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일곱 명의 포터
해리는 자기 방이 있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창가에 도착하자마자, 더즐리 가족의 자동차가 진입로를 막 벗어나서 도로로 올라서는 모습이 보였다. 뒷자석에 앉은 페투니아 이모와 두들리 사이로 데달루스의 중산모가 보였다. 자동차가 프리벳가의 끝에서 우회전을 했다. 잠깐 동안 석양을 받아 자동차 유리창이 빨갛게 타오르는 듯하더니 자동차는 곧 사라졌다.
해리는 헤드위그가 든 새장과 파이어볼트, 배낭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말끔하게 정돈된 침실을 마지막으로 한 번 쭉 돌아보고는, 낑낑거리며 현관 복도까지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그는 계단 발치에 새장과 빗자루,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제 빠르게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저녁 노을 속에 현관 복도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이 집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서 적막한 집에 혼자 서 있으려니,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이상했다. 오래전, 더즐리 가족이 자기들끼리만 즐기기 위해 외출을 나가고 혼자 집에 남게 되면, 그 고독한 시간이 그에게는 너무나 귀하고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잠깐씩 냉장고에서 뭔가 맛있는 걸 살짝 꺼내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는 줄곧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서 두들리의 컴퓨터를 가지고 놀거나, 혹은 텔레비젼을 켜고 마음 내키는 대로 채널을 돌리곤 했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니 이상하게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잃어버린 남동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심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한번 돌아보지 않을래?”
해리가 헤드위그에게 물었다. 헤드위그는 아직도 샐쭉해서 날개 밑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우린 여기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그 모든 즐거웠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니? 그러니까 내 말은, 이 현관 매트를 좀 봐. 어떤 기억이 있었나..... 내가 두들리를 디멘터한테서 구한 뒤에 그 녀석은 여기다 토했었지..... 알고 보니 그 녀석도 그 일을 고마워하고 있었어. 넌 그게 믿어지니?..... 지난 여름에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이 현관문을 통해서 걸어 들어왔었는데.....
해리는 잠깐 동안 상념에 젖어 들었다. 하지만 헤드위그는 그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도와줄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계속 날개 밑에 머리를 파묻고 앉아 있었다. 해리는 현관문을 등지고 돌아섰다.
“그리고 여기 아래 좀 봐. 헤드위그”
해리는 계단 밑에 나 있는 벽장문을 당겨서 열었다.
“옛날에는 내가 여기서 잠을 잤는데! 그때 너는 나를 전혀 몰랐지. 아이고, 참 좁기도 하군. 까맣게 잊고 있엇는데.....”
해리는 높이 쌓여 있는 신발과 우산 더미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 계단 밑바닥을 올려다보곤 했던 일을 떠올렸다. 대개는 거미 한두 마리가 밑바닥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때는 자신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왜 그렇게 이상한 일들이 자기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런 시절에도 계속 그를 괴롭히던 꿈들을 여전히 기억할 수 있었다. 눈부신 초록 불빛이 등장하는 혼란스런 꿈이었다. 한번은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가 나왔는데, 해리가 그 꿈 이야기를 하자 버논 이모부는 거의 차를 들이박을 뻔했었다.
그때 갑자기 근처 어디선가 귀를 멍하게 할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키다가 낮은 문틀에 머리를 쾅 부딪혔다. 그는 버논 이모부가 쓰는 가장 험악한 욕설 몇 마디를 내뱉은 후에 머리를 감싸 쥔채, 부엌으로 비틀거리며 돌아갔다. 그리고 창 너머로 뒷마당을 열심히 내다보았다.
어둠이 넘실거리고 공기조차 파르르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투명 마법이 사라지면서 한 사람씩 차레차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뛰는 것은 해그리드였다. 헬멧과 보안경까지 쓴 그는 검은색 사이드카가 옆에 달린 거대한 오토바이 위에 턱하니 올라타고 있었다. 한편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빗자루에서 내렸고, 그중 두명은 검은 날개가 달린, 해골 같은 말에서 내렸다.
해리는 뒷문을 활짝 열고 그들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반가운 함성 속에서 헤르미온느가 두팔로 그를 끌어 안았다. 론은 그의 등을 탁탁 쳤다. 해그리드는 옆에서 계속 말을 걸었다.
“어이, 해리. 잘 지냈지? 떠날 준비는 됐나?”
“물론이죠.”
해리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어요.”
“계획이 변경되었단다.”
매드아이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랗고 불룩한 자루가 두 개나 들려있었다. 그의 마법의 눈은 어둠에 물든 하늘과 집과 정원을 교대로 살피느라 정신없이 팽팽돌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집으로 들어가자.”
해리는 사람들을 모두 부엌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왁자지껄 웃고 떠들면서 각자 의자나 페투니아 이모가 번쩍번쩍하게 닦아 놓은 조리대 위에 앉거나, 얼룩 한 점 없는 가전제품에 몸을 기대고 섰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론, 부스스한 머리를 길게 땋아서 하나로 묶은 헤르미온느, 똑같이 씩 웃고 있는 프레드와 조지, 심한 흉터가 얼굴에 남은 긴 머리의 빌, 약한 휘어진 안경을 쓰고 머리가 벗겨진 선량한 얼굴의 위즐리 씨, 숱한 전투를 치르고 외다리에 눈구멍에서는 빛나는 푸른 마법의 눈이 빙빙 돌고 있는 매드아이, 짧은 머리를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선명한 분홍색으로 물들인 통스, 머리가 더 희끗희끗해지고 주름이 더 많아진 루핀, 날씬하고 아름다운, 은빛나는 긴 금발의 플뢰르, 대머리에 얼굴이 검고 어깨가 떡 벌어진 킹슬리, 머리가 천장에 부딪히는 것을 피하려고 허리를 잔뜩 수그린, 수염과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해그리드, 그리고 풀 죽은 바셋 하운드 사냥개 같은 눈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지닌, 왜소하고 지저분하고 비굴한 먼던구스 플레처. 이들의 모습을 보자 해리는 가슴이 뜨거워지고 터질 듯이 부풀었다. 이들 모두에게 무한한 애정이 솟구치는 걸 느꼇다. 심지어 지난번에 만났을 때에는 목을 졸라 버리려고 했엇던 먼던구스에 대해서 까지.
“킹슬리, 당신은 머글 수상을 지키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해리가 물었다.
“하룻밤쯤은 나 없이도 잘 지낼거야. 그보다는 네가 훨씬 더 중요하지.”
킹슬리가 대답했다.
“해리. 무슨 일이 있었게?”
세탁기 위에 떡하니 올라앉은 통스가 물었다. 그러면서 그의 눈앞에 왼쪽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손에서는 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결혼했어요?”
해리가 통스와 루핀을 번갈아 쳐다보며 소리쳤다.
“해리. 부르지 못해 미안해. 아주 조용한 결혼식이었어.”
“와, 멋지네요. 정말 축하.....”
“자, 자, 안부는 나중에 한가한 시간에 묻도록 하지.”
왁자지껄한 가운데 무디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순식간에 부엌 안이 조용해졌다. 무디가 배낭을 발밑에 내려 놓더니 해리를 향해 돌아섯다.
“아마 데달루스가 말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계획A를 포기해야만 했다. 파이어스 씨크니스가 저편으로 넘어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 처지가 아주 곤란해졌거든. 그자가 이 집을 플루가루 네트워크에 연결하거나, 여기에 포트키를 설치하거나, 순간이동으로 드나드는 행위 모두를 감옥에 갈 만한 중죄로 만들어 버렸어. 그게 전부 널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취해진 조치란다. 그 사람이 너를 잡으러 들어오는 걸 막는답시고 말이지. 하지만 네 어머니의 마법이 벌써 이 집을 보호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완전히 쓸데없는 짓이거든. 그가 실제로 한 것은 네가 이 집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걸 막은 것이지.
두 번째 문제는 네가 아직 미성년자라는 거야. 그 뜻은 네가 아직도 ‘추적 마법’에 걸려 있다는 거지.“
“하지만 전.....”
“추적, 추적 마법 말이다!”
매드아이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17세 이하 미성년자들의 마법 행위를 추적하는 마법이야. 그걸 통해서 마법부에서 미성년 마법 행위를 알아낸단 말이다! 만약 너나, 혹은 네 주위의 누군가가 마법을 써서 너를 이집 밖으로 내보내게 되면, 씨크니스는 당장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따라서 죽음을 먹는 자들도 알게 되지.
하지만 우린 추적 마법이 깨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네가 열일곱 살이 되는 그 순간, 네 어머니가 너에게 부여한 모든 보호의 힘도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파이어스 씨크니스는 너를 아주 제대로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할 게다.“
해리 역시 씨크니스라고 하는 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그래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이동 수단을 이용할 거야. 추적 마법이 알아챌 수 없는 유일한 수단 말이지. 왜냐하면 그걸 사용하는 데에는 굳이 마법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 바로 빗자루와 세스트랄, 그리고 해그리드의 오토바이란다.
해리는 단박에 이 계획이 허점투성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매드아이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기 위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네 어머니의 마법은 오직 두 가지 조건하에서 풀리게 되어있다. 하나는 네가 성년이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디가 청결한 부엌 안을 손짓으로 휙 가리켰다.
“네가 더 이상 이곳을 집이라고 부르지 않을 때이다. 오늘밤 너와 네 이모와 네 이모부는 각자 다른 길로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두번 다시 함께 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서로 충분히 알고 잇겠지. 그렇지?”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가 네가 이 집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보호 마법은 깨어질 것이다. 우린 그 마법을 조금 일찍 깨뜨리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이 찾아와서 네가 열일곱살이 되는 순간에 너를 붙잡아 갈 때까지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 쪽에 유리한 한가지 사실은 그 사람이 우리가 오늘 밤 너를 이동시키기로 했다는 계획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법부에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렸단다. 그자들은 네가 30일이 될때까지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을 거야. 그렇지만 우리의 상대가 다름아닌 그 사람인 만큼, 그자가 잘못된 날짜를 믿고 있단 사실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는 없어. 그자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죽음을 먹는 자들 두 명에게 이 지역 전반의 하늘을 순찰하도록 지시를 내렸단다. 그래서 우리는 열두 채의 서로 다른 집에다 우리가 걸 수 있는 모든 보호 마법을 걸어 놓았어. 열두 채의 집들 모두 앞으로 우리가 너를 숨기려고 하는 장소처럼 보이도록 말이지. 그 집들 모두 불사조 기사단과 관련이 있거든. 한 채는 우리집이고 또 하나는 킹슬리네, 또 몰리의 뮤리엘 아주머니네..... 무슨 말인 줄 알겠지.“
“네.”
해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완전히 진심은 아니었다. 여전히 이 계획에는 커다란 허점이 보였던 것이다.
“너는 우선 통스의 부모님 댁으로 갈 거야. 일단 우리가 집에 걸어 놓은 보호 마법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게 되면, 너는 포트키를 사용해서 버로우까지 갈 수 있어. 질문 있니?”
“어.....있어요.”
해리가 입을 열었다.
“물론 제가 열두 채의 은신처들 중에서 제일 먼저 어느 집으로 갈지 저들이 모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해리는 재빨리 머릿수를 헤아려 보았다.
“우리 열네명이 같이 통스의 부모님 댁으로 날아가면 당연히 눈에 띄지 않겠어요?”
“아 참.”
무디가 말했다.
“제일 중요한 사항을 깜박 잊고 말하지 않았구나. 우리 열네명이 모두 통스의 부모님 댁으로 날아가지는 않을 게다. 그 대신 오늘 밤 일곱 명의 해리 포터가 하늘을 날게 될 거야. 각기 동료 한 사람씩과 함께 서로 다른 은신처로 향할 거란 말이다.”
무디가 망토 안에서 진흙처럼 보이는 것이 담긴 플라스크를 꺼냈다. 굳이 다른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해리는 당장 어떤 계획인지 알아차렸다.
“안 돼요!”
해리는 부엌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절대로 안 돼요!”
“나는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어.”
헤르미온느가 약간 우쭐하며 말했다.
“여섯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걸 제가 그냥 보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면.....!”
“우리 모두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그랬지.”
론이 얼른 말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달라. 나로 위장하는 건.....”
“그래, 사실 이 일을 정말로 달가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해리”
프레드가 자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다 뭔가 잘못되어, 영원히 이 비쩍 마르고 몰골사나운 꼬마의 몸으로 남아야만 한다고 생각해 봐.”
하지만 해리는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제가 협조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을걸요. 제 머리카락이 필요하실 테니까 말이죠.”
“이런, 우리 계획이 말짱 도루묵이 되겠는걸.”
조지가 말했다.
“네가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우리 여럿이서 네 머리카락 몇 가닥쯤 빼앗을 가망성이 전혀 없으니 말이야.”
“그래, 우리 열세 명이 마법조차 사용할 수 없는 꼬마 한 명을 상대한단 말이지. 아이쿠, 이걸 어떻게 이긴담?”
프레드가 말했다.
“퍽도 재밌군. 아주 재미있어요.”
해리가 중얼거렸다.
“꼭 강제로 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
무디가 성난 어조로 말했다. 그가 해리를 노려보자. 그의 마법의 눈이 눈구멍 안에서 파르르 떨렸다.
무디가 말을 이었다.
“포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성인이야. 게다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순간 먼던구스가 얼굴을 찡그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무디의 마법의 눈이 머리 한쪽으로 쑥 튀어나오더니 그를 째려보았다.
“더 이상 괜한 입씨름은 하지 말자꾸나. 아까운 시간이 자꾸 흘러가고 있어. 이제 그만 머리카락 몇 가닥만 내놓아라.”
“하지만 이건 미친 짓이에요. 이럴 필요까지는 없......”
“이럴 필요가 없다고!”
무디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 사람이 저 바깥에 있고 마법부의 절반이 그 사람의 편이 되엇는데도? 포터, 혹시 우리가 운이 좋다면 그자가 거짓 미끼를 물어서 30일에 너를 덮칠 계획을 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먹는 자들 한두 명에게 감시를 하지 말라고 지시할 만큼 정신 나간 작자는 결코 아니야. 나라도 그렇게 할 테니까. 그자들은 네 어머니의 마법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너나 이집을 건드리지 못할 게다. 하지만 곧 마법이 깨질 때가 되었고, 그 자들도 대충 이 집이 어디쯤인지는 알고 있어. 우리의 유일한 기회는 적을 유인하는 것 뿐이야. 그 사람도 자신을 일곱으로 쪼개진 못할 테니.”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그러나 해리는 곧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포터, 네 머리카락을 어서 내놓거라. 부탁이다.”
해리는 론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냥 어서 해 버리란 식의 표정을 지었다.
“어서!”
무디가 호통을 쳤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해리는 머리를 향해 손을 올렸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고 확 잡아당겼다.
“잘했다.”
무디가 마법약이 담긴 플라스크의 마개를 뽑으면서 절룩절룩 다가왔다.
“여기다 바로 넣어라.”
해리는 진흙 같은 액체 속으로 머리카락을 떨어뜨렸다. 머리카락이 표면에 닿자마자, 마법약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연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맑고 투명한 황금색 액체로 변했다.
“오우 해리, 넌 크레이브나 고일보단 훨씬 더 맛있게 생겻다.”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하지만 곧 론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는 걸 알아채곤 살짝 얼굴을 붉히며 덧붙였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아. 고일로 변신하는 약은 마치 말라붙은 코닥지 같았거든.”
“좋아, 그럼 가짜 포터들은 이쪽으로 와서 한 줄로 서게나.”
무디가 지시했다.
론, 헤르미온느, 프레드, 조지, 그리고 플뢰르가 페투니아 이모의 반짝반짝 윤이 나는 싱크대 앞에 줄지어 섰다.
“한 사람이 부족한 걸”
루핀이 말했다.
“여기 있어.”
해그리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더니 먼던구스의 목덜미를 잡고 번쩍 들어서 플뢰르의 옆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플뢰르는 대 놓고 코를 찡그리며 얼른 프레드와 조지 사이로 가서 섰다.
“말했잖아. 난 경호를 맡고 싶다고.”
“시끄러워.”
무디가 호통을 쳤다.
“이미 말하지 않았나, 이 비겁한 버리지 같은 놈아. 혹시라도 죽음을 먹는 자를 만나게 되면, 그들은 포터를 사로잡으려고 하지 죽이려고 하진 않을거야. 덤블도어가 항상 말했듯이, 그 사람은 포터를 직접 끝장내고 싶어 한단 말이야. 그러니 제일 걱정스러운 건 오히려 경호원들이야. 죽음을 먹는 자들은 경호원을 죽이려고 할 테니까.”
이 말을 듣고도 먼던구스는 별로 안심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디는 이미 삶은 달걀 담는 컵 정도의 크기의 유리잔 여섯 개를 망토 속에서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잔을 나누어 준 다음, 폴리주스 마법약을 각기 조금씩 따라주었다.
“그럼, 다 함께......”
론과 헤르미온느, 프레드, 조지, 플뢰르 그리고 먼던구스가 잔을 쭉 들이켰다. 마법약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모두 숨을 헐떡이며 얼굴을 찌푸렸다. 즉시 그들의 얼굴이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뜨거운 촛농처럼 녹아내렸다. 헤르미온느와 먼던구스는 위로 쑥 커졌고, 론과 프레드, 조지는 키가 줄어들었다. 그들의 머리 색이 검어졌고, 헤르미온느와 플뢰르는 머리카락이 다시 머리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한편 무디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가져온 커다란 자루들의 끈을 풀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다시 허리를 폈을때, 그의 눈앞에는 여섯 명의 해리 포터들이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프레드와 조지는 서로를 돌아보더니 동시에 소리쳤다.
“우와, 우리가 똑같아졌다!”
“하지만 잘 모르겠어. 그래도 내가 훨씬 더 잘생긴 것 같아.”
프레드가 주전자에 비친 자기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빌, 쳐다보지 마. 내 모습이 너무 끔직해.‘
플뢰르가 전자레인지 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더니 푸념을 했다.
“옷이 좀 헐렁하면, 여기 더 작은 것이 있다.”
무디가 첫 번째 자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면 옷이 좀 작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들 안경을 잊지 말도록. 옆 주머니에 안경 여섯개가 들었으니까. 옷을 다 입은 사람은 다른 자루에 있는 짐들을 챙겨라.”
한편 진짜 해리는 지금껏 참으로 이상한 것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이거야말로 가장 괴상한 광경일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와 똑같이 생긴 분신 여섯명이 자루를 뒤져서 옷을 꺼내 입고 안경을 쓰고 각자 입었던 옷을 자루 속에 쑤셔 넣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그들에게 부디 자신의 사생활을 좀 더 존중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 모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옷을 홀홀 벗어 던졌던 것이다. 자기들 몸이었다면 안 그랬을 것을, 그의 몸이기에 훨씬 더 쉽게 내보이는 것이 분명했다.
“지니가 문신 어쩌고 한 것은 다 거짓말이었군.”
론이 벌거벗은 가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해리, 너 시력이 지독하게 나쁘구나.”
이번에는 헤르미온느가 안경을 쓰며 외쳤다.
일단 옷을 갈아입고 나자, 가짜 해리들은 두 번째 자루에서 배낭과 박제된 하얀 부엉이 한 마리가 들어 있는 새장 하나씩을 꺼내 들었다.
“좋아.”
마침내 옷을 갈아입고 안경을 쓰고 가방을 짊어진 일곱명의 해리가 그의 앞에 우뚝 서자 무디가 말했다.
“다음과 같이 한 조를 이루도록. 먼던구스는 나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간다.”
“왜 하필 나야?”
뒷문에 제일 가까이 서 있던 해리가 투덜거렸다.
“자네야말로 반드시 감시가 필요한 사람이니까 그렇지.”
무디가 윽박질렀다.
과연 말을 계속하는 동안에도 무디의 마법의 눈은 먼던구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서와 프레드”
“저는 조지인데요.”
무디가 지적한 쌍둥이 중 하나가 말했다.
“저희가 해리로 변신했을 때 조차도 저희를 구별하지 못한단 말인가요?”
“조지, 미안하네.”
“그저 장난 좀 쳤어요. 제가 프레드 맞아요.”
“쓸데없는 장난 좀 그만 쳐!”
무디가 호통을 쳤다.
“거기 자네는, 조지든 프레드든 누구든 간에 리무스랑 가도록, 그리고 델라쿠르 양은.....”
“제가 플뢰르와 함께 새스트랄을 타고 가겠어요.”
빌이 얼른 앞으로 나섰다.
“플뢰르는 빗자루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플뢰르는 냉큼 걸어 나와 빌 옆에 바싹 붙었다. 그러더니 해리가 자기 얼굴에는 절대로 그런 표정이 떠오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만큼, 느끼하고 비굴한 얼굴로 빌을 바라보았다.
“그레인저 양은 킹슬리와 가도록, 역시 세스트랄을 타고.”
헤르미온느는 크게 안도하는 표정으로 킹슬리의 미소에 웃음으로 답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도 빗자루 타는 데 별로 자신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와 나만 남는구나. 론!”
통스가 밝게 웃으며 론에게 손짓하다가 그만 머그컵 걸이를 쳐서 넘어뜨렸다.
하지만 론은 헤르미온느만큼 기뻐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해리, 너는 나랑 가는 거야. 괜찮지?”
해그리드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린 오토바이를 타고 갈 거야. 빗자루나 세스트랄은 내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거든. 그런데 좌석이 나 혼자 앉기에도 넉넉하지 않으니까 넌 사이드카에 타도록 해.”
“그거 아주 멋진데요.”
해리가 감탄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진심만은 아니었다.
“틀림없이 죽음을 먹는 자들은 네가 빗자루를 타고 갈 줄 알고 있을 게다.”
해리의 기분을 알아차린 듯이, 무디가 설명했다.
“이제 스네이프는 시간이 넉넉할 테니, 지금껏 너에 대해서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모든 사실들을 그자들에게 낱낱이 알려 주었겠지. 그래서 우리가 혹시라도 죽음을 먹는 자들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자들은 여러 포터들 중에서 분명 제일 능숙하게 빗자루를 타는 듯이 보이는 포터를 노릴 거라는 게 우리의 짐작이다. 자, 그럼.....”
무디가 가짜 포터들의 웃이 잔뜩 담긴 자루를 다시 졸라매며 제일 먼저 문으로 향했다.
“다들 떠날때까지 3분의 여유를 둘 것이다. 뒷문을 잠가도 아무 소용이 없어. 죽음을 먹는 자들이 찾아오면 막지도 못할테니..... 자, 어서.....”
해리는 현관 복도로 황급히 돌아가서는 배낭과 파이어볼트, 그리고 해드위그의 새장을 챙겨 들고 나와 어두운 뒷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합세했다. 사방에서 빗자루들이 펄떡 손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벌써 킹슬리의 부축을 받으며 검고 거대한 세스트랄 위로 올라타고 잇었다.
한편, 플뢰르는 빌의 도움을 받아 또 다른 세스트랄에 탔다. 해그리드는 떠날 채비를 마치고 보안경을 낀 채 오토바이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엇다.
“이건가요? 이게 시리우스의 오토바이인가요?”
“그래, 그렇단다.”
해그리드가 해리를 내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네가 지난번에 이걸 탔을 땐 말이다, 해리, 널 한 손으로도 안을 수 있었단다.”
해리는 사이드카에 올라타면서 다소 굴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밑으로 쑥 내려간 낮은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론은 마치 범퍼 카를 탄 꼬마처럼 얌전히 사이드카에 앉아 있는 그를 보고 싱글싱글 웃었다. 해리는 배낭과 빗자루를 발밑께에 쑤셔 넣고, 해드위그의 새장을 무릎사이에 끼고 앉았다. 굉장히 자세가 불편했다.
“아서가 약간 손을 봐 줬어.”
해그리드는 해리가 불편해하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떠들어 댔다. 그가 오토바이 위에 턱하니 올라타자, 삐거덕 소리가 나면서 오토바이가 약간 주저앉았다.
“핸들에 약간 솜씨를 부려보았다. 여기 이건 내가 생각해 낸 거다.”
해드리드는 굵은 손가락으로 속도게 옆에 있는 보라색 단추를 가리켰다.
“제발 조심하게, 해그리드”
옆에 서 있던 위즐리 씨가 빗자루를 잡으며 말했다.
“난 아직도 과연 그게 권할 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네. 그러니까 반드시 비상시에만 사용하도록 하게.
“좋아, 그럼.”
무디가 소리쳤다.
“모두 준비하시오. 다들 정확히 동시에 떠나도록. 그렇지 않으면 적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는 우리의 의도가 허사가 되니까.”
모두 빗자루에 올라탔다.
“론, 꼭 붙잡아.”
통스가 주의를 주었다. 해리는 론이 양손으로 통스의 허리를 붙잡으면서 은근히 미안한 표정으로 루핀을 쳐다보는걸 보았다. 해그리드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오토바이는 마치 용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사이드카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모두 행운을 빌겠네.”
무디가 외쳤다.
“다들 한 시간 후에 버로우에서 만나도록 하지. 셋을 세면 출발하세. 하나......둘.....셋.”
오토바이가 붕 하고 굉음을 냈다. 해리는 사이드카가 왈칵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꼇다. 다음 순간, 그는 빠른 속도로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마구 뒤로 휘날리고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주위의 빗자루들도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세스트랄의 길고 검은 꼬리가 눈앞을 휙 지나갔다. 헤드위그의 새장과 배낭사이에 꼭 끼인 채, 사이드카에 억지로 쑤셔 넣어진 해리의 다리가 벌써부터 욱신욱신 쑤시면서 감각이 무뎌졌다. 어찌나 자리가 불편했던지, 해리는 마지막으로 프리벳가 4번지를 돌아보는 것조차 깜박 잊고 있엇다.
결국 그가 사이드카 너머로 돌아보았을 때에는 이미 어디가 어디인지 구별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점점 더 높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런데 텅 빈 허공 어디선가, 그들은 난데없이 포위를 당했다. 최소한 서른 명쯤 되는 두건을 눌러쓴 자들이 불사조 기사단을 빙 둘러싸고 커다란 원을 그린채, 허공에 떠 있었다. 기사단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들 한가운데로 곧장 솟아올랐던 것이다.
비명이 터져 나오고, 초록빛 불꽃이 사방에서 번쩍거렸다. 해그리드는 얍 하고 기합을 넣더니 오토바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해리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가로등 불빛이 머리위에 있었고 사방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사이드카에 메달렸다. 순간 헤드위그의 새장과 파이어볼트, 그리고 배낭이 무릎아래에서 조금씩 미끄러져 나왔다.
“안 돼! 해드위그!”
빗자루가 빙글빙글 돌며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해리는 오토바이가 다시 똑바로 돌아서는 틈을 타서 가까스로 배낭의 끈과 새장의 꼭대기를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하는 것도 잠깐, 또다시 초록 불꽃이 터지더니 부엉이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새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 돼! 안 돼!”
오토바이는 붕 하고 앞으로 날아갔다. 해그리드가 죽음을 먹는 자들의 포위를 뜷고 달아나는 순간, 해리는 두건을 쓴 그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힐끗 보았다.
“헤드위그.....헤드위그.....”
하지만 부엉이는 마치 장난감처럼 새장 바닥에 애처로운 모습으로 꼼짝 않고 쓰러져 있었다. 해리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깨 너머로 돌아보니, 수십 명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와중에 초록 불빛이 번쩍거리고 두 사람씩 올라탄 빗자루가 먼 곳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누가 누구인지 구별 할 수가 없었다.
“해그리드, 돌아가야 해요!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요!”
해리는 천둥처럼 우르릉거리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이기려고 목청껏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헤드위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지팡이를 꺼내어 새장 바닥을 두들겨 보았다.
“해그리드, 방향을 돌려요!”
“내 임무는 너를 안전하게 그곳에 데려가는 거야, 해리!”
해그리드는 이렇게 외치더니 오히려 더욱 속도를 높였다.
“멈춰.....멈추라고요!”
해리는 바락바락 악을 썻다. 하지만 다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초록 불꽃 두 방이 그의 왼쪽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네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대열에서 벗어나 그들의 뒤를 따라오면서 해그리드의 넓적한 등을 겨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그리드는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은 끈질기게 오토바이를 쫓아오면서 더 많은 저주를 날렸다. 해리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사이드카 밑으로 납작 엎드려야만 했다.
그리고 간신히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
“스투페파이!”
지팡이 끝에서 붉은 불꽃이 발사되었다. 뒤를 쫓아오던 네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은 불꽃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흩어졌고, 불꽃은 허공을 갈랐다.
“해리, 꼭 잡아라. 이걸로 저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해그리드가 소리쳤다.
벽이, 진짜로 단단한 벽돌 벽이 배기관에서 발사되어 나왔다. 해리는 목을 길게 빼고 허공으로 한없이 뻗어 나가는 벽을 보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 중 세명은 얼른 방향을 돌려 피했다. 하지만 네 번째 사람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잠깐 시야에서 사라지는 듯하더니, 다음 순간 빗자루가 산산조각나면서 벽 뒤로 돌멩이처럼 뚝 떨어졌다. 그의 동료들 중 하나가 그를 구하기 위해 속력을 늦추었다. 하지만 해그리드가 핸들위로 몸을 바싹 낮추고 속력을 높이자, 캄캄한 어둠이 그들과 공중의 벽을 삼켜 버렸다.
이제 남아 있는 두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의 지팡이에서 발사된 살인 저주들이 더욱 맹렬하게 해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해그리드를 노리고 있었다. 해리는 더 많은 기절 마법으로 응대했다. 붉은색과 초록색 불꽃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면서 오색찬란한 불똥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해리는 터무니 없게도 불꽃놀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지상의 머글들을......
“해리, 또다시 간다, 꼭 잡아!”
해그리드가 소리쳤다. 그리고 두 번째 단추를 재빠르게 눌렀다. 이번에는 배기관에서 거대한 그물이 발사되었다. 하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 역시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물을 간단히 피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을 잃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속력을 늦추었던 또 한명까지 그들의 뒤를 따라 잡았다. 그가 어둠 속에서 휙 나타나자, 이제 세명이 된 죽음을 먹는 자들은 합세하여 저주를 쏘아 대며 오토바이를 뒤쫓았다.
“이거면 될 거야. 해리, 꼭 잡아라!”
해그리드가 다시 소리쳤다. 해리는 그가 주먹으로 속도계옆에 있는 보라색 단추를 꽝 내려치는 걸 보았다.
그러자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사나운 포효와 더불어, 배기관에서 하얗고 푸르스름하게 작렬하는 용의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오토바이는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를 내며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해리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그 무시무시한 불길을 피하기 위해서 옆으로 싹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바로 그때 사이드카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엄청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오토바이와 연결된 금속 나사가 떨어져 나간것이다.
“괜찮다, 해리!”
해그리드가 소리쳤다. 하지만 속도가 갑자기 빨라져 그 역시 몸이 뒤로 벌렁 젖혀진 상태였다. 이제 핸들을 붙잡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이드카가 날아가는 오토바이의 뒤로 생기는 거센 기류에 의해 격력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해리, 내가 하면 된다. 걱정하지 마!”
해그리드가 이렇게 외치며 외투 호주머니에서 꽃무늬의 분홍색 우산을 꺼내 들었다.
“해그리드 안 돼요! 제가 할게요!”
“레파로!”
순간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요란한 굉음과 함게 사이드카가 완전히 오토바이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해리는 날아가던 오토바이의 추진력에 의해서 앞으로 슝 날아갔다. 하지만 곧 사이드카가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해리는 필사적으로 지팡이를 사이드카에 겨누고 소리쳤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사이드카가 코르크처럼 허공에 붕 떠올랐다. 조종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직 공중에 떠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더욱더 맹렬하게 저주가 줄지어 발사되었다. 세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어느새 바싹 뒤따라 온 것이다.
“내가 간다. 해리!”
해그리드가 어둠 속 어디선가 소리쳤다. 하지만 해리는 또다시 사이드카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최대한 몸을 낮게 움크린 채, 가가이 다가오고 있는 무리의 한가운데를 겨냥하며 소리쳤다.
“임페디멘타!”
주문은 가운데 있던 죽음을 먹는 자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자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이, 잠간 동안 허공에서 우스꽝스럽게 큰 대자로 뻗어 버렸다. 그 바람에 그의 동료 중 한 명이 그와 충돌 할 뻔 했다.
바로 그때 사이드카가 본젹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어찌나 가깝게 저주를 쏘아 대는지, 해리는 사이드카의 가장자리 밑으로 고개를 숙이다가 그만 좌석 모서리에 이가 하나 부딪혀 빠져 버렸다.
“내가 간다, 해리, 내가 가!”
거대한 손이 해리의 망토 뒷자락을 덥석 움켜쥐더니, 곧장 추락하는 사이드카에서 끌어올렸다. 해리는 배낭을 꼭 붙잡은 채, 오토바이 좌석 위로 끌려 올라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리그리드와 등을 마주대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남아 있는 두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을 피해서 계속 위로 솟아올랐다. 해리는 입 안에 고인 피를 탁 뱉으며, 떨어지는 사이드카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리고 외쳤다.
“콘프링고!”
사이드카가 폭파하는 순간, 해리는 헤드위그를 생각하며 창자가 비틀리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느꼇다. 한편 사이드카와 제일 가까이 있던 죽음을 먹는 자 한 명이 폭파 충격으로 빗자루에서 굴러 떨어져 버렸다. 그의 동료는 뒤로 후퇴하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해리, 미안하다, 미안해.”
해그리드가 끙끙거리며 말했다.
“그걸 내가 고치려고 하는 게 아니었는게..... 자리가 너무 좁지.....”
“상관없어요. 그냥 계속 날아가기나 하세요!”
해리가 큰 소리로 대꾸했다. 또 다른 죽음을 먹는 자 두명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더니 점점 가까이 다가왔던 것이다.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또다시 저주들이 날아오자, 해그리드는 요리저리 운전을 했다. 해그리드가 감히 용의 화염을 다시 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걸 해리는 잘 알고 있었다. 해리가 너무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추격자들을 향해서 기절 마법을 쏘고 또 쏘앗지만, 좀처럼 그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그들을 향해 또 다른 장애 마법을 쏘았다. 제일 가까이 쫓아오던 죽음을 먹는 자가 그걸 피하기 위해 방향을 돌리다가 두건이 벗겨졌다. 그 순간 해리가 잇달아 발사한 기절 주문의 붉은 불빛에 반사되어, 스탠 션파이크의 이상하게 넋이 나간 듯한 얼굴이 드러났다. 스탠.....
“엑스펠리아르무스!”
해리가 외쳤다.
“그 녀석이다. 그 녀석이야. 저놈이 진짜다!”
천둥같이 시끄러운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에도 불구하고 두건을 쓴 죽음을 먹는 자의 고함소리가 해리의 귀에까지 들렸다. 다음 순간 두 명의 추격자들이 뒤로 물러서더니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해리, 무슨 일이지?”
해그리드가 고함을 쳤다.
“그놈들, 어디로 간 거야?”
“저도 몰라요!”
해리는 웬지 두려웠다. 그 두건을 쓴 죽음을 먹는 자는 분명히 “저놈이 진짜다!”라고 소리쳤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해리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막막하게 펼쳐진 어둠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어디 있을까?
해리는 좌석에서 몸을 돌려 앞을 향해 앉았다. 그리고 해그리드의 등을 꼭 붙잡았다.
“해그리드, 용의 화염을 한 번 더 발사해요. 여기서 빠져나가요!”
“그럼 꼭 잡아라, 해리!”
또다시 고막이 찢어질 듯한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푸르스름한 하얀 화염이 배기관에서 뿜어져나왔다. 해리는 그 좁은 좌석에서 자신의 몸이 뒤로 쭉 미끄러지는 걸 느꼇다. 해그리드 역시 몸이 뒤로 벌렁 젖혀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손에서 핸들을 놓칠 뻔했다.
“해리, 그놈들을 따돌린 것 같구나. 드디어 우리가 해낸 것 같아!”
해그리드가 소리쳤다.
하지만 해리는 안심할 수가 없엇다.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해리는 어디선가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추격자들은 찾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놈들이 뒤로 물러선 걸까? 그들 중 한명은 여전히 지팡이를 갖고 있엇는데..... 그 녀석이다..... 저놈이 진짜다..... 내가 스탠을 무장해제시키려고 하자마자, 그들이 그렇게 말했지.....
“해리, 거의 다 왔어. 거의 다 왔다고!”
해그리드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오토바이가 밑으로 내려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아래 지상의 불빛은 아직도 별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그때 이마의 흉터가 불에 덴 듯이 쑤시기 시작했다. 오토바이의 한쪽에서 죽음을 먹는 자가 나타나더니, 등 뒤에서 날아온 살인 저주 두 방이 해리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갔다.
그 순간, 해리는 그 자를 보았다. 볼드모트가 바람을 타고 흐르는 연기처럼, 빗자루도 세스트랄도 없이 맨몸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의 뱀 같은 얼굴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그의 하얀 손가락이 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해그리드는 공포의 비명을 지르더니 오토바이를 곧장 수직으로 낙하시켰다. 해리는 결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리면서,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을 향해 닥치는 대로 기절 마법을 쏘아 댔다. 누군가 날아가 버리는 것을 보고, 해리는 그들 중 한명을 맞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곧 이어 꽝 소리가 나더니 엔진에서 불꽃이 일었다. 오토바이는 완전히 통제력을 잃고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떨어졌다.
또다시 초록 불꽃들이 그들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해리는 어느 쪽이 위이고 어느 쪽이 아래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마의 흉터는 아직도 타는 듯이 아팠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두건을 쓴 사람이 빗자루를 타고 불과 몇십 센티미터 거리까지 다가왔다. 해리는 그의 팔이 올라가는 걸 보았다.
“안 돼!
분노에 찬 고함 소리와 함께 해그리드가 오토바이 위에서 죽음을 먹는 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해리는 공포에 질린 채, 해그리드와 죽음을 먹는 자가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지는 걸 지켜보았다. 빗자루 하나가 지탱하기에는 두 사람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수직으로 추락하는 오토바이를 무릎으로 간신히 붙잡고 있던 해리의 귀에 볼드모트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내가 맡겠다!”
끝장이었다. 해리는 볼드모트가 어디 있는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또 다른 죽음을 먹는자가 재빨리 옆으로 비켜나는 것이 힐끗 보이더니, 뒤이어 소리가 들렸다.
“아바다......”
해리는 흉터의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두 눈을 질끈 감앗다. 순간 지팡이가 저절로 움직였다. 해리는 지팡이가 마치 거대한 자석처럼 손을 잡아끄는 것을 느꼇다. 그리고 반쯤 감긴 눈으로 지팡이가 눈부신 황금빛 불꽃을 분출하는 것을 보았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분노에 가득 찬 절규가 들렸다. 남아 있는 죽음을 먹는자가 악을 썻고, 볼드모트느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안 돼!”
바로 그때 해리는 바로 코앞에 있는 용의 화염 발사 단추를 발견했다. 그는 재빨리 지팡이를 들지 않은 한 손으로 단추를 꾹 눌렀다. 오토바이가 더욱 강력한 불길을 내뿜으며 지상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돌진했다.
“해그리드!”
해리는 죽을 힘을 다해 오토바이에 매달리며 소리쳤다.
“해그리드! 아씨오 해그리드!”
오토바이가 더욱 속력을 높이더니 땅으로 빨려들듯이 떨어졌다. 해리는 핸들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있어서, 저 멀리서 반짝이던 불빛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머잖아 그는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날 테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등 뒤에서 또다시 다급한 외침이 들렷다.
“네 지팡이를, 셀윈, 네 지팡이를 이리 다오!”
해리는 볼드모트를 보기도 전에 느낄 수 있었다. 힐끗 옆을 바라보니, 새빨간 눈이 보였다. 분명, 저것이 그가 이 세상에서 보는 마지막 광경이리라. 볼드모트는 다시 한번 그에게 저주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볼드모트가 사라졌다. 해리가 밑을 내려다보니 해그리드가 큰대자로 쭉 뻗은 채, 땅에 쓰러져 있었다. 해리는 해그리드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오토바이의 핸들을 잡아당기며 황급히 브레이크를 더듬어 찾았다. 하지만 지축이 흔들리고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해리는 진흙 연못에 그대로 처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