸인 운동장은 마치 해리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를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해리는 또 다른 시신 위로 몸을 숙이고 있는 네빌을 향해 다가갔다.

“네빌”

“젠장, 해리.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잖아!”

해리는 투명 망토를 벗었다. 난데없이 어떤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모든 걸 완벽하게 확실히 해 두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너 혼자서 어딜 가고 있니?”

네빌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이건 다 계획의 일부야.”

해리가 말했다.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잘들어 네빌”

“해리!”

네빌이 갑자기 겁에 질린 표정이 되엇다.

“해리, 너 혹시 자진해서 투항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해리는 선뜻 거짓말이 나왔다.

“절대로 아냐............이건 다른 일이야. 하지만 내가 잠깐 안보일지도 몰라. 너, 볼드모트의 뱀 알지, 네빌? 그자에게는 거대한 뱀이 있어............내기니라고 하는...........”

“응, 나도 들어 봤어..........그게 왜?”

“그걸 꼭 죽여야 해. 론과 헤르미온느도 그걸 알고 있어. 하지만 만약 그 애들이..........”

그런 끔찍한 가능성을 생각만 해도 해리는 숨이 탁 막혀서 이야기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것은 너무나 중대한 일이었고, 그는 반드시 덤블도어 처럼 되어야만 했다. 냉정을 유지하고, 대리인들, 즉 계속해서 이 일을 이어 갈 다른 사람들을 확실히 마련해 놓아야만 했다. 덤블도어는 자신 이외에 세 사람이 호크룩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죽었다. 이제 네빌이 해리의 자리를 대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비밀을 간직한 세 사람이 남게 될 것이다.

“혹시 그 애들이.........바쁘다거나........네가 만약 그럴 기회가 생기면........”

“뱀을 죽여?”

“뱀을 죽여.”

해리가 되풀이했다.

“알았어, 해리. 너 괜찮지, 그치?”

“괜찮아. 고마워, 네빌.”

하지만 해리가 그만 떠나려고 하자, 네빌이 그의 손목을 붙잡앗다.

“우리 모두 계속 싸울 거야. 해리. 너도 그거 알지?”

“그래, 나도........”

숨이 막힐 것만 같은 벅찬 감정에 말끝이 흐려졌다. 해리는 더 이상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네빌은 그것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저 해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그의 손을 놓고는 다른 시신들을 찾기 위해 가 버렸다.

해리는 다시 투명 망토를 덮어쓰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땅 위에 엎드려 있는 어떤 사람 위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 몇걸음 떨어진 곳까지 다가가서야 해리는 그 사람이 지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리는 그만 가던 길을 멈추었다. 지니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엄마를 찾는 여자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지니가 이야기하고 있엇다.

“괜찮아. 우리가 널 안으로 데리고 가 줄께.”

“하지만 난 집에 가고 싶어.”

여자 아이가 속삭였다.

“난 더이상 싸우고 싶지않아.”

“나도 알아.”

대답하는 지니의 목소리가 갈라져나왔다.

“다 잘될 거야.”

해리는 한기가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꼇다. 그는 어둠을 향해 소리쳐 외치고 싶었고, 자신이 바로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지니가 알기를 바랐다. 그는 누군가 붙잡아 주기를 바랐고, 억지로 도로 끌려가 집으로 돌려보내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집에 잇었다. 호그와트는 그가 알았던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집이었다. 그와 볼드모트와 스네이프! 이들 버려진 소년들은 모두가 이곳을 진정한 집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지니는 부상당한 소년의 손을 꼭 잡고서 무릎을 끓고 앉아 잇었다. 해리는 온 힘을 다해서 간신히 발걸음을 떼었다. 그가 지나가는 순간에 지니가 힐끗 주위를 돌아보는 듯해서 한순간 누군가 걸어가는 걸 알아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이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났다. 하지만 거기엔 불도 밝혀지지 않았고, 팽이 문을 박박 긁는 소리도, 환영의 뜻으로 짖어 대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해그리드의 집으로 찾아갔던 그 모든 기억들, 불 위에 얹어 놓은 구리 주전자의 광채와 록 케이크와 커다란 굼벵이들, 수염 난 해그리드의 커다란 얼굴, 민달팽이를 토해 내던 론, 노버트를 구하려는 해그리드를 돕던 헤르미온느.........

해리는 계속해서 나아갔고, 숲의 가장자리에 이르러서 걸음을 멈추었다.

디멘터 무리가 나무들 사이로 미끄러져 다니고 있었다. 해리는 그들의 냉기를 느낄 수 잇었다. 그는 그것들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에게는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몸이 덜덜 떨려오는 것조차 더 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엔, 죽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숨을 쉬는 매 순간이, 풀 냄새와 얼굴에 닿는 시원한 공기가 너무나 소중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길어서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숱한 세월이, 허송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는 반면, 지금 자신은 1분, 1초에 간절히 매달리고 잇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어쩌면 자신이 계속 나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기나긴 게임이 끝났고, 스니치는 잡혔다. 이제 공중에서 내려올 시간인 것이다.........

스니치, 문득 무감각해진 손가락들이 목에 건 주머니를 더듬었다. 그리고 해리는 그것을 꺼냈다.

나는 끝에서 열린다.

해리는 가쁜 숨을 쉬며 그것을 뜷어지게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가능한 한 느리게 가길 바라자, 어쩐지 시간이 더 빠르게 속력을 내는 것 만 같았다. 더불어 그의 이해력도 너무 빨라져서 생각을 건너뛰는 듯 했다. 지금이 바로 끝이었다. 지금이 그 순간인 것이다.

그는 황금빛 금속 덩어리를 입술에 바짝 대고는 속삭였다.

“나는 이제 죽으려 한다.”

순간 금속 껍데기가 쪼개지며 딱 벌어졌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을 밑으로 내리고, 망토 아래에서 드레이코의 지팡이를 들고 낮게 주문을 외웠다.

“루모스.”

둘로 쪼개진 스니치 속에는 가운데 부분을 따라 삐죽삐죽하게 금이 간 검은 돌이 놓여 있었다. 부활의 돌은 딱총나무 지팡이를 상징하는 수직선을 따라 금이 갔던 것이다. 투명 망토와 부활의 돌을 상징하는 삼각형과 원은 여전히 식별이 가능했다.

이제 해리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단박에 이해했다. 이것은 그들을 불러들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해리가 그들에게 합류하려고 하는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해리가 그들을 불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해리를 불러내고 있었다.

해리는 눈을 감고 돌을 손안에서 세 번 뒤집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주위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곧 숲가장자리를 나타내는, 나뭇가지들이 흩어져 있는 흙바닥 위로 쇠잔한 몸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잇음을 뜻했기 때문이다. 해리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을 볼 수 있엇다. 그들은 유령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진짜 육신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에 일기장으로부터 빠져나왔던 리들과 흡사했는데, 리들은 만질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 기억이었던 것이다. 살아 잇는 육신처럼 실체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유령보다는 훨씬 더 실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들은 해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 모두 똑같이 애정 어린 미소를 가득 띠고 잇었다.

제임스는 해리와 키가 똑같았다. 그는 죽을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머리는 단정치 못하게 헝클어져 있었으며, 안경은 위즐리 씨의 것처럼 약간 비뚤어져 잇었다.

시리우스는 키가 훤칠했고 잘생겻으며, 생전에 해리가 보앗던 모습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다. 그는 양손을 주머니에 놓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서 태평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루핀도 마찬가지로 생전보다 훨씬 더 젊고 덜 추레했으며, 머리카락은 숱이 더 많고 검었다. 그는 이 정든 장소에, 사춘기 시절의 그 숱한 방황을 격었던 현장에 돌아온 것이 기쁜 표정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릴리가 가장 밝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해리에게 다가왔는데, 해리의 눈과 대단히 흡사한 그녀의 초록색 눈은 아들의 얼굴을 열심히 살폈다. 마치 아무리 쳐다봐도 성에 차지 않는 듯 했다.

“넌 너무나도 용감했어.”

해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의 모습을 마음껏 바라보앗다. 이제 그는 영원히 어머니를 바라보며 서 있고 싶다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거의 다 왔구나.”

제임스가 말했다.

“거의 다 왔어. 우리는.........네가 너무나 자랑스럽구나.”

“그건 아픈가요?”

미쳐 막을 겨를도 없이, 너무나 유치한 질문이 해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죽는 거 말이야? 전혀 아니야. 잠드는 것보다도 더 빠르고 간단하지.”

시리우스가 말했다.

“그자는 빨리 해치우고 싶어 할 거야. 그자는 그 일이 끝나길 바라고 있어.”

루핀이 말했다.

“저는 당신이 죽길 바라지 않앗어요.”

해리가 말했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여러분 중에 어느 누구도요. 죄송해요.....”

해리는 그들 중의 누구보다도 루핀을 향해서 간절히 말했다.

“아들을 보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리무스 정말 미안해요...”

“나도 안타깝단다.”

루핀이 말했다.

“난 절대로 그 아이를 알 수 없을 테니 말이야.......하지만 그 아이는 내가 죽은 이유를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부디 그 애가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란다. 나는 그 아이가 더 행복한 삻을 살 수 잇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

그때 숲의 심장부로부터 퍼져 나오는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 이마에 난 잔털까지 곤두서게 만들었다. 해리는 그들이 자신에게 가라고 말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것은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엇다.

“제 곁에 계실 거죠?”

“마지막 순간까지.”

제임스가 대답했다.

“그들은 당신들을 볼 수 없겠죠?”

해리가 물었다.

“우리는 너의 일부란다.”

시리우스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아.”

해리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제 곁에 있어 주세요.”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이윽고 그는 발길을 옮겼다. 디멘터의 냉기도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길동무들과 함께 디멘터들의 냉기를 뜷고 지나갔고, 그들은 마치 패트로누스와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그들은 너무나 빽빽하게 자라서 가지가 뒤엉키고 뿌리가 뒤틀리고 옹이가 진, 늙은 나무들 사이를 다 함께 뜷고 나아갔다. 해리는 어둠 속에서 투명 망토를 단단히 여미고, 점점 더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볼드모트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해리는 그를 발견할 거라고 확신했다. 한편 그의 곁에서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며, 제임스와 시리우스, 루핀 그리고 릴리가 걷고 있었다. 그들의 존재가 그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가 계속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이유가 되엇다.

그의 몸과 마음은 이제 기묘하게 단절된 느낌이었다. 그의 사지는 의식적인 지시도 받지 않고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머잖아 떠나게 될 자신의 몸에서 운전자가 아니라 승객이 된 듯했다. 숲을 헤치며 그와 나란히 걷고 잇는 죽은 자들이, 지금 그에게는 성안에 살아 있는 자들보다 훨씬 더 진짜처럼 느껴졌다. 그의 삶의 끝을 향해, 볼드모트를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잇는 지금 이 순간에는, 론과 헤르미온느, 지니,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오히려 유령처럼 느껴졌다.........

쿵 소리와 함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살아 있는 생명체가 근처에서 움직인 것이다. 해리는 투명 망토를 쓴 채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와 아버지, 루핀과 시리우스도 마찬가지로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 누군가 있어.”

바로 가까이에서 거친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 녀석은 투명 망토를 갖고 있어. 그렇다면 혹시 그게.......”

이윽고 두 사람의 모습이 근처 나무 뒤에서 나타났다. 그들의 지팡이에는 불이 밝혀져 있었다. 해리는 악슬리와 돌로호브가 어둠 속을, 자신과 어머니와 아버지와 시리우스와 루핀이 서 있는 바로 그곳을 뜷어져라 바라보고 잇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악슬리가 말했다.

“짐승이겠지, 안 그래?”

“그 정신 나간 해그리드 놈이 이 안에 온갖 짐승들을 다 풀어 놨단 말이야.”

돌로호브가 어깨 너머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악슬리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거의 다 됐네, 포터 녀석도 끝낫군. 그 녀석은 오지 않아.”

“그런데도 그분은 그 녀석이 올 거라고 확신하셨잖아! 그분이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그만 돌아가 보는 게 좋겠어.”

악슬리가 말했다.

“이제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자고.”

그들은 발길을 돌려 숲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해리는 두 사람이 정확히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인도해 줄 것임을 깨닫고 그들을 쫓아갔다. 힐끗 옆을 바라보니, 어머니는 그를 향해 미소지었고, 아버지는 격려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분도 채 지나지 낳아, 해리 앞에 불빛이 보였다. 악슬리와 돌로호브는 한때 무시무시한 아라고그가 살았던 그 공터 안으로 들어섰다. 아라고그의 드넓은 거미줄의 잔해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자손들은 죽음을 먹는 자들에 의해 밖으로 내몰려서 그자들의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공터 한복판에는 모닥불이 타고 있었고, 굳게 입을 다문 채 바싹 경계하고 있는 죽음을 먹는 자들의 무리 위로 불빛이 너울거렸다. 그들 중 몇 명은 여전히 복면과 두건을 쓰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두 명의 거인이 무리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바위처럼 울퉁불퉁하고 잔혹한 얼굴을 하고 그 자리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잇었다. 한편 펜리 그레이백이 농땡이를 치며 긴 손톱을 깨물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덩치 큰 금발의 라울은 피가 흐르는 입술을 가볍게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기진맥진하고 공포에 사로잡힌 루시우스 말포이와 눈이 움푹 꺼지고 수심에 잠긴 나시사도 보였다.

모든 사람들의 눈길은 볼드모트에게 고정되어 있엇다. 그는 머리를 숙인 채, 딱총나무 지팡이 위로 새하얀 두 손을 포개고 서 있었다. 어쩌면 그는 기원을 하고 있엇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숫자를 세고 있엇는지도 모른다. 해리는 공터 가장자리에 조용히 선 채, 어이없게도 술래잡기 놀이에서 숫자를 세고 잇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볼드모트의 머리 뒤로는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잇는 거대한 뱀 내기니가 괴기스러운 후광처럼 반짝이는 마법의 우리 안에 둥둥 떠있었다.

돌로호브와 악슬리가 원을 그리며 서 잇는 무리 속으로 복귀하자, 볼드모트가 고개를 들었다.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주인님.”

돌로호브가 말했다.

볼드모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엇다. 불빛에 비친 빨간 두 눈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딱총나무 지팡이를 긴 손가락들 사이에서 잡아 뺏다.

“주인님......”

벨라트릭스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볼드모트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머리가 산발이 되고 얼굴에서 피가 약간 나긴 했지만, 달리 다친 곳은 없는 듯 했다.

볼드모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벨라트릭스는 입을 다물고, 황홀한 눈빛으로 숭배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올거라고 생각햇다.”

볼드모트가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높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가 올 거라고 기대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해리만큼이나 겁에 질린 듯 했다. 이제 해리의 심장은, 마치 머잖아 버림받을 몸뚱이로 부터 달아나려고 작심한 듯, 가슴속에서 사정없이 고동치고 있었다. 투명 망토를 벗어 지팡이와 함께 망토 아래에 쑤셔 넣는 동안, 해리의 손에서는 땀이 흘렀다. 그는 혹시라도 싸우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되는 걸 원치 않았다.

“내가 아마도.........실수한 모양이다.”

볼드모트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해리는 잇는 힘을 다해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목소리로 말했다.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바로 그때 부활의 돌이 무감각해진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졌고, 불빛쪽으로 다가가던 해리는 부모님과 시리우스와 루핀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에게는 볼드모트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중요치 않았다. 오직 그들 두 사람 뿐이었다.

그 망상은 생겨날 때만큼이나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일제히 일어서자 거인들이 으르렁거렸으며, 수많은 함성과 숨을 삼키는 소리, 심지어 웃음소리마저 들려왔다. 볼드모트는 서 잇던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붉은 눈은 해리를 발견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해리를 뜷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들 사이에는 오직 모닥불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때 웬 목소리가 외쳣다.

“해리! 안 돼!”

해리가 고개를 돌렸다. 해그리드가 포박당한 채, 근처 나무에 묶여 잇었다. 몸집이 큰 해그리드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자 머리 위의 나뭇가지가 마구 흔들렸다.

“안 돼! 안 돼! 해리, 뭐 하는 거.......”

“조용!”

라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지팡이를 까딱하자, 해그리드는 잠잠해졌다.

그때 벨라트릭스가 벌떡 일어서더니, 가슴을 들썩이며 열에 들뜬 눈빛으로 볼드모트와 해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제 움직이는 것이라곤 오직 불꽃과, 볼드모트의 머리위로 반짝이는 우리 안에서 똬리를 틀었다 풀었다 하는 뱀 뿐이었다.

해리는 가슴팍에서 지팡이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뱀이 너무나 완벽하게 보호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지팡이로 내기니를 겨냥한다면, 50개의 저주가 먼저 자신을 공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볼드모트와 해리는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볼드모트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소년을 골똘히 관찰하느라 고개를 옆으로 약간 기울이고 잇었다. 입술이 없는 그의 입가에 기묘하게 음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해리 포터.”

그가 조용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탁탁 타오르는 모닥불소리의 일부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살아남은 아이.”

죽음을 먹는 자들은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온 세상이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고, 벨라트릭스는 숨을 헐떡거렸다. 한편 해리는 이해할 수 없게도 지니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눈부신 모습을, 그리고 입술에 닿던 그 입술의 감촉을.....

볼드모트가 지팡이를 들었다. 과연 자신이 이 일을 계속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리하느라, 그의 머리는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여전히 갸우뚱 기울어져 있엇다. 해리는 빨간 두 눈을 쏘아보며, 그 일이 바로 지금, 어서 빨리 벌어지기를 바랐다. 그가 아직 두 발로 서 있을 수 잇을 때, 그가 자제력을 잃기 전에, 그가 두려움을 드러내기 전에.........

해리는 그 입이 움직이는 것을, 초록색 불빛이 번쩍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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