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장 도둑
해리는 눈을 떴다. 금색과 초록색이 눈앞에서 아른아른했다. 어떻게 된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아는것이라곤 오직 자신이 낙엽과 나뭇가지 같은 데에 누워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꽉 짓눌린 듯한 가슴에 숨을 들이마시려고 애를 쓰면서, 해리는 눈을 몇 번 깜박거렸다. 그리고 번쩍번쩍하는 광채가 바로 저 높은 곳에 있는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뭔가가 얼굴 가까운 곳에서 씰룩 움직였다. 해리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두 손과 무릎을 땅에 짚은 채, 그 작고 사나운 생물과 맞설 태세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론의 발이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그들과 헤르미온느는 숲 속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단 세 사람밖에 없는 것이 분명했다.
해리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금지된 숲에 왔다는 것이다. 비록 호그와트 학교 구내에 나타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숲을 살짝 빠져나가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에 몰래 숨어들 생각을 하니, 잠깐 동안 가슴이 마구 뛰었다. 하지만 곧이어 론의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오자, 해리는 얼른 그를 향해 기어갔다. 그러면서 금방 이곳이 금지된 숲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무들은 훨씬 더 어려 보였고, 훨씬 더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으며, 바닥도 더 말끔했던 것이다.
해리는 론의 머리맡에서 역시 두 손과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잇는 헤르미온는르 만났다. 하지만 론을 바라보는 순간, 다른 모든 걱정거리들은 해리의 머리에서 싹 달아나고 말았다. 론의 왼쪽 몸 전체가 피에 흠뻑 젖어 있었던 것이다. 나뭇잎이 무성하게 깔린 땅바닥에 잿빛이 되다시피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이제 폴리주스 마법약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었다. 론은 캐터몰과 원래 자기 모습의 중간 상태였다. 그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핏기까지 점차 사라지는 동안, 그의 머리카락은 점점 더 붉은색으로 변해 갔다.
“론이 어떻게 된 거지?” “순간이동 중에 신체분리가 된 거야.”
헤르미온느가 손으로는 벌써 분주하게 론의 소매를 만지면서 대답했다. 그 부분이 검붉은 피로 가장 축축하게 물들어 있었다.
해리가 공포에 질려 지켜보고 있는 동안, 헤르미온느는 론의 셔츠를 찢었다. 해리는 항상 신체분리 사고가 좀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것은........ 헤르미온느가 론의 소매를 벗겨 내자 해리는 뱃속이 마구 울렁거렸다. 마치 칼로 말끔하게 도려낸 듯이 커다란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자리가 드러났던 것이다.
“해리, 어서, 내 백에 보면 ‘디터니 원액’ 이라는 딱지가 붙은 작은 약병이 있어.”
“백........ 알았어..........”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쓰러져 있던 자리로 황급히 달려갔다. 그리고 작은 구슬 백을 움켜쥐고 얼른 손을 집어넣었다. 즉시 수많은 물건들이 차례차례 손에 와 닿았다. 해리는 정신없이 더듬었다. 가죽 표지를 씌운 책들, 털 달린 점퍼의 소맷자락, 구두 굽........
“어서!”
해리는 땅에 떨어진 자기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법백의 안쪽 깊숙한 곳을 향해 겨누었다.
“아씨오 디터니!” 작은 갈색 병이 백 속에서 슝 날아왔다. 해리는 재빨리 병을 붙잡아서 헤르미온느와 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제 론은 눈을 절반쯤 감고 있었고, 눈꺼풀 사이로는 허연 흰자위만이 보였다.
“기절했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 또한 론 못지않게 파리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아직도 여기저기 희끗희끗했지만, 얼굴은 더 이상 마팔다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것 좀 열어 줘, 해리. 손이 떨려서 안 되겠어.”
해리는 작은 병의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헤르미온느는 그것을 받아 들더니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 부위에 물약을 세 방울 떨어뜨렸다. 초록색 연기가 소용돌이치며 피어올랐다. 연기가 가시고 나자 피가 멈추었다. 이제 상처는 벌써 며칠쯤 지난 것처럼 보였다. 방금 전까지 뻘건 살이 드러나 있던 자리에 새로운 살이 자라고 있었다.
“우와.”
해리가 감탄했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았어.”
헤르미온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론을 완전히 낫게 할 수 있는 주문들도 있지만, 도저히 시도해 볼 엄두가 안 났어. 혹시라도 내가 잘못해서 더 심한 부상을 입히기라도 한다면..... 론은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데.........”
"그런데 론이 어쩌다 부상을 입은 거지? 내 말은........”
해리는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왜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거지? 그리몰드 광장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헤르미온느가 한숨을 푹 쉬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한 표정이었다.
“해리, 이제 우린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그게 무슨.......?”
“우리가 순간이동을 할 때, 악슬리가 나를 꽉 붙잡고 있었는데, 힘이 너무 세서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어. 그래서 우리가 그리몰드 광장에 도착했을 때, 그자도 여전히 붙어 있었던 거야. 그래, 내 생각엔 그자가 분명히 그 문을 본 것 같아. 그런데 악슬리는 우리가 거기서 멈추는 줄 알고, 잠깐 날 붙잡은 손의 힘을 뺏어. 그 틈을 타서 나는 간신히 그자를 떨쳐 버리고 너희를 데리고 여기로 온 거야!”
“그렇다면 그자는 어디 있어? 잠깐만......... 설마 그자가 그리몰드 광장에 있다는 뜻은 아니겠지? 그자는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잖아?”
헤르미온느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해리, 아마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반동 주문으로 그자가 강제로 튕겨 나가도록 했어. 하지만 내가 이미 그자를 피델리우스 마법의 보호막 안쪽으로 넣어 주었던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가 바로 비밀 파수꾼이잖아. 그런데 내가 그에게 그 비밀을 알려 준 거지, 안 그래?”
아닌 척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해리는 그녀의 말이 맞는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참으로 심각한 타격이었다. 이제 악슬리가 그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들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악슬리는 순간이동을 통해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을 얼마든지 그 집 안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집이 비록 울음하고 숨 막힐 듯 답답하기 하지만, 그들에게는 단 하나뿐인 안전한 피신처였다. 게다가 크리처가 그토록 명랑하고 친절해진 요즘에는 거의 집처럼 여겨졌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영원히 먹지 못할 스테이크와 키드니 파이를 만드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집요정을 생각하자, 해리는 가슴이 뻐근하며 아팠다. 그것은 결코 먹지 못하게 된 음식 때문이 아니었다.
“해리,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어. 혹시 잘못이 있다면, 나에게 있어.......”
해리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매드아이의 눈을 꺼냈다. 헤르미온느가 기겁을 하면서 몸을 움츠렸다.
“엄브릿지가 이걸 자기 사무실에 문에 붙여 두고 있었어. 사람들을 감시하려고 말이야. 난 도저히 이걸 거기에 두고 올 수가 없었어...... 그런데 이것 때문에 그자들이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았던 거야.”
헤르미온느가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론이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아직도 잿빛인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좀 어때?”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불쾌해.”
론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부상당한 팔의 통증을 느낀 듯 얼굴을 찡그렸다.
“우리가 어디 있는 거지?”
“퀴디치 월드컵이 열렸던 그 숲 속에 있어.”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나는 어딘가 외지고 은밀한 곳을 원했는데 이곳이.......”
“제일 먼저 생각났구나.”
해리가 말을 받았다. 그리고 확실히 적막하기 짝이 없는 숲속 공터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헤르미온느가 제일 먼저 떠올린 장소로 순간이동을 했다가 그들이 무슨 일을 당했었는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어떻게 그토록 금방 그들을 찾아냈을까? 레질리먼시였을까? 심지어 이번에도 볼드모트나 혹은 그의 심복 부하들이,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 이제 그만 이동해야 하지 않니?”
론이 해리에게 물었다. 론의 얼굴에 떠오를 표정을 보니, 해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도 모르겠어.”
론은 여전히 창백하고 축 늘어져 있었다. 심지어 일어나 앉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너무 기운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를 데리고 이동을 한다는 건 무리였다.
“지금은 여기 좀 있자.”
해리가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발딱 일어났다.
“어디 가는 거야?”
론이 물었다.
“여기 머물러 있을 거면, 이 주위에 보호 마법을 쳐 놓아야 만 해.”
헤르미온느는 이렇게 대답하더니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입으로는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면서, 해리와 론 주위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걸었다. 해리는 주위 공기가 파르르 진동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헤르미온느가 이 숲 속 공터에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살비오 헥시아....... 프로테고 토탈룸...... 레펠로 머글레툼...... 머플리아토.......해리, 텐트를 꺼내.......”
“텐트라고?”
“백 안에!”
“아, 그렇지....... 백 안에.......”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굳이 손을 넣어 백 안을 더듬어 보려고 하지 않고, 또다시 소환 마법을 썼다. 거친 캔버스 천과 밧줄 그리고 폴대로 이루어진 텐트가 튀어나왔다. 해리는 그것이 퀴디치 월드컵 때 숙소로 사용했던 그 텐트라는 걸 바로 알아보았는데, 그것은 희미하게 풍기는 고양이 냄새 때문이기도 했다.
“이건 마법부에 근무하는 퍼킨스 아저씨 것인 줄 알았는데?”
해리가 텐트의 말뚝을 풀며 물었다.
“그 사람은 분명 이걸 돌려받고 싶어 하지 않았어. 요통이 너무 심해서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이제는 지팡이로 대단히 복잡한 여덟 가지 동작을 하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위즐리 아저씨가 빌려가도 된다고 말씀하셨어. 에렉토!” 헤르미온느는 마지막 주문을 덧붙이며 모양이 엉망인 텐트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러자 텐트가 단번에 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솟아오르더니 완전한 모양을 갖추고 해리 앞에 우뚝 섰다. 곧이어 깜짝 놀라 멍하니 서 있는 해리의 손에서 말뚝이 붕하고 떠오르더니 마지막으로 당김 밧줄 끝에 쾅 하고 박혔다.
“케이브 이니미컴.”
헤르미온느는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멋지게 휘두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적어도 그자들이 다가온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거야. 물론 이걸로 다 막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순 없어. 볼드........”
“그 이름을 말하지 마!”
론이 사납게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미안해.”
그들을 쳐다보려고 몸을 일으키던 론이 희미하게 신음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저주나 뭐 그런 것같이 느껴져서..... 우리, 대신 그냥 그 사람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 제발?” “덤블도어 교수님 말씀이 이름을 두려워하는 건......”
해리가 말을 꺼냈다.
“이봐, 혹시 네가 모를까 봐 하는 말인데, 그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결국 덤블도어 교수님에게 별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잖아.”
론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냥....... 그냥 그 사람에게 약간의 존중을 보이자고, 알았어?”
“존중이라고?”
해리가 기가 막혀 되물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경고하듯이 그를 째려보았다. 허약한 상태인 론과 더 이상 말씨름을 하지 말라는 뜻이 분명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론을 반쯤은 들고 반쯤은 끌다시피 해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은 해리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욕실과 조그만 주방까지 완벽하게 갖춘 소형 아파트 같았다. 해리는 낡은 안락의자를 옆으로 치우고 론을 조심스럽게 2층 침대의 아래쪽 침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렇게 잠깐 움직인 것만으로도, 론은 더욱더 창백해졌다. 일단 침대 위에 눕자, 론은 다시 눈을 감더니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차를 준비할게.”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리고 백 안에서 주전자와 머그잔을 꺼내더니 부엌으로 갔다.
해리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매드아이가 죽던 날 밤에 마셨던 파이어위스키만큼이나 반갑게 느껴졌다.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두려움이 약간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론이 침묵을 깼다.
“캐터몰 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운이 좋다면, 도망쳤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위안 삼아 따뜻한 머그잔을 꼭 감싸 쥔 채 말했다.
“캐터몰 씨가 재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동반 순간이동으로 캐터몰 부인을 데리고 나왔을 거야. 그리고 당장 가족을 데리고 이 나라를 떠났겠지. 해리가 부인에게 그렇게 하라고 충고 했거든.”
“제기랄, 꼭 도망쳤어야 하는데.”
론이 베개에 등을 기댄 채 말했다. 따뜻한 차를 마신 덕분에 기운이 꽤 회복된 것 같았다. 얼굴에도 약간씩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느낌으로는 레트 캐터몰이 그렇게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어. 내가 그 사람이었을 때, 다들 나에게 하는 말투가 그랬거든. 오, 제발 무사히 도망쳤으면 좋겠다. 만약 우리 때문에 두 사람이 결국 아즈카반이라도 가게 된다면.......”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힐끗 건너다보았다. 그리고 지팡이도 없는 캐터몰 부인이 과연 남편과 함께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만 말을 꿀꺽 삼켜 버렸다. 캐터몰 부부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는 론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는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어찌나 부드럽고 다정하던지, 마치 론과 키스를 하고 있는 헤르미온느를 기습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 그건 갖고 있니?”
해리가 자기도 이 자리에 있다는 걸 일깨워 주기 위해서 짐짓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갖고 있느냐고? 뭐...... 뭘?”
헤르미온느가 살짝 놀라며 말했다.
“우리가 뭐 때문에 이 모든 고생을 했는데? 로켓 말이야! 로켓은 어디 있어?”
“그걸 손에 넣었어?”
론이 베개에서 몸을 약간 일으키며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너희 둘 다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 말이야? 제기랄, 한마디쯤 해 줄 수도 있었잖아!”
“우린 죽음을 먹는 자들을 피해서 죽어라 도망치는 중이었잖아,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여기 있어.”
그녀는 망토 호주머니에서 로켓을 꺼내어 론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거의 달걀만 했다. 수많은 작은 초록색 보석으로 새겨 넣은, 화려한 문양의 s라는 글자가 텐트의 캔버스 지붕을 통해 새어 들어온 햇빛을 받아서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크리처가 가져온 이후로 누군가 이걸 파괴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론이 그러길 바라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게 아직도 호크룩스인 게 확실하냔 말이야.”
“내 생각에는 그래.”
헤르미온느는 론에게서 그걸 다시 받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만약 마법의 힘으로 파괴되었다면, 틀림없이 손상된 흔적이 남았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그걸 다시 해리에게 넘기자, 해리는 그걸 손에 쥐고 빙 돌려 보았다. 흠 하나 없이 완벽하고 말끔해 보였다. 해리는 손상된 일기장의 잔해를 떠올렸다. 그리고 덤블도어가 호크룩스 반지를 파괴했을 때, 반지의 돌이 딱 소리를 내며 금이 갔던 것을 기억했다.
“크리처 말이 맞는 것 같아.”
해리가 말했다.
“이걸 파괴하기 전에 먼저 이걸 어떻게 열지 그 방법부터 연구해 보야 할 거야.”
이 말을 하는 순간, 해리는 자신이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이 작은 황금 문 뒤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그러자 세 사람이 천신만고 끝에 겨우 찾아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그 로켓을 내동댕이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손가락으로 로켓을 비틀어 열어 보려고 했다. 그런 다음에는 헤르미온느가 레귤러스의 침실 문을 열 때 사용했던 주문을 시도해 보았다. 어느쪽도 소용이 없었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다시 로켓을 건네주었다. 두 사람이 제각기 최선을 다해 시도해 보았지만,결국 아무도 그걸 여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너희는 이게 느껴지니?”
로켓을 손에 꼭 쥐고 있던 론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론이 호크룩스를 해리에게 돌려주었다. 잠시 후에 해리는 론의 말뜻을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느끼는 이게 과연 그의 혈관 속을 흐르는 피의 맥박일까? 아니면 이 로켓 안에 든 뭔가가 마치 조그만 금속 심장처럼 고동치고 있는 걸까?
“이제 이거 어떻게 하지?”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어떻게 파괴하는지 방법을 알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해야지.”
해리가 대답했다. 그는 좀처럼 내키지는 않았지만, 로켓이 달린 줄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지 않도록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로켓은 해그리드가 준 주머니와 나란히 그의 가슴에 매달려 있었다.
“교대로 텐트 밖에서 망을 봐야 할 것 같아.”
해리는 벌떡 일어나서 기지개를 쭉 펴며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그리고 먹을 걸 어디서 구할지도 좀 생각해야 해. 아니, 넌 그냥 가만히 있어.”
해리가 날카롭게 덧붙였다. 론이 일어나 앉으려고 하다가 새파랗게 안색이 변했던 것이다.헤르미온느가 해리의 생일날 선물한 스니코스코프를 조심스럽게 텐트안의 탁자 위에 올려놓은 다음,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그 후로 내내 번걸아 망을 보았다. 하지만 스니코스코프는 온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조용하게 똑바로 서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주위에 둘러쳐 놓은 보호 마법과 머글들을 물리치는 마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니면 사람들이 좀처럼 이 길을 다니려고 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있는 숲속 공터에는 이따금씩 찾아드는 새들과 다람쥐들 이외에는 개미새끼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열 시가 되자, 해리는 지팡이 끝에 불을 켜고 헤르미온느와 자리를 교대했다. 그리고 적막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박쥐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머리 위로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별이 총총히 박힌 손바닥만한 한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해리는 약간 머리가 어찔어찔하면서 시장기를 느꼈다. 헤르미온느는 그들이 그날 밤에 바로 그리몰드 광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법의 백 안에 음식을 전혀 챙겨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먹을 거라곤 헤르미온느가 가장 가까운 나무들 사이에서 따다가 양철 주전자에 삶은 야생 버섯밖에 없었다. 론은 겨우 한두 입 먹더니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자기 몫의 버섯을 밀쳐 버렸다. 해리는 오직 헤르미온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바로 그때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나뭇가지가 딱 부러지는 소리가 주변의 적막을 깨뜨렸다. 해리는 아마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 내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지팡이를 손에 꼭 쥐고 경계 태세를 했다. 질긴 버섯 때문에 이미 불편할대로 불편해진 뱃속이 바싹 긴장을 하자 콕콕 쑤셨다.
전에는 만약 호크룩스를 다시 훔쳐 내기만 한다면, 하늘을 날아갈 듯이 신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팡이 불빛으로 바로 앞만 간신히 밝힌 채 어둠을 노려보며 앉아 있는 그의 마음은 오직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마치 몇 주, 혹은 몇 달, 어쩌면 몇 년 동안 이 지점만을 향해서 죽을힘을 다해 뛰어왔는데, 갑자기 걸음을 탁 멈추고 길 밖으로 벗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저 바깥 어딘가에는 또 다른 호크룩스들이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전부 아는 것도 아니었다. 한편 그들이 찾아낸 유일한 호크룩스는 어떻게 파괴할지를 몰라서 쩔쩔매는 상황이었다. 지금 그의 맨가슴에 매달려 있는 호크룩스는 이상하게도 몸의 온기가 전혀 전달되지 않은 채, 마치 얼음물에서 방금 꺼낸 물건처럼 여전히 살에 닿는 촉감이 너무나 싸늘했다. 상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따금 해리는 자신의 심장 옆에서 조그만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팔딱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둠 속에 그렇게 앉아 있다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해리는 그것을 어떻게든 이겨 내려고, 떨쳐 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집요하게 밀려들었다. 다른 한쪽이 살아 있는 한은 어느 쪽도 살 수 없다. 지금 그의 등 뒤에 있는 텐트 안에서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론과 헤르미온느는 원한다면 언제든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해리는 기운을 잃고 공포에 떠는 자기 자신을 추스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왠지 가슴에 매달린 호크룩스가 그에게 남은 이승에서의 시간을 똑딱똑딱 재고 있는 것 같았다. 멍청한 생각이야....... 해리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런 생각은 하지마........
흉터가 또다시 쿡쿡 쑤셔 왔다. 해리는 자신이 괜히 엉뚱한 생각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겁이 났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른쪽으로 생각을 돌리려고 했다. 가엾은 크리처가 생각났다.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눈이 빠져라 기다렸을 텐데, 대신 악슬리가 나타났으니....... 과연 크리처는 침묵을 지킬까? 아니면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자기가 아는 걸 전부 털어놓을까? 해리는 지난 한 달 사이에 크리처의 마음이 완전히 자기 쪽으로 돌아섰다고, 이제는 자기에게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만약 죽음을 먹는자들이 집요정을 고문이라도 한다면? 소름 끼치는 광경들이 해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해리는 얼른 그 생각도 떨쳐 버리려고 애썼다. 지금은 크리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헤르미온느는 이미 크리처를 집 밖으로 불러내겨는 시도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혹시 마법부 사람이 함께 따라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집요정의 순간이동 역시, 악슬 리가 헤르미온느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그리몰드 광장까지 따라온 것과 똑같은 약점을 갖고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흉터는 불로 지지는 듯이 아팠다. 해리는 자신들이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루핀의 말이 옳았다.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하거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마법들이 있는 것이다. 덤블도어는 왜 더 많은 설명을 해 주지 않았을까? 시간이 있을 거라고, 앞으로 몇 년은, 아니 어쩌면 몇 세기는 더 살거라고 생각했을까? 그의 친구였던 니콜라스 플라멜처럼?
만약 그랬다면, 덤블도어의 생각이 틀렸던 것이다....... 스네이프는 그걸 대비하고 있었다...... 스네이프, 잠자는 뱀 같은 인간....... 그자가 탑의 꼭대기에서 공격을 가했다.........
그리고 덤블도어는 쓰러졌다......... 영영 쓰러져 버린 것이다..........
“그걸 내놓아라, 그레고로비치.”
해리의 목소리는 높고 카랑카랑하고 싸늘했다. 길고 새하얀 그의 손은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가 지팡이를 겨누고 있는 사람은 밧줄에 묶이지도 않았는데, 허공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 남자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기괴한 줄이라도 있는 듯 사지로 몸통을 감싼 채 흔들거리고 있었다. 바로 해리의 눈앞에 보이는, 잔뜩 겁에 질린 그의 얼굴은 머리로 피가 쏠려서 새빨갛게 변했다.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과 길고 무성한 수염 때문에, 그의 모습은 꼭 결박당한 산타클로스처럼 보였다.
“내게 없소! 이젠 갖고 있지 않소! 아주 오래전에 도둑맞았단 말이오!”
“볼트모트 경에게 거짓말 따위는 안 통한다, 그레고로비치. 나는 알고 있어...... 언제나 알고 있지.........”
거꾸로 매달린 남자의 눈동자가 공포로 휘둥그레졌다. 검은 눈동자가 점점 더 커지더니 결국에는 그 어둠이 해리를 완전히 삼켜 버렸다.
이제 해리는 등잔을 높이 든, 땅딸막한 그레고로비치의 뒤를 따라서 어두운 복도를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 그레고로비치는 복도 끝에 있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등잔불이 작업실처럼 보이는 그 방 안을 비추었다. 대패질한 부스러기와 흔들리는 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황금이 보였다. 다믐 순간 침입자는 지팡이로 기절 마법을 쏘았고, 의기양양하게 까르르 웃으며 창밖으로 날렵하게 뛰어내렸다.
이제 해리는 동굴처럼 넓게 벌어졌던 그레고로비치의 눈동자에서 순식간에 다시 빠져나왔다. 그레고로비치의 얼굴은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 도둑이 누구지, 그레고로비치?”
높고 냉랭한 목소리가 물었다.
“나는 모르오. 정말 모르오. 어떤 젊은이였는데, 제발, 안 돼. 제발!”
비명 소리가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곧이어 초록 불빛이 번쩍하더니........
“해리!”
해리가 숨을 헉헉거리며 눈을 번쩍 떴다. 이마의 흉터가 욱신욱신 쑤셨다. 해리는 텐트의 옆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옆으로 쓰러져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바닥에 쭉 뻗어 있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부스스한 그녀의 머리카락이, 저 높이 검은 나뭇가지 사이로 손바닥만큼 보이는 하늘마저 가리고 있었다.
“꿈을 꿨어.”
해리가 발딱 일어나 앉으면서 변명을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헤르미온느의 찡그린 얼굴을 바라보려고 했다.
“깜박 졸았었나 봐. 미안.”
“네 흉터 때문이라는 거 다 알고 있어! 네 얼굴에 다 써 있는걸! 너는 또 볼.......”
“그 이름을 말하지 마!”
텐트 깊숙한 곳에서 성난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헤르미온느가 쏘아붙였다.
“그럼, 그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었지?”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해리가 말했다.
“그건 꿈이었다고! 너 같으면 네 꿈을 통제할 수가 있겠니, 헤르미온느?”
“오클러먼시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면........”
하지만 해르는 말다툼 따위에는 흥미가 없었다. 방금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해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자가 그레고로비치를 찾아냈어, 헤르미온느. 그리고 죽인 것 같아. 하지만 그레고로비치를 죽이기 전에, 그자가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는데, 나는.......”
“네가 그렇게 잠이 들 정도로 피곤하다면, 그만 나랑 교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헤르미온느가 쌀쌀맞게 말했다.
“난 보초를 마저 설 수 있어!”
“아니야, 넌 완전히 지쳤어. 어서 가서 누워.”
헤르미온느는 고집 센 표정으로 텐트의 입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해리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론은 아래쪽 침상 밖으로 여전히 창백한 얼굴을 내민 채, 누워 있었다. 해리는 그 위에 있는 또 다른 침상으로 기어 들어가 누웠다. 그리고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에 론이 입구 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헤르미온느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그맣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이 뭘 하고 있던?”
해리는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 모든 걸 상세히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속삭였다.
“그자가 그레고로비치를 찾아냈어. 그를 묶어 놓고 고문을 하고 있었어.”
“그레고로비치를 묶어 놓으면, 어떻게 새 지팡이를 만들라는 거지?”
“나도 몰라..... 그거 참 이상하지, 그치?”
해리는 두 눈을 감고 방금 전에 그가 보고 들었던 모든 장면들을 다시 되새겨 보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볼드모트는 해리의 지팡이에 대해서도, 똑같은 지팡이 심에 대해서도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레고로비치에게 해리의 지팡이를 이길 수 있는 더 강력한 새 지팡이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레고로비치에게 뭔가 달라고 했어.”
해리가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 말했다.
“그걸 넘겨 달라고 요구했는데, 그레고로비치는 이미 그거 도둑맞았다고 말했어.......그러고는........ 그러고는........”
해리는 어떻게 자신이 볼드모트처럼, 그레고로비치의 눈을 통해서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는지를 떠올렸다.........
“그자는 그레고로비치의 머릿속을 읽었어. 그리고 나는 한 젊은이가 창턱에 앉아 있는 걸 보았지. 그자는 그레고로비치에게 주문을 쏘고는 훌쩍 뛰어내려 사라져 버렸어. 그자가 훔친 거야. 그 사람이 쫓고 있는 게 뭐든, 그자가 그걸 훔쳤어. 그런데 왠지 그 젊은이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단 말이야.........”
해리는 웃고 있던 그 젊은이의 얼굴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레고로비치의 기억에 따르면, 그 도둑질은 벌써 오래전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 젊은도둑의 얼굴이 이토록 낯익은 것일까?
텐트 안에서는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이 술렁거리는 소리조차 아득하게 들렸다. 해리의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론의 숨 소리뿐이었다. 얼마 후에 론이 속삭였다.
“그 도둑이 뭘 들고 있는지 못 봤니?”
“아니..... 그냥 뭔가 작은 거였어.”
“해리?”
론이 몸을 뒤척이자, 침대의 널빤지가 삐거덕 소리를 냈다.
“해리, 넌 그 사람이 호크룩스로 만들 또 다른 뭔가를 쫓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니?”
“나도 모르겠어.”
해리가 천천히 대답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또 다른 호크룩스를 만든다면 그자에게도 위험하지 않을까? 헤르미온느가 그자의 영혼은 이미 한계까지 갔다고 말했잖아?”
“그래. 하지만 그자는 그 사실을 모를 수도 있지.”
“어쩌면....... 그럴지도.......”
해리가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까지 볼드모트가 이 똑같은 지팡이 심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믿어 왔다. 그 늙은 지팡이 제작자로부터 해결책을 알아내려고 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그를 죽였다. 분명 지팡이 제작 비법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질문도 하지 않고서.
도대체 볼드모트가 찾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마법부와 마법 세계 전체가 그의 발밑에 놓여 있는 이 마당에, 그자는 어째서 그레고로비치가 한때 소유했다가 이름 모를 도둑에게 도난당한 그 뭔가를 쫓는 데 열중하는 것일까?
해리는 아직도 그 금발 젊은이의 얼굴을 눈앞에 떠올릴 수 있었다. 명랑하면서도 제멋대로인 듯한 인상이었다. 왠지 그 젊은이에게는 프레드와 조지 같은 무모한 장난기가 풍겼다.
그는 마치 새처럼 창턱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해리는 전에 그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 보았는지 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레고로비치의 죽음과 함께, 이제 위험에 처한 것은 다름아닌 그 명랑한 얼굴의 도둑이었다. 아래쪽 침상에서 론이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도, 그리고 자신 역시 서서히 잠으로 빠져드는 동안에도, 해리의 생각은 그 젊은이에게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