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3 (해리포터 시리즈 제7탄)
조앤 K. 롤링 지음 /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펴냄
원제 -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제 20 장 제노필리우스 러브굿
해리는 하룻밤 사이에 헤르미온느의 화가 누그러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헤르미온느가 험상궃은 표정과 쌀쌀맞은 침묵으로 일관해도 전혀 놀라울 게 없었다. 론은 계속 뉘우치고 있다는 표시로, 그녀 앞에서는 부자연스러울 만큼 침울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응대했다. 사실 세 사람이 모두 한자리에 있을 때면, 해리는 꼭 자기만 썰렁한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는 유일한 조문객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잠깐잠깐 물을 떠 오거나 버섯을 찾아 덤불숲을 뒤지느라 해리와 단둘이 있게 되면, 론은 뻔뻔스러울 만큼 명랑해졌다.
“누군가 우리를 도와준 거야”
론은 계속해서 떠들었다.
“누군가 그 암사슴을 보내 줬어. 누군가 우리 편을 들고 있어. 호크룩스 하나는 없어졌다고 친구!”
로켓을 파괴했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해진 그들은 또 다른 호크룩스가 있을 만한 후보지에 대해서 열심히 의논했다. 비록 전에도 그 문제에 대해 그토록 자주 의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낙관적이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에 이어 더 많은 돌파구가 이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뽀로통해 있는 헤르미온느도 한껏 부푼 그의 기분을 망쳐 놓지는 못했다. 갑작스런 행운들, 이를테면 신비로운 암사슴이라든가, 그리핀도르의 칼, 그리고 무엇보다도 론의 귀환으로 해리는 너무나 기뻣기 때문에 계속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기란 아주 어려웠다.
오후 늦게 해리와 론은 헤르미온느의 사나운 눈길을 피해 도망쳤다. 그리고 있지도 않은 블랙베리를 찾는다는 구실로 헐벗은 산울타리를 뒤지는 척하며, 틈틈이 계속해 왔던 소식교환을 다시 이어 갔다. 그동안에 해리는 고드릭 골짜기에서 벌어졌던 일들의 전모를 포함해, 자신과 헤르미온느의 파란만장한 방랑기를 론에게 들려주기 시작해서 겨우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론이 그들과 떨어져 지낸 몇 주 동안, 바깥 마법사 세계에 대해 알게 된 모든 사실들을 해리에게 자세히 전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너희는 어떻게 그 금기에 대해서 알아냈니?”
마법부의 추적을 따돌리려는 머글 태생들의 수많은 필사적인 시도에 대해 설명한 뒤에, 론이 해리에게 물었다.
“뭐라고?”
“너랑 헤르미온느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걸 그만뒀잖아!”
“오오, 그거 말이지. 어, 그냥 어쩌다 보니 우리도 그런 나쁜 습관에 빠져들게 되었어.”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자의 이름을 부르는 데에는 아무 문제없어. 볼.......”
“안돼!”
론이 꽥 고함을 치는 바람에, 해리는 산울타리 속으로 벌렁 자빠졌다. 텐트 입구에 앉아 책에 코를 박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그들을 노려보았다.
“미안.”
가시나무 속에서 해리를 끌어내며 론이 말했다.
“하지만 그 이름에는 저주가 걸려있어. 해리, 그게 바로 그들이 사람들을 추적하는 방법이라고! 그자의 이름을 부르면 보호마법이 파괴된단 말이야. 일종의 마법 장애를 일으키는 거지. 바로 그렇게 해서 그들은 우리가 토트넘 코트 로드에 있는 걸 찾아낸 거야!”
“우리가 그의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바로 그거야! 너도 그자들의 방법을 인정해 줘야 해. 일리가 있잖아. 감히 그 이름을 사용했던 건 오직 덤블도어 교수님 처럼 그자에게 대항하는데에 열성이었던 사람들 뿐이었어. 이제 그자들이 그 이름에 금기를 걸어 놓았기 때문에, 누구든 그 이름을 말한 사람은 추적을 당하게 된 거야. 기사단 단원들을 찾아내는 쉽고 간편한 방법이지! 하마터면 킹슬리도 잡힐 뻔 했....”
“정말이야?”
“그래. 빌 얘기로는 죽음을 먹는 자 일당이 그를 궁지로 몰았데. 하지만 간신히 싸워서 빠져나왔다더라고, 지금 킹슬리는 도망 중이야. 꼭 우리처럼 말이지”
론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지팡이 끄트머리로 턱을 긁었다.
“혹시 킹슬리가 그 암사슴을 보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의 패트로누스는 살쾡이야. 결혼식 때 봤잖아. 기억나지?”
“아, 맞다.”
그들은 텐트와 헤르미온느로부터 벗어나서, 산울타리를 따라 더 멀리 나아갔다.
“해리......넌 혹시 그게 덤블도어 교수님이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은 안드니?”
“덤블도어 교수님이라니, 무슨?”
론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내 말은 혹시 덤블도어 교수님이......그 암사슴을.....”
론이 계속 해리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교수님이 마지막까지 진짜 칼을 갖고 계셧잖아, 안 그래?”
해리는 론을 비웃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질문 뒤에 숨겨진 간절한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덤블도어가 어떻게든 그들 곁으로 돌아왔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그들을 돌보아 주고 있다는 상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돌아가셨어. 나는 그 일이 벌어지는 걸 보았어. 그분의 시신도 보았고. 그분은 분명히 돌아가셨어. 더구나 교수님의 패트로누스는 불사조야, 암사슴이 아니고”
“그래도 패트로누스는 변할 수 있잖아. 안 그래?”
론이 말했다.
“통스의 패트로누스도 바뀌었잖아?”
“그건 그래. 하지만 만약 덤블도어 교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나타나지 않는 거지? 왜 그냥 우리에게 칼을 건네주시지 않느냔 말이야.”
“나야 모르지”
론이 말했다.
“어쩌면 그분이 살아 계셨을 때, 그걸 너에게 주지 않으셨던 것과 똑같은 이유가 아닐까? 너에게 옛날 스니치를 주시고 헤르미온느에게 동화책을 주신 것과 똑같은 이유 말이야”
“뭐가 어떻다고?”
해리는 고개를 돌려, 어떻게든 대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잘 모르겠어”
론이 말을 이었다.
“가끔씩 난 그런 생각을 했어. 특히 내가 좀 화가 났을때면, 교수님이 우릴 비웃고 계시거나, 아니면 그냥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싶어 하신다고 말이야. 하지만 난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교수님은 내게 딜루미네이터를 주시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셨던 거야, 그렇지 않니? 그분은 그러니까.....”
론은 귀까지 새빨개졌다. 그는 발끝으로 발치에 있는 풀을 툭툭 걷어차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척 했다.
“내가 너희로부터 달아날 거란 사실을 알고 계셨던게 분명해.”
“아니야.”
해리가 정정했다.
“교수님은 네가 언제나 돌아오고 싶어 할 거란 걸 아셨던게 분명해.”
론은 몹시 고마워하면서도 여전히 불편한 눈치였다. 해리가 화제를 바꾸기 위해서 얼른 말을 꺼냈다.
“덤블도어 교수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너 혹시 스키터가 그분에 대해서 뭐라고 썻는지 들었니?”
“오오 그럼”
론이 즉각 대답했다.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서 말이 많더라고. 덤블도어 교수님이 그린델왈드와 친구였다니! 물론 상황이 지금과 달랐더라면 정말 엄청난 뉴스거리가 되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덤블도어 교수님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그거 비웃을 농담거리가 생긴 셈이고, 덤블도어 교수님을 아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모두 뺨을 한 대 맞은 기분이야. 난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 줄 잘 모르겠어. 그때 그분은 아주 어렸잖아. 그들 두 사람이....”
“우리 나이였지.”
해리는 헤르미온느에게 반박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뭔가가 론으로 하여금 더 이상 그 주제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한 것 같았다.
커다란 거미 한 마리가 덤블 속에 걸쳐진, 서리 맞은 거미줄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해리는 전날 밤 론에게서 받은 지팡이로 거미를 겨냥했다. 그 지팡이는 헤르미온느가 황공하게도 손수 시험해 보고서 블랙손 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판정해 주었다.
“잉그로지오.”
거미는 거미줄에서 살짝 튀어 오르며 몸을 약간 떨었다. 해리는 다시 시도해 보았다. 이번에는 거미가 약간 커졌다.
“그만 해.”
론이 매섭게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어렸다고 말한 건 내가 잘못했어. 이제 됐니?”
해리는 론이 거미를 끔찍이 싫어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해.......리듀시오.”
하지만 거미는 작아지지 않았다. 해리는 블랙손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지팡이로 시도해 본 간단한 주문들은 아무래도 불사조 지팡이로 했을 때보다 훨씬 힘이 약한 것 같았다. 새 지팡이는 마치 팔에다가 다른 사람의 손을 붙여 놓은 것처럼 거추장스럽게 낯설게 느껴졌다.
“넌 단지 연습이 필요한 것 뿐이야.”
헤르미온느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느새 소리없이 등 뒤로 다가와서, 거미의 크기를 늘였다 줄였다 해 보려는 해리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건 순전히 자신감의 문제야 해리”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의 지팡이를 부러뜨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그렇게 아무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네가 이 지팡이를 갖고 대신 네 지팡이를 줘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라왔지만, 간신히 삼켰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가 다시 친구가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론이 그녀를 향해 조심스럽게 미소를 보이자 발끈하며 가 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책 뒤로 숨어버렸다.
어둠이 내리자 세 사람은 텐트로 돌아갔다. 해리는 첫 번째로 망을 보았다. 그는 입구에 앉아서 블랙손 지팡이로 발치에 있는 작은 돌들을 공중에 띄우려고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마법은 여전히 예전보다 더 서툴고 힘이 약한 것 같았다. 한편 헤르미온느는 자기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고 있었고, 론은 초조하게 그녀를 힐끔힐끔 올려다보다가 결국에는 배낭에서 나무로 된 조그만 라디오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켜더니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했다.
“사실대로 뉴스를 전해 주는 거라곤 이 프로그램 하나밖에 없어.”
론이 해리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방송들은 죄다 그 사람편이고, 마법부의 방침을 따르고 있어. 하지만, 이건...잠깐 기다렸다가 한번 들어 봐, 정말 끝내 준다니까. 비록 매일 밤 방송을 하진 못하지만 말이야. 기습에 대비해서 장소를 계속 옮겨야 하거든. 그리고 주파수를 맞추려면 암호가 필요해.....문제는, 내가 지난번 방송을 놓쳤다는 거야....”
그러고는 작은 소리로 아무 단어나 중얼거리며, 라디오 윗부분을 지팡이로 가볍게 툭툭 두드렷다. 그리고 자꾸만 헤르미온느의 눈치를 살폈다. 언제 분노가 폭발할지 몰라 두려워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단지 론이 거기에 없는것처럼 굴 뿐이었다. 10분가량 론은 라디오를 탁탁 두드리며 암호를 중얼거렸고, 헤르미온느는 책을 몇 장 넘겼으며, 해리는 블랙손 지팡이로 연습을 계속했다.
마침내 헤르미온느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론은 두드리는 것을 멈추었다.
“성가시면 그만 할게.”
론은 안절부절하며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그에게 대답을 해 주는 은혜를 베풀어 주지는 않고, 대신 해리에게 다가갔다.
“우리 얘기 좀 해.”
그녀가 말했다.
해리는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알버스 덤블도어의 삶과 거짓말>이었다.
“뭔데?”
해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책에는 자신에 관한 내용도 한 장 있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리타 식으로 지어낸 자신과 덤블도어의 관계를 과연 참고 들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대답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난 제노필리우스 러브굿 씨를 만나러 가고 싶어.”
해리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뭐라고?”
“제노필리우스 러브굿 씨 말야. 루나 아버지. 난 가서 그 사람이랑 얘기를 좀 해야겠어!”
“어.........왜?”
헤르미온느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말했다.
“이건 바로 그 상징이야. <방랑시인 비들의 이야기>에 있는 상징이라고, 이것 봐!”
헤르미온느는 <알버스 덤블도어의 삶과 거짓말>을 썩 내키지 않아 하는 해리의 눈앞에 펄쳐 놓았다. 그는 가느다랗고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친숙한 글씨체로 덤블도어가 그린델왈드에게 쓴 편지의 ‘원본 사진’을 보았다. 그는 덤블도어가 정말로 그런 말들을 썻으며, 그것이 리타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를 보고 싶지 않았다.
“이 서명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서명을 좀 봐, 해리!”
해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잠시 동안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팡이 끝에 밝힌 불빛 아래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덤블도어가 알버스의 A자리에 <방랑시인 비들의 이야기>에 있는 것과 똑같은 삼각형 모양을 조그맣게 그려넣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너희, 무슨......?”
론이 주저하며 말을 붙여보려고 했지만, 헤르미온느는 눈총 한 번으로 단박에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해리 쪽으로 휙 몸을 돌렸다.
“그게 계속 등장하고 있어, 그렇지 않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빅터가 그게 그린델왈드의 상징이라고 말했다는 걸, 나도 알아. 하지만 이건 분명히 고드릭 골짜기의 그 오래된 묘에도 있었어. 그런데 비석에 적힌 날짜는 그린델왈드가 등장하기 훨씬 전이라고! 게다가 이제 이것까지! 물론 우린 그게 무얼 뜻하는지 덤블도어 교수님이나 그린델왈드에게 물어볼 수는 없어. 그린델왈드가 과연 아직까지 살아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러브굿 씨한테는 물어볼 수 있어. 그는 결혼식때 그 상징을 걸고 왔었잖아. 이건 중요한 일이야, 해리!”
해리는 당장 뭐라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다만 긴장되고 열의에 찬 헤르미온느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다시 생각에 잠겨 사방에 둘러싼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오랜 침묵 끝에 해리가 입을 열었다.
“헤르미온느, 또다시 고드릭 골짜기에서와 같은 일을 겪을 필요는 없잖아. 우리는 그곳으로 가자고 말했지, 그리고......”
“하지만 그 상징이 계속 나타나잖아. 해리! 덤블도어 교수님은 내게 <방랑시인 비들의 이야기>를 남겨 주셨어. 그런데 우리가 그 상징에 대해 알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또 그 문제로구나!”
해리는 슬며시 화가 치밀었다.
“우리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우리에게 은밀한 증거들과 단서들을 남겨 주셨다는 확신을 얻으려고 계속 애써 왔지.....”
“딜루미네이터는 아주 유용한 것으로 판명됐어.”
론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난 헤르미온느의 말이 맞는 것 같아. 난 우리가 러브굿씨를 보러가야 한다고 생각해.”
해리는 론에게 침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확신하건데, 론이 무조건 헤르미온느의 편을 들며 나서는 것은, 이 삼각형 모양 룬 문자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바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고드릭 골짜기에서와 같지는 않을거야. 러브굿 씨는 네 편이야, 해리. <이러쿵 저러쿵>은 줄곧 널 지지해 왔어. 계속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너를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단 말이야.”
론이 덧붙였다.
“난 이게 아주 중요하다고 확신해!”
헤르미온느가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중요한 거라면, 덤블도어 교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미리 말씀해 주셨을 거라는 생각은 안드니?”
“어쩌면.....어쩌면 그런 네가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것일 지도 모르지.”
헤르미온느는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실낱같은 희망을 비치며 말했다.
“맞아.그거 일리있네.”
론이 알랑거렸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난 그래도 러브굿 씨와 얘기를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 이건 덤블도어 교수님과 그린델왈드, 고드릭 골짜기를 이어 주는 상징이잖아? 해리, 난 우리가 반드시 이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이 문제에 대해서 투표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론이 제안했다.
“러브굿 씨를 만나러 가는데 찬성하는 사람...........”
헤르미온느의 손이 미쳐 올라가기도 전에, 론의 손이 먼저 번쩍 올라갔다. 헤르미온느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이며 손을 들었다.
“네가 졌다. 해리. 미안하다.”
론이 해리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해리는 한편으로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했다.
“단, 러브굿 시를 만난 다음에는 호크룩스를 좀 더 찾아보도록 하자. 알았지? 그나저나 러브굿 가족은 어디에 살지? 너희 중에 아는 사람 있어?”
“응, 루나네 집은 우리 집에서 멀지않아.”
론이 대답했다.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엄마 아빠는 루나네 이야기를 할때면 언제나 언덕 쪽을 가리키곤 했거든, 찾기 그렇게 어렵지 않을거야.”
헤르미온느가 침대로 돌아가자, 해리는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렸다.
“넌 그저 쟤 마음에 들려고 찬성했지?”
“사랑과 전쟁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 법이지.”
론이 명랑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건 사랑과 전쟁, 모두와 관련이 있잖아. 기운 내. 크리스마스 방학이잖아. 루나도 집에 있을 거야.”
다음날 아침, 그들은 순간이동으로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터리 성 캐치폴 마을의 빼어난 풍경을 바라보았다. 전망이 좋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마을이 마치 구름 사이를 비집고 대지를 향해 비스듬이 내리쬐는 햇빛에 감싸인 한 무리의 장난감 집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손으로 햇빛을 막으며 잠시 동안 버로우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곤 과수원의 높은 산울타리와 나무들뿐이었다. 그것은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조그만 집을 머글들의 눈에 안 띄게 보호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와서 들르지도 않다니, 기분이 이상하네.”
론이 말했다.
“참 내, 불과 얼마 전에 식구들을 만났으면서 꼭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사람처럼 말하네. 넌 크리스마스 때 저기 있었잖아.”
헤르미온느가 쌀쌀맞게 쏘아붙였다.
“난 버로우에 있지 않았어!”
론이 너무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대꾸했다.
“너는 내가 집으로 돌아가서 식구들 모두에게 내가 너희를 버리고 돌아왔다고 말했을 것 같니? 그랬으면 프레드와 조지가 잘도 나를 반겨주었겠다. 그리고 지니, 그 애가 참으로 잘도 이해해 주었겠어.”
“그러면 어디에 있었던 거야?”
“빌과 플뢰르의 신혼집에 있었어.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이라고 하는 곳이야. 빌은 언제나 나한테 잘해줬어. 물론 내가 한 일을 듣고 감동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왈가왈부하지도 않았어. 형은 내가 정말로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 나머지 식구들은 아무도 내가 거기에 있었던 걸 모르고 있어. 빌은 엄마에게 자기랑 플뢰르는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어. 너도 알다시피,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잖아. 플뢰르 역시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어. 그녀가 셀레스티나 와베크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너희도 알지?”
론은 버로우를 등지고 돌아섰다. 그리고 언덕 꼭대기로 앞장서서 걸어가며 말했다.
“이쪽으로 올라가 보자”
그들은 몇 시간을 걸어갔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고집에 못이겨 투명 망토로 몸을 숨겨야만 했다. 그 낮은 언덕들에는 작은 오두막집 한 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았는데, 그 오두막집 역시 마치 버려진 듯 했다.
“너희 생각에 이게 그들의 집인 것 같니? 크리스마스라 어딜 간 걸까?”
헤르미온느가 유리창 너머로, 창틀에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는 작고 깨끗한 부엌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론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봐, 난 네가 러브굿네 집을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면 누가 거기 사는지 딱 알아맞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만 다른 언덕으로 가 보자.”
그리하여 그들은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 순간이동을 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세 사람의 머리칼과 옷을 마구 날렸다. 그때 론이 소리쳤다.
“아하!”
론은 그들이 순간이동으로 도착한 언덕의 꼭대기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주 이상하게 생긴 집 한채가 하늘을 향해 곧장 솟아 있었다. 커다랗고 검은 원기둥이 오후의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었고, 그 뒤에는 희미한 달이 걸려 있었다.
“저건 루나의 집이 분명해. 저런 곳에 달리 누가 살겠어? 꼭 거대한 루크 같군!”
“내 눈엔 전혀 새(‘루크[rook]’는 체스에서 성 모양을 한 말을 가리키지만 ‘까마귀’란 뜻도 있음:역주)처럼 보이지 않는 걸.”
탑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난 체스의 루크를 말한거야.”
론이 대꾸했다.
“너한테는 성 모양이라고 해야 알아듣겠군.”
다리가 가장 긴 론이 언덕 꼭대기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면서 쿡쿡 쑤시는 옆구리를 움켜쥐고 간신히 그를 따라잡았을때, 론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고 있었다.
“러브굿네 집이야”
론이 말했다.
손으로 직접 쓴 세 개의 표지만이 다 부서진 대문에 붙어 있었다.
첫 번째는,
<이러쿵 저러쿵>의 편집자, x 러브굿.
두 번째는,
겨우살이를 꺽어 가도 좋습니다.
세 번째는,
날아다니는 자두에 접근하지 마시오.
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이 대문을 밀자, 끼익 소리가 났다. 현관문까지 이어진 꼬불꼬불한 오솔길은, 루나가 이따금 귀걸이로 달고 다녔던 순무 모양의 주홍색 열매로 뒤덮인 덤불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기묘한 식물들이 잔뜩 우거져 있었다. 해리는 스네어갈러프를 발견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시들어 빠진 그루터기를 얼른 피해 갔다. 또한 바람에 휘어진 오래된 야생 능금나무 두 그루가 현관문 양편에 보초처럼 서 있었는데, 비록 잎사귀는 다 떨어졌지만 여전히 딸기만 한 붉은 열매가 달려있었고, 하얀 구슬 같은 열매가 달린 겨우살이가 화관처럼 둘러져 있었다. 약간 납작하고 매 같은 머리를 한 조그만 부엉이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투명 망토를 벗는게 좋겠어. 해리. 러브굿 씨가 돕고 싶어하는 건 바로 너지, 우리가 아니니까.”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해리는 그 말대로 했다. 그리고 구슬 백에 집어놓도록 망토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윽고 헤르미온느가 육중한 검은 문을 세번 두드렸다. 문에는 장식 쇠못이 박혀 있엇고, 독수리 모양의 문 두드리는 고리쇠가 달려 있었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문이 활짝 열렸다. 그곳에 제노필리우스 러브굿이 지저분한 잠옷처럼 보이는 것을 입고 맨발로 서 있었다. 하얀 솜사탕 같은 그의 긴 머리는 더럽고 마구 엉클어져 있었다. 이에 비하면 빌과 플뢰르의 결혼식에서는 그나마 말쑥한 차림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뭐야? 뭐냐고! 너희는 누구냐? 무슨 일이냐?”
제노필리우스가 처음에는 헤르미온느를, 그 다음에는 론을 바라보며 격앙된 목소리로 성마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시선이 해리에 이르렀을때, 그의 입이 우스꽝스럽게 딱 벌어지면서 완변한 O 자를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러브굿씨?”
해리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전 해리입니다. 해리 포터.”
비록 제노필리우스의 두 눈 중에서 사팔이 아닌 정상인 쪽이 해리의 이마 위에 난 흉터로 곧장 향하긴 했지만, 그는 해리의 손을 잡지 않았다.
“좀 들어가도 될까요?”
해리가 물었다.
“여쭤 보고 싶은게 있어요.”
“그.......그게 현명한 일인지는 모르겟구나.”
제노필리우스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러더니 침을 꿀꺽 삼키고 정원을 잽싸게 둘러보았다.
“이거 좀 놀라운 일이라........내 말은.......나.....난 미안하지만, 그래서는 안 될것 같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해리가 미적지근한 환영에 조금 실망하면서 말했다.
“난.....오오, 그래. 그러면 좋다. 들어오너라. 어서, 어서!”
제노필리우스는 그들이 문지방을 넘기가 무섭게 등 뒤에서 문을 쾅 닫았다. 그들은 이제껏 해리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기묘한 부엌 안에 서 있었다. 방은 완벽한 원형을 이루고 있어서, 마치 거대한 후추 병 안에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벽난로, 싱크대, 찬장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벽면에 꼭 맞도록 둥글게 휘어 있었고, 사방에는 꽃과 곤충, 새 등이 알록달록한 색깔로 그려져 있었다. 해리는 제노필리우스가 루나의 취향을 인정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는 그 효과가 조금 감당하기 버거웠다.
마루 한 복판에는 세공한 철제 나선형 계단이 위층으로 이어져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달가닥거리는 소리와 쿵쾅거리는 소리가 엄청 시끄럽게 들려왔다. 해리는 루나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기 궁금했다.
“올라오게.”
제노필리우스가 여전히 극히 불편한 표정으로 길을 안내했다.
위층은 거실과 작업실을 합쳐놓은 곳 처럼 보였는데, 부엌보다도 훨씬 더 어수선했다. 이 방이 훨씬 더 작고 동그만 모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수세기에 걸쳐 감춰 놓은 물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로 변했던, 그 잊을 수 없는 그때의 필요의 방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사방에 발 디딜 틈 없이 책들과 서류 더미가 첩첩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해리는 뭔지 알아볼 수 없는 정교하게 제작된 생물 모형들이 저마다 날개를 파닥거리거나 턱을 딱딱거리며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루나는 그곳에 없었다. 엄청난 소란을 피우고 있던 것은 마법으로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가득 달린 나무로 된 물체였다. 그것은 작업대와 낡은 선반이 낳은 요상한 후예처럼 보였는데, 잠시 후에 해리는 그 물건이 <이러쿵 저러쿵>을 잇달아 찍어 내고 있는 걸로 미루어 보아 구식 인쇄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잠깐 실례하겠네.”
제노필리우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기계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수북이 쌓인 책과 서류 더미 아래에서 더러운 식탁보를 잡아 뺐다. 그러자 그 위에 있던 것들이 모조리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그가 식탁보를 인쇄기 위에 엎어씌우자, 시끄러운 철컥거림과 쿵쾅 소리가 다소 가라앉았다. 제노필리우스는 해리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왜 온건가?”
하지만 해리가 말도 꺼내기 전에, 헤르미온느가 깜짝 놀라서 작게 비명을 질렀다.
“러브굿 씨.......저게 뭐죠?”
그녀는 유니콘의 뿔과 비슷한, 회색의 거대한 나선형 뿔을 가리켰다. 그것은 방 안쪽으로 돌출 된 채, 벽에 붙어있었다.
“저건 크럼플 혼드 스놀캑스의 뿔이라네.”
제노필리우스가 말했다.
“아니에요!”
헤르미온느가 받아쳤다.
“헤르미온느”
해리가 당황해서 말했다.
“지금은 그런 얘기 할 때가......”
“하지만 해리. 저건 에럼펀트 뿔이라고! B등급 거래 금지 품목인 데다가, 집에 두기엔 너무 위험한 거란 말이야!”
“저게 에럼펀트 뿔이란 걸 네가 어떻게 알아?”
론이 안 그래도 시끄러운 방에 요란한 소음을 더하며 최대한 빨리 그 뿔에서 비켜서면서 물었다.
“<신비한 동물 사전>에 설명이 나와 있어! 러브굿 씨, 당장 저걸 치워야 해요. 저건 아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 할 수 있다는 걸 모르세요?”
“크럼플 혼드 스놀캑스는 수줍음이 많은, 고귀한 마법생물이지. 그 뿔은.......”
제노필리우스가 얼굴에 고집스러운 표정을 띠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러브굿 씨. 저 아래쪽 둘레에 홈이 패어 있단 말이에요. 저건 에럼펀트 뿔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위험해요. 저걸,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샀다.”
제노필리우스가 독단적인 태도로 말했다.
“두 주 전에, 고상한 스놀캑스에 대한 나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어느 유쾌한 젊은 마법사에게서 샀지. 루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깜짝 선물이야. 자.......”
해리 쪽을 돌아보며, 그가 물었다.
“정확히 여기에 온 이유가 뭔가, 포터군?”
“저희는 도움이 필요해요.”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다시 달려들기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제노필리우스가 말했다.
“도움이라...흠....”
그의 성한 쪽 눈이 다시 해리의 흉터를 향해 움직였다. 그는 겁에 질리면서도 매혹된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게 말이지..........해리 포터를 돕는다는 게........좀 위험한 일이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해리 포터를 돕는 것이 그들의 첫 번째 의무라고 끊임없이 설파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아저씨 아닌가요? 아저씨의 잡지가 아니던가요?”
론이 따져 물었다.
제노필리우스는 식탁보 아래에서 여전히 쿵쾅대며 철컥거리고 있는 인쇄기를 돌아보았다.
“어........그래. 나는 그러한 견해를 표명했지.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해야 하는 일이지만, 아저씨가 몸소 할 일은 아니라는 거군요?”
론이 비꼬았다.
제노필리우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세 사람을 쏘아보며 계속해서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해리는 웬지 그가 어떤 고통스러운 마음의 갈등을 겪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루나는 어디 있나요?”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루나의 생각을 들어 보죠.”
제노필리우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마음을 단단히 먹는 듯 했다. 마침내 그는 인쇄기 소음에 묻혀 알아듣기 힘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루나는 지금 냇가에 내려가 있단다. 민물 플림피를 낚으러 갔지.....그.........그애도 너희를 보고 싶어 할 게다. 내가 그애를 부르러 갔다 오마. 그리고 나서........좋다. 내가 너를 도와주도록 애써 보지.”
제노필리우스는 나선형 계단 아래로 사라졌고, 그들은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겁쟁이 영감탱이 같으니, 루나가 열배는 더 배짱이 좋겠다.”
론이 빈정댔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자기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야.”
해리가 말했다.
“실은 나도 론이랑 동감이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는 끔찍스러운 늙은 위선자야.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를 도와주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은 슬슬 꽁무니를 빼려고 들잖아.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저 뿔에서 멀리 떨어져.”
해리는 방 저쪽 편에 있는 창문으로 걸어갔다. 반짝이는 가느다란 리본 같은 시냇물이 저 아래쪽 멀리 언덕 기슭까지 뻗어 있었다. 그들은 아주 높은 곳에 있었다. 해리가 이제는 다른 언덕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는 버로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새 한 마리가 퍼덕이며 창문을 지나쳤다. 저 너머 어딘가에 지니가 있었다. 빌과 플뢰르의 결혼식 이후로, 그와 지니가 오늘만큼 가까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니는, 해리가 그녀를 생각하며 그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해리는 차라리 그 사실에 기뻐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접촉하는 사람은 누구나 위험에 빠지게 된다. 제노필리우스의 태도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그는 창문을 등지고 돌아섰다. 순간 그의 시선이 어수선한 둥근 찬장 위에 서 있는 또 하나의 기묘한 물건에 닿았다. 그것은 몹시 괴상하게 생긴 머리장식을 한, 아름답지만 엄격해 보이는 마녀의 돌 흉상이었다. 머리장식의 양옆으로 금빛 나팔형 보청기처럼 생긴 물체 두개가 튀어나와 있었다. 마녀의 정수리에 둘러진 가죽 머리띠에는 반짝이는 자그마한 파란 날개 한 쌍이 붙어 있었고, 이마에 둘러진 또 다른 띠에는 주홍색 순무 한개가 붙어 있었다.
“이것 봐.”
해리가 말했다.
“끝내 주네.”
론이 말했다.
“그가 결혼식 날 저걸 하지 않고 나타났다니, 놀라운걸.”
이윽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제노필리우스가 나선형 계단을 지나 방으로 돌아왔는데, 앙상한 다리에는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찻잔들과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찻주전자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
“아, 자네는 내가 애지중지하는 발명품을 발견했군.”
그는 헤르미온느의 품에 쟁반을 떠밀다시피 안기고서, 동상옆에 서 있는 해리에게 다가갔다.
“아름다운 로웨나 래번클로의 머리에 딱 맞게 만들었지.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지혜는 인간의 가장 큰 보물이다!’”
그는 나팔형 보청기 같은 물체들을 가리켰다.
“이것들은 렉스퍼트 빨대라네. 생각하는 사람의 당면한 영역에서부터 온갖 잡념의 원인들을 제거해 주지. 여기 이건......”
그는 작은 날개들을 가리켰다.
“빌리위그(사파이어 색의 벨레로,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신비한 동물 사전>참조:역주)의 날개라네, 고양된 정신 상태를 불러일으켜 주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주홍색 순무를 가리켰다.
“날아다니는 자두는 비범한 것들을 수용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거지”
제노필리우스는 차 쟁반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돌아갔다.
헤르미온느는 용케도 그 쟁반을 어수선한 보조 탁자위에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춰 올려놓았던 것이다.
“내가 자네들에게 거디루트 우려낸 차를 한 잔 대접해도 되겠나?”
제노필리우스가 말했다.
“우리 집에서 직접 만든 거라네.”
그는 비트 뿌리 주스처럼 짙은 자주색 음료를 따르며 덧붙였다.
“루나는 바텀 다리 너머 저 밑에 있어. 너희가 왔다니까 아주 신이 났더구나.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 애는 우리 모두가 먹을 수프를 만들기에도 충분할 만큼의 플림피를 거의다 낚았더구나. 자리에 앉고, 설탕도 넣게나.”
“자, 이제.”
그는 안락의자에서 쓰러질 듯이 흔들거리는 서류 더미를 치우고 그 자리에 앉앗다. 그리고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신은 다리를 꼬았다.
“어떻게 도와 드릴까, 포터 군?”
“그러니까......”
해리는 말을 시작하며 헤르미온느를 슬쩍 곁눈질했다. 그녀는 격려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빌과 플뢰르의 결혼식 때 목에 걸고 오셨던 그 상징에 대한 겁니다. 러브굿 씨. 우리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제노필리우스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자네 지금 죽음의 성물의 상징을 말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