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 (해리포터 시리즈 제7탄)
조앤 K. 롤링 지음 /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펴냄
원제 -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제 11장 뇌물
크리처가 인페리우스들로 가득한 호수에서 탈출할 수도 있었다면, 먼던구스를 잡아 오는 일쯤이야 길어도 몇 시간이면 족할 거라고 해리는 확신했다. 그래서 오전 내내 잔득 기대에 들뜬 상태로 집안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크리처는 그날 오전이 다 지나고, 심지어 오후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해 질 녘이 되자, 해리는 실망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결국 그날 저녁 식사는, 헤르미온가 온갖 다양한 변신술을 시도해 보았으나 끝내 실패로 돌아간, 곰팡이가 잔뜩 핀 빵으로 때워야 했는데, 기운을 돋우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크리처는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망토를 두른 남자 두 명이 12번지 광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집이 있는 쪽을 응시하며, 밤이 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보나마나 죽음을 먹는 자들이야.”
셋이서 응접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정찰하는 동안, 론이 말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그들이 알고 있을까?”
“아닐거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스네이프를 들여보내서 당장 우리를 잡았겠지, 안그래?”
“너는 스네이프가 이 집에 들어왔다가, 매드아이의 저주로 혀가 묶였을
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응”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스네이프가 저놈들에게 들어오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었을
거 아냐, 안 그래? 하지만 저자들은 아마도 우리가 나타나지 않나 감시 중인 것 같아. 어쨌든 그들은 해리가 이 집의 주인이란 걸 알고 있어.”
“그들이 어떻게?”
해리가 물었다.
“마법 유언장은 마법부의 조사를 받잖아, 기억나? 그러니까 시리우스가 이곳을 너에게 물려준걸 놈들도 당연히 알았을 거야.”
죽음을 먹는 자들이 밖에 있다는 사실은 12번지 안의 불길한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들은 위즐리 씨의 패트로누스 이후로 어느 누구로부터 바깥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햇다. 차츰 긴장감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쩍 초조해하며 짜증이 많아진 론은 주머니 속에서 딜루미네이터를 가지고 노는 성가신 버릇이 생겨났다. 이것은 특히 헤르미온느의 화를 부채질했다. 그녀는 크리처를 기다리는 동안 <방랑시인 비들의 이야기> 를 연구하며 소일하고 있었는데, 불빛이 계속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을 전혀 달가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두지 못해!”
크리처가 나간 지 3일째 되는 날 밤, 헤르미온느가 버럭 소리쳤다. 응접실의 모든 불빛이 또다시 사라진 찰나였다.
“미안해.미안하다고!”
론이 다시 딜루미네이터를 찰칵 눌러서 불빛을 돌려놓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거야!”
“뭔가 좀 정신을 쏟을 만한 유용한 일을 찾아볼 수 없니?”
“무슨 일? 동화책 읽기 같은거?”
“덤블도어 교수님이 내게 이 책을 남겨 주셨다고, 론.....”
“.....그리고 나한텐 딜루미네이터를 남겨 주셨지. 그러니까 난 이걸 써야 할 것 같은데!”
더 이상 두 사람의 말다툼을 참지 못한 해리는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부엌을 향해서 층계를 내려갔다. 부엌이야말로 크리처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줄곧 들락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관 복도로 이어지는 계단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금속성의 딸각거리는 소리와 문의 걸쇠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해리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는 지팡이를 꺼낸 후 잘린 요정 머리 옆의 그늘진 구석으로 들어가서 가만히 기다렸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가로등 불이 밝혀진 광장이 설핏 보이더니, 망토를 입은 한사람이 살며시 현관 복도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침입자는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고, 곧이어 질문을 던지는 무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잠시 후 복도 끝에서 뿌연 형상이 부스스 솟아나더니, 손을 치켜들고 그를 향해돌진했다.
“당신을 죽인 건 제가 아니에요, 알버스”
조용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순식간에 저주가 깨졌다. 뿌연 형상은 다시 펑 하고 터져 버렸고, 그로 인해 생긴 자옥한 회색 먼지구름 때문에 새로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리는 지팡이로 그 사람의 한가운데를 겨냥했다.
“움직이지 마!”
하지만 해리는 블랙 부인의 초상화를 깜박 잊고 있었다. 그의 고함 소리에 부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활짝 열리면서 부인이 소리를 질러 댔다.
“잡종들, 내 집을 더럽히는 쓰레기들......”
해리의 등 뒤에서 론과 헤르미온느가 쿵쾅거리며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두사람은 해리와 마찬가지로 저 아래 현관 복도에서 이제 양팔을 들고 서 있는 정제불명의 남자를 향해 지팡이르 겨누고 있었다.
“쏘지 마! 나야, 리무스!”
“오, 세상에!”
헤르미온느가 작은 목소리로 탄성을 내고는, 대신 지팡이를 블랙 부인에게 겨누었다.
쾅 소리와 함께 커튼이 휙 하고 다시 닫히자, 순식간에 정적이 감돌았다. 론도 지팡이를 내렸다. 하지만 해리는 그러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내!”
해리가 소리쳤다.
루핀은 항복의 표시로 여전히 두손을 높이 치켜든 채, 등잔불빛 아래로 걸어 나왔다.
“나는 리무스 존 루핀, 늑대인간이다. 때로는 무니라고도 하지.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발명한 네 명 중의 하나이며, 보통 통스라고 알려진 님파도라와 결혼했어. 그리고 너에게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지, 해리. 그건 수사슴모양이야.”
“오, 됐어요.”
해리가 지팡이를 내리며 말했다.
“그래도 저는 확인해야만 했어요. 그렇지요?”
“너희의 전직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로서 말하자면, 확인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론, 헤르미온느, 너희는 그렇게 성급히 방어 태세를 늦추면 안 돼.”
그들은 루핀을 향해 층계를 뛰어 내려갔다. 두꺼운 검은색 여행용 망토를 두른 루핀은 매우 지쳐 보였지만. 그들을 다시 보게 되어 무척 기쁜 듯했다.
“세베루스의 흔적은 없니?”
그가 물었다.
“없어요.”
해리가 말했다.
“밖은 어떻게 돼 가고 있어요? 모두 괜찮나요?”
“그렇단다.”
루핀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감시당하고 있어. 바깥 광장에는 죽음을 먹는 자 두 명이 있더구나.”
“저희도 알아요.....”
“나는 정확하게 바로 현관문 밖 계단 맨 꼭대기로 순간이동을 해야만 했다. 그자들이 나를 볼 수 없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은 너희가 여기 있다는 것을 몰라.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히 저 밖에 더 많은 사람들을 풀어놓았을거야. 놈들은 그냥 너와 관계된 곳은 어디든 감시하고 있는 거야, 해리. 어서 아래층으로 가자. 애기할 게 많다. 그리고 너희가 버로우를 떠난 뒤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궁금하구나.“
그들은 부엌으로 내려갔다.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로 벽난로를 가리키자, 순식간에 불길이 일어났다. 따뜻한 불빛은 황량한 돌벽조차 아늑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긴 나무 식탁이 윤기를 내며 반짝거렸다. 루핀은 여행용 망토 속에서 버터 맥주 몇 병을 꺼냈고,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나는 3일 전에 이곳에 올 수도 있었지만, 나를 미행하는 죽음을 먹는 자를 떨쳐 내야 했단다.”
루핀이 말했다.
“그래, 너희는 결혼식 후에 곧장 이리로 온 거니?”
“아니요.”
해리가 말했다.
“토트넘 코트 로드에 있는 카페에서 죽음을 먹는 자 두 명과 맞닥뜨린 후에 왔어요.”
순간 루핀은 자산의 버터 맥주 대부분을 앞에다 엎지르고 말았다.
“뭐라고?”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루핀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자들이 너희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찾아낼 수 있었다나 말이냐? 사라지는 순간에 꽉 붙들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순간이동을 하는 사람을 뒤쫓는 건 불가능해!”
“그런 데다 그자들이 그 시간에 토트넘 코트 로드를 거저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렇죠?”
해리가 말했다.
“우리는 해리가 아직도 추적 마법에 걸려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헤르미온느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루핀이 대답했다. 그러자 론은 우쭐한 표정이었고, 해리는 크게 안도했다.
“다른 건 몰라도, 만약 아직도 해리가 추적 마법에 걸려 있다면, 그자들이 해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잖아, 안 그러니? 그렇지만 그놈들이 어떻게 토트넘 코트 로드까지 너희를 쫓아올 수 있었는지 도통 모르겠구나. 걱정이다 정말 걱정이야.”
루핀은 몹시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해리로서는 그건 나중 문제였다.
“이제 저희가 떠난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얘기해 주세요. 위즐리 아저씨가 가족이 안전하다고 알려 준 이후로 아무 소식도 못 들었어요.”
“그래, 킹슬리가 우리를 구했지.”
루핀이 말했다.
“그의 경고 때문에 대부분의 결혼식 하객들은 놈들이 도착하기 전에 순간이동으로 떠날 수 있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요, 아니면 마법부 사람들이요?”
헤르미온느가 끼어들었다.
“둘 다 섞여 있었지. 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이제 한통속이야.”
루핀이 말했다.
“열두 명 정도였는데, 그놈들은 네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몰랐단다, 해리. 아서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그놈들이 스크림저를 죽이기 전에 네 행방을 케내기 위해 고문했다는구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너를 저버리지 않은 거지.”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도 자신이 느끼는 것처럼, 충격과 고마움이 뒤섞인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스크림저를 좋아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루핀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마지막에 해리를 지키려고 애쓴 것이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버로우를 샅샅이 수색했어.”
루핀이 말을 이었다.
“굴 귀신을 발견했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그리고 우리 중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몇 시간 동안 심문했어. 그들은 너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했단다, 해리. 하지만 당연히 기사단 말고는 아무도 네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 그들이 결혼식장을 공격하는 동안에, 더 많은 죽음을 먹는자들이 전국에서 기사단과 관계된 모든 집에 침입했단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어.”
루핀이 다음 질문을 미리 예상하고 재빠르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놈들은 아주 거칠게 굴었단다. 데달루스 디글의 집을 완전히 불태웠어. 하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그는 거기에 없었지. 그리고 통스의 가족에게 쿠루시아투스 저주를 써서, 네가 그들의 집에 왔다가 그 후에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내려고 애썼단다. 그들 모두 무사해. 분명히 충격을 받았지만, 그것말고는 괜찮아.”
“죽음을 먹는 자들이 그 모든 보호 마법들을 통과했단 말인가요?”
통스의 부모님 댁 정원으로 떨어졌던 그날 밤에 그 보호 마법들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떠올리며 해리가 물었다.
“네가 지금 깨달아야 할 것은, 해리, 이제 죽음을 먹는 자들이 마법부의 전권을 장악했다는 거야.”
루핀이 말했다.
“그놈들은 더 이상 신원확인이나 체포에 대한 두려움 없이 끔찍한 저주들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거야. 게다가 우리가 그들을 대비해서 걸어 놓은 모든 방어 마법을 뚫고 들어왔지. 일단 들어온 후에는, 자신들이 온 이유에 대해서 전혀 숨기지 않더구나.”
“그렇다면 해리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을 고문하는것에 대해 그놈들이 무슨 구실이라도 대고 있는 건가요?”
헤르미온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말이지.....”
루핀이 주저하더니, 접힌<예언자 일보> 한 부를 꺼내 놓았다.
“자.....”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해리에게 그것을 밀어 주며 루핀이 말했다.
“너도 결국 머잖아 알게 될 테니까. 그게 바로 너를 쫒는 구실이란다.”
해리는 신문을 쫙 펼쳤다. 자신의 커다란 얼굴 사진이 신문의 1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그 위에 적힌 기사 제목을 읽었다.
알버스 덤블러도어의 죽음의 유력한 용의자
론과 헤르미온느는 분통을 터트리며 씩씩거렸지만,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신문을 치워 버렸다.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다. 기사에 뭐라고 쓰여 있을지 뻔했다.
덤블도어가 죽었을 때 탑 꼭대기에 있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덥블도어를 진짜로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리타 스키터가 마법 세계에 이미 떠들어 댄 것처럼, 덤블도어가 추락한 직후에 그곳에서 허둥지둥 달려 나오는 해리의 모습이 목격되었던 것이다.
“유감이구나, 해리.”
루핀이 말했다.
“그렇다면 죽음을 먹는 자들이 <예언자 일보>도 접수한 건가요?”
헤르미온느가 잔뜩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루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겠죠?”
“쿠데타는 순조롭게, 사실상 소리 없이 이루어졌단다.”
루핀이 말했다.
“스크림저의 살해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그가 사임했다는 거였어. 그리고 그 자리에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린 파이어스씨크니스가 앉혀졌지.”
“왜 볼드모트는 스스로 마법부 장관이 되지 않는 거죠?”
론이 물었다.
루핀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필요가 없단다. 론. 실질적으로 이미 장관이나 다름없는데 뭔 하러 마법부 책상 앞에 앉아 있겠니? 볼드모트가 자신의 권력을 마법부 너머로까지 자유롭게 펼치는 동안, 그의 꼭두각시인 씨크니스가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있어.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여졌는지를 알아차렸지. 지난 며칠 사이에 마법부 정책에 너무나 급격한 변화가 있었으니까. 많은 이들이 볼드모트가 배후에 있는 게 틀림없다고 수군거리고 있어. 하지만 중요한건, 사람들이 수군대기만 할뿐이라는 거야.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으니, 서로에게 진심을 털어놓을 엄두조차 못 내는 거란다. 자신들의 의심이 사실로 드러나고 자신들의 가족이 표적이 될 경우를 생각해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어. 그래, 볼드모트는 아주 영리하게 게임을 하고 있단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 공개적인 반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가면을 쓴채로 혼란과 불확실함, 그리고 공포를 조장하는 거야.”
“마법부 정책의 급격한 변화 중에는 마법 세계에 볼드모트 대신 저에 대해 경고하는 게 포함되어 있군요.”
해리가 말했다.
“그것도 분명 그중 하나이지.”
루핀이 말했다.
“그것은 아주 절묘한 조치였지. 이제 덤블도어 교수님이 죽었으니,‘살아남은 아이’인 너는 확실히 볼드모트에 대한 모든 저항의 상징이자 구심점인 셈이지. 하지만 네가 늙은 영웅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고 제기함으로써 볼드모트는 네 머리에 현상금을 걸었을 뿐 아니라, 너를 옹호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 사이에 의혹과 공포를 불어넣었단다. 그 사이에, 마법부는 머글 태생들을 탄압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지.”
루핀은 <예언자 일보>를 가리켰다.
“2면을 봐라.”
헤르미온느는 <가장 사악한 어둠의 마법의 비밀> 책을 만질때와 똑같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서 신문을 펼쳤다.
“머글 태생 등록.”
그녀가 소리 내어 읽었다.
“마법부는 소위 머글 태생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것은 그들이 어떻게 마법의 비밀을 획득하게 되었는지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한 조치이다.
미스터리 부서에 의해 실시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마법은 오직 마법사들이 출산을 할 때에만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진 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증명된 마법사 조상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는, 즉 소위 머글 태생은, 절도나 강탈에 의해서 마법 능력을 획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법부는 그와 같은 마법 능력의 강탈자들을 뿌리뽑기로 결의했다. 이 때문에 소위 머글 태생이라 불리는 모든 이에게, 신설된 머글 태생 등록 위원회에서 행하는 심문에 응하라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예요.”
론이 말했다.
“그런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단다, 론.”
루핀이 말했다.
“바로 지금 머글 태생들이 소집되고 있어.”
“하지만 어떻게 그들이 마법을 ‘훔쳤다’는 거죠?”
론이 물었다.
“그건 정신적인 능력이에요. 만약 마법이 훔칠 수 있는 거라면, 아마 스큅은 존재하지도 않았겠죠. 그렇지 않나요?”
“그러게 말이다.”
루핀이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최소한 한 명이라도 가까운 마법사 친척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이제 마법 능력을 불법적으로 획득했다고 간주될 것이고,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론은 헤르미온느를 힐끗 곁눈질하더니 말했다.
“만약 순수혈통들과 혼혈들이 머글 태생을 자신의 가족이라고 서약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죠?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헤르미온느가 제 사촌이라고 말하겠어요.....”
헤르미온느가 론의 손을 잡고는 꽉 쥐었다.
“고마워, 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네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야.”
론은 다시 그녀의 손을 꼭 붙잡으며 열렬히 말했다.
“내가 너한테 우리 집 가계도를 가르쳐 줄게. 네가 거기에 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떨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론, 우리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명수배자인 해리 포터와 도주 중이야. 그런 건 문제도 아니라고, 만약에 내가 학교로 돌아간다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그런데 볼드모트가 호그와트에 대해서는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죠?”
헤르미온느가 루핀에게 물었다.
“이제 모든 젊은 마녀와 마법사들에게 학교 출석이 강요되고 있다.”
그가 대답했다.
“어제 발표됐어. 그건 일대 변화지. 예전에는 한 번도 학교 출석이 의무였던 적이 없으니까. 물론 영국의 거의 모든 마녀와 마법사들이 호그와트에서 교육받아 왔지만, 부모에게는 선호에 따라 자식들을 집에서 가르치거나 해외로 유학을 보낼 권리가 있었단다. 이런 식으로 볼드모트는 마법사 세계 전체를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감시하에 두려는 거야. 그것은 머글 태생들을 제거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단다. 왜냐하면 입학 허가를 받기 전에 그들은 반드시 혈통 등급을 부여받아야 하니까. 그건 곧 마법부에 자신이 마법사 후손임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뜻이지.”
해리는 메스껍고, 화가 났다. 지금 이 순간, 잔뜩 흥분한 열한 살짜리 꼬마들이 새로 구입한 마법 책 더미에 파묻혀 신나게 읽고 있을 것이다. 호그와트는 구경도 못하고, 어쩌면 다시는 가족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건...... 그건.....”
해리는 이 끔찍한 생각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자 루핀이 조용히 말했다.
“나도 알고 있다.”
루핀은 잠시 말을 주저했다.
“네가 확실히 밝힐 수 없다고 해도 난 이해할 거야, 해리. 하지만 기사단은 덤블도어 교수님이 너에게 어떤 임무를 남겼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네, 남겼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일에는 론과 헤르미온느도 관련되어 있어요. 얘들은 저와 함께할 거예요.”
“그 임무가 뭔지 말해 줄 수 있겠니?”
해리는 무성하지만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나이보다 너무 일찍 주름이 진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다른 대답을 해 줄 수 없음을 애석해했다.
“그럴 수 없어요, 리무스. 죄송해요. 만약 덤블도어 교수님이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 역시 말해선 안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루핀이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네게 조금은 쓸모가 있을지 모른다. 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지? 내가 함께 가면, 너희를 보호해 줄 수 있어. 너희가 무슨 일을 할 건지 내게 정확히 알려 줄 필요도 없다.”
해리는 망설였다. 그것은 매우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루핀이 그들과 줄곧 함께 지낸다면, 어떻게 그들의 임무를 비밀로 할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헤르미온느는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통스는 어쩌고요?”
그녀가 물었다.
“통스가 어쨌단 말이냐?”
루핀이 말했다.
“그러니까........”
헤르미온느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은 결혼한 몸이잖아요! 그런데 우리와 가 버린다면 통스 기분이 어떻겠어요?”
“통스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루핀이 말했다.
“처가에 있을 테니까.”
루핀의 말투가 왠지 수상했다. 그것은 거의 싸늘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통스를 친청에 숨겨 놓는다는 계획 역시 미심쩍은 데가 있었다. 어쨌거나 그녀 역시 기사단의 일원이며, 해리가 알기로는, 분면 이 싸움의 한복판에 끼기를 바랄 것이다.
“리무스.”
헤르미온느가 주저하며 말했다.
“다 괜찮은 거죠? 제 말은...... 당신과.....”
“고맙지만 아무 무제 없어.”
루핀이 매섭게 답했다.
헤르미온느가 얼굴을 붉혔다. 또 한 번의 어색하고 당혹스러운 침묵이 흐른 뒤, 루핀이 입을 열었다. 몹시 불쾌한 일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듯한 말투였다.
“통스는 아기를 낳을 거란다.”
“오오, 잘됐어요!”
헤르미온느가 꺅 소리를 질렀다.
“굉장하군요!”
론도 신이 나서 외쳤다.
“축하해요.”
해리가 말했다.
루핀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그건 차라리 인상을 쓴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너희는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니? 그럼 세 명이 네 명이 되는 건가? 내 생각에 덤블도어 교수님도 반대하지 않으셨을 게다. 뭐니 뭐니 해도, 그분은 나를 너희의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로 임명하셨으니까. 그리고 이 말은 꼭 해야 겠다. 우린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맞닥뜨리거나 상상 조차 하지 못했던 마법을 상대하고 있는거야.”
론과 헤르미온느가 동시에 해리를 바라보았다.
“단지.....단지 분명히 하려는 건데요.”
해리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정말로 통스를 친정에 남겨 두고 우리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건가요?”
“통스는 거기서 아주 안전할 거야. 장인 장모님이 보살펴 줄테니까.”
루핀은 거의 무관심하게 보일 정도로 단호하게 말했다.
“해리, 제임스 역시 네 곁에 붙어 있기를 바랐을 거라고 장담한다.”
“저......”
해리가 천천히 말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버지라면 오히려 왜 당신이 자기 아이 곁에 있으려고 하지 않는지를 알고 싶어 했을 거예요.”
루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갑자기 부엌 안의 온도가 10도쯤 떨어진 것 같았다. 론은 마치 부엌 구석구석을 머리에 담아 두라는 명령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척했다. 한편 헤르미온느의 눈은 연방 해리와 루핀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너는 이해를 못하는 구나.”
마침내 루핀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설명해 보세요.”
해리가 말햇다.
루핀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난..... 난 통스와 결혼하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더 나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결혼하게 되었어. 그 후로 줄곧 아주 후회하고 있단다.”
“알았어요.”
해리가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우리와 함께 달아나려 하는군요?”
그러자 루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바람에 의자가 벌렁 뒤로 넘어졌다. 루핀이 그들을 어찌나 사납게 노려보았던지, 해리는 인간의 모습을 한 루핀의 얼굴 위에 드리워진 늑대의 그림자를 처음으로 목격했다.
“너희는 내가 아내와 뱃속의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니? 난 애초에 그녀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 난 그녀를 추방자로 만들고 말았어!”
루핀은 자신이 쓰러뜨린 의자를 한쪽으로 걷어찼다.
“너희는 내가 기사단에 있을 때의 모습만을 봐 왔지. 혹은 호그와트에서 덤블도어 교수님의 보호 아래 있을 때나! 너희는 대부분의 마법 세계 사람들이 나 같은 족속을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 내 병을 알게 되면, 그들은 내게 말조차 걸려고 들지 않아! 너희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니? 심지어 통스의 가족조차 우리의 결혼을 싫어했지. 하긴 어느 부모가 자신의 외동딸을 늑대인간에게 시집보내고 싶어 하겠니? 그리고 그 그아이는......그아이는......”
루핀은 진짜로 자신의 머리 한 움큼을 쥐어뜯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종족은 보통 번식을 하지 않아! 그 아이도 나처럼 될 거야. 그건 확실해. 그러니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용서 할 수 있겠니? 뻔히 알면서도 내 병을 아무 죄 없는 아이한테 물려주었는데. 설사 어떤 기적에 의해서, 그 애가 나처럼 되지는 않는다 해도, 평생 부끄러워해야만 하는 아버지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훨씬 나을 거야! 백배는 더 낫겠지!”
“리무스!”
헤르미온느가 눈물을 글썽인 채, 목이 메어서 말했다.
“그런 말 마세요. 어느 아이가 당신을 부끄러워할 수 있겠어요?”
“오오, 난 모르겠어, 헤르미온느.”
해리가 불쑥 내뱉었다.
“나는 정말이지 그가 부끄러우니까.”
해리도 자신의 분노가 어디에서 솟아오르는 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분노에 못 이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루핀은 마치 해리에게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 새로운 정권이 머글 태생을 나쁘게 생각한다면.”
해리가 소리쳤다.
“도대체 아버지가 기사단에 속해 있는 늑대인간 혼혈에게는 무슨 짓을 할까요? 제 아버지는 어머니와 저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당신에게 아이를 버리고 우리와 모험을 떠나라고 말할 것 같은가요?”
“어떻게......어떻게 네가 감히 그런 말을?”
루핀이 말했다.
“이건 위험을 좇고 싶다거나, 개인적인 영예를 얻으려는 욕망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그런데 어떻게 네가 감히 그런......”
“제 생각엔 당신이야말로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 같은데요.”
해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시리우스의 뒤를 이을 생각이신가 본데......”
“해리, 그만 해.”
헤르미온느가 애원했지만, 해리는 납빛으로 변해 버린 루핀의 얼굴을 계속 노려보았다.
“난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
해리가 쏘아붙였다.
“내게 디멘터와 싸우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이런 겁쟁이라니.”
루핀이 어찌나 빨리 지팡이를 뽑아 들었는지, 해리는 지팡이를 쥘 겨를도 없었다. 커다랗게 쾅 소리가 나면서 해리는 한방 맞은 사람처럼 몸이 뒤로 붕 날아가는 걸 느꼈다. 부엌 벽에 부딪힌 그가 바닥으로 주르르 미끄러졌을 떄, 문가에서 휙 사라지는 루핀의 망토 뒷자락이 흘끗 보였다.
“루핀! 루핀! 돌아와요!”
헤르미온느가 소리쳤지만, 루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울부짖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거야 쉽지”
해리는 이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벽에 부딪힌 자리에 혹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분노에 가득 차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해리는 헤르미온느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헤르미온느한테 괜한 시비 걸지 마!”
론이 으르렁거렸다.
“안돼..... 안돼...... 우리는 절대 싸워선 안 돼!”
헤르미온느가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섯다.
“루핀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론이 해리를 나무랐다.
“그가 그런 말을 들을 짓을 하잖아.”
해리가 대꾸했다. 어지러운 영상들이 잇달아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베일 너머로 떨어지는 시리우스....... 부상을 입은 채 허공에 매달려 있는 덤블도어...... 초록 불빛과 함께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
“부모란....”
해리가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을 때가 아니면, 결코 자기 자식을 떠나서는 안돼.”
“해리.....”
헤르미온느가 위로의 손길을 뻗으며 말했지만, 그는 몸을 휙 빼고 물러섰다. 그의 눈은 헤르미온느가 불을 지펴 놓은 벽난로에 고정돼 있었다. 언젠가 해리는 저 벽난로에서 나온 루핀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해리는 아버지에 대해 확신을 얻고 싶어 했고, 루핀은 그를 위로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 고통스러워하는 루핀의 창백한 얼굴이 해리의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쓰라린 후회가 밀려왔다. 론과 헤르미온느도 말이 없었다. 하지만 해리는 두 사람이 자신의 등 뒤에서 서로를 쳐다보며 말없이 의사를 나누고 있는 걸 확실히 느낄수 있었다.
해리가 휙 돌아서자, 두 사람이 황급히 서로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나도 알아. 그를 겁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래, 그러지 말아야 했어.”
론이 즉시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 겁쟁이처럼 행동햇어.”
“설령 그렇다고 해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나도 알아.”
해리가 재빨리 말을 끊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가 통스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그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야, 안 그래?”
그는 더 이상 변명하는 듯한 어조를 숨길 수가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참 딱하다는 표정이었고, 론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해리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라면 과연 그가 방금 루핀에게 한 말을 지지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오랜 친구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분노했을까?
적막한 부엌 안이, 방금 벌어진 사건의 충격과 론과 헤러미온느의 무언의 비난으로 인해서 웅성거리는 것만 같았다. 루핀이 가져온 <예언자 일보>가 여전히 식탁 위에 놓여 있었고, 신문 1면에 실린 해리의 얼굴은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리는 신문을 향해 걸어가더니, 자리에 앉아 아무 면이나 펼쳐 들고 읽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단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여전히 루핀과의 말다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예언자 일보> 너머로 론과 헤르미온느가 다시 말없이 눈길을 주고받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해리는 시끄럽게 신문을 넘겼다. 순간 덤블도어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사진의 의미를 이해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덤블도어 일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알버스, 갓난아이, 아리애나를 안고 있는 퍼시발, 켄드라, 에버포스.
갑자기 흥미가 끌린 해리는 그 사진을 더욱 주의 깊게 관찰 했다. 덤블도어의 아버지인 퍼시발은 빛바랜 옛날 사진 속에서조차 반짝거리는 듯한 눈을 가진 미남이었다. 아기인 아리애나는 겨우 빵 한 덩어리만 했고, 더 이상 생김새를 구별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인 켄드라는 칠흑 같은 머리를 높이 올려 쪽을 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조각 같은 데가 있었다. 해리는 그녀의 검은 눈과 높은 광대뼈, 곧은 콧날, 깃이 목까지 올라오는 비단 드레스를 정중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예전에 보았던 미국 원주민 사진을 떠올렸다. 알버스와 애버포스는 잘 어울리는 레이스 깃이 달린 재킷을 입고 있었고, 똑같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알버스가 몇 살 더 많아 보이긴 했지만, 그 외에는 두 소년이 너무나 비슷했다. 왜냐하면 이 사진은 알버스의 코가 부러지기 전이었고, 안경을 쓰지도 않았을 때이기 때문이다.
신문 밖으로 평온하게 미소 짓고 잇는 그 가족은 아주 행복하고 정상적으로 보였다. 아기인 아리애나는 숄 밖으로 살짝 팔을 휘젓고 있었다. 해리는 사진 위에 적힌 표제를 보았다.
곧 발간될 알버스 덤블도어의 전기로부터 독점 기재
-리타 스키터
해리는 이 기사를 읽는다 해도, 지금보다 더 이상 불쾌하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햐며 읽기 시작했다.
콧대 높고 거만한 켄드라 덤블도어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남편 퍼시발의 체포와 아즈카반 구속 이후에, 더 이상 몰드온 더 울드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가족을 몽땅 데리고 고드릭 골짜기에 다시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이 고장은 훗날 그 사람으로부터 해리 포터가 괴이한 탈출을 해서 유명해진 바로 그곳이다.
몰드 온 더 울드와 마찬가지로 고드릭 골짜기 역시 수많은 마법사 가족들의 고향이었지만, 켄드라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전 고장에서처럼 자신의 남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호기심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마법사 이웃들의 친절한 접근을 거듭해서 거절한 끝에, 그녀는 곧 자기네 가족이 완전히 고립되었다고 안심하게 되었다.
“환영하는 의미로 집에서 만든 냄비 모양의 케이크를 한판 들고 갔더니, 면전에 대고 문을 쾅 닫아 버리더라고요.”
바틸다 백셧은 증언한다.
“그들이 그곳으로 온 첫해에 저는 남자 아이 두 명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이사 온 그해 겨울에 제가 달밤에 플랜젠타인(겨울에 달빛 받을때 따는 것으로 알려진 마법약 재료 :역주)을 따고 있지 않았다라면, 그래서 켄드라가 아리애나를 데리고 뒷마당으로 가는 걸 보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 집에 딸이 잇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잔디 위에서 그 아이를 한 바퀴 산책을 시키더군요. 계속 꼭 붙잡은 채 말이죠. 그러더니 다시 데리고 들어갔어요. 전 도대체 뭐 하는 건가 했지요.”
켄드라는 고드릭 골짜기로의 이주가 아리애나를 완벽하게 숨기기 위한, 그리고 아마도 그녀가 수년간 계획해 온 그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기가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아리애나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은 일곱 살이 채 되기 전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 들은 아이들에게 마법 능력이 있다면, 그 나이쯤에 드러난다는 데 동의 한다. 하지만 현재 생존한 사람들 중에서, 아리애나가 아주 희미한 마법 능력의 기미라도 보여 주었음을 기억 하는 이는 한 명도 없다. 그러므로 켄드라가 자신이 스큅을 낳았음을 인정하는 수모를 감내하기보다는, 차라리 딸의 존재를 숨기기로 결정한 것이 분명한 듯하다. 아리애나를 알았던 친구들과 이웃들로부터 멀리 이사하는 것은 당연히 그녀의 감금을 훨씬 더 쉽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리애나의 존재를 알고 있던 소수의 사람들은 그 이후로 비밀을 지켜 달라는 요구를 받았을지 모른다. 난처한 질문을 받을 때면,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제 여동생은 학교에 다니기엔 몸이 너무 허약해요”라고 둘러댔던 그녀의 두 오빠를 포함해서 말이다.
다음주 : 호그와트에서의 알버스 덤블도어 - 포상과 거짓
해리의 생각이 틀렸다. 방금 읽은 기사는 더욱더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해리는 분명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과연 그게 사실일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비록 바틸다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 할지라도, 해리는 고드릭 골짜기에 가고 싶었다. 자신과 덤블도어 두 사람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바로 그 장소를 방문하고 싶었다. 그런데 론과 헤르미온느의 의견을 묻기 위해 신문을 내려놓던 찰나,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요란하게 펑 소리가 부엌에 울려 퍼졌다.
3일 만에 처음으로 해리는 크리처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루핀이 부엌으로 다시 뛰어든 줄 알았다. 잠깐 동안 해리는 자신이 앉은 의자 바로 옆에 난데없이 나타나 발버둥치고 있는 팔다리들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가 황급히 일어났들 때, 크리처가 뒤엉킨 몸을 풀고 해리에게 깊숙이 절을 하며 말했다.
“크리처는 도둑 먼던구스 플레처를 잡아서 돌아왓습니다. 주인님.”
먼던구스는 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지팡이를 뽑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그보다 훨씬 빨랐다.
“엑스펠리아르무스!”
먼던구스의 지팡이가 허공으로 치솟자,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낚아챘다. 먼던구스는 핏발 선 눈을 이글거리며 층계를 향해 몸을 날렸다. 론이 럭비에서 태클을 걸듯 그를 막아섰다.
먼던구스는 둔탁한 우두둑 소리와 함께 돌바닥에 부딪혔다.
“뭐냐?”
그는 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서 고함을 쳤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냐? 저 염병할 집요정을 내게 붙이다니, 뭔 장난을 치는 거야? 내가 뭘 어쩄다고? 풀어 줘, 풀어줘. 안 그러면.......”
“당신은 지금 협박을 할 처지가 아닌 것 같은데.”
해리가 말했다. 그는 신문을 한쪽으로 휙 집어 던지고는, 성큼성큼 부엌을 가로질러 먼던구스 옆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았다. 먼던구스는 반항을 멈추었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숨을 헐떡이며 일어선 론은 해리가 일부러 먼던구스의 코앞에 지팡이를 들이대는 것을 지켜보았다. 먼던구스의 퀴퀴한 땀내와 찌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의 머리는 마구 헝클어지고 옷은 꼬질꼬질했다.
“크리처는 도둑을 잡아 오는 게 늦어진 걸 사과드립니다, 주인님.”
집요정이 꽥꽥거리며 말했다.
“플레처는 체포를 피하는 법을 알고 있고, 여러 은신처와 공범자를 갖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처는 결국 도둑을 궁지로 몰았어요.”
“정말 잘했구나, 크리처.”
해리가 칭찬했다. 그러자 집요정은 깊숙이 절을 했다.
“좋아. 당신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해리가 먼던구스에게 말을 걸었다. 먼던구스는 다짜고짜 소리쳤다.
“난 너무 무서웠어, 알아? 나는 결코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고. 악의로 하는 말이 아니야, 친구. 하지만 나는 결코 자네를 위해 죽겠다고 자원한 적이 없었어. 그런데 그 염병할 그 사람이 내게 달려들었단 말이야. 누구라도 그런 순간엔 도망치려 했을 거야. 계속 말했잖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이야......”
“잠깐 알려 주자면, 우리 중에 당신말고 그렇게 싹 사라진 사람은 한명도 없었어요.”
헤르미온느가 면박을 주었다.
“너희야 그 뭐냐, 빌어먹을 영웅들이니까 그렇지, 안 그래?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제 목숨을 끊겠다고 나서는 척한 적 없어.”
“우리는 당신이 왜 매드아이를 버리고 달아났는지 따위는 전혀 관심 없어.”
먼던구스의 불룩하고 충혈된 눈 쪽으로 지팡이를 조금 더 들이대며 해리가 말했다.
“네가 못 믿을 인간쓰레기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그래? 그러면 어쩌자고 저 망할 놈의 집요정이 날 쫓아다니는지 말해 주지 않겠어? 또 그 술잔들 때문이야? 나한텐 하나도 남은 게 없어. 있으면 너희가 다 겨져도 돼.......”
“술잔 때문도 아니야. 물론 비슷하긴 했지만. 입 닥치고 내말이나 들어!”
해리가 말했다.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은, 그리고 약간의 진실이나마 캐물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끝내 주는 기분이었다. 해리의 지팡이는 이제 먼던구스의 코 끝에 바싹 붙다시피 해서, 먼던구스는 그것을 주시하느라 사팔뜨기가 될 지경이었다.
“네놈이 이 집에서 값진 물건들을 죄다 쓸어 갔을 때.....”
해리가 말문을 열었지만, 먼던구스가 다시 끼어들었다.
“시리우슨는 이런 허섭스레기 따위에 신경도 쓰지 않았어.......”
바로 그 순간 후다닥 달리는 발소리와 더불어 뭔가 구릿빛이 반짝거리더니 ‘뗑’ 하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처가 먼던구스를 향해 냅다 달려와서는 머리를 냄비로 힘껏 내리친 것이다.
“이놈 좀 말려! 이놈 좀 말려! 저런 놈은 가둬야 해!”
먼던구스의 크리처가 또다시 바닥이 두꺼운 냄비를 치켜들자 몸을 움츠리며 소리쳤다.
“크리처, 안 돼!”
해리가 말했다.
크리처의 가느다란 두 팔은 냄비의 무게로 후들후들 떨렸지만, 여전히 높이 들려 있었다.
“제발 딱 한 번만 안 될까요, 해리 주인님? 행운을 위해서요.”
론이 웃음을 터트렸다.
“저자가 기절하면 안 돼, 크리처. 하지만 만약 그를 설득할 필요가 생기면, 너에게 그런 영광을 누리게 해 줄게.”
해리가 말했다.
“매우 감사합니다. 주인님.”
크리처가 꾸벅 절을 하며 말했다. 그러고는 몹시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그 커다랗고 파리한 눈을 먼던구스에게 고정한 채, 약간 물러섰다.
“당신이 이 집에서 눈에 띄는 귀중품이란 귀중품은 몽땅 털어 갔을 때 말이야.”
해리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부엌 벽장에서 물건을 한 보따리 가져갔어. 그리고 거기엔 로켓이 하나 있었지.”
해리는 갑자기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것 겉았다. 론과 헤르미온느 역시 잔뜩 긴장하고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걸 어떻게 했지?”
“왜 그러지?”
먼던구스가 물었다.
“그게 값진 건가?”
“아직 갖고 있군요!”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아니야.없어.”
론이 재빠르게 지적했다.
“저 작자는 지금 그 값을 더 많이 불렀어야 했나 의아해하고 있는 거야.”
“더 많이 부른다고?”
먼던구스가 투덜거렸다.
“제기랄, 그럼 고생이나 안 했게...... 젠장...... 그냥 줘 벼렸어. 달리 도리가 있어야지.”
“그게 무슨 뜻이지?”
“다이애건 앨리에서 한창 물건을 팔고 있는데, 그 여자가 다가와서는 마법 유물을 거래할 수 있는 허가증이 있는지 묻잖아. 망할 놈의 염탐꾼 같으니라고. 나에게 벌금을 물리려고 하더니, 그 로켓이 맘에 든다면서 그걸 자기에게 주면 이번 한번만 눈감아 주겠다고 하더군. 나더러 운이 좋다면서 말이지.”
“그 여자가 누구였지?”
해리가 물었다.
“몰라, 웬 마법부 할망구였어.”
먼던구스는 눈썹을 찡그린 채, 잠시 생각을 했다.
“키가 아주 작았는데...... 머리에 머리띠를 하고 말이야.”
그는 인상을 쓰더니, 다시 덧붙였다.
“꼭 두꺼비처럼 생겼어.”
해리는 그만 지팡이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지팡이가 먼던구스의 코에 부딪히자, 그의 눈썹을 향해 빨간 불꽃이 발사되었다. 순식간에 눈썹에 불이 붙었다.
“아구아멘티!”
헤르미온느가 외치자,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물줄기가 콸콸 뿜어 나와 먼던구스에게 물세례를 퍼부었다. 그는 숨이 막혀 꼴깍거렸다.
해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론과 헤르미온느의 얼굴에도 똑같은 충격이 어려 있음을 보았다. 해리는 오른쪽 손등 위의 흉터가 다시금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