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장 (173/194)

제 16장 고드릭 골짜기

다음 날 눈을 뜬 해리는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아 어제 일을 떠올렸다. 그는 어린애처럼 그 일이 꿈이기를, 론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배게 위에서 머리를 돌리자, 론의 텅 빈 침대가 보였다. 그것은 마치 시신인 양 그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해리는 론의 침대로부터 애써 눈길을 돌리며,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헤르미온느는 이미 부엌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에게 아침 인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옆을 지나가자, 잽싸게 얼굴을 돌렸다.

정말 떠났구나. 해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론은 떠났어. 마치 반복해서 곱씹으면 그 충격이 무뎌지기라도 할 것처럼, 해리는 몸을 씻고 옷을 입는 동안에도 줄곧 그 생각만 했다. 론은 떠났고 돌아오지 않을거야.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해리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보호 마법이 걸려있는 이상, 머잖아 그들이 이것을 떠나고 나면 론이 그들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말없이 아침을 먹었다. 헤르미온느의 눈은 퉁퉁 붓고 새빨갛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것 같았다. 짐을 꾸릴 때에도 헤르미온느는 자꾸 뭉그적거렸다. 해리는 왜 그녀가 이 강둑에서 시간을 끌려고 하는지 충분히 짐작했다. 몇 번이나 번쩍 고개를 치켜드는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폭우 속에서 발소리라도 들은 줄로 착각 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무 사이로 빨간 머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한 가닥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따라서 덩달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끝내 비가 할퀴고 간 숲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또다시 작은 분노가 마음속에서 폭발했다. “우리는 네가 무었을 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라고 외치는 론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해리는 명치가 꽉 막힌듯한 기분을 느끼며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들 옆으로 탁한 강물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었고, 머잖아 강둑 위로 흘러넘칠 기세였다. 평소 같으면 이미 야영지를 떠낫을 시간을 넘긴 후에도, 그들은 한 시간은 족히 더 서성거렸다. 구슬 백을 세 번이나 정리한 헤르미온느는 마침내 더 이상 머뭇거릴 구실을 찾을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그녀와 해리는 손을 잡고 뿅 하고 사라졌다가, 히스로 뒤덮인 바람 부는 산중턱에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손을 탁 놓아 버리더니 멀리 걸리 걸어가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파르르 몸을 떨었다. 아마도 흐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자신이 가서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를 꼼짝하지 못하게 그 자리에 묶어 두고 있었다. 마음속이 온통 차갑고 답답하기만 했다. 또다시 론의 얼굴에 떠올랐던 경멸스런 표정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해리는 괴로워하는 헤르미온느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히스를 헤치고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고 평소 같으면 헤르미온느가 그들의 안전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행했을 주문들을 외웠다.

그 후로 며칠동안 그들은 론에 대해서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해리는 그의 이름을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을 작정이었고, 헤르미온느 역시 억지로 결론을 지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아는 듯 했다. 하지만 밤이면 이따금 해리가 잠이 들었다고 생각한 헤르미온느가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한편 해리는 새삼스럽게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다시 꺼내어, 지팡이 불빛 아래에서 살펴보는 일을 시작했다. 론의 이름이 표시된 점이 호그와트의 복도에 다시 나타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순수혈통이란 신분 덕분에 보호받은 론이 무사하게 안락한 성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하지만 론의 이름은 끝내 지도에 나타나지 않았다. 잠시 후 해리는 지도를 꺼내 놓고 여학생 기숙사에 있는 지니의 이름만을 뜷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 점을 뜷어지게 바라보는 자신의 강렬한 시선이 잠을 자고 있는 지니에게 전해지지는 않을까, 그래서 자신이 그녀를 생각하고 있으며, 무사하기만을 바란다는 걸 어떻게든 알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낮이 되면 그들은 그리핀도르의 칼이 있을 만한 곳을 생각 해 내려고 애를 썻다. 하지만 덤블도어가 그것을 숨겼을지 모를 장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들의 결론은 점점 더 무모하고 황당해졌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해리는 덤블도어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길 만한 장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결국에는 론에게 더 화가 난 건지, 덤블도어에게 더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네가 무엇을 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우린 덤블도어 교수님이 너에게 앞으로 할 일을 모두 일러 주신 줄 알았단 말이야. 너에게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줄 알았다고!

그는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속일 수는 없었다. 론의 말이 옮았다. 덤블도어는 그에게 사실상 아무것도 남겨 주지 않았다. 그들은 호크룩스를 단 한개 발견했지만, 그것을 파괴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호크룩스들은 여전히 손에 넣을 수 없는 상태였다. 절망감이 그를 집어삼키려 했다. 이제야 그는 이 정처없고 무의미한 여정에 동참하겠다는 친구들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자신이 너무 몰염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몹시 심란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아무 묘안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헤르미온느마저 완전히 질렸다고 그만 떠날 거라고 통고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을까, 계속해서 초조하게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한마디 말도 없이 며칠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마치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론이 떠난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메워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열심히 그의 초상화를 꺼내어 의자위에 세워 놓았다. 한편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해리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좀 더 알아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며칠에 한 번씩 눈이 가려진채 다시 나타나는데에 동의했다. 해리 역시 그를 보는 것이 심지어 기쁘기까지 했는데, 비록 거만하고 빈정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을 찾아오는 유일한 방문자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딱 맘에 드는 정보 제공자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호그와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소식이라면 무엇이든 기뻐하며 들었다. 나이젤러스는 자신이 학교를 운영했던 이후로, 처음 임명된 슬리데린 출신 교장인 스네이프를 존경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스네이프를 비판하거나, 그에 대해 부적절한 질문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즉시 자신의 그림에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어떤 실마리들을 흘리고 갔다. 스네이프는 골수분자 학생들로부터 끊임없이 경미한 수준의 저항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지니는 호그스미드 출입이 금지되었고, 스네이프는 세명 이상의 학생들의 모임 및 비공식적인 학생 모임을 금하는 엄브릿지의 낡은 포고령을 복원시켰다.

그 모든 소식들을 통해서, 해리는 지니가 아마도 네빌과 루나와 함께, 덤블도어의 군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간간이 들리는 이런 불충분한 소식 때문에 해리는 지니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복통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소식은 해리로 하여금 또다시 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고, 덤블도어에 대해 그리고 거의 옛 여자친구만큼이나 그리운 호그와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스네이프의 엄격한 조치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 해리는 그저 학교로 돌아가서 스네이프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가세하는 장면을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한순간 미칠 듯한 광기에 사로잡혔다. 그 순간에는 잘 먹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다른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야말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인 듯이 그껴졌다. 하지만 곧이어 자신이 기피대상자 1번이고, 그의 머리에 만 갈레온의 포상금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요즘 같은 시기에 호그와트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마법부로 걸어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실제로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소재에 대해서 은근슬쩍 유도심문을 함으로써, 무심코 이 사실을 강조하곤 했다. 그가 그럴 때마다, 헤르미온느는 황급히 구슬 백 속에 그를 도로 쑤셔 넣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이러한 불쾌한 작별이 있은 뒤에는 항상 며칠씩 다시 나타나기를 거부했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다. 그들은 한 지역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된서리가 가장 큰 걱정거리인 영국의 남부지방에 머무는 대신, 나라 안 여기저기를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 진눈깨비가 몰아치는 산중턱도, 텐트에 차가운 물이 들이치는 드넓고 편평한 늪지대도, 밤에 눈이 텐트를 반쯤 파묻어 버리는 스코틀랜드의 호수 한가운데의 작은 섬도 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벌써 몇몇 응접실 창문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저녁, 해리는 자신들이 아직 탐색해 보지 않은 유일한 길을 다시 한 번 제안해 보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은 방금 평소와 다르게 푸짐한 식사를 마쳤다. 헤르미온느가 투명 망토를 입고 슈퍼마켓에 다녀왔던 것이다.(물론 가게를 나오면서 양심적으로 열려 있는 서랍에 돈을 집어넣었다.)해리는 볼로냐 스파게티와 배 통조림으로 잔뜩 배를 채웠으니, 어쩌면 헤르미온느를 설득하는것이 평소보다 좀 더 쉬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몇 시간 동안 호크룩스를 걸지 말고 휴식을 취하자고 제안하는 선견지명까지 발휘했던 것이다. 지금 그 로켓은 해리 옆의 침대 가장자리 위에 메달려 있었다.

“헤르미온느?”

“어?”

그녀는 <방랑시인 비들의 이야기>를 손에 든 채, 푹 꺼진 안락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해리는 과연 그녀가 그 책애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어쨋거나 그것은 별로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그책에서 무언가를 해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주술사의 문자표>가 의자 팔걸이 위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몇 년 전, 허가서에 서명해 달라고 이모와 이모부를 설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맥고나걸 교수에게 호그스미드에 갈 수 있느냐고 물어볼 때와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

“헤르미온느, 생각해 봤는데...”

“해리, 나좀 도와줄래?”

헤르미온느는 그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방랑시인 비들의 이야기>를 내밀었다.

“이 상징을 봐.”

그녀가 어느 페이지의 윗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이야기의 제목이라고 짐작되는 것(해리는 룬 문자를 읽을 줄 몰랐으므로, 확신 할 수는 없었지만) 위에 삼각형 모양의 눈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었다.  그 눈의 눈동자에는 세로로 선이 그어져 있었다.

“난 고대 룬 문자 수업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 헤르미온느”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것은 룬 문자가 아니야. 문자표에도 없어. 난 줄곧 눈을 그린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아닌것 같아.! 이건 잉크로 그려져 있어. 봐 누군가 거기에 그려넣은 거야. 이건 원래 책애 인쇄된 게 아니라고. 잘 생각해봐. 너 이거 본 적 있지 않니?”

“아니..아냐. 잠깐만.”

“이거 혹시 루나의 아버지가 목에 걸고 있던 것과 똑같은 상징 아니니?”

“맞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어!”

“그렇다면 그건 그린델왈드의 상징이야”

헤르미온느는 입을 딱 벌린채, 해리를 바라보앗다.

“뭐?”

“크룸이 얘기해 줬어...”

그는 빅터 크룸이 결혼식장에서 해 준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헤르미온느는 경악한 듯했다.

“그린델왈드의 상징이라고?”

그녀는 해리와 괴상한 상징을 번갈아 가면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린델왈드가 상징 같은 걸 갖고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 내가 그에 대해 읽었던 어느 책에도 그런 언급은 없었는데.”

“그러니까, 크룸은 그 상징이 덤스트랭 벽에 새겨져 있었고, 그린델왈드가 거기에 그것을 새긴 거라고 생각했어.”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낡은 안락의자에 도로 주저앉았다.

“그것 참 이상하네, 만약 그게 어둠의 마법의 상징이라면 동화책에 그게 왜 있지?”

“그러게, 이상하네!”

해리가 맞장구 쳤다.

“게다가 스크림저도 그걸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는 장관이었고, 분명 어둠의 마법쪽으로 전문가였을 텐데 말이야.”

“그래...아마도 그는 나처럼 그게 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책에 있는 다른 이야기들도 제목위에 작은 그림이 그려져 있거든.”

헤르미온느는 말없이 괴상한 상징에 대한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었다. 이윽고, 해리가 다시 말을 꺼냈다.

“헤르미온느?”

“어?”

“줄곧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나....난 고드릭 골짜기에 가고싶어.”

헤르미온느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초점이 없이 흐릿했다. 해리는 그녀가 아직도 책에 나온 그 수수께끼 같은 상징에 대해서 골몰하고 있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나도 계속 그런 생각을 해 왔어. 정말로 그래야 할 것 같아.”

“너, 내말 제대로 알아들은 거니?”

해리가 물었다.

“물론이야. 고드릭 골짜기에 가고 싶다는 거잖아. 나도 동의해. 사실 꼭 가봐야 할것 같아. 내 말은, 거기 이외에는 달리 우리가 갈 곳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위험하긴 하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거기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

“어...뭔가 거기에 있는다는 거지?”

해리가 물었다.

그러자 헤르미온느는 그만큼이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칼 말이야. 해리! 덤블도어교수님은 네가 그곳에 가 보고 싶어 할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셨을 거야. 게다가 고드릭 골짜기는 고드릭 그리핀도르가 태어난 곳이자나.”

“정말이야? 그리핀도르가 고드릭 골짜기 출신이라고?”

“해리 넌 도대체 <마법의 역사>를 펼쳐 보기는 한거니?”

“흠”

해리는 거의 몇 달 만에 처음인 듯한 기분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얼굴 근육이 이상하게 뻣뻣한 것 같았다.

“그책을 처음 샀을 때 아마 펼쳐 보기는 했던 것 같은데.... 딱 한번.....”

“그 마을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거라서, 나는 네가 그 연관성을 알았나 보다 생각했지.”

헤르미온느가 땍땍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근래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예전 그녀의 말투에 가까웠다. 해리는 지금이라도 헤르미온느의 입에서 당장 도서관에 가 보겠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마법의 역사>에 그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나와 있었어. 잠깐만....”

헤르미온느는 구슬 백을 열고 잠시 동안 뒤적이더니, 마침내 바틸다 백셧이 쓴 <마법의 역사>라는 예전 교과서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책을 다급히 흟어보더니 마침내 원하던 대목을 찾았다.

“‘1689년 국제 비밀 법령에 서명한 후, 마법사들은 머글 세계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지역사회 내에서 마법사들이 그들만의 소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여러 마을들과 작은 촌락들에는 상호 협력과 보호를 위해 서로 단합한 몇몇 마법사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콘월의 틴워스, 요크셔의 어퍼 플래즐리, 영국 남해안의 오터리 성 캐치폴 마을 등은 너그럽거나 혹은 때로 혼동 마법에 걸린 머글들과 더불어 살았던 마법사 가족 집단의 주요 본거지였다. 이런한 준마법사 거주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위대한 마법사 고드릭 그리핀도르가 태어났고, 마법사 대장장이인 바우만 라이트가 최초의 골든 스니치를 만들었던 서부의 시골마을, 고드릭 골짜기일 것이다. 그곳은 공동묘지에는 고대 마법사 가문들의 이름이 즐비하게 새겨져 있는데, 수 세기 동안 묘지 옆은 작은 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유령 이야기들은 분명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너와 너의 부모님 이야기는 언급되어 있지 않아.“

책을 덮으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백셧은 19세기 말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고 있으니까, 하지만 알겠니? 고드릭 골짜기, 고드릭 그리핀도르, 그리핀도르의 칼, 덤블도어 교수님은 네가 그 연관성을 발견할 거라 기대하지 않을셨을까?”

“오, 그래......”

해리는 자신이 고드릭 골짜기에 가자고 제안했을 때, 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단지 부모님의 무덤과 그가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했던 집, 그리고 바틸다 백셧이라는 인물 때문에 그 마을에 마음이 이끌렸던 것이다.

“뮤리엘 할머니가 했던 말 기억나?”

그가 마침내 물었다.

“누구?”

“알잖아.”

그는 잠시 주저했다. 론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니의 할머니 말이야. 결혼식 때 너한테 발목이 앙상하고 말한 사람.”

“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참으로 난처한 순간이었다. 해리는 그녀가 곧 튀어나올지 모를 론의 이름을 감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 할머니는 바틸다 백셧이 아직도 고드릭 골짜기에 살고 있다고 말했어.”

“바틸다 백셧.”

헤르미온느는 <마법의 역사>의 표지에 돋을새김된 바틸다의 이름을 집게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글쎄, 내 생각엔....:”

다음 순간 헤르미온느가 어찌나 헉하고 놀라던지, 해리는 가슴이 덜컹했다. 그리고 텐트의 출입구를 막고 있는 덮개를 강제로 걷어 올리며 들어오는 손을 반쯤은 예상하며, 얼른 지팡이를 뽑아들고 입구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왜?”

해리는 화도 나고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물었다.

“왜 그런 건데? 난 네가 죽음을 먹는 자가 텐트를 열고 들어 오는걸 보기라도 한 줄 알았잖아.”

“해리, 바틸다가 그 칼을 갖고 있다면? 만약 덤블도어 교수님이 그걸 그녀에게 맡겼다면?”

해리는 가능성을 점쳐 보았다. 바틸다는 지금쯤은 이미 아주 늙은 여자일 것이고, 뮤리엘에 따르면 그녀는 ‘망령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덤블도어가 그리핀도르의 칼을 그녀에게 숨겻다는게 가능한 일일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해리는 덤블도어가 너무 많은 걸 운에 맡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덤블도어는 자신이 칼을 몰래 가짜와 바꿔치기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않았고, 바틸다와의 우정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헤르미온느의 의견을 반박하고 나설 때가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해리의 가장 간절한 소망에 아주 놀랄만큼 기꺼이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그랬을지도 몰라! 그럼, 우리 고드릭 골짜기로 가는 거지?”

“응, 하지만 거기에 대해 신중하게 충분히 생각해야 할거야, 해리.”

이제 헤르미온느는 똑바로 몸을 세우고 앉았다. 해리는 다시 계획을 세울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자, 자신만큼이나 그녀도 기운이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선 우리는 함께 투명 망토를 쓴 채 순간이동으로 사라지는 법을 연습해야 해. 그리고 만약 우리가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폴리주스 마법약을 사용할 생각이 아니라면, 투영 마법을 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폴리주스 마법약을 쓸 경우를 대배해서,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모아 두기는 해야 할 거야, 해리, 사실 나는 폴리주스 마법약이 더 나을 거 같아. 변장이 철저할수록 더 잘.....”

해리는 말이 중단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치면서, 헤르미온느가 얘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린고트에 보관된 칼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낸 이후 처음으로 해리의 가슴을 설램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고향에 가는 것이다. 그가 가족과 함께 살았던 바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볼드모트만 아니었다면 그는 그 고드릭 골짜기에서 성장하고 해마다 방학을 보냈을 것이다. 어쩌면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동생들이 생겻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머니가 손수 열입곱번째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삶이 지금 이 순간만큼 실감나게 피부로 와 닿은 적이 없었다. 지금 해리는 그런 삶을 송두리째 빼았겼던 바로 그 장소를 보러 갈 것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그날 밤 헤르미온느가 잠자리에 든 뒤, 해리는 조용히 헤르미온느의 구슬 백에서 자신의 배낭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해그리드가 아주 오래전에 그에게 주었던 사진첩을 꺼냈다.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부모님의 낡은 사진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제 부모님과 관계된 것 중 남은 것이라곤 이 사진들이 전부였다.

해리는 바로 다음 날이라도 당장 고드릭 골짜기를 향해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생각은 달랐다. 볼드모트는 분명 해리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현장으로 돌아오리라고 예상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그녀는 반드시 최대한 철저하게 변장을 한 후에 출발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크리스마스 장을 보고 있는 무고한 머글들의 머리카락을 몰래 뽑았고, 투명 망토를 함께 쓰고 순간이동하는 법을 연습했다. 마침내 헤르미온느가 여행을 떠나자고 동의한 것은 꼭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그들은 어둠을 틈타 순간이동으로 마을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므로 늦은 오후 시간에 두 사람은 드디어 폴리주스 마법약을 마셨다. 그리고 해리는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머글남자로, 헤르미온느는 왜소하고 생쥐를 닳은 그의 아내로 변신했다. 해리의 목에 걸려있는 호크룩스를 제외한 모든 소지품이 들어 있는 구슬 백은 헤르미온느의 말쑥한 코트 안주머이 속에 꽂혀 있었다. 해리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투명망토를 덮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숨막히는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해리는 심장이 터질듯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떳다. 그들은 검푸른 하늘 아래의 눈쌓인 골목길에 손을 맞잡고 서있엇다. 하늘에는 초저녁 별들이 벌써부터 희미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좁은 골목 양편에는 창가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거리는 작은 시골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 앞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금빛 가로등의 휘황한 불빛이 마을의 중심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온통 눈이야!”

헤르미온느가 망토 아래에서 속삭였다.

“왜 우리가 눈 생각을 못했지? 아무리 주의를 해도 발자국이 남고 말거야! 우린 그것들을 지워야 해....... 네가 앞서가. 내가 해볼게....”

하지만 해리는 그들의 자취를 마법으로 지워 가면서 모습을 숨긴 채, 말의 탈을 쓰고 무언극을 하는 사람들처럼 마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망토를 벗자.”

해리가 제안하자 헤르미온느는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제발 부탁이야. 아무도 우리를 못 알아볼 텐데 뭐, 게다가 근처에는 아무도 없잖아.”

그는 겉옷 속에 투명 망토를 집어넣고 헤르미온느와 함께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집들을 좀 더 지나자, 얼음장처럼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에는 듯 했다. 그 집들 중 하나가 한때 제임스와 릴리가 살았던 곳일수도, 혹은 현재 바틸다가 살고 있는 곳일 수도 있었다. 해리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이곳을 영영 떠났을때 그는 겨우 한 살을 조금 넘겼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 무언가 기억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현관문들과 눈 쌓인 지붕들 그리고 앞쪽 베란다들을 뜷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살았던 집을 과연 볼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피델리우스 마법에 걸린 사람들이 죽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머잖아 그들이 따라 걷고 있던 좁은 골목길이 왼쪽으로 휘어졌고, 마을의 중심인 조그만 광장이 그들 앞에 펼쳐졌다.

색색의 전구들이 사방에 둘러쳐진 광장 한가운데에는 전쟁 기념비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바람에 날려 휘어진 크리스마스트리가 일부를 가리고 있엇다. 가게와 우체국, 술집이 있었고, 광장 너머에는 작은 교회가 서 있었는데.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교회 창문들이 보석처럼 밝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광장의 눈은 단단하게 다져져 있었다. 사람들이 온종이 밟고 지나간 자리는 딱딱하고 미끄러웠다. 마을 주민들이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앞을 오가고 있었고, 그들의 모습이 잠깐씩 가로등 불에 환히 비쳤다. 술집 문이 열리고 닫힐때마다, 떠뜰썩한 웃음소리와 유행가 소리가 흘러나왔다. 곧이어 작은 교회안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었다.

“해리 오늘이 크리스마스인가 봐!”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그런가?”

그는 날짜를 까맞게 잊고 있었다. 몇 주 동안 신문 한장 읽지 못했던 것이다.

“분명히 오늘이야!”

헤르미온느가 교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들은.......... 그분들은 저 안에 계실거야 그렇지 않니? 너희 엄마와 아빠 말이야. 교회 뒤에 묘지가 보여”

해리는 흥분을 넘어서 공포에 가까운 전율을 느꼇다. 막상 코앞에 닥치고 보니, 정말 그 무덤을 보고 싶은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헤르미온느도 그의 기분을 알아챈 것 같았다. 왜냐하면 해리에게 손을 뻗더니, 그를 앞으로 잡아끌며 처음으로 앞장을 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광장을 반쯤 가로질렀을때, 그녀는 딱 멈춰섰다.

“해리, 저것봐”

헤르미온느가 전쟁 기념비를 가리켰다. 그들이 그 앞을 지나는 순간 모양이 바뀌엇던 것이다. 전사자들의 이름으로 뒤덮인 오벨리스크 대신, 그 자리에는 세사람의 동상이 서 있엇다. 헝클어진 머리에 안경을 낀 남자와 긴 머리에 다정하고 예쁘장한 얼굴의 여자, 그리고 엄마 품에 안긴 조그만 사내아기였다. 솜털이 달린 하얀 모자처럼, 그들의 머리 위에는 눈이 소복이 쌓였다.

해리는 부모님의 얼굴을 뜷어져라 오려다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여기에 동상이 잇다니..... 한 번도 상상해 본적 없는 일이었다. 돌로 형상화된 자신을, 이마의 흉터가 없는 행복한 아기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 가자.”

원 없이 동상을 바라보고 나서 해리가 말했다. 그들은 다시 교회로 향했다. 하지만 해리가 길을 건너면서 어깨 너머로 힐끗 돌아보자, 그 동상은 다시 전쟁 기념비로 바뀌어 있었다.

교회에 다가갈수록, 노랫소리는 더욱 커졌다. 해리는 목이 메었다. 그 노랫소리가 너무나 강렬하게 호그와트를 상기시켰기 때문이었다. 갑옷 속에서 야한 내용의 캐럴을 고래고래 불러 대번 피브스, 대연회장에 세워졌던 열두 그루의 크리스마스 트리, 마법사 폭죽에서 나온 여자 모자를 쓴 덤블도어, 그리고 손으로 뜬 스웨터를 입은 론.....

묘지의 입구에는 좁은 문이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가능한 한 소리 안나게 문을 밀어서 열었고, 두 사람은 그것을 통과했다. 교회 문 앞까지 이어지는 미끄러운 오솔길의 양옆으로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들은 빛나는 유리창 아래에 드리워진 그늘을 따라 교회 건물을 빙 돌아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 뒤로 눈이 파헤쳐진 깊은 도랑이 생겼다.

교회 뒤에는 눈 덮인 묘비들이 줄을 지어 푸르스름한 눈 더미 밖으로 솟아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눈부신 불빛이 비추는 곳마다 눈 더미는 빨간색과 금색, 초록색으로 현란하게 물들었다. 해리는 겉옷 주머니 속으로 지팡이를 꽉 움켜지고 가장 가까운 무덤을 향해 나아갔다.

“이것 봐, 아보트 집안 사람이야. 오래전에 돌아가신, 한나의 친척일지도 몰라.”

“목소리 좀 낮춰.”

헤르미온느가 애걸하듯이 말했다.

그들은 오래된 묘비에 적힌 묘비명을 자세히 보기 위해 연방 허리를 굽히면서, 혹시 미행당하고 있지 않은지를 확안하기 위해 이따금 사방을 둘러싼 어둠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눈밭에 깊은 구덩이를 만들면서, 그들은 점점 더 묘지 안쪽으로 깊숙이 헤치고 들어갔다.

“해리, 여기야!”

헤르미온느가 묘비 두줄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해리는 터질 듯이 고동치는 심장을 느끼며, 그녀에게로 힘겹게 돌아가야만 했다.

“이게.....?”

“아니, 하지만 이것 봐!”

그녀는 어두운 빛깔의 돌을 가리켰다. 해리는 몸을 숙이고 바라보았다. 얼어붙고 이끼가 낀 화강암 위에 ‘켄드라 덤블도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그녀의 출생일, 사망일과 더불어 ‘딸 아리애나와 함께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비문도 있었다.

그대의 보물이 있는 곳에 그대의 마음도 머물리라.

그렇다면 리타 스키터와 뮤리엘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던 셈이다. 덤블도어 가족은 실제로 이곳에 살았으며, 그중 일부는 이곳에서 죽었다.

그 묘를 직접 보자, 해리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때보다 더욱 기분이 나빳다 자신과 덤블도어 두 사람 모두 이 공동묘지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으며, 덤블도어는 그 사실을 말해주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런한 연관성을 알려주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이곳을 찾아올 수도 있었다. 잠시 동안 해리는 덤블도어와 나란히 이곳에 오는 상상을 하면서, 그것이 두 사람에게 어떤 결속감을 주었을지, 그리고 자신에게 얼마나 뜻 깊은 일이 되엇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덤블도어게게는 그들의 가족이 같은 묘지에 나란히 묻혀 잇다는 사실이 전혀 중요치 않은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았던것 같았다. 그리고 해리가 해 주길 바랐던 임무와도 전혀 무관하다고 여겼던 것처럼 보였다.

헤르미온느는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어둠에 가려져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문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대의 보물이 있는 곳에 그대의 마음도 머물리라. 그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가족의 최고 연장자였던 덤블도어가 그 문장을 골랐을 것이다.

“너에게 아무 말씀도 안 하셧던게 확실......?”

헤르미온느가 말문을 열었다.

“안 하셧어.”

해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계속 둘러보자.”

해리는 차라리 그 비석을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등을 돌렸다. 잔뜩 기대에 들떠 있는 마음을 괜한 원망으로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야!”

짐시 후 헤르미온느가 어둠 속에서 외쳤다.

“오 아니야, 미안해! 포터라고 쓰여있는 줄 알았어.”

헤르미온느는 어느 무너져 가는 이끼 낀 묘비를 문질러 닦더니, 약간 인상을 찡그린 채 골똘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리, 잠깐 다시 와 봐.”

해리는 다시 괜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에 툴툴거리며 눈을 헤치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왜?”

“이것 봐!”

그 무덤은 아주 오래된 데다. 심하게 손상되어, 이름조차 알아볼수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이름 아래에 새겨진 상징을 가리켰다.

“해리, 이건 책에 있던 그 상징이야.”

해리는 그녀가 지목한 곳을 자세히 관찰했다. 하지만 그 묘비는 너무나 닳아 있어서, 거기에 무엇이 새겨져 있는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거의 읽기조차 어려운 이름 아래에 삼각형 모양의 상지잉 겨우 있는 듯할 뿐이었다.

“그래.........그런 것도 같네.....”

헤르미온느는 지팡이에 불을 밝히더니, 그것으로 묘비의 이름을 가리켰다.

“이그.......이그노투스라고 적혀있는 것 같아..........”

“난 계속 우리 부모님을 찾아볼께, 알았지?”

해리는 조금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오래된 무덤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헤르미온느는 내려버둔채, 다시 무덤을 찾기 시작했다.

이따금 아보트처럼 호그와트에서 만난 적이 있는 집안의 성을 알아볼 수 있었다. 때로는 한 마법사 가문의 여러 세대가 묘지에 묻혀있기도 했다. 해리는 묘비에 적힌 날짜들을 통해서 그 가문의 맥이 끊어졌는지, 아니면 후손들이 고드릭 골짜기에서 먼 곳으로 이주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무덤들 한 가운데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그리고 새로운 묘비를 발견할 때마다 기대와 두려움으로 눈앞이 아찔했다.

갑작스레 어둠과 침묵이 더욱 깊어진 것 같았다. 해리는 디멘터를 떠올리며 걱정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캐럴이 끝나고 교회 신자들이 다시 광장으로 돌아감에 따라, 재잘거리는 소리와 시끌벅적한 소음이 사라지고 있을 뿐이란 걸 깨달았다. 그때 교회 안에서 누군가가 막 등불을 껏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헤르미온느의 목소리가 세번째로 들려왔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목소리는 날카롭고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해리, 그분들이 여기 계셔....바로 여기.”

해리는 그녀의 어조를 통해서 이번에는 진짜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는 헤르미온느를 향해 다가갔다. 그것은 덤블도어가 죽은 직후에 느꼈던 것과 똑같은 기분이었는데, 비통함이 그의 심장과 폐를 실제로 짓누르는것 같았다.

그 묘비는 켄드라와 아리애나의 묘비 바로 두 줄 위에 있었다. 덤블도어의 무덤과 마찬가지로 하얀 대리석으로 되어있었고,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듯했기 때문에, 글씨를 읽기가 쉬웠다. 그 위에 새겨진 글자를 읽기 위해, 무릎을 끓거나 가까이 다가갈 필요조차 없었다.

제임스 포터

1960년 3월27일 출생

1981년 10월31일 사망

릴리 포터

1960년 1월30일 출생

1981년 10월31일 사망

파괴되어야 할 최후의 적은 죽음이다.

해리는 마치 그것의 의미를 이해할 기회가 단 한번 밖에 없는 것처럼, 그 비문을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소리내어 읽었다.

“‘파괴되어야 할 최후의 적은 죽음이다......’”

그의 머릿속에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고, 그와 함께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저건 죽음을 먹는 자들 생각 아니야? 왜 그게 저기 있지?”

“저건 죽음을 먹는 자들이 의미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격퇴한다는 뜻이 아니야, 해리.”

헤르미온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너도 알다시피...죽음 너머의 생을 말하는 거야. 죽음 이후의 삶.”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지 않아. 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그분들은 떠나 버린 것이다. 그런 공허한 말로는, 부모님의 시신이 눈과 돌 밑에 누워 아무것도 모른 채 무심히 썩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었다. 미처 참을 겨를도 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와, 순식간에 얼굴 위에서 얼어붙었다. 황급히 눈물을 닦아낸들, 혹은 눈물을 흘리지 않은 척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는 입을 꼭 다문채,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마도 뼈나 먼지로 변해 버렸을 부모님의 시신이 누워있는 무덤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그토록 가까이에 서 있다는 것을, 그들의 희생 덕분에 여전히 살아서 심장이 뛰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는 차라리 저 눈밭 아래에 그들과 함께 잠들어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실을 알지도 못 한채, 그곳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헤르미온느가 다시 그의 손을 잡더니 꼭 쥐었다. 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역시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차가운 밤공기를 몇 번이고 깊숙이 들이마셨다. 부모님에게 바칠 무언가를 가지고 왔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비로소 떠올랐다. 하지만 묘지 근처의 모든 식물들은 잎이 떨어진 채,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때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를 들어서 허공에 원을 그리자, 크리스마스 장미화환이 그들 앞에 활짝 피어났다. 해리는 그것을 집어서 부모님의 무덤 위에 놓았다.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어서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더 이상 한순간도 그곳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헤르미온느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그녀 역시 허리에 팔을 둘럿다. 그들은 말없이 방향을 돌려, 덤블도어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묘지를 지나서 불 꺼진 교회와 저 너머의 좁은 문을 향해 눈을 헤치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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