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장 도깨비의 복수
다음 날 아침 일찍, 다른 두 사람이 아직 깨어나지도 전에 텐트를 나선 해리는 가능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옹이가 많이 지고 생기 있어 보이는 나무를 찾아 숲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나무 그늘 아래에 매드아이 무디의 눈을 묻은 다음, 지팡이로 나무껍질에 작은 십자가를 새겨서 그 장소를 표시해 두었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매드아이는 돌로레스 엄브릿지의 문 위에 붙어 있는 것보다는 분명 이곳을 훨씬 더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해리는 텐트로 돌아와서 두 사람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앞으로 할 일을 의논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어디든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이었다. 론도 이에 동의했다. 단 한 가지, 이번에는 베이컨 샌드위치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래서 헤르미온느는 숲 속 공터 주변에 걸어 놓았던 마법을 해제했다. 그동안 해리와 론은 그들이 여기에서 야영을 했다는 증거가 될 만한 흔적들을 모두 지웠다. 그런 다음 시장이 서는 작은 도시의 외곽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일단 작은 잡목 숲을 피난처 삼아 텐트를 치고 주변에 새로 보호 마법을 두르고 나자, 해리는 투명 망토를 쓰고 식량을 구하러 모험을 나섰다. 하지만 이 모험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해리가 마을로 막 들어서려고 할 때, 이상한 냉기가 밀려오더니 안개가 자욱하게 까리고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넌 멋진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수 있잖아!”
결국 빈손으로 텐트에 돌아온 해라가 숨이 턱에 차서 겨우 디멘터란 말 한마디만 내뱉자, 론이 버럭 화를 냈다.
“그....... 그럴 수가 없었어.”
해리가 쑤시는 옆구리를 움켜쥔 채 숨을 헐떡거렸다.
“나...... 나오질 않았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동시에 낙담하는 친구들의 표정을 보자, 해리는 창피했다. 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몸서리쳐지는 악몽 같은 경험이었다. 저 멀리 안개 속에서 스르르 다가오는 디멘터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온몸을 마비시키는 냉기가 숨통을 짓누르고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그의 귓가를 가득 메우면서, 해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자리에 뿌리박힌 듯 서 있는 두 발을 간신히 옮겨 달아나기 위해서 그야말로 온 힘을 다 끌어 모아야만 했다. 해리는 동공이 뻥 뚫린 디멘터들이, 비록 그들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이 어딜 가나 퍼뜨리는 절망감은 분명 느낄 머글들 속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가는 걸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린 아직도 먹을 걸 못 구했잖아.”
“입 다물어, 론.”
헤르미온느가 구박을 했다.
“해리, 무슨 일이야? 어째서 패트로누스를 불러내지 못한 거 같으니? 어제만 해도 완벽하게 불러냈는데!” “나도 몰라.”
해리는 퍼킨스의 낡은 안락의자에 주저앉았다. 더욱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 안에서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어제가 아주 오래전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오늘 그는 다시 열세 살짜리 꼬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유일하게 힘없이 기절해 버렸던 바로 그 꼬마가.
론이 의자 다리를 툭툭 걷어찼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론이 헤르미온느에게 으르렁거렸다.
“난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피를 절반이나 흘리고 죽을 뻔 했는데 그 후로 내가 먹은 거라곤 달랑 독버섯 두 송이가 전부란 말이야!”
“그럼 어디 네가 가서 디멘터들과 맞서 싸워 보든가.”
해리가 쏘아붙였다.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인데, 난 지금 팔에 붕대를 감고 있거든!”
“그게 참 편리한 구실이구나.”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그럼 그렇지!”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고함을 지르며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 때리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라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해리, 그 로켓을 이리 줘! 어서!”
해리가 멀뚱히 보고만 있자, 헤르미온느가 손가락을 딱딱 튕기면서 성화를 부렸다.
“호크룩스 말이야, 해리. 너 아직도 그걸 걸고 있잖아!” 헤르미온느가 손을 내밀었다. 해리는 황금 줄에 목에서 벗었다. 호크룩스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해리는 이상하게 몸이 가뿐하고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몸이 찌뿌듯하다든가, 뭔가 묵직한 것이 뱃속을 짓누르는 듯했다는 사실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좀 낫니?”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응, 훨씬 좋아!”
“해리.”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그의 앞에 바싹 얼굴을 들이밀더니, 그 통증이 찾아올 때면 늘 하던 바로 그 목소리로 물었다.
“너 혹시 로켓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니지, 그렇지?”
“뭐라고? 아니야!”
해리가 변명하듯이 말했다.
“내가 그걸 걸고 있는 동안, 우리가 뭘 했는지 전부 다 기억하는걸? 만약 내가 사로잡혀 있었다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을 거야, 안 그래? 지니 말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고 했잖아.”
“흠.”
헤르미온느는 묵직한 황금 로켓을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이걸 걸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텐트 안에 보관하는 게 좋겠어.”
“하지만 호크룩스를 그냥 텐트 안에 널브러져 있게 둘 수는 없어.”
해리가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러다가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한다면........”
“좋아, 알았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러더니 로켓을 자신의 목에 걸고 눈에 띄지 않도록 셔츠 안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돌아가면서 걸도록 하자. 누구 한 사람이 너무 오래 걸고 있지 않도록 말이야.”
"아주 좋아. 이제 그 문제는 해결했으니, 어서 음식을 좀 구하면 안 될까?"
론이 안달이 나서 말했다.
"좋아, 하지만 음식을 찾아보려면 어디 다른 곳으로 기야겠다."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힐끗 보며 말했다.
"디멘터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는 줄 뻔히 알면서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
결국 그들은 어느 외딴 농장의 소유자인, 멀리 떨어진 들판에서 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농가에서 계란과 빵을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도둑질은 아니야, 그렇지?"
다 함께 스크램블드에그를 얹은 토스트를 와구와구 먹으면서, 헤르미온느가 양심에 찔리는 듯 물었다.
"닭장 밑에 돈을 좀 두고 왔으니 된 거지?"
그러자 두 볼이 터질듯이 불룩한 론이 눈알을 굴리며 구박을 했다.
"에르......미....니, 거쩡도 많다. 마음 푹 놔."
정말로 배불리 실컷 먹고 나니, 훨씬 쉽게 긴장이 풀렸다. 그날 밤 디멘터에 대한 논쟁 따위는 한바탕 웃음으로 까맣게 잊어버리고, 해리는 새로운 기운과 희망이 샘솟는 걸 느끼면서 세 사람 중에 제일 먼저 망을 서기로 했다.
세 사람은 배가 부르면 기운이 솟는 반면, 배가 텅 비면 언성이 높아지고 우울해진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다. 물론 해리는 이 사실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더즐리 가족과 살면서 거의 굶어 죽을 뻔했던 시절을 이미 겪었기 때문이었다. 한 편 헤르미온느는 비록 평소보다 약간 더 성미가 날카로워지고 뚱하니 말수가 적어지긴 했지만, 산딸기나 상한 비스킷 말고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던 근래 며칠을 그런대로 잘 참아냈다. 하지만 어머니나 호그와트의 집요정들 덕분에 매일 맛있는 세끼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데 익숙해져 있던 론은 굶주리게 되자 그만 이성을 잃고 사나워졌다. 게다가 우연히도 먹을 게 뚝 떨어졌을 때마다 호크룩스를 목에 가는 차례가 되었기 때문에 론은 더욱더 기분이 나빠졌다.
"그럼 다음엔 어디로 가?"
론이 입버릇처럼 물었다. 그는 자기 생각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처럼, 그저 부족한 음식 타령이나 하고 앉아서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계획을 세우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어디서 또 다른 호크룩스를 찾을 수 있을지, 이미 손에 넣은 호크룩스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헛되이 시간만 보냈다.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얻지 못하자. 그들의 대화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똑같은 말의 반복이되어 버렸다.
덤블도어가 해리에게 볼드모트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의미있는 장소에 호크룩스를 숨겼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볼드모트가 한때 살았거나 방문했던 장소들을 마치 일종의 사악한 기도문처럼 달달 외우고 있었다. 그자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고아원, 교육을 받았던 호그와트, 학교를 졸업한 후에 근무했던 보진과 버크가게, 그리고 유배의 세월을 보냈던 알바니아, 이런 것들이 그들의 추론의 근거가 되었다.
"그래, 그럼 알바니아로 가자. 나라 전체를 살펴보는 데 고작해야 반나절밖에 더 걸리겠느냐고."
론이 빈정거렸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을 거야. 그자는 추방당하기 전에 이미 다섯 개의 호크룩스를 만들었어. 그리고 덤블도어 교수님은 그 뱀이 여섯 번째 호크룩스일 거라고 확신하셨잖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 뱀은 알바니아에 없어. 그런 항상 볼드..."
"그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니?"
"좋아! 그 뱀은 항상 그 사람과 함께 있지. 이제 됐니?"
"글세."
"그렇다고 보진과 버크 가게에 뭘 숨겼을 것 같지도 않아."
해리는 자신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지적했던 사실을 재빨리 다시 꺼냈다. 단지 이 거북한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서였다.
"보진과 버크는 어둠의 마법 물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야. 호크룩스라면 당장 알아봤을 거야."
론이 길게 하품을 했다. 해리는 론에게 뭔가 던지고 싶은 강한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채, 겨우 말을 이었다.
"난 여전히 그 자가 호그와트에 뭔가를 숨겨 놓았을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덤블도어 교수님이 벌써 찾아내셨겟지, 해리!"
해리는 자신의 이론을 옹호하기 위해서 또다시 주장을 되풀이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직접 내 앞에서, 자신도 호그와트의 모든 비밀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어. 내가 계속 말해 왔듯이. 만약 딱 한 군데 볼드......"
"어이!"
"좋아 그 사람 말이야!"
해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 사람에게 정말로 중요한 장소가 딱 한군데 있다면, 그건 바로 호그와트라고!"
"오, 그만 해."
론이 코웃음을 쳤다.
"그자의 학교라서?"
"그래, 그의 학교라서! 그곳은 그자의 첫 번째 진정한 집이었고, 그에게는 특별한 곳이었어! 거긴 그에겐 모든 걸 의미한다고, 심지어 호그와트를 떠난 후에도 딱 한 군데."
"우리가 지금 그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잇는거 맞지, 그렇지? 네 이야기가 아니라?"
론이 따졌다. 그러더니 자신의 목에 걸린 호크룩스 줄을 확 잡아당겼다. 해리는 호크룩스 줄을 잡고서 론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꼇다.
"그 사람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 덤블도어 교수님께 일자리를 달라고 했다는 말은 우리도 이미 들었어."
헤르미온느 얼른 나섰다.
"맞아."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덤블도어 교수님은 그자가 오직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학교로 돌아오려고 한다고 생각하셨지. 어쩌면 또 다른 호크룩스를 만들기 위한, 또 다른 학교 창립자의 물건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해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자는 일자리를 얻지 못했잖아, 그치?"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그러니 창립자의 물건을 찾아내서 학교 안에 숨길 수 있는 기회도 없었어!"
"좋아, 그렇다면 호그와트는 잊어버리자."
마침내 해리도 단념한 듯이 말했다.
더 이상의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그들은 런던으로 갔다. 그리고 투명 망토를 뒤집어쓴 채, 볼드모트가 자랐던 고아원을 찾아다녔다. 결국 헤르미온느가 도서관으로 몰래 잠입하여 그 고아원이 아주 오래전에 이미 헐렸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그들은 고아원이 있던 자리를 찾아가 보았지만, 사무실로 가득한 높은 건물만이 서 있었다.
"저 건물 밑을 파헤쳐 봐야 하지 않을까?"
헤르미온느가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여기에 호크룩스를 숨겨 놓지는 않았을 거야"
해리가 말했다. 사실 그는 줄곧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아원은 볼드모트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던 곳이었다. 그러니 그곳에 자기 영혼의 일부를 감출 리는 만무했다. 덤블도어는 해리에게, 볼드모트가 아주 멋지고 신비스런 곳에 호크룩스를 감추고 싶어 했다는 걸 보여 주었다. 이 음울한 회색빛 런던의 외딴 동네는 황금 문이 있고 대리석 바닥이 깔린 호그와트라든가 마법부, 혹은 마법사 은행인 그린고트 같은 건물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결국 새로운 사실은 전혀 발견하지 못한 채, 그들은 안전을 위해 매일 밤마다 다른 장소에 텐트를 설치하며 계속해서 교외를 옮겨 다녔다. 아침마다 자신들이 남긴 모든 흔적들을 말끔히 지웠는지 확인했으며, 그런 다음 또다시 인적이 드물고 외진 장소를 찾아 떠났다. 때로는 숲 속이나, 어두운 벼랑 틈, 붉은 황무지, 혹은 가시덤불이 뒤덮인 산등성이로 순간이동을 했으며, 한번은 겨우 비바람을 피할 수 잇는 자갈투성이의 산골짜리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꾸러미 돌리기 게임이라도 하듯이 열두 시간마다 교대로 호크룩스를 목에 걸었다. 이 게임에서는 모두 음악이 멈추는 순간을 두려워했는데(실제 꾸러미 돌리기 게임에서는 음악이 멈추면 선물을 받을 수 있기에 즐겁지만 여기에서는 반대임:역주), 왜냐하면 걸리는 사람은 순간순간 커지는 공포와 불안감으로 가득 찬 열두 시간을 감수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해리의 흉터는 계속해서 쑤셨다. 해리는 특히 호크룩스를 목에 걸고 있을 때 더 자주 통증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때로는 그 통증에 반응하는 자신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또 뭔야? 뭘 봤어?"
론은 해리가 인상을 찡그릴 때마다 재빨리 물었다.
"얼굴이야"
해리는 매번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바로 그 얼굴, 그레고로비치에게서 물건을 훔친 도둑."
그러면 론은 실망감을 감추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쌩하니 돌아서 버리곤 했다. 해리는 론이 자기 가족이나 다른 불사조 기사단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해리는 텔레비전 안테나가 아니었다. 그는 오직 지금 볼드모트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채널을 돌릴 수는 없었다. 지금 볼드모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그 정체 모를 젊은이에 대해 끊임없이 골몰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그 청년의 이름이나 행방에 대해서 볼드모트가 자기만큼이나 아는게 없다고 확신했다. 결국 해리는 그의 흉터가 계속해서 확확 타는 듯하고 쾌활한 금발 청년이 그의 기억 속에서 감질나게 아른거리는 동안, 아프거나 불쾌한 내심을 전혀 내비치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 그가 도둑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다른 두 친구는 짜증만 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필사적으로 호크룩스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다니고 있는 마당에, 그들의 반응을 전적으로 비난만 할 수는 없었다.
며칠이 다시 몇 주일이 되면서, 해리는 웬지 론과 헤르미온느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해리가 텐트로 들어서면 두사람이 갑자기 하던 이야기를 중단하고 입을 다무는 일이 몇번이나 되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뭔가 빠르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서 약간 멀리 걸어가는 모습도 우연히 두번이나 목격했다. 그런데 두번 모두 해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보자, 두 사람은 허둥지둥 나뭇가지를 줍거나 물을 뜨는 척하면서 딴전을 피웠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가 이제는 너무나 무의미하고 종잡을 수 없게 느껴지는 이 여행을 계속하겠다고 하는 것이 단지 그가 어떤 비밀스런 계획을 갖고 있으며, 정해진 때가 되면 자신들도 그 계획을 알게 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걱정하지 않 수 없었다. 요즘 론은 자신의 불쾌한 기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 조차 그의 형편없는 지도력에 실망하게 될까 두려워졌다. 그래서 호크룩스가 더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해 내려고 머리를 쥐어짯지만, 그의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장소는 오직 호그와트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이 그곳을 전혀 그럴듯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리는 더 이상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들이 계속 옮겨 다니는 동안, 교외 지역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지금 그들은 떨어진 낙엽더미위에 텐트를 세우고 있었다. 디멘터들이 몰고 다니는 안개에 자연적인 안개까지 더해지고 비바람까지 몰아쳐서 그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헤르미온느의 식용 버섯 감별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들의 계속되는 고립감과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에 대한 결핍, 혹은 볼드모트와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답답함을 보상해 줄수는 없었다.
"우리 엄마는 그냥 허공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도록 하실 수 있는데."
어느 날 밤에 론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웨일스의 어느 강둑에 텐트를 치고 앉아 있는 중이었다. 론은 시무룩하게 자신의 접시에 담긴, 숯 덩어리가 되어 버린 물고기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해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론의 목을 힐끗 쳐다보았고, 예상했던 대로 그의 목에는 호크룩스의 황금 줄이 반짝이고 있었다. 해리는 론에게 욕설을 퍼붓고 싶은 충동과 간신히 맞서 싸웠다.그래도 로켓을 걸지 않고 있을 때면, 론의 태도가 약간은 나아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너희 어머니라고 하셔도 허공에서 음식을 만들어 낼 수는 없어."
헤르미온느가 반박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는 못해. 음식은 원소 변신술에 대한 겜프 법령의 다섯 가지 주요 예외 사항 중 첫 번째에 해당된다고."
"오, 제발 우리말로 해 줄래, 응?"
론이 이 사이에서 생선 가시를 빼내면서 쏘아붙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야! 뭔가가 어디 있다는 걸 알고 있을때 소환 마법을 할 수 있듯이, 이미 뭔가를 갖고 있을 때에만 그걸 변형시키거나 양을 늘리거나 할 수 있단..."
"그래, 부탁인데 이건 양을 늘리거나 하지 말아 줘, 토할 것 같으니까."
론이 핀잔을 주었다.
"해리는 물고기를 잡았고, 난 그걸 가지고 최선을 다한 거야! 언제나 결국에 음식을 차리는 사람은 바로 나란 사실을 진작부터 난 알고 있었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겠지!"
"아니야, 그건 네가 마법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론이 지지 않고 받아쳤다.
헤르미온느는 발딱 일어났다. 그 바람에 그녀의 양철 접시에 담겼던 구운 물고기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론, 내일은 네가 요리를 한번 해 봐. 어디 네가 직접 재료를 구해서 뭔가 먹을 만한 음식이 되도록 마술을 부려보라고. 그럼 난 인상을 쓰고 여기 가만히 앉아서 징징거리기나 할 테니까. 너도 알게 될 거야. 그게 얼마나....."
"그만 해!"
해리가 벌떡 일어나면서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제 그만 해!"
헤르미온느는 분을 못 이기는 표정이었다.
"네가 어떻게 론의 편을 들 수가 있니, 론은 생전 요리도 한번 안하면서...."
"헤르미온느, 조용히 좀 해. 말소리가 들렸단 말이야."
해리는 여전히 손을 든 채, 그들에게 입을 열지 말라고 경고하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 그들 옆으로 세차게 흐르는 어두운 강물 소리 너머로 또다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스니코스코프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머플리아토 주문을 걸어 놓았지, 그렇지?"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속삭였다.
"모든 마법을 다 걸어 놓았어."
헤르미온느가 속삭이며 대답했다.
"머플리아토 주문, 머글들을 물리치는 마법, 투영 마법, 전부 다. 저들이 누구든 우리를 보거나 우리가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어."
발을 질질 끄는 무거운 발소리와 뭔가 스치는 소리, 그리고 돌과 나뭇가지가 구르는 소리로 미루어 봐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지금 그들이 텐트를 치고 있는 이 좁은 강둑으로 이어지는, 가파르고 나무가 우거진 비탈길을 기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세 사람은 지팡이를 뽑아 들고 기다렸다. 이렇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사방에 둘러쳐 놓은 마법들만으로도, 머글이나 일반 마녀와 마법사들의 눈길을 피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만약 저들이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면, 이제 처음으로 어둠의 마법에 맞서는 그들의 방어 능력을 시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강둑으로 가까이 다가올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지만, 여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그 목소리의 주인들이 불과 6미터도 안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폭포처럼 흐르는 강물 때문에 확실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구슬 백을 집어 들더니 안을 마구 뒤졌다. 잠시 후에 그녀는 늘어나는 귀 세 개를 꺼내서 해리와 론에게 하나씩 주었다. 그들은 얼른 그 살구색 끈의 한쪽 끝을 귀에 꽂고 다른 한쪽 끝은 텐트 입구 바깥으로 내보냈다.
곧 해리는 피곤에 지친 남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쯤에 연어가 몇마리 있어야 하는데, 아니면 아직 철이 너무 이른가? 아씨오 연어!"
저 멀리서 풍덩 하는 소리가 여러 차레 들리더니 물고기가 철썩 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투덜거렸다. 해리는 늘어나는 귀를 더욱 깊이 꽂았다. 출렁거리는 강물 소리 사이로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영어도, 그가 들어 본 그 어떤 인간의 언어도 아니었다. 그냥 거친 쉰 소리가 빠르게 이어지는 투박하고 단조로운 소음 같았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약간 더 말이 느리고 저음이었다.
그때 텐트 반대편에서 확하고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빛과 텐트 사이로 커다란 그림자들이 어른거리더니, 연어를 굽는 구수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솔솔 날아왔다. 곧이어 달그락달그락 접시에 나이프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처음 목소리가 들렸던 그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드시오. 그립훅. 고르눅."
도깨비들이야!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향해 입을 벙끗벙끗하며 소리없이 말했다.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도깨비들이 동시에 영어로 대답했다.
"그래, 그쪽 세 사람은 도망을 다닌 지 얼마나 되었나?"
나긋나긋하고 쾌활한, 새로운 목소리가 물었다. 웬지 해리는 그 목소리가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눈앞에 배가 불룩 튀어나오고 유쾌한 인상을 한 남자가 그려졌다.
"6주던가......7주던가.....잊어버렸어요."
피곤한 목소리의 남자가 대답했다.
"처음 며칠을 도망다니다가 우연히 그립훅과 만나게 되었고, 그 후 오래지 않아서 고르눅이 합세했죠. 함께 다니는 사람이 생기니 좋더군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이프로 접시 바닥을 긁는 소리와 양철 잔을 집었다가 내려놓는 소리만이 들렀다.
"당신은 어쩌다 떠나게 되었나요, 테드?"
그 남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자들이 날 찾아오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네."
상냥한 목소리의 테드가 대답했다. 해리는 갑자기 그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 통스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지난주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내가 사는 지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차라리 도망치는 게 좋겠다고 판단을 내렸다네, 원칙적으로 머글 태생 등록을 거부했기 때문에, 단지 시간문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 결국에는 떠나야만 한다는 걸 말야. 내 아내는 괜찮을 걸세. 그녀는 순수혈통이니까. 그러다가 며칠 전에 여기서 딘을 만났지. 안 그러니 얘야."
"네, 맞아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다들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그들의 그리핀도르 기숙사 친구인 딘 토마스의 목소리를 금방 알아들었던 것이다.
"머글 태생인가 보지? 그런가?"
첫 번째 남자가 물었다.
"확실하지 않아요."
딘이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엄마를 버리고 떠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마법사란 증거가 전혀 없어요."
침묵이 찾아오고 한동안 우적우적 음식을 씹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테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더크, 난 자네를 만나서 깜짝 놀랐다네, 물론 기쁘긴 했지만, 그래도 놀랐어. 자네가 잡혀갔다는 소문이 무성햇는데."
"그랬었죠."
더크가 대답했다.
"하지만 아즈카반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도망쳐 나왔어요. 도울리쉬에게 기절 마법을 쏘고 그의 빗자루를 훔쳤죠. 생각보다 쉬웠어요. 당시에 도울리쉬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혼동 마법에 걸려 있었는지도 모르죠. 만약 그랬다면,마녀인지 마법사인지 모르지만 혼동 마법을 건 그 사람과 악수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 사람이 내 목숨을 살린 셈이니까 말이죠"
또다시 침묵이 흐르고 딱딱 불꽃이 튀는 소리와 세차게 흐르는 강물 소리만이 들렸다. 이윽고 테드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거기 두 양반은 어느편이오? 내가 알기론 도깨비들은 모두 그 사람의 편인 것 같던데."
"당신이 잘못 알았소"
좀 더 목소리가 날카로운 도깨비가 대답했다.
"우린 아무 편도 아니오. 이건 마법사들의 전쟁이니까."
"그럼 어쩌다 숨어 다니게 된 거요?"
"만약을 대비해서 그러는 거요."
좀 더 목소리가 굵은 도깨비가 대답했다.
"내 보기에 가당치도 않은 요구를 거절하고 났더니, 신변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소."
“그자들이 당신에게 무슨 요구를 했소?”
테드가 물었다.
“우리 동족의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시켰소!”
이 말을 할때 그 도깨비의 목소리는 훨씬 더 거칠고 사납게 변했다.
“난 집요정이 아니오”
“그립훅, 당신은 어떻게 된거요?”
“비슷한 이유였소”
좀 더 목소리가 날카로운 도깨비가 말했다.
“그린고트는 더 이상 우리 동족이 단독으로 운영하는 곳이 아니오. 그리고 나는 마법사 주인을 인정하지 않소.”
그는 도깨비 말로 중얼거리며 몇 마디 덧붙였다. 그러자 고르눅이 껄껄 웃었다.
“무슨 농담이지요?”
딘이 물었다.
“저 도깨비 말이, 마법사들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구나”
더크가 설명해 주었다.
잠깐 침묵이 흘럿다.
“전 못 알아 듣겠어요.”
딘이 말했다.
“내가 떠나기 전에 살짝 복수를 해 주고 왔소.”
그립훅이 영어로 말했다.
“거참, 훌륭한 사람이구먼. 아니, 도깨비라고 해야겠군.”
테드가 황급히 고쳐 말했다.
“죽음을 먹는자 한 놈을 최고 보안 시설이 되어 있는 오래된 지하 금고에 처넣고 온 건 아닌가?”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칼은 그놈이 그곳을 탈출하고 나가도록 도와주진 않을 거요.”
그립훅이 대답했다. 그러자 고르눅이 다시 껄껄거렸다. 더크 조차 킬킬거리며 메메른 웃음소리를 냈다.
“딘과 나는 아직도 잘 못알아 듣겠소.”
테드가 말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도 그럴 거요. 비록 그자는 까맣게 모르지만.”
그립훅이 말했다. 그러자 도깨비 두명이 큰소리로 악의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한편 텐트 안에서는 해리의 숨소리가 흥분으로 가빠졌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서로 빤히 바라보면서, 최대한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었다.
“테드, 그 소식 들으셨어요?”
더크가 물었다.
“호그와트에서 학생 몇명이 스네이프 사무실에 잇던 그리핀도르의 칼을 훔쳐내려고 했다는 소식 말이에요.”
순간 해리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온 신경이 바싹 곤두선채, 해리는 그 자리에 뿌리박힌 듯 우뚝 서 있었다.
“금시초문인걸. <예언자 일보>에는 그런 기사가 없었는데, 안 그런가?”
테드가 말했다.
“나올리가 없죠.”
더크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여기 그립훅이 나에게 말해 주었어요. 그는 은행에서 일하는 빌 위즐리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칼을 훔쳐 내려고 했던 학생 중 한명이 빌의 여동생이었데요.”
해리는 헤르미온느와 론을 힐끗 쳐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이 늘어나는 귀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그 여자 애와 다른 친구 두 명이 스네이프의 사무실로 들어갔다더군요. 그러고는 스네이프가 칼을 보관하는 유리 상자를 깨뜨렸데요. 그 아이들이 그걸 몰래 가지고 계단을 내려가려고 할때, 스네이프가 붙잡은 모양이에요.”
“아이고, 딱하기도 하지.”
테드가 안타까워했다.
“그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자기들이 그 칼을 가지고 그사람한테 써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아니면 스네이프에게 써먹으려고 했을까?”
“글쎄, 그 아이들이 그걸 가지고 뭘 하려는 생각이었든 간에, 스네이프는 그 칼이 거기 있는게 더이상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데요.”
더크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틀 뒤에, 내 생각에는 일단 그 사람으로 부터 승낙을 얻었겠지만, 그걸 런던으로 보내어 그린고트에 보관하도록 했다는 군요.”
도깨비들이 또다시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게 왜 웃기는 지 모르겟는걸.”
테드가 말했다.
“그건 가짜요.”
그립훅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핀도르의 칼이!”
“오, 그러소 그건 복제품이요. 사실 아주 잘 만든 복제품이긴 하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법사가 만든 거요. 진짜 칼은 수 세기 전에 도깨비들이 만들었고, 그러므로 오직 도깨비들이 만든 무기만이 지닐수 있는 특별한 특성들이 깃들어 있소, 진짜 그리핀도르의 칼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린고트 지하 금고에 있는 건 아니오.”
“그렇군”
테드가 말했다.
“물론 그 사실을 괜히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알리거나 하지는 않았을 테지?”
“내가 그런 걸 알려서 그 사람들을 성가시게 할 이유가 뭐가 있소”
그립훅이 점잔을 빼며 말했다. 이번에는 테드와 딘까지 고르눅과 더크와 함께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한편 텐트 안에서는 해리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누군가 자신이 묻고 싶은 질문을 제발 대신 물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10분처럼 길게 느껴지는 한 순간이 지난후, 마침내 딘이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 역시(해리는 불현듯 그 사실이 떠올랐다.)한때는 지니의 남자 친구였던 것이다.
“지니와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됐나요? 그 칼을 훔치려고 했던 아이들 말이에요.”
“오, 그 아이들은 벌을 받았지. 그것도 잔인하게.”
그립훅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지만 무사하겠지, 안 그렇소?”
테드가 재빨리 물었다.
“위즐리 집안의 아이들이 더 이상 다치거나 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안 그렇소?”
“내가 아는 한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하지는 않았소.”
그립훅이 대답했다.
“천만다행이구먼.”
테드가 말했다.
“스네이프의 과거 행적을 생각하면, 그 아이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할 일이지”
“그럼 당신은 그 이야기를 믿는가 보군요, 테드?”
더크가 물었다.
“스네이프가 덤블도어를 죽였다고 믿는 건가요?”
“당연히 믿고 말고”
테드가 대답했다.
“설마 자네, 사실은 포터가 그 일에 연루된게 아니냐고 말할 작정은 아니겠지?”
“요즘은 뭘 믿어야 할지 통 알 수가 없어서 말이죠”
더크가 중얼거렸다.
“저는 해리 포터를 알아요”
딘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진짜 그거라고 생각해요. 선택받은 자 말이에요. 아니,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요.”
“그래, 그 아이가 바로 그거라고 믿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얘야.”
더크가 말했다.
“나도 그중 하나란다. 하지만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지? 상황을 보건데, 달아났어. 만약 그 아이가 우리는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거나 수행해야 할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지금쯤은 나와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숨어 있는 대신, 저항 세력을 다시 모아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게다가 너도 알겟지만 <예언자 일보>는 그 아이에게 불리한 사실들을 꽤 많이............”
“<예언자 일보>라고?”
테드가 비웃엇다.
“아직도 그런 쓰레기를 일고 있다면, 자넨 거짓말을 들어도 싸네, 진짜 사실을 알려거든 <이러쿵 저러쿵>을 읽어보게나”
그때 갑자기 컥하고 숨이 막히는 소리가 나더니, 탁탁 등을 치는 소리와 더불어 웩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로 미루어 보아. 더크가 생선 가시를 삼킨 모양이었다. 마침내 더크가 마구 침을 튀기고 따지고 들었다.
“<이러쿵 저러쿵>이라고요? 제노 러브굿의 그 정신 나간 헛소리 말인가요?”
“요즘엔 그렇게 헛소리만은 아니라네.”
테드가 대답했다.
“자네도 그걸 한번 읽어 보게나. 제노는 <예언자 일보>에서 무시하는 모든 사건들을 기사화하고 있어.지난 호에는 크럼플 혼드 스놀캑스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네. 사실 그자들이 제노를 얼마나 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지 모르겠어. 하지만 제노는 매번 잡지를 낼때마다 1면에다가 그 사람과 맞서 싸우기를 원하는 마법사는 누구든 최고 우선순위로 해리 포터를 도와야만 한다고 쓰고 있네”
“도무지 감쪽같이 사라진 아이를 도와줄 재간이 있어야 말이죠”
더크가 투덜거렸다.
“내 말좀 들어 보게나, 그자들이 아직까지 그 아이를 붙잡지 못하는 것만도 정말이지 대단한 일 아닌가.”
테드가 말했다.
“난 기꺼이 그 아이에게 한 수 배울걸세. 그거야말로 우리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 아닌가? 자유로운 몸으로 지내는 것 말일세!”
“그래요, 맞는 말씀이에요.”
더크가 우울하게 말했다.
“마법부 전체와 모든 정보원들이 그 아이를 찾고 있으니, 나도 지금쯤이면 붙잡힐 거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말이죠. 그자들이 벌써 그 아이를 붙잡아 죽이고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요.”
“오, 그런 소리 말게나 더크”
테드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나이프와 포크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들릴뿐,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들이 다시 대화를 시작한 것은, 강둑에서 자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나무가 우거진 산비탈로 돌아가는게 좋은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숲속이 몸을 숨기기에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들은 모닥불을 끈 후에 비탈길을 기어 올라갔다. 그와 더불어 그들의 목소리도 점차 멀어졌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늘어나는 귀를 되감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입을 다물고 잇기가 괴로웠던 해리는 막상 지금은 말문이 탁 막혀서, 겨우 “지니............그 칼..........” 이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렇지!”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러고는 잽싸게 달려가 작은 구슬 백을 집어 들더니 곧장 겨드랑이까지 팔을 쑥 집어넣었다.
“여기...........어디...........있는데........”
헤르미온느는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이윽고 백의 제일 깊숙한 곳에서 뭔가는 꺼냈다. 화려하게 장식이 된 액자의 모서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해리는 얼른 뛰어가서 헤르미온느를 도와 주었다. 둘이 그녀의 백에서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의 빈 초상화를 꺼내고 나자, 헤르미온느는 지팡이를 겨누고 당장 주문을 걸 자세를 취했다.
“만약 그 칼이 덤블도어 교수님의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는 동안 누군가 진짜 칼을 가짜와 바꿔치기 했다면.”
해리와 함께 초상화를 텐트 벽에 기대어 세워 놓으면서 헤르미온느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분명히 보았을 거야! 그는 바로 그 유리상자 옆에 걸려있었으니까.”
“자고 잇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해리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텅 빈 초상화 앞에 무릎을 끓고 앉자, 해리 역시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그녀는 지팡이로 캔버스의 한가운데를 겨누고 목청을 가다듬은 다음 말했다.
“어.........피니어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헤르미온느가 또다시 물었다.
“블랙 교수님, 잠깐 저희랑 말씀 좀 나주실 수 있나요? 부탁입니다.”
“‘부탁입니다’ 란 말은 항상 효과가 있지”
싸늘하고 심술궃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곧이어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초상화 속에 나타났다. 그 즉시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옵스큐로!”
검은 눈가리개가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의 날카롭고 까만 눈을 휙 덮어버렸다. 피니어스는 액자에 쿵 하고 부딪히면서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가...........감히 이런 짓을........이............이게 무슨짓?”
“정말 죄송합니다. 블랙 교수님.”
헤르미온느가 사과를 했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 이럴 수 밖에 없어요.”
“당장 이 더러운 물건을 치우지 못해! 당장 치우라고 했어! 넌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망치고 잇는 거라고! 그런데 여기가 어디냐? 도대체 무슨 일이지?”
“저희가 어디 잇는지는 전혀 신경쓰지 마세요”
해리가 말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순간 얼어붙어 그림 위로 칠해진 눈가리개를 벗겨 내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이건 그 미꾸라지 같은 포터 군의 목소리가 아닌가?”
“어쩌면요”
해리는 이렇게 하면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의 호기심을 계속 끌 수 있다는 걸 알고 모호하게 대답했다.
“교수님께 여쭤 볼 게 좀 잇어요. 그리핀도르의 칼에 대해서말이죠.”
“아하”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어떻게든 해리의 모습을 보려고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래, 그 멍청한 여학생이 정말 현명하지 못한 짓을 했지.”
“내 동생에 대해 그따위로 말하지 말아요.”
론이 사납게 소리쳤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거만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여기 또 누가 있는거지?”
그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네 녀석의 말투가 아주 못마땅하구나! 그 여학생이랑 그친구들은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었단 말이다. 감히 교장 선생님의 물건을 훔치려고 하다니!”
“훔치려고 한게 아니에요”
해리가 반박했다.
“그 칼은 스네이프의 것이 아니니까요.”
“그 칼은 스네이프 교수님의 학교 물건이야”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흥분해서 말했다.
“더구나 위즐리 집안의 계집애가 그 칼에 대해 무슨 권한이 있단 말이냐? 그 계집애는 벌을 받아 마땅해. 그 천치 같은 롱바텀과 괴짜 러브굿도 마찬가지야!”
“네빌은 천치가 아니고 루나도 괴짜가 아니예요!”
헤르미온느가 분개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게냐?”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또다시 눈가리개를 벗겨 내려고 기를 쓰면서 물었다.
“날 어디로 데려온 거야? 어째서 나를 우리 조상님들의 집에서 가지고 나온거냐?”
“그런 건 신경쓰지 마세요! 스네이프가 지니와 네빌, 그리고 루나에게 어떤 벌을 주었죠?”
해리가 다급하게 물었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그 아이들을 금지된 숲으로 보냈다. 그 저능아 해그리드 밑에서 일을 하라고 말이다.”
“해그리드는 저능아가 아니에요!”
헤르미온느가 꽥 소리쳤다.
“스네이프야 그걸 벌이라고 생각하겠죠.”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지니와 네빌, 그리고 루나는 아마 해그리드와 배꼽을 잡고 웃엇을 걸요. 금지된 숲이라니......... 그 아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련도 많이 겪었다고요! 훨씬 더 많이!”
해리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최소한 크루시아투스 저주와 같은 아주 끔직하고 무시무시한 것을 줄곧 상상했던 것이다.
“블랙 교수님, 저희가 진짜 알고 싶은 건요.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 칼을 벌써 가지고 나간 건 아닌가 하는 거예요. 혹시 청소나 뭐 다른걸 하기 위해서 가져갔을 수도 있잖아요?”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눈가리개를 풀려는 몸부림을 잠시 멈추더니 킬킬거리고 웃었다.
“역시 머글 태생들이란.......”
그는 말을 이었다.
“도깨비가 만든 무기는 청소따윈 필요없어. 이 무식한 아가씨야. 도깨비들이 만든 은 제품은 원래 세속의 더러운 것들은 밀어내고 오직 자신의 힘을 더욱 강하게 해 주는 것만 빨아들인단 말이다.”
“헤르미온느를 무식하다고 하지 마세요.”
해리가 발끈했다.
“꼬박꼬박 말대꾸를 듣는 것도 이젠 신물이 난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말했다.
“그만 나는 교장실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여전히 눈가리개를 한 채, 그는 호그와트의 초상화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 액자를 더듬었다. 문든 해리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덤블도어 교수님! 덤블도어 교수님을 이리로 불러 주실수는 없나요?”
“뭐라고 말했냐?”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물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초상화 말이에요. 그분을 이쪽으로 모시고 오실 수는 없나요?”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해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봤더니 머글 태싱들만 무식한게 아니로군. 포터, 호그와트 안에 있는 초상화들은 서로 교류를 할 수 잇지만, 다른 어딘가에 자신들의 초상화가 걸려 잇는 경우가 아니라면 호그와트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어. 그러니까 덤블도어를 이리로 데리고 올 수는 없다. 게다가 네 녀석들로부터 이런 몹쓸 대접을 받았는데, 내가 여길 두 번 다시 찾아 올것 같으냐?”
해리는 약간 풀이 죽어서 다시 액자를 떠나려고 시도하는 피니어스를 지켜보았다.
“블랙 교수님”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제발 부탁인데 그 칼이 언제 마지막으로 상자에서 나왔는지 그것만 저희에게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니까 제말은 지니가 꺼내기 전에 말이죠”
피니어스가 신경질적으로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엇다.
“그리핀도르의 칼이 그 상자에서 나오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것은 덤블도어 교수가 그걸로 반지를 깨뜨려 열려고 할때였을 게다.”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획 돌려서 해리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앞에서 더 이상 자세한 말을 꺼낼 수는 없었지만, 드디어 그가 돌파구를 찾아 준 것이다.
“그럼, 어디 너희끼리 잘 지내려무나.”
그는 약간 비꼬는 어조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액자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의 모자챙만 겨우 보일락 말락 하는 순간, 해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잠깐만요! 저희를 봤다고 스네이프에게 말씀하실 건가요?”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눈가리개를 한 얼굴을 다시 초상화 속으로 삐죽 내밀었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알버스 덤블도어의 수많은 엉뚱한 짓거리들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에 신경을 쓰고 계신다. 잘 잇어라, 포터!”
그 말을 남기도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음산한 배경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앗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큰 소리로 외쳣다.
“그래, 나도 알아.”
해리도 소리쳤다. 그러고는 도저히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허공으로 주먹을 날렸다.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수확을 거둔 것이다. 해리는 텐트 안을 이리저리 성큼성큼 돌아다녔다. 몇 킬로미터라도 달릴 수 잇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헤르미온느는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의 초상화를 다시 구슬 백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엇다. 그리고 마침내 백의 걸쇠를 딱 잠그고 나자, 얼른 한쪽으로 백을 던져 놓고는 환한 얼굴로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그 칼로 호크룩스를 파괴할 수 있어! 도깨비가 만든 칼은 오직 자신의 힘을 강하게 해주는 것만 빨아들인다고 햇더. 해리, 그 칼에는 바실리스크의 독이 스며들어 갔잖아.”
“그래서 덤블도어 교수님은 그 칼을 나에게 주시지 않았던 거야. 아직 필요하셨기 때문에 말이지. 그 로켓을 없애는 데 사용하고 싶으셨던 거야.”
“그리고 설령 유언장에 그 칼에 대한 내용을 써 놓아도 그들이 너에게 그 칼을 주지않으리라는 걸 알고 계셨던 거야.”
“..........그래서 복제품을 만들고......”
“............가짜 칼을 유리 상자에 넣으신 다음......”
“...........진짜 칼을 옮기셧어, 그런데 어디로?”
두 사람은 서로를 빤히 마주 보았다. 해리는 웬지 그 대답이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이 가까운 곳에서 보이지 않게 알짱알짱거리고 있는것 같았다. 왜 덤블도어는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아니면 사실은 이미 말해주었는데, 단지 해리가 그 당시에는 알아듣지 못한 것일까?
“생각해 봐! 생각해 보라고! 덤블도어 교수님이 그 칼을 어디에 두셨을까?”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호그와트는 아니야”
해리가 다시 서성거리기 시작했다ㅣ
“호그스미드 어딘가에 두신 건 아닐까?”
헤르미온느가 추측했다.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 거긴 아무도 들어가지 않으니까?”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거길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 그러니 그건 좀 위험한 일이 아니었을까?”
“덤블도어 교수님은 스네이프를 믿고 계셨어.
해리가 그녀의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스네이프에게 그 칼을 바꿔치기 햇다는 사실까지 알려 주실 정도는 아니었어.”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해리가 소리쳤다. 덤블도어가 스네이프의 신뢰성에 대해서 아주 약간이나마 의혹을 가졌었다는 생각을 하자, 훨씬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다면 호그스미드로부터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칼을 숨기셨을까? 론, 네 생각은 어떠니? 론? 론?‘
해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잠깐 동안 론이 텐트 밖으로 나간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론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아래쪽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 이제 내 생각이 났니? 그래?”
론이 빈정거렸다.
“무슨 소리야?”
론은 콧방귀를 뀌며 위쪽 침상의 밑바닥을 뜷어져라 쳐다보았다.
“너희 둘이 계속 잘해봐, 괜히 내가 끼어서 너희의 흥을 깰 필요가 없지.”
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도움을 바라듯이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해리만큼이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뭐 때문에 그러니?”
해리가 물었다.
“뭐 때문이냐고? 물론 아무것도 아니야”
론이 대꾸했다. 하지만 여전히 해리 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쨋든 너희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지”
텐트 지붕에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야,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어.”
해리가 말했다.
“어서 솔직히 털어놔.”
론이 긴 다리를 휙하고 침대에서 내려놓으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평소의 론답지 않게 몹시 야비해 보였다.
“좋아, 그럼 솔직히 말하지. 우리가 찾아내야 할 빌어먹을 또 다른 뭔가가 생격다고 해서, 내가 좋아서 텐트 안을 겅중겅중 뛰어다닐 거라고 기대하지 말란 말이야. 이건 그냥 네가 모르는 물건의 목록이 하나 더 늘어난 것뿐이라고.”
“내가 모른다고?”
해리가 되풀이 했다.
“내가 모른다고?”
후드득, 후드득. 빗줄기가 점점 더 거세고 굵어졌다. 나뭇잎이 수북이 쌓인 강둑 위를 두들기던 빗줄기는 어둠 속을 콸콸 거리며 흘러가는 강물로 흘러 들어갔다. 기쁨에 들떳던 해리의 마음은 갑자기 두려움으로 어두워졌다. 지금 론은 그가 줄곧 걱정해 왓지만 무서워서 회피했던 사실을 정확하게 꼬집어 말하고 있었다.
“난 여기서 난생처음으로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군.”
론이 말을 이었다.
“팔은 절단나고, 먹을 것은 하나도 없고, 밤마다 차가운 바닥에서 자느라 등은 빳빳해 죽을 지경으로 말이야. 사실 난 우리가 몇 주일 정도만 열심히 돌아다니면 뭔가를 해낼 거라고 기대했어.”
“론”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론은 이제 사나운 기세로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파묻혀서 그 조용한 목소리를 못 들은 척 했다.
“난 네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나섰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해리가 말했다.
“그래,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그럼, 도대체 네 기대에 그토록 못 미치는 게 뭐야?”
해리가 따졌다. 이제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가 별 다섯개짜리 호텔에라도 묵을 줄 알았니? 이틀에 한번씩 호크룩스를 찾아낼 줄 알았어? 크리스마스쯤에는 엄마 곁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거야?”
“우리는 네가 무엇을 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론이 벌떡 일어서면서 고함을 질렀다. 그의 말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해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린 덤블도어 교수님이 너에게 앞으로 할 일을 모두 일러주신 줄 알았단 말이야. 너에게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줄 알았다고!”
“론!”
헤르미온느가 부르짖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텐트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뜷고 또렷하게 들렸지만 또다시 론은 못 들은 척 했다.
“그래, 실망시켜 미안하다.”
해리가 말했다. 비록 그의 마음은 공허하고 무기력했지만 목소리는 너무나 침착했다.
“난 처음부터 줄곧 너에게 솔직했어. 덤블도어 교수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신 건 모두 너에게 말해주었고 말이야. 혹시 네가 모를까봐 하는 말인데, 우리는 호크룩스를 하나 찾아냈고.......”
“그래, 그 밖의 나머지 호크룩스들을 찾아내는 일만큼이나, 그 하나를 없애는 일에도 굉장한 진척을 보이고 있지.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우린 그 근처도 못 가고 있잖아!”
“론, 그 로켓을 벗어.”
헤르미온느가 평소와 다르게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어서 벗어. 그걸 하루종일 걸고 다니지 않았다면, 그럼 말은 하지 않앗을 거야.”
“아니, 그래도 했을 거야.”
해리는 론을 위해 애써 변명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너희 두 사람이 내 뒤에서 속닥거리는 걸 내가 눈치 못 챘을 것 같아? 너희 둘이서 줄곧 이런 생각을 해 왓다는 걸 내가 짐작 못했을 것 같으냐고!”
“해리, 우린 절대......”
“거짓말 할것 없어!”
론이 헤르미온느에게 소리쳤다.
“너도 그렇게 말했잖아. 너도 실망스럽다고. 해리에게 뭔가 계획이 있는 줄 알았다고 말이야.”
“해리,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부르짖었다.
이제 빗줄기는 텐트를 마구 두들기고 있었고, 헤르미온느의 얼굴에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불과 몇분전에 느꼇던 흥분은 언제 그랫냐는 듯이 사라졌다. 잠깐 동안 환하게 타오른 불꽃은 어둡고 축축하고 싸늘한 것만 뒤에 남긴 채 꺼져 버렸다. 그리핀도르의 칼은 그들이 전혀 모르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고, 그들은 텐트안에 갇힌 세명의 십대 아이들일 뿐이었다. 여태껏 이룬 업적이라고는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 뿐인.
“그런데 왜 넌 아직 여기 잇는 거니?”
해리가 론에게 물었다.
“나도 몰라!”
론이 대답했다.
“그럼 집으로나 가 버려”
해리가 쏘아붙였다.
“그래, 그럴거야!”
론도 지지 않고 소리쳣다. 그리고 해리를 향해 몇 발자국 다가갔다. 하지만 해리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내 동생에 대해서 하는 말을 너는 못들었어? 그런데도 넌 개똥만큼도 신경 쓰질 않는 군, 고작 금지된 숲이라고? 그래, 그보다 더 심한 시련을 겪은 해리 포터께서는 거기서 내 동생이 무슨 일을 당하든 상관하지 않겠지, 그래 대왕 거미들이나 그 정신 나간 것들이 뭘 하든.......”
“난 단지 .......... 지니가 다른 이들과 함께 잇다고 말햇을 뿐이야. 해그리드 함께 있다고..”
“그래, 알겠어. 넌 아무 관심도 없겠지! 게다가 나머지 우리 식구들에 대해선 뭐라고 했지? ‘위즐리 집안의 아이들이 더 이상 다치거나 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너도 그말 들었지?”
“그래, 나도.....”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신경 쓸 생각도 안 했지?”
“론!”
헤르미온느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서 소리쳤다.
“그렇다고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는 뜻은 아닐거야.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말이지. 생각해 봐. 론, 빌은 벌써 상처를 입었고, 지금쯤이면 조지의 귀 한쪽이 없어진 걸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거야. 그런 데다 너까지 스팻터그로이트 병에 걸려서 죽을 지경이 된 줄 알것 아니야. 그러니 그 사람이 한 말은 분명히 그런 뜻이...”
“분명히 그렇다고 네가 장담할 수 있어? 좋아, 그렇다면 나도 괜히 가족 걱정을 하며 속 끓이지 않을게, 너희 둘이야 아무렇지도 않겠지. 너희 부모님은 안전하시니까.......”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셨잖아!”
해리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 역시 그렇게 될지도 몰라!”
론이 맞받아쳤다.
“그럼 가 버려!”
해리가 호통을 쳣다.
“당장 그분들께 돌아가라고! 그래서 스팻터그로이트 병이 나은 척해, 그럼 엄마가 해 주는 음식도 실컷 먹을 수 있을 테고.......”
론이 갑자기 휙 동작을 취했다. 해리가 재빨리 움직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호주머니에서 미처 지팡이를 뽑기 전에 헤르미온느가 먼저 자신의 지팡이를 들었다.
“프로테고!”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그러자 그녀와 해리, 두 사람이 서 있는 쪽과 론 사이에 보이지 않는 방어벽이 펼쳐졌다. 동시에 마법의 힘 때문에 세 사람 모두 뒤로 조금씩 밀렸다. 해리와 론은 마치 생전 처음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투명한 장벽을 사이에 두고 무섭게 노려보고 서 있었다. 해리는 론에 대해 타오르는 증오심을 느꼇다. 두 사람 사이에서 뭔가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호크룩스는 두고가!”
해리가 명령했다.
론은 머리 위로 줄을 벗더니 가까운 의자 위에 로켓을 휙 던졌다. 그러고는 헤르미온느를 향해 돌아섰다.
“넌 어떻게 할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넌 여기 남을 거야 아니면?”
“나, 나는.......”
헤르미온느는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그......그래, 난 남을 거야. 론, 우린 해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어. 우린 그를 도와서.....”
“알겠어.넌 해리를 선택했다 이거지.”
“론, 제발 그러지마. 돌아와. 제발 돌아와.”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자신이 쳐 놓은 방패 마법에 가로막혔다. 그리고 그 주문을 해체했을 때쯤에는 이미 론이 어두운 밤 속으로 폭풍 처럼 사납게 뛰쳐나간 뒤였다. 해리는 꼼짝 않고 조용히 서서, 헤르미온느가 흐느끼며 숲을 향해 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잇엇다.
잠시 후에 헤르미온느가 돌아왔다. 비에 흠뻑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론........론이 가버렸어! 순간이동으로 사라졌어.”
헤르미온느는 의자에 몸을 던지더니, 잔뜩 웅크린 채 큰 소리로 울었다.
해리는 머리가 멍했다. 이윽고 그는 허리를 숙여서 호크룩스를 집어 들고 자신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 론의 침대엣 담요를 가져다가 헤르미온느를 덮어 주었다. 침대로 기어 올라간 해리는 요란한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두운 텐트의 지붕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