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장 조개껍데기 오두막집
빌과 플뢰르의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홀로 서 있었다. 그 집의 벽에는 온통 조개껍데기가 박혀 있었고, 하얗게 회칠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해리가 그 아담한 오두막집이나 정원 안의 어디를 가든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의 숨소리와도 같은, 밑물과 썰물의 끊임없는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 후로 며칠 동안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북적대는 오두막집을 빠져나와서, 얼굴에 와 닿는 시원하고 짭조름한 바람을 느끼며, 탁 트인 하늘과 넓고 텅 빈 바다가 바라보이는 절벽 위 풍경을 만끽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지팡이를 두고 볼드모트와 경쟁하지 않겠다는 어마어마한 결정이 여전히 해리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가 기억하기론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행동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이 함께 있을 때면 론은 언제나 그런 의혹을 소리 높여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덤블도어 교수님이 원하셨던게, 우리가 그 상징을 제 때 풀어서 지팡이를 찾는 거였다면 어떻게 하지?”
“만약 상징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내는 것이, 너를 성물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는’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거라면 어떻게 하지?”
“해리, 만약 그게 정말로 딱총나무 지팡이라면, 대관절 무슨 수로 우리가 그 사람을 끝장낼 수 있겠어?”
해리는 아무 해답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따금 볼드모트가 무덤을 열지 못하게 막지 않은 것이 정녕 미친 짓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가는 순간들이 있었다. 왜 자신이 그와 반대되는 결정을 내렸는지, 해리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 결정에 이르기까지 머릿속으로 벌여 온 논쟁들을 재구성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들은 그에게 더욱 설득력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묘하게도, 헤르미온느의 지지는 론의 의심만큼이나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제 딱총나무 지팡이가 정말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헤르미온느는 그 지팡이야말로 참으로 사악한 물건이며, 볼드모트가 그것을 손에 넣은 방법 또한 혐오스럽기 짝이 없다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주장했다.
“넌 결코 그런 짓을 할 수 없었어. 해리”
헤르미온느는 거듭 말했다.
“넌 덤블도어 교수님의 무덤을 침범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덤블도어의 시신에 대한 생각보다도, 어쩌면 그가 생전의 덤블도어의 의도를 오해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훨씬 더 그를 두렵게 했다. 그는 여전히 어둠 속을 더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이 길을 택했지만, 혹시 자신이 징표들을 잘못 읽은 건 아닌지, 다른 길을 택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따금 덤블도어에 대한 분노가 다시 그를 덮쳐 오곤 했다. 덤블도어가 죽기 전에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는 오두막집 아래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만큼이나 강렬했다.
“그런데 그분이 정말 돌아가신 거니?”
그들이 오두막집에 도착한 지 사흘이 지났을 때 론이 물었다. 론과 헤르미온느가 그를 찾아냈을 때, 해리는 오두막집의 정원과 절벽 사이에 세워진 담 너머를 뜷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는 또다시 논쟁을 벌일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차라리 그들이 자신을 찾지 못했으면 싶었다.
“그래, 그렇다니까, 론. 제발 그 얘기는 다시 꺼내지마!”
“몇 가지 사실을 좀 봐, 헤르미온느.”
줄곧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는 해리를 가운데 놓고 론이 말했다.
“은빛 암사슴. 그 칼. 해리가 거울에서 본 눈......”
“해리는 자기가 헛것을 본 건지도 모른다고 시인했어! 안 그래, 해리?”
“그랬을 수도 있어.”
해리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헛것을 봤다고는 생각 안 하지, 안 그래?”
론이 물었다.
“응, 생각 안 해.”
해리가 말했다.
“그거 봐!”
헤르미온느가 끼어들 틈도 없이 론이 잽싸게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가 지하실에 있다는 걸 도비가 알았는지 설명해 봐, 헤르미온느.”
“나도 몰라. 어쩌면 그분의 유령이 그랬을지도 몰라!”
“덤블도어 교수님은 유령이 되어 돌아오려고 하지는 않으셨을 거야.”
해리가 말했다. 이제는 덤블도어에 관하여 확신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교수님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셨을 거야.”
“무슨 뜻이야?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니?”
론이 물었지만, 해리가 더 말할 겨를도 없이, 그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
어느새 플뢰르가 긴 은발을 산들바람에 휘날리며 오두막집 밖으로 나와있었다.
“아리, 그립훅이 너와 이야기 하고 싶어 행, 그능 제일 작은 침실에 있엉. 누궁가 엿듣능 걸 원치 않능대.”
도깨비가 자신에게 전갈을 전하게 했다는 사실에 플뢰르는 몹시 기분이 상한 게 분명했다. 그녀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집을 향해 다시 돌아갔다.
플뢰르가 말한 대로, 그립훅은 밤에 헤르미온느와 루나가 잠을 자는, 이 오두막집의 세 침실중 가장 작은 방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빨간색 면 커튼을 당겨 구름이 떠 있는 빛나는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상쾌하고 밝은 오두막집의 다른 방과는 달리, 이 방은 타는 듯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난 결정을 내렸다. 해리 포터.”
도깨비는 낮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자신의 팔을 툭툭 두드리고 있다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린고트의 도깨비들은 이걸 근본적인 반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너를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훌륭해요!”
해리가 탄성을 질렀다. 순간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립훅, 고마워요. 우린 정말로.....”
“.......그 대신!”
도깨비가 결연하게 말했다.
“보수를 달라.”
해리가 조금 당황하여 주저하며 물었다.
“얼마를 원하시죠? 제게 금화가 있어요.”
“금화 말고.”
그립훅이 대답했다.
“나도 금은 있다.”
그의 검은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의 눈에는 휜자위라고는 전혀 없었다.
“나는 칼을 원해,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칼을.”
해리는 기가 확 꺾였다.
“그럴 수는 없어요. 죄송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곤란하군.”
도깨비가 조용히 말했다.
“다른 걸 드릴 수 있어요.”
론이 애절하게 말했다.
“장담하는데, 레스트랭 가문은 재산이 많을 거예요. 일단 금고 안에만 들어가면, 당신은 뭐든지 원하는 걸 고를 수 있어요.”
론의 말은 완전히 실수였다. 그립훅은 화가 나서 낯을 붉혔다.
“이 꼬마야. 난 도둑이 아니라고! 나는 내게 권한이 없는 보물들을 갈취하지 않아!”
“하지만 그 칼은 우리 건데.......”
“그렇지 않아.”
도깨비가 말을 막았다.
“우리는 그리핀도르 학생이고, 그건 그리핀도르의 것.......”
“그러면 그것이 그리핀도르의 것이 되기 전에는 누구의 것이었지?”
도깨비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누구 것도 아니죠.”
론이 답했다.
“그건 그리핀도르를 위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아닌가요?”
“아니야!”
도깨비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론을 가리치며, 분노로 가득 차서 호통을 쳤다.
“역시나 마법사들의 오만함이란! 그 칼은 래그눅 1세의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고드릭 그리핀도르에게 빼앗긴 것이지! 그것은 잃어버린 보물이야. 도깨비가 만든 걸작이란 말이다! 그건 원래 도깨비들 소유야! 그 칼이 나를 고용하는 대가야.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양자택일해!”
그립훅은 그들을 향해 눈을 부릅떳다. 해리는 나머지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본 후에 말했다.
“의논을 좀 해 봐야겠어요. 그립훅, 괜찮으면 우리에게 잠시 시간을 주겠어요?”
도깨비는 골이 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텅 빈 아래층 거실로 내려간 해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벽난로 쪽으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론이 말했다.
“그놈은 지금쯤 신나게 웃고 있을걸. 그 칼을 그놈에게 줘서는 안 돼.”
“그게 정말이니?”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그리핀도르가 그 칼을 훔친거야?”
“나도 모르겠어.”
헤르미온느가 낙심한 듯 말했다.
“마법의 역사는 종종 마법사들이 다른 마법 종족들에게 한 일에 대해서는 슬쩍 넘어가 버리곤 하거든. 그래도 내가 알기론 그리핀도르가 그 칼을 훔쳤다는 이야기는 없었어.”
“그건 저 도깨비들이 하는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일 거야.”
론이 말했다.
“어떻게 마법사들이 항상 그들을 기만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야. 우리는 운이 좋은 줄 알아야 해. 저 도깨비가 우리 지팡이 중 하나를 달라고 하지 않았으니.”
“도깨비들이 마법사들을 싫어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론.”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과거에 도깨비들은 끔찍한 대우를 받았거든.”
“그렇다고 도깨비들이 복슬복슬한 새끼 토끼들도 아니잖아, 안 그래?”
론이 받아쳤다.
“도깨비들은 마법사들을 많이 죽였어. 그들 역시 비열하게 싸웠다고.”
“하지만 어느 종족이 가장 비열하고 포악스러운가에 대해 그립훅과 논쟁하는 건, 그가 우리를 돕도록 만드는 데 득이 되지 않을 거야. 안 그래?”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한 다른 해결책을 생각해 내려고 애를 쓰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해리는 창문 너머로 도비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루나가 묘비 옆에 갯질경이 꽃이 담긴 잼병을 놓고 있었다.
“좋아.”
론이 말했다. 해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는 건 어때? 그립훅에게 우리가 금고 안에 들어 갈 때까지만 그 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거야. 그 다음에는 그가 가져도 된다고 하는 거지. 물론 금고 안에는 가짜가 있을 거야, 안 그래? 그럼 그것들을 바꿔치기해서 그에게 가짜 칼을 주면 되잖아.”
“론, 도깨비는 그 차이를 우리보다도 훨씬 더 잘 알아볼 수 있어!”
헤르미온느가 구박했다.
“그립훅만이 유일하게 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그래, 하지만 우리는 그가 알아채기 전에 달아날 수 있.......”
론은 자신을 바라보는 헤르미온느의 표정을 보자, 그만 주눅이 들어 말을 흐렸다.
“그건...”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비열한 짓이야. 그에게 도움을 청해 놓고서, 그를 배신하자고? 왜 도깨비들이 마법사들을 좋아하지 않는지 아직도 모르겠니, 론?”
론의 귀가 새빨게졌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었어! 그러면 네 해결책은 뭔데?”
“우리는 그에게 다른 무언가를 제시해야 해, 정확히 그 칼만큼이나 가치 있는 걸로 말이야.”
“아주 훌륭해, 내가 얼른 가서 도깨비들이 만든 다른 골동품 칼을 하나 찾아볼게. 네가 선물 포장을 하면 되겠다.”
또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설령 그들이 그립훅에게 제공할 만한, 그만큼 값진 무언가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도깨비는 그 칼이 아니면 그 무엇도 받지 않으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칼은 그들의 것이었고, 호크룩스를 없애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무기였다.
해리는 잠시 눈을 감고 바다의 거센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핀도르가 칼을 훔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쾌했다. 그는 언제나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학생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리핀도르는 머글 태생들의 영웅이었고, 순수혈통만을 사랑하는 슬리데린과 충돌했었다.........
“어쩌면 그가 거짓말하는 걸지도 몰라.”
다시 눈을 뜨며 해리가 말했다.
“그립훅 말이야. 어쩌면 그리핀도르가 칼을 훔치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 도깨비 식으로 본 역사가 반드시 옮은지 어떻게 아냐고?”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있어?”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거기에 대한 내 기분이 달라지지.”
해리가 대답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립훅에게 일단 우리가 금고 안에 들어가는 걸 도와주면, 그 다음에 그 칼을 주겠다고 말하자......하지만 정확히 언제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론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몹시 놀란 기색이었다.
“해리, 우리는 그래선 안돼......”
“그립훅은 그걸 가질 수 있어.”
해리가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걸 사용해서 모든 호크룩스를 없애고 난 다음에는 말이야. 그때가 되면 나는 틀림없이 그립훅에게 그 칼을 줄거야.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어.”
“하지만 여러 해가 걸릴지도 몰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가 반드시 그 사실을 알아야할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난 그를 정말로 속이는 건 아니라고......”
해리의 눈이 반발심과 수치심으로 가득한 헤르미온느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누멘가드로 들어가는 입구에 새겨져 있던 말을 떠올렸다. 더 커다란 선을 위하여, 그는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들에게 달리 무슨 선택이 남아 있단 말인가.
“난 그건 싫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실은 나도 싫어, 지독하게.”
해리가 수긍했다.
“난 그게 묘안인것 같아.”
론이 다시 일어서며 말했다.
“가서 그에게 얘기해 보자.”
다시 제일 작은 침실로 돌아온 해리는, 칼을 언제 주겠다고 정확한 시간을 말하지 않도록 단어 선택에 유의하면서 제안을 했다. 해리가 말하는 동안, 헤르미온느는 내내 인상을 찡그린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리는 그녀 때문에 계획이 탄로나지는 않을까 두려웠고, 그녀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립훅은 아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오직 해리만을 바라보았다.
“해리 포터, 이제 내가 자네를 도와주면 그리핀도르의 칼을 내게 주겠다고 약속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해리가 대답했다.
“그러면 악수하지.”
도깨비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해리는 악수를 했다. 그리고 저 새까만 눈이 혹시나 자신의 눈에서 어떤 불안한 기색이라도 읽어 내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립훅은 그의 손을 놓고, 손뼉을 짝 치더니 말했다.
“그럼, 시작하세!”
그것은 마법부에 침투하기 위한 계획을 다시 한 번 세우는 것과도 같았다. 그들은 제일 작은 침실에서 작업에 착수했다. 그 방은 그립훅의 취향에 맞게 어두침침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나는 레스트랭 가문의 금고에 딱 한 번 들어가 봤다.”
그립훅이 말했다.
“그 안에 가짜 칼을 넣어 두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였지. 그 금고는 가장 오래된 방 가운데 하나야. 가장 유서 깊은 마법사 가문들은 으례 그들의 보물을 제일 깊은 층에 보관해 놓지. 그곳의 금고들이 가장 크고 보안이 가장 잘 되어 있거든......”
그들은 찬장처럼 좁은 그 방 안에 한 번 들어가면 몇시간씩 쳐박혀 있곤 했다. 서서히 시간이 흘러서 몇 주가 지났다. 뛰어 넘어야 할 난관이 첩첩산중이었다. 그들이 비축해 놓은 폴리주스 마법약이 아주 많이 없어졌다는 것도 커다란 문제였다.
“이제 딱 한 명이 쓸 수 있을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
헤르미온느가 등잔불에 진흙처럼 걸쭉한 마법약을 기울여 보면서 말했다.
“그거면 충분할 거야.”
그립훅이 손으로 그린 맨 아래층 통로들의 지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던 해리가 대답했다.
이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오로지 식사 시간에만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해리는 식사 중에 종종 그들 세 사람을 바라보는 빌의 사려 깊고 걱정스런 눈길을 느끼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해리는 자신이 이 도깨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욱더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립훅은 예상외로 피에 굶주려 있었고 열등한 생물들이 고통받는다는 생각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레스트랭 가문의 금고에 들어가기 위해서 다른 마법사들을 헤쳐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해리는 나머지 두 사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굳이 그 사실을 터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립훅이 필요했던 것이다.
도깨비는 투덜대며 마지못해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심지어 다리가 다 나은 후에도 여전히 쇠약한 올리밴더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자신의 방으로 음식 쟁반을 대령하라고 요구했었는데, 결국 플뢰르의 분노가 폭발하여, 빌이 위층으로 올라가 더 이상 이런 대우는 계속해 줄 수 없다고 통보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립훅은 몹시 북적대는 식탁에 동참했다. 비록 같은 음식을 거부하고 대신에 날고기 덩어리와 풀뿌리, 다양한 종류의 버섯만을 고집하긴 했지만 말이다.
해리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꼇다. 도깨비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서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에 그를 계속 남겨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위즐리 가족이 전부 숨어 살 수 밖에 없게 된 것도, 빌, 프레드, 조지, 그리고 위즐리 씨가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도 모두 그의 탓이었다.
“미안해요.”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4월의 어느 저녁, 해리는 플뢰르의 저녁 준비를 도와주면서 말했다.
“당신이 이런 모든 일들을 감당하게 만들 의도는 젼혀 없었어요.”
플뢰르는 그레이백에게 공격을 당한 이후 피가 흐르는 고기를 좋아하게 된 빌, 그리고 그립훅을 위해서 스테이크용 고기를 썰려고 칼 몇 자루에 막 마법을 걸어 놓은 참이었다. 그녀의 등 뒤에서 칼들이 고기를 썰고 있는 동안 그녀의 다소 신경질적인 표정이 누그러졌다.
“아리, 넌 내 여동생의 생명을 구했엉. 난 잊지 않고 있엉.”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사실이 아니었지만, 해리는 가브리엘이 정말로 위험에 처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굳이 상기시키지 않기로 했다.
“아무틍.”
플뢰르가 다시 말을 이으면서 지팡이로 화덕 위에 놓인 소스 냄비를 가리키자, 즉시 냄비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올리밴더 씨능 오늘 저녁에 뮤리엘 할머니 댁으로 떠나셩. 그러명 좀 편해지겠징. 이제 도깨비능......”
도깨비 얘기를 하면서 그녀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아래층으로 옮겨 올 수 있고. 너랑 론, 딘은 저 방을 쓰면 돼.”
“우리는 거실에서 자도 상관없어요.”
해리가 얼른 대답했다. 소파에서 자라고 하면 그립훅이 기분 나빠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립훅의 비위를 계속 맞춰 주는 것은 그들의 작전에 필수적인 사항이었다.
“저희 걱정은 마세요.”
플뢰르가 반박하려고 들자. 해리는 재빨리 말을 막았다.
“우리도 머잖아 이곳을 떠날 거예요. 론이랑 헤르미온느, 저요. 우리는 더 이상 여기에 머물 필요가 없게 될 거예요.”
“도대체 무승 말이야?”
그를 향해 인상을 쓰며, 플뢰르가 물었다. 동시에 그녀의 지팡이는 공중에 떠 있는 캐서롤 그릇을 겨누고 있었다.
“절대 너희능 여기를 떠나서능 안돼. 너희능 이곳에 있어야 앙정하다고!”
이렇게 말할 때 플뢰르는 영락없는 위즐리 부인이었다. 바로 그 순간 뒷문이 열렸고, 해리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루나와 딘이 비를 맞아 머리가 흠뻑 젖은 채, 물에 떠내려 온 나무토막들을 품에 가득 안고 들어왔다.
“.........그리고 조그만 귀가 있어.”
루나가 말했다.
“약간 하마 귀같이 생겻대. 아빠 말로는 온통 자주색이고 털이 나 있지. 그리고 만약 그들을 부르고 싶으면, 넌 노래를 흥얼거려야 해. 그들은 왈츠를 좋아하지. 너무 빠르지 않은 걸로.....”
어색한 표정을 한 딘이 해리를 향해 어깨를 으쓱하고는 지나갔다. 그리고 루나의 뒤를 따라서 론과 헤르미온느가 저녁상을 차리고 있는 식당 겸 거실로 들어갔다. 플뢰르의 질문공세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은 해리는 얼른 호박 주스 병 두개를 들고 그들을 쫓아갔다.
“.......만일 네가 우리집에 놀러 오면, 그 뿔을 볼 수 있을 거야. 아빠가 편지에 그것에 대해서 쓰셨지만 난 아직 보지 못했어. 왜냐하면 죽음을 먹는 자들이 호그와트 급행열차안에서 나를 잡아가는 바람에, 난 크리스마스 때 집에 가지 못했거든.”
딘과 함게 불을 다시 지피며, 루나가 계속 얘기를 하고 있었다.
“루나, 우리가 벌써 말했잖아.”
헤르미온느가 루나에게 소리쳤다.
“그 뿔은 폭발했어. 그건 에럼펀트의 뿔이야. 크럼플 혼드 스놀캑스가 아니고......”
“아니야. 그건 분명히 스놀캑스의 뿔이었어.”
루나가 침착하게 말했다.
“아빠가 그랬어. 지금쯤이면 그건 분명 재생되었을 거야. 그것들은 자가 치유력이 있거든. 너도 알다시피.”
헤르미온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계속해서 포크를 놓았다. 그때 빌이 올리밴더를 부축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몹시 쇠약해 보이는 지팡이 제작자는 커다란 옷가방을 든 채 빌의 팔에 매달려 있었다.
“보고 싶을 거예요, 올리밴더 씨.”
루나가 노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도 보고 싶을 거다. 얘야.”
루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올리밴더가 말했다.
“그 끔찍한 곳에서 너는 내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위안이 돼 주었지.”
“그러면, au revoir(불어로 ‘또 만나요’라는 뜻:역주), 올리밴더 씨.”
그의 양쪽 뺨에 입을 맞추며 플뢰르가 말했다.
“뮤리엘 할머니에게 꾸러미를 하나 전해 주시겠어용? 그분의 티아라를 아직 못 돌려드렸거등요.”
“그거야 영광이지.”
올리밴더가 살짝 절을 하며 말했다.
“이런 융숭한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그 정도도 못할까.”
플뢰르는 낡은 벨벳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서 지팡이 제작자에게 보여 주었다. 티아라는 낮게 메달린 등잔 불 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월장석과 다이아몬드군.”
해리가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거실 안으로 살며시 들어와있던 그립훅이 말했다.
“도깨비들이 만든 것 같은데?”
“그리고 마법사들이 값을 치렀지요.”
빌이 조용히 대꾸했고, 도깨비는 도전적이면서 동시에 수상쩍은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이윽고 빌과 올리밴더가 어둠 속으로 길을 나섰다. 갑자기 오두막집 창문에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나머지 사람들은 식탁에 빽빽이 둘러앉았다. 그리고 서로 팔꿈치를 맞댄채, 옴짝달싹하기도 힘든 상태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벽난로 안에서 불꽃이 딱딱 소리를 내며 튀고 있었다. 해리는 플뢰르가 그저 음식을 깨작거리고만 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몇분마다 한 번씩 창문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다행이 그들이 첫 순서로 나온 요리를 다 마치기도 전에, 빌이 긴 머리가 바람에 헝클어진 채 돌아왓다.
“아무 문제 없었어.”
빌이 플뢰르에게 말했다.
“올리밴더 씨도 잘 도착했고, 엄마 아빠가 안부를 전하더군. 지니는 너희 모두에게 사랑한다고 전해 달라고 하더구나. 프레드와 조지는 뮤리엘 할머니의 성질을 제대로 긁어 놓고 있는 모양이야. 그 애들은 아직도 그 집 뒷방에서 부엉이 우편 주문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 그래도 할머니는 티아라를 돌려받으시더니 기운이 나시나 보더라고, 하신다는 말씀이 우리가 그걸 훔쳐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더군.”
“아이고 참 상냥하시기도 하지. 당신 할머니용.”
플뢰르가 지팡이를 휘둘러 다 비운 접시들을 공중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서 뿌루퉁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접시들을 들고 방에서 나갔다.
“우리 아빠도 티아라를 만드셨는데.”
루나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음, 사실 그건 왕관에 더 가깝긴 해.”
론은 해리에게 눈짓을 하면서 씨익 웃었다. 해리는 론이 제노필리우스를 만나러 갔을 때 보았던 그 우스꽝스러운 머리장식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잇었다.
“아빠는 사라진 래번클로의 보관을 재창조하고 계셔. 이제 그 왕관의 주요한 특징들을 대부분 똑같이 복원하셧다나 봐. 거기에 빌리위그 날개를 붙였다는 점이 아주 다르긴 하지만....”
이때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플뢰르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부엌에서 뛰어나왔다. 빌은 벌떡 일어나서 지팡이로 문을 겨누었다. 해리,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도 마찬가지였다. 그립훅은 소리 없이 식탁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누구냐?”
빌이 외쳤다.
“나요. 리무스 존 루핀!”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 사이로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공포의 전율을 느꼇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는 님파도라 통스와 결혼한 늑대인간이오. 그리고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의 비밀 파수꾼인 당신이 나에게 이곳 주소를 알려 주었고, 비상시에 오라고 명했소!”
“루핀이로군.”
빌이 중얼거리고는 재빨리 문으로 달려가 빗장을 열었다.
루핀은 문지방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여행용 망토로 몸을 감싸고 있었으며,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카락은 바람에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 루핀은 방을 둘러보며 누가 그곳에 있는지를 확인하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아들이야! 장인어른의 이름을 본따서, 우린 그 얘 이름을 테드로 정했어!”
헤르미온느가 꺅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요......? 통스가........통스가 아기를 낳앗어요?”
“그래, 그렇다니까! 아기를 낳았어!”
루핀이 외쳤다.
식탁 주위에서 기쁨의 함성과 안도의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헤르미온느와 플뢰르는 동시에 “축하해요!” 하고 소리쳤다. 한편 론은 마치 그런 얘기는 생전 처음 듣는다는 듯이, “아기라니, 세상에!”라고 중얼거렸다.
“그래......그래.......아들이야.”
루핀의 자신의 행복에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또다시 말했다. 그리고 식탁을 돌아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해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몰드 광장12번지 지하 부엌에서의 사건은 전혀 일어나지도 않았던 것만 같았다.
“대부가 되어 줄 거지?”
루핀이 해리를 놓아주며 말했다.
“제......제가요?”
해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럼. 당연히 너지. 도라도 대찬성이야. 너만 한 적임자는 없어.”
“제가.......그럼요.......세상에.....”
해리는 당황스럽고 놀란 동시에 기뻣다. 빌은 서둘러 포도주를 내왔고, 플뢰르는 루핀에게 함께 한잔하자고 권했다.
“하지만 난 오래 있을 수가 없어. 곧 돌아가야만 해.”
루핀이 모두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해리가 보았던 그 어느 때보다도 몇년은 더 젊어보였다.“
“고마워, 고맙네, 빌.”
빌은 곧 모든 사람들의 술잔을 가득 채웠고, 그들은 일어서서 잔을 높이 들었다.
“테디 리무스 루핀을 위해.”
루핀이 외쳤다.
“미래의 위대한 마법사를 위해!”
“누구를 닮았지용?”
플뢰르가 물었다.
“내가 보기엔 도라를 닮은 것 같은데, 도라는 날 닮았다고 하네. 머리털이 별로 없어. 태어났을 땐 검은색인 것 같았는데. 정말 농담이 아니라 한 시간 사이에 빨간 머리로 바뀌었어. 아마도 내가 돌아갈 때쯤엔 금발이 돼 있을 거야. 장모님 말씀으로는 통스의 머리칼도 태어난 날부터 색깔이 바뀌기 시작했대.”
루핀은 잔을 쭉 비웠다.
“오오, 그럼 더 할까? 딱 한 잔만.”
빌이 다시 잔을 가득 채우자,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바람이 오두막집을 거세게 때렷고, 벽난로 불이 갑자기 타닥거리며 타올랐다. 빌은 포도주를 한 병 더 따고 있었다. 루핀의 소식은 잠시 동안이나마 쫓기고 있는 그들의 처지로부터 벗어나서 근심을 잊도록 만들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기분을 들뜨게 했다. 오직 도깨비만이 갑작스러운 축제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했다. 잠시 후 그는 슬며시 이제 자기 혼자 차지하게 된 침실로 되돌아 갔다. 빌의 시선이 층계를 올라가는 도깨비의 뒤를 쫓고 잇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해리는 자신만이 그 사실을 알아채고 있다고 생각했다.
“안 돼.....안 돼.....정말로 돌아가야 해.”
마침내 루핀이 또다시 따라 준 포도주를 사양하며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여행용 망토를 다시 둘러쌋다.
“잘 있게. 잘 있어라. 며칠 내에 사진을 몇장 가져오도록 하지. 내가 너희를 만난 걸 알면 다들 아주 기뻐할 거야......”
루핀은 망토를 단단히 여민 후에, 여자들과는 포옹을 하고 남자들과는 악수를 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엇다. 그러고는 여전히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황량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대부라니, 해리!”
식탁 치우는 것을 돕기위해 함께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빌이 말했다.
“대단한 영예야! 축하해!”
하지만 해리가 들고 온 빈 술잔들을 내려놓자마자, 빌은 얼른 등 뒤로 문을 닫았다. 그러자 루핀이 떠난 후에도 계속 축하를 하면서 여전히 신이 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사실 단둘이 할 얘기가 있다. 이렇게 사람들로 꽉 찬 오두막집에서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어.”
빌은 망설였다.
“해리, 넌 지금 그립훅과 무언가를 계획 중이지.”
그것은 설명이었지, 질문이 아니었다. 해리는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잠자코 빌을 바라보았다.
“나는 도깨비들을 잘 안다.”
빌이 말했다.
“난 호그와트를 떠난 이래로 쭉 그린고트에서 일해 왔어. 만약 마법사와 도깨비 사이에 우정이 존재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도깨비 친구들이 있는 셈이지. 아니 적어도 잘 아는 도깨비들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빌은 또다시 망설였다.
“해리, 네가 그립훅에게 바라는 게 뭐니? 그리고 대가로 그에게 무얼 약속했니?”
“말할 수 없어요.”
해리가 말했다.
“미안해요, 빌.”
그때 부엌문이 그들 뒤에서 열렸다. 플뢰르가 남아 있던 빈잔들을 가지고 들어오려 했다.
“잠깐만 기다려 줘.”
빌이 그녀에게 부탁했다.
플뢰르가 물러나자 그는 문을 다시 닫았다.
“그러면 내가 이 말은 꼭 해야겠다.”
빌이 계속 말을 이었다.
“네가 그립훅과 어떤 협상을 맺든, 그중에서도 특히 보물에 관해 협상할 때에는 아주 조심해야 해. 소유권, 지불, 상환에 대한 도깨비들의 관념의 인간 사회의 것과 같지 않다.”
해리는 마치 실뱀이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약간 거북하게 매슥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뜻이죠?”
해리가 물었다.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종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거란다.”
빌이 대답했다.
“마법사와 도깨비 사이의 거래는 지난 수 세기 동안 난처한 문제였지......하지만 그런 건 전부 마법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을 거야. 양편 모두에게 잘못이 있어. 나는 결코 마법사들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어떤 도깨비들 사이에는, 황금과 보물 문제에 있어서는 마법사들을 절대 믿을 수 없으며, 마법사들은 도깨비들의 소유권을 존중하지 않는 다는 믿음이 존재한단다. 특히 그린고트에 있는 도깨비들에게 그런 경향이 강하지.”
“하지만 전 존중....”
해리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빌이 고개를 저었다.
“넌 이해하지 못해, 해리. 도깨비들과 생활해 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도깨비에게 있어서, 어떤 물건의 정당하고 참된 주인은 그것을 산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도깨비들의 눈에는 도깨비가 만든 모든 물건은 당연히 그들의 것이야.”
“하지만 만약 그게 팔릴 경우에는.....”
“.........그때는 그 물건이 돈을 지불한 사람에게 잠시 대여된 거라고 생각하지. 그들은 도깨비들이 만든 물건이 마법사에게서 마법사에게로 전해진다는 생각 자체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해. 티아라가 그립훅의 눈앞에서 전달될 때, 너도 그의 얼굴을 보았지? 그는 그것을 옮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야. 도깨비 종족 중에서도 가장 과격한 부류가 그렇게 생각하듯이, 그립훅 역시 최초의 구매자가 죽으면 그 물건은 도깨비들에게 반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해. 그들은 도깨비가 만든 물건들을 돈을 더 내지 않고서 마법사들 사이에서 물려주거나 간직하는 우리의 관습을 도둑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단다.”
이제 해리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웬지 빌이 그가 말하고 잇는 것보다 더 많은 사실들을 짐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웟다.
“내가 하려는 얘기는....”
빌이 거실로 들어가는 문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도깨비들에게 무슨 약속을 할 때에는 아주 신중해야 한다는 거란다, 해리. 도깨비에게 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그린고트에 침입하는 것보다 더욱 위험할지도 모른다.”
“알았어요.”
빌이 문을 열자, 해리가 말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꼭 명심할게요.”
빌의 뒤를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잇는 자리로 돌아갔을 때, 문득 해리의 머릿속에 삐딱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마신 포도주 탓인 게 분명했다. 웬지 시리우스 블랙이 그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이, 자신 역시 테디 루핀의 무모한 대부가 되는 노정에 오른 것만 같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