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장 (170/194)

제 13장 머글 태생 등록 위원회

 “아, 마팔다!”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며 엄브릿지가 말했다.

 “트래버스가 당신을 보냈군요? 그렇죠?” “예..........에.”

 헤르미온느가 끽끽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당신이라면 아주 잘 해낼 겁니다.”

 엄브릿지는 검은색과 황금색으로 된 옷을 입은 마법사에게 말했다.

 “이제 그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장관님. 마팔다가 기록 작성을 맡아 준다면, 우리는 곧장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엄브릿지는 필기판을 들여다보았다.

 “오늘은 열 사람이고, 그중 한 사람은 마법부 직원의 아내로군요! 쯧쯧....... 심지어 마법부의 심장부인 이곳에조차!” 승강기에 올라탄 엄브릿지는 헤르미온느의 옆에 섰다. 엄브릿지와 장관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두 마법사도 함께 올라탔다. 

 “우리는 곧바로 내려갈 거예요, 마팔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모두 법정에 있을 겁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알버트. 안 내리나요?”

 “아, 물론 내려야죠.”

 해리가 런콘의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얼른 승강기에서 내렸다. 그의 뒤에서 황금 창살이 덜커덩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어깨 너머로 돌아보니 헤르미온느의 초조한 얼굴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헤르미온느 양편에는 키 큰 마법사들이 한 사람씩 서 있었고, 엄브릿지의 벨벳 머리띠는 겨우 헤르미온느의 어깨와 같은 높이에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올라왔나, 런콘?”

 새로 부임한 마법부 장관이 물었다. 그의 검은 긴 머리와 수염에는 희끗희끗한 은빛 가닥들이 섞여 있었고, 앞으로 툭 튀어나온 이마는 반짝이는 눈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해리는 바위 밑에 숨어서 밖을 내다보는 게가 연상되었다.

 “급한 전갈이 있습니다. 그게.......”

 해리는 한순간 주저했다. 

 “아서 위즐리 말입니다. 누군가 그가 1층에 있다고 하더군요.”

 “아........”

 파이어스 씨크니스가 말했다.

 “그자는 기피대상자와 접촉했다가 붙잡히지 않았던가?”

 “아닙니다.”

 해리는 목이 바싹 탔다.

 “아, 괜찮아. 그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니까.”

 씨크니스가 말했다.

 “내 견해를 말하자면, 동족의 배신자들은 잡종만큼이나 나쁘지. 좋은 하루 보내게, 런콘.”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장관님.”

 해리는 씨크니스가 카펫이 두껍게 깔린 복도를 따라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장관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해리는 두껍고 검은 망토 밑에서 투명 망토를 꺼내 그것을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복도를 따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런콘은 키가 아주 컸기 때문에, 그의 커다란 발까지 완전히 감추기 위해서는 구부정하게 걸어야만 했다.

 두려움으로 뱃속이 요동쳤다. 해리는 방 주인의 이름과 직함이 적힌 작은 명판들이 각각 붙어 있는 매끄러운 나무 문들을 차례로 지나쳤다. 마법부의 권위와 복잡함,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체제가 해리를 짓누르는 듯했고, 지난 4주 동안 론과 헤르미온느와 힘을 모아 신중하게 세운 계획이 우스꽝스러울 만큼 유치해 보였다. 그들은 추적당하지 않고 마법부의 내부로 침투하는 데에만 골몰했지, 자신들이 뿔뿔이 흩어져야만 할 경우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쯤 헤르미온느는 법정 소송 절차에 붙잡혀 있을테고, 그 일은 분명 몇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론은, 해리가 확신하건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마법을 행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을 것이다. 한 여자의 자유가 그 결과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편 해리로 말할 것 같으면, 자신의 사냥감이 방금 승강기를 타고 내려갔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 이 꼭대기층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벽에 기대서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위해 애를 썼다. 무거운 침묵이 그의 숨통을 조여 왔다. 누군가 부스럭거리거나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 종종거리는 발소리조차 이곳에선 들리지 않았다. 보라색 카펫이 깔린 복도는 마치 머플리아토 주문에 걸려 있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그 여자의 사무실은 분명 여기에 있어. 해리는 생각했다.

 정말이지 엄브릿지가 자신의 보석을 사무실에 보관해 둘 거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확인차 그곳을 한번 조사해 보지 않는 것 역시 멍청한 짓인 것 같았다. 해리는 다시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굴을 찌푸린 마법사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마법사는 자신 앞에서 둥둥 떠나니며, 길게 늘어진 양피지 두루마리 위에 글씨를 휘갈겨 쓰고 있는 깃펜에게 웅얼웅얼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제 해리는 문에 적힌 이름들을 눈여겨보면서 모퉁이를 돌았다. 다음번 복도를 중간쯤 지났을 때, 넓고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열두 명의 마녀와 마법사들이 작은 책상 앞에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학교 책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 책상들은 훨씩 더 번쩍번쩍하게 윤이 났고, 낙서 하나 없이 말끔했다. 해리는 그들을 관찰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그 광경에 그만 매혹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동작으로 지팡이를 빙빙 돌리고 있었고, 사각형의 색종이들이 조그만 핑크색 연처럼 사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잠시 후 해리는 그 과정에 일정한 리듬이 있으며. 종이가 모두 동일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이어 지금 지켜보고 있는 이것이 팸플릿을 제작하는 광경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각형의 종이들은 팸플릿의 낱장들이었는데, 한곳에 모이고 접혀서 마법으로 제본된 뒤, 각 마법사나 마녀 옆에 차곡차곡 쌓였다.

 해리는 살금살금 다가갔다. 하지만 직원들은 자신의 일에 너무나 집중하고 있어서 소리를 죽여 카펫 위를 걷는 발소리를 알아차릴 것 같지도 않았다. 해리는 젊은 마녀 옆에 쌓인 더미에서 완성된 팸플릿 한 부를 슬쩍했다. 그리고 투명 망토 밑에서 꼼꼼히 살펴보았다. 팸플릿의 핑크색 표지는 금색 글씨의 제목으로 장식돼 있었다.

                                        잡종들

                    그리고 평화로운 순수혈통 사회에 그들이 가하는 위험

  제목 아래에는 꽃잎 한가운데에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얼굴이 박힌 빨간 장미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송곳니를 드러낸 성난 얼굴을 한 녹색 잡초가 장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비록 팸플릿에는 저자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지만, 해리는 그걸 읽는 동안 오른쪽 손등의 흉터가 따금거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해리의 옆에 있던 젊은 마녀가 무심코 던진 말은 그의 의심을 확증해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그 할망구는 온종일 잡종들을 심문하고 있을 작정인가 보지? 누구 아는 사람 없어?”

 “말조심해.” 그녀 옆에 있던 마법사가 불안한 듯 주의를 힐끗 돌아보며 대꾸했다. 그 바람에 그가 작업하던 종이 한 장이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왜? 이제 그 여자가 마법의 눈도 모자라서 마법의 귀까지 달았대?”

 그러고는 그 마녀는 팸플릿 제작자들로 가득한 이곳을 마주하고 있는, 반짝이는 마호가니 문 쪽을 흘끗 쳐다봤다. 해리도 그곳을 바라보았다. 순간 분노가 뱀처럼 빳빳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머글 집의 현관문이라면 밖을 내다보는 구멍이 있을 자리에, 옅은 푸른색 눈동자의 커다랗고 동그란 눈알 하나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 눈은 앨러스터 무디를 알았던 사람에게라면 충격적일 만큼 성숙했다.

 잠깐 동안 해리는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자신이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시살마저 잊고 있었다. 그는 그 눈을 자세히 보기 위해 문 쪽으로 곧장 걸어갔다. 눈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얼어붙은 듯 꼼짝 않고 위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밑에 붙은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돌로레스 엄브릿지

                                        마법부 차관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조금 더 반짝거리는 새로운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머글 태생 등록 위원회 의장

 해리는 열두 명의 팸플릿 제작자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아무리 일에 열중하고 있다 한들, 바로 코앞에서 빈 사무실의 문이 저절로 열리는 데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는 만무했다. 결국 그는 안주머니에서 원뿔 모양의 고무 몸통에 파닥이는 다리가 달린 요상한 물건을 꺼냈다. 그리고 투명망토 아래에서 쪼그리고 앉아, 그 위장용 폭음탄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즉시 해리 앞에 있는 마녀들과 마법사들의 다리 밑으로 종종 달아났다. 이윽고 해리가 한 손을 문손잡이에 올려 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 커다란 펑 소리가 나더니 엄청난 양의 시커멓고 매운 연기가 한구석에서 솟아올랐다. 앞줄에 있던 젊은 마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와 동료들은 깜짝 놀라 펄쩍뛰며 소동의 전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렸고, 핑크색 팸플릿들은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해리는 재빨리 문손잡이를 돌려서 엄브릿지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해리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그 방은 호그와트에 있던 엄브릿지의 사무실과 너무나 똑같았다. 레이스가 달린 커튼 천과 장식받침, 말린 꽃 등이 빈자리 하나 없이 방 안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벽에는 장식용 접시들이 걸려 있었는데, 각각의 접시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이 칠해진, 리본 맨 새끼 고양이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 고양이들은 역겨울 정도로 귀여운 척 애교를 떨며 깡충깡충 뛰놀고 있었다. 책상 역시 주름 잡힌 꽃무늬 테이블보가 덮여 있었다. 한편 매드아이의 눈 뒤에는 망원경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엄브릿지는 그것을 통해 문 반대편의 직원들이 아직도 위장용 폭음탄 주위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다시 방 안을 바라보며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중얼거렸다.

 “아씨오 로켓.”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해리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분명 엄브릿지는 보호 마법과 주문들을 훤히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그는 다급하게 그녀의 책상 뒤로 가서 서랍들을 열어 보았다. 깃펜과 공책, 마법 테이프 등이 보였다. 하지만 마법에 걸린 종이 집게들이 서랍 속에 뱀처럼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그것들을 무찔러야만 했다. 요란하게 장식을 한, 레이스 달린 조그만 상자 속에는 여분의 머리띠와 머리핀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로켓이 있다는 흔적이 없었다. 

해리는 책상 뒤에서 서류 정리함을 발견하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호그와트에 있는 필치의 서류 정리함과 마찬가지로, 거기에는 이름별로 꼬리표를 달아 분류해 놓은 파일이 가득했다. 맨 아래 서랍에 이르렀을 때, 해리는 자신의 주의를 끄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바로 위즐리 씨의 파일이었다.

 그는 그것을 꺼내 펼쳐 보았다.

    아서 위즐리

          혈통 등급: 순수혈통. 하지만 구제불능의 머글 옹호자임. 

                     불사조 기사단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음.

          가     족 : 아내(순수혈통)가 일곱 자녀. 가장 어린 두 자녀는 

                     호그와트 재학 중.

          주     의: 막내아들 현재 자택 거주. 마법부 시찰자들이 확인

                     한 바에 따르면, 중태.

          보안 상태: 추정 중. 모든 움직임 감시 중. 기피대상자 1번(한때

                     위즐리 가족과 함께 거주)과 접촉할 가능성이 농후함.

 “기피대상자 1번이라니.”

 해리는 위즐리 씨의 파일을 제자리에 넣고 서랍을 닫으면서 중얼거렸다. 그게 누군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과연 해리가 다시 몸을 일으켜서 물건을 숨길 만한 장소를 찾아 사무실을 둘러보았을 때, 가슴 위에 ‘기피대상자 1번’ 이라는 문구가 박힌 자신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포스터에는 한쪽 모퉁이에 새끼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조그만 핑크색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해리가 가까이 다가가서 읽어 보니, 엄브릿지가  ‘처벌 대상’ 이라고 써 놓은 것이었다.

 조금 전보다 더욱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해리는 말린 꽃이 꽂혀 있는 꽃병과 

꽃바구니 바닥을 더듬었다. 당연히 로켓은 거기 없었다. 마지막으로 사무실 안을 쓰윽 훑어보던 해리는 한순간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책상 옆의 책꽂이 위에 기대어 세워 놓은 작고 네모난 거울 속에서 덤블도어가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한걸음에 달려가서 거울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잡는 순간, 거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덤블도어가 반질반질한 책의 겉표지에서 생각에 잠긴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모자 위로 인쇄된 꼬불꼬불한 녹색 글씨-알버스 덤블도어의 삶과 거짓말-는 물론, 그보다 약간 작은 글자로 그의 가슴 위에 박힌 ‘리타 스키터 지음. 베스트셀러<아르만도 디펫: 대가 혹은 바보?>의 저자’ 라는 글씨도 즉각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해리는 아무 데나 책을 펼쳤다. 책 한 면에 걸쳐 실려 있는 십 대 소년 두 명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정신없이 웃고 있었다. 이 사진에서 덤블도어는 거의 팔꿈치까지 길게 머리를 기르고, 그토록 론의 비위를 건드렸던 크룸의 턱수염을 연상시키는 짧고 드문드문한 턱수염을 기르고 있엇다. 한편 덤블도어 곁에서 소리 없이 기쁨의 포효를 내지르고 있는 소년은 명랑하면서도 제멋대로인 듯한 인상을 풍겼다. 곱슬곱슬한 그의 금빛 머리칼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해리는 이 소년이 과연 젊은 시절의 도지일까 아닐까 의아했다. 하지만 사진 밑에 붙은 설명을 확인할 틈도 없이, 사무실 문이 왈칵 열렸다. 

 씨크니스가 안으로 들어서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더라면, 해리는 투명 망토를 뒤집어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순간 씨크니스가 뭔가 움직인 것을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얼마 동안 가만히 서서 해리가 방금 사라진 자리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씨크니스는 자신이 본 것이, 해리가 서둘러 다시 책꽂이 위에 올려놓은 책 표지 안에서 코를 긁고 있던 덤블도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는 결국 책상 쪽으로 걸어가더니, 잉크병 속에서 대기하고 있는 깃펜을 지팡이로 가리켰다. 깃펜은 재빨리 튀어나와서 엄브릿지에게 남길 쪽지를 갈겨썼다. 해리는 감히 숨 쉴 엄두도 못 내면서, 살금살금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팸플릿 제작자들은 여전히 위장용 폭음탄의 잔해를 둘러싸고 있었다. 폭음탄은 아직도 계속해서 희미한 경적 소리를 내며 연기를 뿜고 있었다. 해리가 서둘러서 복도를 빠져나오고 있을 때, 젊은 마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 실험부에서 기어 들어온 게 분명해. 그 사람들은 정말 부주의하다니까. 그 독가스 뿜던 오리 기억나?” 해리는 잽싸게 승강기를 향해 달려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몇 가지 선택들을 검토했다. 로켓은 도무지 이곳 마법부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게다기 엄브릿지가 사람들로 붐비는 법정에 앉아 있는 한, 그녀에게 마법을 걸어 로켓의 행방을 알아낼 가망성은 없었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일은, 그들의 정체가 들통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마법부를 떠나 다른 날 다시 시도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론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 다음에 법정에서 헤르미온느를 빼내 올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승강기가 도착했을 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해리는 재빨리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승강기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투명 망토를 벗었다. 천만다행으로 승강기가 삐거덕거리며 2층에서 정지했을 때, 물에 흠뻑 젖은 론이 심란한 눈빛을 하고 올라탔다.

 “조............좋은 아침입니다.”

 승강기가 다시 출발하자, 론은 해리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론, 나야, 해리.”

 “해리! 젠장, 난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까먹었어. 그런데 왜 헤르미온느랑 같이 있지 않은 거야?”

 “헤르미온느는 엄브릿지와 함께 법정에 내려가야만 했어. 거절할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해리가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승강기가 다시 섰다. 문이 열리자, 위즐리 씨가 어느 나이 든 마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왔다. 마녀는 금발을 너무 높이 올려 세워서, 마치 개미탑처럼 보였다.

 “..........저도 당신 말씀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와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거기에 개입할 수..........”

 위즐리 씨는 말을 멈추었다. 해리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위즐리 씨가 그토록 혐오에 찬 눈길로 자신을 노려보자, 해리는 매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승강기 문이 닫히고 네 사람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오, 잘 있었나, 레그?”

 론이 망토에서 줄기차게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에, 위즐리 씨가 뒤를 돌아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네 아내도 오늘 심문을 받으러 와 있지 않나? 어........자네, 무슨 일 있었나? 왜 그리 

흠뻑 젖었지?“

 “악슬리의 사무실이 물바다가 됐어요.”

 론은 위즐리 씨의 어깨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해리는 분명 론이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다가 혹시라도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 도저히 멈추게 할 도리가 없었어요. 결국 저더러 버니......필스워스를 데려오라고 하더군요. 아마 그들 말로는........”

 “그래, 최근 여러 사무실에서 비가 내리고 있지.”

 위즐리 씨가 말했다.

 “기상징크스 레칸토 주문을 써 봤나? 블레칠리 사무실에서는 효과가 있던데.”

 “기상징크스 레칸토?”

 론이 중얼거렸다.

“아니, 써 보지 않았어요. 고마워요, 아버........ 아니, 아서.”

 승강기 문이 열렸다. 개미탑 머리를 한 늙은 마녀가 나가자, 론은 쏜살같이 그녀를 뒤쫓아서 사라져 버렸다. 해리는 그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서류에 코를 박고 읽고 있는 퍼시 위즐리가 들어오는 바람에 길이 가로막혔다.

 문이 덜커덩 소리를 내며 다시 닫히고 나서야, 퍼시는 아버지와 승강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흘끗 고개를 들었을 때 위즐리 씨를 발견한 퍼시는 얼굴이 순무처럼 새빨개지더니 문이 다시 열리자마자 승강기에서 내렸다. 해리는 또다시 승강기를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위즐리 씨의 팔이 길을 막았다.

 “잠깐만, 런콘.”

 승강기 문이 닫히고, 그들은 덜커덩거리며 한 층 더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위즐리 씨가 말을 꺼냈다.

 “자네가 더크 크레스웰에 대한 정보를 제출했다는 얘기를 들었네.”

 해리는 퍼시와의 마주침 때문에 위즐리 씨의 분노가 폭발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므로 최고의 방책은 멍청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뭐라고?”

 해리가 물었다.

 “아닌 척 말게, 런콘.”

위즐리 씨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자네는 가계도를 위조한 그 마법사를 추적하지 않았나?”

 “그.......그래서 뭐 어쨋단 말인가?”

 해리가 대꾸했다.

 “더크 크레스웰은 자네보다 열 배쯤은 더 진정한 마법사라는 걸세.”

 위즐리 씨가 조용히 대꾸했고, 승강기는 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만약 그가 아즈카반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자네는 그에게 대가를 치러야 할 걸세. 그의 아내, 그의 아들들,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서.”

 해리가 말을 가로막았다.

 “자네가 추적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모르고 있었나?”

 “그거 위협인가, 런콘?”

 위즐리 씨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네.”

 해리가 말했다.

 “이건 사실이네! 그들은 자네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때 다시 승강기 문이 열렸다. 중앙 홀에 도착한 것이다. 위즐리 씨는 사나운 표정으로 해리를 노려보더니 승강기에서 휙 빠져나갔다. 해리는 얼떨떨한 상태로 멍하니 서 있었다.

 런콘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변신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승강기 문이 덜커덩 닫혔다.

 해리는 투명 망토를 꺼내어 다시 둘렀다. 론이 비 내리는 사무실을 처리하는 동안, 혼자서 헤르미온느를 구해 낼 작정이었다. 승강기 문이 열렸을 때, 그는 마룻바닥에 카펫이 깔린 위층 복도와는 전혀 다른, 횃불이 밝혀진 석조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강기가 다시 덜컹거리며 가 버렸다. 해리는 저 멀리 보이는, 미스터리 부서 입구라고 표시된 검은 문을 바라보며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이윽고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지는 저 검은 문이 아니라, 왼편에 있었다고 기억되는 출입구였다. 그 출입구는 법정으로 내려가는 층계와 이어져 있었다. 층계를 살금살금 내려가는 동안에도, 해리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두고 고민했다. 위장용 폭음탄이 아직 몇 개 남아 있긴 했지만, 어쩌면 그냥 런콘인 척하며 법정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다음, 마팔다에게 잠시 얘기 좀 하자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과연 런콘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인물인지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설령 용케 그 일을 해낸다 해도 헤르미온느가 다시 법정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들이 마법부에서 탈출하기도 전에 수색이 시작될지도 몰랐다.

 해리는 생각에 골몰한 나머지, 마치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그의 몸 위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이상한 한기를 즉시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해리가 한 발작씩 내디딜 때마다, 점점 더 차가워졌다. 곧장 목구멍 속까지 도달한 냉기는 폐를 찌르는 듯했다. 해리는 어느새 바싹 다가온 절망감과 무력감이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더니 서서히 커지는 것을 느꼈다. 

 디멘터로군. 그는 생각했다.

 층계를 내려와 오른쪽으로 돌아섰을 때, 그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법정 밖의 어두운 통로에는 검은 두건을 뒤집어쓰고 얼굴을 완전히 가린, 키 큰 형상들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것들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심문을 위해 소환된 머글 태생들은 바싹 얼어붙은 채, 딱딱한 나무 의자위에 서로 꼭 붙어서 덜덜 떨며 앉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디멘터들의 탐욕스러운 주둥이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몇몇은 가족들을 대동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홀로 앉아 있었다. 디멘터들이 그들 앞에서 미끄러지듯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곳에 가득한 냉기와 무력감, 그리고 절망감이 저주처럼 해리를 짓눌렀다.........

 싸워. 해리는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고서는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한 소리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걸음을 옮길 떄마다 무감각한 마비가 그의 두뇌를 덮치는 것만 같았지만, 그는 자신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헤르미온느와 론을 애써 떠올렸다. 

 우뚝 솟은 검은 형상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것은 참으로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그가 옆을 지나가자, 두건 밑에 숨은, 눈알 없는 얼굴들이 고개를 돌렸다. 해리는 디멘터들이 그를 감지했다고, 어쩌면 여전히 약간의 희망과 회복력을 지닌 인간의 존재를 감지한 게 분명하다고 느꼈다.........

 잠시 후, 싸늘하게 얼어붙은 침묵을 꺠고 갑작스럽고도 경악스럽게 복도 왼편에 있는 지하 법정의 문들 중 하나가 왈칵 열리더니 비명 소리가 메아리쳐 왔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혼혈이에요. 정말로, 저는 혼혈이라고요! 제 아버지는 마법사예요. 마법사였어요. 그를 찾아보세요. 아르키 앨더톤, 그분은 유명한 빗자루 디자이너였어요. 그를 찾아보세요. 정말이에요. 내 몸에서 그 손 떼! 손 치워........”

“이게 마지막 경고다.”

 엄브릿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말했다. 마법을 이용해 크게 키워진 그녀의 목소리는 남자의 절망적인 비명 소리를 뚫고 또렷이 들려왔다.

 “계속 반항하면, 디멘터의 입맞춤에 처해질 것이다.”

 남자의 비명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목멘 흐느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끌고 가.”

 엄브릿지가 말했다.

 두 명의 디멘터가 썩어 문드러진 딱지투성이의 손으로 의식을 잃어 가는 마법사의 어깻죽지를 붙든 채, 법정의 출입구에 나타났다. 그들은 남자를 끌고 미끄러지듯 복도를 따라 멀어져 갔다. 곧이어 어둠이 그들을 집어삼켜 버렸다.

 “다음........메리 캐터몰.”

 엄브릿지가 호명했다.

 자그마한 여자가 일어섰다. 그녀는 온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을 매끈하게 쪽을 찌고 있었고, 소박한 긴 망토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완전히 백지장 같았다. 그녀가 디멘터들 앞을 지나갈 때, 해리는 그녀가 몸서리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아무 계획도 없이,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해리는 그 여자가 혼자서 지하 법정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이 닫히려고 하는 순간, 그는 그녀를 뛰쫓아 법정 안으로 슬쩍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곳은 그가 예전에 마법 오남용 죄로 심문당했던 방과는 달랐다. 비록 천장은 똑같이 높았지만, 크기가 더 작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 방은 깊은 우물의 밑바닥에 갇힌 것 같은 밀실 공포증을 자아냈다.

 이곳에는 더 많은 수의 디멘터들이 방 안 전체에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들은 높게 솟아오른 연단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얼굴 없는 보초들처럼 우뚝 서 있었다. 저기 연단 난간 뒤에는 엄브릿지가 앉아 있었고, 그녀의 한쪽 옆에는 악슬리가, 

다른 한쪽에는 캐터몰 부인만큼이나 얼굴이 하얗게 질린 헤르미온느가 앉아 있었다. 연단의 발치에서 빛나는 은색 털이 길게 난 고양이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어슬렁거렸다. 해리는 그 고양이가 디멘터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절망감으로부터 기소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절망은 피고인들이 느껴야 하는 것이지, 원고인들의 몫은 아니었던 것이다.

 “앉아요.”

 엄브릿지가 나긋나긋하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캐터몰 부인은 높이 솟은 연단 아래 바닥 가운데에 딱 하나 놓여 있는 의자까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의자 팔걸이에서 쇠사슬들이 철컹거리며 나와 그녀를 꽁꽁 묶었다.

 “당신이 메리 엘리자베스 캐터몰인가요?”

 엄브릿지가 물었다.

 캐터몰 부인은 덜덜 떨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마법 관리부의 레지널드 캐터몰과 결혼했고?” 캐터몰 부인은 울음을 터트렸다.

 “저는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은 여기서 저와 만나기로 했는데!”

 엄브릿지는 그녀의 말을 묵살했다.

 “메이지, 엘리, 알프레드 캐터몰의 어머니이고?”

 캐터몰 부인은 훨씬 더 심하게 흐느꼈다.

 “제 아이들은 겁에 질렸어요. 제가 집에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잠깐만.”

 악슬리가 내뱉듯이 말했다.

 “잡종 애새끼들 따위로 우리의 동정심을 자극할 순 없다!” 해리는 높이 솟은 연단으로 올라가는 층계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캐터몰 부인의 울음소리가 해리의 발소리를 숨겨주었다. 패트로누스 고양이가 정찰을 하고 있는 지점을 지나자마자, 해리는 분명한 기온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쪽은 따뜻하고 안락했다. 그 패트로누스는 엄브릿지의 것이 분명했는데, 아주 환하게 광채를 뿜고 있었다. 왜냐하면 엄브릿지는 자신의 본성과 딱 맞는 이곳에서, 자신이 직접 작성을 도왔던 왜곡된 법률을 집행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해리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연단을 따라 걸어가 엄브릿지와 악슬리 뒤를 지나서, 헤르미온느의 뒷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깜짝 놀라 펄쩍 뛰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엄브릿지와 악슬리에게 머플리아토 마법을 걸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주문을 웅얼거리는 소리에 헤르미온느가 놀랄지도 몰랐다. 그때 엄브릿지가 캐터몰 부인에게 말을 걸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재빨리 그 기회를 잡았다.

 “난 네 뒤에 있어.”

 해리가 헤르이온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그 바람에 그녀가 심문을 기록할 때 사용하는 잉크병을 엎지를 뻔했다. 하지만 엄브릿지와 악슬리 모두 캐터몰 부인에 몰두해있어서, 들키지 않고 지나갔다.

 “오늘 마법부에 도착하자마자 지팡이를 압수당했죠, 캐터몰 부인?” 엄브릿지가 말했다. 

“ 22센티미터, 벚나무, 유니콘 털 심. 맞나요?”

 캐터몰 부인은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떤 마녀나 마법사로부터 이 지팡이를 빼앗았는지 우리에게 말해주겠어요?”

 “빼......... 빼앗았다고요?”

 캐터몰 부인이 흐느끼며 물었다.

 “저는 결코 누구에게서도 그것을 빼.......빼앗지 않았어요. 열한 살 때 저는 그 지팡이를 샀습니다. 그.......그............그 지팡이가 저를 선택했어요.”

 캐터몰 부인은 더욱 거세게 울었다.

 엄브릿지는 마치 소녀처럼 자지러지게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자, 해리는 엄브릿지를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충동이 치솟았다. 그때 엄브릿지가 자신의 희생양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난간 너머로 몸을 기울였고, 그와 동시에 금빛 나는 무언가가 흔들리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것은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바로 로켓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헤르미온느가 자신도 모르게 헉하고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엄브릿지와 악슬리는 여전히 그들의 먹잇감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소리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같았다.

 “아니지요.”

 엄브릿지가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캐터몰 부인. 지팡이들은 오직 마녀와 마법사만을 선택하지요. 그런데 당신은 마녀가 아니에요. 여기 당신에게 발송했던 설문지에 대한 당신의 답변이 있어요. 마팔다, 그걸 제게 넘겨주세요.”

 엄브릿지가 조그만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두꺼비 같아 보이던지, 해리는 그녀의 뭉툭한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헤르미온느는 당황해서 손을 덜덜 떨었다. 옆에 있는 의자 위에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는 서류 더미를 더듬더듬 뒤적인 끝에, 헤르미온느는 마침내 캐터몰 부인의 이름이 적힌 양피지 한 뭉치를 꺼냈다.

 “그, 그거 참 예쁘네요, 돌로레스.”

 헤르미온느는 겹겹이 주름이 잡힌 엄브릿지의 블라우스 속에서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요?”

엄브릿지가 흘끗 내려다보며 날카롭게 되물엇다. “아 예, 오래된 가보죠.”

 그녀가 커다란 가슴에 드리워진 로켓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s는 셀윈 가를 상징하지요......저는 셀윈 가문과 친척지간입니다......실은 제가 친척 관계에 있지 않은 순수혈통 가문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요.....안타깝군요.”

 그녀는 캐터몰 부인의 설문지를 펄럭거리며, 더욱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없어서 말입니다. 부모님 직업, 채소장수.”

 악슬리가 조롱하듯이 키득거렸다. 저 아래에서는, 북슬북슬한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며 정찰 중이었고, 디멘터들은 구석에서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엄브릿지의 새빨간 거짓말을 듣는 순간, 해리는 피가 거꾸로 치솟으면서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엄브릿지는 한낱 비열한 범죄자로부터 뇌물로 받은 로켓을 마치 자신의 순수혈통 증명서라도 되는 양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투명 망토로 굳이 감추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지팡이를 그대로 치켜들고 “스투페파이!” 를 외쳤다.

 당장 붉은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엄브릿지는 바닥에 축 늘어지면서, 이마를 난간 모서리에 부딪혔다. 캐터몰 부인의 서류들이 그녀의 무릎에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저 아래에서 어슬렁 대던 은빛 고양이도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가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그들을 덮쳤다. 당황한 악슬리는 이 소동의 원인을 찾아 두리번거렸고, 몸도 없이 허공에 떠 있는 해리의 손과 자신을 겨누고 있는 지팡이를 발견했다. 그는 황급히 지팡이를 꺼내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스투페파이!”

 악슬리는 바닥으로 미끄러지더니 몸을 꼬부린 채 드러눕고 말았다.

 “해리!”

 “헤르미온느, 내가 여기 가만 앉아서, 그 여자가 가식을 떨게 내버려 둘 거라고 생각했다면.........”

 “해리, 캐터몰 부인!”

 해리는 투명 망토를 벗어 던지며 휙 돌아섰다. 저 아래에서, 구석에 있던 디멘터들이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의자에 쇠사슬로 묶인 여자를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가고 있었다. 패트로누스가 사라져서인지, 아니면 주인들에게 더 이상 통제력이 없다는 사실을 감지해서인지, 그들은 완전히 자제력을 잃은 것 같았다. 끈적끈적한 딱지투성이 손이 그녀의 턱을 쥐고 얼굴을 뒤로 젖히자, 캐터몰 부인은 무시무시한 공포의 비명을 내질렀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은빛 수사슴이 해리의 지팡이 끝에서 튀어나와 디멘터들을 향해 뛰어들엇다. 디멘터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다시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사슴은 계속해서 유유히 법정 안을 달렸다. 그러자 은빛 고양이의 보호막보다 더욱 강력하고 따뜻한 수사슴의 빛이 지하 법정 전체를 가득 채웠다.

 “호크룩스를 챙겨.”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그는 투명 망토를 다시 가방 속에 쑤셔 넣으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캐터몰 부인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해리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가 속삭였다.

 “하지만........하지만 레그는 심문 대상자로 내 이름을 넘긴게 바로 당신이라고 했는데!”

 “제가요?” 그녀를 묶고 있던 쇠사슬을 힘껏 당기며 해리가 말했다.

 “전 마음을 바꿨습니다. 디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헤르미온느, 이 쇠사슬 어떻게 없애지?“

 “잠깐, 지금 나는 여기서 뭘 좀 하고 있어.......”

 “헤르미온느, 디멘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고!”

 “나도 알아, 해리. 하지만 이 여자가 꺠어나서 로켓이 없어진 걸 알면 안 되잖아. 나는 이걸 복제해야 해. 제미니오! 자.....이렇게 해 놓으면 이 여자도 까맣게 속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왔다.

 “어디 보자.....레라시오!”

 쇠사슬들이 철컹거리며 의자 팔걸이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캐터몰 부인은 여전히 몹시 겁에 질린 듯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그녀가 중얼거렸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여기를 떠날 거예요.”

 해리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집으로 가서 얼른 애들을 데리고 떠나세요. 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를 떠나세요. 변신하고 도망치세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셨지요? 이곳에선 공정한 심사 따위는 기대하지 말아야 할 거예요.”

 “해리”

 헤르미온느가 불렀다.

 “문밖에 온통 디멘터들인데,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패트로누스들이 있잖아.”

 해리가 지팡이로 자신의 패트로누스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수사슴이 속도를 늦추더니, 여전히 밝게 빛을 뿜으며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가 불러낼 수 있는 한 전부 불러내야 해. 네 것도 불러줘. 헤르미온느.”

“익스펙......익스팩토 패트로눔.”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저 애가 잘 못하는 유일한 주문이에요.”

 해리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캐터몰 부인에게 일러 주었다.

 “좀 운이 없었던 거야, 정말이야. 자, 어서, 헤르미온느......”

 “익스펙토 패트로눔!”

 은빛 수달이 헤르미온느의 지팡이 끄트머리에서 튀어나왔다. 수달은 허공에서 우아하게 헤엄치며 수사슴에 가세했다.

 “자, 어서.”

 해리가 헤르미온느와 캐터몰 부인을 문으로 인도했다.

 패트로누스가 지하 법정에서 미끄러져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놀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디멘터들은 양쪽으로 물러서더니, 은빛동물들 앞에서 뿔뿔이 흩어져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당신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은신하도록 결정되었습니다.”

 해리는 대기 중이던 머글 태생들에게 명령했다. 그들은 패트로누스들의 강렬한 빛에 눈이 부셔 하며, 여전히 몸을 약간 움츠리고 있었다.

 “가능하면 외국으로 나가세요. 어떻게든 마법부로부터 멀리 도망치세요. 그것이 새로운 공식적 입장입니다. 자, 저 패트로누스들을 쫓아가기만 하면, 중앙 홀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을거예요.”

 그들은 용케 잡히지 않고 돌층계를 올라갔다. 하지만 승강기가 있는 곳에 이르자, 해리는 슬슬 걱정이 되었다. 만약 그들이 은빛 수사슴과 그 옆을 나란히 떠 가는 수달과 그중 절반은 머글 태생으로 기소된 20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중앙 홀에 들어선다면, 원치 않는 주의를 끌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 승강기가 그들 앞에 덜커덩거리며 멈춰 선 순간, 해리는 이 달갑지 않은 결론에 이르렀다.

 “레그!”

 캐터몰 부인이 큰 소리로 외치면서 론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런콘이 절 빼내 주었어요. 그리고 엄브릿지와 악슬리를 공격했어요. 우리 모두 다 이 나라를 떠나래요. 제 생각에도 그렇게 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요. 레그, 정말이에요. 어서 집에가서 애들을 데리고....... 그런데 당신 몸이 왜 이렇게 젖었어요?”

 “물 때문에.”

 론이 몸을 빼내며 중얼거렸다.

 “해리, 그들은 마법부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걸 알고 있어. 뭐라더라, 엄브릿지의 사무실 문에 있는 무슨 구멍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이라던데. 내 생각에, 5분밖에 시간이 없어. 만약...........”

 헤르미온느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해리 쪽을 돌아보는 순간, 그녀의 패트로누스는 펑 하고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해리, 여기서 잡히면 어떻게.........!”

 “빨리 움직이면 안 잡힐 거야.”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하나같이 그를 멍하니 바라보며 조용히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누가 지팡이를 갖고 있죠?”

 그들 중 약 절반가량이 손을 들었다.

 “좋아요. 지팡이를 갖고 있지 않은 분들은 모두 지팡이를 가진 사람 곁에 붙으세요. 그들이 우리를 막기 전에 아주 신속히 움직여야 합니다. 어서요.”

 그들은 두 대의 승강기에 꼭꼭 끼어서 전부 올라탔다. 해리의 패트로누스는 황금 창살문 앞에서 보초를 섰다. 이윽고 문이 닫히자 승강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8층.”

 냉랭한 마녀의 목소리가 외쳤다.

 “중앙 홀입니다.”

 해리는 그들이 대단히 커다란 난관에 처했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중앙 홀은 벽난로를 폐쇄하기 위해서 이쪽저쪽 벽난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 “멈춰요!” 해리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런콘의 박력 있는 목소리가 중앙 홀 전체에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벽난로들을 폐쇄하고 있던 마법사들은 행동을 멈췄다.

 “나를 따라와요.”

 해리는 겁에 질린 머글 태생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론과 헤르미온느의 인도를 받으며, 무리 지어 나아갔다. 

 “무슨 일인가, 알버트?”

 아침에 해리의 뒤를 이어서 벽난로에서 나왔던 바로 그 대머리 마법사가 물었다. 그는 초조한 기색이었다.

 “출구를 폐쇄하기 전에 먼저 이들을 내보내야 하네.”

 해리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 권위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앞에 서 있던 마법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출구를 폐쇄하고 어느 누구의 출입도 허용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

 “자네, 나와 맞서려는 것인가?”

 해리는 사납게 몰아붙였다.

 “내가 자네의 가계도를 검사했으면 좋겠나? 더크 크레스웰에게 그랬던 것처럼?” “미안하네!”

 머리가 벗겨진 마법사가 단박에 꼬리를 내리며 뒤로 물러섰다.

 “별 뜻은 없었네. 알버트. 하지만....... 저자들은 심문을 받기위해 와 있는 줄 알았는데......”

 “저 사람들의 혈통은 순수하네. 감히 말하건대, 자네들보다도 훨씬 순수하네.” 

 해리가 대꾸했다. 그의 낮고 굵은 음성은 홀 전체에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어서 떠나시오.”

 해리는 머글 태생들에게 외쳤다. 그들은 허둥지둥 앞으로 나와 벽난로 속으로 들어갔고, 짝을 지어 사라져 갔다. 마법부의 마법사들은 어쩔 줄 모르고 머뭇거렸다. 몇몇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고, 혹자는 겁에 질리고 분개하는 얼굴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메리!”

 캐터몰 부인이 어깨 너머로 돌아보았다. 더 이상 토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얼굴이 창백하고 기진맥진한 진짜 레그 캐터몰이 승강기에서 달려 나왔다.

 “레...... 레그?”

 그녀는 그녀의 넘편과 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론은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한편 대머리 마법사는, 두 명의 레그 캐터몰을 우스꽝스럽게 번갈아 쳐다보면서, 입을 딱 벌렸다.

 “이봐........ 무슨 일이지? 이게 다 뭔가?”

 “출구를 폐쇄해! 폐쇄!”

 이때 악슬리가 또 다른 승강기에서 뛰쳐나오더니 벽난로 옆에 서 있는 무리를 향해 달려왔다. 캐터몰 부인을 제외한 머글 태생들 전부가 벽난로 속으로 막 사라진 뒤였다. 대머리 머법사가 재빨리 지팡이를 들자, 해리는 거대한 주먹을 들어 그에게 한 방을 먹였다. 그는 공중으로 휙 날아가 버렸다.

 “저놈이 머글 태생들이 탈출하는 것을 돕고 있었네, 악슬리!”

 해리가 소리쳤다.

 단박에 대머리 마법사의 동료들이 시끄럽게 들고 일어났다. 그 틈을 타서 론은 캐터몰 부인을 붙잡아 여전히 열려 있는 벽난로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신이 혼란스러워진 악슬리는 해리와 해리에게 한 방 맞은 마법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동안에 진짜 레그 캐터몰은 계속해서 악을 써 댔다.

 “내 아내! 내 아내와 같이 있던 자는 누구요? 어떻게 된 거요?”

 해리는 악슬리의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보았고, 그의 야비한 얼굴에 뭔가 깨달은 듯한 기색이 떠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어서!”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향해 외쳤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벽난로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악슬리의 저주가 해리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몇 초간 빙글빙글 회전을 한 끝에, 그들은 변기 속에서부터 솟아올라 다시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나왔다. 해리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론은 바로 세면대 옆에 서서 여전히 캐터몰 부인과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레그, 저는 이해가 안 돼요.......”

 “가세요. 저는 당신의 남편이 아니에요. 당신은 어서 집에 가야 해요!”

 그때 그들 뒤편에 있는 칸막이 안에서 소음이 들렸다. 해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악슬리가

나타난 것이다.

 “가자!”

 해리가 외쳤다. 그는 헤르미온느의 손과 론의 팔을 붙잡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빙글 돌았다. 

 압박 붕대로 온몸을 꽉 조이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암흑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 헤르미온느의 손이 그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진 것 같았다.

 그는 이대로 질식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숨을 쉴 수도 앞을 볼 수도 없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곤 론의 팔과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는 헤르미온느의 손가락뿐이었다........

 이윽고 뱀 모양의 문고리가 달린,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의 문이 보였다. 하지만 그가 미처 숨을 들이쉬기도 전에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보라색 광선이 뻔적했다. 헤르미온느의 손이 갑자기 그의 손을 꽉 쥐었고, 모든 것이 다시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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