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장 (183/194)

제 26장 그린고트

드디어 작전이 세워지고 모든 준비도 끝났다. 가장 작은 침실의 벽난로 선반 위에는, 헤르미온느가 말포이 저택에서 입고 있던 스웨터에서 떼어 낸, 길고 거친 검은색 머리카락 한 가닥이 작은 유리병 속에 꼬불꼬불 말려 있었다.

“너는 실제로 그 여자의 지팡이를 사용하는 거야.”

호두나무 지팡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해리가 말했다.

“그러면 상당히 그럴듯 해 보일 것 같아.”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혹시라도 그 지팡이를 쥐었다가 찔리거나 물리지는 않을까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난 이 물건이 맘에 안 들어.”

헤르미온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게 정말 싫어. 나랑은 완전히 안 맞는 것 같아. 내가 쓰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다고.......그건 마치 그 여자의 일부 같아.”

해리는 예전에 자기가 블랙손 지팡이를 싫어했을 때, 헤르미온느가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는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블랙손 지팡이가 원래 해리의 지팡이만큼 잘 작동하지 않자. 그건 단지 해리가 그렇게 상상하는 것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저 연습이나 열심히 하라고 충고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는 그때 자신이 들었던 것과 똑같은 충고를 헤르미온느에게 되돌려 주지는 않기로 했다. 그린고트 습격을 하루 앞둔 날 밤에 헤르미온느와 말싸움을 벌이는 것은 부적절한 일인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게 하면 네가 그 여자인 척하는 데 도움이 될거야.”

론이 말했다.

“그 지팡이가 한 짓을 생각해 보라고!”

“내 말이 그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이건 네빌의 부모님을 고문한 지팡이야. 게다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더 고문했는지 누가 알겠어? 시리우스를 죽인 것도 바로 이 지팡이야!”

해리는 그 생각은 미쳐 하지 못했었다. 지팡이를 내려다보자, 순간 그것을 낚아채 옆쪽 벽에 기대어 세워 놓은 그리핀도르의 칼로 당장 두 동강을 내고 싶은 사나운 충동을 느꼇다.

“내 지팡이가 그리워.”

헤르미온느가 징징거렸다.

“올리밴더 씨가 나에게도 지팡이를 새로 하나 만들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아침에 올리밴더가 루나에게 새 지팡이를 보내 주었던 것이다. 지금 루나는 뒤뜰 잔디밭으로 나가 늦은 오후의 햇볕을 받으며 지팡이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있었다. 역시 인간 사냥꾼들에게 지팡이를 뺏긴 딘은 다소 침울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엇다.

해리는 한때 드레이코 말포이의 것이었던 산사나무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지팡이가 최소한 헤르미온느의 것만큼 잘 작동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었다. 올리밴더가 이야기해 준 지팡이의 비밀스러운 작동에 대해 생각해 보니,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벨라트릭스에게 직접 빼았아서 그 호두나무 지팡이의 충성심을 획득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침실 문이 열리더니 그립훅이 들어왔다. 해리는 본능적으로 칼자루를 향해 손을 뻗어, 칼을 자기 옆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즉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는 도깨비가 그 사실을 알아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처한 순간을 얼버무리려고 해리가 얼른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지금 막 최종 점검을 하고 있었어요, 그립훅. 빌과 플뢰르에게는 내일 떠난다고 말했고요. 괜히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지 말라고 일러뒀어요.”

그들은 특히 이 점을 단단히 못 박아 두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떠나기 전에 헤르미온느는 벨라트릭스로 변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하려는 일에 대해서 빌과 플뢰르가 알거나 짐작하는 게 적으면 적을수록 더 좋았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설명했다. 인간 사냥꾼들이 그들을 잡아간 날 밤에 퍼킨스의 낡은 텐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빌은 그들에게 다른 텐트를 빌려 주었고, 그것은 이제 구슬 백 속에 들어 있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그 구슬 백을 양말 밑에 쑤셔 넣는 단순한 방법으로, 인간 사냥꾼들에게 뺏기지 않고 지켜 냈다는 사실을 알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비록 지난 몇주간 만끽했던 가정의 안락함은 말할 것도 없고, 빌과 플뢰르, 루나와 딘을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하루속히 이 답답한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에서 벗어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들을 엿듣는 것은 아닌지 계속 주의해야 하는 것에도 신물이 났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립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 그리고 어떻게 그린핀도르의 칼을 넘겨주지 않고 도깨비와 헤어질 것인가에 하는 문제에 대해서 해리는 아무런 해답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기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도깨비가 5분 이상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세사람만 함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놈이라면 우리 엄마에게 한 수 가르쳐도 되겠어.”

도깨비의 긴 손가락이 끈질기에 문가에 나타나자, 론이 툴툴거렸다. 한편 빌의 경고를 마음속에 새기고 있던 해리는 그립훅이 혹시 있을지 모를 배신에 대비해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계획적인 배신에 대해서 너무나 맹렬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해리는 어떻게 하면 그 일을 가장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녀의 조언을 얻으려는 시도는 이미 포기했다. 한편 론은, 어쩌다 그립훅이 없는 짧은 틈을 타서 힘들게 만날 때면, “그냥 즉석에서 해치우면 되는 거야, 친구” 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묘안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

그날 밤에 해리는 잠을 설쳤다. 일찍부터 눈을 뜬 그는 자리에 누운 채 마법부에 잠입하기 전날 밤의 기분을 회상하면서, 거의 흥분에 가까웠던 당시의 결의를 떠올렸다. 지금 그는 흔들리는 불안감과 끈질긴 의혹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일이 엉망이 되어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해리는 그들의 계획이 훌륭하고, 그립훅은 앞으로 당면 할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자신들에게 닥칠지 모를 모든 난관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계속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했다. 한두 차례 론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론 역시 깨어 잇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거실을 딘과 함께 쓰고 있었기 때문에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여섯 시 정각이 되자 차라리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침낭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어스름한 어둠속에서 옷을 입은 뒤, 헤르미온느와 그립훅을 만나기로 되어 있는 정원으로 몰래 빠져나왔다. 새벽 공기는 싸늘했지만, 지금은 5월이라 바람은 거의 없었다. 해리는 어두운 하늘에서 여전히 창백하게 반짝이고 있는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절벽을 향해 밀려왔다 물러나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이 소리를 그리워할 것이다.

이제 작고 푸른 새싹들이 도비의 무덤을 덮은 붉은 흙을 비집고 솟아오르고 있었다. 1년 이내에 그 둔덕은 꽃으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집요정의 이름이 새겨진 하얀 비석은 벌써 풍상에 시달린 듯이 보였따. 그는 이제야 도비를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 묻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대로 도비를 남겨 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무덤을 굽어보며, 어떻게 집요정이 어디로 그들을 구하려 가야 할지를 알앗을까 또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무심결에 여전히 목에 걸고 있는 조그만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그가 덤블도어의 눈을 보았다고 확신했던 날카로운 거울 조각이 만져졌다.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해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 그립훅을 대동한 채, 그들 쪽으로 잔디를 가로질러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에서 가져온 여벌의 낡은 망토 안주머니에 구슬 백을 쑤셔넣고 있었다. 해리는 그 사람이 헤르미온느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혐오감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녀는 그보다 키가 컷고,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등에서 넘실거렷으며, 눈꺼플이 두둑한 두 눈은 경멸스런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가 말을 하자, 그는 벨라트릭스의 낮은 목소리를 통해 헤르미온느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여자는 지독하게 맛이 없었어. 거디루트보다도 더 고약해! 좋아, 론. 이리 와 봐. 내가 해줄게......”

“알았어, 하지만 명심해. 난 턱수염이 너무 긴 건 싫다고......”

“오오, 정말이지, 이건 잘생겨 보이는 거랑은 젼혀 상관이 없단.........”

“그게 아니야. 거추장스럽단 말이야! 하지만 코는 좀더 짧은 게 좋겠어. 네가 지난번에 해 줬던 것처럼 해줘.”

헤르미온느는 한숨을 내쉰 뒤,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며 론의 여러가지 생김새를 변형시켜 나갔다. 그는 완전히 허구의 인물로 변장할 계획이었다. 그들은 벨라트릭스가 내뿜는 사악한 분위기가 분명 그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한편 해리과 그립훅은 투명 망토 속에 숨을 계획이었다.

“자........얘 어때 보이니, 해리?”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변장을 한 론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것은 단지 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제 론의 머리는 길게 늘어져서 굽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빽빽한 갈색 콧우염과 턱수염이 나 있었고, 주근깨는 없었으며, 짧고 넙적한 코와 짙은 눈썹을 하고 있었다.

“흠.........내 타입은 아니지만, 그만하면 됐어.”

해리가 대답했다.

“그럼 이제 가 볼까?”

그들 세 사람은 희미해지는 별들 아래에 검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서 있는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바로 경계가 되는 담장 너머, 더 이상 피델리우스 마법이 작동하지 않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순간이동을 할 수 있었다. 입구를 나서자마자 그립훅이 말했다.

“이제 난 올라타야 할 것 같다. 해리 포터, 안 그래?”

해리가 허리를 굽히자 도깨비가 그의 등으로 기어 올랐다. 그리고 해리의 목 앞에서 두 손을 맞잡았다. 별로 무겁지는 않았지만, 해리는 도깨비의 감촉과 자신에게 매달리는 그 놀라운 힘이 혐오스러웠다. 헤르미온느는 구슬 백에서 투명 망토를 꺼내 두 사람 위로 덮어씌웠다.

“완벽해.”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발을 점검하기 위해 허리를 숙이더니 말했다.

“하나도 안보여. 이제 가자.”

해리는 그립훅을 업은 채, 온 힘을 다해 다이애건 앨리로 가는 입구인 리키 콜드런 술집에 정신을 집중하며, 그 자리에서 빙그르 돌았다. 그들이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도깨비는 더욱 단단히 매달렸다. 잠시 후 해리의 두 발은 인도에 닿았고, 눈을 떠 보니 채링 크로스가였다. 머글들은 그 자그만 술집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이른 아침의 풀 죽은 표정을 하고서 부산스레 지나갔다.

리키 콜드런의 바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구부정하고 이가 빠진 주인장 톰은 카운터 뒤에서 잔을 닦고 있었다. 멀리 구석에서 중얼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던 마법사 두 명이 헤르미온느를 흘끗 바라보더니, 어둠 속으로 뒷걸음쳤다.

“레스트랭 부인.”

톰이 웅얼거렸고, 헤르미온느가 지나가자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안녕하세요.”

헤르미온느가 인사를 했다. 해리는 여전히 투명 망토 속에서 그립훅을 등에 업은 채 살금살금 지나갔다. 그리고 깜짝 놀라는 톰의 표정을 보았다.

“너무 공손하잖아.”

술집을 빠져나와 좁은 뒷마당으로 들어서며, 해리가 헤르미온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넌 사람들을 쓰레기 취급해야 한다고!”

“알았어! 알았다고!”

헤르미온느는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를 꺼내더니, 그들 앞에 있는 평범한 벽의 어느 벽돌을 툭툭 두드렸다. 즉시 벽돌들이 소용돌이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 한가운데에 구멍이 나타나더니, 차츰 넓어져서 마침내 아치 모양의 통로를 이루었다. 그 통로는 자갈이 깔린 좁다란 거리, 즉 다이애건 앨리로 이어져 있었다.

가게들이 거의 문을 열지 않은 시간이라 거리는 조용했고, 돌아다니는 쇼핑객도 거의 없었다. 이제 자갈이 깔린 구불구불한 거리는, 해리가 여러 해 전에 호그와트의 첫 학기를 앞두고 찾아왔을 때의 그 혼잡했던 거리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왔던 이래로 어둠의 마법에 헌납된 몇몇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판자로 막아 놓은 상점들이 많았다. 그리고 여러 유리창에 나붙은 포스터에서는 해리의 얼굴이 자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 얼굴에는 언제나 ‘기피대상자 1번’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수 많은 남루한 사람들이 건물 입구에 모여 앉아 있었다. 해리는 그들이 몇몇 행인에게 자신들은 진짜 마법사라고 호소하며 처량하게 금화를 구걸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남자는 한쪽 눈에 피 묻은 안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길을 나서자, 거지들이 헤르미온느를 흘끔거렸다. 그들은 그녀 앞에서 마치 녹아 없어지듯,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가능한 잽싸게 달아나 버렸다. 피로 얼룩진 안대를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앞길을 가로막을 때까지, 헤르미온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자식들!”

그 남자는 헤르미온느를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날카로웠다. 마치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우리 애들은 다 어디 있어? 그놈이 그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거지? 넌 알지? 넌 알고 있잖아!”

“난.........난 정말....”

헤르미온느가 말을 더듬었다.

남자가 그녀의 목으로 손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펑 소리와 함께 붉은 광선이 발사되었고, 남자는 의식을 잃은채 바닥에 벌렁 내동댕이쳐졌다. 론은 여전히 자신의 지팡이를 앞으로 내민 채, 턱수염 뒤로 경악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우뚝 서 있었다. 거리 양편에 있는 창문 너머로 얼굴들이 나타났고, 몇 안 되는 부유해 보이는 행인들의 무리는 어서 이 현장을 떠나려고 망토를 단단히 여민 채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요란하게 다이애건 앨리에 입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잠깐 동안 해리는 당장 이곳을 떠나서 다른 계획을 세우는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자리를 피하거나 서로 의논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레스트랭 부인!”

해리는 휙 몸을 돌렸고, 그립훅은 해리의 목을 감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무성한 반백의 머리에 길고 뾰족한 코를 가진, 키가 크고 홀쭉한 마법사가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트래버스야.”

도깨비가 해리의 귀에 속삭였지만, 그 순간 해리는 트래버스가 누구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헤르미온느는 몸을 꼿꼿이 세운 채, 할 수 있는 한 가장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무슨 일이지?”

트래버스는 확실히 기분이 상한 듯, 오던 걸음을 멈추었다.

“저자도 죽음을 먹는 자야.”

그립훅이 속삭였다. 해리는 살그머니 헤르미온느 옆으로 다가가서 그 정보를 귀에 대고 알려 주었다.

“전 단지 인사를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트래버스는 싸늘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를 마주하는 게 달갑지 않으시다면.....”

해리는 이제야 그의 목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트래버스는 제노필리우스의 집으로 불려왔던 죽음을 먹는 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트래버스.”

헤르미온느가 자신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재빨리 대답했다.

“어떻게 지내시지요?”

“저,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이렇게 밖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놀랍군요, 벨라트릭스.”

“정말이요? 어째서 그런가요?”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저.....”

트래버스가 헛기침을 했다.

“제가 듣기론, 말포이 저택에 사는 사람들이 그 집에 감금되었다고, 그..........탈출 이후로요.”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냉정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벨라트릭스는 공공연히 밖에 나와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어둠의 마왕님께서는 과거에 그분을 가장 충성스럽게 섬겼던 이들을 용서해 주시지요.”

헤르미온느는 벨라트릭스의 시건방진 말투를 멋지게 흉내내며 말했다.

“아마도 당신의 신임은 저만큼 좋지 못한 모양이죠, 트래버스.”

죽음을 먹는 자는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한결 의심이 사라진 듯했다. 그는 론이 방금 기절 마법으로 공격한 남자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저놈이 당신의 신경을 건드리기라도 했나요?”

“괜찮아요. 다시는 그러지 못할 테니까요.”

헤르미온느가 싸늘하게 말했다.

“몇몇 지팡이 없는 놈들이 말썽입니다.”

트래버스가 말했다.

“다른 짓은 하지 않고 구걸이나 하고 다니는 거야 아무 이의가 없습니다만, 지난주에는 그중 한 명이 실제로 제게 이 사건을 마법부에 청원해 달라고 부탁하지 뭡니까. ‘저는 마녀예요, 선생님. 저는 마녀라고요. 제발 그걸 선생님께 증명하게 해 주세요!’”

트래버스가 여자 흉내를 내며 끽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그런다고 제가 제 지팡이를 그 여자에게 주기라도 할듯이 말이죠, 그런데 누구 지팡이를.....”

트래버스가 잔뜩 호기심을 보이며 말했다.

“지금 사용하고 계신 건가요, 벨라트릭스? 제가 듣기로는 당신 것은..........”

“제 지팡이는 여기 있어요.”

헤르미온느가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를 치켜들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도대체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잘못된 정보를 들은 것 같군요, 트래버스.”

트래버스는 그 말에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리고 대신 론을 돌아봤다.

“당신의 친구 분의 늬신지요? 전 잘 모르겠군요.”

“이분은 드래고미르 데스파드예요.”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그들은 론이 차라리 가상의 외국인인 척하는 편이 가장 안전할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분은 영어를 거의 못하시지만, 어둠의 마왕님의 뜻에 공감하시죠. 그래서 우리의 새로운 체제를 구경하기 위해 트란실바니아에서 이곳까지 여행을 오셨어요.”

“정말인가요? 안녕하세요, 드래고미르?”

“안녀하쎄요?”

론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트래버스는 손가락 두 개를 내밀면서, 마치 손이 더렵혀질까 두렵다는 듯 론과 마지못해 악수를 했다.

“당신과 당신의.........아..........공감하는 친구 분은 어쩐 일로 이렇게 이른 시각에 다이애건 앨리에 나오셨나요?”

트래버스가 물었다.

“그린고트에 들러야 해서요.”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저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래버스가 말했다.

“황금, 더러운 황금! 우리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지요.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손가락 긴 친구들과 반드시 어울려야 한다는 사실이 저는 퍽 유감스럽습니다.”

해리는 그립훅의 깍지 낀 손이 순간적으로 그의 목을 더욱 세게 조이는 것을 느꼇다.

“그럼 함께 갈까요?”

헤르미온느에게 앞서 가라는 손짓을 하며 트래버스가 말했다.

결국 헤르미온느는 그와 나란히 자갈이 깔린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길 앞에는 눈처럼 새하얀 그린고트가 다른 조그만 가게들 위로 우뚝 서 있었다. 론은 그들과 함께 걸어갔고, 해리와 그립훅도 그 뒤를 따라갔다.

의심 많은 죽음을 먹는 자야말로 그들에게 가장 반갑지 않은 손님이엇다. 벨라트릭스가 곁에 있다고 믿으면서 걸어가고 있는 트래버스 때문에 무엇보다 난처한 점은, 해리가 헤르미온느나 론과 대화를 나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너무나 빨리 거대한 청동 문으로 들어가는 대리석 층계 밑에 도착했다. 그립훅이 이미 그들에게 경고한 바와 같이, 평상시에 입구의 양옆을 지키던 제복을 입은 도깨비들은 두 명의 마법사로 교체되어 있었고, 두 사람 모두 길고 가느다란 황금 막대를 꼭 쥐고 있었다.

“아, 거짓말 탐지기로군요.”

트래버스가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몹시 야만적이지만......효과적이죠!”

트래버스는 양쪽 마법사들에게 좌우로 고개를 끄덕이며 층계를 올라갔다. 그들은 황금막대를 들어서 그의 몸을 위아래로 흝었다. 해리가 알기로는 그 탐지기는 은신 마법과 숨겨진 마법 물건들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겨우 몇 초의 여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해리는 드레이코의 지팡이로 보초들을 차레차레 겨누면서, “콘펀도”라고 두번 중얼거렸다. 주문에 맞은 두 명의 보초는 살짝 소스라쳤다. 하지만 청동 문 너머로 홀 안쪽을 바라보고 있던 트래버스는 눈치 채지 못했다.

헤르미온느가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를 등 뒤로 찰랑거리며 층계를 올라갔다.

“잠깐만요, 부인.”

보초가 탐지기를 치켜들며 말했다.

“방금 했잖아!”

헤르미온느가 벨라트릭스의 거만한 명령조로 말했다. 트래버스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보초는 당황했다. 그리고 가느다란 황금 탐지기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그 다음에는 동료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 동료는 약간 얼빠진 목소리로 “그래, 네가 저분들을 방금 검사했잖아, 마리우스”라고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론을 데리고 쌩하니 가버렸다. 해리와 그립훅은 보이지 않게 그들 뒤를 잰걸음으로 쫓아갔다. 문턱을 넘으며 흘끗 돌아보니, 두 마법사 모두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안쪽 문 앞에는 도깨비 두 명이 서 있었다. 그 문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엇고, 잠재적인 도둑들에게 무시무시한 응징을 경고하는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 해리는 그것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불현듯 칼날처럼 선명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평생 가장 멋진 생일이었던 열한번째 생일날, 바로 이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해그리드가 곁에 서서 말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보물을 훔치려고 하는 건 미친 짓이야.”

그날은 그린고트는 말할 수 없이 경이로운 장소, 즉 그가 전혀 알지 못했던 자기 소유의 금이 보관된 마법의 저장소로 여겨졌었다. 그리고 자신이 도둑질을 하러 이곳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단 한순간도 상상조차 못했었다......잠시 후 그들은 은행의 넓은 대리석 홀 안에 들어가 서 있었다.

긴 카운터에는 높은 의자 위에 걸터앉은 도깨비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그들은 그날의 첫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헤르미온느와 론, 트래버스는 외알 안경을 낀 채 두꺼운 금화를 살펴보고 있는 늙은 도깨비를 향해 걸어갔다. 헤르미온느는 론에게 이 홀의 특징들을 설명해 준다는 구실로 트래버스가 앞서 가도록 했다.

도깨비는 쥐고 있던 금화를 옆으로 획 던지면서, 딱히 누구에게 하는 말이라고 할 것 없이 “레프러칸(장난꾸러기 요정으로, 가짜 금을 만들어 낸다.<신비한 동물사전>참조:역주)이군”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트래버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트래버스는 조그만 황금열쇠를 건네주었고, 도깨비는 그 열쇠를 면밀히 검사하고는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

이번에는 헤르미온느가 다가갔다.

“레스트랭 부인!”

도깨비가 분명히 깜짝 놀란 어조로 말했다.

“이것 참! 무엇을.......오늘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내 금고에 들어가야겠어.”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늙은 도깨비는 약간 움찔하는 것 같았다. 해리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트래버스가 멈칫 서서 쳐다보고 있을 뿐 아니라, 몇명 다른 도깨비들 역시 일을 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헤르미온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신분증은.......가져 오셨지요?”

도깨비가 물었다.

“신분증? 난.......난 한 번도 신분증을 제시하란 요구를 들어 본 적이 없는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들은 알고 있어!”

그립훅이 해리의 귀에 속삭였다.

“침입자가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를 받은 게 분명해!”

“당신의 지팡이면 충분하겠습니다. 부인.”

도깨비가 말했다. 그리고 살짝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해리는 머리를 내려치는 듯한 깨달음의 충격과 함께, 그린고트의 도깨비들이 벨라트릭스의 지팡이가 도난당햇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지금 해, 지금 하라고.”

그립훅이 해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임페리우스 저주를!”

해리는 망토 아래에서 산사나무 지팡이를 들어 늙은 도깨비를 겨누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임페리오!” 라는 주문을 외웠다.

기묘한 자극이 해리의 팔을 타고 흘렀다. 얼얼하고 뜨거운 기운이 그의 머리에서부터 힘줄과 혈관을 타고 흘러 내려와서 그를 지팡이와, 그리고 방금 발사된 주문과 연결시키는 듯 했다. 도깨비는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를 받아 들고 자세히 검사하더니 말했다.

“아, 새 지팡이를 맞추셨군요, 레스트랭 부인!”

“뭐라고?”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건 내 거야.......”

“새 지팡이요?”

트래버스가 다시 카운터로 다가오며 말했다. 아직도 사방에서 도깨비들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어느 지팡이 제작자한테 맡기셨는지요?”

해리는 앞뒤를 따질 겨를도 없이 즉각 행동했다. 자신의 지팡이로 트래버스를 가리키며, 한 번 더 중얼거렸던 것이다.

“임페리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트래버스가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예, 아주 근사합니다. 말은 잘 듣나요? 저는 언제나 지팡이란 길을 좀 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헤르미온느는 완전히 어리둥절한 기색이었지만, 해리에게는 천만 다행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 이상한 반전을 받아들였다.

카운터 뒤에 있던 늙은 도깨비가 손뼉을 짝 치자, 좀 더 젊은 도깨비가 다가왔다.

“클랭커가 필요하네.”

늙은 도깨비가 젊은 도깨비에게 말했다. 그러자 젊은 도깨비는 잽싸게 물러가더니, 잠시 후 짤랑거리는 금속이 가득 들어 있는 것 같은 가죽 가방을 들고 돌아와 늙은 도깨비에게 건넸다.

“좋아요, 좋아! 제가 금고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레스트랭 부인.”

늙은 도깨비가 이렇게 말하며 높은 의자에서 풀쩍 뛰어내리자, 잠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도깨비는 카운터 끝을 돌아서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들 쪽으로 신나게 달려왔다. 가죽 가방 속에 든 물건은 여전히 짤랑거리고 있었다. 트래버스는 이제 입을 떡 벌린 채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게다가 론이 혼란스런 표정으로 트래버스를 빤히 바라보는 바람에 이 기묘한 현상은 더욱 이목을 끌었다.

“기다리게......보그로드!”

또 다른 도깨비가 카운터를 돌아서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저희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도깨비는 헤르미온느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부인. 하지만 레스트랭 가문의 금고에 대한 특별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도깨비는 보그로드의 귀에 대고 다급히 속삭였지만,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린 늙은 도깨비는 그를 무시했다.

“나도 그 지시를 알고 있네, 하지만 레스트랭 부인께서 자신의 금고에 들어가고 싶어 하시지 않나........아주 유서 깊은 가문이고, 오랜 고객이지.......자, 이쪽으로...”

늙은 도깨비는 여전히 쨍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홀 안으로 나가는 여러 문들 가운데 하나를 향해 서둘러 걸어갔다. 해리는 트래버스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이상하게 넋이 나간 얼굴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해리는 결단을 내리고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트래버스가 그들 쪽으로 다가오더니 얌전히 뒤를 쫓아왔다. 문 앞에 당도한 그들은 그 너머에 있는 울퉁불퉁한 돌로 된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에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큰일났군. 그들이 의심하고 있어.”

그들 뒤에서 문이 쿵 닫히는 순간, 해리가 이렇게 말하면서 투명 망토를 끌어내렸다. 그립훅은 그의 어깨에서 훌쩍 뛰어 내렸다. 트래버스와 보그로드 둘 다, 그들 가운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해리 포터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들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걸었어.”

하나같이 멍한 얼굴로 서 있는 트래버스와 보그로드를 보고 헤르미온느와 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해리가 덧붙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강력하게 걸지는 못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겠어....”

그때 또 다른 기억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처음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사용하려고 했을 때, 진짜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 그를 향해 소리를 질럿던 것이다.

“넌 그걸 정말 진심으로 해야 해, 포터!”

“우리 이제 어떻게 하지?”

론이 물었다.

“아직 할 수 있을 때, 여길 나갈까?”

“글쎄, 그럴 수만 있다면.”

헤르미온느가 중앙 홀로 들어가는 문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녀는 그 문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 계속해야 해.”

해리가 말했다.

“좋아!”

그립훅이 말했다.

“그럼, 보그로드가 궤도차를 조종하도록 해야 해. 나는 더 이상 권한이 없으니까. 하지만 저기 저 마법사가 탈 자리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해리는 지팡이로 트래버스를 가리켰다.

“임페리오!”

트래버스는 발길을 돌리더니 어두운 선로를 따라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뭘 하도록 만든 거야?”

“숨도록 했어.”

해리가 이번에는 지팡이로 보그로드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러자 보그로드는 휙 하고 휘파람을 불어 자그만 궤도차를 호출했다. 궤도차는 어둠 속에서 선로를 타고 그들 쪽으로 굴러 왔다. 그들 모두가 궤도차에 올라타고 있을 때, 해리는 등 뒤에 있는 중앙 홀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보그로드가 그립훅과 함께 앞에 탓고, 해리, 론, 헤르미온느는 뒤쪽에 함께 끼어 탔다.

갑자기 덜컹하더니 궤도차가 속력을 내며 출발했다. 그들은 벽의 틈새 속으로 버둥거리며 들어가고 있는 트래버스를 지나서 앞으로 돌진했다. 곧 궤도차는 요리조리 방향을 틀면서 미로 같은 통로를 통과하기 시작하더니 아래쪽으로 계속 내려갔다. 해리는 궤도차가 덜컹거리는 소리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의 머리칼이 뒤로 휘날렷고, 그들은 종유석들 사이를 지나 땅속으로 더욱 깊숙이 빠르게 들어갔다. 해리는 계속해서 뒤쪽을 살폇다. 그들은 차라리 엄청난 발자국들을 뒤에 남기고 오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죽음을 먹는 자들이 누가 지팡이를 훔쳐 갔는지 뻔히 알고 있는 마당에, 헤르미온느를 벨라트릭스로 변장시켜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를 들고 오게 한 것이 더욱더 어리석게 여겨졌다.......

그들은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 해리는 그린고트 안으로 이렇게 깊이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들은 속력을 내어 U자 형 커브를 돌았고, 별안간 그들 앞의 선로 위로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해리는 그립훅이 “안 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대로 그 폭포를 휙 통과했다. 해리의 눈과 입 속에 물이 가득 차서 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갑자기 궤도차가 덜컹거리더니 뒤집어졌고, 그들은 일제히 밖으로 튕겨 나갔다. 해리는 궤도차가 통로 벽에 부딪혀서 산산조각나는 소리를 들었다. 뒤이어 헤르미온느가 뭐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마치 무중력 상태에 들어간 사람처럼, 자신이 아무런 고통 없이 울퉁불퉁한 통로 바닥에 가볍게 등을 대고 떨어지는 것을 느꼇다.

“와......와충 마법이야.”

론이 일을켜 세워 주자, 헤르미온느가 푸푸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해리는 더 이상 벨라트릭스의 모습이 아닌 헤르미온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는 헐렁한 망토를 두른 채 흠뻑 젖은, 원래 모습의 헤르미온느가 서 있었다. 론 역시 다시 빨간 머리가 돌아오고 턱수염이 사라졌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고는,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다.

“도둑 방지용 폭포야!”

그립훅이 엉거주춤 일어서서, 물바다가 되어 버린 선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해리도 그제야 비로소 그 폭포가 단순한 물이 아니엇음을 깨달았다.

“그건 모든 마법을 씻어 버리지. 모든 마법적 위장을 말이야! 그들은 그린고트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 우리를 막기 위해서 방어 장치들을 작동시킨 거야!”

해리는 구슬 백이 아직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보자, 허둥지둥 겉옷 안에 손을 집어넣어 투명 망토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확인햇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때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흔들고 있는 보그로드를 보았다. 도둑 방지용 폭포가 임페리우스 저주도 제거한것 같았다.

“우리는 저자가 필요해.”

그립훅이 말햇다.

“그린고트의 도깨비 없이 금고 안에 들어갈 수는 없어. 그리고 클랭커도 필요해!”

“임페리오!”

해리가 다시 주문을 외웠다. 그의 목소리는 돌로 된 통로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는 다시 머리에서부터 지팡이로 흐르는 아찔한 통제력을 느낄 수 있엇다. 보그로드는 또다시 해리의 뜻에 따르게 되었다. 어리둥절하던 그의 표정이 정중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변했다. 론은 잽싸게 금속 연장들이 들어 잇는 가죽 가방을 낚아챘다.

“해리,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이렇게 말하더니,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로 폭포를 가리키며 외쳤다.

“프로테고!”

방패 마법이 통로로 흘러넘치는 마법의 물을 차단햇다.

“생각 잘했어.”

해리가 말했다.

“길을 인도해요, 그립훅.”

“어떻게 다시 빠져나가지?”

론이 도깨비를 쫓아 어둠 속으로 서둘러 걸어가면서 말했다. 한편 보그로드는 늙은 개처럼 헐떡거리며 뒤를 따라왔다.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자.”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를 썼다. 무언가 짤랑거리며 근처를 맴도는 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그립훅, 얼마나 멀었죠?”

“멀지 않았어, 해리 포터, 멀지 않아......”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들은 줄곧 대비해 왔던 그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자, 역시 모두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저 앞에서 거대한 용이 땅바닥에 사슬로 묶인 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네댓 개의 금고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땅 밑에 너무 오래 감금되어 있어서, 괴수의 비늘은 색이 바래고 푸석푸석해졌으며, 눈은 뿌연 빛이 감도는 핑크색이 되었다. 그리고 양쪽 뒷다리에는 묵직한 족쇄가 채워져 있엇는데, 족쇄에 달린 쇠사슬은 바닥에 깊이 박힌 거대한 말뚝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만약 그 날개를 펼친다면 방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용이 흉측한 머리통을 그들 쪽으로 돌리더니 바위가 진동 할 만큼 커다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리고 불길을 내뿜는 바람에, 그들은 통로를 거슬러 달아날 수 밖에 없엇다.

“저놈은 앞을 잘 못 봐.”

그립훅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래서인지 엄청나게 사납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저놈을 조종할 방법이 있어. 저놈은 클랭커가 다가오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배웠어, 그거 나한테 줘.”

론이 가방을 그립훅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도깨비는 수많은 작은 금속 도구들을 꺼냈는데, 그것들은 흔들면 마치 작은 망치가 모루를 내려치듯 쨍쨍 울리는 커다란 소리를 냈다. 그립훅이 그것들을 내밀자 보그로드는 자신의 크랭커를 고분고분 받아 들엇다.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그립훅이 해리, 론,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저놈은 이 소음을 들으면 그 다음에는 고통이 따라온다고 알고 있어. 그러니까 저놈이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을 때, 보그로드가 손바닥을 금고 문 위에 올려놓아야만 해.”

그들은 클랭커를 흔들며 다시 모퉁이를 돌아 나아갔다. 그 소리는 바위투성이 벽들에 메아리쳐 엄청나게 큰 소리로 증폭했다. 그 굉음에 해리는 머릿속까지 울리는 듯 했다. 용은 또 한 번 사납게 포효하더니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해리는 용이 부르르 떠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용의 얼굴에 난 잔흑한 칼자국을 보았다. 해리는 용이 클랭커 소리를 들으면 뜨겁게 달구어진 칼을 두려워하도록 길들여졌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에게 손으로 문을 누르라고 해!”

그립훅이 해리를 재촉하자, 해리는 지팡이를 다시 보그로드에게 겨누었다. 늙은 도깨비는 명령에 따라 손바닥으로 나무문을 눌렀다. 그러자 금고 문이 스르르 녹아 없어지면서 동굴 같은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황금 동전과 황금 잔, 순은 갑옷, 괴이한 생물들의 가죽(몇몇은 척추가 길었고, 다른 것들은 축 늘어진 날개가 달려 있었다.), 보석이 박힌 유리병에 담긴 마법약과 여전히 왕관을 쓰고 있는 해골등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찾아봐, 빨리!”

해리가 외치자, 그들은 모두 금고 안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갔다.

해리는 후플푸프의 잔이 어떻게 생겻는지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만약 이 금고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또 다른 정체불명의 호크룩스라면, 해리도 그것이 어떻게 생겻는지 알 길이 없었다. 미처 그가 주위를 둘러보기도 전에, 그들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문이 다시 나타나서 그들을 금고안에 가두어 버린 것이다. 그들은 완전한 어둠 속에 휩싸였다.

“상관없어, 보그로드가 우리를 내보내 줄 수 있을 거야!”

론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자, 그립훅이 타일렀다.

“지팡이를 좀 밝혀 주겠어? 그리고 서둘러! 시간이 별로 없다고!”

“루모스!”

해리는 불 밝힌 지팡이로 금고 안을 비추었다. 지팡이에서 흘러나온 빛줄기가 보석들 위에서 반짝거렸다. 해리는 가짜 그리핀도르의 칼이 높은 선반 위, 목걸이 더미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윽고 론과 헤르미온느도 각자 지팡이에 불을 밝혔다. 이제 그들은 주위에 쌓여 있는 물건 더미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해리, 이게 혹시........? 아아!”

헤르미온느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해리는 얼른 지팡이를 그녀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보석 박힌 잔 하나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잔은 바닥에 떨어져서 갈라지더니 수 많은 잔들이 수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쨍그랑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루는 사방으로 굴러가는 똑같은 잔들로 뒤덮였다. 이제 그것들 중에서 원래 잔을 구별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저 잔에 데었어!”

헤르미온느가 물집이 생긴 손가락을 빨며 신음했다.

“복제 저주와 화상 저주를 동시에 걸어 놓은 거야!”

그립훅이 말했다.

“너희가 만지는 모든 것들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동시에 복제될 거야. 복제된 것들은 아무 가치도 없지.........그러니 만약 너희가 보물에 계속 손을 댄다면, 결국 주체할 수 없이 불어난 황금의 무게에 깔려 죽고 말 것이다!”

“좋아, 아무것도 만지지 마!”

해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론이 떨어지 잔 하나를 잘못하여 발로 슬쩍 건드리고 말았다. 펑 하며 스무 개는 더 되는 잔이 늘어났고, 론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뜨거운 금속에 닿은 그의 신발은 일부가 타버렸다.

“가만히 서 있어! 움직이지 마!”

헤르미온느가 론을 꽉 붙들며 말했다.

“그냥 둘러만 봐!”

해리가 말했다.

“기억해 봐, 그 잔은 작고 황금으로 돼 있어. 오소리가 새겨져 있고, 손잡이가 둘이야......그 외에도 어딘가에 레번클로의 상징인 독수리가 있는지 살펴봐.....”

그들은 제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맴돌면서, 후미진 구석과 틈새까지 샅샅이 지팡이를 비추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번에는 해리가 이미 잔들이 쏟아져 있는 바닥 위에 다시 가짜 금화의 홍수를 일으켰다. 이제는 거의 발 디딜 틈조차 없게 되었다. 번쩍이는 황금은 열기로 더욱 달아올랐고, 금고 안은 마치 용광로 같았다. 해리의 지팡이 불빛이 천장까지 솟아 있는 선반들 위에 놓인 방패와 도깨비가 제작한 투구들을 차레차레 흝고 지나갔다. 해리는 불빛을 점점 더 높이 비추었고, 순간 어떤 물건을 발견했다. 해리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그게 저기 있어! 저기 위에 있어!”

론과 헤르미온느도 그것을 향해 지팡이를 비추었다. 조그만 황금 잔은 세 방향에서 비추는 불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원래 헬가 후플푸프의 것이었다가 훗날 헵시바 스미스의 소유가 되었고, 톰 리들이 그녀에게서 훔쳐 냈던 바로 그 잔이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수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저 위에 올라간담?”

론이 물었다.

“아씨오 잔!”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너무나 절박했던 나머지, 헤르미온느는 그립훅이 작전 기간 동안 일러 준 사실들을 까먹은 것이 분명했다.

“소용없어. 소용없다니까!”

도깨비가 호통을 쳤다.

“그럼 어떡하죠?”

해리가 도깨비에게 눈을 부릎뜨며 물었다.

“만약 칼을 원한다면 그립훅. 우리를 더 제대로 도와줘야 해요. 잠깐! 칼로는 물건을 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헤르미온느, 그거 이리 줘 봐!”

헤르미온느는 망토 안쪽을 더듬어 구슬 백을 꺼냈다. 그리고 잠시 주섬주섬 뒤적이더니, 번쩍이는 칼을 내놓았다. 해리는 루비가 박힌 칼자루를 쥐고, 칼끝으로 가까이에 있는 은제 포도주 한병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과연 그 병은 불어나지 않았다.

“내가 저 손잡이에 칼을 찔러 넣을 수만 있다면.......하지만 저 위에까지 어떻게 올라가지?”

잔이 놓여 있는 선반은 어느 누구의 손도, 심지어 가장 키가 큰 론의 손도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있었다. 마법에 걸린 보물들에게 흘러나오는 열기가 이글이글 치솟았다. 해리가 잔에 닿을 방도를 궁리하며 머리를 쥐어 짜는 동안, 땀이 해리의 얼굴과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잠시 후 그는 금고 문 저편에서 용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쩔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들은 정말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문을 통하지 않고는 이곳을 빠져나갈 길이 없었는데, 문 너머에서는 도깨비 무리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공포를 보았다.

“헤르미온느”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지자 해리가 말했다.

“난 저 위에 올라가야 해, 반드시 저걸 없애야 한다고......”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를 들더니 해리를 가리키며 속삭엿다.

“레비코푸스.”

방목을 낚아채인 듯 거꾸로 공중에 떠오른 해리가 갑옷에 부딪혔다. 그러자 하얗게 달아오른 몸뚱이 같은 가짜 갑옷들이 우르르 불어나면서 비좁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론과 헤르미온느, 그리고 두 도깨비는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며 다른 물건들 위로 쓰러졌다. 그러자 그 물건들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점점 차오르는 시뻘겋게 달궈진 보물 속에 반쯤 파묻힌 그들은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해리가 후플푸프의 잔의 손잡이에 칼을 밀어 넣었고, 칼날로 잔을 낚아챘다.

“임페르비우스!”

헤르미온느가 자신과 론, 도깨비들을 달아오른 금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곧이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처절한 비명 소리에 해리는 밑을 내려다 보았다. 론과 헤르미온느가 허리 깊이까지 보물 더미에 파묻힌 채 점점 차오르는 보물의 홍수 속으로 보그로드가 휩쓸려 가지 않도록 용을 쓰고 있었다. 한편 그립훅은 완전히 가라앉아서 긴 손가락 끝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해리는 그립훅의 손가락을 쥐고 끌어올렸다. 물집투성이가 된 도깨비가 악을 쓰며 조금씩 떠올랐다.

“리베라코푸스!”

해리가 소리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와 그립훅은 불어나는 보물의 꼭대기에 내려앉았고, 칼이 해리의 손에서 날아갔다.

“저걸 잡아!”

해리는 뜨거운 쇠붙이가 살갖에 닫는 고통과 싸우며 소리쳤다. 한편 그립훅은 점점 불어나는 뜨거운 보물들을 피하기로 작정한 듯 다시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칼이 어디 있지? 거기에 잔이 걸려 있다고!”

문 반대편에서는 쨍그렁거리는 소리가 귀가 멍멍할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저기!”

칼을 발견한 것도, 그리고 재빨리 몸을 던진 것도 바로 그립훅이었다. 그 순간 해리는 그 도깨비가 단 한번도 자신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립훅은 벌겋게 달궈진 황금의 거대한 물결 속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는 해리의 머리칼을 꽉 움켜쥔 채, 다른 한 손으로 칼자루를 붙잡았다. 그리고 해리가 잡지 못하도록 그 칼을 높이 들었다.

그 바람에 칼날에 손잡이가 걸려있던 자그만 황금 잔이 휙 하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도깨비가 여전히 어깨에 올라타고 있었지만 해리는 몸을 날려 그 잔을 잡았다. 그는 잔에 살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것을 놓지 않았다. 그동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후플푸프의 잔들이 그의 주먹 안에서 펑펑 터져 나와 비처럼 그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바로 그때 금고 문이 열렸다. 해리는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마어마하게 불어나고 잇는 뜨거운 금과 은 더미가 그와 론, 헤르미온느를 실은 채 금고 밖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해리는 온몸을 뒤덮은 화상의 통증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불어나고 잇는 보물의 물결위로 떠내려가면서도 주머니 속으로 잔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칼을 되찾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립훅은 이미 사라지고 없엇다. 그립훅은 기회가 오자마자 재빨리 해리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에워싼 도깨비들 속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숨더니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도와주세요! 도둑이야!”

그립훅은 몰려오는 무리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도깨비들은 모두 손에 단도를 들고 있었고, 그를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뜨겨운 쇠붙이 위를 미끄러지던 해리는 간신히 일어섰다. 그리고 유일한 출구가 뜷렸음을 깨달았다.

“스투페파이!”

그가 큰 소리로 외쳤고, 론과 헤르미온느도 가세했다. 빨간 광선이 도깨비 무리를 향해 발사되었다. 몇몇 도깨비가 쓰러졌지만, 나머지 도깨비들은 여전히 다가오고 있었다. 해리는 마법사 보초 여러명이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이때 사슬에 묶인 용이 으으렁거리더니, 불길이 도깨비들을 향해 세차게 뿜어 나왔다. 마법사들은 방향을 바꿔서 왔던 길로 허둥지둥 달아났다. 그때 놀라운 영감이랄까, 혹은 미친 망상이라고 할까, 어떤 생각이 해리에게 떠올랐다. 그는 야수를 바닥에 묶어 두고 있는 두꺼운 족쇄를 지팡이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레라시오!”

족쇄가 쾅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이쪽이야!”

해리가 소리쳤다. 그리고 다가오는 도깨비들에게 계속해서 기절 마법을 쏘며, 눈먼 용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해리.........해리.........무슨 짓을 하는 거야?”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일어나! 올라타, 어서.....”

용은 자신이 풀려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해리는 한쪽 발을 구부러진 용의 뒷다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용의 등 위 에 올라탔다. 용의 비늘들은 강철처럼 딱딱햇다. 그래서인지 용은 그가 올라탄 것을 느끼지도 못하는 듯 했다. 그는 한 팔을 내밀었다. 그러자 헤르미온느가 그 팔을 잡고 올라갔다. 론은 그들 뒤를 따라서 용의 등에 올라탓다. 잠시 후 용은 자신이 풀려났음을 깨달았다.

드디어 용은 포효하며 뒤다리로 번쩍 일어섰다. 해리는 뾰족한 비늘을 최대한 꽉 움켜쥐고는 무릎을 꽉 조였다. 그때 날개가 펼쳐지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도깨비들을 볼링핀처럼 쓰러트렸다. 용은 공중으로 훌쩍 솟아올랐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용의 등에 납작 달라붙었지만, 용이 열려있는 출구를 향해 뛰어들자, 천장에 닿아 몸이 긇혔다. 한편 추격하던 도깨비들이 사납게 단도를 휘둘렀지만 용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우리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이 녀석은 너무 커!”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용은 입을 쩍 벌리더니 또다시 불꽃을 내뿜어 통로를 폭파해 버렸다. 통로의 바닥과 천장이 갈라지며 무너져 내렷다. 용은 어마어마한 힘으로 길을 헤치고 나아갔다. 해리는 뜨거운 열기와 먼지를 피하기 위해 눈을 꼭 감았다. 바위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와 용이 포효하는 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해리는 행여 떨어져 나갈까 두려워하며 그저 용의 등에 바싹 달라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때 헤르미온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데포디오!”

용이 크랭커를 울리며 악을 쓰는 도깨비들로 달아나서 더욱 신선한 대기를 향해 날아오르려고 몸부림을 치는 동안, 헤르미온느는 천장에 금을 내어 용이 통로를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엇던 것이다. 해리와 론도 그녀를 따라했고, 더 많은 굴착 주문으로 천장을 산산조각냈다. 그들은 지하 호수를 통과했다. 느릿느릿 기어가며 으르렁거리는 이 거대한 짐승도 자신 앞에 기다리고 있는 드넓은 공간과 자유를 감지한 듯 했다. 그들이 지나온 통로는 휙휙 내려치는 용의 꼬리와 거대한 바위 덩어리와 집채만한 종유석 조각들로 가득찼다. 도깨비들의 쨍그랑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 멀어지는 듯 했다. 한편 앞에서는 용의 불길이 그들의 나아갈 길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마침내 그들의 주문과 용의 무지막지한 힘이 합쳐서 통로를 폭파했고, 그들은 대리석 홀로 탈출했다. 도깨비들과 마법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숨을 곳을 찾아 도망쳤다. 마침내 용은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시원한 바깥 공기를 향해서 뿔달린 머리를 돌린 용은 입구 너머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용이 날아올랐다. 여전히 등에 꼭 매달려 있는 해라와 론, 헤르미온느를 실은 채, 용은 강제로 철문들을 뜷고 지나갔다. 그리고 비틀려서 문설주에 매달린 철문들을 뒤로 한채, 기우뚱거리며 다이애건 앨리로 빠져나가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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