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장 바틸다의 비밀
"해리 멈춰"
"왜 그래?"
그들이 그 익명의 아보트 집안 사람의 무덤 앞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저기 누군가 있어. 누가 우릴 지켜보고 있어. 분명해. 저기, 저 덤블 너머에서."
그들은 서로를 꼭 붙잡은 채, 꼼짝 않고 서서 시커먼 묘지 주변을 응시했다. 해리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확실해?"
"뭔가 움직이는 걸 봤어. 맹세할 수도 있어..."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손에서 지팡이를 쥔 자신의 손을 빼냈다.
"우리는 머글처럼 보일거야."
해리가 지적했다.
"그래, 하필이면 방금 해리포터의 부모님 묘에 꽃을 놓고간 머글이지! 해리, 분명히 저기에 누군가 있다고!"
해리는 <마법의 역사>를 떠올렸다. 이 묘지에는 유령이 출몰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혹시....? 바로 그때 해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헤르미온느가 가리킨 덤블 쪽에서 쌓여 있던 눈이 가볍게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았다. 유령들은 눈보라를 일으킬 수 없다.
"저건 고양이야."
잠시 후 해리가 말했다.
"아니면 새든가. 만약 죽음을 먹는 자라면 우린 지금쯤 벌써 죽은 목숨이겠지. 어쨌든 여기서 나가자. 그럼 다시 투명 망토를 쓸 수 있어."
그들은 묘지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도, 계속해서 뒤를 흘끗 돌아보았다. 헤르미온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자신만만한 척 했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던 해리는 묘지 입구까지 와서 눈 때문에 미끄러운 포장도로에 이르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들은 다시 투명 망토를 썼다.
슬집은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술집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교회 쪽으로 다가갈 때 들었던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잠시 동안 해리는 술집 안으로 피신하자고 제안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미처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헤르미온느가 "이쪽으로 가자"고 속삭였다. 그리고는 마을로 들어온 길과 반대 방향으로 난 컴컴한 거리로 그를 잡아끌었다.
해리는 도대체 어디쯤에서 집들이 끝나고, 다시 탁 트인 들판이 나올지 통 가늠할 수 없었다. 그들은 색색깔의 전구가 반짝이는 창문과 커튼에 가려서 검은 윤곽만 보이는 크리스마스트리들을 지나, 최대한 빨리 걸었다.
"바틸다의 집을 어떻게 찾지?"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그녀는 몸을 살짝 떨면서 어깨 너머로 계속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해리? 어떻게 생각해, 해리?"
헤르미온느가 팔을 잡아당겼지만, 해리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집들이 줄지어 늘어선 거리 끝에 서 있는 커다랗고 검은 형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손을 잡아당기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 바람에 그녀는 얼음 위에서 살짝 미끄러졌다.
"해리..."
"봐...저걸 봐, 헤르미온느....."
"난 안 보여.....오!"
그는 볼 수 있었다. 피델리우스 마법은 제임스와 릴리의 죽음과 함께 소멸해 버린 게 분명했다. 해그리드가 부서진 건물 잔해 속에서 해리를 구해 낸 이래, 16년 동안 산울타리는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허리 높이까지 자라난 수풀 사이에는 그때의 잔해들이 흩어져 있엇다. 비록 검은 담쟁이와 눈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긴 했지만, 집은 대부분 여전히 건재했다. 제일 꼭대기 층의 오른쪽 부분만이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저주가 되쏘아진 장소가 바로 저기일 거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대문 앞에 서서 한때는 이웃한 집들과 똑같은 모양의 집이었을 것이 분명한 페허 더미를 올려다보았다.
"왜 아무도 다시 지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헤르미온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다시 지을 수가 없었을 거야."
해리가 대꾸했다.
"어둠의 마법으로 인해서 입은 부상과 마찬가지겠지. 그 손상은 고칠 수가 없잖아?"
해리는 망토 아래로 슬며시 손을 뻗어 녹이 잔뜩 슨, 눈 덮인 대문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다닞 그 집의 일부를 만져 보고 싶었을 뿐, 그것을 열고 싶지는 않았다.
"집 안에 들어가진 않을거지? 위험해 보여, 어쩌면.....해리, 저기봐!"
그가 대문을 만진 것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웬 표지판이 땅에서부터, 마치 빠르게 자라나는 괴상한 꽃처럼, 뒤엉킨 쐐기풀과 잡초를 뜷고 나타난 것이다. 황금색 글자들이 나무판 위에 나타났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1981년 10월31일 밤 이곳에서
릴리 포터와 제임스 포터가 목숨을 잃다.
그들의 아들 해리는 살인 저주로부터 살아남은
유일한 마법사이다.
머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 집은 포터 일가에 대한 기념비로서.
그리고 그 가족을 짓밟은 폭력에 대한 경고로서.
훼손된 상태로 보존되었다.
깔끔한 글씨로 새겨진 이 문장 주변에는, '살아남은 아니'가 탈출한 장소를 보기 위해 방문한 마녀와 마법사 들이 써놓고 간 낙서들이 가득했다. 어떤 이들은 영구 보존 잉크로 자신들의 이름을 서명해 놓기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자기 이름의 머리글자를 새겨 놓기도 했으며, 메시지를 남겨 놓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쓴 낙서들은 16년에 걸친 마법 낙서 위로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는데, 모두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신이 어디에 있뜬, 행운을 빌어요. 해리.
해리, 당신이 이것을 읽을 때, 우리 모두 당신을 응원하고 있어요!
해리 포터 만세!
"표지판 위에 이런 걸 쓰면 안 되잖아!"
헤르미온느가 몹시 분개했다. 하지만 해리는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멋지잖아! 그 사람들이 이런 걸 써 놓아서 난 기뻐. 난......"
해리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겹겹이 옷으로 몸을 감싼 사람의 그림자가 저 멀리 광장의 밝은 불빛에 윤곽을 드러낸 채, 골목길을 따라 그들을 향해 절뚝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판별하기는 어려웠지만, 여자인 것 같다고 해리는 생각했다. 그녀는 눈 쌓인 땅에 미끄러질까 봐 겁이 났는지, 아주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꼬부라진 허리와 펑퍼짐한몸, 발을 질질 끌며 걷는 걸음걸이 등 이 모든 것으로 미루어 보아, 굉장히 나이가 많은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녀가 다가오는 동안, 돌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해리는 과연 그녀가 계속 지나치고 있는 저 집들 중 하나로 들어가는지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그녀가 그러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았다. 마침내 그녀는 그들로부터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얼어붙은 길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앗다.
헤르미온느가 굳이 그의 팔을 꼬집을 필요도 없었다. 이 여인이 머글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거기에 서서, 마녀가 아니라면 결코 눈에 보이지 않을 집을 뜷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설사 마녀라고 해도, 다만 오래된 페허를 보기 위해 이 추운 밤에 외출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행동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마법의 법칙에 의하면 그 노파는 헤르미온느와 해리의 모습을 전혀 보지 못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그 노파가 그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은 물론, 그들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는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이러한 걱정스러운 결론에 막 도달했을 때, 그 노파가 장갑 낀 손을 들더니 손짓을 했다.
그러자 헤르미온느가 투명 망토 아래에서 팔짱을 꼭 끼면서 그에게 더욱 바싹 달라붙었다.
"어떻게 아는 거지?"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 노파는 다시, 더 기운차게 손을 흔들었다. 해리는 저 부름에 따르지 말아야 할 여러 가지 이유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인적 끊긴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는 동안, 노파의 정체에 대한 해리의 의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요 몇 달 동안 저 노파가 그들을 기다려 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덤블도어가 그녀에게 기다리라고 말했던 걸까? 결국은 해리가 올 것이라고? 묘지의 어둠 속에서 얼씬거렸던 사람도, 그리고 이곳까지 그들을 쫓아온 사람도 바로 저 노파였다면 당치도 않은 애기일까?하지만 그들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노파의 능력은, 그가 이전에는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덤블도어에게나 있을 법한 능력을 암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해리가 입을 열자, 헤르미온느는 헉 소리를 내며 화들짝 놀랐다.
"당신이 바틸다인가요?"
옷을 겹겹이 입은 형체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손짓을 했다.
투명 망토 아래에서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해리가 눈썹을 치켜세우자, 헤르미온느는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들은 노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즉각 노파는 돌아서더니, 그들이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서 절뚝절뚝 걸어갔다. 그들을 이끌고 몇 집을 그냥 지나친 노파는 어느 집의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노파를 쫓아서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방금 떠나온 집만큼이나 무성하게 풀이 자란 정원을 지났다. 노파는 잠시 동안 현관문에서 주섬주섬 열쇠를 찾더니, 곧 문을 열고는 그들이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물러섰다.
노파에게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어쩌면 집에서 나는 냄새였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옆을 지나서 투명 망토를 벗는 동안 해리는 계속 콧등을 찌푸렷다. 이제 그 곁에 서자 노파가 얼마나 왜소한지를 알 수 있었다. 나이를 먹어 등이 굽은 그녀는 그의 가슴 높이에도 오지 않았다. 이윽고 노파는 그들 등 뒤에서 문을 닫았다. 벗겨진 칠에 닿는 그녀의 손마디는 푸르스름하고 얼룩얼룩 반점이 있었다. 노파는 돌아서서 해리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백내장으로 혼탁했고, 늘어진 투명한 피부 속으로 움푹 꺼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터진 실핏줄과 기미로 점점이 뒤덮여 있었다. 해리는 노파가 과연 그를 알아볼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노파의 눈에는 그가 신원을 도용한, 머리가 벗겨진 머글만 보일 것이다.
노파가 좀이 슨 검은 숄을 풀자, 숱이 적은 휜머리가 드러났는데, 듬성듬성한 휜머리 사이로 두피가 훤히 보였다. 동시에 노쇠한 몸과 먼지, 빨지 않은 옷, 그리고 썩어 가는 음식물에서 비롯된 악취는 더욱 심해졌다.
"바틸다?"
해리가 되풀이해서 물었다.
노파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살갖에 와 닿는 로켓의 감촉을 느꼇다. 가끔씩 그 속에서 파닥거리거나 두근거리던 그것이 깨어났다. 그는 그것이 차가운 황금 속에서 고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엇다. 자신을 파괴할 그것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걸까? 감지할 수 있었던 걸까?
바틸다는 마치 헤르미온느를 보지 못한 것처럼, 그녀를 옆으로 밀치고 발을 질질 끌며 그들 곁을 지나, 응접실처럼 보이는 곳으로 사라졌다.
"해리, 난 이게 잘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어."
헤르미온느가 한숨을 쉬었다.
"저 노파의 몸집을 좀 봐, 혹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우리는 저 노파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야."
해리가 대답했다.
"내 말 좀 들어봐. 진작 말해 주었어야 했는데, 난 저 노파가 제정신이 아닌 걸 알고 있었어. 뮤리엘 할머니가 '망령이 들었다'고 했거든."
"오너라!"
바틸다가 건넛방에서 소리쳤다.
그러자 헤르미온느가 소스라치며 해리의 팔을 꽉 움겨쥐었다.
"괜찮아"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안심시키며 응접실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바틸다는 초에 불을 붙이면서, 방 안을 뒤뚱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곳은 몹시 더러운 건 말할 것도 없고, 촛불을 켯는데도 여전히 아주 어두웠다. 발밑에서는 두껍게 쌓인 먼지가 버석거렸고, 눅눅하고 곰팡이 핀 냄새와 더불어 고기가 썩는 듯한 더 끔찍한 냄새가 진동했다.이 노파가 혼자 잘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러 이 집에 누군가 왔던 게 언제쯤일까 의심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왜냐하면 서툴게 손으로 일일이 초를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축 늘어진 레이스 소매는 언제든 불이 옮겨 붙을 위험성이 있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해리가 앞으로 나섰다. 해리는 노파에게 성냥을 건네받아 방안 곳곳에 놓여 있는 촛대의 양초 토막들에 불을 붙였고, 노파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촛대들은 책 더미 위나 깨지고 곰팡이 슨 컵들이 가득한 보조 탁자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해리가 마지막으로 양초를 발견한 곳은, 수많은 사진들이 세워져 있는, 앞부분이 둥근 서랍장 위였다.불꽃이 살아나 춤을 추자, 반사된 빛이 먼지 낀 유리와 은 액자 위로 일렁였다. 그는 사진들이 아주 살짝 움직이는 걸 보았다. 바틸다가 불을 지피기 위해 주섬주섬 장작을 주워 모으는 동안, 그는 "테르지오"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사진들을 뒤덮고 있던 먼지가 싹 사라졌다. 해리는 즉시 가장 커다랗고 정식이 화려한 액자들에 끼워져 있던 예닐곱 장의 사진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과연 바틸다나 혹은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없앴을까 의아해하고 있을 때, 뒤쪽에 있는 사진 하나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리는 재빨리 그것을 잡아챘다.
그레고로비치의 창턱 위에 도사리고 앉아 있었던 그 젊은이, 그 금발에 유쾨한 얼굴을 한 도둑이 바로 은 액자 안에서 해리를 향해 나른하게 미소를 짓고 잇었던 것이다. 해리는 이 젊은이를 전에 어디서 보았는지 퍼뜩 생각났다. <알버스 덤블도어의 삶과 거짓말>에서 이 젊은이는 십 대 소년이었던 덤블도어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라진 사진들이 모두 어디 있는지 이제 명확해졌다. 바로 리타의 책에 실린 것이다.
"백셧 부인.....아니, 백셧 선생님!"
해리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이 사람은 누구죠?"
바틸다는 자기 대신 불을 지피고 있는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며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백셧 선생님?"
해리가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손에 든 채 다가갔다. 그 순간 벽난로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바틸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올려다보자, 그의 가슴 위에 걸린 호크룩스가 더욱 빠르게 고동쳤다.
"이 사람은 누구죠?"
해리가 사진을 앞으로 내밀며 그녀에게 물었다.
바틸다는 그것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더니 다시 해리를 올려다 봤다.
"이 사람 누군지 아세요?"
해리는 평소보다 훨씬 느리고 커다란 목소리로 질문을 되풀이했다.
"이 사람 말이에요, 그를 아세요? 이름이 뭐죠?"
하지만 바틸다는 얼빠진 표정이었다. 해리는 끔찍한 절망감을 느꼇다. 도대체 어떻게 리타 스키터는 바틸다의 기억을 풀어냈단 말인가?
"이 남자가 누구지요?"
그가 더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
"해리, 뭐 하는 거야?"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이 사진 말이야, 헤르미온느 이 사람이 바로 그레고로비치의 물건을 훔친 도둑이야!"
해리는 바틸다에게 애원했다.
"제발요! 이 사람은 누구죠?"
그러나 바틸다는 그저 그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왜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하셨죠? 백셧 부인..... 아니 백셧 선생님?"
헤르미온느도 나름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혹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
하지만 바틸다는 헤르미온느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비틀거리며 해리에게 몇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비틀며 거실 안쪽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떠나길 바라세요?"
해리가 물엇다.
바틸다는 아까와 같은 동작을 되풀이 햇는데, 이번에는 우선 해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다음엔 자기 자신을, 그리고나서는 천장을 가리켰다.
"아아, 알았어요.....헤르미온느 이분은 내가 자기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길 바라는 것 같아."
"알았어. 가 보자."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몸을 움직이는 순간, 바틸다는 갑자기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처음에는 해리,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이분은 나와 단둘이 가길 바라시나 봐."
"왜?"
헤르미온느가 따지듯이 물었다. 또렷하고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는 촛불 커진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노파는 이 시끄러운 소리에 머리를 몇 번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쩌면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그녀에게 그 칼을 내게 주라고 했을지도 몰라. 오직 나한테만!"
"넌 정말로 저 노파가 네가 누군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응, 그런 거 같아."
해리는 그의 눈을 빤히 보고 있는 뿌연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알았어. 하지만 서둘러. 해리/"
"앞장서세요."
해리가 바틸다에게 말했다.
바틸다는 그의 말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비틀거리며 그의 옆을 빙 돌더니 문을 향했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안심시키려고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 모습을 보았는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촛불이 밝혀진 난장판 속에서 두 팔로 자기 몸을 감싸 안은 채 서서, 책장 쪽을 보고 있엇던 것이다.
해리는 방을 나가면서, 헤르미온느와 바틸다 모르게 정체 모를 도둑의 사진이 들어 잇는 은 액자를 겉옷 속에 슬쩍 집어 넣었다.
층계는 좁고 가팔랐다. 혹시라도 바틸다가 뒤로 넘어져서 그를 덮칠까 봐, 해리는 바틸다의 펑퍼짐한 엉덩이를 손으로 받쳐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틸다는 느릿느릿, 씩씩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장 오른쪽으로 돌아서 그를 천장이 낮은 침실로 인도했다.
그곳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너무나 끔찍한 냄새가 났다. 바틸다가 문을 닫기 직전에 해리는 침대 밑으로 삐죽 튀어나온 요강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내 어둠이 모든 걸 집어삼켜 버렸다.
"루모스"
해리가 주문을 외우자, 그의 지팡이에 불이 켜졌다. 순간 해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불과 몇초도 안되는 사이에 바틸다가 어둠을 틈타 그의 곁으로 바싹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다가오는 소리조차 전혀 들리지 않았다.
"네가 포터라고?"
그녀가 속삭였다.
"예, 그렇습니다."
바틸다는 천천히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호크룩스가 아주 빠르게, 그의 심장보다 더 빠르게 고동치는 것을 느꼇다. 그것은 불쾌하고 자극적인 느낌이었다.
"제게 줄 것이 있으신가요?"
해리가 물었지만, 그녀는 불 켜진 지팡이 끝에 정신이 팔린 듯 했다.
"제게 줄 것이 있으신가요?"
그가 다시 재촉했다.
그러자 바틸다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동시에 몇가지 일들이 벌어졌다. 해리의 흉터가 고통스럽게 쿡쿡 쑤시면서 호크룩스가 꿈틀 움직였던 것이다. 스웨터의 앞부분이 불룩 들릴정도였다. 어둡고 악취가 나는 방이 한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는 갑작스러운 희열을 느꼈고, 높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녀석을 잡아!
해리는 서 있던 자리에서 휘청했다. 어둡고 구린내 나는 방이 다시 그의 주위를 에워싸는 듯했다. 그는 방금 무슨일이 벌어진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제게 줄 것이 있으신가요?"
해리가 훨씬 큰 소리로 세 번째로 질문했다.
"여기 이쪽으로."
바틸다가 구석을 가리키며 조그만 목소리 말했다. 해리는 지팡이를 치켜들었고,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아래에서 마구 어지렵혀진 화장대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바틸다가 먼저 그를 인도하지 않았다. 해리는 지팡이를 치켜든 채, 그녀와 헝클어진 침대 사이를 비집고 나아갔다. 하지만 바틸다로부터 한시라도 시선을 떼고 싶지 않았다.
"이게 뭐죠?"
화장대에 이르렀을 때, 그가 물었다. 화장대에는 더러운 세탁물처럼 보이는, 냄새 나는 뭔가가 높이 쌓여 있었다.
"거기."
되는대로 쌓아 올려진 무더기를 가리키며 바틸다가 말했다.
해리가 칼자루나 루비를 찾아보려고 뒤죽박죽 엉켜 있는 더미로 눈길을 돌린 그 순간, 바틸다가 이상한 몸짓을 했다. 해리는 곁눈으로 힐끗 보았다. 노쇠한 몸뚱이가 스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그녀의 목이 있던 자리에서 거대한 뱀이 기어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 해리는 경악하며 공포에 사로잡혀 버렸다.
해리가 지팡이를 치켜들자, 뱀이 공격했다. 팔뚝을 덥석 물어뜯는 뱀의 위력에 지팡이가 빙글빙글 돌면서 천장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지팡이의 불빛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방안을 빙빙 돌더니, 그만 꺼져 버렸다. 해리는 강력한 꼬리의 일격을 맞고 숨이 끊어질 듯했다. 그리고 화장대 위 더러운 옷 더미 속으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옆으로 몸을 굴려서 가까스로 뱀의 꼬리를 피했다. 뱀의 꼬리는 그가 1초 전까지 있었던 화장대 위를 후려쳤다. 화장대 유리 파편들이 바닥에 쓰러진 해리 위로 비처럼 쏟아졌다. 아래층에서 헤르미온느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
하지만 해리는 숨이 먹혀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곧 육중하고 미끈한 덩어리가 그를 바닥에 패대기 쳤고, 그것이 그의 몸위로 미끄러져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아주 힘이 세고 억센.....
"안돼!"
그가 바닥에 꼼짝없이 짓눌린 채,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돼."
그 목소리가 속삭였다.
"되고말고... 너를 잡을 거야. 너를 잡아......"
"아씨오....아씨오 지팡이........"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뱀을 떼어 내기 위해 두 손을 써야했다. 뱀은 그의 몸통을 칭칭 감고 숨통을 조이면서 호크룩스를 그의 가슴으로 세게 내리눌렀다. 살아서 고동치는 싸늘한 얼음 덩어리가 미친 듯이 퍼덕거리는 그의 심장으로부터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의 머리는 차갑고 새하얀 빛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모든 생각이 백지장처럼 사라지고, 숨이 막혀 질식할 지경이었다. 아득한 발소리. 모든 것이 사라진다......
금속 심장이 그의 가슴 밖에서 쾅쾅거리고 있었다.이제 그는 하늘을 날고 있엇다.의기양양한 승리감으로 한껏 부풀어서. 빗자루도, 세스트랄도 필요 없이...
갑자기 해리는 시큼한 냄새가 진동하는 어둠 속에서 깨어났다. 내기니가 그를 풀어 준 것이다. 그는 버둥대며 황급히 일어났다. 층계참에서 흘러 들어온 불빛에 뱀의 윤곽이 드러났다. 뱀이 공격을 가하자, 헤르미온느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커튼이 쳐진 창문이 그녀의 빗나간 주문에 맞아서 산산조각났다. 차가운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해리가 쏟아지는 유리 조각들을 피해서 머리를 홱 숙였을 때, 그의 발이 뭔가 연필 같은 것을 밟고 미끄러졌다. 그의 지팡이였다.
그는 몸을 숙여 지팡이를 잽싸게 움켜쥐었다. 이제 뱀은 꼬리를 휘두르며 방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었다. 헤르미온느의 모습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한순간 해리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 쿵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빨간 불빛이 번쩍였다. 곧이어 허공을 붕 날아온 뱀이 해리의 얼굴을 정통으로 철썩 때리고 달아났다. 뱀은 묵직한 똬리를 칭칭 틀면서 천장으로 기어 올라갔다. 해리는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흉터가 불로 지지는 듯 더욱 고통스럽게 쑤셨다. 지난 몇 년간 그랬던 것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그가 다가오고 있어!" 헤르미온느, 그가 오고 있어!"
그가 소리치자, 뱀이 거칠게 쉭쉭 소리를 내며 기어 내려왔다.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뱀은 벽에 걸린 선반들을 부숴버렸고, 깨진 도자기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해리는 침대 위로 튀어 올라, 헤르미온느 같이 보이는 검은 형상을 붙들었다.
그가 침대 위로 그녀의 등을 잡아당기자, 헤르미온느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뱀은 또다시 몸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뱀보다 더 나쁜 게 다가오는 걸 느꼇다. 그것은 아마 이미 현관문께에 있을 것이다. 그의 머리는 흉터의 고통으로 쪼개지려고 했다.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잡아끌며 펄쩍 뛰어오르자, 뱀이 돌진했다. 하지만 뱀이 공격을 가하는 순간, 헤르미온느가 "콘프링고!"하고 소리쳤다. 주문은 방을 가로질러 옷장 거울을 폭파한 후에 바닥과 천장에 부딪히며 다시 그들을 향해 튕겨 나왔다. 해리는 주문의 열기가 손등을 뜨겁게 지지는 것을 느꼇다. 유리 조각이 그의 뺨을 스쳤다.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잡아당기면서 침대에서 부서진 화장대 위로 풀쩍 뛰었다. 그리고 곧장 깨진 유리창을 통해 텅 빈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그들이 공중에서 몸부림치는 동안, 헤르미온느의 비명 소리가 어둠을 뜷고 메아리쳤다.
그때 그의 흉터가 터져 버렸다. 이제 그는 볼드모트가 되어 지저분한 침실을 가로질러 뛰고 있었다. 그의 길고 하얀 손이 창틀을 움켜쥐었고, 그는 대머리 남자와 조그만 여자가 몸부림치며 사라지는 것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는 분노에 가득 찬 절규를 토했고, 그 절규 소리는 그 여자의 비명 소리와 뒤섞여,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뜷고 어두운 정원에까지 울려퍼졌다......
그의 절규는 해리의 절규였고, 그의 고통은 해리의 고통이었다.... 그 일이 바로 여기서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미 전에 한 번 일어났었던 이곳에서....이곳,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거의 깨달을 뻔했던 바로 그 집이 빤히 보이는 이 자리에서......죽는다는 것.....그 고통은 너무나 끔찍했다..... 몸에서 찢겨 나가는 고통..하지만 육체가 없다면 머리는 왜 이토록 지독하게 아픈 걸까? 만약 죽은 거라면, 어떻게 이토록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고통이 죽음과 함께 멈추지 않았단 말인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습하고 바람이 불던 그날 밤, 호박 분장을 한 두 아이가 뒤뚱거리며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가게 유리창들은 종이 거미들과, 그들이 믿지도 않는 세계에 대한 모든 조잡한 머글 장식품들로 가득했다........ 그는 스르르 미끄러져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언제나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확고한 목적의식 힘과 정당성을 알고 있었다.....분노는 아니었다.......분노는 약한 자들의 것이다......하지만 승리, 그래.... 그는 이것을 기다렸고, 그리고 갈망했다.
"훌륭한 분장이네요, 아저씨!"
소년이 망토의 두건 아래로 드러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는 그 조그만 아이의 미소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분장한 아이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아이는 뒤돌아 도망쳤다..... 그는 망토 아래로 지팡이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한번의 간단한 동작이면 그 아이는 영영 엄마에게로 돌아갈 수 없을것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아주 쓸데없는 짓이었다....
더 어두운 새로운 거리를 따라서 그는 움직였고, 이제 마침내 목적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비록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피델리우스 마법은 깨졌다... 그는 보도위를 구르는 낙엽보다도 더 조용히, 어두운 산울타리와 같은 높이로 몸을 숙인 채, 그 너머를 응시했다.
그들은 커튼을 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작은 응접실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안경을 쓴, 키가 큰 검은 머리의 남자는 파란 잠옷을 입은 검은 머리의 조그만 남자 아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지팡이에서 색색의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그 연기를 잡으려고, 조그만 손으로 그것을 움켜지려고 하고 있었다.
이때 문이 열리고, 엄마가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 어떤 말을 하며 들어왔다. 짙은 붉은색의 긴 머리가 그녀의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이제 아빠는 아이를 들어 올려 엄마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소파위에 던져 놓고 몸을 쭉 뻗으며 하품을 했다....
그대 대문을 미는 순간, 그것은 희미하게 끽 소리를 냈지만, 제임스 포터는 듣지 못했다. 그의 하얀 손이 망토 아래에서 지팡이를 꺼내 문을 가리키자 문이 활짝 열렸다.
제임스가 현관 복도로 잽싸게 뛰어왔을 때, 그는 이미 문지방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쉬운 일이었다. 너무 쉬웠다. 제임스는 심지어 지팡이조차 들고 나오지 않았다....
"릴리, 해리를 데리고 가! 그자야! 어서 가! 뛰어! 내가 막을게!"
나를 막는다고, 지팡이도 없이!...... 그는 저주를 내리기 전에 웃어 댔다....
"아바다 케다브라!"
초록 불빛이 비좁은 현관 복도를 가득 채웠다. 벽에 기대 놓은 유모차에 불이 붙었고, 피뢰침에 번개가 떨어진 것처럼 계단 난간이 불타올랐다. 제임스 포터는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그는 위층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록 덫에 걸리긴 했지만, 분별력만 있다면, 적어도 그 여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 주위에 바리케이드를 치려고 시도하는 소리를 듣고 희미한 기쁨을 느끼며 층계를 올라갔다. 그 여자 역시 지팡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자들은 어찌나 어리석고, 어찌나 사람을 쉽게 믿는지, 자신들의 안전은 친구들이 책임지고 있다고, 무기는 잠시 동안 놓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강제로 문을 열었다. 단 한번 지팡이를 느긋하게 놀리자, 다급히 문 앞에 쌓아 놓은 의자와 상자들은 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거기에 여자가 그 아이를 품에 안은채, 서 있었다. 그를 보자, 그녀는 뒤에 있는 아기 침대 속에 아들을 내려놓고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라도 된다는 듯이, 아이를 가림으로써 그녀가 대신 선택되기를 바란다는 듯이...
"해리는 안 돼요. 해리는 안돼요. 제발 안돼요!"
"물러서라, 이 바보같은 계집...물러나 당장."
"해리는 안돼요. 제발 안돼요. 날 데려가요. 대신 날 죽여요."
"마지막 경고다."
"해리는 안돼요! 제발.....자비를 베푸세요....제발요....해리는 안돼요! 해리는 안돼요! 제발, 제가 무슨 일이든 하겠어요."
"물러서라, 물러서라니까."
그는 그녀를 강제로 아기 침대 앞에서 끌어낼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를 끝장내는 것이 더욱 현명한 행동인 듯 싶었다.
초록 불빛이 방 안에서 번쩍하더니, 그녀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쓰러졌다. 아이는 그동안에도 줄곧 울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아기 침대의 가로대를 붙잡고 일어서더니, 환하게 웃으며 침입자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망토 속에 숨은 사람은 더 예쁜 불꽃들을 쏘고 있는 아빠라고, 그리고 엄마는 언제라도 웃으면서 벌떡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남자 아이의 얼굴에 겨누었다. 그는 그 일이 벌어지는 걸 보고 싶었다. 이해할 수 없는 위험 요소인 바로 이 아이의 파멸을.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녀셕은 그가 제임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는 녀석이 울어대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고아원에서도 징징대는 녀석들을 도저히 참아 낼 수 없었다.
"아바다 케다브라!"
그리고 그가 쓰러졌다. 오직 고통과 두려움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숨어야만 했다. 이 아이가 침대에 갇힌채 악을 쓰고 있는 이곳, 페허가 된 이 집이 아닌, 어딘가 멀리..... 저 멀리로...
"안돼."
그는 신음했다.
뱀이 난장판이 된 더러운 바닥 위로 와삭와삭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는 그 남자 아이를 죽였었다. 하지만 그가 그 남자 아이였다....
"안돼........"
이제 그는 바틸다 집의 부서진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자신의 가장 커다란 실패의 기억에 사로잡힌 채, 그의 발치에서는 거대한 뱀이 깨진 도자기와 유리 위로 미끄러져 갔다. 그때 그가 바닥을 내려다봤고, 무언가를 발견했다.... 무언가 믿을 수 없는 것을......
"안돼."
"해리, 괜찮아, 넌 괜찮다고!"
그는 몸을 숙여 떨어진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 속에 그 자가 있었다. 정체불명의 도둑,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도둑이.....
"안돼...... 내가 그걸 떨어뜨렸어.... 내가 떨어뜨렸어........"
"해리, 괜찮아. 일어나, 일어나!"
그는 해리였다........ 볼드모트가 아닌 해리......그리고 바스락거리고 있는 것은 뱀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번쩍 떳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괜......괜찮은 거야?"
"응"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는 텐트 안에 있엇다. 담요를 겹겹이 덮은 채, 아래쪽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텐트 지붕 너머로 보이는 차갑고 희미한 빛과 사방을 감싼 정적으로 미루어 보아, 이제 거의 새벽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엇다. 침대 시트와 담요가 축축했다.
"우리는 도망쳤구나."
"그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널 침대에 눕히기 위해서 난 공중 부양 마법을 써야했어. 널 들어 올릴 수가 없더라고, 넌.......그러니까... 넌 아주........"
그녀의 갈색 눈 밑에는 검푸른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해리는 그녀가 쥐고 있는 조그만 스펀지를 보았다. 헤르미온느는 지금까지 그의 얼굴을 닦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넌 아팠어."
그녀가 말을 맺었다.
"많이 아팠어."
"우리가 떠난 지 얼마나 됐지."
"몇 시간쯤. 이제 거의 아침이야."
"그리고 그동안 난........뭐야 의식이 없었다고?"
"정확히 그런 건 아니고"
헤르미온느가 주저하며 말했다.
"넌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신음하고....뭐 그랬어."
헤르미온느는 웬지 해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조로 덧붙였다. 그가 무슨 짓을 했던 걸까? 볼드모트처럼 저주를 퍼붓고, 아기 침대 속의 아기처럼 울어 댔을까?
"난 도저히 호크룩스를 네게서 벗길 수가 없었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해리는 그녀가 화제를 바꾸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게 달라붙었어. 네 가슴에 말이야. 그 바람에 흉터가 생겼어. 미안하지만, 그걸 떼어 내기 위해서 잘라 내기 마법을 써야 했거든. 그리고 넌 뱀에게 물리기도 했어. 하지만 내가 상처를 소독했고, 거기에 디터니 원액을 발라 줬어....."
해리는 입고 있던 땀에 젖은 티셔츠를 벗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로켓이 불로 지진 듯이 달라붙었던 곳, 바로 그의 심장 위쪽에 새빨간 타원형의 흉터가 보였다. 팔뚝에서는 반쯤 치유된 물린 자국도 볼수 있었다.
"호크룩스는 어디에 뒀어?"
"내 백 속에 잠시 동안 그걸 따로 보관해야 할 것 같아."
그는 배개 위에 드러누워, 수척하고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고드릭 골짜기에 가지 말았어야 했어.내 잘못이야. 다 내 잘못이야. 헤르미온느,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니야. 나도 가고싶어 했잖아. 난 정말로 덤블도어 교수님이 널 위해 그곳에 칼을 남겨 두었으맂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 그렇다면....우리가 잘못 짚은 거구나, 그렇지?"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해리? 바틸다가 널 위층에 데리고 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뱀이 어딘가에 숨어있었니? 그게 그냥 튀어 나와서 그녀를 죽이고 널 공격했니?"
"아니야"
그가대답했다.
"그녀가 뱀이었어...... 아니면 뱀이 그녀였든가........애초부터 말이야."
"뭐.......뭐라고?"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도 자신의 몸에서 바틸다 집의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모든 일들이 끔찍할 만큼 생생하게 떠올랐다.
"바틸다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던 게 분명해. 그 뱀은......그녀의 몹속에 있었어. 그 사람이 그 뱀을 고드릭 골짜기에 두었던 거야. 기다리도록 한 거지. 네가 맞았어. 그는 내가 그곳으로 돌아갈 거란 걸 알았던 거야."
"뱀이 바틸다의 몸속에 있엇다고?"
해리는 다시 눈을 떳다. 헤르미온느는 불쾌하고 역겨워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루핀은 우리가 결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마법이 존재할 거라고 했잖아."
해리가 입을 열었다.
"바틸다는 네가 있는 앞에서는 절대 말하려 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건 파셀통그였기 때문이야. 전부 파셀통그였어. 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햇지. 물론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어. 일단 우리가 그 방에 올라가자, 뱀은 그 사람에게 전갈을 보냈던 거야. 난 내 머릿속에서 그일이 벌어지는 소리를 들었어. 그자가 흥분하는 것도 느꼇어. 그자는 나를 거기에 잡아두라고 말했어.......그리고......."
그는 뱀이 바틸다의 목에서 기어 나오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그런 자세한 부분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변했어. 뱀으로 변하더니, 공격했지."
해리는 물린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그 녀석은 날 죽이려던게 아니었어. 그냥 그 사람이 올때까지 날 붙잡고 있으려던 거였어."
어떻게 해서든 뱀이라도 죽였더라면, 그만한 보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고생들이.... 해리는 낙심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담요를 밀쳤다.
"해리, 안돼. 넌 충분히 쉬어야 한단 말이야."
"잠이 필요한 건 너야.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 하지만 지금 네 모습은 정말 형편없어. 난 괜찮아. 내가 잠깐 망을 보고 있을게, 내 지팡이 어디 있어?"
헤르미온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 지팡이 어디 있어, 헤르미온느?"
헤르미온느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그녀의 두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쳤다.
"해리....."
"내 지팡이 어디 있냐고!"
헤르미온느는 침대 옆으로 손을 뻗더니, 그것을 그에게 내놓았다.
서양호랑가시나무와 불사조 깃털 지팡이는 두 조각이 나 있었다. 연약한 불사조 깃털 한 가닥만이 부러진 두 조각을 간신히 이어 놓고 있었다. 지팡이는 완전히 부러진 것이다. 해리는 마치 그것이 끔찍한 부상을 당한 생명체인 양. 두 손에 올려놓았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경악과 공포로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잠시 후 그는 지팡이를 헤르미온느에게 내밀었다.
"고쳐 봐, 부탁이야."
"해리, 내 생각에, 이렇게 부서졌을 때엔........"
"제발, 헤르미온느, 시도라도 해봐"
"레....레파로."
덜렁거리는 지팡이 반쪽이 다시 붙었다. 해리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루모스!"
지팡이에서 약하게 불꽃이 튀더니, 곧 꺼져 버렸다. 해리는 그것으로 헤르미온느를 가리켰다.
"엑스펠리아르무스!"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는 약간 움찔했지만, 그녀의 손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법을 부리려던 그 미약한 시도조차 해리의 지팡이에게는 무리였는지, 그것은 다시 두 조각이 나버렸다. 해리는 자신의 지팡이를 뜷어져라 바라보았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많은 일들을 격고도 무사했던 이 지팡이가......
"해리"
헤르미온느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조용히 속삭였다.
"너무, 너무 미안해. 아마 내가 그런 것 같아. 우리가 거길 떠 날 때. 너도 알다시피 뱀이 쫓아왔잖아. 그래서 내가 폭발 저주를 쐈는데, 그게 사방으로 튀는 바람에. 그래서 그게...그게 맞은 게 분명해...."
"그건 사고였어."
해리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너무나 공허하고 온몸이 마비 된 것만 같았다.
"아.........아마 고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해리, 그럴 수 잇을 거 같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기억나니? 론 말이야. 론이 차와 부딪혀서 지팡이를 부러뜨렸을 때 기억나? 그 지팡이는 두 번 다시 예전처럼 되지 않았잖아. 그래서 결국 론은 새걸 사야만 햇어."
해리는 볼드모트에게 유괴되어 인질로 잡혀 있는 올리밴더를 떠올렸다. 그리고 죽어 버린 그레고로비치를 기억했다. 이제 무슨 수로 새 지팡이를 장만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해리가 억지로 덤덤한 목소리를 지어내며 말했다.
"그럼, 지금은 잠시 네 걸 빌리지 뭐, 내가 보초를 서는 동안."
헤르미온느는 눈물로 번들거리는 얼굴로, 지팡이를 해리에게 건넸다. 해리는 오직 그녀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심정으로, 자신의 침대 옆에 앉아 있는 그녀를 두고 자리를 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