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크리처의 이야기
해리는 이튿날 아침 일찍, 응접실 바닥 위의 침낭 속에서 눈을 떳다. 두꺼운 커튼 틈새로 하늘이 살짝 보였다. 밤과 새벽 사이의, 마치 물에 풀어 놓은 잉크 같은 서늘하고 선명한 푸른빛이었다. 론과 헤르미온느의 느리고 깊은 숨소리만 들려올 뿐, 사방은 고요했다. 해리는 바로 옆의 마룻바닥에 누워 있는 그들의 검은 형상을 힐끗 쳐다보았다. 기사도 정신이 발동한 론이 반드시 헤르미온느가 소파에서 내려놓은 쿠션 위에서 자야 한다고 박박 우겨 댔기 때문에, 그녀의 그림자가 론보다 약간 솟아올라 있었다. 헤르미온느의 팔은 마루위에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은 론의 손가락과 닿을 듯이 살짝 떨어져 있었다. 해리는 두 사람이 손을 잡은채 잠든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자 이상하리만치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해리는 어두운 천장과 거미줄이 대롱대롱 매달린 샹들리에를 올려다보았다. 불과 24시간 전만 해도, 그는 결혼식 하객들을 안내하려고 햇빛이 쏟아지는 천막 입구에서 대기하고 서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가 마치 전생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해리는 바닥에 누워 호크룩스에 대해, 그리고 덤블도어가 그에게 남긴 두렵고 어려운 임무에 대해 생각했다......덤블도어.......
덤블도어의 죽음 이후로 줄곧 그를 짓누르고 있었던 슬픔이 이제는 다르게 느껴졌다. 결혼식에서 뮤리엘에게 들었던 비난이 해리의 머릿속에 질병처럼 단단히 자리를 잡아 버린 것 같았다. 그것은 그가 우상시했던 마법사에 대한 기억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그런 일들이 벌어지도록 방치했다는게 사실일까? 만약 덤블도어가 두들리와 마찬가지였다면?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그런 무관심과 학대를 그냥 방관하고 싶어 했다면? 덤블도어가 감금당한채 꽁꽁 숨겨진 여동생에게 들을 돌렸다는게 사실일까?
해리는 고드릭 골짜기에 대해서, 덤블도어가 한 번도 언급한 적 없었던, 그곳에 잇는 무덤에 대해서 생각했다. 또한 덤블도어의 유언장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남겨진 그 수수께끼 같은 물건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갑작스레 어둠속에서 원망스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왜 덤블도어는 해리에게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왜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덤블도어가 정말로 해리에게 신경을 쓰기는 했던 걸까? 아니면 자신은 단지 연마하고 광을 내야 할 연장에 지나지 않았던 걸까? 절대로 신뢰하거나, 비밀을 털어 놓지 못하는?
해리는 벗 삼을 거라고는 그럼 비참한 생각들밖에 없는 상태로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뭔가 할 일을, 기분 전환이 될 만한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그는 침낭에서 빠져나와 지팡이를 꺼내 들고 방에서 살금살금 걸어나왔다. 층계참에 서자, 그는 “루모스”라고 속삭였고, 지팡이의 빛에 의지하여 계단을 올랐다.
위층에는 해리와 론이 지난번에 이곳에 머물렀을 때 잠을 잤던 침실이 있었다. 해리는 그곳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옷장문은 열려 있었고, 침구들은 헝클어져 있었다. 해리는 아래층에 쓰러져 있던 트롤 다리 우산꽂이를 떠올렸다. 기사단이 떠나간 뒤에 누군가 집을 뒤진 것이다. 스네이프일까? 아니면 먼던구스일까? 그는 시리우스가 죽기 전에도, 그리고 죽은 후에도 이 집에서 여러가지 물건을 좀도둑하지 않았던가? 해리의 시선은 시리우스의 고조부,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블랙이 들어가 있곤 했던 초상화를 더듬어 찾았다. 하지만 그것은 텅 빈 채, 흐릿한 배경만 펼쳐져 있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호드와트 교장의 사무실에서 밤을 보내고 있는게 분명했다.
해리는 제일 꼭대기 층까지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곳에는 오직 두개의 문만이 있었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문에는 시리우스라고 새겨진 명패가 붙어 있었다. 해리는 대부의 침실에 이제껏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가능한 한 불빛을 멀리까지 비추기 위해 지팡이를 높이 든 채, 해리는 문을 밀었다. 방은 꽤 널찍했는데, 한때는 아주 근사했음에 틀림없었다. 조각을 아로새긴 나무 머리판이 붙은 커다란 침대와 긴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높은 유리창이 있었고, 먼지가 켜켜이 쌓인 샹들리에의 초꽂이 속에는 타다 남은 양초 토막들이 있었으며, 굳어 버린 촛농이 녹아내린 고드름 모양으로 매달려 있었다. 벽에 걸린 사진들과 침대의 머리판은 뽀얀 먼지를 덮어쓰고 있었다. 그리고 샹들리에와 커다란 나무 옷장 꼭대기 사이에는 거미줄이 걸쳐져 있었다. 방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놀란 생쥐들이 잽싸게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십 대의 시리우스가 수많은 포스터로 사방을 도배해 놓는 바람에, 원래 벽에 발린 은빛이 도는 회색 비단 벽지는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해리는 아마도 이 포스터들에 영구 부착 마법이 걸려 있어서 시리우스의 부모가 벽에서 떼어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님이 장남의 실내장식 취향을 높이 샀을 리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는 부모님을 약올리기 위해서 갈 데까지 간 듯했다. 나머지 모든 슬리데린 집안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색이 바랜 진홍색과 금색의 커다란 그리핀도르 깃발도 여러 개 가져다 놓았고, 머글 오토바이 사진들은 물론, 심지어 비키니 차림을 한 머글 아가씨들의 포스터(해리는 시리우스의 배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도 여러장 붙여 놓았던 것이다. 해리는 그 아가씨들이 머글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색 바랜 미소와 반짝이는 눈을 간직한 채, 사진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벽에 붙은 유일한 마법 사진이 이것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서로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네명의 호그와트 학생들의 사진이었다.
해리는 아버지를 알아보고 뛸 듯이 기뻤다. 해리와 마찬가지로 그의 헝클어진 검은 머리는 뒤가 부스스 솟아 있었고, 그 역시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전혀 꾸밈이 없이 잘생긴 시리우스가 있었다. 그의 약간 시건방져 보이는 얼굴은 해리가 살아생전에 보았던 것 보다 훨씬 더 젊고 행복해 보였다. 시리우스의 오른쪽에는 페티그루가 서 있었다. 그는 시리우스보다 머리 하나 이상 키가 작고 포동포동했으며, 눈물에 젖은 듯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또한 제임스나 시리우스 같이 높이 추앙받는 반항아들과 더불어, 이렇듯 가장 멋진 무리에 자신이 끼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제임스의 왼쪽에는 루핀이 있었다. 그때에도 여전히 다소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자신이 이 무리에 속해 있고 호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마찬가지로 기쁘고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해리가 이 사진에서 그러한 점들을 본 것은 단지 그가 자초지종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해리는 사진을 벽에서 떼어 내려고 했다. 어쨋거나 시리우스는 해리에게 모든것을 물려주었고, 이 사진도 이제 자신의 것이었다. 하지만 사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부모가 자신의 방을 다시 꾸미지 못하도록 만전을 기했던 것이다.
해리는 바닥을 둘러보았다. 바깥 하늘이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한 줄기 빛이 카펫 위에 널브러진 종잇조각과 책들,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비추었다.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여기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이 무가치하다고 판명된 듯하긴 했지만, 시리우스의 침실 역시 수색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몇몇 책은 표지가 떨어져 나가고 종이가 찢겨 바닥에 흩어질 만큼, 거칠게 쥐고 흔든 것 같았다.
해리는 허리를 숙여 종이 몇장을 주워 들고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중 한장은 바틸다 백셧이 쓴 <마법의 역사>의 옛날 판본의 일부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오토바이 정비 설명서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었다. 세 번째 종이는 손으로 쓴 것으로 꼬깃꼬깃 구겨져 있었다. 해리는 종이를 문질러 폈다.
패드풋에게.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해리의 생일 선물 말이야! 해리는 여태껏 받은 물건 중에서 그걸 제일 애지중지하고 있어. 한 살배기 주제에 벌써 장난감 빗자루를 타고 잽싸게 날아오르는 걸 봐서, 아주 맘에 든 모양이야. 네가 볼 수 있도록 사진 한장을 동봉할게. 너도 알다시피 그 빗자루는 지상에서 고작 60센티미터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아. 하지만 해리는 하마타면 고양이를 치어 죽일뻔 했어. 게다가 페투니아가 성탄절 선물로 나에게 보낸 못생긴 꽃병을 박살내 버렸지(물론 불평할 일은 아니지만). 당연히 제임스는 그 일을 매우 재밌어 했고, 해리가 분명 훌륭한 퀴디치 선수가 될 거라고 했어. 하지만 우리는 집 안의 장식품들을 모조리 치워 놓고, 아이가 속도를 낼 때면 눈을 떼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해.
우리는 조용한 생일 축하 다과회를 가졌어. 우리 두 사람과 바틸다. 이렇게 셋이서 오븟하게 말이야. 바틸다는 늘 우리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시고, 해리를 아주 귀여워해 주셔. 네가 오지 못해서 정말 유감이야. 하지만 물론 기사단 일이 우선이지. 게다가 해리가 자기 생일을 알 만큼 큰 건 아니니까! 제임스는 여기에 처박혀 지내며 조금씩 낙심하고 있어. 그이는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알겠어. 덤블도어 교수님이 아직도 제임스의 투명망토를 갖고 있으니, 외출을 할 가망은 없는 셈이지. 만약 네가 올 수만 있다면, 제임스의 기분도 훨씬 나아질 텐데, 지난 주말에 워미가 여기 왔었어. 좀 기운이 없어 보이더라. 아마도 맥키논 부부에 대한 소식때문이겠지. 나도 그 소식을 듣고서, 저녁 내내 울었거든.
바틸다는 거의 매일 들러서 덤블도어 교수님에 대한 아주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는데, 정말 멋진 할머니야! 물론 덤블도어 교수님이 이 사실을 안다면, 과연 달가워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지모르겠어. 왜냐 하면 도저히 믿기지 않거든 덤블도어 교수님이.......
해리는 팔다리가 마비된 것 같았다. 무감각해진 손가락이 기적 같은 편지를 꼭 쥐고 한동안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의 내부에서는 기쁨과 비통함이 똑같은 정도로 혈관을 따라 거세게 고동치며 일종의 소리 없는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지만 처음 읽었던 것 이상의 의미를 캐낼 수는 없었다. 해리는 글씨를 뜷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해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g'자를 썻다. 그는 ‘g'자가 든 글자들을 모두 찾아서 편지 전체를 꼼꼼히 살펴보았고, 그 글자들 하나하나가 베일 너머로 흘끗 보이는 친근한 작은 손짓처럼 느껴졌다. 이 편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잉크로 이 글자들을, 이 단어들을 해리, 즉 자기 아들에 대한 단어들을 새겨 넣으며 양피지 위로 움직였다는 증거였다.
해리는 눈가에 어린 물기를 서둘러 닦아내고, 이번에는 그 의미에 집중하며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것은 마치 어렴풋이 기억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도 같았다.
그들은 고양이를 키웠었다. 아마 녀석은 고드릭 골짜기에서 죽었겠지. 우리 부모님처럼, 혹은 먹이를 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않아 달아났을지도 모르고..... 시리우스는 해리에게 최초의 빗자루를 사주었었다..... 부모님은 바틸다 백셧을 알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그들을 소개했던 걸까? 덤블도어교수님이 아직도 제임스의 투명망토를 갖고 있다...... 거기에는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해리는 잠깐 멈춰서 어머니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덤블도어는 제임스의 투명망토를 가져간 것일까? 해리는 교장 선생님이 몇 년 전에 자신에게 “나는 눈에 보이지 않기 위해서 망토가 필요치 않단다” 라고 말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능력이 모자라는 기사단원이 투명 망토의 도움을 필요로 했었고, 그래서 덤블도어는 그것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을까? 해리는 일단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워미가 여기 왔었어..... 페티그루, 그 배신자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정말일까? 그는 자신이 살아 있는 제임스와 릴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바틸다, 그녀는 덤블도어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거든. 덤블도어 교수님이.....
덤블도어 무얼? 하지만 덤블도어에 대해 믿기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를테면, 언젠가 변신술 시험에서 꼴찌를 한 적이 있다든가, 애버포스와 마찬가지로 염소에게 마법을 건 적이 있다든가........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을 흝어보았다. 아마도 편지의 나머지 부분이 이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해리는 처음 이 방을 수색했던 사람만큼이나 예의라곤 전혀 없이, 닥치는 대로 종이들을 긁어모았다.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 보고, 책들을 흔들어 보고, 의자위에 올라서서 손으로 옷장 꼭대기를 흝어 보고, 침대와 안락의자 밑까지 기어 들어가 보았다.
결국 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을 때, 서랍장 밑에서 찢어진 종잇조각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해리는 그 종이를 끌어당겼다. 그것은 바로 릴리가 편지에서 언급했던 사진의 일부가 확실해 보였다. 검은 머리의 아기는 까르르 웃어 대며 작은 빗자루를 타고 사진 속을 빠르게 들락거렸고, 제임스의 것으로 보이는 한쌍의 다리가 아기를 뒤쫓고 있었다. 해리는 이 사진을 릴리의 편지와 함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편지의 뒷장을 찾기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15분이 흐른 뒤에, 해리는 어머니가 쓴 편지의 나머지 부분이 사라졌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편지가 쓰인 그 이후로 16년이 지나는 동안 단순히 분실된 것일까? 아니면 이 방을 수색한 누군가가 그것을 가져간 것일까? 해리는 첫 번째 장을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편지의 두번째 장을 가치 잇는 것으로 만들었을지 모를 무언가에 대한 단서를 찾으면서 읽었다. 그의 장난감 빗자루가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흥미 있었을리는 없다.... 첫 번째 장에서 잠재적으로 쓸모가 있다고 여겨진 것은 덤블도어에 대한 정보뿐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거든. 덤블도어 교수님이...... 무얼?
“해리? 해리! 해리!”
“나 여기 있어!”
해리가 외쳤다.
“무슨 일이야?”
문밖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헤르미온느가 문을 왈칵 열고 들어왔다.
“일어나 보니까 네가 어디 갔는지 없어진 거야!”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소리쳤다.
“론! 해리를 찾았어!”
론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몇 층 아래서부터 희미하게 메아리쳤다.
“다행이네! 나 대신 해리에게 멍텅구리 자식이라고 전해 줘!”
“해리. 아무 말 없이 사라지지 마, 제발 우리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그나저나 여기는 왜 올라온 거야?”
헤르미온느는 완전히 엉망이 된 방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방금 찾아낸 걸 봐.”
해리는 어머니 어머니의 편지를 꺼냈다. 헤르미온느는 편지를 받아서 읽어 내려갔다. 해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편지의 마지막 줄에 이르자, 헤르미온느는 해리를 올려다 보았다.
“오오, 해리........”
“그리고 이것도 봐.”
그는 찢어진 사진을 그녀에게 건넸다. 헤르미온느는 장난감 빗자루를 타고 다가왔다 멀어졌다 하는 아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찾고 있었어.”
해리가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없는 것 같아.”
헤르미온느는 흘끗 둘러보았다.
“네가 이걸 다 어질러 놓은거야, 아니면 네가 여기 왔을 때 이미 조금 어질러져 있던 거야?”
“누군가 나보다 먼저 이곳을 수색했어.”
해리가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올라오는 길에 살펴보니 모든 방들이 어지럽혀져 있었어, 그들은 도대체 뭘 찾고 있는 거지? 넌 알겠니?”
“기사단에 대한 정보겠지. 만약 스네이프가 그런 거라면.”
“하지만 스네이프는 이미 원하는 모든 정보를 갖고 있을 텐데, 내 말은, 그는 기사단에 속해 있었잖아, 안 그래?”
“그렇다면.......”
해리는 자신의 짐작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 마음이 급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에 대한 정보가 아닐까? 내 말은, 이 편지의 뒷장 말이야, 우리 엄마가 언급하고 있는 바틸다가 누군지는 너도 알지?”
“누구?”
“바틸다 백셧.....그 저자 말이야......”
“<마법의 역사>”
몸시 흥미롭다는 얼굴로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럼 네 부모님이 그분과 아는 사이였다는 거야? 그분은 아주 훌륭한 마법 역사가였어?”
“그리고 아직도 살아 있어.”
해리가 말했다.
“여전히 고드릭 골짜기에 살아. 결혼식에서 뮤리엘 할머니가 그분에 대해 이야기 했어. 바틸다는 덤블도어 가족과도 알고 지냈나봐. 그분과 얘기해보면 꽤 흥미로울 것 같아, 안그래?”
하지만 해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헤르미온느가 충분히 그 심정을 이해하겠다는 식의 미소를 좀 과하게 지었기 때문에, 해리는 기분이 상했다. 그러므로 그녀를 마주하고 자신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기위해, 편지와 사진을 도로 뺏어서 목에 건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네가 왜 네 부모님과 덤블도어 교수님에 대해서 그분과 얘기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호크룩스를 찾는데에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거야. 그렇지 않니?”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헤르미온느는 서둘러서 다시 말을 이었다.
“해리, 나는 네가 정말 고드릭 골짜기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 하지만 난 겁이나, 어제만 해도 죽음을 먹는 자들이 얼마나 쉽게 우리를 찾아냈는지를 생각하면 무서워.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네 부모님이 묻힌 곳을 피해야만 한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그들은 네가 그곳을 찾아갈 거라 예상하고 있을 게 분명해.”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야.”
여전히 헤르미온느에게 시선을 주리 않으며 해리가 말했다.
“뮤리엘 할머니가 결혼식에서 덤블도어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거든. 난 진실을 알고 싶어....”
그는 헤르미온느에게 뮤리엘이 한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그가 이야기를 마치자,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물론 그 얘기가 그토록 너를 화나게 했는지는 알겠어. 해리........”
“화난 건 아니야.”
해리는 거짓말을 했다.
“나는 단지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을 뿐이야......”
“해리, 넌 정말로 뮤리엘 할머니 같은 고약한 할머니나 리타 스키터로부터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어떻게 그 사람들 말을 믿을 수가 있니? 너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잖아!”
“나도 그런 줄 알았지”
해리가 웅얼거렸다.
“게다가 리타가 너에 대해 썻던 그 모든 기사 중에 과연 얼마만큼의 진실이 있는지는 네가 잘 알잖아! 도지 씨의 말이 옮아! 너는 어떻게 그따위 사람들이 덤블도어 교수님에 대한 네 기억을 더럽히게 내버려 둘 수가 있니?”
해리는 자신의 울분을 드러내지 않으러 애쓰며 고개를 돌렸다. 또다시 그 문제였다. 무엇을 믿을지 선택하는 것. 그는 다만 진실을 원했다. 왜 모두 그토록 단호하게 해리가 진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걸까?
“우리 부엌으로 내려가지 않을래?”
잠시 주저한 뒤 헤르미온느가 제안했다.
“아침거리가 있는지 찾아봐야지?”
해리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층계참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층계참에 이어진 두 번째 문을 지날 때였다. 문득 도료를 입힌 작은 표지판 하단에 깊이 글씨를 새겨넣은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는 어두워서 해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해리는 층계 맨 위에 멈춰 서서 그것을 읽어 보았다. 손으로 직접 글씨를 멋들어지게 새겨 넣은 다소 허세를 떠는 듯한 조그만 문패였는데, 퍼시 위즐리가 자신의 방문에다 붙여 놓을 법한 종류의 것이었다.
레귤러스 아크르투러스 블랙의 특별허가없을 시에는 출입을 금함.
당장 이유가 떠오르진 않았지만, 그걸 보는 순간, 해리는 온몸에 강한 전율이 흘렀다.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헤르미온느는 이미 아래층 계단 중간에 서 있었다.
“헤르미온느”
해리가 불렀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찌나 침착하던지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이리 다시 올라와 봐”
“무슨 일인데?”
“R.A.B. 내가 그를 찾은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헉 하고 숨을 쉬더니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네 어머니의 편지에서? 난 못봤는데?”
해리는 고개를 저으며 레귤러스의 문패를 가리켰다. 헤르미온느가 그것을 읽더니, 해리가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그의 팔뚝을 꽉 붙잡았다.
“시리우스의 동생이야?”
그녀가 속삭였다.
“그는 죽음을 먹는 자였어.”
해리가 말했다.
“시리우스가 그에 대해 내게 얘기해 주었어. 그는 아주 어렸을 때 가담했는데, 머잖아 겁에 질려 탈퇴하려 했지............ 결국 그들이 그를 죽였어.”
“얘기가 딱 맞아 떨어져!”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만약에 그가 죽음을 먹는 자였다면, 그는 볼드모트와 접촉 할 수 있었을거야. 그리고 만약 그가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면, 볼드모트를 파멸시키고 싶어 했을 수도 있잖아!”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붙잡은 손을 놓더니 계단의 난간 쪽으로 허리를 숙이고 소리쳤다.
“론! 론! 여기로 올라와. 어서!”
잠시 후 론은 손에 지팡이를 쥐고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춘채, 헐떡거리며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만약 이번에도 대형 거미라면, 난 그전에 아침이나 먹고.......”
론은 헤르미온느가 말없이 가리키고 잇는 레귤라스의 문패를 인상을 쓰며 바라보았다.
“뭐야? 시리우스의 동생이잖아. 아니야? 레귤러스 아르크투러스......레귤러스.........R.A.B.잖아! 그 로켓이.........혹시?”
“찾아보자”
해리가 말했다. 그는 문을 밀어 보았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로 손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알로호모라.”
찰칵 소리가 나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
그들은 주위를 살피며 나란히 문턱을 넘어섰다. 레귤러스의 침실은 시리우스의 것보다 조금 작았디만, 그것과 똑같이 웅장한 분위기를 띠었다. 시리우스가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를 바랐던 반면, 레귤러스는 그 반대의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한 것 같았다. 침대 커튼이며, 벽, 창문까지 슬리데린의 색상인 에메랄드색과 은색으로 사방이 도배되어 있었다. 블랙 가문의 문장이, ‘TOUJOURS PUR(언제나 순수한)’라는 가훈과 함께, 정성스럽게 그의 침대 위에 그려져 있었다. 그 밑에는 노랗게 바랜, 신문에서 오려 낸 기사들이 한곳에 다닥다닥 붙어서 누덕누덕한 콜라주를 이루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방을 가로질러 다가가서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모두 볼드모트에 관한 거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레귤러스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가담하기 전까지 몇 년간은 볼드모트의 팬이었던 것 같다.........”
헤르미온느가 기사들을 읽기 위해 침대에 앉자, 침대 커버에서 먼지가 풀썩 일었다. 한편 해리는 또 다른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호그와트 퀴디치 팀이 미소 지으며 액자 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해리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들의 가슴에 장식된 뱀 문양을 볼 수 있었다. 슬리데린 선수들이었다. 맨 앞줄 가운데에 앉아 있는 레귤러스는 죽시 알아볼 수 있었다. 형인 시리우스와 마찬가지로 검은 머리칼에 약간 건방진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리우스보다는 키도 더 작고 왜소했으며, 인물이 좀 떨어져 보였다.
“그는 수색꾼이었어.”
해리가 말했다.
“뭔?”
헤르미온느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년느 여전히 볼드모트에 관한 신문기사에 몰두해 있었다.
“그는 앞줄 가운데에 앉았어. 그건 수색꾼 자리야......... 됐다. 신경 꺼.”
해리는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체념한 듯이 말했다. 론은 무릎을 끓고 바닥에 손을 짚은채, 옷장 밑을 열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해리도 뭔가 숨길만한 곳이 어디일가 방을 둘러보면서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책상 역시 그들이 오기 전에 누군가가 이미 뒤져 본 후였다. 서랍의 내용물은 최근에 쏟아 놓은 흔적이 역력했고, 먼지가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쓸 만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오래된 깃펜, 험하게 다룬것이 분명한 옛날 교과서들, 그리고 최근에 깨진 잉크병과 그 안에 남아있던 끈끈한 잉크로 뒤덮인 서랍의 물건들 뿐이었다.
“더 쉬운 방법이 있어.”
해리가 잉크 묻은 손가락을 청바지에 쓱 닦자,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아씨오, 로켓!”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낡아 빠진 커튼의 주름 사이를 살피고 있던 론은 실망한 듯했다.
“정말 그런 거야? 여기엔 없는 거야?”
“오, 그래도 여기에 있을지도 몰라, 반대 마법에 걸려 있을 수도 있지.”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마법을 이용해서 소환되는 것을 방지하는 마법 말이야.”
“볼드모트가 동굴 속의 돌 대야에다 걸었던 것처럼 말이지?”
자신이 어째서 소환 마법으로 가짜 로켓을 불러올 수 없었는지를 떠올리며 해리가 말했다.“
“그럼 도대체 우리가 그걸 어떻게 찾을 수 있지?”
론이 물었다.
“우리가 직접 뒤져서 찾는 수밖에 없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구나.”
론이 눈알을 굴리며 대답하고는 커튼 검사를 계속했다.
그들은 한 시간 넘게 방 전체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결국엔 로켓이 여기에 없다고 결론지을수 밖에 없었다.
이미 해가 높이 떠 있었다. 비록 더러운 층계참 유리창을 통해 흘러들어오긴 했지만, 그래도 강렬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
“어쩌면 이 집 안의 다른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라.”
층계를 내려가는 동안 헤르미온느가 고집을 부리듯이 말했다.해리와 론이 실망하면 할수록, 헤르미온느는 더욱 확신에 가득 차는 것 같았다.
“그가 그것을 파괴했든,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레귤러스는 그걸 볼드모트로부터 숨기고 싶어했을 거야, 그렇지 않겠어? 우리가 지난번에 여기 왔을 때 치워야 했던 그 많은 끔직한 것들을 생각해봐. 시계는 아무한테나 추를 쏴 대고, 낡은 망토들은 론의 목을 조르려고 했지. 레귤러스는 로켓을 숨긴 곳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마법들을 걸어 놓았을지도 몰라. 비록 우리가 그걸....”
순간 해리와 론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헤르미온느는 마치 방금 기억력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 발을 허공에 든 채 서 있엇던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이 풀려 있었다.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녀가 속삭이며 말을 맺었다.
“뭐가 잘못됐어?”
론이 물었다.
“로켓이 있었어.”
“뭔?”
해리와 론이 동시에 외쳤다.
“응접실의 유리 진열장 속에 있었어. 아무도 그걸 열 수 없었지. 그리고 우리........우리가........”
해리는 마치 벽돌 하나가 가슴에서 뱃속으로 쿵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기억이 났다. 각자 한 번씩 그것을 열어 보려고 애쓰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와중에 해리는 심지어 그것을 직접 손에 쥐기가지 했었다. 결국 그것은 사마귀딱지 가루가 뿌려진 코담뱃갑과 모두를 곯아떨어지게 했던 뮤직박스와 함게 쓰레기 봉투 속으로 내던져졌던 것이다.
“그때 크리쳐는 우리에게서 많은 물건을 빼돌렸어.”
그것이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그들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해리는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에 매달릴 작정이었다.
“크리쳐는 이런 물건들을 모조리 부엌에 있는 자신의 벽장 속에 숨겨 놓곤 했어. 어서 가자.”
해리는 한 번에 두 칸씩 층계를 뛰어 내려갔다. 다른 두 사람도 해리를 쫓아 쿵쾅거리며 밑으로 내려갔다. 현관 복도를 지날 때, 그들이 너무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바람에 시리우스 어머니의 초상화를 깨우고 말았다.
“지저분한 것들! 잡종! 인간쓰레기!”
그들이 지하 부엌으로 단숨에 뛰어 내려가 문을 쾅 닫아 버리자, 그녀는 그들 뒤에다 대고 악을 썼다.
해리는 부엌을 가로질려 달려갔다. 그리고 미끄러지다시피 하면서 크리쳐의 벽장문 앞에 멈춰 서서 그것을 비틀어 열었다. 거기엔 한때 집요정의 잠자리였던 더럽고 낡은 담요 뭉치로 만든 보금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담요들은 더 이상 크리처가 다시 주원 온 자질구레한 장신구들로 반짝거리지 않았다. 거기에 남아 잇는 거라고는 <타고난 고귀함:마법사들의 계보학>이라는 낡아 빠진 책 한권 뿐이었다. 해리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고, 담요들을 낚아챘다. 그리고 마구 흔들었다. 죽은 쥐 한마리가 툭 떨어지더니 음산하게 바닥 위를 데구루루 굴러갔다. 론은 끙 소리를 내며 부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헤르미온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안 끝났어.”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크리처!”
커다란 펑 소리와 함께, 싸늘하게 식은 텅 빈 벽난로 앞에 집요정이 홀연히 나타났다.해리가 매우 못마땅해하며 시리우스로부터 인계받았던 바로 그놈이었다. 사람의 반 정도 되는 자그만 몸집에 창백한 피부가 겹겹이 축 늘어져 있었으며, 박쥐 같은 양쪽 귀에는 하얀 털이 무성히 솟아나 잇었다. 크리처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때 입고 있엇던 더러운 넝마 조각을 여전히 입고 있었고, 해리를 쏘아보는 그의 경멸에 찬 표정은 소유권의 변화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겉모습만큼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다.
“주인님.”
크리처는 황소개구리같은 목소리로 꺽꺽거리면서 깊숙이 절을 했다. 그리고 자기 무릎에 얼굴을 댄 채 웅얼거렸다.
“저의 여주인님의 오래된 저택에 동족의 배신자 위즐리 집안 녀석과 잡종을 데리고 오셨군요........”
“나는 너에게 누군가를 ‘동족의 배신자’나 ‘잡종’으로 부르는 것을 금한다.”
해리는 으르렁 거렸다. 이 집요정이 시리우스를 볼드모트에게 밀고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해리는 그의 돼지코와 핏 발 선 눈때문에 분명 그를 아주 불쾌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에게 질문이 있다.”
해리가 말했다. 집요정을 내려다자,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내 질문에 진실하게 대답하기를 명령하는 바이다. 알았나?”
“네, 주인님.”
크리처는 다시 깊숙이 절을 하며 답했다. 하지만 해리는 그의 입술이 소리없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엇다. 크리처는 방금 전에 말하는 것이 금지된 욕설들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2년 전에........”
해리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심장은 이제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위층 응접실에 묵직한 목걸이 장식인 황금 로켓이 있었어. 우리는 그걸 버렸지. 네가 그걸 다시 몰래 가져왔니?”
크리처가 해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몸을 일으키기까지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크리처는 답했다.
“예.”
“그건 지금 어디 있지?”
해리가 반색하며 물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도 얼굴이 환해졌다. 크리처는 자신의 다음 말에 대한 세 사람의 반응을 차마 볼 수 없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없어졌어요.”
“없어졌다고?”
해리가 따라 말했다. 순간 본노가 폭발했다.
“무슨 뜻이야? 없어졌다니?”
집요정이 덜덜 떨면서 몸을 세차게 흔들었다.
“크리처”
해리가 사납게 물었다.
“너에게 명령하노니........”
“먼던구스 플레처.”
집요정은 여전히 눈을 질끈 감은 채, 쉰 목소리로 말햇다.
“먼던구스 플레처가 그걸 모조리 훔쳐갔어요. 벨라 양의 사진과 씨시 양의 사진. 제 여주인님의 장갑, 멀린 1등급 훈장.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잔들......그리고.........”
크리처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의 야윈 가슴이 벌렁벌렁 움직이면서 두 눈이 파르르 떨리며 떠졌다. 그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그 로켓. 레귤러스 주인님의 로켓도 가져갔어요. 크리처가 잘못했어요. 크리처가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어요.!”
순간 크리처가 벽난로 쇠살대에 세워져 있는 부지깽이를 향해 돌진했고, 해리는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잽싸게 집요정을 덮쳐서 쓰러뜨린것이다. 헤르미온느의 비명소리와 크리처의 비명소리가 뒤섞였다. 해리는 그들보다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크리처, 얌전히 잇으라고 명령한다!”
집요정이 동작을 딱 멈추는 걸 느끼자. 해리는 그를 놔주었다. 크리처는 차가운 돌바닥에 누운 채, 축 처진 눈으로 펑펑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해리, 크리처가 일어나도록 해줘!”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그래서 부지깽이로 자신을 때리게 하라고?”
해리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집요정 옆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난 그럴 생각이 없어. 좋아, 크리처. 나는 진실을 원해. 네가 어떻게 먼던구스 플레처가 그 로켓을 훔쳐 갔다는 걸 알고 있지?”
“크리처가 그를 봤어요!”
크리처가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눈물이 그의 돼지코를 타고, 희뿌연 이빨이 가득 박힌 입속으로 흘러내렸다.
“그놈이 크리처의 보물들을 양손 가득 들고서 크리처의 벽장에서 나가는 것을 크리처가 봤어요. 크리처는 그 쥐새끼 같은 도둑에게 서라고 말했지만, 먼던구스 플레처는 비웃으며 달......달아났어요.....”
“너는 로켓을 ‘레귤러스 주인님의 것’이라고 했지?”
해리가 말했다.
“왜 그랬지? 그건 어디서 난 거지? 레귤러스랑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잇는 거지? 크리처, 똑바로 앉아. 그리고 네가 로켓에 대해 알고 잇는 모든 걸, 레귤러스와 관련된 모든 걸 내게 말해!”
집요정은 일어나 앉아서, 몸을 공처럼 움크린채, 젖은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파묻었다. 그리고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크리처가 입을 열었다. 희미한 목소리였지만, 소리가 울리는 고요한 부엌에서 제법 또렷하게 들렸다.
“시리우스 주인님이 달아났어요. 거참 시원하게 사라져 준 셈이지요. 왜냐하면 그분은 악동이었고, 막돼먹은 행실로 나의 여주인님의 마음을 산산조각냈으니까요. 하지만 레귤러스 주인님은 훌륭한 자부심을 지니고 계셧지요. 그분은 블랙 가문의 이름과 순수혈통의 품위에 합당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게셨어요. 수년간 그분은 어둠의 마왕에 대해 애기하셨죠. 어둠의 마왕은 머글과 머글 태생들을 통치하기 위해 숨어 있던 마법사들을 불러 모으려고 했어요.... 레귤러스 주인님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어둠의 마왕의 편에 가담했어요. 너무나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웠지요. 그분을 모신다는 게 매우 행복했어요.... 그분이 가담한지 1년이 된 어느 날, 레귤러스 주인님은 크리처를 보러 부엌에 내려오셨어요. 레귤러스 주인님은 항상 크리처를 좋아하셨죠. 그리고 말씀하셨어요.....그분은........”
늙은 집요정은 전보다 더 빨리 몸을 흔들었다.
“......그분은 어둠의 마왕이 집요정을 필요로 한다고 말씀 하셨어요.”
“볼드모트가 집요정을 필요로 했다고?”
해리가 론과 헤르미온느 쪽을 돌아보며 되물엇다. 그들 역시 해리만큼이나 어리둥절한 표정이엇다.
“네, 그래요.”
크리처가 울먹거렸다.
“레귤러스 주인님은 자진해서 크리처를 제공했어요. 그것은 영예라고 레귤러스 주인님은 말씀하셨어요. 그분과 크리처에게 영예라고요. 크리처는 반드시 어둠의 마왕이 명령한 일을 해야 하고........그리고 집으로 돌........돌아오라고 하셨어요.”
크리처는 훨씬 더 빨리 몸을 흔들었고, 그의 숨소리는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크리처는 어둠의 마왕에게 갔어요. 어둠의 마왕은 크리처에게 무슨 일을 할지 얘기해 주지 않았어요. 다만 크리처를 바다 옆의 동굴로 데리고 갔어요. 동굴을 지나자 어두운방이 나왔어요. 그리고 그곳에는 거대하고 검은 호수가 있었어요.........”
해리는 목 뒤에 난 솜털들이 바싹 곤두서는 걸 느꼇다. 크리처의 꺽꺽대는 목소리가 마치 어두운 물을 가로질러 그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처럼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배가 한척 있엇어요.”
물론 거기엔 배가 한 척 있었다. 해리는 그 배를 알고 있었다. 한가운데 잇는 섬까지 마법사 한 명과 희생자 한 명을 태우고 가도록 주문이 걸린, 으스스한 녹색의 작그마한 배를. 볼드모트는 이런 식으로 호크룩스를 둘러싸고 있는 방어 마법을 시험해 보았던 것이다.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생명체. 즉 집요정을 빌려 옴으로써......
“섬에는 마법약으로 가득 찬 대.....대야가 있었어요. 어........어둠의 마왕은 크리처에게 그것을 마시게 했어요........”
집요정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부르르 떨었다.
“크리처가 마셨어요..... 그걸 마시고 크리처는 무시무시한 것들을 보았어요...... 크리처의 뱃속이 화끈거렸어요......크리처는 구해달라고 레귤러스 주인님을 큰 소리로 찾았어요. 블랙 마님을 큰 소리로 불렀어요. 하지만 어둠의 마왕은 그저 웃기만 했어요........그는 크리처가 마법약을 모두 마시게 했어요......그는 로켓을 빈 대야에 떨어뜨렸어요......그는 대야에 마법약을 다시 채웠어요. 그리고 나서 어둠의 마왕은 배를 타고 떠나버렸어요. 크리처를 섬에 남겨놓고요.....”
해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볼드모트의 뱀 같은 새하얀 얼굴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의 새빨간 두 눈은 몸부림치는 집요정을 냉흑하게 지켜보았으리라. 타는 듯한 마법약이 불러일으킨 끔찍한 갈증에 굴복하는 순간, 머잖아 죽음을 맞이하게 될 집요정을. 하지만 해리의 상상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크리처가 어떻게 탈출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리처는 물을 원했어요. 크리처는 섬의 가장자리로 기어가서 검은 호수의 물을 마셨어요......그러자 손이, 죽은 자들의 손이 물에서 튀어나왓고, 크리처를 수면 아래로 끌어내렸어요..........”
“어떻게 도망쳤지?”
해리가 물었다. 어느개 속삭이고 있는 자신을 목소리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크리처는 흉측한 머리를 들어, 핏발 선 커다란 눈으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레귤러스 주인님이 크리처에게 돌아오라고 하셨어요.”
그가 대답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어떻게 인페리우스들로부터 탈출했지?”
크리처는 통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레귤러스 주인님이 크리처에게 돌아오라고 하셨어요.”
그가 되풀이했다.
“나도 안다고 하지만...‘
“뻔한 일이잖아. 해리 그는 순간이동으로 탈출한 거야!”
론이 말했다.
“하지만......순간이동으로 그 동굴을 들락거릴 수는 없어.”
해리가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덤블도어 교수님이........”
“집요정의 마법은 마법사들의 마법과 같지않아. 그렇지 않아?”
론이 말했다.
“우리가 할수 없을 때에도 집요정들은 순간이동으로 호그와트를 들락날락할 수 있잖아.”
해리가 이 사실을 납득하기까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볼드모트가 그런 실수를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가 단지 이런 생각만 하고 있을때, 헤르미온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물론 볼드모트는 집요정들의 능력을 하잘것없다고 여겼겠지. 모든 순수혈통들이 그들을 짐승처럼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요정들이 자신이 갖지 못한 마법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결코 그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을 거야......”
“집......집요정들의 최고법은 주인님의 명령이에요.”
크리처가 읊어댔다.
“크리처는 집에 오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래서 크리처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래, 너는 명령대로 한거야, 그렇지?”
헤르미온느가 다정하게 말했다.
“너는 명령을 절대 거역하지 않았어!”
크리처는 변함없이 거세게 몸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네가 돌아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지?”
해리가 물었다.
“너에게 있었던 일들을 그에게 애기했을 때, 레귤러스는 뭐라고 말했지?”
“레귤러스 주인님은 무척 걱정스러워했어요. 무척이나 걱정했어요.”
크리처가 꺽꺽대며 말했다.
“레귤러스 주인님은 크리처에게 숨어있으라고, 집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셨어요......그리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았어요....... 레귤러스 주인님은 어느 날 밤에 벽장으로 크리처를 찾아오셨어요. 레귤러스 주인님은 평소와 달리 이상해 보였어요. 마음이 어지러운 듯했어요........크리처는 알아볼 수있었어요.......... 그분은 크리처에게 그 동굴에, 크리처가 어둠의 마왕과 함께 갔었던 동굴에 데려가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들은 떠낫다. 해리는 그들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또렷하게 그려 볼 수 있었다. 겁에 질린 늙은 집요정과 시리우스를 무척이나 닮은, 호리호리한 검음 머리의 수색꾼의 모습을........크리처는 지하 동굴로 내려가는 숨겨진 출입문을 어떻게 여는지, 그 조그만 배를 어떻게 떠오르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와 함게 배를 타고 마법약이 담긴 대야가 있는 섬으로 향한 것은 바로 그의 소중한 레귤러스 주인님이었다......
“그래서 그가 네게 그 마법약을 마시게 했니?”
해리가 넌더리를 내며 물었다.
하지만 크리처는 고개를 저으며 흐느꼇다. 헤르미온느는 두손으로 재빨리 입을 가렸다. 순간 뭔가 깨달은 것 같았다.
“레....레귤러스 주인님은 주머니에서 어둠의 마왕이 갖고 있던 것과 비슷한 로켓을 꺼내셨어요.”
크리처가 말했다. 눈물이 그의 돼지코 양편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분은 크리처에게 그것을 받으라고 하셨고, 대야가 비면 로켓을 바꿔치기하라고 명령하셨어요........”
크리처의 흐느낌은 이제 절정에 이르러서, 거의 꺽꺽 소리를 내고 있엇다. 해리는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분은..........명령하셨어요. 떠나라고.....그분을.....내벼려 둔 채로요. 그분은 크리처에게...... 집으로 가라고 명령하셧어요. 그리고 마님에게 자신이 한 일을 절대로 이야기 하지말고......첫 번째 로켓을 파괴하라고........분부하셨어요. 그분은........마법약을 모조리.....마셧고, 크리처는......로켓을 맞바꿔 놓았어요. 그리고 지켜봤어요....레귤러스 주인님이.....물밑으로 끌려......내려가는걸.....”
“오오, 크리처!”
헤르미온느가 울면서 소리쳤다. 그러고는 집요정 옆에 무릎을 끓고 그를 껴안으려 했다. 집요정은 당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진저리를 치며 그녀로부터 물러섰다. 불쾌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잡종이 크리처를 건드리다니! 크리처는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마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어요?”
“그녀를 ‘잡종’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명령했지!”
해리가 버럭 호통을 쳤다. 하지만 집요정은 이미 자신에게 벌을 주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서 자신의 이마를 마룻바닥에 찧고 잇엇던 것이다.
“그만두게 해!....못하게 해!”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너는 그들이 명령에 복종하는 방식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 모르겠니?“
“크리처.....그만! 그만 해!”
해리가 소리쳤다.
집요정은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이며 덜덜 떨고 있었다. 초록색 콧물이 돼지코 언저리에서 번들거렸고, 그가 내리찧었던 창백한 이마는 이미 멍이들고 부어있었다. 한편 퉁퉁 부은 그의 눈은 뻘겋게 충혈되어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해리는 이처럼 비참한 몰골은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너는 그 로켓을 집으로 가져왔단 말이지?”
모든 이야기를 낱낱이 알아내기로 작심한 해리는 가차없이 계속해서 물었다.
“그러면 너는 그걸 파괴하려고 했니?”
“크리처는 그것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어요”
집요정이 울부짖었다.
“크리처는 모든 것을 시도해 봤어요. 알고 있는 방법 모두를요. 하지만 아무것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어요......그 로켓에는 강력한 주문이 너무 많이 걸려 있었어요. 그걸 파괴하려면 우선 그걸 열어야 한다고 크리처는 확신했어요. 하지만 그건 절대로 열리지 않았어요......크리처는 스스로를 벌주었어요. 그리고 다시 시도했고, 또 벌을 주었고, 또다시 시도했어요. 크리처는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어요. 크리처는 로켓을 파괴하지 못햇어요! 마님은 큰 슬픔에 빠져 정신이 나가셨어요. 레귤러스 주인님이 사라지셨기 때문이죠. 하지만 크리처는 마님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씀드릴 수 없었어요. 그건 안되죠! 왜냐하면 레귤러스 주인님이 가....가족 누구에게도 동......동굴에서 무슨일이 있엇는지 말하는 것을 금하셨으니까요......”
크리처가 너무나도 심하게 흐느꼇기 때문에, 더 이상 한마디도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크리처를 지쳐보는 헤르미온느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감히 크리처를 다시 만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크리처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론조차 괴로운 표정이었다. 해리는 자기가 들은 사실들에 놀라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를 썻다.
“난 이해할 수가 없어 크리처.”
마침내 해리가 말했다.
“볼드모트는 너를 죽이려고 했고, 레귤러스는 볼드모트를 파멸시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어.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시리우스를 볼드모트에게 밀고하고서 좋아했잖아. 나시사와 벨라트릭스를 찾아거서, 그들을 통해 볼드모트에게 정보를 넘겨준걸 기뻐했단 말이지.....”
“해리, 크리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손등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크리처는 노예야. 집요정들은 나쁜, 심지어 야만적인 처우에 길들여져 있어. 볼드모트가 크리처에게 한 짓은 일상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크리처 같은 일개 집요정에게 마법사들의 전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는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들에게 충성할 따름이야. 블랙 부인은 친절했을 게 틀림없고, 레귤러스도 분명 그랬겠지.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그들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쫓았던 거야. 그래. 나도 올라.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헤르미온느는 반박하려고 하는 해리의 말문을 막으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결국 레귤러스는 마음을 바꿨다는 거지......하지만 레귤러스는 크리처에게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렇지않니? 나는 왜 그랫는지 이유를 알겠어. 레귤러스의 가족이 유서 깊은 순수혈통을 지킨다면, 크리처나 자기 가족 모두 훨씬 더 안전할 테니까. 레귤러스는 그들 모두를 보호하려고 애썻던거야.”
“시리우스는.....”
“시리우스는 크리처에게 잔인하게 대했지. 해리. 그런 짓은 절대 보기 좋은 일이 아니었어. 너도 그게 사실이란 걸 알잖아. 시리우스가 이곳에서 살기 위해 돌아왔을때. 크리처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혼자 지내왔어. 크리처는 아마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간절히 바랐을 거야. 장담컨대 크리처가 나타났을때, ‘씨시 양’과 ‘벨라 양’은 그에데 더할나위 없이 상냥하게 대해 주었겠지. 그래서 크리처는 그들의 청을 들어주고, 그들이 알고싶어하는 모든 것을 얘기해 준거야. 나는 줄곧 언젠가 마법사들은 집요정들에게 한 짓에 대해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주장해 왔어. 보다시피 볼드모트도 그랬고......시리우스도 마찬가지지.”
해리는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바닥에 누워 흐느끼는 크리처를 바라보며, 해리는 덤블도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시리우스가 숨을 거둔 지 불과 몇시간 뒤였다. 나는 시리우스가 크리처도 인간처럼 예민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리처”
해리가 잠시 후 말했다.
“괜찮다면......부탁인데.....일어나 앉아 주겠니?”
크리처가 딸꾹질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데 몇 분이 걸렸다.
힘겹게 다시 일어나 앉은 그는 어린아이처럼 주먹으로 두눈을 닦았다.
“크리쳐, 나는 너에게 뭘 좀 부탁하려고 해”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헤르미온느 쪽을 쳐다보앗다. 부드렵게 명령을 내리고 싶었디만, 동시에 명령이 아닌 척 꾸밀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도 해리의 말투가 변한 걸 인정하는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격려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크리처. 나느 네가 부디 먼던구스 플레처를 찾으러 가 주었으면 좋겠어. 우리는 그 로켓이 어디에 잇는지.....레귤러스 주인님의 로켓이 어디에 잇는지를 알아야만 해.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우리는 레귤러스 주인님이 시작했던 일을 마무리 짓기를 원해. 우리는 그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크리처는 주먹을 툭 떨어뜨리고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먼던구스 플레처를 찾으라고요?”
그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그를 이리로 데리고 와. 그리몰드 광장으로.”
해리가 말했다.
“우리를 위해 그 일을 해 줄수 있겠니?”
크리처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서자, 해리에게 갑자기 묘안이 떠올랐다. 그는 해그리드가 준 주머니에서 가짜 호크룩스, 즉 레귤러스가 볼드모트에게 쓴 쪽지가 든 가짜 로켓을 꺼냈다.
“크리처, 나는 네가 이걸 가졌으면 좋겠어.”
해리가 로켓을 집요정의 손에 꼭 쥐어 주며 말했다.
“이것은 레귤러스의 것이야. 분명히 그분은 네가 해 준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네가 이걸 간직하길 바라실 거야!”
“너무 지나쳤나봐 친구.”
로켓을 한 번 바라본 집요정이 충격과 비탄의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 바닥에 몸을 던지자, 론이 말했다.
그들이 크리처를 진정시키는 데는 거의 반시간이 걸렸다. 크리처는 자신의 소유물로 블랙 가문의 유품을 선사받았다는 사실에 너무 감복한 나머지, 무릎이 후들거려서 똑바로 일어설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마침내 그가 몇발짝씩 비틀거리며 걸을 수 있게 되자, 모두 그를 벽장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로켓을 자신의 저저분한 담요 속에 안전하게 감춰 넣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한 그가 집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최우선으로 그것을 지켜 주겟노라고 크리처를 안심시켰다. 크리처는 해리와 론을 향해 두번 깊숙이 절을 했다. 그리고 심지어 헤르미온느가 있는 방향 쪽으로도 정중한 인사를 하려는 듯 살짝 경련을 일으킨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취했다. 그러고는 그 커다란 펑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죽음의 성물 1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