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장 잃어버린 거울
해리의 두 발이 땅에 닿았다. 가슴이 아플 만큼 친숙한 호그스미드의 하이가가 보였다. 어두운 가게들과 마을 너머에 어스름한 산 그림자들, 호그와트로 이어지는 도로의 모퉁이, 그리고 스리 브룸스틱스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자, 해리는 갑작스러운 마음의 동요와 함께, 거의 1년 전, 몹시 쇠약해진 덤블도어를 부축한 채 이곳에 도착했던 기억이 에일 듯이 날카롭게 떠올랐다. 이 모든 생각들이 착지하는 순간, 단 1초 동안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가 론과 헤르미온느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는 짧은 순간에, 그 일이 벌어졌다.
잔을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볼드모트가 내질렀던 것 같은 비명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 소리는 해리의 모든 신경을 잡아 뜯는 것 같았다. 해리는 그들의 출현이 이 비명소리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그가 망토 밑에 숨어 있는 다른 두 사람을 쳐다보는 순간, 스리 브룸스틱스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망토를 걸치고 두건을 뒤집어쓴 열두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지팡이를 높이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해리는 지팡이를 치켜드는 론의 손목을 꼭 잡았다. 기절 마법을 쏘기에는 상대의 수가 너무나 많앗다. 공격을 했다가는 그들의 위치만 탄로날 것이다. 죽음을 먹는 자들 가운데 한 명이 지팡이를 흔들자 비명 소리가 멈추었다. 하지만 그 메아리는 여전히 먼 산 주위로 울려 퍼졌다.
“아씨오, 투명 망토!”
죽음을 먹는 자 가운데 한 명이 외쳤다.
해리는 망토의 주름을 꽉 붙잡았지만, 투명 망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환 마법은 투명 망토에 아무런 효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망토를 쓰고 있지 않겠지, 포터?”
주문을 쏘았던 죽음을 먹는 자가 소리쳤다. 그러고는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흩어져, 그가 여기 있다.”
죽음을 먹는 자들 여섯 명이 그들 쪽으로 달려왔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가장 가까운 샛길로 가능한 빨리 후퇴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간발의 차이로 그들을 놓쳤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다렸다. 죽음을 먹는 자들의 수색 중인 지팡이들에서 흘러나온 광선이 길을 따라 떠다녔다.
“그냥 떠나자!”
헤르미온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장 순간이동을 해!”
“좋은 생각이야.”
론이 말했다. 하지만 해리가 미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죽음을 먹는 자가 소리쳤다.
“우리는 네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다, 포터! 도망갈 길은 없어! 우리는 널 찾아낼거야!”
“저자들은 우리가 올 것을 대비하고 있었어.”
해리가 속삭였다.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려 줄 주문을 걸어 놓은 거야. 그러니 우리를 여기에 묶어 두기 위해 뭔가를 해 뒀을 것 같아.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말이야....”
“디멘터들은 어때?”
또 다른 죽음을 먹는 자가 소리쳤다.
“그들을 풀어 주면, 순식간에 그 녀석을 찾아낼 거야!”
“어둠의 마왕님께서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손으로 포터를 죽이길....”
“.......디멘터들은 그를 죽이지 않을 거야! 어둠의 마왕님께서는 포터의 목숨을 바라는 것이지, 그놈의 영혼을 바라는게 아니잖아. 일단 입맞춤을 당하고 나면 그 녀석을 죽이기도 쉬워질걸!”
동의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두려움이 해리를 엄습했다. 디멘터들을 쫓아내려면 패트로누스를 불러와야 할 테고, 그러면 즉각 그들의 위치가 탄로날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이동을 한번 시도라도 해 봐야겠어, 해리!”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해리는 예사롭지 않은 한기가 거리에 덮쳐 오는 것을 느꼇다. 사방에서 빛이 흡수되고, 별들마저 사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그의 팔을 붙잡는 것을 느꼇다. 곧 그들은 동시에 제자리에서 빙그르 돌았다.
하지만 그들이 뜷고 이동해야 하는 공기가 딱딱하게 굳어 버린 것 같았다. 순간이동을 할 수가 없었다. 죽음을 먹는 자 들이 마법을 제대로 걸어 놓은 것이다. 싸늘한 한기는 점점 더 깊숙이 해리의 살을 파고들었다. 그와 론, 헤르미온느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벽을 더듬어 옆길로 후퇴했다. 곧 모퉁이를 돌아서, 열댓 명쯤 되는 디멘터들이 소리없이 미끄러지며 다가왔다. 검은 망토를 쓰고 덕지덕지 딱지가 앉은 썩어 문드러진 손을 지닌 그들은, 주위보다 더 짙은 어둠을 띠었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저들은 근처에서 공포를 감지할 수 있을까? 해리는 분명히 그럴 거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느리고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내면서, 이제 더욱 빠르게 다가오고 잇는 것 같았다. 공기 중에 퍼진 절망의 맛을 보고 점점 가까이....
그는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간에, 디멘터의 입맞춤을 당하고 있을 수도,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익스펙토 패트로늄!” 이라고 속삭이며 떠올린 것은 다름아닌 론과 헤르미온느였다.
은빛 수사슴이 그의 지팡이에서 솟아나와 돌진했다. 디멘터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보이지 않는 어디에선가 득의양양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놈이야! 저 아래! 내가 그놈의 패트로누스를 봤어! 수사슴이었다고!”
디멘터들이 후퇴하자 별들이 다시 반짝 튀어나왔다. 죽음을 먹는 자들의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런데 공포에 질린 해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근처에서 빗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좁은 거리의 왼쪽 편에서 문이 하나 열리더니, 거친 목소리가 말했다.
“포터, 이 안으로 어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그들 셋은 열린 현관문을 황급히 통과해 들어갔다.
“위층으로 가! 계속 망토 쓰고, 조용히!”
키가 큰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들을 지나서 거리로 나가더니 등뒤로 문을 쾅 닫앗다.
해리는 처음엔 이곳이 어딘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하나밖에 없는 양초의 흔들리는 불빛을 통해서 지저분하고 톱밥 천지인 호그스 해드 술집이란 걸 알아차렸다. 그들은 카운터 뒤로 달려갔고, 두 번째 출입구를 지났다. 그것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나무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들은 그 계단을 있는 힘을 다해 잽싸게 뛰어 올라갔다. 나달나달한 카팻이 깔린 계단은 작은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로 통했다. 벽난로 위에는 금발 소녀의 커다란 유화 한 점이 걸려 있었는데, 그 소녀는 약간 얼이 빠진 듯한 다정한 얼굴로 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밑의 거리에서부터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여전히 투명 망토를 쓴 채, 더러운 창문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가서 밖을 내려다보앗다. 그들의 구원자는 두건을 뒤집어쓰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해리는 이제 그가 호그스 해드의 바텐더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뭐야?”
그는 두건을 쓴 얼굴들 중 하나에다 대고 으르렁거렸다.
“대체 뭐냐고! 자네들이 디멘터들을 내 거리에대 풀어놓으면, 난 거기 맞서서 패트로누스를 보낼 거야! 그놈이들이 내 곁에 얼씬도 못하게 할거라고! 내가 자네들한테 말했지! 난 참지 않겠어!”
“그건 당신 패트로누스가 아니었어!”
죽음을 먹는 자가 대꾸했다.
“그건 수사슴이야, 포터 거라고!”
“수사슴이라고?”
바텐더가 으르렁거리더니 지팡이를 꺼냈다.
“수사슴이란 말이지! 이 얼간이 같은 놈.....익스펙토 패트로눔!”
무언가 거대하고 뿔이 달린 것이 지팡이에서 솟아 나왔다. 그것은 머리를 숙인채 하이가를 향해 돌진하더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저건 내가 본 게 아니야.......”
죽음을 먹는 자가 말했다. 하지만 전보다는 자신 없는 목소리 였다.
“누군가 통금 시간을 어겼어, 당신도 그 소리 들었잖아.”
그의 동료들 중 한 명이 바텐더에게 말했다.
“누군가 거리에 나와 있었다고.......”
“고양이를 내보내고 싶으면, 난 그렇게 할거야. 네놈들의 통금 같은 건 엿이나 먹으라지!“
“그럼 당신이 고양이아우성 주문을 작동시킨 건가?”
“그랬다면 어쩔 건데? 나를 아즈카반으로 끌고 가시려고? 내 집 대문 앞에 코 좀 내민 죄로 나를 죽이시겠다고? 그럼, 해 보시지, 정 원한다면! 하지만 부디 자네가 그를 호출할 요량으로 그 쪼만한 어둠의 표식을 안 눌럿길 바랄 뿐이야. 그자는 지금 이런 시간에 나나 내 늙은 고양이 때문에 호출 받는 걸 썩 달가워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안 그런가?”
“우리 걱정은 말고.”
죽음을 먹는 자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당신 걱정이나 하시지, 통금을 어겼으니!”
“그래, 내 가게가 문을 닫으면 자네 패거리들은 어디서 마법약이랑 독약을 밀거래 하려고 그러시나? 그럼 그 쥐꼬리만한 부업은 어떻게 되고?”
“지금 당신 협박하는 건가.......?”
“물론 나는 입을 꼭 다물 걸세. 그게 바로 자네들이 여기에 온 이유니까, 안 그래?”
“다시 말하자면 나는 수사슴 패트로누스를 보았단 말이야!”
첫 번째 죽음을 먹는 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수사슴?”
바텐더라 으르렁거렸다.
“그건 염소라고, 이 얼간아!”
“좋아! 우리가 실수했나 보군.”
두 번째 죽음을 먹는 자가 말했다.
“또다시 통금 시간을 어기면, 그때는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야!”
죽음을 먹는 자들은 하이가를 향해 성킁성킁 걸어갔다. 헤르미온느는 안도하며 끙 하고 한숨을 쉬더니 투명 망토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리가 흔들거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해리는 커튼을 꼭 닫고 나서, 자신과 론을 덮고 있던 투명 망토를 벗었다. 아래층에서 바텐더가 다시 술집 문의 빗장을 걸고는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벽난로 선반 위에 놓여 있는 무언가가 해리의 주의를 끌었다.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거울이 소녀의 초상화 바로 밑, 선반 꼭대기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바텐더가 방으로 들어왔다.
“이 천하의 멍청이들!”
바텐더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길 온 거야?”
“고맙습니다.”
해리가 말했다.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희의 목숨을 구해 주셨어요.”
바텐더는 툴툴거렸다. 해리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길고 질긴 철사 같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수염 너머로 감추어진 모습을 보려고 애를 썻다. 그는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지저분한 안경알 너머의 두 눈은 상대방을 꿰뜷어 볼 듯이 새파랗게 빛났다.
“제가 거울에서 보았던 게 바로 아저씨의 눈이었군요.”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해리와 바텐더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도비를 보내셧죠?”
바텐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집요정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 녀석이 너와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를 어디에 내버려 두고 온 거지?”
“도비는 죽었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 죽였어요.”
바텐더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그거 참 유감이구나, 난 그 집요정을 좋아했는데.”
그는 휙 돌아서더니 지팡이로 등잔마다 불을 밝혔다.
그들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당신이 애버포스로군요.”
해리가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그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불을 피우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어떻게 저걸 구하셨나요?”
해리는 2년 전쯤에 그가 깨트린 거울과 한 쌍인 시리우스의 거울 쪽으로 걸어가면서 물었다.
“덩에게서 샀지, 한 1년 전에.”
애버포스가 대답했다.
“알버스가 나에게 그게 어떤 물건인지 얘기해 줬어. 그동안 줄곧 너를 지켜보려고 애써 왔단다.”
론이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은빛 암사슴! 그것도 당신이었나요?”
그가 흥분해서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게냐?”
애버포스가 되물었다.
“누군가 우리에게 암사슴 패트로누스를 보냈어요!”
“저렇게 머리가 나빠서야. 넌 죽음을 먹는자라고 해도 되겠다, 이 녀석아. 내 패트로누스는 염소라는 걸 방금 보여 주지 않았었니?”
“아아”
론이 수긍했다.
“그렇죠....그게 말이죠......제가 배가 고파서요!”
뱃속에서 커다랗게 꾸르륵 소리가 나자, 론이 변명하듯이 덧붙여 말했다.
“나한테 먹을 게 좀 있다.”
애버포스가 말했다. 그리고 방에서 나가 내려가더니, 얼마 안 있어 커다란 빵 한덩이와 약간의 치즈, 그리고 백랍주전자에 든 꿀술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는 벽난로 앞에 있는 작은 탁자위에 음식을 차려 놓았다. 세 사람은 게걸스레 먹고 마셨다. 한동안 불이 탁탁거리며 타는 소리와 잔이 땡그랑 부딪히는 소리, 우적우적 씹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 그러면.....”
그들이 양껏 먹고 나자 애버포스가 입을 열었다. 해리와 론은 졸음에 겨워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엇다.
“너희가 여길 빠져나갈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 뭔지 생각해 봐야겠구나. 오늘 밤에는 안 된다. 해가 저문 후에 누군가 밖에 나다니기라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희도 이미 들었지? 고양이아우성 주문이 발동하면 그놈들은 아마 독시 알을 노리는 보우트러클처럼 너희를 찾아낼 거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두 번이나 수사슴을 염소인 척 속일 수는 없을 것 같구나. 그러니 통금이 풀리는 동틀녘까지 기다려라. 그때가 되면 다시 투명 망토를 쓰고 걸어갈 수 있을거야. 곧장 호그스미드를 빠져나가서 산으로 올라가거라. 거기서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을 게다. 어쩌면 해그리드를 만날지도 모르겠구나. 그들이 그를 체포하려고 한 뒤부터 해그리드는 그롭과 함께 동굴에서 숨어지내고 있거든.”
“저희는 떠나지 않을 겁니다.”
해리가 말했다.
“저희는 호그와트로 들어가야 합니다.”
“어리석은 소리 마라, 꼬마야.”
애버포스가 말했다.
“반드시 가야만 해요.”
해리가 말했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여기서 가능한 한 멀리 도망가는 거야.”
애버포스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세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저희는 성안에 들어가야만 해요. 덤블도어 교수님이, 그러니까 당신의 형님이 바라셨던 일이에요. 저희가........”
벽난로의 불빛이 순간적으로 애버포스의 더러운 안경알을 뿌옇게 만들었다. 해리는 문득 거대한 거미 아라고그의 멀어버린 눈이 떠올랐다.
“알버스는 참 바라는 것도 많았지.”
애버포스가 말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동안, 사람들은 자꾸만 다쳤어. 어서 이 학교에서 달아나라, 포터.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를 떠나라. 알버스나 그의 영리한 계획 따위는 잊도록 해. 그는 그 무엇도 자신을 헤칠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너는 그에게 아무것도 빛진 게 없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세요.”
해리는 또다시 말했다.
“오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애버포스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내 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나보다 네가 알버스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해?”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해리가 말했다. 극도의 피로감과 잔뜩 먹은 음식과 술 때문에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것 같았다.
“제 말은.......그분이 제게 임무를 남겼어요.”
“허, 그랬나?”
애버포스가 말했다.
“바라건대, 좋은 일이겠지? 즐겁고 쉬운? 이를테면 자격 미달의 마법사 꼬마가 무리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일인가?”
론이 씁쓸한 웃음을 터뜨렸다. 헤르미온느는 몹시 긴장한 듯 한 얼굴이었다.
“아니요. 그............그건 쉽지 않아요.”
해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해야만 해요.......”
“해야 한다? 왜 해야 한다는 거지? 그는 죽었어. 그렇지 않나?”
해버포스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둬, 꼬마 친구. 너도 그의 뒤를 쫓아가지 않으려면 말이야! 네 목숨을 아끼라고!”
“그럴 순 없어요.”
“왜 안 된단 말인가?”
“전..........”
해리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대신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당신도 역시 싸우고 계시잖앙! 당신은 불사조 기사단이구요.......”
“한때는 그랬지.”
애버포스가 대꾸했다.
“불사조 기사단은 끝났어. 그 사람이 이겼어. 이제 끝났다고. 그리고 남다른 척하는 이들은 모조리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거야. 네가 여기 있는 건 절대로 안전하지 못해. 포터, 그 사람은 너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단다. 그러니 외국으로 가서 종적을 감추어라. 네 목숨을 구하도록 해. 이 두사람도 데리고 가는 게 좋겠구나.”
그는 엄지 손가락으로 론과 헤르미온느를 가리켰다.
“너와 함께 일해 왓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는 이런 세상에 사는 한, 이들은 언제나 위험할 게야.”
“전 떠날 수 없어요.”
해리가 말했다.
“제게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
“그럴 수 없어요. 그건 제게 주어진 일이에요. 덤블도어 교수님은 그 일에 대해 전부 설명해 주셨어요........”
“허, 그랬나? 그렇다면 자네에게 모든 걸 얘기해 주었나? 자네에게 정직했단 말이지?”
해리는 진심으로 “예”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 단순한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애버포스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우리 형을 잘 알아, 포터. 그는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부터 비밀 지키는 법을 배웠지. 비밀과 거짓말. 그게 우리가 성장한 방식이었어. 그리고 알버스는.......알버스는 천부적이었지.”
노인의 눈이 벽난로 선반 위에 걸린 소녀의 그림 쪽으로 움직였다. 이제야 해리는 주위를 제대로 둘러보았는데, 그것은 방 안에 걸려 있는 유일한 그림이었다. 그 방에는 알버스 덤블도어의 사진은 물론, 어느 누구의 사진도 없었다.
“덤블도어 씨?”
헤르미온느가 몹시 머뭇거리며 물었다.
“저 사람은 당신의 여동생인가요? 아리애나?”
“그렇다.”
애버포스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가씨도 리타 스키터의 책을 읽었나 보군, 그렇지?”
장밋빛으로 타오르는 벽난로의 불빛 아래서 조차, 빨개진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엘피아스 도지 씨가 저희에게 그녀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어요.”
헤르미온느를 구해 주기 위해서 해리가 말했다.
“그 늙어빠진 멍청이.”
애버포스는 꿀술을 또 한 잔 쭉 들이켜면서 구시렁 거렸다.
“우리 형은 마치 구멍 끓린 구멍이란ㄴ 구멍에서 죄다 햇빛만 쏟아내는 줄 알지. 그 늙은이는 말이야. 그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어. 보아하니, 너희 셋을 포함해서 말이다.”
해리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를 들쑤셔 놓았던 덤블도어에 대한 의혹과 반신반의한 마음을 이제 와서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도비의 무덤을 파는 동안 그는 선택했다. 알버스 덤블도어가 그에게 지시한 구불구불하고 위험한 길을 계속 따라가기로, 그가 알고자 한 모든 사실들에 대해 덤블도어로부터 듣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하지만 그저 믿고 따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또다시 덤블도어를 의심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목표로부터 자신을 빗나가게 만들 얘기는 그 무엇도 듣고 싶지 않았다. 해리의 두눈이 형과 아주 놀랄 만큼 닮은 애버포스의 눈과 딱 마주쳤다. 파랗게 빛나는 두 눈은 그의 형과 똑같이, 마치 관찰하는 대상을 엑스레이로 투시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해리는 애버포스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그래서 경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해리를 아주 많이 아꼇어요.”
헤르미온느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 그랬나?”
애버포스가 대꾸했다.
“거참 우습지. 형이 몹시 아꼇던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라리 그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더 나았을 만큼 안 좋은 결말을 맞았는지 모르거든.”
“그게 무슨 뜻이죠?”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신경 쓰지 말거라.”
애버포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중대한 얘기잖아요!”
헤르미온느가 따졌다.
“그러니까......당신의 여동생 얘기를 하고 계신 건가요?”
애버포스는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의 입술은 마치 간신히 참고 있는 말들을 곱씹고 있는 듯이 달싹거렸다. 이윽고 그가 이야기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내 여동생이 여섯 살이었을 때, 세 명의 머글 사내애들이 그 아이를 덮치고 공격을 했지. 그 녀석들은 뒤뜰 울타리 너머로 훔쳐보다가, 그 아이가 마법을 쓰는 것을 목격했던 거야. 아리애나는 아직 어린애였고, 마법을 잘 통제할 수 없었어. 사실 어떤 마녀나 마법사라도 그 나이에는 그럴 수가 없지. 진작건대, 그 녀석들이 그걸 보고 겁에 질렸던 것 같아. 그들은 울타리를 뜷고 들어왓어. 그리고 아리애나가 그들에게 그 마법을 보여 주지 못하자, 그 녀석들은 이 어린 괴짜가 그 짓을 못하게 한답시고 하다가 도를 넘어 버린 게야.”
벽난로 불빛에 비친 헤르미온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론은 약간 메스꺼운 표정이었다. 애버포스가 우뚝 일어섰다. 알버스 만큼이나 키가 큰 그의 모습이 분노와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서 갑자기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그게 그 애를 망쳤어. 그 녀석들이 한 짓이 말이야. 아리애나는 두 번 다시 정상이 되지 못했지. 그 아이는 마법을 사용하려 들지 않았어. 하지만 그 힘을 없앨 수도 없었지. 결국 그 힘은 그 애의 내부로 향했고 그 애를 미치게 만들었어. 그러다가 아리애나가 그 힘을 조절할 수 없을 때면, 밖으로 터져 나오곤 했어. 이따금 그 애는 이상해지고 위험해졌지. 하지만 대개는 다정했고 겁에 질려 있었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단다. 아버지는 그런 짓을 한 후레자식 놈들을 쫓아갔지.”
애버포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을 공격했지. 그 일 때문에 아버지는 아즈카반에 갇혔단다. 아버지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절대로 말하지 않았어. 만약 마법부가 아리애나의 상태를 알게되면, 그 애는 성 뭉고 병원에 영원히 갇히고 말앗을 테니까 말이지. 그들은 그 애처럼 그렇게 불안정한 존재를 국제 비밀 법령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을 거야. 더 이상 힘을 참을 수 없을 때면, 마법이 마구 터져 나오곤 했거든. 우리는 언제나 그 아이를 안전하고 평온하게 지켜 주어야만 햇어. 그래서 이사를 했고, 그 아이가 아프다는 소문을 냈단다. 어머니는 그 애를 보살피며 언제나 평온하게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단다. 그 아이가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나였어.”
애버포스가 말했다. 그가 그 말을 할 때, 애버포스의 주름살과 뒤엉킨 콧수염 너머로 칠칠맞지 못한 학생의 모습이 엿보이는 듯 했다.
“알버스가 아니었지. 형은 집에 있을 때면 언제나 자기 침실에 처박혀 있었으니까. 책을 읽거나 자신이 받은 상의 수를 헤아려 보거나 ‘당대에 가장 유명한 마법사들’과 서신을 주고 받으시느라 말이지.”
애버포스는 콧웃음을 쳤다.
“형은 아리애나에 대해서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았어. 그 아이는 나를 제일 좋아했지. 어머니가 그 아이에게 음식을 먹일 수 없을 때에도 나는 먹게 할 수 있었고, 그 애가 흥분했을 때에도 나는 그 애를 진정시킬 수 있었어. 그 아이는 조용할 때면, 내가 염소들에게 먹이 주는 걸 도와주곤 했어. 그런데 그 아이가 열 네살이 되었을 때...알겠니, 내가 거기에 없었던 거야.”
애버포스가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엇더라면, 그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잇엇을 텐데. 아리애나는 또다시 흥분상태에 빠졌고, 우리 어머니는 예전 만큼 젊지 않으셨지, 그리고......그건 사고였어. 아리애나는 그걸 다스릴 수가 없었던 거야. 하여간 어머니는 죽음을 당했지.”
해리는 연민과 혐오가 뒤섞인 끔찍한 감정을 느꼇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애버포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해리는 그가 과연 얼마 만에 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일까 생각했다. 어쩌면 사실상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일은 애송이 도지와 함께 떠나려고 했던 알버스의 세계 여행을 망치고 말았지. 그 두 사람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고, 얼마 후 도지는 혼자 떠나 버렸어. 그리고 알버스는 가장으로서 정착했지, 허!”
애버포스는 불 속에 침을 탁 뱉었다.
“난 아리애나를 보살피려고 했어. 난 형에게 그러겠다고 말했지. 나는 학교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고, 그냥 집에서 지내면서 그 아이를 돌보려고 했어. 하지만 형은 내게 학교를 마쳐야 한다고 말했고, 어머니의 일을 인계받았지. 총명 선생의 몰락이라고나 할까. 반미치광이 여동생을 보살피고, 하루 걸러 그 아이가 집을 날려 버리지 못하도록 막는 일로 상을 받을 리는 만무하니까, 그래도 몇 주는 제대로 했지.......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이제 노골적으로 무시무시한 표정이 애버포스의 얼굴에 드러났다.
“그린델왈드, 마침내 우리 형은 대등하게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을, 즉 자신만큼이나 총명하고 재능이 잇는 상대를 찾은거야. 그러자 아리애나를 보살피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났지. 그들은 새로운 마법 세계의 체제를 세운다는 둥, 성물을 찾는 다는 둥, 하며 흥미를 느끼는 거라면 뭐든지 온갖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마법사 인류 전체를 위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판국에, 어린 여자아이 하나쯤 소흘한들 무슨 문제나 됐겟어? 알버스는 ‘더 커다란 선’을 위해 힘쓰고 있는데?
하지만 그렇게 몇 주가 지나가, 내 인내심도 바닥이 나고 말았지. 내가 호그와트로 돌아가야 할 날이 가까워 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 두 사람 모두에게 얼굴을 맞대고 분명히 말했어. 바로 지금 내가 너를 보고 말하듯이 말이야.“
애버포스는 해리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를 보면서 자신의 형과 당당히 맞서는, 강인하고 분노에 찬 십 대 소년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나는 알버스에게 말했어. 이젠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말이야. 아리애나를 이동시킬 수는 없다고. 그 아이는 그럴 만한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지. 형이 어디로 갈 계획이든 간에, 언제부터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그 잘난 연설들을 할 작정이든 간에, 아리애나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다고 했어. 알버스는 좋아하지 않더군.”
애버포스가 말했다. 벽난로 불빛이 그의 안경에 반사되면서 잠깐 동안 그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안경은 또다시 뿌옇고 불투명하게 빛났다.
“그린델왈드는 몹시 못마땅해했어, 화를 냈지. 나더러 멍청한 애송이라고 하면서, 총명한 형과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한다고 말했어....... 일단 그들이 세상을 바꾸어 마법사들을 은신처에서 끌어내고 머글들에게 자신들의 자리를 가르쳐 주면, 내 가엾은 동생도 숨어 있을 필요가 없게 될 텐데,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나?
그리고 언쟁이 벌어졌지...... 나는 내 지팡이를 꺼내 들었어. 그도 자기 지팡이를 꺼내더군. 나는 형의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크루시아투스 저주 공격을 당했지. 알버스가 그를 말리려고 하다가, 우리 세 사람은 결투를 벌이게 되었어. 그런데 번쩍거리는 불빛과 굉음이 그 애를 폭발하게 한 거야. 그 애는 그걸 견딜 수 없었지........“
마치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애버포스의 얼굴에서 서섯히 핏기가 가셨다.
“.....내 생각에 아리애나는 돕고 싶어 했던 것 같아. 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잘 몰랐어. 우리 중의 누가 그랫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중의 누구든 그럴 수 있었으니까..........결국 그 애는 죽었어.”
마지막 말에서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애버포스는 가장 가까이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헤르미온느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고, 론은 거의 애버포스 만큼이나 창백해 보였다. 해리는 극도의 혐오감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차라리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 이야기를 깨끗이 지워 낼 수만 있다면 좋을 것만 같았다.
“정말..........정말 유감이에요.”
헤르미온느가 나지막이 말했다.
“갔어.”
애버포스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영원히 가 버렸어.”
그는 소매로 코를 쓱 닦더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물론 그린델왈드는 달아났단다. 그자는 이미 자기 나라에서 한 번 전과가 있었으니, 거기에다가 아리애나의 일까지 더해지기를 원치 않았던 거야. 그리고 알버스는 자유로워졌지. 안그러냐? 여동생이라는 짐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롭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될 수 있게 된 거........”
“그분은 결코 자유롭지 못했어요.”
해리가 말했다.
“뭐라고?”
애버포스가 물었다.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고요.”
해리가 대답했다.
“당신의 형님이 죽던 날 밤. 그분은 마법약을 마시고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마구 비명을 지르고, 거기 있지도 않은 누군가에게 애원했어요. ‘그들을 해치지 마, 부탁이야.......대신 날 해쳐라.......’”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해리는 이제껏 한 번도 호수의 섬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 한 적이 없었다. 그와 덤블도어가 호그와트로 돌아오고 난 뒤에 잇달아 벌어진 사건들 때문에, 그 일은 완전히 가려져 버렸던 것이다.
“교수님은 당신과 그린델왈드와 함께 있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갔던 거예요, 저는 알아요.”
해리는 덤블도어가 흐느끼며 애원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분은 그린델왈드가 당신과 아리애나를 해치는 장면을 보고 있다고 착각했던 거에요........그건 그분에게 엄청난 고문이었어요. 만약 당신이 그때 그 모습을 보셨더라면, 그분이 자유로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애버포스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마디가 굵고 핏줄이 두드러진 자신의 손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지, 포터? 알버스가 너보다도 ‘더 커다란 선’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고 말이다! 어떻게 네가, 내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없어도 그만인 대상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지?”
순간 싸늘한 얼음 조각이 해리의 심장을 뜷고 들어오는 듯 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덤블도어 교수님은 해리를 사랑했어요.”
헤르미온느가 반박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해리에게 숨으라고 말하지 않았지?”
애버포스가 쏘아붙였다.
“어째서 그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냔 말이야. ‘몸조심해라, 그게 살 길이다’ 라고!”
“왜나하면......”
헤르미온느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해리가 먼저 말했다.
“때때로 사람은 자신의 안전보다 더 커다란 것에 대해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때때로 사람은 ‘더 커다란 선’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고요! 이건 전쟁이라고요!”
“넌 열입곱 살이란다, 꼬마야!”
“전 이제 성인이에요. 설령 아저씨가 포기한다고 해도, 저는 싸움을 계속해 나갈 거예요.”
“내가 포기했다고 누가 그러던?”
“‘불사조 기사단은 끝났어’”
해리가 그의 말을 되풀이 했다.
“‘그 사람이 이겼어. 이제 끝났다고, 그리고 남다른 척하는 이들은 모조리 스스로를 속이고 잇는 거야’”
“나도 좋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야.”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해리가 말했다.
“아저씨의 형님은 그 사람을 어떻게 끝장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 지식을 저에게 넘겨주었어요. 저는 제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할 거예요......그러지 못하면 전 죽어요. 이 일이 어떻게 끝날 수도 잇을지 제가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전 이미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요.”
해리는 애버포스가 빈정대거나 반박하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단지 인상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저희는 호그와트로 들어가야 해요.”
해리가 다시 말했다.
“저희를 도와주실 수 없다면, 귀찮게 하지 않고 동틀때 까지 기다릴게요. 그리고 저희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보겠어요. 만약 저희를 도와주실수 있다면.......그럼, 지금이 그 일을 의논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겠군요.”
애버포스는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서, 유별나게 그의 형과 닮은 눈으로 해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목청을 가다듬고 일어서더니, 작은 탁자 주위를 빙 돌아서 아리애나의 초상화 쪽으로 다가갔다.
“너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그가 말했다.
아리애나가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돌아섯다. 그리고 초상화 속의 인물들이 그러하듯이 액자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등 뒤로 그려져 있는 긴 터널처럼 보이는 것을 따라 걸어갔다. 그들은 마침내 그녀를 집어삼킬 때까지, 점점 멀어지는 희미한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뭐죠....?”
론이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서는 들어갈 방법이 딱 하나박에 없어.”
애버포스가 말했다.
“그자들이 모든 오래된 비밀 통로의 양쪽 끝을 봉쇄해 버렸다는 걸 너희도 알아야만 해. 내 정보원이 알려 준 바에 따르면, 디멘터들이 학교 주변의 모든 담들을 돌고 있고, 학교 내부에도 항시 순찰병들이 있다고 하더군. 호그와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더욱 경비가 삼엄해졌어. 스네이프가 책임을 맡고 있고 캐로우 남매가 그의 부관으로 있는 판국에, 너희가 일단 그 안에 들어간들 뭘 할수 있을 것 같은가? 그래, 그건 너희도 예상하고 있지, 안 그래? 네 입으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니.”
“그런데 저게 뭐........?”
헤르미온느가 얼굴을 찌푸리고 아리애나의 그립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림속의 터널 끝에서 조그만 하얀 점이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이제 아리애나는 점점 더 커지면서 그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옆에 다른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 그 사람은 그녀보다 키가 더 컷고, 약간 절뚝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는데, 몹시 흥분한 표정이었다. 그는 해리가 여태껏 보았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길게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흉터가 몇 군데나 있는 듯했고, 옷은 갈가리 찢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그들의 머리와 어깨만으로도 초상화를 가득 채울 지경이 되었다. 곧이어 초상화 전체가 작은 문처럼 벽에서부터 앞으로 활짝 열렸다. 그리고 진짜 터널로 통하는 입구가 드러났다. 그곳에서 머리를 길게 기르고 얼굴에 흉터가 난 진짜 네빌 롱바텀이 너덜너덜한 망토를 걸친 채 기어 내려왔다. 그는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며 벽난로 선반에서 풀쩍 뛰어내리더니 소리쳤다.
“네가 올 줄 알았다니까! 그럴 줄 알았어, 해리!”
<해리포터-죽음의 성물 3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