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쓰러진 전사
“해그리드?”
해리는 자신을 둘러싼 쇠불이와 가죽의 잔해 더미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순간, 두 손이 흙탕물 속으로 쑥 들어갔다. 그는 볼드모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통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어둠속에서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뭔가 뜨뜻하고 축축한 것이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려 턱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해리는 연못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와 커다란 검은 덩어리처럼 땅바닥에 누워있는 해그리드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해그리드? 해그리드, 말 좀 해 봐요.”
하지만 검은 덩어리는 꼼짝도 하지 않앗다.
“거기 누구요? 포터냐? 해리 포터?”
해리가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때 어떤 여자가 소리쳤다.
“테드, 그들이 추락했어요! 정원으로 떨어졌어요!”
해리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해그리드.”
해리는 얼이 빠져서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무릎이 힘없이 꺽이며 쓰러졌다.
그 다음에 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방석 같은 데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옆구리와 오른쪽 팔이 불에 덴 듯이 화끈거렸다. 빠진 이는 다시 자라났지만 이마의 흉터는 여전히 쿡쿡 쑤시고 아팠다.
“해그리드?”
해리가 눈을 떳다. 그는 등잔불이 밝혀진 낮선 거실의 소파에 누워 있었다. 조금 떨어진 마루 위에는 홀딱 젖고 진흙투성이가 된 그의 배낭이 놓여 있었다. 금발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한 남자가 해리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괜찮다 애야.”
그 남자가 말했다.
“집사람이 지금 해그리드를 돌보는 중이야. 기분이 좀 어떠니? 또 어디 부러진 곳은 없니? 네 갈비뼈와 이와 팔은 내가 치료를 했단다. 그건 그렇고, 나는 테드란다. 테드 통스. 님파도라의 아버지이지.”
해리는 너무 성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순간 눈앞에 별이 보이면서 속이 뒤집히고 어질어질했다.
“볼드모트는.....”
“진정해라.”
테드 통스는 해리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를 다시 방석위에 눕히면서 말했다.
“너는 방금 끔찍한 추락사고를 당했어.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엇던 거냐? 오토바이에 무슨 고장이라도 났었니? 아서 위즐리가 또 너무 과욕을 부렸나? 그와 그의 머글 기계가?”
“아니에요.”
해리가 대답했다. 이마의 흉터가 터진 상처처럼 욱신거렸다.
“죽음을 먹는 자들 한 무리가.....우리를 쫓아와서.....”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고?”
테드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냐?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니? 그들은 네가 오늘 밤 이동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들도 알고 있었어요.”
해리가 말했다.
테드 통스는 마치 천장을 뜷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기라도 한 듯, 고개를 쳐들고 한참 위를 보았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보호 마법이 걸려 있지 않느냐? 그자들은 어느 방향에서든지 100미터 이내로는 접근할 수 없을게다.”
해리는 비로소 왜 볼드모트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에 오토바이가 불사조 기사단의 마법 장벽을 막 통과했던 것이다. 해리는 부디 보호 마법이 계속 효력을 유지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들이 말한 대로 100미터 바깥 상공에서 호시탐탐 이 거대한 투명 거품 같은 보호막을 뜷고 들어갈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볼드모트의 모습이 해리의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해리는 쇼파에서 얼른 내려섰다. 해그리드를 그의 눈으로 직접 봐야만 그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간신히 서 있기도 힘들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면서 해그리드가 힘들게 비집고 들어왔다. 얼굴은 온통 진흙과 피로 뒤덮여 있었고 약간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 있었다.
“해리!”
해그리드는 우아한 탁자 두 개와 난초 화분 하나를 쓰러뜨리면서 단 두걸음에 거실을 건너왔다. 그리고 막 치료한 갈비뼈에 다시 금이 갈 뻔할 정도로 해리를 꽉 끌어 안았다.
“세상에, 해리.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왔니? 난 우리 둘 다 저 세상으로 가는 줄 알았다.”
“네, 저도 그랬어요. 도저히 믿을 수가.....”
해리가 말을 뚝 끊었다. 해그리드의 등 뒤로 한 여자가 방에 막 들어서는 걸 보았던 것이다.
“아니, 너는!”
해리가 고함을 지르며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호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애야, 네 지팡이는 여기 있단다.”
테드가 지팡이로 해리의 팔을 툭툭 치며 말했다.
“바로 네 옆에 떨어져 있어서 내가 주웠지. 그리고 네가 소리 지른 저 사람은 내 아내란다.”
“오, 죄.....죄송해요.”
통스 부인이 거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러자 그녀의 언니인 벨라트릭스와 다른 점이 좀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부인의 머리 색은 좀 더 밝고 부드러운 갈색이엇으며, 부인의 눈이 훨씬 크고 상냥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가 소리를 지른 후로는 웬지 약간 쌀쌀맞아진 것 같았다.
“우리 딸에게 무슨 일이 있어났니?”
부인이 물었다.
“해그리드 말이 기습을 당했다고 하던데, 그럼 님파도라는 어디 있지?”
“저도 모릅니다.”
해리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저희도 모르고 있습니다.”
부인과 테드가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보자, 해리는 두려움과 죄책감이 밀려드는 것을 느꼇다. 만약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죽는다면, 그건 자기 잘못이었다. 전적으로 자기의 잘못이었다. 자기가 그 계획에 동의를 하고 머리카락을 내주었기 때문에.....
“포트키.”
해리는 갑자기 모든 걸 떠올리며 소리쳤다.
“저희는 버로우로 다시 가야만 해요. 가서 알아 볼께요. 그런 다음 두 분께 소식을 보내 드릴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통스가 보낼지도, 일단 그녀가.....”
“도라는 괜찮을 거요. 안드로메다. 도라는 그 방면에 전문가요. 게다가 오러들과 산전수전을 다 겪었잖소.”
테드가 다독거렸다. 그러고는 해리에게 말했다.
“포트키는 이곳에 연결되어 있다. 네가 원한다면 3분 이내에 떠나야만 해.”
“네, 떠나겠습니다.”
해리가 대답했다. 그는 배낭을 집어 들고 어깨에 둘러맸다.
“저는.....”
그는 통스 부인을 이런 불안한 상황에 남겨 두고 떠나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사과의 말을 하고 싶었다. 이 상황에 대해 마음속 깊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말이 그저 공허하고 겉치례인 양 느껴졌던 것이다.
“통스에게, 아니 도라에게 말하겠습니다. 어서 소식을 보내 드리라고..... 만나게 되면..... 저희를 돌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 다 고맙습니다. 저는.....”
해리는 그 방을 떠날 수 있게 되어 기뻣다. 그러므로 얼른 테드 통스의 뒤를 따라서 짧은 복도를 지나 침실로 들어갔다. 해그리드가 문틀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도록 허리를 잔뜩 수그린 채 그들 뒤를 쫒아왔다.
“저기로 가라, 얘야. 저게 포트키란다.”
통스 씨가 화장대 위에 놓인, 뒷면이 은으로 된 작은 머리빗을 가리켯다.
“고맙습니다.‘
해리가 손을 뻗어 머리빗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떠날 태세를 했다.
“잠깐만.”
해그리드가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해리, 해드위그는 어디 있니?”
“헤.....헤드위그는 당했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갑작스럽게 그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해리는 그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부엉이는 그의 소중한 친구였으며, 그가 어쩔 수 없이 더즐리네로 돌아가야 할 때 마다, 마법 세계와 연결된 단 하나의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 주었던 것이다.
해그리드가 솥뚜껑만한 손을 내밀더니 해리의 어깨를 아플정도로 탁탁 두드렸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
해그리드가 목이 메어 꺽꺽거리며 말했다.
“마음 아파 하지 마. 헤드위그는 오랬동안 훌륭한 삻을 살다 갔.....”
“해그리드!”
테드 통스가 다급하게 불렀다. 머리빗이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그리드는 늦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집게손가락 끝을 갖다 댈 수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갈고리와 끈이 앞으로 휙 잡아당기는 것처럼 배꼽 뒤에서 움찔하는 느낌이 들더니, 해리는 텅 빈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포트키에 손가락이 딱 달라붙은 채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며, 해그리드와 함께 통스씨로 부터 순식간에 멀어졌다. 잠시 후에 발이 단단한 땅에 닿는가 싶더니, 해리는 버로우의 앞마당에 손과 무릎을 짚은 채 고꾸라 졌다. 요란한 비명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는 머리빗을 한쪽 옆으로 던져 버리고, 해리는 약간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위즐리 부인과 지니가 뒷문을 열고 계단을 달려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편 역시 바닥에 쓰러졌던 해그리드도 힘들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해리? 네가 진짜 해리니? 무슨 일이니? 다른 사람들은 어디있지?”
위즐리 부인이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안 돌아왔나요?”
해리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순간 새파랗게 변하는 위즐리 부인의 얼굴을 보니 대답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해리가 말을 이었다.
“우린 출발하자마자 그자들에게 둘러싸였어요. 그자들은 오늘 밤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죽음을 먹는 자들 중에서 네명이 우리 뒤를 따라왔는데, 저희는 그저 도망치느라 바빳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볼드모트가 우리를 쫒아왔어요.....”
해리는 자기변명에 급급한 자신의 말투를 느낄 수 있었다.
아들들의 생사를 그가 왜 모르는지 그 이유를 부인에게 납득 시키기에 바빳던 것이다.
“네가 무사하다니 정말 다행이구나.”
위즐리 부인은 이렇게 말하며 해리를 덥석 끌어안았다. 하지만 해리는 자신이 그런 포옹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몰리, 혹시 브랜디 좀 있나요? 네?”
해그리드가 몸을 살짝 떨면서 물었다.
“치료용으로 좀 갖고 있죠?”
위즐리 부인은 마법으로 브랜디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을, 굳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집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슬픈 표정을 감추려고 그런다는 것을 해리는 알고 있었다. 해리는 지니를 향해 돌아섯다. 지니는 말하지 않아도 벌서 해리의 마음을 알아채고 즉시 자세한 소식을 알려 주었다.
“론과 통스가 제일 먼저 돌아왔어야 하는데, 포트키를 놓쳤나봐, 포트키만 그냥 돌아왔어.”
지니가 근처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녹슨 기름통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건 아빠와 프레드의 포트키야.”
지니가 이번에는 낡아 빠진 운동화 한 짝을 가리켰다.
“그들은 두 번째로 도착할 예정이었어. 그리고 해리와 해그리드가 세번째였지.”
지니가 시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일이 제대로 됐다면, 1분 이내에 조지와 루핀이 돌아와야만 해.”
위즐리 부인이 브랜디 병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더니 해그리드에게 건네주었다. 해그리드는 마개를 열고 병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엄마!”
지니가 몇 미터쯤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어둠 속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 빛은 점점 더 커지고 밝아졌다. 이윽고 루핀과 조지가 나타나더니 빙글빙글 돌다가 쿵 쓰러졌다. 해리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즉시 알아차렸다. 루핀이 조지를 부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조지는 의식이 없엇다.
해리는 얼른 달려가 조지의 다리를 붙잡았다. 해리와 루핀은 힘을 모아 조지를 집 안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부엌을 지나서 거실 쇼파에 눕혔다. 등잔 불빛이 조지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순간 지니는 헉 하고 입을 딱 벌렸고, 해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지의 한 쪽 귀가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쪽 머리와 목이 깜짝 놀랄 만큼 새빨간 피로 홍건하게 젖어 있었다.
위즐리 부인이 아들 위로 허리를 숙이자마자, 루핀이 해리의 팔을 와락 잡아채더니 난폭하게 부엌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는 해그리드가 아직도 그 커다란 덩치로 좁은 뒷문을 통과 하느라 절절매고 잇었다.
“어이!”
해그리드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 앨 놓아줘! 해리를 놓아주라고!”
루린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해리 포터가 호그와트의 내 방에 처음 찾아왔을 때, 구석에 어떤 생물이 앉아 있었지?”
루핀은 해리를 흔들며 따져 물었다.
“어서 대답해!”
“수조 안에 든 그..... 그라인딜로우가 아니었던가요?”
루핀이 해리의 팔을 놓더니 쓰러지듯이 부엌 선반에 등을 기댔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해그리드가 언성을 높였다.
“미안하다, 해리, 하지만 확인을 해야만 했어.”
루핀이 냉정하게 말했다.
“우린 배신을 당했다. 볼드모트는 네가 오늘 밤에 이동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자에게 이 사실을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계획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뿐이지. 네가 가짜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 어째서 난 확인하지 않는 거요.”
해그리드가 아직도 문을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말했다.
“당신은 거인 혼혈이잖소.”
루핀이 해그리드를 올려다보면서 대답했다.
“폴리주스 마법약은 오직 인간의 경우에만 사용되도록 만들어진 것이오.”
“불사조 기사단 사람들은 아무도 볼드모트에게 우리가 오늘밤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거예요.”
해리가 부르짖었다. 그런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들 중 누군가 그런 일을 했을 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볼드모트는 겨우 끝에 가서야 저를 쫓아왔어요. 처음에는 누가 저인지도 몰랐던 거죠. 만약 그자가 이 계획을 알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제가 해그리드와 떠났다는 것도 알고 있었겠죠.”
“볼드모트가 널 쫓아왔다고?”
루핀이 날카롭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지? 어떻게 도망쳤니?”
해리는 자기를 쫓아왔던 죽음을 먹는 자들이 어떻게 자기가 진짜 해리인지 알아차린 것 같았는지, 어떻게 추격을 멈추고 볼드모트를 불러왔는지, 그리고 그와 해그리드가 은신처인 통스 부모님 댁에 도착하기 직전에 볼드모트가 나타났던 것까지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자들이 널 알아보았단 말이지? 하지만 어떻게? 네가 어떻게 했기에?”
“저는.....”
해리가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고 애를 썻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온통 공포와 혼란으로 얼룩진 것 같았다.
“스탠 션파이크를 보았어요..... 아시죠? 그 구조 버스의 차장이었던 친구요. 전 그사람에게 그냥 무장해제 마법을 걸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고 있잖아요. 안그런가요? 그는 틀림없이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렸을 거예요!”
루핀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해리, 무장해제 마법 따위를 쓸 시기는 이미 지났어. 그자들은 널 붙잡아 죽이려고 하는 거야! 설사 네가 사람을 죽일 준비까지는 안돼 있다고 해도, 최소한 기절 마법쯤은 썻어야지!”
“그때 우린 수백 미터 상공에 있었다고요! 그리고 스탠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만약 제가 기절 마법을 썼다면 그는 추락했을 테고 그럼 제가 아바다 케다브라 저주를 쓴 것과 마찬가지로 죽고 말았겠죠! 더구나 엑스펠리아르무스 주문은 2년전에 저를 볼드모트로부터 구한 적도 있어요.”
해리는 대들듯이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루핀을 보니 왠지 냉소적인 미소를 짓는 후플푸프의 자카리아스 스미스가 연상되었던 것이다. 그는 해리가 덤블도어의 군대에게 무장해제 마법을 가르치려고 하자, 마구 비웃었었다.
“그래, 해리.”
루핀이 간신히 화를 참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었지! 부디 나를 용서해 다오. 하지만 그렇게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것은 대단히 비정상적인 행동이었어. 그런데 그 첫 번째 상황을 직접 목격했거나 혹은 이야기를 들었을 죽음을 먹는자들 앞에서 오늘 밤 다시 똑같은 행동을 하다니, 그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야!”
“그럼 제가 스탠 션파이크를 꼭 죽였어야만 했다고 생각하세요?”
해리가 화가 나서 따져 물었다.
“물론 그건 아니다.”
루핀이 대답했다.
“하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은,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가 맞대응을 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해리, 엑스펠리아르무스는 아주 유용한 주문이야, 하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은 그게 너의 특징적인 동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단 말이다. 그러니 부디 그러지 말라고 너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구나!”
루핀의 말을 들으니, 해리는 왠지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는 반항심이 남아있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제 앞을 방해한다고 해서 무조건 헤치우지는 않을 거예요.”
해리가 쏘아붙였다.
“그건 볼드모트나 하는 짓이라구요.”
루핀은 뭐라고 대꾸할 말을 잃었다. 그때 마침내 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데 성공한 해그리드가 비틀비틀 의자로 가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의자가 우지끈하고 부서져 버렸다. 해리는 주절주절 욕설과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해그리드는 무시하고, 다시 루핀에게 말을 걸었다.
“조지는 괜찮을까요?”
이 한마디 질문에 해리에 대한 루핀의 짜증스런 마음이 싹 사라진 것 같았다.
“무사할 거야, 하지만 귀는 다시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구나. 저주에 당했을 때에는 회복이 안돼.....”
밖에서 뭔가 인기척이 났다. 루핀은 쏜살같이 뒷문으로 달려갔다. 해리도 해그리드의 다리를 훌쩍 뛰어넘어서 뒷마당으로 뛰쳐나갔다.
두 사람이 마당에 모습을 나타냈다. 가까이 달려간 해리는 그들이 헤르미온느와 킹슬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원래 모습을 되찾은 헤르미온느와 킹슬리는 구부러진 옷걸이를 꼭 붙잡고 있었다. 킹슬리는 어느 누구를 보고도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어깨 너머로 킹슬리가 지팡이를 들어서 루핀의 가슴에 겨누는 것을 보았다.
“알버스 덤블도어 교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엇지?”
“해리는 우리의 가장 큰 희망이다. 그를 믿어라.”
루핀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킹슬리가 이번에는 해리를 향해 지팡이를 돌렸다. 그러자 루핀이 나섰다.
“해리가 맞아, 내가 확인했지.”
“좋아! 그럼 됐어!”
킹슬리가 다시 망토 속에 지팡이를 넣으면서 말했다.
“누군가 우릴 배신했어. 그놈들이 알고 있었다고. 오늘 밤이 라는걸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이야!”
“그런 것 같더군”
루핀이 대답했다.
“하지만 해리가 일곱 명이라는 사실은 그자들도 몰랐던 건 이 분명해”
“그게 무슨 대수라고!”
킹슬리가 투덜거렸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누가 돌아왔나?”
“해리와 해그리드, 조지와 나 뿐이야.”
순간 헤르미온느가 황급히 손으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았다.
“자네들은 무슨 일이 있었나?”
루핀이 킹슬리에게 물었다.
“다섯 명에게 추격을 당했는데, 두 명은 부상을 당하고 아마 한 명은 죽은것 같아.”
킹슬리가 막힘없이 말을 이었다.
“우린 그 사람도 보았어. 그 사람도 함께 추격을 해오다가 도중에 갑자기 사라지더군. 리무스, 그자는 하늘을.....‘
“하늘을 날 수 있어요.”
해리가 말을 받았다.
“저도 그 사람을 보았어요. 해그리드와 절 쫓아왔지요.”
“그래서 그자가 사라졌던 거로군. 널 쫓아가려고!”
킹슬리가 소리쳤다.
“그자가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영문을 몰랐거든. 그런데 왜 도중에 목표물을 바꿨을까?”
“그건 해리가 스탠 션파이크에게 너무 친절하게 굴었기 때문이야.”
루핀이 설명했다.
“스탠이라고요?”
헤르미온느가 되풀이했다.
“하지만 스탠은 아즈카반에 있지 않나요?”
킹슬리가 우울한 미소를 지었다.
“헤르미온느, 마법부에서 쉬쉬하고 있지만, 분명히 집단 탈옥이 있었어. 내가 저주를 쏘았을 때, 트래버스의 두건이 벗겨졌었지. 그자도 역시 감옥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리무스, 자네는 어떻게 된 거지? 조지는 어디 있나?”
“조지는 한쪽 귀를 잃었나네.”
루핀이 대답했다.
“뭐.....뭐를 잃었다고요?”
헤르미온느가 격앙된 소리로 물었다.
“스네이프의 솜씨지.”
루핀이 말했다.
“스네이프요?”
해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요?”
“스네이프는 우리를 추격하다가 두건을 잃어버렸어. 섹튬셈프라는 언제나 스네이프의 특기였지. 내가 그놈에게 멋지게 갚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고작 부상을 입은 조지가 빗자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뿐이었어.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있었거든.”
네 사람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 보았다. 뭔가 움직이는 낌새라곤 전혀 없었다. 하늘을 날아오는 기사단 동료들에 의해 가려지거나 깜박거리는 일도 없이, 별들만이 무심하게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론은 어디 있을까? 프레드와 위즐리씨는? 빌과 플뢰르, 통스 매드아이, 먼던구스는 또 어디로 간 걸까?
“해리, 나 좀 도와줘!”
문가에서 해그리드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그리드가 다시 문틈에 낀 것이다. 뭔가 할 일이 생긴 걸 기뻐하며, 해리는 그를 잡아당겨서 빼내 주었다. 그런 다음 텅 빈 부엌을 지나서 거실로 돌아갔다. 그곳에서는 위즐리 부인과 지니가 아직도 조지를 간호하고 있었다. 위즐리 부인이 지혈을 한 덕분에, 해리는 등잔 불빛 아래로 조지의 귀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뻥 뜷려 있는 것을 보았다.
“좀 어떤가요?”
위즐리 부인이 돌아보며 말했다.
“나로서는 귀를 다시 자라게 할 수가 없구나. 어둠의 마법으로 이렇게 된 경우는 어쩔 수가 없어.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는걸.. 어쨌든 이렇게 살아 있잖니.”
“그건 그래요, 하느님께 감사해야죠.”
해리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누군가 마당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니가 물었다.
“헤르미온느와 킹슬리야.”
해리가 대답했다.
“오, 감사합니다.”
지니가 속삭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해리는 지니를 와락 끌어당겨 품에 안고 싶은 충동을 느꼇다. 심지어 위즐리 부인이 옆에 있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충동을 미쳐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부엌에서 우당탕하고 커다란 소리가 났다.
“킹슬리, 먼저 내 아들부터 본 다음에 내가 누군지 입증을 해도 할 걸세! 그러니 자네 몸이 성하려면 당장 물러서!”
해리는 위즐리 씨가 그렇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지금껏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는 황급히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환하게 벗겨진 이마는 땀에 젖어 번들거리고 안경은 비스듬히 코에 걸려 있었다. 바로 뒤에 프레드가 따라왔다. 두 사람 모두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상처는 없었다.
“아서!”
위즐리 부인이 울먹거렸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조지는 어때?”
위즐리 씨는 조지 옆에 털썩 무릎을 끓고 앉았다. 한편 프레드는 완전히 말문이 막힌것 같았다. 해리가 그를 알아 온 이후로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는 자기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소파 뒤에서 입을 딱 벌린 채, 쌍둥이 형제의 상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프레드와 아버지가 도착하는 소리에, 조지가 정신이 돌아온듯이 약간 몸을 움직였다.
“기분이 좀 어떠니, 조지?”
위즐리 부인이 조용히 물었다.
조지는 손가락으로 머리 옆을 더듬었다.
“성자가 된 기분이군.”
조지가 웅얼거렸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죠? 정신이 나간 건가요?”
프레드가 더럭 겁이 난듯이 잔뜩 목멘 소리로 물었다.
“성자가 된것 같다고.”
조지가 눈을 번쩍 뜨더니 쌍둥이 형제를 바라보며 되풀이 했다.
“프레드, 모르겠어? 난 홀리, 홀리하잖아(조지는 ‘구멍 뜷린’이란 뜻의 ‘holey'와 ’성스럽다‘는 뜻의 ’holy'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고 있다.:역주).”
위즐리 부인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서럽게 흐느꼇다. 새파랗게 질렸던 프레드의 얼굴도 순식간에 빨게졌다.
“거참 딱하기도 하지! 딱하기도 해! 그 많고 많은 귀에 대한 농담중에 고작 홀리라고?”
프레드가 쏘아 붙였다.
“어쨋든 이젠 우리 둘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겟네요, 엄마.”
조지가 눈물에 흠뻑 적은 어머니를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녕, 해리. 너 해리 맞지, 그렇지?”
“응, 나야.”
해리가 소파로 바싹 다가가며 말했다.
“그래, 어쨌든 우린 널 무사히 데려왔구나.”
조지가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 론과 빌은 내 병상 옆에 없는거지?”
“두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다, 조지.”
위즐리 부인이 알려주자, 조지의 미소가 싹 사라졌다. 해리는 지니를 슬쩍 바라보면서,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손짓했다. 두 사람이 부엌을 지나갈 때, 지니가 소곤소곤 속삭였다.
“론과 통스는 지금쯤 돌아왔어야 해. 오래 걸리지 않는 데로 갔거든. 뮤리엘 할머니 댁은 여기서 별로 멀지 않아.”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버로우에 도착한 이후로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리려고 애를 썻지만, 이제는 불안이 그를 엄습하여 살갗위로 스멀스멀 기어올라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숨통을 마구 조이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어두운 뒷 마당으로 나가는 계단을 내려갈 때, 지니가 슬며시 그의 손을 잡았다.
마당에서는 킹슬리가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고 있었다. 해리는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옛날에 이모부가 거실을 서성거리던 생각이 났다. 해그리드와 헤르미온느, 루핀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말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와 지니가 이 고요한 불침번 대열에 끼어들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몇 분이 몇 년처럼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희미한 바람소리에도 모두 화들짝 놀라며 혹시나 사라진 기사단 사람들 중 하나가 저 속에서 멀쩡한 몸으로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안고 부스럭거리는 덤불이나 나무 쪽으로 얼른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그들의 머리 위에 빗자루 하나가 나타나더니 지상을 향해 빠르게 내려오기 시작했다.
“저기 온다!”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통스가 빗자루를 땅에 길게 끌면서 착륙했다. 그 바람에 사방으로 흙과 자갈이 튀었다.
“리무스!”
통스는 이렇게 외치더니 비틀비틀 빗자루에서 내려와 루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목이 메어 말문이 막힌것 같았다. 한편 론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향해 쓰러지다시피 다가왔다.
“너희는 무사하구나.”
론이 가까스로 중얼거리자마자, 헤르미온느가 와락 그에게 달려들더니 꼭 끌어안았다.
“난 네가..... 난 네가.....”
“난 괜찮아.”
론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달랬다.
“괜찮다니까.”
“론이 정말 훌륭했어.”
통스가 루핀을 안고 있던 손을 놓으며 열렬히 칭찬을 했다.
“아주 굉장했지. 죽음을 먹는 자 한 놈의 머리에 정통으로 기절 마법을 쏘아 맞혔어. 날아가는 빗자루 위에서 움직이는 목표물을 겨냥한다는 건.....”
“네가 그랬어?”
헤르미온느가 여전히 그의 목에 팔을 두른 채, 론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항상 그렇게 놀랐단 식으로 말하는군.”
론이 그녀의 팔을 풀면서 약간 툴툴거렸다.
“우리가 마지막인가?”
“아니.”
지니가 말했다.
“아직도 빌과 플뢰르 그리고 매드아이와 먼던구스를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엄마 아빠에게 론이 무사하다고 알려드릴게.”
지니가 다시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왜 이렇게 늦었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루핀이 거의 화난 목소리로 통스에게 물었다.
“벨라트릭스였어요. 거의 해리를 잡듯이 날 잡으려고 하더라고요. 리무스, 그 여자는 날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어요. 내가 그 여자를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벨라트릭스에게 꼭 이 빚을 갚아야지.”
통스가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로돌푸스에게 상처를 입힌 건 확실해요.....
그런 다음 뮤리엘 할머님 댁에 도착했는데, 할머님이 너무 야단법석을 떠시는 바람에 그만 포트키를 놓쳣지 뭐예요. 그래서.....“
루핀이 기가 막힌 듯 입을 딱 벌리더니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 다들 무슨 일이 있었죠?”
통스가 해리와 헤르미온느, 킹슬리를 향해 돌아서며 물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빌과 플뢰르 그리고 매드아이와 먼던구스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싸늘한 서리처럼 그들의 마음에 내려앉아 점점 더 날카롭게 파고들어,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만 다우닝가로 돌아가 봐야 겠어요. 벌써 한 시간 전에 돌아갔어야 하는 건데.”
마침내 킹슬리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한번 살펴보더니 체념한 듯 말했다.
“사람들이 돌아오면 저에게도 연락 주세요.”
루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킹슬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대문을 향하여 어둠속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버로우의 경계선을 넘자마자, 킹슬리가 뿅 하고 순간이동을 하는 소리가 해리의 귀에 희미하게 들리는것 같았다.
그때 위즐리 씨와 위즐리 부인이 뒷문 계단을 황급히 달려 내려왔다. 지니는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론을 먼저 와락 껴안고 난 후에, 비로소 루핀과 통스를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우리 아들들을 돌봐 줘서.”
위즐리 부인이 인사를 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몰리.”
통스가 즉시 대답했다.
“조지는 좀 어떤가요?”
루핀이 물었다.
“조지가 어떻게 됐나요?”
론이 소리 높여 물었다.
“조지가 귀를.....”
하지만 위즐리 부인의 두시말은 동시에 터져 나온 함성 소리에 그만 묻혀 버렸다. 세스트랄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그들로 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착륙했던 것이다. 빌과 플뢰르가 세스트랄의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바람에 마구 헝클어진 모습이었지만 다친 데는 없었다.
“빌!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위즐리 부인이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빌은 힘없이 어머니를 껴안았다. 그는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매드아이가 죽었어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 그 자리에 완전히 얼어붙었다. 해리는 마음속에서 뭔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무너져 내린 그것은 땅속으로 꺼지더니 영원히 그를 떠나 버렸다.
“저희가 보았어요.”
빌이 말하자, 플뢰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엌 창문을 통해 흘러나온 불빛을 받아 그녀의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반짝거렸다.
“우리가 포위를 뜷고 나가는 순간, 바로 그 일이 벌어졌어요. 매드아이와 먼던구스는 우리 뒤를 바싹 쫓아오고 있었죠. 다 함께 북쪽을 향해서요. 그런데 볼드모트 그자가 곧장 그들을 공격했어요. 그자는 하늘을 날 수 있었어요. 먼던구스는 공포에 질려 제정신이 아니엇지요. 그자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렸어요. 매드아이가 그를 막으려고 했지만, 먼던구스는 그냥 사라져 버렸어요. 그때 볼드모트의 저주가 매드아이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거예요. 그는 그대로 빗자루에서 떨어져 버렸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여섯 명이나 되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저희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당연히 너희는 어쩔 수 없었어.”
루핀이 다독거렸다.
그들 모두는 서로를 바라보며 망연자실 서 있었다. 해리는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매드아이가 죽다니. 그럴 수는 없어..... 그렇게 강인하고 용감하고 능력있는 매드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더 이상 마당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서서히 떠오른 것 같았다. 그들은 말없이 위즐리 씨와 위즐리 부인의 뒤를 따라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프레드와 조지가 킬킬거리고 웃고 있는 거실로 들어갔다.
“뭐가 잘못됬나요?”
프레드가 방 안으로 들어서는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누가.....?”
“매드아이가 죽었다는 구나.”
위즐리 씨가 대답했다. 쌍둥이 형제의 얼굴은 미소가 싹 사라지면서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통스는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매드아이와 가까운 사이였다는 걸 해리도 알고 있었다. 마법부 내에서도 가장 매드아이의 총애를 받는 부하 직원이었던 것이다. 한편 해그리드는 거실 안쪽 구석을 거의 다 차지하고 앉아서 식탁보만한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빌은 찬장으로 걸어가더니 파이어위스키 한 병과 유리잔을 꺼냈다.
“자, 여기.”
빌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위스키가 가득 담긴 열두개의 유리잔이 방 안을 가로질러 사람들 앞으로 각기 날아갔다. 그는 남아 있는 열세 번째 잔을 높이 들며 외쳤다.
“매드 아이를 위하여.”
“매드 아이를 위하여.”
다 함께 외치며 술잔을 비웠다.
“매드 아이를 위하여.”
해그리드가 약간 뒤늦게 따라 하더니 딸꾹질을 했다.
파이어위스키가 목을 넘어가자, 해리는 목구멍이 타는 듯했다. 술기운이 다시 감정을 뜨겁게 불러일으키는 것 같앗다. 무감각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은 사라지고 용기 비슷한 뭔가가 마음속에서 타올랐다.
“그럼 먼던구스는 사라졌단 말인가?”
단숨에 술잔을 비운 루핀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모두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루핀을 지켜보았다. 해리가 보기에, 다들 그가 하려는 말은 계속 듣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약간 겁먹는 표정들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저도 알아요.”
빌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도 이곳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을 했어요. 죽음을 먹는 자들은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엇던것 같거든요. 안 그런가요? 하지만 먼던구스가 우리를 배신했을 리는 없어요. 그자들은 해리가 일곱명이란 사실을 몰랐어요. 그래서 우리가 나타나는 순간 몹시 당황하더군요. 혹시 잊으셧을까 봐 드리는 말씀인데, 그런 얍삽한 속임수를 제안한 자가 바로 먼던구스 였어요. 그렇다면 어째서 그가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겠어요? 전 먼던구스가 그냥 겁에 질렸다고 생각해요. 그자는 앞장서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매드아이가 억지로 시켰죠. 결국 그 사람이 곧장 그들에게 덤벼들었고요. 그러니 어느 누군들 정신이 나가지 않겠어요.”
“그 사람은 과연 매드아이가 예상했던 그대로 행동했어요.”
통스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매드아이는 그 사람이 진짜 해리가 제일 강하고 실력이 좋은 오러와 함께 갈 걸로 생각할 거라고 말했었죠. 그 사람은 매드아이를 제일 먼저 쫓아갔어요. 그런데 먼던구스가 도망을 쳐 버리자 킹슬리에게로 방향을 돌렸던 거고요.”
“네, 전부 다 맞능 말이네용. 하지만 오능 밤 우리가 아리를 이동시킨다는 걸 저들이 어떻게 알았능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아용, 안 그런가용?”
플뢰르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누궁가 실수를 한게 틀림없어용. 누궁가 외부인에게 날짜를 흘린 거라고용. 그래야만 그자들이 날짜능 알았지만 정확한 계획응 몰랐다는게 설명될수 있다고용.”
플뢰르는 모든 사람들은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누구든 자신의 말에 맞설 테면 어디 한번 맞서 보란 표정이었다. 모두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오직 해그리드 만이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채, 이 침묵을 깨고 딸꾹질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해리는 해그리드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걸었던 해그리드.....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믿는 해그리드..... 한때 속임수에 빠져서 용의 알을 받고 결정적인 정보를 볼드모트에게 제공했던 해그리드....
“아니야.”
해리가 큰 소리로 불쑥 외쳤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파이어위스키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너무 커진 모양이었다.
“제 말은..... 만약 누군가 실수를 했다면.....”
해리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정보를 흘렸다면, 그렇다 해도 절대 고의는 아니었을 거란 거예요. 그러니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란 말이죠.”
해리는 또다시 평상시 보다 약간 더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서로를 믿어야만 해요. 그리고 저는 여러분 모두를 믿어요. 이 방에 있는 누군가가 저를 볼드모트에게 팔아넘기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의 말이 끝나자, 더욱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려 있엇다. 해리는 또다시 약간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꼇다. 그리고 아무 행동이라도 하기 위해 파이어위스키를 몇 모금 더 들이켰다. 그러면서 매드아이를 생각했다. 매드아이는 항상 사람들을 기꺼이 믿어주는 덤블도어를 비난해 왔던 것이다.
“말 한번 잘했다. 해리.”
갑자기 프레드가 입을 열었다.
“그래. 자알했어. 자알했어.”
조지가 프레드를 곁눈질하더니 입술 한쪽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한편 루핀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해리를 바라보았다. 거의 딱해서 못 봐 주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세요?”
해리가 물었다.
“아니, 네가 제임스를 쑥 빼닮았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루핀이 대답했다.
“제임스라면 친구들을 의심하는 걸 가장 치욕스런 불명예라고 여겼을 테니까 말이다.”
해리는 루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친구인 피터 페티그루에게 배신을 당했던 것이다. 해리는 갑자기 격렬한 분노를 느꼇다. 마구 따지며 덤벼들고 싶었다. 하지만 루핀은 휙 돌아서더니, 술잔을 작은 탁자 위에 내려 놓고 빌에게 말을 걸었다.
“할 일이 있네, 킹슬리에게 부탁할 수도 있지만.....”
“아니요, 제가 할게요. 제가 가겠습니다.”
빌이 당장 대답했다
“어딜 가는데?”
통스와 플뢰르가 동시에 물었다.
“매드아이의 시신이 잇는 곳으로, 시신을 되찾아야 해.”
루핀이 대답했다.
“하지만.....”
위즐리 부인이 애절한 표정으로 빌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자고요?”
빌이 반문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가져가질 원하시진 않겠죠?”
아무도 입을 떼지 못했다. 루핀과 빌은 작별 인사를 하고 즉시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각자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직 해리만 그대로 서 있었다. 갑작스럽고 온전한 죽음이 유령처럼 그들 주위를 떠돌고 있었다.
“저도 가겠어요.”
해리가 중얼거렸다.
휘둥그레진 열 쌍의 눈동자가 동시에 그를 향했다.
“바보 같은 소리마라 해리. 도대체 모슨 소릴 하는 거냐?”
위즐리 부인이 가볍게 나무랐다.
해리는 이마를 문질렀다. 이마의 흉터가 다시 쿡쿡 쑤시고 있었다. 거의 1년이 넘도록 이렇게 심한 통증은 느껴 본적이 없었다.
“제가 여기 있으면 모두 위험해요. 전 그렇게 되는 걸 원지 않.....”
“어리석게 좀 굴지 마라!”
위즐리 부인이 야단을 쳤다.
“오늘 밤 모든 목적은 너를 이곳까지 안전하게 데려오는 것이었어. 그리고 그 목적이 성사되어 감사할 따름이란다. 게다가 플뢰르도 프랑스가 아닌 이곳에서 결혼하는 데 동의했어. 우리는 다 함께 이 곳에 머물면서 너를 돌봐 줄 수 있도록 모든 일정을 조정해 놓았단다.”
위즐리 부인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부인의 말은 그를 위로해 주긴 커녕 더욱더 우울하게 했다.
“만약 볼드모트가 제가 여기 있는 걸 알게 되면.....”
“하지만 어떻게 알겠니?”
위즐리 부인이 물었다.
“네가 있을 거라고 짐작될 만한 장소가 열두 곳이나 된단다. 해리. 그자는 네가 어느 은신처에 있는지 절대로 모를 거야.”
위즐리 씨가 말했다.
“제가 걱정하는 건 저 자신이 아니에요!”
해리가 소리쳤다.
“우리도 안다.”
위즐리 씨가 조용히 타일렀다.
“하지만 네가 이대로 떠나 버리면 오늘 밤 우리가 거울인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어 버리는 거야.”
“넌 아무 데도 못가.”
해그리드도 으름장을 놓았다.
“제기랄 해리. 우리가 그 고생을 하며 널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어딜 간다고?”
“맞아, 피가 철철 흐르는 내 귀는 어쩌고?”
조지가 방석 위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도 그건 알지만.....”
“매드아이도 원치 않을거야.....”
“나도 안다고요!”
해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는 마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해리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이 자기 때문에 더 이상 고통을 당하기 전에 이제라도 떠나려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길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에도 이마의 흉터는 계속해서 날카롭게 쿡쿡 쑤시고 욱신거렸다. 마침내 위즐리 부인이 침묵을 깻다.
“그런데 헤드위그는 어디 잇니, 해리?”
부인이 달래듯이 말했다.
“피그위존과 함께 새장에 넣고 먹을 것을 좀 줄 수 도 있는데.”
해리의 가슴속에 불끈 응어리가 졌다.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대답을 피하기 위해 그는 남아있는 파이어위스키를 단숨에 들어켰다.
“해리, 넌 그자가 바로 네 위에 있었는데도 그자를 무찌르고 도망쳤잖아. 어떻게 네가 그걸 또다시 해냈는지 알 수 있을때까지는 기다려 봐.”
해그리드가 화제를 돌렸다.
“그건 제가 아니었어요.”
해리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제 지팡이 였어요. 제 지팡이가 저절로 움직인 거예요.”
잠시 후에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해리. 네말은 미처 의도하기도 전에 마법을 썻다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반응을 한거야.”
“아니야.”
해리가 부정했다.
“오토바이가 추락하고 있었다. 볼드모트는 어디 있는 지도 몰랐고. 그런데 내 지팡이가 손안에서 빙그르르 돌더니 그를 찾아내 주문을 쏘았어. 심지어 그건 나도 모르는 주문있었어. 지금까지 한 번도 황금 불꽃을 만든 적이 없었거든.”
“가끔씩 그런 일이 있지.”
위즐리 씨가 끼어들었다.
“아주 긴박한 상황에 처하면, 자신이 꿈도 꾸지 못했던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는 거야. 종종, 어린아이들이 그런 경우가 맣은데, 훈련도 받기 전애.....”
“그런 게 아니었어요.”
해리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의 흉터가 확확 불타오르고 있었다. 해리는 짜증이 나고 분노가 치밀었다. 모두 자신이 볼드모트와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는 생각만 하면 미칠 것 같았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그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는 다는 걸 알았다. 그 역시 지금껏 지팡이가 저절로 마법을 부린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흉터에서는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큰 소리로 신음 소리를 내지 않고 참는 것뿐이었다. 해리는 잠깐 시원한 바람을 쐐야겠다고 중얼거리고는 술잔을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그가 어두운 마당을 지나가자, 해골 같은 거대한 세스트랄이 고개를 번쩍 들고 박쥐 날개 같이 생긴 커다란 날개를 퍼덕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풀을 뜯어먹었다. 해리는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멈춰 서서 무성하게 웃자란 풀들을 멍하니 노려보았다. 그리고 격렬하게 쑤시는 이마를 문지르면서 덤블도어를 생각했다.
덤블도어라면 그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 해리의 지팡이가 저절로 움직였는지 알았을 것이다. 덤블도어는 항상 대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이미 두 지팡이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해리의 지팡이와 볼드모트의 지팡이 사이의 이상한 관계에 대해 해리에게 설명해 주었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매드아이나 시리우스처럼, 부모님처럼, 그리고 그의 가엷은 부엉이처럼, 해리가 두 번 다시 말을 걸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리고 말았다. 해리는 뭔가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꼇다. 파이어위스키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
바로 그때 느닷없이 이마에 느껴지던 통증이 극에 달했다. 해리는 이마를 부여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에서 버럭버럭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의 지팡이를 사용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네놈이 말하지 않았더냐!”
뒤이어 그의 머릿속에 바싹 여윈 노인이 누더기를 입고 돌바닥 위에서 뒹굴고 있는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노인은 마구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길게 이어지는 그 끔찍한 비명소리는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잇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살려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감히 볼드모트 경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올리벤더!”
“그렇지 않습니다. 맹세코 그렇지 않습니다.....”
“넌 포터를 도와준거야. 그놈이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어!”
“맹세코 그건 아닙니다...... 전 다른 지팡이를 사용하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럼 설명해 보아라. 도대체 모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째서 루시우스의 지팡이가 파괴되었단 말이냐!”
“저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연결은..... 오직 그 두 지팡이 사이에만 있는 것인데.....”
“거짓말!”
“제발..... 부탁입니다......”
해리는 새하얀 손이 지팡이를 치켜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볼드모트의 사악한 분노가 확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힘없는 노인이 돌바닥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다.
“해리!”
그 광경은 떠오를 때 처럼 사라질 때도 순식간이었다. 해리는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꼭 붙잡은 채, 어둠 속에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엇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고 흉터가 아직도 화끈거렸다. 한참 후에야 해리는 비로소 헤르미온느와 론이 자기 옆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해리,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아직도 떠날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그래, 넌 여기 있어야 해. 친구.”
론이 해리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런데 너 괜찮니?”
해리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아주 안 좋아 보여!”
“글쎄.....”
해리가 부르르 몸을 떨며 말했다.
“올리밴더 보다야 낫겠지.”
해리가 방금 눈앞에 떠오른 광경을 그들에게 모두 이야기해주자, 론은 오싹 소름이 끼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혀 버렸다.
“하지만 그런 일은 막았어야 하잖아! 네 흉터는 더 이상 그런 일을 하면 안 되는 거라고! 또다시 그자와의 연결통로를 열어서는 안돼. 덤블도어 교수님도 네가 생각의 문을 닫기를 원하셨어!”
해리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헤르미온느가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해리, 그 자는 이미 마법부와 신문, 그리고 마법사 세계의 절반을 자기 손에 넣었어! 네 머릿속까지 차지하게 내버려 두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