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장 (181/194)

제 24장 지팡이 제작자

그것은 마치 오랜 악몽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순간 해리는 또다시 호그와트의 가장 높은 탑 밑에 놓인 덤블도어의 시신 옆에 무릎을 끓고 주저앉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벨라트릭스의 은 단도에 찔려서 풀밭에 웅크리고 쓰러져 있는 조그만 몸뚱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집요정이 두 번 다시 불러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여전히 “도비.....도비........”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잇엇다.

이윽고 해리는 결국 그들이 목적지에 제대로 왓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빌과 플뢰르, 딘과 루나가 집요정 옆에 무릎을 끓고 있는 그를 빙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헤르미온느?”

해리가 갑자기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어디 있지?”

“론이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어, 헤르미온느는 괜찮아.”

빌이 대답했다.

해리는 다시 도비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한 손을 뻗어서 집요정의 몸에 박힌 날카로운 칼을 뽑았다. 그런 다음 겉옷을 벗어서 담요처럼 도비를 덮어주었다.

근처 어디선가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딪히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의논을 하며 결정을 내리는 동안, 해리는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해리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딘이 부상당한 그립훅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플뢰르는 그들을 황급히 따라갔다. 빌은 집요정을 땅에 묻어 주자는 제안을 하고 있었다. 해리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동의했다. 그러면서 조그만 몸뚱이를 내려다 보았다. 순간 흉터가 쿡쿡 쑤시면서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머릿속 한편에서 마치 긴 망원경을 거꾸로 들여다보듯이, 볼드모트가 말포이 저택에 남겨진 자들을 징벌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볼드모트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도비에 대한 해리의 비통한 마음은 그 분노조차 압도하는 듯 했다. 그것은 광대하고 고요한 바다를 지나서 비로소 해리에게 도달한, 머나먼 곳에서 부는 폭풍우 같았다.

“난 제대로 해 주고 싶어요.”

해리가 완전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서 한 말은 이게 처음이었다.

“마법을 쓰지 않고요, 혹시 여기 삽이 있나요?”

잠시 후에 해리는 빌이 지정해 준 대로, 정원의 제알 가장자리 덤불 사이에 혼자서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그는 분노를 가슴에 담은 채, 몸의 움직임을 음미하며 묵묵히 땅을 팠다. 마법을 쓰지 않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떨어지는 땀방울 하나하나가, 손에 잡히는 물집 하나하나가 그들의 목숨을 구해 준 집요정에게 바치는 선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마의 흉터가 확확 타올랏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통증을 지배했다. 통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자신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마침내 볼드모트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차단하는 법을, 통제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해리가 스네이프로부터 배우기를, 덤블도어가 원했던 바로 그것을. 마치 시리우스의 죽음으로 완전히 슬픔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볼드모트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던 것처럼, 도비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있는 지금은 그자의 생각이 해리의 머릿속에 침투할 수가 없었다. 슬픔이 볼드모트를 몰아낸 것이다..........물론 덤블도어라면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말햇을 것이다......

해리는 흉터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한 채, 흐르는 땀에 슬픈 마음을 담으며 꽁꽁 얼어붙은 땅을 점점 더 깊이 파 내려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자신의 숨소리만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말포이 저택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가 들었던 말들도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서서히 펼쳐졌다.

규칙적인 팔의 흔들림에 맞추어 그의 생각도 움직였다. 성물.........호크룩스.........성물.........호크룩스.........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그 기괴한 갈망에 불타오르지 않앗다. 상실감과 두려움이 그것을 꺼 버린 것이다. 그는 마치 뺨을 한대 찰싹 얻어맞고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해리는 점점 더 깊이 무덤을 파 내려갔다. 그는 오늘 밤 볼드모트가 어디 있엇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자가 누멘가드의 제일 높은 감옥에서 누굴 죽였는지, 그리고 왜 죽였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웜테일을 생각했다.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베푼, 단 한 번의 아주 작은 자비심 때문에 목숨을 잃은.........덤블도어는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을 알고 있었을까?

해리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만 론과 딘이 그를 다시 찾아왔을때, 어둠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렷을 뿐이었다.

“헤르미온느는 어때?”

“훨씬 나아졌어. 플뢰르가 간호를 해주고 있어.”

해리는 그들이 간단하게 지팡이를 휘둘러서 완변한 무덤을 만들 수 잇는데 왜 이러고 있느냐고 물어 오면, 퉁명스럽게 쏘아붙여 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은 각자 삽을 들고 대뜸 그가 파 놓은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충분한 깊이가 될때까지 묵묵히 작업을 함께 했다.

해리는 겉옷으로 집요정을 좀 더 포근하게 싸 주었다. 론은 무덤 가장자리에 앉아서 신발과 양말을 벗더니 집요정의 맨발에 신겨 주었다. 딘은 양털 모자를 내놓았다. 해리는 그 모자를 도비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씌워 주고 박쥐 같은 두 귀를 덮어 주었다.

“눈을 감겨 줘야지.”

해리는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빌은 여행용 망토를 걸치고 있었고, 플뢰르는 하얗고 커다란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앞치마 호주머니 밖으로 병이 하나 비죽 튀어나와 있었는데, 해리는 그것이 스켈레 그로라는 걸 알아차렸다. 한편 창백한 얼굴의 헤르미온느는 빌려 입은 실내가운으로 몸을 감싼 채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론이 한 팔로 어깨를 감싸 주었다. 플뢰르의 외투 하나를 대충 걸친 루나는 몸을 웅크리고 앉더니, 집요정의 양쪽 눈꺼플 위에 살짝 손가락을 올려놓앗다. 유리처럼 반들거리는 집요정의 눈동자 위로 스르르 눈꺼플이 감겼다.

“자, 이제 편히 잠들 수 있을 거야.”

루나가 조용히 말했다.

해리는 집요정을 무덤 속에 넣고 가느다란 팔다리를 편안한 자세로 놓아 주었다. 그리고 다시 무덤 밖으로 기어 나와서, 마지막으로 그 조그만 몽뚱이를 내려다보았다. 문득 황금 의자가 몇 줄씩 늘어서고 제일 앞자리에는 마법부 장관이 앉아 있고 덤블도어의 업적을 찬양하는 추도문과 웅장한 하얀 대리석 무덤이 있었던 덤블도어의 장례식 장면을 떠올리며, 해리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도비야말로 그런 장엄한 장례식을 치를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여기 덤불 사이에 대충 파 놓은 구덩이 속에 누워 있는 것이다.

“뭔가 한마디씩 해야 할 것 같아. 내가 먼저 할까?”

루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리자, 루나는 무덤 바닥에 누워있는 죽은 집요정에게 추모의 말을 건넸다.

“그 지하실에서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도비. 그토록 착하고 용감한 네가 목숨을 잃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야. 네가 우리를 위해 해 준 일들을 언제까지나 기억할거야. 이젠 부디 행복하게 잠들기를 빌어.”

루나는 고개를 돌려, 다음 말을 기대하며 론을 쳐다보았다. 론은 목청을 가다듬더니, 잔뜩 목이 메어 중얼거렸다.

“그래........고마워, 도비.”

“고마워.”

딘도 중얼거렸다.

해리는 침울 꿀꺽 삼켰다.

“잘 가, 도비”

해리는 단지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루나가 그를 대신해서 할 말을 모두 해 주었다. 빌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무덤가에 쌓여 있던 흙더미가 스르르 떠오르더니 무덤 위에 살짝 내려앉았다. 그리고 작고 붉은 봉분이 만들어졌다.

“잠깐 나 좀 여기 있다 가면 안 될까?”

해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그들은 몇 마디 말을 중얼거렸지만, 해리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등을 부드럽게 탁탁 두드리는 손길들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모두 천천히 오두막집으로 돌아갔고, 해리 혼자 집요정 곁에 남았다.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도에 씻겨 매끈매끈해진 크고 흰 돌들이 꽃밭의 가장자리를 이루고 잇었다. 해리는 그중에서 가장 큰 돌을 하나 집어다가 도비의 머리가 놓여 있는 자리에 배개처럼 올려놓았다. 그리고 지팡이를 찾으려고 호주머니 속을 뒤졌다.

호주머니 속에는 모두 두 개의 지팡이가 있었다. 해리는 이게 어디서 났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 지팡이가 누구 것인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다만 누군가의 손에서 그 지팡이들을 빼앗은 기억만 어렴풋이 나는 것 같았다. 해리는 그중에서 손에 잡히는 느낌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짧은 지팡이를 골랐다. 그리고 그 지팡이로 돌을 겨냥했다.

그가 중얼거리는 주문에 따라서, 돌 표면에 깊이 새긴 자국이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라면 훨씬 더 깔끔하게, 그리고 아마 좀 더 빨리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란걸 해리도 알고 있엇다. 하지만 그는 손수 무덤을 파고 싶어 했던 것처럼, 묘비도 자신이 새기고 싶었다. 해라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때, 돌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 자유로운 집요정 도비가 잠들다.

해리는 잠깐 동안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본 후에, 발길을 옮겼다. 흉터는 아직까지 약간씩 쑤시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무덤을 파면서 떠올랐던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끔찍한 생각들로.

그가 작은 현관 복도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모두 거실에 앉아 잇었다. 그들의 시선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 빌에게 쏠려 있었다. 환한 색깔의 거실은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벽난로에서는 바닷가에 흘러온 나무토막들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해리는 카펫에 진흙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문가에 가만히 서서 듣기만 했다.

“......다행히 그때 지니는 방학 중이었어. 만약 호그와트에 있었다면, 우리가 지니를 찾기 전에 그자들이 먼저 데려가 버렸을 거야. 하지만 이제 지니도 안전해.”

주위를 둘러보면 빌은 문가에 서 있는 해리를 발견했다.

“나는 식구들을 모두 버로우 밖으로 피신시키고 있는 중이었어.”

빌이 설명했다.

“식구들은 뮤리엘 할머니 댁으로 옮겼어. 이젠 죽음을 먹는 자들도 론이 나와 함께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우리 가족을 노릴거야, 하지만 미안해하지는 마.”

빌이 해리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황급히 덧붙였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단지 시간문제였으니까. 아버지는 몇 달 동안 줄곧 그런 말씀을 해 오셨어. 우린 가장 악명 높은 동족의 배신자 가족이잖아.”

“그럼, 그들은 어떻게 보호를 받죠?”

해리가 물었다.

“피델리우스 마법이야. 아빠가 비밀 파수꾼이지. 이 오두막집에도 똑같은 마법을 걸어 놓았어. 이곳은 내가 비밀 파수꾼이야. 우리 가족은 아무도 직장에 나갈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일단 올리밴더 씨와 그립훅이 어느정도 회복되면, 우리는 그들도 뮤리엘 할머니 댁으로 옮길 생각이야. 여긴 방이 몇개 없지만, 할머니 댁에는 많거든, 그립훅의 다리는 낫는 중이야. 플뢰르가 그에게 스켈레 그로를 주었거든. 아마 한시간 이내에 그들을 이동시킬 수 있을 거야.”

“안 돼요.”

해리가 반대하자, 빌은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둘 다 여기 있어야 해요. 그들에게 할 말이 있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해리는 자신의 목소리에서 권위를 느꼇다. 도비의 무덤을 파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목표에 대한 확신과 직감이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는 씻으러 갈게요.”

해리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빌에게 말했다. 그의 손은 아직도 도비의 피와 진흙으로 범벅이었다.

“그런 다음에 곧장 그들을 만나 봐야겠어요.”

해리는 작은 부엌으로 걸어갔다. 세면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문 밑에 있었다. 연한 황금빛과 분홍빛으로 물든 수평선 위로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해리가 손을 씻고 있을 때, 도다시 어두운 정원에서 떠올랐던 생각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도비는 자신을 그 지하실로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결코 말해 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는 자신이 무었을 보았는지 알고 있었다. 마음을 꿰뜷는 듯한 푸른 눈 하나가 부서진 거울 조각 안에서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후에 도움이 찾아왔다. 호그와트에서는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도움을 받을 것이다.

해리는 손을 닦았다. 창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도, 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수근거리는 소리도 전혀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해리는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바로 이 새벽에, 모든 사건의 핵심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흉터는 쑤시고 아팠다. 해리는 볼드모트 역시 핵심에 다가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리는 이해했지만, 또한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본능은 이것을 이야기하는데, 그의 머리는 또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의 머릿속에서는 덤블도어가 마치 기도를 하듯이 합장한 손가락 너머로 해리를 유심히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잇었다.

당신은 론에게 딜루미네이터를 주셧습니다. 그를 잘 알고 계셨죠.....그래서 그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주셨던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웜테일 역시 잘 알고 계셨죠......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 약간의 후회가 남아 있다는 걸 알고 계셨던 겁니다........

만약 그 두 사람에 대해 그토록 잘 알고 계셨다면......그럼 저에 대해서는 뭘 알고 계셧나요, 덤블도어 교수님?

저는 뭔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야만 하는 건가요? 제가 얼마나 힘들게 그걸 알아낼지 당신은 아셧나요? 그 때문에 당신은 이 일을 이토록 어렵게 만들어 놓으신 건가요? 제가 그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리도록?

해리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눈부신 태양의 환한 황금빛 테두리가 수평선 위로 서서히 떠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는 깨끗해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손에 들고 있는 수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해리는 그것을 내려놓고 다시 현관 복도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흉터가 성이 나서 고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면을 스치는 잠자리의 그림자처럼 재빠르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그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건물의 윤곽이었다.

빌과 플뢰르가 계단 발치에 서 있었다.

“저는 그립훅과 올리밴더 씨와 이야기를 해야해요”

해리가 말했다.

“안 돼.”

플뢰르가 입을 열었다.

“너능 기다려야 해. 아리. 두사람 다 아프고 피곤해.”

“미안해요.”

해리가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기다릴 수가 없어요. 지금 당장 그들과 이야기를 해야만 해요. 개인적으로, 따로따로 말이죠. 아주 급한 일이에요.”

“해리,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니?”

빌이 따져 물었다.

“넌 별안간 죽은 집요정과 반쯤 의식을 잃은 도깨비를 데리고 나타나질 않나, 헤르미온느는 마치 고문이라도 당한 꼴이고, 론 녀서근 나에게 단 한마디도 하질 않으려고 하니.....”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형에게 말해 줄 수가 없어요.”

해리가 딱 잘라 말했다.

“형은 기사단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덤블도어 교수님이 우리에게 임무를 남기셨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린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플뢰르가 짜증스러운 듯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하지만 빌은 그녀를 무시한 채, 해리만 뜷어지라 쳐다보았다. 깊은 흉터로 일그러진 빌의 얼굴은 표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빌이 입을 열엇다.

“좋아, 누구랑 먼저 이야기 하고 싶니?”

해리는 잠시 망설였다. 모든 게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 호크룩스냐 성물이냐?

“그립훅이요.”

해리가 말했다.

“그립훅과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요.”

마치 전력질주하다가 방금 커다란 장애물을 뛰어넘은 사람처럼 그의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그럼 위로 올라가자.”

빌이 앞장을 서며 말했다.

해리는 몇 계단을 올라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너희 둘도 함께 가야 해!”

해리는 거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반쯤 몹을 숨긴 채 잠복해 있던 론과 헤르미온느를 불렀다.

두 사람 모두 묘하게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불빛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몸은 좀 어때?”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물엇다.

“너 정말 굉장했어. 그 여자가 널 그렇게 고문하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니......”

헤르미온느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고, 론은 한 팔로 그녀를 꼭 껴안았다.

“이제 뭘 할 건데, 해리?”

론이 물었다.

“곧 알게 될 거야. 어서 와”

해리와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빌의 뒤를 따라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 작은 층계참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문 세 개가 줄지어 나 잇었다.

“이 방이야.”

빌이 그들 부부의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며 말했다. 이 방 역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는데, 지금은 일출 때문에 황금빛 점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해리는 창가로 걸어가서 이 멋진 풍경을 등지고 돌아섰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흉터의 통증을 느끼며 기다렸다. 헤르미온느는 화장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고, 론은 그 의자의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빌이 왜소한 도깨비를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침대위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그립훅은 거친 목소리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윽고 빌이 그들만 남겨 둔 채 방문을 닫고 가버렸다.

“누워 있는데 나오게 해서 미안해요.”

해리가 인사를 건넸다.

“다리는 좀 어떤가요?”

“아파, 하지만 낫는 중이야.”

도깨비가 대답했다. 그는 아직도 그리핀도르의 칼을 꼭 움켜쥔 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적대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끌리는 듯 했다. 해리는 누르스름한 도깨비의 피부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새까만 눈동자를 유심히 보았다. 플뢰르가 도깨비의 신발을 벗겨 주었었는데, 그의 긴 발은 더러웠다. 집요정보다는 덩치가 컷지만, 그렇다고 썩 큰 편은 아니었다. 반면 둥근 머리는 인간보다 훨씬 더 컸다.

“당신은 아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해리가 말을 꺼냈다.

“너에게 네 금고를 보여 준 도깨비가 바로 나였다고? 네가 그린고트를 난생처음 방문 했을 때 말이야.”

그립훅이 얼른 말을 가로챘다.

“난 기억하고 있다. 해리 포터. 도깨비들 사이에서도 넌 아주 유명하니까.”

해리와 도깨비는 상대방을 살피며 서로 마주 보았다. 해리의 흉터는 아직도 쿡쿡 쑤시고 있었다. 해리는 그립훅과의 만남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실수활까 봐 두렵기도 했다. 해리가 어떤 식으로 부탁하는게 가장 좋을까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 도깨비가 먼저 침묵을 깼다.

“집요정을 땅에 묻어 주더군.”

도깨비가 뜻밖에도 원한에 사무친 목소리로 말했다.

“옆방 침실의 창문을 통해서 널 봤지.”

“그래요.”

해리가 말했다.

그립훅은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까만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넌 아주 이상한 마법사다. 해리 포터.”

“어떤 점에서요?”

해리가 무심결에 흉터를 문지르며 물었다.

“넌 무덤을 팠어.”

“그래서요?”

그립훅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해리가 머글처럼 행동했다고 비웃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립훅이 도비의 무덤을 인정하고 안하고는, 그에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해리는 공격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립훅, 부탁할 게 있는데요.”

“그리고 넌 도깨비도 구했어.”

“뭐라고요?”

“날 여기로 데려왔잖아. 내 목숨을 구했어.”

“그래서 설마 기분이 나쁜 건 아니죠?”

해리가 약간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니다. 해리 포터.”

그립훅은 한 손가락으로 턱 밑에 난 가느다란 검은 수염을 비비 꼬며 말했다.

“하지만 넌 아주 이상한 마법사다.”

“맞아요.”

해리가 말했다.

“어쨌든 난 도움이 좀 필요해요. 그립훅, 당신이 나를 도와줄 수 있어요.”

도깨비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런 사람은 생전 처음 보았다는 듯이,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계속 해리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린고트 금고에 들어가야만 해요.”

해리는 이렇게 다짜고짜 말을 꺼낼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번개 모양의 흉터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면서 또다시 호그와트의 형상이 눈앞을 스치는 순간, 그 말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해리는 머릿속을 단단히 차단시켜 버렸다. 먼저 그립훅과 거래를 해야만 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미친 사람 보듯 해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지만, 그립훅이 말을 가로막았다.

“그린고트 금고에 들어가겠다고?”

도깨비가 물었다. 그리고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침대 위에서 몸의 위치를 바꿔 앉았다.

“그건 불가능해.”

“아니, 그렇지 않아요. 벌써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론이 반박하고 나섰다.

“맞아요.”

해리도 말했다.

“그립훅,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던 바로 그날이엇죠. 7년전 제 생일날 말이에요.”

“그때 문제의 금고는 비어 있었어.”

도깨비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해리는 비록 그립훅이 그린고트를 떠나긴 했지만, 은행의 보안이 깨질 수 있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보안이 극히 취약했던 거야.”

“우리가 들어가야만 하는 금고는 빈게 아니에요, 그리고 아마 보안도 꽤 철저할 것 같고요. 그 금고는 레스트랭 가문의 것이거든요.”

해리가 말했다.

헤르미온느와 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일단 그립훅의 대답을 듣고 난 다음에 설명을 해 줄 시간은 충분했다.

“꿈도 꾸지마.”

그립훅이 딱 잘라 말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 만일 우리의 마룻바닥 밑에서 결코 당신의 것이 아닌 보물을 찾게 된다면........”

“도둑이여, 경고하노니, 주의하시오......네, 나도 알아요. 기억하고 있죠.”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난 보물을 노리는게 아니에요.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 뭔가 훔치려는게 아니라고요. 내 말 믿을 수 있겠어요?”

도깨비가 삐딱하게 해리를 쳐다보았다.

이마에 난 번개 모양 흉터가 쿡쿡 쑤셨지만, 해리는 무시했다. 그리고 그 통증이나, 통증의 유혹을 인정하길 거부했다.

“만약 개인적인 이익을 쫓지 않는 사람이라고 내가 믿을 수 잇는 마법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너일 거다, 해리 포터.”

그립훅이 마침내 말했다.

“도깨비와 요정들은 네가 오늘 밤에 보여 준 것과 같은, 그런 존중과 보호에는 익숙하지 않아. 지팡이 소지자들로부터 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

“지팡이 소지자라고요?”

해리가 그의 말을 되풀이 했다. 상처가 찌르는 듯이 아파 오면서 볼드모트가 그의 생각을 북쪽으로 돌려 놓는 순간, 그리고 해리가 옆방에 잇는 올리밴더에게 질문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순간, 그 말이 묘하게도 그의 귓가에 와 닿았던 것이다.

“지팡이를 가지고 다닐 권리는 오랫동안 마법사들과 도깨비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켜 왔다.”

도깨비가 조용히 말했다.

“도깨비들은 지팡이가 없어도 마법을 쓸 수 있잖아요.”

론이 말했다.

“그건 하찮은 거야! 마법사들은 다른 마법 생물들과 지팡이학의 비밀을 공유하지 않으려고 한단 말이다! 우리 도깨비들이 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막는 거지!”

“글쎄요, 도깨비들도 자신들의 마법을 절대 알려 주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론이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칼이나 무기 제조법을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아요. 도깨비들은 마법사들이 절대 모르는 금속 제련법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야 아니야.”

해리는 그립훅의 얼굴이 점점 더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걸 보고 재빨리 론의 말을 가로막앗다.

“이건 마법사 대 도깨비나 혹은 다른 어떤 마법 생물들의 싸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립훅이 심술굿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렇지 않아. 이건 바로 그 문제야! 어둠의 마왕이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자, 너희 마법사들은 우리 동족들을 훨씬 더 혹독하게 지배하고 있어! 그린고트는 마법사들의 손아귀로 넘어가고 집요정들은 살육을 당하고 있지. 그렇지만 지팡이 소지자들 중 누구 하나 반대하고 나서는 사람이 있나?”

“우리들이요!”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그녀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다.

“우리들이 반대해요! 게다가 저 역시 그 어떤 도깨비나 집요정 못지않게 쫓기는 몸이라고요, 그립훅! 나는 잡종이거든요!”

“자신을 그런 식으로 부르지마.”

론이 투덜거렸다.

“왜 그렇게 부르면 안돼는데?”

헤르미온느가 따져 물었다.

“잡종이라는게 나는 자랑스러워! 그립훅, 이 새로운 질서 아래에서 나는 당신보다 나을 게 전혀 없어요! 말포이 저택에서 그자들이 고문 상대로 고른 것도 바로 나였다고요!”

헤르미온느는 이렇게 말하면서, 실내 가운의 옷깃을 옆으로 젓혔다. 그러자 목에 벨라트릭스가 남긴 가느다란 칼자국이 빨갛게 드러났다.

“도비를 해방시킨 사람이 바로 해리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나요?”

헤르미온느가 마구 쏘아댔다.

“우리가 지난 몇 년 동안 집요정을 해방시키고 싶어 했다는 걸 당신이 아느냐고요!”

이 말에 론은 마음이 불편한 듯 헤르미온느의 의자 팔걸이 위에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립훅, 당신도 우리만큼 그 사람을 무찌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거예요!”

도깨비는 해리를 볼 때 만큼이나 신기한 눈으로 헤르미온느를 빤히 쳐다보았다.

“레스트랭 가문의 금고 안에서 네가 찾는 게 뭐냐?”

도깨비가 불쑥 물었다.

“그 안에 있는 칼은 가짜다. 이게 진짜야.”

도깨비는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너희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잇는 모양이군. 그래서 거기서 나에게 거짓말을 해 달라고 부탁했던 거야.”

“하지만 그 금고 안에는 가짜 칼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해리가 물었다.

“혹시 거기서 다른 것들도 보지 않았나요?”

해리의 심장이 전보다도 휠씬 빨리 뛰기 시작했다. 해리는 흉터의 통증을 무시하기 위해서 두 배는 더 애를 써야 했다.

도깨비가 또다시 손가락으로 수염을 비비 꼬기 시작했다.

“그린고트의 비밀을 말하는 것은 우리 도깨비들의 규범에 어긋나는 짓이야. 우린 전설적인 보물들의 수호자란 말이야. 그러니 우리의 보호 아래 있는 물건들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그리고 종종 그 물건들은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기도 하지.”

도깨비가 칼을 어루만졌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또다시 해리와 헤르미온느, 그리고 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너무 어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많은 상대와 싸우기에는.”

“우리를 도와줄 건가요?”

해리가 말했다.

“도깨비의 도움 없이 금고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해요. 당신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에요.”

“어디........한번 생각은 해 보지.”

그립훅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론이 발끈해서 입을 여는 순간, 헤르미온느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고맙습니다.”

해리가 말했다.

도깨비는 답례로 커다랗고 동그란 머리를 끄덕이더니, 짧은 다리를 구부렸다. 그리고 빌과 플뢰르의 침대 위에 여봐란듯이 당당하게 드러누우며 말했다.

“그런데 스켈레 그로가 이제 제 일을 다 한 것 같군, 드디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미안하지만.....”

“네, 알겠어요.”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방을 나오기 전에 그는 허리를 앞으로 숙여서 도깨비 옆에 있던 그리핀도르의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립훅은 항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해리는 방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도깨비의 눈에서 원한의 눈빛을 본 것 같았다.

“쥐새끼 같은놈.”

론이 속삭였다.

“저놈은 계속 우리가 매달리는 걸 즐기고 있어.”

“해리.”

헤르미온느가 두 사람을 문가에서부터 여전히 어두운 층계참 한가운데로 끌어내며 속삭였다.

“네가 한 말이 내가 생각하는 바로 그거니? 레스트랭 가문의 금고에 호크룩스가 있다는 말이야?”

“그래.”

해리가 대답했다.

“벨라트릭스는 우리가 거기에 갔다 온 줄 알았을때, 완전히 겁에 질렸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왜 그랬겠어? 우리가 뭘 보았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가져갔을 거리고 그 여자가 생각할 만한 물건이 또 뭐가 있겠니? 그 사람이 알게 될까봐 그 여자가 망연자실한 게 뭘까?”

“하지만 우린 그 사람이 한때 있었던 장소들을 찾아보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자가 뭔가 중요한 일을 했던 곳 말이야.”

론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레스트랭의 금고 안에도 들어간 적이 있을까?”

“그자가 그린고트에 들어간 적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몰라.”

해리가 말했다.

“어린 시절에 그 사람은 금이라곤 전혀 갖지 못했어. 아무도 그에게 물려준 게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바깥에서 그린고트를 본 적은 있었겠지. 다이애건 앨리에 처음 갔을 때 말이야.”

흉터가 계속 욱신욱신 쑤셨지만 해리는 무시했다. 올리밴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론과 헤르미온느가 그린고트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길 바랐던 것이다.

“내 생각에 그자는 그린고트 금고의 열쇠를 가진 사람들을 무척 부러워했을 것 같아. 그거야말로 마법사 세계에 속해 있다는 진정한 상징처럼 보였겠지. 게다가 이 점도 잊어서는 안돼. 그자는 벨라트릭스와 그녀의 남편을 무척 신뢰했어. 그들은 그가 몰락하기 전에도 가장 헌신적인 종이었고, 그가 종적을 감춘 후에도 줄곧 그를 찾아다닌 사람들이야. 그자가 부활했던 그날 밤에, 나는 그자가 하는 말을 직접들었어.”

해리가 흉터를 어루만졌다.

“하지만 벨라트릭스에게 그게 호크룩스란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야. 루시우스 말포이에게도 그 일기장의 진실을 절대 말하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대단히 소중한 보물이니까 그녀의 금고 안에 잘 넣어 두라고 말했을 테지. 뭔가를 감추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해그리드가 나에게 말해줬어..........호그와트를 제외하면 말이지.”

해리가 말을 끝내자, 론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넌 진짜로 그자를 파악하고 있구나.”

“그자의 일부만.”

해리가 말했다.

“아주 일부분이지........내가 덤블도어 교수님을 그만큼이라도 잘 이해하고 잇다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어디 두고 보자고. 자, 이제 올리밴더 씨에게 가자.”

론과 헤르미온느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감탄하는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서 작은 층계참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빌과 플뢰르의 방 맞은편에 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어오게!”라고 대답했다.

지팡이 제작자는 두 개의 침대 중 창문에서 더 멀리 떨어진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는 1년 넘게 지하실에 갇혀 있으면서, 해리가 알기로 최소한 한 번은 고문을 당했다. 바싹 마른 그는 누렇게 뜬 피부 밑으로 얼굴의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엇다. 움푹 꺼진 눈구멍 속에서 그의 커다란 은빛 눈동자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담요 위에 놓여 있는 두 손은 뼈다귀나 다름없었다. 해리는 빈 침대에 론와 헤르미온느와 나란히 앉았다. 이곳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이 방은 절벽 꼭대기에 있는 정원과 새로 만든 무덤을 마주하고 있었다.

“올리밴더 씨, 이렇게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해리가 입을 열었다.

“이보게나.”

올리밴더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자네는 우리 목숨을 구해 주었네. 우리는 그 안에서 꼼짝없이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러니 내가 무엇으로 자네에게 보답할 수 있겠는가. 그 어떤 것으로도 결코.....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을 게야.”

“저희도 기쁩니다.”

해리의 흉터가 쿡쿡 쑤셨다. 해리는 알고 있었다. 볼드모트보다 앞서서 목적을 달성하거나, 혹은 그를 막으려고 시도할 시간조차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을. 숨 막히는 공포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하지만 그립훅과 먼저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택했을 때, 그는 이미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속마음과는 다르게 애써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해리는 목에 걸고 있던 주머니 속을 뒤져서 반으로 부러진 지팡이를 꺼냈다.

“올리밴더 씨, 전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뭐든지, 뭐든지 말만 하게.”

지팡이 제작자가 힘없이 말했다.

“이걸 고칠 수 있을까요? 가능한가요?”

올리밴더는 떨리는 한 손을 내밀었다. 해리는 끊어질 듯이 겨우 이어져 있는, 두 동강이 난 지팡이를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앗다.

“서양호랑가시나무와 불사조의 깃털.”

올리밴더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28센티미터, 부드럽고 유연하지.”

“그렇습니다.”

해리가 말했다.

“이걸 고칠 수가.....”

“없네.”

올리밴더가 속삭였다.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 정도로 심한 손상을 입은 지팡이는 내가 아는 어떤 방법으로도 고칠 수 없어.”

해리는 이런 대답을 들을 거라고 미리 단단히 각오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덜컹했다. 그는 두 동강이 난 지팡이를 집어 들어 다시 목에 건 주머니 속에 넣었다. 올리밴더는 부러진 지팡이가 있던 자리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리고 해리가 말포이 저택에서 가져온 두 개의 지팡이를 호주머니에서 꺼낼 때 까지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이 지팡이들을 알아보시겠어요?”

해리가 물엇다.

지팡이 제작자는 첫 번째 지팡이를 집어 들더니 흐릿한 눈앞으로 바싹 갖다 댔다. 그리고 손마디가 튀어나온 손가락 사이에 지팡이를 넣고 살짝 구부리면서 돌려 보았다.

“호두나무와 용의 심장이로군.”

그가 말했다.

“32센티미터, 견고함. 이 지팡이는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의 것이었어.”

“그리고 이것은요?”

올리밴더가 똑같은 시험을 했다.

“산사나무와 유니콘의 털. 25센티미터. 적당한 탄력성. 이건 드레이코 말포이의 지팡이였는데.”

“였다고요?”

해리가 되물었다.

“지금도 그의 것이 아닌가요?”

“아닐 걸세, 혹시 자네가 이걸 빼았.........”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팡이는 자네 것일세. 물론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가 중요하지. 또한 많은 부분이 지팡이 자체에 달려 있기도 해. 하지만 일반적으로 지팡이가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가면, 지팡이의 충성심도 변하게 되어 있네.”

방 안에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오직 멀리서 들리는 파도 소리뿐이었다.

“마치 지팡이에게 감정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지팡이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해리가 말했다.

“지팡이는 마법사를 선택한다네.”

올리밴더가 말했다.

“그것만큼은 지팡이학을 연구한 우리들에게는 항상 자명한 일이었지.”

“하지만 지팡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도 여전히 지팡이를 사용할 수 있지 않나요?”

“오, 그럼. 자네가 어떤 마법사든 마법사이기만 하면, 거의 모든 도구를 통해서도 마법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지. 하지만 제일 좋은 결과는 언제나 마법사와 지팡이 사이에 가장 강한 유대감이 있을 때에만 나타날 수 있다네. 그 둘의 관계는 참으로 복잡하기 짝이 없어. 최초의 끌림. 그 다음에는 함께 겪은 경험의 여정. 지팡이는 마법사로부터 배우고, 마법사는 지팡이로부터 배우지.”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다. 그 소리가 몹시 구슬프게 들렸다.

“저는 이 지팡이를 드레이코 말포이로부터 강제로 빼았았어요.”

해리가 말했다.

“그럼 제가 이걸 써도 안전할까요?”

“내 생각에는 그걸 것 같네. 원래 지팡이의 소유권은 미묘한 법칙들에 의해 지배를 받지. 하지만 빼앗은 지팡이는 대개 새로운 주인에게 복종하기 마련이라네.”

“그럼 저도 이 지팡이를 써야 할까요?”

론이 호주머니에서 웜테일의 지팡이를 꺼내 올리밴더에게 건네며 물었다.

“밤나무와 용의 심장. 23센티미터. 부서지기 쉬움. 나는 납치당한 직후에 피터 페티그루를 위해 강제로 이걸 만들어야 했지. 그래, 자네가 이걸 빼앗았다면, 이 지팡이는 다른 지팡이보다 자네의 명령에 더 기꺼이 따르고 잘할 걸세.”

“그렇다면 모든 지팡이가 다 그런가요?”

해리가 물엇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네.”

올리밴더가 대답했다. 불룩 튀어나온 그의 눈이 한동안 해리의 얼굴에 머물럿다.

“자넨 아주 심오한 질문을 하는군, 포터군. 지팡이학은 아주 복잡하고도 신비한 마법의 한 갈래라네.”

“그렇다면 지팡이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 이전 주인을 반드시 죽여야 할 필요는 없는 건가요?”

해리가 물었다.

올리밴더가 침을 꿀꺽 삼켰다.

“죽여야 한야고? 아니지,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네.”

“하지만 그런 전설이 있잖아요.”

해리가 말했다.

그의 심장 박동이 더욱 빨라지면서, 동시에 흉터의 통증도 점점 더 격렬해졌다. 해리는 볼드모트가 마침내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어느 한 지팡이에 대한 전설 말이에요. 어쩌면 여러 지팡이들일지도 모르지만. 살인에 의해서 손으로 손으로 전혀 내려온다는......”

올리밴더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눈처럼 하얀 배개위에 누운 그는 연한 잿빛이었다. 핏줄이 서고 커다란 그의 두 눈은 공포 비슷한 것으로 인해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지팡이는 딱 하나뿐이야. 내가 알기로는.”

올리밴더가 속삭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지팡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죠. 그렇지 않나요?”

해리가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올리밴더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듯이 론과 헤르미온느를 애타게 쳐다보았다.

“자네가 어떻게 그걸 알지?”

“그자는 아저씨에게 우리 지팡이 사이의 연결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어요.”

해리가 말을 이었다.

올리밴더는 겁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그자가 나를 고문했어. 자넨 그걸 이해해 줘야만 해! 크루시아투스 저주였어. 나.....나는 알고 있는 사실을 그자에게 털어놓지 않을 수가 없었네. 짐작하는 사실까지 모두 다!”

“저도 이해해요.”

해리가 말했다.

“아저씨는 그자에게 똑같은 지팡이 심에 대해서 말해주었지요? 그리고 다른 마법사의 지팡이를 빌려야만 한다고 알려주었고요.”

올리밴더는 해리가 이토록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해리가 말을 이었다.

“제 지팡이는 여전히 빌린 지팡이를 이겼지요. 왜 그런지 이유를 아시나요?”

올리밴더는 방금 고개를 끄덕였을 때만큼이나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그런 일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네. 그날 밤에 자네 지팡이는 참으로 특이한 일을 한 걸세. 똑같은 지팡이심의 연결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히 드문 경우지. 하지만 어째서 자네 지팡이가 빌린 지팡이를 물리칠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네...”

“그럼 우리가 아까 얘기했던, 살인에 의해서 주인이 바뀌는 지팡이 말이에요. 제 지팡이가 뭔가 이상한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 사람은 돌아와서 바로 그 지팡이에 대해 물었죠, 그렇지 않나요?”

“자네가 어떻게 그것을 알지?”

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물었지.”

울리밴더가 속삭였다.

“그자는 죽음의 지팡이니, 운명의 지팡이니, 혹은 딱총나무 지팡이니 하고 여러 가지 이름으로 알려진 그 지팡이에 대해서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모든 사실들을 알고 싶어 했네.”

해리는 곁눈질로 힐끗 헤르미온느를 보았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이었다.

“어둠의 마왕은..”

올리밴더는 겁에 질려서 한껏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내가 만들어준 지팡이-주목나무와 불사조의 깃털. 34센티미터-에 항상 만족해했지. 그 똑같은 지팡이 심의 연결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야. 이제 그자는 좀 더 강력한 다른 지팡이를 찾고 있어. 자네의 지팡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말이야.”

“하지만 제 지팡이가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단 사실을 그자도 곧 알게 될 거예요. 어쩌면 벌써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아냐!”

헤르미온느가 두려움이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자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어. 해리. 그자가 어떻게 그걸.”

“프리오리 인칸타템 때문이야.”

해리가 설명했다.

“우린 말포이의 집에 네 지팡이와 불랙손 지팡이를 두고 왔어. 헤르미온느, 만약 그자들이 그 지팡이들을 제대로 조사해서 최근에 사용한 주문들을 다시 되풀이하게 한다면, 네 지팡이가 내 지팡이를 부러뜨렸고, 네가 그 지팡이를 고치려고 했다가 실패했다는 사실도 알게 될거야. 그리고 내가 그 후로 줄곧 블랙손 지팡이를 사용해 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겠지.”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약간 혈색이 돌아왔던 헤르미온느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겼다. 론은 나무라는 표정으로 해리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은 그것까지 걱정하지 말자.....”

하지만 올리밴더가 끼어들었다.

“어둠의 마왕은 더 이상 단지 자네를 없애기 위해서 딱총나무 지팡이를 찾고 있는게 아니라네, 포터 군. 그자는 그 지팡이가 자신을 천하무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걸 손에 넣겠다고 결심한 걸세.”

“과연 그럴까요?”

“딱총나무 지팡이의 주인은 언제나 공격을 당할 걸 두려워 해야만 했지.”

올리밴더가 말했다.

“하지만 죽음의 지팡이를 손에 넣은 어둠의 마왕을 생각해 보면......솔직히 말해서 정말이지 아주 굉장한 일이야.”

해리는 문득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올리밴더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볼드모트에게 감금과 고문을 당하고 난 마당에도, 올리밴더는 그 지팡이를 손에 넣은 어둠의 마왕을 생각하자, 혐오감에 몸서리치는 만큼이나 흥분에 떨며 전율하는 것 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정말로 그 지팡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오, 그럼.”

올리밴더가 대답했다.

“물론이지. 역사를 통해서 그 지팡이의 행로를 추적하는 것이 완변하게 가능하다네. 물론 공백들이 있지. 그리고 지팡이가 일시적으로 사라지거나 숨겨져서 오랫동안 모습을 감춘 시기도 있었지. 하지만 그것은 항상 다시 나타나곤 했어. 그 지팡이는 지팡이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어떤 특징적인 성질들을 갖고 있거든. 비록 일부 내용이 모호하긴 하지만, 글로 쓰인 문헌들도 있다네. 나와 다른 지팡이 제작자들은 그 문헌을 연구하는 걸 업으로 삼고있지. 그것들은 분명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다네.”

“그렇다면.......그게 옛날 이야기나 전설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헤르미온느가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물었다.

“아니.”

올리밴더가 말했다.

“과연 그 지팡이가 반드시 살인에 의해서 전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겠네. 지팡이의 역사가 피로 얼룩져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쩌면 단지 그 지팡이가 너무도 탐나는 물건이라서 마법사들에게 그런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잘못된 손에 들어가면 어마어마하게 강력하고 위험한 것이 되기도 하지만, 지팡이의 능력을 연구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인 물건이라네.”

“올리밴더 씨.”

해리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에게 그레고로비치가 그 딱총나무 지팡이를 갖고 있다고 말하셨죠, 그렇죠?”

올리밴더는,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더욱 안색이 창백해졌다. 침을 꿀꺽 삼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유령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자네가 어떻게.......?”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상관하지 마세요.”

해리가 말했다. 그 순간 흉터가 화끈 불타올랐고, 해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동안 호그스미드의 대로가 눈앞에 떠올랐다. 그곳은 휠씬 더 북쪽이기 때문에 아직도 동이 트지 않았다.

“그레고로비치가 그 지팡이를 갖고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셨죠?”

“그런 소문이 있었어.”

올리밴더가 속삭였다.

“옛날, 아주 옛날에, 자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런 소문이 떠돌았지! 난 그레고로비치 자신이 그 소문을 냈을 거라고 믿네. 그런 소문이 사업에 얼마나 커다란 도움이 될지는 자네도 잘 알 걸세. 그자가 딱총나무 지팡이의 특성들을 연구해서 더욱 향상시켰다는 등 하는 그런 소문 말일세!”

“예, 알겠어요.”

해리는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올리밴더 씨,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요. 그런 다음에 좀 쉬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그럼 죽음의 성물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게 있나요?”

“뭐, 뭐라고?”

지팡지 제작자가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죽음의 성물이요.”

“미안하지만 난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통 모르겠네. 그것도 여전히 지팡이와 관계된 것인가?”

해리는 움푹 파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올리밴더가 연극을 하는 게 아니라고 믿었다. 그는 죽음의 성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해리가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저희는 그만 갈 테니, 좀 쉬도록 하세요.”

올리밴더는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자가 나를 고문했어!”

그는 숨을 헐떡거렸다.

“크루시아투스 저주......자네는 짐작도 못할거야.......”

“저도 충분히 알아요.”

해리가 말했다.

“정말이에요. 이제 그만 쉬세요. 모든 걸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이끌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빌과 플뢰르, 루나 그리고 딘이 앞에 찻잔을 하나씩 두고 부엌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리가 문가에 나타나자, 그들은 일제히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저 고개만 까딱하고는 정원으로 나갔다. 론와 헤르미온느는 그 뒤를 따랐다. 도비를 덮고 있는 붉은 봉분이 저 앞에 있었다. 해리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머리의 통증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이제 강제로 마구 밀려드는 장면들을 차단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하지만 해리는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머잖아 그는 그 통증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론이 옮다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설명을 해 주기 위해서 조금 더 참아야만 했다.

“그레고로비치는 아주 오래전에 그 딱총나무 지팡이를 갖고 있었어.”

해리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사람이 그를 찾으려고 애쓰는 광경을 보았어. 그리고 그레고로비치를 찾아냈을 때, 그자는 그가 더 이상 그 지팡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 그린델왈드가 그에게서 지팡이를 훔쳐 간거야. 그레고로비치가 그 지팡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린델왈드가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레고로비치가 스스로 소문을 퍼뜨릴 만큼 어리석은 작자였다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겠지.”

볼드모트는 호그와트의 정문에 있었다. 해리는 그곳에 서 잇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막 동이 트기 직전에 어둠 속에서 깜박거리는 등잔불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도 보앗다.

“그린델왈드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사용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어. 그리고 그의 힘이 정점에 이르렀을때, 덤블도어 교수님은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걸 알고서 그린델왈드와 결투를 벌이신 거야. 그리고 그자를 이겨서 딱총나무 지팡이를 손에 넣으셨어.”

“덤블도어 교수님이 딱총나무 지팡이를 갖고 계셨다고?”

론이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면.....지금 그 지팡이는 어디 있는 거지?”

“호그와트에.”

해리는 그들 두 사람과 함께, 이 절벽 꼭대기의 정원에 남아 있을려고 기를 썼다.

“그렇다면 어서 가자!”

론이 다급하게 외쳤다.

“해리, 어서 가서 그자보다 먼저 그걸 손에 넣는 거야.”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어.”

해리가 말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머리를 움켜 쥔 채, 밀려드는 생각에 저항하려고 애를 썻다.

“그자는 그게 어디 잇는지 알아. 지금 거기에 있어.”

“해리!”

론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야? 우리가 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거지? 어째서 그립훅과 먼저 이야기를 한 거야? 진작 떠날 수도 잇었잖아. 지금이라도 떠날 수 있어.......”

“아니야.”

해리가 풀밭에 털썩 무릎을 끓으며 말했다.

“헤르미온느 말이 맞아. 덤블도어 교수님은 내가 그걸 갖는 걸 원하지 않으셨어. 내가 그걸 차지하는 걸 원치 않으셨다고. 교수님은 내가 호크룩스를 찾길 원하셨어.”

“천하무적의 지팡이란 말이야, 해리!”

론이 신음했다.

“난 그러면 안 돼........난 호크룩스를 찾아야만 해.....”

이제 사방이 어둡고 쌀쌀해졌다.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보일락 말락 했다. 그는 스네이프와 나란히 호수를 향해서 운동장을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있었다.

“곧 성안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그는 높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그만 가거라.”

스네이프는 꾸벅 절을 하고 다시 길을 되돌아갔다. 검은 망토가 그의 등 뒤에서 펄럭거렸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려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 스네이프도 다른 어느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되었다. 성의 창문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어서 그는 쉽게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자신에게 투영 마법을 걸었고, 스스로의 눈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성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호수를 따라 걸었다. 그의 최초의 왕국이자 그의 타고난 고향인 그곳.....

그리고 여기, 호수 옆에 그것이 있었다. 검은 수면에 모습을 비춘채, 이 낯익은 풍경에 쓸데없는 오점인 하얀 대리석 무덤이.

그는 억누르고 있던 환희가, 그리고 파괴를 향한 짜릿한 목적의식이 또다시 솟구치는 것을 느꼇다. 그는 오래된 주목나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이것이 이 지팡이의 마지막 위대한 행위라니 이 얼마나 합당한 일인가!

무덤이 위에서부터 끝까지 쩍 갈라졌다. 수의에 감싸인 형상은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길고 훌쭉했다. 그는 또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시체를 감싸고 있던 천이 활짝 열렸다. 그 얼굴은 비록 약간 투명해지고 창백하고 움푹 꺼져 있었지만,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구부러진 그의 코 위에는 여전히 안경이 남아 있었다. 그는 실컷 조롱하는 기분이었다. 덤블도어의 두 손은 가슴 위에 놓여 있었고, 그와 함께 묻힌 그것은 움켜쥔 두 손 아래에 놓여 있었다.

이 늙은 멍청이는 대리석 무덤이나 죽음 따위가 이 지팡이를 보호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단 말인가? 어둠의 마왕이 그의 무덤을 훼손하는 일 따위를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거미 같은 손이 쑥 튀어나오더니 덤블도어의 손아귀에서 지팡이를 잡아챘다. 그가 지팡이를 움켜쥐는 순간 지팡이 끝에서 붉은 불꽃이 소나기처럼 뿜어 나왔다. 그 불꽃은 이전 주인의 시체 위로 반짝이며 떨어졌고, 마침내 지팡이는 새로운 주인을 섬길 태세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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