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장 은빛 암사슴
자정이 되어 헤르미온느가 망보는 일을 넘겨받았을 무렵에는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해리는 뒤숭숭하고 심란한 꿈에 시달렸다. 내기니가 계속 꿈속에 등장했다 사라지곤 했는데, 처음에는 금이 간 커다란 반지 사이로 기어 나오더니 그 다음에는 크리스마스 장미 화환 사이로 기어나왔다. 그때 마다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 해리는 웬지 저 멀리 밖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텐트를 내려치듯이 부는 바람 소리가 누군가의 발소리나 목소리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결국 해리는 어둠 속에 일어나서 헤르미온느 옆으로 갔다. 그녀는 텐트 입구에 웅크리고 앉은 채, 지팡이 불빛에 의지하여 <마법의 역사>를 읽고 있었다. 눈은 아직도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해리가 일찍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떠나자고 제안하자. 헤르미온느도 크게 안도하며 기뻐했다.
“좀 더 은폐된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
헤르미온느는 파자마 위로 스웨터를 걸쳐 입으면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계속 밖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거든. 심지어 누군가 얼씬거리는 걸 한두번 본듯한 생각도 들어.”
해리가 점퍼를 입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식탁위에서 미동도 없이 조용한 스니코스코프를 한 번 쳐다보았다.
“분명히 내가 괜한 상상을 한 걸 거야.”
헤르미온느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어둠 속에서 눈까지 내리면 헛것을 보기 쉽거든....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투명 망토를 쓰고 순간이동을 하는게 좋겠지?”
30분 후, 텐트를 접고 나자, 해리는 호크룩스를 목에 걸고 헤르미온느는 구슬 백을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순간이동을 했다. 늘 그렇듯이 온몸을 꽉 조이는 듯한 순간이 찾아왔다. 해리의 두 발이 눈 덮인 땅에서 떨어지는 듯 하더니 금방 낙엽으로 뒤덮인 얼어붙은 땅 위에 쿵하고 내려섰다.
“여기가 어디야?”
해리가 나무들이 뻑뻑하게 서 있는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딘의 숲(영국 서부에 있는 왕실 소유 국유림:역주)이야.”
헤르미온느가 구슬 백을 열어서 텐트 폴대를 꺼내며 말했다.
“언젠가 한 번 엄마 아빠랑 이곳으로 캠핑을 온 적이 있어.”
이곳 역시 주변의 모든 나무 위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추웠지만, 적어도 바람은 불지 않았다. 그들은 몸을 녹이기 위해서 푸르게 빛나는 불꽃 앞에 웅크리고 앉은 채, 거의 온종일 텐트 안에서 지냈다. 이제 헤르미온느는 이 유용한 불꽃을 척척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퍼서 단지에 담아 들고 다닐 수도 있엇다. 해리는 마치 잠깐동안 심한 병을 앓고 나서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옆에서 세심하게 신경 써 주는 헤르미온느 때문에 더욱 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날 오후가 되자, 새로운 눈발이 텐트 위로 흩날렸다. 그들이 있는 감추어진 공터에도 방금 내린 눈이 먼지처럼 곱게 내려앉았다.
이틀 밤이나 제대로 자지 못한 해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신경이 곤두선 것 같았다. 고드릭 골짜기에서 아슬아슬하게 도망쳐 나온 후로는, 볼드모트가 전보다 더 위협적으로 바싹 다가와 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어둠이 찾아왔을 때, 해리는 계속 망을 보겠다는 헤르미온느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녀에게 그만 잠자리에 들라고 말했다.
해리는 낡은 방석을 텐트 입구로 가져가서 깔고 앉았다. 갖고 있는 스웨터를 몽땅 껴입었지만, 여전히 몸이 덜덜 떨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둠이 점점 깊어 가더니, 마침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해리는 잠깐 호그와트 비밀지도를 꺼내어 지니의 점이나 지켜볼까 하다가, 문득 지금이 크리스마스 방학 기간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지니는 버로우로 돌아갔을 것이다.
광막한 숲 속에서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숲에서 살아있는 생물들이 가득차 있다는 걸 해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디 모두 꼼짝말고 조용히 있어 주길 바랬다. 그래야만 총총걸음으로 달리거나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애꿎은 동물들의 소리와 불길한 움직임을 암시하는 또 다른 소리를 구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해리는 몇 해전, 긴 망토 자락이 사락사락 낙엽 위를 쓸고 지나가며 냈던 소리를 떠올렸다. 그러자 당장 그 소리를 또다시 들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들의 보호마법은 몇 주일 동안 별 탈 없이 효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깨지겠는가? 하지만 오늘 밤은 뭔가 다르다는 기분을 좀처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해리는 몇번이고 퍼뜩 놀라서 몸을 꼿꼿이 세웠다. 텐트에 비스듬이 몸을 기댄 채 깜빡 잠이 든 탓에 목덜미가 뻐근했다. 밤은 이제 까만 벨벳 같은 완전한 어둠에 도달해 있었다. 마치 순간이동 도중의 중간 지대에 걸려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해리는 과연 자기 손가락은 제대로 구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서 한 손을 코앞으로 들어 보앗다. 바로 그때였다.
눈부신 은색 빛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 빛은 나무들 사이로 움직이고 있었다.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것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였다. 그 빛은 그가 있는 쪽으로 둥둥 떠오는 것 같았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치켜든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썻다. 혀가 굳어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가까이 다가오자, 해리는 눈을 가늘게 떳다. 앞에 서 있는 나무들이 칠흑같이 새까만 윤곽을 드러냈다. 여전히 그것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빛을 발하는 그것이 떡갈나무 뒤에서 걸어나왔다. 그것은 달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은백색의 암사슴이었다. 암사슴은 소리없이 땅 위로 천천히 걸어왔는데, 곱게 쌓인 눈 위에는 아무런 발자국도 남지 않았다. 암사슴은 긴 속눈썹이 난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아름다운 머리를 높이 쳐들고서, 곧장 해리를 향해 다가왔다.
해리는 경이로운 마음에 가득 차서, 그 짐승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 암사슴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너무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동안 줄곧 이 사슴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다만 이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그들이 만날 거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엇을 뿐이었다. 큰 소리로 헤르미온느를 부르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 전까지 그토록 강렬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해리는 알았다. 이것만은 목숨을 걸고 장담할 수도 있었다. 이 사슴은 그를 찾아온 것이다. 오직 해리 혼자만을.
사슴과 해리는 몇 분 동안 서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이윽고 사슴이 돌아섯 걷기 시작했다.
“안돼”
해리가 외쳤다.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다.
“돌아와”
사슴은 계속해서 나무 사이를 유유히 걸어갔다. 곧 검고 굵은 나무들이 은빛 나는 사슴을 몸통을 가리며 줄무늬를 만들어 냈다. 떨리는 짧은 순간 동안 해리는 망설였다. 이건 분명 함정일거야, 속임수이고 미끼일 거야. 마음속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저항할 수 없이 강력한 본능은 그에게 이것은 어둠의 마법이 아니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마침내 해리는 사슴의 뒤를 쫓기 시작햇다.
그의 발밑에서 뽀드득 눈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사슴은 여전히 소리없이 나무사이를 미끄러져 나갔다. 단지 빛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사슴은 점점 더 깊은 숲속으로 그를 인도했다. 해리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조만간 사슴이 멈춰 서면, 그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허용해 주리라. 그리고 말하리라. 그 목소리는 그가 알아야 할 것들을 말해 주리라.
마침내 사슴이 멈춰섰다. 사슴은 아름다운 머리를 다시 한번 그를 향해 돌렸다. 해리는 재빨리 뛰었다. 한 가지 질문이 그의 마음속에서 터질듯이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물어보려고 말문을 떼려는 순간 사슴은 사라졌다.
어둠이 사슴을 완전히 삼켜버린 후에도, 광채를 발하던 그 모습은 여전히 그의 눈앞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그가 눈을 감았을 때, 잔영은 환하게 빛나면서 그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 그는 방향감각을 잃었다. 문득 두려움이 엄습했다. 사슴의 존재가 그를 안전하다고 느끼게 했던 것이다.
“루모스!”
해리가 중얼거렸다. 동시에 지팡이 끝에서 불이 밝혀졌다.
그가 눈을 깜박거릴때 마다. 환한 사슴의 잔영은 점차 사라졌다. 해리는 그곳에 가만히 서서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잔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부드럽게 눈이 휘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뭔가가 공격을 해 올까? 사슴이 그를 매복 장소로 꼬여 낸 것일까? 지팡이 불빛이 닿지 않는 저 너머에 누군가 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리는 지팡이를 좀 더 높이 치켜들었다. 아무도 그를 향해 달려들지 않앗다. 나무 뒤에서 초록 불빛이 뿜어져 나오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왜 사슴은 그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일까?
그때 지팡이의 빛을 받아 뭔가가 번쩍거렸다. 해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있는 것이라곤 얼어붙은 작은 연못뿐이었다. 해리가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지팡이를 높이 들었을때, 갈라진 검은 수면이 반짝반짝 빛났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연못을 내려다보았다. 빙판 위에는 일그러진 그의 영상과 지팡이의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두껍고 뿌연 회색 빙판 저 아래로 뭔가 다른 것이 번뜩였다. 커다란 은색 십자가 같은 것이......
해리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연못 가장자리에 무릎을 끓고 앉아서, 가능한 한 바닥까지 잘 비치도록 지팡이의 각도를 조절했다. 진한 붉은색 섬광이 반짝했다.......그것은 손잡이에 빛나는 붉은 루비들이 박힌 칼이었다..... 그리핀도르의 칼이 이 숲속 연못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숨을 죽인 채, 그것을 정신없이 내려다 보았다. 어떻게 이런일이? 어떻게 저 칼이 이 숲 속 연못에 놓여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그들이 야영을 하고 있는 바로 근처에? 어떤 알 수 없는 마법의 힘이 헤르미온느를 이 장소로 이끌었을까? 아니면 그가 패트로누스라고 생각했던 그 암사슴이 이 연못을 지키는 일종의 수호 정령이었을까? 이 칼은 오직 그들이 여기 있기 때문에, 그들이 도착한 후에 이 연못에 놓이게 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칼을 해리에게 전해 주고자 했던 사람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해리는 사람의 그림자라든가 혹은 반짝 스치는 눈빛이라도 발견하려고, 다시 한 번 지팡이로 주변의 나무와 덤블을 비추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가 다시 얼어붙은 연못 바닥에 놓여 있는 칼로 관심을 돌렸을 때, 약간의 공포심은 오히려 말할 수 없는 환희를 더 크게 해 줄 뿐이었다.
해리는 그 은빛 형상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주문을 외웠다.
“아씨오 칼!”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리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만약 그 일이 그렇게 쉬웠다면, 칼은 진작부터 그가 그냥 줍기만 하면 되도록, 저 얼어붙은 연못속이 아니라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해리는 꽁꽁 언 연못 주위를 빙 돌면서, 저 칼이 저절로 찾아왔었던 때를 열심히 떠올렸다. 그때 그는 엄청난 위험에 처해 있었고, 도움을 요청했었다.
“도와줘”
해리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칼은 무심하게 연못 바닥에 누워서 전혀 꼼짝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에 그가 이 칼을 다시 돌려주었을때, 덤블도어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더라? 해리는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진정한 그리핀도르만이 이 마법의 모자에서 이 칼을 뽑아 낼 수 잇단다. 그렇다면 그리핀도르 임을 보여 주는 자질들이 무었이었지? 해리의 머릿속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그에데 답을 들려주었다. 용기와 대담성 그리고 기사도 정신은 그리핀도르의 특징이죠.
해리는 걸음을 멈추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얀 입김이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에 닿자,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해리는 자신이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솔직했더라면 해리는 얼음 밑으로 그 칼을 처음 본 순간에 벌써 깨달았을 것이다.
해리는 다시 한 번 주위에 빙 둘러선 나무들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자신을 덮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가 혼자 숲 속을 걸어올때 벌써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아니면 연못 속을 살펴보고 있을때에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다. 만약 지금 이순간까지 공격을 망설인다면 그 이유는 딱 한가지,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불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리는 뻣뻣하게 얼어붙은 손으로 겹겹이 껴입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헤르미온느를 불러서 대신 이 일을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것이 기사도 정신에 들어가지 않는 다면, 도대체 그놈의 ‘기사도’란게 어디에 들어가는지 절대 모를 거라고 씁쓸하게 생각했다.
그가 옷을 벗고 있을때, 어디선가 부엉이 한 마리가 울음소리를 냈다. 해리는 해드위그를 떠올리며 마음이 아팠다. 이제 온몸이 덜덜 떨리고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하지만 해리는 계속해서 옷을 벗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눈 속에서 속옷만 입은 채, 맨발로 서 잇게 되었다. 해리는 부서진 그의 지팡이와 어머니의 편지, 시리우스의 거울조각, 그리고 옛날 스니치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벗어서 옷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얼음위로 겨누었다.
“디핀도”
총소리 같은 요란한 소음이 정적을 깨면서 얼음이 짝 갈라졌다. 연못의 수면은 부서지고, 출렁거리는 물 위에 검은 얼음 덩어리가 둥둥 떠다녔다. 해리가 판단하기로는, 연못은 별로 깊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칼을 집어내려면 완전히 물속으로 잠수해야만 했다.
앞으로 할 일을 자꾸 이리재고 저리 재봐야, 일이 더 쉬워지거나 물이 더 따듯해질것도 아니었다. 해리는 연못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직도 불이 밝혀진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앞으로 얼마나 더 추워 질지, 또 얼마나 격렬하게 몸을 떨게 될지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몸의 모든 숨구멍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얼음 같은 물속으로 어깨까지 들어가자, 폐 속의 공기 방울하나까지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어찌나 삼하게 몸이 떨리는지 연못 가장자리로 물살이 찰랑거렸다. 해리는 마비된 발에 칼날이 와 닿는 것을 느꼇다. 오직 단 한번의 잠수로 성공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해리는 숨을 헐떡거리고 몸을 덜덜 떨면서, 어떻게믄 물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순간을 조금씩 미루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타이른 후에 모든 용기를 다 끌어모아서 물속으로 잠수했다.
그 차가움은 고통 그 자체였다. 냉기가 불길처럼 그를 공격했다. 연못 바닥을 향해서 컴컴한 물속을 지날 때에는 머릿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해리는 손을 뻗어서 칼을 찾아 바닥을 더듬었다. 손끝에 칼자루가 닿았다. 해리는 칼을 위로 끌어올렸다.
바로 그때 뭔가 그의 목을 팽팽하게 조여 왔다. 해리는 잠수 할때에는 아무것도 몸에 스치는 걸 못 느꼇지만, 아마 해초가 걸린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칼을 잡지 않은 손을 들어서 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해초가 아니었다. 호크룩스의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서 그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미친 듯이 발길질을 하면서, 물 밖으로 나오려고 기를 썻다. 하지만 바위가 울퉁불퉁한 연못 가장자리에 몸을 부딪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숨이 막혀 켁켁거리고 몸부림을 치면서, 목을 조르는 줄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손가락은 줄을 풀지 못했다. 이제 머릿속에서 작은 전구 같은 것이 팡팡 터졌다. 해리는 익사하고 말 것이다.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가슴을 껴안는 이 팔은 분명 죽음의 손길이리라.....
숨이 막혀 웩웩 헛구역질을 하고 물에 흠뻑 젖은 채,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혹독한 추위를 느끼며, 해리는 눈밭에 얼굴을 묻고 누워 있었다.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는 또 한명이 숨을 헐떡이고 쿨럭쿨럭 기침을 하면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 뱀이 공격했을때 헤르미온느가 나타났던 것처럼 또다시 그녀가 왔구나... 하지만 이건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 굵은 기침소리도, 묵직한 발소리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해리는 고개를 들어서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 볼 기력 조차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서 로켓이 팽팽하게 그의 살 속으로 파고들었던 목덜미를 어루만져 보는 것이 전부였다. 로켓은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 그의 목에서 줄을 끊은 것이다. 그때 그의 머리맡에서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지금........제정신이니?”
그 목소리를 듣고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 어떤 것도 해리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해리는 격렬하게 몸을 떨면서 비틀비틀 일어섰다. 그의 앞에는 속속들이 흠뻑 젖은 옷을 입고 머리칼이 얼굴에 착 달라붙은 론이 서 잇엇다. 한 손에는 그리핀도르의 칼을들고, 다른 한 손에는 끊어진 호크룩스의 줄을 쥐고 있었다. 줄에는 호크룩스가 대롱대롱 메달려 있었다.
“이런 망할! 어째서 물에 뛰어들기 전에 이걸 벗지 않은거야?”
론이 호크룩스를 번쩍 들어보이면서 말했다. 그것은 마치 최면술을 흉내 내듯이, 짧아진 줄에 매달려 앞뒤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해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은빛 암사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론이 다시 나타난 것에 비하면 그건 정말 아무일도 아니엇다. 해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추위에 덜덜 떨고 서 있던 해리는, 문득 연못 가장자리에 여전히 놓여 있는 옷가지들을 보고는 재빨리 주워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리위로 스웨터들을 연방 끼어 입으면서도, 해리의 눈길은 론에게서 떨어지지 않앗다. 잠깐이라도 그를 보지 않으면 언제 사라질지 몰라서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진짜 론이 분명했다. 방금 연못으로 뛰어들어 그의 목숨을 구해주지 않앗던가.
“너...너였니?”
마침내 해리가 이빨을 딱딱 부딪히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거의 목이 졸려 죽을뻔한 지경까지 갔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가늘고 힘이없었다.
“응, 그래.”
론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네가 그 암사슴을 보낸거야?”
“뭐라고? 당연히 아니지! 난 네가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패트로누스는 수사슴이야”
“아, 그렇지. 어쩐지 어딘가 달라 보인다 했어. 뿔이 없었구나.”
해그리드의 주머니를 목에 건 해리는 마지막 남은 스웨터까지 걸치고 허리를 숙여 의 지팡이를 집어 든 다음 다시 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길 어떻게 왔니?”
분명히 론은 이런 순간이, 어쨋든 오긴 온다 해도, 좀 더 나중에 찾아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 그러니까.......너도 알잖아......그냥 돌아왔어. 그러니까..........”
론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직도 너희가 나를 원한다면 말이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론이 떠나 버렸던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그들 사이에 벽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여기 있다. 돌아온것이다. 그리고 방금 해리의 목숨을 구했다.
론은 문득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잇는 것들을 보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오, 그래 내가 이걸 꺼냈어.”
론은 해리가 잘 볼 수 있도록 칼을 높이 들었다.
“이것 때문에 물속에 뛰어 들었건 거니?”
“그래”
해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어떻게 우리를 찾아낸 거야?”
“말하자면 길어.”
론이 말했다.
“나는 몇시간동안이나 너희를 찾아 헤맸어. 여긴 아주 큰 숲이잖아, 안 그래? 이제 그만 나무아래에서 잠을 자며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엇는데, 그 사슴이 다가오는게 보였어. 그리고 네가 그 뒤를 따라오더라.”
“다른 사람은 못 봤니?”
“아니, 나는.....”
론이 주저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바싹 붙어 자라고 있는 두 그루의 나무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기 너머에서 뭔가 움직이는 걸 본 것 같기도 해. 하지만 그때 나는 연못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어. 네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았거든. 그래서 거길 가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이봐!”
해리는 벌써 론이 가리켰던 방향으로 쏜살같이 뛰어가는 중 이었다. 두 그루의 떡갈나무가 바싹 붙어서 자라고 잇었다. 두 몸통사이에는 딱 눈높이 쯤에 몇 센티미터 정도의 틈새가 벌어져 있을 뿐이었다. 몸을 숨긴 채 밖을 살펴보기에는 대단히 이상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나무뿌리 근처의 땅에는 눈이 쌓여있지 않았기 때문에 해리는 아무런 발자국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아직도 칼과 호크룩스를 들고 서 있는 론의 곁으로 돌아왔다.
“뭔가 있니?”
론이 물었다.
“아니”
해리가 대답했다.
“그런데 이 칼은 어떻게 저 연못에 들어가게 되었지?”
“누군진 몰라도 패트로누스를 불러낸 사람이 이 칼도 거기다 갖다 놓았을 거야.”
그들은 장식 문양이 새겨진 은빛 칼을 내려다보았다. 손잡이에 박힌 루비들이 헤르미온느의 지팡이 불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넌 이 칼이 진짜라고 생각하니?”
론이 물었다.
“그걸 알아낼 방법은 딱 하나야.”
해리가 말했다.
호크룩스는 아직도 론의 손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로켓이 요동쳣다. 해리는 그 안에 든 무언가가 또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칼의 존재를 느끼고서 해리가 그걸 손에 넣지 못하도록 그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길게 토론을 할때가 아니었다. 지금이야말로 이 호크룩스를 영원히 파괴할 순간이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고 주변을 살펴보다가 적당한 장소를 발견했다. 단풍나무 아래에 평평한 바위 하나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리로 와”
해리가 이렇게 말하며 앞장을 섰다. 그리고 바위 위에 놓인 눈을 쓸어 낸 다음, 호크룩스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막상 론이 칼을 건네주려고 하자,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네가 해야 해.”
“내가?”
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어째서?”
“네가 연못에서 그 칼을 꺼냈으니까, 내 생각에 이건 네가 해야만 해.”
결코 해리가 친절한 마음을 가졌거나, 너그러워서가 아니었다. 다만 암사슴이 좋은 편이라는 걸 알았듯이, 그 칼은 반드시 론이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덤블도어는 해리에게 적어도 특정 종류의 마법에 대해서, 어떤 행위의 측량할 수 없는 힘에 대해서는 약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내가 이걸 열게.”
해리가 말했다.
“그럼 네가 그걸 찔러. 곧장 말이야. 알았지? 이 안에 든 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싸우려고 할 테니까. 일기장에 깃든 리들의 일부도 나를 죽이려고 했었어.”
“그걸 어떻게 열려고?”
론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파셀통그를 사용해서 열리라고 명령할 거야.”
해리가 말했다. 그 대답이 어찌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는지, 해리는 자신이 항상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최근에 내기니와 마주친 사건으로 인해서 그 답을 깨닫게 되었는지도 몰랐다.해리는 반짝이는 초록색 보석을 박아 새긴, 뱀 모양은 S자를 들여다보았다. 차가운 바위 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작은 뱀이 금방 연상되었다.
“안돼!”
론이 다급하게 외쳤다.
“안돼, 열지마! 진심이야!”
“왜 그래?”
해리가 물었다.
“빨리 이 망할 놈의 것을 없애 버리자고, 몇 달 동안이나.....”
“난 못해. 해리. 진짜 못하겠어. 네가 해.”
“하지만 왜?“
“왜냐하면 그게 나한테 너무 나쁘기 때문이야!”
론이 바위 위에 놓인 로켓으로부터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난 저걸 다룰수가 없어! 지난 번 내 행동에 대해서 변명을 하려고 이러는게 아니야! 해리! 하지만 저건 너나 헤르미온느 보다 나에게 훨씬 더 나쁜 영향을 미쳤어. 나로 하여금 온갖 생각을 하게 했다고. 물론 내가 줄곧 생각해 오던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든 걸 훨씬 더 나쁘게 만들었어.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저걸 벗으면 다시 곧장 제정신이 돌아오긴 했지만, 다시 저 빌어먹을 것을 목에 걸어야만 할때면...... 난 못하겠어, 해리!”
론은 칼을 옆에 늘어뜨린 채,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넌 할 수 잇어.“
해리가 말했다.
“할 수 있다고! 네가 방금 그 칼을 꺼냈잖아. 그러니까 그건 네가 사용해야만 하는 거야. 제발 부탁이야. 어서 이걸 없애자, 론”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강장제 역할을 한 모양이었다. 론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여전히 긴 코로 거센 콧김을 내뿜으면서 다시 바위를 향해 돌아왔다.
“그럼 언제 열지 말해 줘!”
론이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셋을 셀게”
해리는 이렇게 말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로켓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S자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며 뱀을 떠올리려고 애썻다. 한편 로켓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마치 덫에 걸린 바퀴벌레처럼 덜컥덜컥 움직였다. 해리의 목덜미에 아직도 뻘겋게 남아있는 상처 자국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걸 불쌍히 여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둘........셋......열려라”
마지막 말은 쉭쉭 위협을 가하는 소리가 되어 흘러나왔다.
그러자 딸깍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로켓은 황금 뚜껑이 확짝 열렷다.
두 개의 유리창 뒤에 살아 있는 눈알이 하나씩 깜박거리고 있엇다. 뱀처럼 동공이 쭉 찢어지고 새빨갛게 변하기 전에 톰리들의 눈이 그랬던 것처럼 까맣고 잘생긴 눈이었다.
“찔러”
해리가 바위 위의 로켓을 꽉 붙잡고서 말했다.
론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칼을 높이 들었다.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도는 눈동자 위로 칼끝이 다가갔다. 해리는 벌써부터 텅 빈 유리창 뒤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굳은 마음으로 로켓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때 호크룩스에서 쉭쉭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네 마음속을 보았다. 그러므로 너는 내 것이다.”
“저 말 듣지마!”
해리가 쉰 목소리로 외쳤다.
“그냥 찔러!”
“난 네꿈을 보았다. 로날드 위즐리. 그리고 너의 두려움도 보았다. 네가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질 수 잇다. 하지만 네가 두려워하는 일 또한 모두 일어날 수 잇다....”
“찔러!”
해리가 부르짖었다.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칼끝이 파르르 떨리더니 론이 리들의 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딸을 애지중지하는 어머니 밑에서 언제나 제일 사랑을 못 받았지........그리고 이제는 네 친구를 더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제일 사랑을 못 받고 있군......항상 기껏해야 2인자일 뿐....영원히 그늘에 가려진 채.....”
“론, 지금 찔러.”
해리가 고함을 질렀다. 손 안에 든 로켓이 몸부림 치는 것을 느낄 수 잇엇다. 그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웠다. 론이 더 높이 칼을 치켜들었다. 바로 그 순간 리들의 눈동자가 빨갛게 빛을 발했다.
로켓의 양쪽 유리창 밖으로, 그리고 두 개의 눈알 밖으로 기괴하게 생긴 두 방울의 거품 같은 것이 부풀어 올랐다. 그것은 이상하게 일그러진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머리였다.
로켓 밖으로 사람의 형상이 부풀어 오르자, 론은 충격을 받아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처음에는 가슴, 허리, 그 다음에는 다리가 생겨나더니, 마침내 그것들은 한 뿌리에서 자라난 두 그루의 나무처럼 나란히 로켓 안에 우뚝 서서, 론과 진짜 해리의 머리 위에서 흔들거렸다. 한편 해리는 로켓이 갑자기 하얗게 달아오르며 뜨거워지자 황급히 손가락을 뗏다.
“론!”
해리가 외쳤다. 하지만 리들-해리가 볼드모트의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론은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넑을 잃고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 돌아온 거니? 우린 네가 없어서 훨씬 더 좋았어. 네가 없어서 훨씬 기쁘고 행복했다고. 우린 멍청한 너를 비웃었어. 겁쟁이에다 철면피인 너를....”
“철면피!”
리들-헤르미온느가 그의 말을 따라했다. 그녀는 진짜 헤르미온느보다 아름다웠지만, 훨씬 더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론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깔깔 웃어댔다. 론은 완전히 겁에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리핀도르의 칼은 맥없이 그의 옆에 매달려 있었다.
“누가 너를 볼 수 있겠어? 누가 너를 쳐다보기나 하겠느냔 말이야. 해리 포터가 옆에 있는데? 그 선택받은 자에 비하면, 넌 도대체 무슨 일을 했지? 그 살아 남은 아이에 비하면 도대체 넌 뭐냔 말이야?”
“론, 어서 찔러, 찌르라고!”
해리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하지만 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활짝 떠져 있었고, 리들-해리와 리들-헤르미온느의 모습이 눈동자에 비치고 잇었다. 그들의 머리카락은 마치 불길처럼 나부끼고, 그들의 눈동자는 빨갛게 타올랐으며, 그들의 목소리는 사악한 이중주를 한껏 불러 대고 있었다.
“네 엄마는 고약했어.”
리들-헤르미온느가 히죽히죽 웃고 있는 옆에서 리들-해리가 비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내가 아들이었으면 더 좋겠다고 말이야. 바꿧으면 좋겠다고.......”
“누군들 그를 더 좋아하지 않겠어? 어떤 여자가 너를 선택하겠냐고? 그에 비하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리들-헤르미온느가 깐죽거렸다. 그리고 뱀처럼 몸을 길게 늘이더니 리들-해리의 몸을 칭칭 감고 바싹 껴안았다. 마침내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그들 앞에 서 있는 론의 얼굴이 고통으로 가득 찼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어서 해, 론!”
해리가 소리쳤다.
론이 그를 향해 돌아섰다. 해리는 론의 누동자에 붉은 기가 감돈다는 생각을 했다.
“론?”
칼이 번쩍하면서 휘둘러졌다. 해리는 가까스로 몸을 던져 피했다. 쨍그랑하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길게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자신을 방어할 태세로 지팡이를 손에 든 채 황급히 몸을 돌리다가 눈에 미끄러졌다. 하지만 맞서 싸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괴물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론 만이 손에 칼을 느슨하게 움켜쥔 채 서 있었다. 그는 평평한 바위 위에 산산이 부서진 로켓 조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리는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론은 세차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붉게 충혈되지 않았고, 평소와 같은 푸른색이었다. 그리고 눈물에 젖어 있었다.
해리는 못 본 척하면서 허리를 숙여 부서진 호크룩스를 집어 들었다. 론이 양쪽 유리창을 꿰뜷었다. 리들의 눈알은 사라지고, 로켓은 얼룩진 비단 안감에서는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호크룩스 안에 살고 있던 것이 사라진 것이다. 론을 괴롭힌 것은 그것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론이 쨍그랑하며 바위에다 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두 팔로 머리를 깜싼 채,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마구 떨고 있었는데, 해리는 그게 추위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황급히 호주머니 속으로 부서진 로켓을 쑤셔 넣은 해리는 론의 옆에 가서 같이 무릎을 끓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았다. 론이 그 손을 뿌리치지 않는 것이 좋은 징조인 것 같았다.
“네가 떠난 후에 헤르미온느는 일주일 내내 울었어.”
해리는 론의 얼굴이 가려진 걸 다행으로 여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더 오래 울었는지도 몰라. 다만 내게 그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하지 않았을 뿐, 우리가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낸 밤도 수없이 많았지. 네가 가버린 후에.....”
해리는 말을 끝낼 수가 없었다. 론이 이곳에 다시 돌아온 지금에야. 비로소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엇던 것이다.
“나에게 그녀는 여동생과 마찬가지야.”
해리가 말을 이었다.
“난 그녀를 동생처럼 사랑해. 그녀도 나에 대해서 똑같이 느끼고 있을 테고, 언제나 늘 그랬어. 난 네가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해리로부터 고개들 돌리더니 소매 끝으로 소리내어 코를 닦았다. 해리는 다시 일어나서, 론의 커다란 배낭이 떨어져 있는 곳으로 걸어갓다. 론은 물에 빠진 해리를 구하기 위해서 배낭을 내동댕이치고 연못으로 허둥지둥 달려왔던 것이다. 해리는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론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해리가 다가오자, 힘들게 일어섰다.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을 분 차분했다.
“미안해.”
론이 목이 매어 말했다.
“그렇게 떠나서 미안해 나도 알아...난......난......정말.......”
론은 어둠 속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뭔가 아주 심한 욕이라도 날아와서 자신을 비난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았다.
“오늘 밤에 넌 그걸 만회했어.”
해리가 위로했다.
“이 칼도 꺼내고, 호크룩스도 파괴하고, 내 목숨도 구했잖아.”
“그렇게 말하니까, 실제보다 내가 훨씬 더 멋있는 사람처럼 들리잖아.”
론이 우물거렸다.
“원래 그런 일들은 항상 실제보다 훨씬 더 멋있게 들리는 법이니까.”
해리가 말했다
“그걸 너에게 알려 주려고 내가 몇 년동안 얼마나 애를 써왓는데.”
동시에 두 사람은 앞으로 걸어 나와 덥석 서로를 껴안았다.
해리는 여전히 흠뻑 젖은 론의 등을 꼭 잡았다.
“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시 텐트를 찾는 것 뿐이야.”
포옹을 풀고 떨어지면서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암사슴을 쫓아서 어두운 숲을 헤치고 걸어올때에는 꽤 멀게 느껴졌지만, 이제 론과 나란히 돌아가는 길은 깜짝 놀랄만큼 짧게 느껴졌던 것이다.
해리는 한시라도 빨리 헤르미온느를 깨우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성급하고 들뜬 마음으로 텐트 안에 들어갔다. 한 편 론은 약간 머뭇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연못과 숲에 있다가 들어오니, 텐트 안은 천국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텐트를 밝히는 유일한 빛인 초롱꽃 모양의 불꽃이 아직도 마루 위에 놓인 접시 안에서 깜박거리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몸을 꼬부린채, 담요 밑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해리가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헤르미온느!”
마침내 그녀가 몸을 움찔하더니, 재빨리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얼굴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무슨 일이야, 해리? 무사한 거니?”
“괜찮아. 모든 일이 다 잘됐어. 아니, 그 이상이야. 난 너무 신나. 여기 누가 왓거든.”
“그게 무슨 소리니? 누가 왔.......?”
헤르미온느가 론을 보았다. 그는 칼을 손에 든채, 낡아 빠진 카펫 위로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해리는 슬그머니 어두운 구석으로 가서 론의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텐트에 착 붙어 있으려고 했다.
헤르미온느는 미끄러지듯이 침대에서 빠져나와서, 마치 몽유병자처럼 론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시선은 파리하게 질린 론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론의 앞에 딱 멈춰 섰다. 그녀의 입술은 살짝 벌어졌고,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론은 희미하게 기대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두 팔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
헤르미온느가 앞으로 돌진하더니 닥치는 대로 마구 론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쿠....아이고머니나! 도대채...? 헤르미온느.....으윽!”
“이......천하에.....멍텅구리.......로날드......위즐리!”
헤르미온느는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주먹을 날렸다. 론은 머리를 막으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섯지만. 헤르미온느는 계속 앞으로 다가갔다.
“몇 주일이.....지나고......또 지나서....이제야......여길........기어들어 .......오다니! 이런 내 지팡이 어디있지?”
헤르미온느는 당장이라도 해리의 손에서 지팡이를 빼앗으려 달려들 기세였다. 해리는 본능적으로 방어를 했다.
“프로테고!”
보이지 않는 방어벽이 론과 헤르미온느 사이에 드리워졌다. 그 힘에 떠밀려서 헤르미온느가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하지만 그녀는 입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뱉으며 다시 발딱 일어났다.
“헤르미온느! 그만 진정....”
해리가 소리쳤다.
“난 절대 진정할 수 없어!”
헤르미온느가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이렇게 완전히 이성을 잃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마치 정신착란이라도 일으킨 것 같았다.
“내 지팡이를 돌려줘! 어서 돌려 달란 말이야!”
“헤르미온느, 제발 부탁인데..”
“나더러 이래라저래라 하지마. 해리 포터!”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당장 그거나 돌려줘! 그리고 너!”
헤르미온느가 론에게 힐난에 가득 찬 손가락질을 했다. 무슨 악랄한 저주라도 퍼부을 기세였다. 해리는 론이 얼른 몇 발자국 물러서는 것도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난 네 뒤를 쫓아서 달려갔었어! 너를 애타게 불렀단 말이야! 돌아와 달라고 사정했다고!”
“나도 알아”
론이 빌었다.
“헤르미온느, 미안해, 정말로....”
“오, 미안하단 말이지!”
헤르미온느가 날카로운 소리로 미친듯이 웃어 댔다. 롬은 도움을 청하듯이 해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해리는 그저 인상만 찡그릴 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몇 주일 동안이나 지난 이제야 돌아와 놓고, 그저 미안하고 말만 하면 모든게 괜찮아 질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내가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론이 맞받아쳤따. 해리는 론이 맞서 싸우는 걸 보니 기뻣다.
“오, 난 모르지”
헤르미온느는 지독하게 빈정대며 큰 소리로 말했다.
“네 머리나 쥐어짜 봐, 론. 그래 봤자 몇 초도 안 걸리겠지만...”
“헤르미온느”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 해리가 끼어들었다.
“론은 방금 내 목숨을 구....”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헤르미온느가 소리높여 대들었다.
“그가 무슨 짓을 했든 난 관심 없다고! 몇 주일이나 지났어! 그동안 우리가 죽었을 수도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가 아는 거라곤.....”
“난 너희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엇어!”
론이 버럭 호통을 쳤다. 처음으로 헤르미온느의 목소리가 그의 기세에 눌렸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 둘러처진 방패 마법이 허용하는 한에서 최대한 바싹 다가갔다.
“해리의 기사가 <예언자 일보>전체를 도배하고 모든 라디오마다 해리의 이름이 나오고 있어. 그자들은 지금 사방에서 너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단 말이야. 온갖 소문들과 정신 나간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지. 만약 너희가 죽었다면 나는 곧장 그 소식을 들었을 거야. 너희는 바깥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몰라서....”
“넌 어땠는데!”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이제 너무 날카롭고 높아서 겨우 박쥐 귀에나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분노는 이제 극에 다다라서 일시적으로 갑자기 말이 없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론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변명을 늘어놓았다.
“순간이동을 하자마자 나도 당장 돌아오고 싶었어. 그런데 그만 곧장 인간 사냥꾼 무리 속으로 들어가 버린 거야. 헤르미온느, 그래서 나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어!”
“무슨 무리라고?”
해리가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의자에 몸을 던지더니, 팔과 다리를 단단히 꼬고 앉았다. 몇 년간은 그걸 풀지 않을 태세였다.
“인간 사냥꾼.”
론이 말했다.
“어디나 그자들이 쫙 깔려있어. 머글 태생이나 동족의 배신자들을 체포해서 황금을 타 내려고 하는 무리들이지. 한 사람 잡아갈때마다 마법부에서 포상금을 주거든. 나는 혼자인 데다가 아직 학교에 다닐 나이로 보였기 때문에, 그자들은 신나서 어쩔 줄 몰랐어. 내가 도망 다니는 머글 태생이라고 생각한 거지. 나는 마법부로 끌려가기 전에 그자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얼른 아무 말이나 둘러대야 했어.”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스탠 션파이크라고 했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그거 뿐이더라고”
“그자들이 그 말을 믿던?”
“별로 영리한 놈들이 아니었어. 사실 그중 하나는 거의 트롤 수준이더라고, 그 역겨운 냄새하며....”
론은 헤르미온느를 슬쩍 곁눈질했다. 이 약간의 유머가 그녀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지 않았을까 기대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팔다리를 단단하게 꼬고 앉아 있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돌처럼 딱딱 하게 굳어 있었다.
“어쨋든 그자들은 내가 과연 스탠인지 아닌지를 둘러싸고 한바탕 분쟁을 일으켰어. 솔직히 딱한 마음까지 들더라니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다섯이었고, 나는 혼자뿐이었어. 그들은 내 지팡이를 빼았았지. 그런데 그중 두명이 싸움을 일으킨 거야. 다른 놈들이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나는 날 붙잡고 있던 놈의 배를 때리고, 그의 지팡이를 간신히 빼았았지. 그걸로 내 지팡이를 갖고 있던 놈에게 무장해제 마법을 날렸고, 그런 다음 순간이동을 해버렸지. 사실 별로 잘하지는 못했어. 또다시 신체 일부가 날아갔거든.”
론이 오른손을 들어서 손톱 두개가 없어져 버린 자리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싸늘하게 눈썹을 치켜세울 뿐이었다.
“난 너희가 있는 장소에서 몇 킬로 밖에 도착했어.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있었던 그 강둑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벌써 아무도 없더라.”
“아이고, 참 감동적인 이야기구나.”
헤르미온느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는 말투로 말했다.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을 때면 늘 그런 식이었다.
“너는 단지 겁에 질렸었겠지. 그동안 우린 고드릭 골짜기에 갓었는데. 해리, 생각 좀 해봐.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지? 오, 그래 그 사람의 뱀이 나타나는 바람에 우리 둘다 거의 죽을 뻔했었지. 그리고 나서 바로 그 사람이 쫓아왔고, 우린 간발의 차이로 도망쳤었지.”
“뭐라고?”
론은 입을 딱 벌린채, 그녀와 해리를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그를 완전히 무시했다.
“해리, 손톱이 없어지다니, 상상 좀 해봐! 그 이야길 들으니 우리가 어떤 고통을 당햇는지 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니? 안그래?”
“헤르미온느, 론은 방금 전에 내 목숨을 구해 주었어.”
해리가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전혀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궁금한 게 딱 한가지 있어.”
헤르미온느가 시선을 론의 머리 머머 한 곳에 고정한채, 말했다.
“오늘 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알아냈지?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야. 그걸 알게되면,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우릴 찾아오는 걸 확실히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론이 헤르미온느를 잠깐 노려보더니, 청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은색 물건을 꺼냈다.
“이거야.”
헤르미온느는 론이 꺼낸 물건이 뭔지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야했다.
“딜루미네이터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순간적으로 어찌나 놀랐는지, 쌀쌀맞고 사나운 표정을 짓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건 단지 불만 껏다 켯다 하는게 아니었어.”
론이 설명했다.
“나도 이게 어떻게 작동되는지, 그리고 어째서 다른 때는 아니고 하필 그때에 그런 작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어. 왜냐하면 나는 너희를 떠난 뒤로 줄곧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었거든. 어쨋든 나는 크리스마스에 아주 이른 새벽부터 라디오를 듣고 있었어. 그런데 들렷어.....네 목소리가 말이야.”
론이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내 목소리를 라디오에서 들었단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니, 내 호주머니에서 네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들었어. 바로, 여기서 네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니까“
론은 또다시 딜루미네이터를 들어 올렸다.
“정확히 내가 뭐라고 했는데?”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의심 반, 호기심 반이었다.
“내 이름. 론이라고, 그리고 또.... 지팡이에 대해서 뭐라고 했어.”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해리도 기억이 났다. 론이 떠난 이후 처음으로 두 사람이 론의 이름을 큰 소리로 말한 날이었다.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지팡이를 고치는 문제를 의논하다가 그 이름을 언급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이걸 꺼냈지.”
론이 딜루미네이터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별로 특별히 달라 보이는 점은 없었어. 하지만 난 분명히 네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걸 켯지. 내 방의 불이 전부사라지더니, 바로 창문 바깥에 또 다른 빛이 나타나는 거야.”
론은 다른 한 손을 들어서 자기 앞쪽을 가리켰다. 그의 눈은 해리도 헤르미온느도 볼 수 없는 뭔가를 열심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둥근 빛 덩어리 였는데, 파닥파닥 고동치고 있었고, 푸르스름한 빛을 발했어. 마치 포트키 주위에서 발산되는 빛처럼 말이야, 너희도 알지?”
“그래”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입에서 동시에 자동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게 뭔지 단박에 알아보았어.”
론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얼른 내 물건을 끌어모아 짐을 쌋어. 그런 다음 배낭을 매고 정원으로 나갔지. 그 작은 빛 덩어리는 거기에 둥둥 떠 있었어. 나를 기다리면서 말이야. 내가 집 밖으로 나가자. 그 빛은 살짝살짝 흔들리며 움직였어. 나는 그걸 따라서 창고 뒤로 갔지. 그러고는.....그러니까......그게 내 안으로 들어왓어.”
“뭐라고?”
해리는 자신이 잘못들었다고 생각하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나를 향해서 흘러 들어왔다고 해야 할까”
론이 집게 손가락으로 그 움직임을 그려 보이며 설명을 하려고 애를 썻다.
“바로 내 가슴으로 말이야. 그러더니 쑥 지나가 버렸어. 바로 여길 말이야.”
론은 심장 가까이의 한 지점을 짚었다.
“난 느낄수 있었어. 아주 뜨거웠거든. 일단 그것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자.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확실히 알게 되었어. 내가 가야만 하는 곳으로 그게 날 데려가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거지. 그래서 난 순간이동을 했고, 어느 언덕 한켠에 도착한 거야. 사방에 눈이 쌓여 있었어...”
“우리가 거기 있었지.”
해리가 말했다.
“우린 거기서 이틀을 보냈어. 두 번째 날 밤에 나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 움직이고 소리쳐 부르는 것을 들은 것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어.”
“그래, 그게 아마 나였을 거야.”
론이 말했다.
“하지만 너희의 보호마법이 작동하고 있어서, 난 너희가 어디 잇는지 보거나 들을 수도 없었어. 그래도 너희가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지. 결국 나는 침낭 속에 들어가서 너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어. 텐트를 접으려면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내게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아니, 그렇지 않았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우린 좀 더 조심하기 위해서 줄곧 투명 망토를 쓰고 순간 이동을 했거든. 게다가 우린 아주 일찍 떠났어. 왜냐하면 해리가 말한대로 근처에서 누군가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야.”
“그래, 난 그 언덕에서 하루 종일 있었어. 너희가 나타나기만을 바라면서 말이야. 하지만 다시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너희를 놓쳐 버릴 게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난 다시 딜루미네이터를 켯어. 또 푸른빛이 나오고 내 안으로 들어왔어. 난 순간이동을 했고, 바로 이 숲으로 온 거야. 그래도 여전히 너희 모습을 볼 수 없었어. 그래서 난 그저 너희 중 하나라도 언젠가는 모습을 보이겠지 하고 기대하는 수 밖에 없었어. 그런데 해리가 나타났지. 아니, 사실은 그 암사슴을 먼저 봤어.”
“네가 뭘 봤다고?”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러자 론과 해리는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엇는지 설명했다. 은빛 암사슴과 연못 속에 놓여 있던 칼 이야기를 들려주자. 헤르미온느는 심각하게 인상을 쓰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찌나 그 이야기에 열중했는지, 계속 팔다리를 꼬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 패트로누스가 틀림없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불러냈는지 못 봤단 말이야? 아무도 못 봤어? 그런데 그 암사슴이 너를 칼이 있는 곳으로 인도했구나! 정말 믿을 수가 없어! 그래서 어떻게 됐니?”
론은 자신이 어떻게 해리가 연못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지, 그리고 다시 물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는지 말해 주었다. 그리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해리를 구하고 칼을 되찾았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하지만 로켓을 여는 대목에 이르자, 론은 주저하며 말을 망설엿다. 그래서 결국 해리가 대신 말을 받았다.
“그래서 론이 칼로, 그걸 찔러 버렸어.”
“그리고.....그건 어떻게 됐어? 그때랑 똑같았니?”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어, 그러니까....비명을 지르더라.”
해리가 론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을 맺었다.
“여기 있어.”
해리가 그녀의 무릎 위로 로켓을 던졌다. 헤르미온느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더니 깨진 유리창을 살펴보았다.
한편 해리는 이제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휘둘러서 방패 마법을 해제했다. 그리고 론을 향해 돌아섰다.
“그런데, 네가 그 인간 사냥꾼들로 부터 지팡이 하나를 빼앗아 달아났다고 하지 않았니?”
“뭐라고?”
로켓을 살펴보고 잇는 헤르미온느를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던 론이 말했다.
“어, 어 그래”
론은 배낭의 걸쇠를 열고 그 주머니에서 짧고 검은 지팡이 하나를 꺼냈다.
“여기 있어. 여분으로 가지고 다니면 언젠가 쓸모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지.”
“네 생각이 맞았어.”
해리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 지팡이가 부러졌거든.”
“농담이지?”
론이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헤르미온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론은 다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헤르미온느는 망가진 호크룩스를 구슬 백 안에 넣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침대로 다시 기어 올라가 누워 버렸다.
론은 해리에게 새 지팡이를 건네주었다.
“이만한 것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
해리가 소곤거렸다.
“그래”
론도 동의했다.
“훨씬 더 끔찍 했을 수도 있어. 쟤가 나한테 새들을 날려 보냈던거 기억나지?”
“난 아직도 그 마법을 할 수 있어.”
담요 밑에서 헤르미온느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해리는 론이 배낭에서 밤색 파자마를 꺼내며 씩 웃는걸 보았다.
<죽음의 성물 2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