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장 (160/194)

제 3장 떠나는 더즐리 가족

쾅!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계단 위까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렸다.

“야.너!”

지난 16년 동안 항상 이런 식으로 불려 왔기 때문에, 해리는 이모부가 누구를 부르는지 뻔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해리는 즉시 대답하지 않고, 순간 덤블도어의 눈을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울 조각을 여전히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곧이어 이모부가 “이 녀석아!”하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해리는 비로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추고 깨진 거울 조각을 배낭에 집어넣었다. 배낭 안에는 그가 가지고 갈 온갖 물건들이 가득 차 있었다.

“왜 이렇게 꾸물거리는 거냐!”

해리가 계단 꼭대기에 모습을 나타내자, 버논 더즐리가 호통을 쳤다.

“당장 이리 내려와라! 할 말이 있다.”

해리는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채, 어슬렁어슬렁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로 들어서자, 더즐리 가족 세 명이 다 모여 있었다. 그들은 여행을 떠나는 옷차림이었다. 버논 이모부는 엷은 황갈색의 지퍼 달린 재킷을 입고, 페투니아 이모는 깔끔한 살구 빛 코트를 입고 있었다. 금발에 덩치 크고 근육질인 사촌 두들리는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

“네?”

해리가 물었다.

“앉아!”

버논 이모부가 명령했다. 그러자 해리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여기 좀 앉으려무나.”

버논 이모부가 부드럽게 어조를 바꾸었다. 하지만 그 말이 가시가 되어 목에 걸린듯 살짝 인상을 지푸렸다.

해리는 앉았다. 무슨 말이 나올지 뻔히 알 것 같았다. 이모부는 거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페투니아 이모와 두들리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마침내 너무 생각에 골똘한 나머지 불그죽죽한 그의 커다란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질 지경이 되었을때, 버논 이모부는 해리 앞에 딱 멈춰 서더니 말했다.

“마음을 바꿨다.”

“그거 놀라운 일이군요.”

해리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란.....”

페투니아 이모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으려고 하는 순간, 버논 더즐리가 손을 흔들며 가로막았다.

“이건 전부 허튼수작이야.”

버논 이모부가 돼지 같은 작은 눈으로 해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난 그 말을 한마디도 안 믿기로 결심했다. 우린 계속 이집에 있을 게다. 어디에도 가지 않겠단 말이다!”

해리는 이모부를 올려다보았다. 짜증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버논 더즐리는 지난 4주 동안 날마다 마음이 변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바뀔 때마다 차에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다시 싸곤 했다. 그러는 동안 해리가 제일 즐거웠던 순간은, 지난번 짐을 풀었을 때 두들리가 상자 속에 아령들을 넣어 둔 것을 모르고 버논 이모부가 상자를 번쩍 들어 차 트렁크에 넣으려고 하다가 고통스런 신음소리와 더불어 욕설을 퍼부으며 털썩 주저앉았을 때였다.

“네 말은 그러니까.....”

버논 더즐리가 다시 거실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 그러니가 페투니아와 두들리 그리고 내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거지? 그, 그.....”

“저랑 같은 ‘패거리’중 어떤 놈들 때문에 말이죠. 맞아요.”

해리가 말을 받았다.

“어쨌든 난 못 믿겠다.”

버논 이모부가 말을 되풀이하며 다시 해리 앞에와서 딱 멈춰섰다.

“밤을 반쯤 세우다시피 하며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집을 차지하려는 음모인 것 같다.”

“집이요?”

해리가 되물었다.

“무슨 집이요?”

“바로 이 집 말이다!”

바논 이모부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꽥 소리를 질렀다.

“우리 집! 이 동네 집값이 천정부지도 뛰고 있단 말이다! 네 놈이 우리를 방해가 되지 않게 내몬 다음, 무슨 수리수리 마술을 부려서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집문서를 네녀석 이름으로 해 놓으려고 하는거지!”

“지금 제정신이세요?”

해리가 물었다.

“이 집을 차지하려는 음모라고요? 정말 그렇게 생긴 것 만큼이나 멍청하신 건가요?”

“이 녀석이 감히!”

페투니아 이모가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또다시 버논 이모부가 손을 흔들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자신의 생김새에 대한 조롱 따위는 자기가 발견한 위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이모부가 잊고 계실까 봐 하는 말인데요, 저에게는 이미 집이 한 채 있어요. 제 대부가 저에게 물려주셧다고요. 그런데 제가 왜 이집을 원하겠어요? 무슨 행복한 추억이라도 있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해리는 이모부가 자기 말에 다소 납득을 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네 주장은 그 경인지 뭔지 하는 것이.....”

버논 이모부가 다시 서성거리며 말했다.

“볼드모트라니까요.”

해리가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벌서 그 이야기를 백 번쯤 했잖아요. 이건 제 주장이 아니라, 진짜 사실이에요. 작년에 덤블도어 교수님도 이모부에게 말했잖아요. 킹슬리와 위즐리 아저씨도.....”

이 이름을 듣자, 버논 더즐리는 성난 듯이 어깨를 움츠렷다.

해리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며칠 지났을 무렵에, 두 명의 어른 마법사가 불시에 방문했던 불쾌한 기억을 밀쳐 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더즐리 가족에게 킹슬리 샤클볼트와 아서 위즐리가 현관문 앞에 느닷없이 출현한 것은 참으로 불쾌하고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위즐리 씨가 예전에 거실의 절반을 날려 버린 적이 있으니, 버논 이모부가 그의 재출현을 기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킹슬리와 위즐리 아저씨도 모든 걸 설명해 주셧잖아요.”

해리는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

“제가 열일곱살이 되면, 저를 안전하게 지켜주던 보호 마법이 풀리게 되고 저뿐만 아니라 이모부네 가족도 위험에 노출된다고요. 기사단에서는 볼드모트가 틀림없이 이모부를 노릴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이모부를 고문해서 제가 있는 곳을 알아내려고 하거나, 혹은 이모부를 인질로 잡고 있으면 제가 이모부를 구하기 위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버논 이모부와 해리의 눈이 마주쳤다. 해리는 이 순간 두사람 모두 똑같은 의구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버논 이모부가 다시 서성거렸고, 해리는 말을 이었다.

“이모부네 가족은 은신처로 가야만 해요. 기사단은 돕고 싶어해요. 이모부네 가족은 철저한 보호를 받게 될 거예요. 최고의 보호를 말이죠.”

버논 이모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기만 했다. 밖에서는 태양이 쥐똥나무 산울타리 위로 낮게 걸려 있었다. 이웃집 잔디 깍는 기계도 다시 멈추었다.

“마법부라는 것이 있는 줄 아는데?”

버논 더즐리가 불쑥 물었다.

“있어요.”

해리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마법부에서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거지? 내가 보기에는, 요주의 인물을 받아 준것 이외에는 아무런 죄가 없는 무고한 희생자들로서, 우리야말로 정부의 보호를 요청할 만한 자격이 되지않나!”

해리가 큰 소리로 웃었다.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경멸하고 불신하는 마법 세계 내에서조차 어쨌든 정부기관에 매달리고 싶어 하는 태도가 너무나 버논 이모부다웠기 때문이었다.

“위즐리 아저씨와 킹슬리가 하는 말을 이모부도 들었잖아요.”

해리가 대답했다.

“저희 생각에는 마법부에 저쪽 세력이 침투한 것 같아요.”

버논 이모부는 벽난로 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러고는 검고 무성한 콧수염이 흩날릴 정도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은 머리를 쥐어짜느라 여전히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좋다.”

이모부가 다시 해리 앞에 우뚝 서서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논의를 위해서 일단 우리가 이 보호를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런데 왜 우리 가족이 그 킹슬리인지 뭔지 하는 놈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

해리는 가가스로 눈알을 굴리지 않고 참았으나, 무척 힘들었다. 이 문제 역시 이미 대여섯번쯤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해리는 이를 갈면서 대답했다.

“킹슬리는 머글..... 그러니까 당신들의 수상님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이죠”

“바로 그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최고란 말 아니냐!”

버논 이모부가 꺼진 텔레비젼 화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더즐리 가족은 머글 수상이 병원을 방문했을 때,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가고 있는 킹슬리의 모습을 뉴스에서 보았던 것이다. 이 사실과 더불어 킹슬리의 느리고 낮은 목소리가 웬지 신뢰감을 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머글처럼 옷 입는 요령을 완전히 터득했다는 것 때문에 더즐리 가족은 그를 여느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생각했다. 물론 그들은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킹슬리의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쨋든 그는 다른 일을 맡았어요.”

해리가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헤스티아 존스와 데달루스 디글이 그런 일에는 훨씬 더 적.....”

“혹시 우리가 그자들 이력서라도 본다면 모를까.....”

버논 이모부가 다시 불평을 시작했다. 순간 해리는 참을성을 잃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모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TV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차량 충돌이니 폭파니 열차 탈선이니,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뉴스를 본 이후로 또 무슨 사고가 일어났는지는 모르겟지만 어쨋든 이런 모든 사고들이 그냥 단순한 사고가 아니란 말이에요! 사람들이 계속 사라지거나 죽고 있어요. 그리고 배후에는 그자가 있다고요. 바로 볼드모트요! 제가 벌써 몇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그자는 재미 삼아 머글들을 죽인단 말이에요. 심지어 안개도 디멘터들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디멘터가 뭔지 기억이 안 나신다면, 어디 당신 아드님께 물어보시고요!”

두들리가 발작을 일으키듯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부모님과 해리가 빤히 보고 있는 가운데, 천천히 손을 내리고 물었다.

“그..... 그런 것들이 더 있단 말이야?”

“더 있느냐고?”

해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를 공격한 그 두 놈 말고 더 있느냔 뜻이야? 당연히 더 있고말고 수백 명, 아니 지금쯤은 수천명이 더 될 거야. 그놈들은 공포와 절망을 먹고 사니까....”

“알았다. 알았어.”

버논 더즐리가 호통을 쳤다.

“네 말은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제발 그러셨으면 좋겠군요. 제가 일단 열일곱살이 되면, 그놈들, 그러니까 죽음을 먹는 자들과 디멘터들, 어쩌면 인페리우스들까지, 인페리우스가 뭐냐 하면요, 놈들은 어둠의 마법사에 의해서 마법에 걸린 송장들인데요, 그들 모두가 이모부 가족을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고, 분명히 공격을 할 테니까요. 지난번에 마법사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려 하셧다가 어떤 일이 있엇는지 기억하신다면, 이모부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 하시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해그리드가 나무 현관문을 때려 부수던 요란한 소리가 오랜 시간의 간격을 건너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페투니아 이모는 버논 이모부만 바라보고 있었고, 두들리는 해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버논 이모부가 불쑥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내 직장은 어떻게 한단 말이냐? 두들리의 학교는 또 어떻게 하고? 물론 떠돌이 마법사 놈들이야 그런 문제에 신경도 안쓰겠지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시겠어요?”

해리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그자들은 제 부모님에게 그랬듯이, 이모부네 가족도 고문하고 죽일 거라고요!”

“아빠!”

갑자기 두들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빠, 전 기사단 사람들이랑 갈래요.”

“두둘리, 네 평생 처음으로 지각있는 말을 하는구나.”

해리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는 드디어 이 싸움에서 이겼다는 걸 알았다. 두들리가 겁에 질려서 기사단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면, 그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갈 것이다. 그들의 귀염둥이 자식과 헤어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해리는 벽난로 선반 위에 놓인 여행용 휴대시계를 힐끗 보았다.

“5분 후면 기사단 사람들이 도착할 거예요.”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가 방을 떠날 때까지 더즐리 식구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사촌과 헤어진다는 것은-그것도 어쩌면 영원히-그로서는 무척 즐겁게 여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지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도대체 16년 동안이나 지독히 싫어했던 사람들이 헤어지는 순간에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자기 방으로 돌아간 해리는 아무 생각 없이 배낭 안을 뒤적였다. 그런 다음 헤드위그의 새장 창살 사이로 부엉이 먹이용 나무 열매 두 알을 집어넣어 주었다. 나무 열매는 새장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하지만 헤드위그는 모르는 척했다.

“우린 곧 떠날거야. 이제 곧 말이야.”

해리가 헤드위그를 달랬다.

“그럼 넌 다시 날아다닌 수 있어.”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해리는 잠깐 망설이다가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헤스티아와 데달루스에게 더즐리 가족을 직접 상대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였다.

“해리 포터!”

해리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엷은 자주색 중산모를 쓴 자그마한 남자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변함없이 영광일세!”

“고맙습니다. 데달루스.”

해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검은 머리의 헤스티아를 향해서 쑥스러운 듯 미소를 살짝 지어 보였다.

“이런 수고를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 이모와 이모부, 사촌은 여기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해리 포터의 친척 여러분!”

데달루스는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면서 유쾌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더즐리 가족은 이런 인사를 받는 것이 전혀 유쾌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해리는 혹시 또다시 마음이 바뀌는게 아닐가 걱정했다. 두들리는 마녀와 마법사를 보더니 엄마곁으로 바싹 몸을 숨겼다.

“벌써 짐도 다 싸 놓고 떠날 준비가 되셨군요! 아주 훌륭합니다! 해리가 벌서 말씀드렸듯이, 계획은 아주 간단합니다.”

데달루스가 양복 조끼에서 커다란 회중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우리는 해리보다 먼저 떠날 것입니다. 이 집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해리가 아직 미성년자라서 까딱하면 마법부가 해리를 체포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자동차를 타고 16킬로미터 정도 간 다음에, 저희가 여러분을 위해 선정한 안전 지역으로 순간이동을 할 것입니다. 운전하는 법은 아시겠지요?”

데달루스가 버논 이모부에게 공손하게 물었다.

“뭐..... 뭘 아느냐고? 물론 운전하는 법이라면 끔찍하게 자알 알고 있소!”

버논 이모부가 침을 튀기며 대답했다.

“아주 똑똑하시군요. 정말 똑똑하십니다. 저라면 이 단추니 손잡이니 하는 것이 완전히 혼이 빠져 버릴 텐데요.”

데달루스가 칭찬을 늘어 놓았다. 제 딴에는 버논 더즐리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버논 이모부는 데달루스가 한마디 할 때마다 이 계획에 대해서 점점 신뢰를 잃어 가는 표정이 역력했다.

“운전도 못한다니.”

이모부가 들릴 듯 말 듯 낮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의 콧수염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다행이 데달루스도 헤스티아도 그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해리, 너는.”

데달루스가 말을 이었다.

“여기서 호위대가 올 때 까지 기다려. 계획에 약간 변화가 생겨서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죠?”

해리가 곧바로 물었다.

“매드아이가 이곳으로 와서 저랑 동반 순간이동 하는 줄 알았는데요.”

“그럴 수가 없게 됐어. 설명은 매드아이가 할 거야.”

해스티아가 딱 잘라 말했다.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서 있던 더즐리 가족은 갑자기 어디선가 “서둘러!” 하는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해리도 어리둥절해서 방 안을 둘러보다가, 뒤늦게 데달루스의 회중시계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알았어, 알았다고, 우린 지금 아주 빡빡한 스케줄에 따러서 움직이고 있단 말이야.”

데달루스가 시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조끼에 넣엇다.

“해리, 우리는 너희 친척들이 순간이동을 하는 바로 그때, 너도 이 집을 떠나는 걸로 시간을 맞출 생각이야. 그러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은신처로 향하는 바로 그 순간, 보호 마법도 깨지는 거지.”

“그럼 모두 짐을 싸고 떠날 준비가 되었겠지요?”

더즐리 가족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버논 이모부는 아직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불룩 튀어나온 데달루스의 조끼 호주머니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잠깐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겠어, 데달루스.”

헤스티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는 해리와 더즐리 가족이 애정 어린, 그리고 어쩌면 눈물 어린 작별 인사를 주고받는 자리에 두 사람이 남아 있는 것은 눈치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게 분명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해리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버논 이모부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큰 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

“그래, 그럼 이걸로 작별이다, 애야.”

버논 이모부는 해리에게 악수를 청할 듯이 오른쪽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도저히 자신이 없는 듯이 그저 주먹을 꼭 쥐더니 메트로늄처럼 팔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디디, 준비됐지?”

페투니아 이모도 해리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괜히 부산스럽게 핸드백이 꼭 잠겼는지 확인하면서 두들리에게 물었다.

두들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살짝 벌린 채,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해리는 웬지 거인 그롭이 떠올랐다.

“그럼, 어서 가자.”

버논 이모부가 재촉했다. 그리고 이모부가 벌서 거실 문 앞까지 다 갔을 때, 갑자기 두들리가 중얼거렸다.

“이해가 안가요.”

“뭐가 이해가 안 된다는 거니, 우리 아가?”

페투니아 이모가 아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두들리가 커다란 햄 덩어리 같은 손을 들어서 해리를 가리켰다.

“왜 해리는 우리랑 같이 안 가죠?”

그러자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가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두들리를 쳐다보았다. 마치 두들리가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말이라도 한 것 같았다.

“뭐라고?”

이모부가 버럭 소리를 질럿다.

“어째서 해리는 함께 가지 않는 거죠?”

두들리가 물었다.

“글세, 그..... 그건 해리가 원하지 않아서다.”

버논 이모부는 시선을 돌려 해리를 무섭게 노려보며 덧붙엿다.

“그러고 싶지 않지? 안그러냐?”

“전혀요.”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거봐라. 자, 이제 가자, 어서 떠나야지.”

버논 이모부가 두들리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먼저 방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두들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페투니아 이모도 머뭇머뭇 몇 발자국 움직이더니 역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번엔 또 뭐냐?”

버논 이모부가 문가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며 호통을 쳤다.

두들리는 마치 말로 표현하기에 너무 어려운 생각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분 동안 고통스럽게 머릿속으로 씨름을 하던 두들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면 해리는 어디로 가는 거죠?”

페투니아 이모와 버논 이모부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두들리의 행동 때문에 분명 놀란 것 같았다. 그때 헤스티아 존스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렇지만..... 물론 조카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계신 거죠?”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알고말고.”

번논 더즐리가 대답했다.

“당신네 패거리 중 누군가와 떠나는 거잖소, 안 그렇소? 두들리, 어서 차에 타거라, 저 사람 말 못 들었느냐? 서둘러야 한단 말이다.”

버논 더즐리는 또다시 현관문까지 걸어갓다. 하지만 두들리는 따라가지 않았다.

“우리 패거리 중 누군가와 떠나는 거라고요?”

헤스티아가 성난 표정을 지었다. 해리는 전에도 이런 반응을 본 적이 있었다. 마녀들이나 마법사들은 해리의 살아 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들이 그 유명한 해리 포터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해리가 헤스티아를 달랬다.

“솔직히 아무 상관 없어요.”

“상관이 없다고?”

헤스티아가 그의 말을 반복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험악하게 높아졌다.

“이 사람들은 네가 어떤 일을 겪어 왔는지 전혀 모른단 말이니? 네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도? 반 볼드모트 운동의 중심에서 네가 차지하고 있는 그 특별한 위치에 대해서도?”

“어..... 그게, 그러니까 저 사람들은 몰라요.”

해리가 대답했다.

“사실 저 사람들은 제가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전 그런 대접을 받는 데 익숙해서....”

“난 네가 자리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않아.”

만약 두들리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다면 해리는 그 사실을 결코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촌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두들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게 확실한 한 가지 이유로, 두들리의 얼굴이 새빨갰던 것이다. 해리는 몹시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어....그래.....고마워, 두들리.”

또다시 두들리는 뭔가 좀처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을 잡으려고 애를 쓰는듯 하더니 입속말로 웅얼거렸다.

“넌 내 목숨을 구해 주었어.”

“꼭 그런 건 아니야”

“디멘터들이 노렸던 건 네 목숨이 아니라 영혼이었으니까”

해리는 새삼스런 눈길로 사촌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이번 여름이나 지난여름 동안, 거의 마주친 일이 없었다. 해리가 너무 잠깐 프리벳가에 돌아왔다가 떠난 데다, 항상 자기 방에 쳐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그날 아침에 밟았던 식은 찻잔이 함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다소 감동을 받긴 했지만, 두들리가 마친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능력을 다 써 버린 듯 보이자 해리는 크게 안도 했다. 두들리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한두번 입을 벙끗거리더니 얼굴만 빨개진 채,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때 페투니아 이모가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헤스티아 존스는 비로소 만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페투니아 이모가 앞으로 달려 나가더니 해리가 아니라 두들리를 껴안는 걸 보고 금세 다시 성난 얼굴이 되었다.

“차..... 착하기도 하지, 우리 아가.”

이모는 두들리의 거대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훌쩍거렸다.

“이..... 이렇게 사..... 사랑스러울 수가..... 고맙다는 마..... 말도 다 하고.....”

“고맙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거든요!”

마침내 헤스티아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단지 해리가 자리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는 말만 했어요!”

“맞아요, 하지만 두들리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건. ‘사랑해’란 말과 같은 거예요.”

해리가 말했다. 마치 방금 두들리가 불타는 건물에서 해리를 구해 내기라도 한 듯이 자기 아들을 꼭 붙잡고 있는 페투니아 이모의 모습을 보자, 해리는 짜증스럽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대체 갈 거야, 말 거야?”

버논 이모부가 또다시 거실 문 앞에 모습을 나타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일정이 아주 빡빡한 줄 알았는데!”

“맞아요, 맞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넋을 놓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데달루스 디글이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 말했다.

“이제 진짜로 떠나야겠군, 해리.....”

그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다가오더니 두 손으로 해리의 손을 감싸 쥐었다.

“행운을 빌겠어,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라네. 모든 마법 세계의 희망이 자네의 어깨에 달려 있어.”

“오,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해리가 말했다.

“안녕, 해리. 항상 너를 생각할게.”

헤스티아도 해리의 손을 꼭 잡으며 인사했다.

“모든 일이 잘되길 빌어요.”

해리가 페투니아 이모와 두들리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오, 우리는 틀림없이 결국에는 제일 좋은 친구 사이가 될텐데 뭐.”

디글이 유쾌하게 말하더니 모자를 흔들며 방을 나섰다. 헤스티아가 그 뒤를 따랐다.

두들리는 자신을 꼭 붙들고 있던 엄마를 살짝 떼어 놓더니 해리를 향해 걸어왔다. 해리는 마법으로 그를 위협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러야만 했다. 그때 두들리가 커다란 분홍색 손을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이런 제기랄, 두들리.”

해리는 또다시 터져 나오는 페투니아 이모의 흐느낌을 무시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디멘터 놈들이 너에게 새로운 성격이라도 불어넣어 준거니?”

“나도 몰라.”

두들리가 웅얼거렸다.

“또 보자, 해리.”

“그래..... 어쩌면.”

해리는 두들리의 순을 잡고 흔들었다.

“몸조심해, 빅D"

두들리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듯 하더니, 쿵쿵거리며 방을 나가 버렸다. 해리는 자갈이 깔린 진입로를 걸어가는 그의 육중한 발소리를 들었다. 곧이어 자동차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있던 페투니아 이모는 그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설마 해리와 단둘이 남아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았다. 이모는 눈물에 젖은 손소건을 황금히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더니 말했다.

“그럼..... 잘 가거라.”

그리고는 해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안녕히 가세요.”

해리가 인사를 했다.

이모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잠깐 동안 해리는 이모가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전전공공하는 듯한 묘한 표정을 지으며 당장이라도 말을 할 듯이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살짝 젓더니 남편과 아들의 뒤를 쫒아서 부산스럽게 방을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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