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장 딱총나무 지팡이
세상이 끝났다. 그런데 왜 전투는 멈추지 않는 걸까? 어째서 성 전체가 두려움에 떨며 침묵하지 않고, 싸우던 사람들도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 걸까? 해리의 머릿속이 걷잡을 수 없이 뱅글뱅글 맴돌면서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이 사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프레드 위즐리가 죽다니,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 그의 모든 감각들이 전해 주는 증거는 거짓임에 틀림없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폭발로 인해서 뜷린 구멍을 통해 학교 건물 안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저주가 날아오더니 그들의 머리 뒤쪽 벽에 맞았다.
“숙여!”
해리가 소리쳤다. 어둠 속에서 더 많은 저주들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와 론은 양쪽에서 헤르미온느를 붙잡고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퍼시는 프레드의 시신 위에 엎드린 채 시신이 훼손되는 걸 막고 있었다. 해리가 “퍼시 형, 어서요. 그만 이동해야 해요!” 하고 외쳤지만, 퍼시는 고개를 저었다.
“퍼시 형!”
론이 형의 어깨를 움켜쥐고 잡아끌었다. 해리는 먼지로 까맣게 뒤덮인 론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하얗게 생겨난 것을 보았다. 하지만 퍼시는 꼼짝도 하지않았다.
“퍼시 형. 이제 형이 그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린 가야만..........”
이때 헤르미온느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휙 몸을 돌린 해리는 그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엇다. 소형 자동차만큼이나 거대한 괴물 거미가 벽에 뜷린 커다란 구멍을 통해서 기어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아라고그의 후손 중 한 마리가 이 싸움에 끼어든 것이다.
론과 해리는 동시에 주문을 외쳤다. 두 사람의 주문이 부딪혔고, 괴물은 끔찍하게 다리를 꿈틀거리며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그리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놈이 친구들을 데려왔어!”
해리가 저주에 맞아 폭파된 벽의 구멍 너머로 성의 가장자리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더 많은 거대한 거미들이 금지된 숲에서 풀려나와 성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금지된 숲 속 까지 침투한 것이 틀림없었다. 해리는 그들을 향해서 기절마법을 쏘았다. 무리를 이끌던 괴물이 주문에 맞아서 동료들 속으로 굴러 떨어지자, 거미들은 일제히 다시 성벽을 타고 내려가서 모습을 감추었다. 곧이어 더 많은 주문들이 해리의 머리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찌나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는지, 해리는 주문의 위력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서 가자. 지금이야!”
론과 함께 헤르미온느를 먼저 떠밀어 보낸 후에, 해리는 몸을 숙여서 프레드의 시신을 옆구리에 꼇다. 퍼시도 해리가 뭘 하려는지 알아채고, 시신을 꼭 끌어안고 있던 손을 풀고서 그를 도와주었다. 두 사람은 운동장에서 날아오는 저주들을 피하기 위해 낮게 몸을 숙인 채, 프레드를 함께 끌고 갔다.
“이쪽으로.”
해리가 말했다. 그들은 이전에 갑옷이 서 있던 자리에 프레드의 시신을 내려놓았다. 해리는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단 1초도 프레드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시신이 안전하게 감추어졌음을 확인한 후에는 곧장 론과 헤르미온느의 뒤를 쫓아갔다. 말포이와 고일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이제 먼지와 부서진 돌 조각들, 그리고 창문에서 떨어진 유리 조각이 수북이 쌓인 복도 저 끝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리는 그들이 적군이지 아군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갑자기 퍼시가 성난 황소처럼 포효했다.
“록우드!”
그러고는 학생 두 명을 한창 쫓고 있던 키 큰 남자를 향해서 돌진했다.
“해리, 여기야!”
그때 헤르미온느가 부르짖었다.
그녀는 벽걸이 양탄자 뒤에서 론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둘이서 레슬링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리는 아주 잠깐 동안 두 사람이 다시 포옹을 하고 있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퍼시를 뒤쫓아 뛰쳐나가려는 론을 헤르미온느가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 말 좀 들어 봐..........들어 보라고, 론!”
“난 도와주고 싶어. 죽음을 먹는 자들을 죽이고 싶단 말이야.......”
연기와 먼지로 새까매진 론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애통함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부들부들 떨었다.
“론, 이 일은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뿐이야! 제발, 론.........우린 그 뱀이 필요해. 우린 그 뱀을 죽여야 한다고!”
헤르미온느가 타일렀다.
하지만 해리는 론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또 다른 호크룩스를 쫓는 일만으로는 타오르는 복수심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해리 역시 프레드를 죽인 놈들과 싸우고 싶었고, 응징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위즐리 가족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지니가 무사한지, 그걸 꼭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해리는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조차 허용할 수가 없었다.
“우린 싸울 거야!”
헤르미온느가 말을 이었다.
“반드시 그럴 거라고. 그 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말이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와서 잊으면 안돼! 그 일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고!”
헤르미온느 역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까맣게 그을리고 너덜너덜해진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훔쳤다. 하지만 곧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여전히 론을 꼭 붙잡은 채 해리를 돌아보았다.
“너는 볼드모트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 해. 그자는 그 뱀을 자기 곁에 두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안 그래? 그걸 해 봐, 해리..........그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라고!”
어째서 그 일이 이토록 쉬운 것일까? 몇 시간째 계속 흉터가 화끈거리며, 볼드모트의 생각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기 때문일까? 해리는 그녀의 명령에 따라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당장, 비명 소리와 폭음, 그리고 싸움터의 모든 시끄러운 소리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아득히 멀어졌다. 마치 그는 그런 것들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몹시 황량하지만, 이상하게 낯익은 어느 방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다. 벽지가 벗겨져 있었고, 창문이란 창문은, 단 한 곳만 빼놓고 죄다 나무판자로 막혀 있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성을 공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막히지 않은 유일한 창문 너머로, 멀리 성이 있는 쪽에서 펑펑 터지는 불빛들이 보였다. 하지만 방 안은 오직 외로운 등잔 하나만이 있을 뿐, 온통 캄캄했다.
그는 자신의 지팡이를 바라보며 손가락 사이로 그것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성안에 있는 그 방에 가 있었다. 오직 자신만이 발견한 그 감추어진 방, 마치 비밀의 방을 찾을 때처럼 그 방을 찾으려면 아주 영리하고 재간있고 호기심이 많아야만 했다. 그는 해리가 그 보관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비록 덤블도어의 꼭두각시가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가기는 했지만........사실 지나치게 너무 멀리.......
“주인님.”
절망에 찬, 쉰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몸을 돌렸다. 제일 어두컴컴한 한쪽 구석에 루시우스 말포이가 앉아 있었다. 기진맥진한 그의 모습에는 지난번 해리를 놓친 이후로 그가 받은 징벌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한쪽 눈은 퉁퉁 부어서 뜰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주인님......제발 부탁입니다...........저의 아들을........”
“네 아들이 죽는다 해도 그건 내 탓이 아니다, 루시우스. 그는 다른 슬리데린 학생들처럼 이리 와서 나와 합세하지 않앗다. 혹시 해리 포터와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 건 아니냐?”
“아닙니다..........절대로 그런 일은...........”
말포이가 속삭였다.
“물론 아니길 바라야겠지.”
“혹시........혹시 염려되지는 않으십니까, 주인님? 포터가 주인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에 죽게 될지도........”
말포이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저를 용서해 주십시오..........이 전투를 중지시키시고. 모..........몸소 성으로 들어가셔서 그를 찾아보시는 편이 더 신중한 처사가 아닐까요?”
“루시우스, 괜한 핑계 대지 마라. 너는 이 전투를 중지시켜서 네 아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보고 싶은 게지. 난 굳이 포터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이 밤이 새기전에 포터는 나를 찾아올 것이다.”
볼드모트는 또다시 손에 든 지팡이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것이 말썽이었다........그리고 볼드모트 경을 골치아프게 하는 것들은 반드시 다시 손을 봐야만 했다.......
“가서 스네이프를 데려와라.”
“스네이프 말입니까.......주........주인님.?”
“스네이프, 당장 그가 필요하다. 내가 그에게 시킬 일이 있다, 가라”
잔뜩 겁에 질린 루시우스는 어둠 속에서 약간 비틀거리며 그 방을 떠났다. 볼드모트는 손가락 사이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지팡이를 응시한 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길밖에 없다. 내기니.”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제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굵고 거대한 뱀은 볼드모트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준 마법의 보호 공간 안에서 우아하게 몸을 꼬고 있었다. 별처럼 빛나고 투명한 공 모양의 그 공간은 광채나는 동물 우리와 수족관의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해리는 헉하고 숨을 들이쉬더니, 주춤 물러서면서 눈을 번쩍 떳다. 동시에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 쾅 하고 부딪히고 부서지는 전투의 소음이 그의 귓가를 때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에 있어. 그 뱀도 함께 있는데, 일종의 마법 보호막에 감싸여 있어. 그가 방금 루시우스 말포이를 보내서 스네이프를 불러 오라고 했어.
“볼드모트가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에 앉아 있단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발끈해서 말했다.
“그자는.........그자는 심지어 싸우고 있지도 않단 말이야?”
“그는 직접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해리가 대답했다.
“내가 자기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거든.”
“어째서?”
“내가 호크룩스를 쫓고 있다는 걸 그도 알고있으니까. 그는 내기니를 계속 자기 옆에 두고 있잖아. 결국 그 뱀에게 접근하려면, 내가 그자를 찾아가야만 하는 거지.”
“맞아.”
론이 어깨를 쫙 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가면 안 돼. 그게 그자가 원하고 기대하는 일이잖아. 넌 여기 남아서 헤르미온느를 돌봐 줘. 내가 가서 그걸.....”
해리가 론을 가로막았다.
“너희 둘이 여기 남아 있어. 내가 투명 망토를 쓰고 갔다가 최대한 빨리 돌아올께.”
“안 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내가 망토를 쓰고 갔다 오는 게 훨씬 더 합당한........”
“그런 일은 아예 꿈도 꾸지 마.”
론이 헤르미온느를 윽박질렀다.
“론, 나는 할 수.......”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들이 서 있던 계단 꼭대기의 벽걸이 양탄자가 쫙 갈라지면서 활짝 열렸다.
“포터!”
가면을 쓴 죽음을 먹는 자 두 명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팡이를 완전히 치켜들기도 전에,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글리세오!”
그러자 그들 발밑에 있던 계단들이 쭉 펴지면서 미끄럼틀이 되었다. 헤르미온느와 해리, 그리고 론은 밑으로 몸을 던졌다. 미끄러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죽음을 먹는 자들의 기절 마법이 그들 머리위로 한참 빗나가 버렸다. 그들은 계단 밑에 있는 비밀 출입구를 감추고 있던 양탄자를 뜷고 나갔다. 그리고 복도를 데구루루 굴러서 맞은편 벽에 부딪혔다.
“듀로!”
헤르미온느가 양탄자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소리쳤다. 그러자 양탄자가 단단한 돌로 변하면서 뭔가 세게 부딪히는 기분 나쁜 소리가 두 번 들렸다. 그들을 쫓아오던 죽음을 먹는 자들이 돌로 변한 양탄자와 충돌한 것이다.
“물러서!”
론이 고함을 질렀다. 론과 해리,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어느문에 바싹 등을 붙이고 섰다. 겅중겅중 뛰는 한 떼의 책상들이 천둥처럼 요란하게 그들 앞을 지나갔고, 뒤이어 맥고나걸이 양치기처럼 그것들을 몰면서 정신없이 달려갔다. 맥고나걸은 그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것 같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마구 흘러내렸고, 뺨에는 깊이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맥고나걸이 모퉁이를 돌아갈 때, 그들의 귀에 그녀의 외침이 들려왓다.
“돌격하라!”
“해리, 너는 어서 투명 망토를 입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하지만 해리는 세 사람 모두의 머리 위로 투명 망토를 씌웠다. 비록 망토에 비해 그들의 덩치가 너무 크긴 했지만, 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돌 조각이 비처럼 쏟아지고 사방에서 주문들이 번쩍번쩍 터지는 이런 와중에, 밑으로 드러난 그들의 발을 발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서둘러 다음 계단을 달려내려갔다. 복도는 한창 맞붙어 싸우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들의 양편 벽에 걸린 초상화들 속에서는 초상화의 인물들이 빽빽이 모여서 저마다 조언과 격려의 말을 던지느라 난리였다. 한편 죽음을 먹는 자들은 가면을 쓴 자나 쓰지 않은 자나 할 것 없이, 학생들과 교사들과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딘은 지팡이를 하나 차지한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돌로호브와, 패르바티는 트래버스와 일대일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도 당장 각자의 지팡이를 치켜들고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나 사방에서 뒤엉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저주를 쏘았다가는 우리 편 중 한 사람이 맞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결국 세 사람이 서로 딱 붙어 서서 행동할 기회만 노리고 있을때, “우우우우우!”하고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해리가 고개를 쳐들자. 그들의 머리위를 슝하고 날아가는 피브스가 보였다. 피브스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스네어갈러프 씨주머니를 투하했다. 그러자 갑자기 통통하게 살찐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초록색 씨앗들이 그들의 머리를 꿀꺽 삼켜 버렸다.
“이크!”
한 줌의 씨앗들이 론의 머리를 덮고 있던 투명 망토위에 떨어졌다. 그 끈적이는 초록색 씨앗들은 한동안 거짓말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론은 필사적으로 그것들을 떼어 버리려고 했다.
“저기 눈에 안보이는 누군가가 있다!”
가면을 쓴 죽음을 먹는자 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딘은 그 죽음을 먹는자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를 놓치지 않고, 기절 마법으로 그자를 쓰러뜨렸다. 돌로호브는 보복하려고 했지만, 패르바티가 그에게 동작 그만 주문을 날렸다.
“그만 가자!”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투명 망토를 바싹 여미고 머리를 낮게 숙인채, 싸우는 사람들 사이를 돌진했다. 도중에 스네어갈러프 즙이 고인 웅덩이에 살짝 미끄러질 뻔했지만, 어쨌든 현관 복도로 가는 대리석 계단 꼭대기로 향했다.
“난 드레이코 말포이에요! 드레이코라고요! 난 당신들 편이라니까요!”
드레이코가 층계참위에서 가면을 쓴 죽음을 먹는 자에게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 옆을 지날 때, 해리가 죽음을 먹는 자에게 기절 마법을 쏘았다. 말포이는 자신의 구원자를 향해 활짝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론이 투명 망토 아래로 그에게 주먹을 한 방 날렸다. 말포이는 먼저 쓰러진 죽음을 먹는 자 위로 벌렁 자빠졌다. 그의 입술에는 피가 흘렀고, 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오늘 밤 우리가 두 번째로 네 목숨을 구해 준 거야, 이 박쥐같은 녀석아.”
론이 욕설을 퍼부었다.
계단과 현관 복도에는 싸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해리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있었다. 악슬리는 현관문에 바싹 붙어서 플리트윅과 싸우고 있었으며, 바로 그들의 오른편에서는 가면을 쓴 죽음을 먹는 자 한 명이 킹슬리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학생들은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몇 명은 부상당한 친구들을 들거나 끌고 가고 있었다. 해리는 가면을 쓴 죽음을 먹는 자를 향해서 기절 마법을 쏘았다. 하지만 빗나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네빌에게 맞을 뻔했다.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네빌은 베네무스 텐타큘라를 한 아름 안고 휘두르고 있었는데, 텐타큘라는 신이 나서 제일 가까이 있던 죽음을 먹는 자를 덥석 붙잡더니 꽁꽁 휘감기 시작했다.
해리와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대리석 계단을 전속력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때 그들의 왼편에서 기숙사의 점수를 기록하던 슬리데린의 모래시계가 박살이 나더니 에메랄드 알이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굴러갔다. 그 때문에 달려가던 사람들은 미끄러지거나 비틀거렸다. 그들이 1층으로 내려왔을 때, 위쪽 발코니에서 두 명이 굴러 떨어졌다. 뒤이어 해리가 언뜻 보기에 네발달린 짐승 같은 회색 뭉치가 현관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오더니, 발코니에서 떨어진 사람 중 한 명을 덥석 물려고 했다.
“안 돼!”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그녀의 지팡이세 쾅하고 귀를 먹먹하게 하는 굉음이 터졌고, 펜리 그레이백이 힘없이 움직이고 있는 라벤더 브라운의 몸에서부터 휙 뒤로 나가떨어졌다. 늑대인간은 대리석 난간에 부딪히더니 비틀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눈부신 하얀 섬광과 함께, 딱 소리가 나면서 수정 구슬 하나가 그의 머리 위로 쿵 떨어졌다. 늑대인간은 바닥에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도 더 있다!”
난간 위에서 트릴로니가 빽 소리를 질렀다.
“원하는 놈은 누구든, 얼마든지 더 주마! 여기......”
트릴로니는 마치 테니스에서 서브를 날리는 듯한 동작으로, 가방에서 커다란 수정 구슬을 꺼내어 허공에 대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수정 구슬은 빠르게 현관 복도를 가로질러 날아가 유리창을 박살 냈다. 바로 그 순간, 육중한 나무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더 많은 괴물 거미들이 현관 복도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공포에 찬 비명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호그와트 사람이든 죽음을 먹는 자든 할 것 없이, 싸우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괴물들의 한가운데를 향해서 초록색과 붉은색의 불꽃들이 쏟아졌다. 거미들은 부르르 몸을 떨더니 뒷다리로 번쩍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그 모습이 전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했다.
“어떻게 빠져나가지?”
론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너머로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해리나 헤르미온느, 둘 다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해그리드가 분홍색 꽃무늬 우산을 마구 휘두르며 요란하게 계단을 내려온 것이다.
“해치지 마! 해치지 마!”
해그리드가 소리를 질렀다.
“해그리드, 안 돼요!”
해리는 다른 모든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투명 망토 밑에서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그리고 현관 복도 전체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저주들을 피하기 위해 허리를 잔뜩 숙인 채 달려갔다.
“해그리드, 돌아와요!”
하지만 해그리드가 있는 곳까지 절반도 채 못갔을때, 해리는 결국 그 일이 벌어지는 걸 보았다. 해그리드가 거미들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거미들은 흉측한 떼를 이루며 허둥지둥 종종걸음을 쳤고 맹렬한 저주의 공격을 받으며 후퇴했다. 해그리드는 거미들 한가운데에 완전히 파묻혀 버렸다.
“해그리드!”
해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게 적이든 친구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전력을 다해 어두운 운동장으로 현관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거미들은 그들의 먹잇감을 가지고 떼 지어 몰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해그리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해그리드!”
순간 해리는 거미 떼의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팔이 손을 흔드는 것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서둘러 거미들을 쫓아가려고 하는 순간, 터무니없이 커다란 발 하나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어둠 속에서 불쑥 내려온 그 발은 부들부들 떨며 서 있는 해리 앞에 쿵 하고 놓였다. 해리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키가 6미터 정도 되는 거인 한 명이 그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거인의 머리는 어둠 속에 완전히 감추어져 있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성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불빛에 비친 나무만큼 굵고 털이 무성한 거인의 두 정강이 뿐이었다. 단 한 번의 사납고 유연한 동작으로, 거인은 위층 유리창을 뜷고 거대한 주먹 하나를 쑥 집어넣었다. 그러자 유리조각이 비처럼 해리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해리는 어쩔 수 없이 현관 입구 쪽으로 몸을 피해야만 했다.
“오, 이런.........!”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해리를 겨우 따라잡은 론과 헤르미온느는 이제 위층 창문 너머로 사람들을 움켜잡으려고 하는 거인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안 돼!”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를 치켜들자, 론이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저놈을 기절시켰다가는 성의 절반이 짓뭉개질 거야.”
“해거?”
그때 그롭이 성의 모퉁이를 돌아서 비틀비틀 다가왔다. 이제야 비로소 해리는 그롭이 얼마나 작은 거인인지를 깨달았다. 위층에 있는 사람들을 짓뭉개 버리려고 안달을 하던 거대한 괴물은 휙 고개를 돌리더니, 으르렁거리며 노호를 내질렀다. 그리고 자기보다 몹집이 작은 동족을 향해 쿵쿵거리며 달려갔다. 돌계단이 진동을 했다. 그롭의 비뚤어진 입이 떡 벌어지면서, 벽돌 절반만 한 노란 이빨이 드러났다. 이윽고 두 거인은 사나운 사자들처럼 서로를 향해 덤벼들었다.
“달려!”
해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캄캄한 밤은 두 거인이 맞붙어 싸우면서 내는 무시무시한 괴성과 퍽퍽 때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향해서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론이 그 뒤를 따라왔다. 해리는 아직도 해그리드를 찾아서 구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가 어찌나 빨리 뛰었는지, 그들이 다시 우뚝 걸음을 멈추었을 때에는 이미 숲에 절반쯤 다가가 있었다.
순간 주위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해리는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둠 속에서 어떤 형상들이 나타났다. 새까만 암흑이 응집된 듯한, 소용돌이치는 그 형상들은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성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두건으로 가려져 있었고, 그들의 숨소리는 쉭쉭거렸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리 옆으로 바싹 붙엇다. 그들의 등 뒤에서 들리던 요란한 전투 소리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오직 디멘터들만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적이 이 밤을 무겁게 짓눌러 왔기 때문이다. 프레드는 죽었다. 해그리드도 분명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죽었을 지도.....
“어서, 해리!”
아득히 머나먼 곳에서 헤르미온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트로누스를, 해리, 어서!”
해리는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무기력한 절망감이 점점 더 그의 마음속을 채웠다. 그는 아직 모르지만,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쓰러졌을까. 그는 자신의 영혼이 벌써 육신을 절반쯤 떠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리, 어서!”
헤르미온느가 다급하게 부르짖었다.
백 명쯤 되는 디멘터들이 그들을 향해 미끄러지듯 전진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연방 숨을 빨아들이며 해리의 절망에 점점 더 가까이 접근했다. 커다란 잔치에 대한 약속이라도 되는 듯...........
해리는 론의 은빛 테리어가 허공으로 튀어나오더니, 희미하게 깜박거리다가 꺼져 버리는 것을 보앗다. 헤르미온느의 수달이 공중에서 몸을 비틀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한편 그의 지팡이는 손안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해리는 머잖아 다가올 망각의 순간이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이제 아무런 감정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은빛 토끼와 멧돼지, 그리고 여우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의 머리 위를 휙 지나갔다. 그것들이 다가가자, 디멘터들은 뒤로 물러섰다. 어둠 속에서 세 사람이 나타나더니, 그들 옆으로 다가와 섰다. 앞으로 쭉 뻗은 그들의 지팡이에서는 계속해서 패트로누스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루나와 어니, 그리고 시무스 였다.
“바로 이거야.”
루나가 씩씩하게 말했다. 마치 필요의 방으로 되돌아가서 단순히 D.A 주문 연습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바로 이거야, 해리......어서, 뭔가 행복한 걸 생각해 봐!”
“뭔가 행복한 거?”
해리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우리 모두가 아직 여기 있잖아.”
루나가 속삭였다.
“우린 여전히 싸우고 있어. 자, 어서 지금이야!”
은빛 불꽃이 팍 튀더니 일렁이는 한 가닥 빛줄기가 뿜어 나왔다. 곧이어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노력을 기울인 끝에, 해리의 지팡이 끝에서 수사슴이 튀어나왔다. 수사슴은 앞으로 달려갔다. 이제 디멘터들은 정신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어둠이 다시 옅어지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전투 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렸다.
“뭐라고 고맙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론이 루나와 어니, 시무스를 돌아보며,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가 방금 내 목숨을 구해.......”
이때 엄청난 포효와 땅을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숲이 있는 방향에서 또 다른 거인이 어둠을 뜷고 불쑥 나타났다. 거인은 그들보다도 더 커다란 곤봉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뛰어!”
해리가 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뿔뿔이 도망쳤다. 단 1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바로 다음 순간에 거인의 거대한 발이 정확하게 그들이 서 있던 자리를 짓밟았기 때문이었다. 해리가 뒤를 돌아보니, 론과 헤르미온느는 그를 따라오고 있었지만, 다른 세 사람은 다시 싸움터로 돌아가고 있엇다.
“여길 벗어나자!”
론이 고함쳤다. 거인은 또다시 곤봉을 휘둘렀고, 거인의 울부짖음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어두운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운동장에서는 쉴 새 없이 터지는 붉은색과 초록색 광선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커다란 버드나무로 가자!”
해리가 말했다.
이제 해리는 마음속에 벽을 둘러치고서,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도록 잡다한 생각들은 그 좁은 공간 안에 쑤셔 넣어 버렸다. 프레드와 해그리드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성의 안팎에 흩어져 있는, 그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걱정 따위는 모두 접어 두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달려야만 했고, 뱀과 볼드모트에게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헤르미온느가 말한 대로, 그것만이 이 일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자신이 죽음 자체를 능가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면서, 어둠 속 여기저기에서 슝슝 날아다니는 불꽃들과 바다처럼 철썩거리는 호수의 소리와 바람 한 점 없는 밤인데도 술렁거리는 금지된 숲의 소리를 모두 무시한 채,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마치 그 자체가 반란을 일으키며 들고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해리는 평생 그 어느때 보다도 빠르게 달려갔다. 마침내 그 커다란 나무를 제일 먼저 본 사람은 바로 그였다. 그 버드나무는 채찍처럼 휙휙 내려치는 나뭇가지들로 그 뿌리에 감추어진 비밀 통로를 굳게 지키고 잇었다.
해리는 숨을 헐떡거리며 발걸음을 늦췄다. 그리고 휙휙 내려치는 나뭇가지 주변을 맴돌면서, 어둠 속으로 그 두꺼운 밑둥을 살펴보았다. 이 늙은 나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나무에 불어 있는 단 하나의 옹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곧이어 론과 헤르미온느가 도착했다. 헤르미온느는 너무 숨이 차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떻게.....어떻게 들어가지?”
론이 헉헉거리며 말했다.
“저기......그곳이.........보여. 이번에도...........크룩생크만 있다면........”
“크룩생크?”
헤르미온느가 가슴을 움켜쥔 채, 허리를 구부리고 씩씩거렸다.
“너, 마법사 맞니?”
“오........맞아........그렇지.......”
론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땅 위에 떨어진 잔가지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잔가지는 땅에서 붕 떠오르더니 마치 돌풍에 휘날리듯이 허공에서 뱅그르르 맴돌았다. 그러고는 사납게 내려치는 버드나무의 나뭇가지들 사이를 지나서 곧장 밑둥을 향해 날아갔다. 잔가지가 뿌리 근처의 한 지점을 쿡 찌르자, 날뛰던 나무가 당장 조용해졌다.
“완벽해!”
헤르미온느가 헉헉거리며 탄성을 질렀다.
“잠깐 기다려!”
쾅쾅 부서지고 펑펑 터지는 전투의 소음이 주변에 가득 울려퍼지고 있는 동안, 해리는 한순간 주저했다. 볼드모트는 자신이 이렇게 행동하기를, 자신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렇다면, 론과 헤르미온느를 함정 속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다음 순간, 잔인하고 명백한 현실이 바싹 다가오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남은 단 한가지 길은 그 뱀을 죽이는 것이고, 그 뱀은 볼드모트가 있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볼드모트는 이 통로 끝에 있었다..........
“해리, 어서 가야지. 이리로 들어가!”
론이 이렇게 말하며 그를 앞으로 떠밀었다.
해리는 나무뿌리 밑에 감추어진 지하 통로 속으로 몸을 비틀며 들어갔다. 그들이 지난번에 들어갈 때보다 통로를 훨씬 더 비좁아졌다. 통로의 천장이 낮았기 때문에 4년전에도 그들은 몸을 완전히 숙인 채 지나가야만 했다. 그러니 이제는 납작 엎드려 기어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해리가 지팡이에 불을 밝힌 채, 제일 먼저 기어갔다. 언제라도 장애물이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바싹 긴장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움직였다. 해리는 손에 꼭 쥔 지팡이의 흔들리는 불빛만을 응시했다.
마침내 위로 비스듬한 경사가 시작됐다. 해리는 저 앞에서 은색 불빛을 보았다. 헤르미온느가 그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투명 망토! 투명 망토를 써!”
그녀가 속삭였다.
해리가 뒤쪽을 더듬었다. 그러자 헤르미온느는 매끄러운 천뭉치를 그의 빈손에 쥐어 주었다. 해리는 힘들게 망토를 뒤집어썻다. 그리고 “녹스”라고 중얼거려서 지팡이 불빛을 끈 다음,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계속해서 기어갔다. 언제 발각당해서, 싸늘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날아오고 초록 불빛이 번쩍일지 몰라 온몸의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섰다.
이윽고 해리는 바로 저 앞에 잇는 방에서 두런두런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통로 끝의 입구가 낡은 상자 같은 것으로 막혀 있었기 때문에 그 목소리는 희미하게 들렸다. 해리는 감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입구 바로 앞까지 조금씩 다가갔다. 그리고 상자와 벽 사이로 난 가느다란 틈새를 통해 안쪽을 엿보았다.
방 안의 불빛이 희미하긴 했지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반짝이는 마법의 구체 속에 안전하게 들어앉아서 마치 물속에서처럼 몸을 비비 꼬며 소용돌이치고 있는 내기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식탁의 가장자리와, 지팡이를 갖고 장난을 치고 있는 길고 하얀 손가락도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 스네이프가 불쑥 입을 여는 바람에, 해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스네이프는 그가 잔뜩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는 곳에서부터 불과 10여 센티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주인님. 저들의 저항이 약해지고 있..”
“그래, 네 도움 없이도 그렇게 되고 있지.”
볼드모트가 높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베루스, 네가 비록 솜씨 좋은 마법사이긴 하지만, 이제 와서 크게 상황을 바꿔 놓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 거의 도달했다..........거의.”
“부디 제가 그 아이를 찾아내도록 해 주십시오. 제 손으로 포터를 주인님 앞에 대령하도록 해 주십시오. 저는 반드시 그 녀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주인님. 부탁입니다.”
스네이프가 벌어진 틈새 앞을 성큼성큼 지나가는 바람에, 해리는 뒤로 조금 물러났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내기니에게 고정되어 있엇다. 과연 저 뱀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을 뜷을 수 있는 주문이 뭐가 있을까.........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그의 위치가 드러나고 말 것이다........
볼드모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해리는 그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새빨간 눈과 납작하고 뱀 같은 얼굴도 보였다. 그의 얼굴이 어찌나 창백했던지, 어두침침한 가운데서도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 세베루스.”
볼드모트가 조용히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인님?”
스네이프가 반문했다.
볼드모트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는 마치 지휘봉을 잡듯이 정확하고 섬세하게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어째서 이 지팡이가 나를 위해 움직이지 않느냐, 세베루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해리는 어쩐지 뱀이 똬리를 틀었다 풀었다 하면서 쉭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볼드모트의 쉭쉭 거리는 한숨 소리가 허공을 떠도는 것일까?
“주........주인님?”
스네이프가 망연히 되물었다.
“저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주인님께서는 그 지팡이로 비범한 마법을 부리지 않으셨습니까?”
“아니다.”
볼드모트가 말했다.
“그저 평범한 마법을 행했을 뿐이다. 물론 나는 비범한 마법사이다. 하지만 이 지팡이는..........그렇지 않아. 기대했던 그 어떤 경이로운 힘도 보여 주지 못했다. 나는 오래전에 올리밴더에게서 구한 지팡이와 이 지팡이 간의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볼드모트의 말투는 생각에 잠긴 듯 평온하기만 했다. 하지만 해리의 흉터는 고동을 치며 펄떡거렸다. 이마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해리는 볼드모트의 마음속에 점점 쌓여 가는 분노가 간신히 통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차이가 없어.”
볼드모트가 또다시 말했다.
스네이프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엇다. 해리 쪽에서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해리는 과연 스네이프가 위험을 감지하고, 주인의 마음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볼드모트는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변함없이 신중한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하며 배회할 때, 잠깐 그의 모습이 해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동안에도 해리의 마음속에는 고통과 분노가 쌓여 갔다.
“나는 오랫동안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세베루스.....너는 내가 왜 너를 전투에서 불렀는지 아느냐?”
일순간 스네이프의 옆모습이 해리의 눈에 들어왔다. 스네이프의 눈은 마법의 우리 안에서 몸을 돌돌 말고 있는 뱀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모릅니다 주인님. 하지만 부디 저를 다시 돌려보내 주십시오. 제가 포터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넌 꼭 루시우스 처럼 말하는 구나. 너희 두 사람 모두 나만큼 포터를 잘 알지 못한다. 그 녀석은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포터는 스스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 녀석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의 한 가지 커다란 결점을 말이다. 그 녀석은 자기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무엇보다 싫어할 것이다. 바로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그 녀석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일을 막고 싶어 할 것이고, 결국 제 발로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주인님. 어쩌면 주인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우연히 그 녀석을 죽이게 될지도 모릅.....”
“나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아주 분명하게 명령을 내렸다. 포터를 사로잡으라고, 그의 친구들은 죽여 버려라.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더 좋다. 하지만 그 녀석은 죽이지 마라. 하지만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해리 포터가 아니라, 바로 너, 세베루스에 대해서이다. 그동안 너는 나에게 참으로 귀중한 존재였다. 아주 귀중한 존재였지.”
“주인님께서는 제가 오직 주인님을 섬기기만을 원한다는 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저를 보내시어 그 아이를 찾도록 해 주십시오, 주인님. 제 손으로 그 아이를 주인님 앞에 대령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저는 분명히 할 수 있습.......”
“내가 이미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볼드모트가 호통을 쳤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섰을 때, 해리는 그의 눈에서 빨간 불빛이 번뜩이는 걸 보았다. 그의 망토자락은 마치 구불거리는 뱀처럼 휘날렸다. 해리는 확확 타오르는 흉터를 통해서 볼드모트의 조바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세베로스, 지금 나의 관심사는 내가 마침내 그 아이를 만났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주인님, 그건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분명히...”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세베루스, 분명히 있어.”
볼드모트가 걸음을 멈추었다. 해리는 또다시 그의 모습을 확연히 볼 수 있었다. 그는 하얀 손가락 사이로 딱총나무 지팡이를 미끄러뜨리며 스네이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서 내가 사용했던 지팡이 두 개가 모두 해리 포터를 겨냥했을 때 실패하고 말았을까?”
“저........저는 그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
“그러냐?”
날카로운 분노가 송곳처럼 해리의 머리를 쑤셨다. 해리는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통에 못이겨 터져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억눌렀다. 눈을 질끈 감자, 갑자기 그는 볼드모트가 되어 스네이프의 파리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목나무 지팡이는 내가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했다, 세베루스. 해리 포터를 죽이는 것만 빼놓고 말이다. 그 지팡이는 두 번이나 그 일에 실패했지. 올리밴더는 고문에 못이겨서 똑같은 지팡이 심에 대해서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팡이를 사용하라고 충고했지.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루시우스의 지팡이는 포터의 지팡이와 맞부딪히자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저........저는 아무런 설명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
스네이프는 이제 볼드모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는 여전히 보호막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세 번째 지팡이를 찾았다, 세베루스. 딱총나무 지팡이. 운명의 지팡이. 죽음의 지팡이를 말이다. 나는 예전 주인으로 부터 그것을 빼앗았지. 바로 알버스 덤블도어의 무덤에서 이 지팡이를 가져왔다.”
이제야 스네이프는 볼드모트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의 얼굴은 마치 데스마스크 같았다. 그 얼굴이 어찌나 대리석처럼 하얗고 고요한지,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비로소 텅빈 눈동자 너머에 누군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느낄 정도였다.
“주인님, 부디 제가 가서 그 아이를.....”
“이 기나긴 밤 내내, 승리를 바로 눈앞에 둔 이때에 나는 이곳에 앉아있었다.”
볼드모트가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이는 듯 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어째서 이 딱총나무 지팡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전설이 전하는 대로 지팡이의 정당한 주인을 위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인지.....그리고 마침내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
스네이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느냐? 어쨌든 너는 대단히 영리한 자니까, 세베루스. 그동안 너는 착하고 충실한 종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유감스럽구나.”
“주인님.......”
“딱총나무 지팡이는 나를 제대로 섬길 수가 없었다. 세베루스, 왜냐하면 나는 이 지팡이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딱총나무 지팡이는 이전 주인을 죽인 마법사의 소유가 된다. 그런데 네가 알버스 덤블도어를 죽였다. 세베루스, 네가 살아 잇는 한 딱총나무 지팡이는 진정한 나의 소유가 되지 못한단 말이다.”
“주인님!”
스네이프가 자신의 지팡이를 치켜들며 반발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구나.”
볼드모트가 말했다.
“나는 반드시 이 지팡이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세베루스. 이 지팡이를 지배해야 결국에는 포터를 지배할 수 있다.”
볼드모트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허공에 대고 휙 휘둘렀다. 스네이프에게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주 잠깐 동안 스네이프는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볼드모트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뱀의 우리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더니 스네이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자마자 그의 머리와 어깨를 덮어 버렸다. 볼드모트는 파셀통그로 명령을 내렸다.
“죽여.”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에서 얼마 남아 있지 않던 핏기마저 완전히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의 얼굴은 밀랍처럼 하얬다. 뱀의 송곳니가 목을 꿰뜷는 순간, 그는 까만 눈을 부릅떳다. 그리고 마법의 우리를 머리에서 벗겨 내지 못한 채, 무릎을 꺽으며 그대로 마루에 쓰러졌다.
“유감스럽구나.”
볼드모트가 싸늘하게 말하고는, 휙 돌아섰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슬픈 기색도, 후회하는 기색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드디어 이 오두막집을 떠나서 행동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그의 명령에 전적으로 복종할 지팡이를 가지고, 볼드모트는 지팡이로 반짝거리는 뱀 우리를 겨누었다. 그러자 뱀 우리는 스네이프를 버려 두고 위로 둥동 떠올랐다. 스네이프는 옆으로 힘없이 쓰러져 버렸고, 그의 목에 난 상처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볼드모트는 단 한 번 눈길도 주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가 버렸다. 거대한 뱀은 커다란 보호막에 싸인 채, 그의 뒤를 따라 둥둥 떠갔다.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통로 안으로 돌아온 해리는 번쩍 눈을 떳다.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너무 용을 쓰다가 손가락 관절을 깨물어서 피가 나고 있었다. 이제 그는 상자와 벽 사이의 좁은 틈새를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검은 부츠를 신은 발 하나가 마루 위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뒤에서 속삭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상자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상자는 공중으로 2-3센티미터쯤 붕 떠오르더니 조용히 옆으로 비켜났다. 해리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몸을 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해리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어째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다가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스네이프의 새하얀 얼굴과, 철철 흐르는 목의 상처를 막으려고 애쓰는 손가락을 보면서도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해리는 투명 망토를 벗었다. 그리고 그토록 증오하던 사람을 내려다 보았다. 부릅뜬 까만 눈이 해리를 발견하자, 그는 뭔가 말하려고 했다. 해리는 그의 몸 위로 허리를 숙였다. 스네이프는 그의 망토 앞자락을 움켜잡더니 바싹 끌어당겼다.
스네이프의 목구멍에서는 꼴딱꼴딱 숨이 넘어가는 끔찍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걸........받아..........이걸.........받아...........”
피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스네이프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푸르스름하고 은빛 광택이 감도는 그것은, 기체도 액체도 아니었는데, 그의 입과 눈에서부터 분출되고 있었다. 해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플라스크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덜덜 떨고 잇는 해리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헤르미온느가 불러낸 것이다. 해리는 지팡이를 가지고 그 은색 물질을 플라스크 안에 담았다. 플라스크가 가장자리까지 가득 찼을 때는, 스네이프에게는 더 이상 한 방울의 피도 남아 있지 않은것 같았다. 해리의 옷자락을 쥐고 있던 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나를........보아라.......”
그가 속삭였다.
초록색 눈동자와 까만 눈동자가 서로 마주쳤다. 하지만 다음 순간, 새까만 두 개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 있던 무언가가 깜박 사라져 버렸다. 뒤에 남은 것은 오직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멍하고 텅 빈 눈알 뿐이었다. 해리를 붙잡고 있던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스네이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