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장 (159/194)

제 2장 추도문

해리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꼭 움켜쥐고 들릴 듯 말 듯 욕을 하면서, 해리는 어깨로 침실문을 밀어젖혔다. 순간 와작하고 도자기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침실 문 앞 복도에 누군가 갖다 놓은 식은 찻잔을 밟아 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게 뭐.....?”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프리벳가 4번지의 층계참에는 개미 새끼 한마리 얼씬대지 않았다. 여기에 찻잔을 갖다 놓는 건 아마 두들리의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함정이었을 것이다. 피가 흐르는 손을 높이 치켜든 채, 해리는 다른 한 손으로 부서진 찻잔 조각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침실문 안쪽에 바로 보이는, 이미 쓰레기가 꽉 찬 휴지통에 버렸다. 그런 다음 해리는 쿵쿵거리며 욕실로 가서 손가락을 수도꼭지 밑에 갖다 댔다.

마법을 쓸 수 없는 날이 아직도 나흘이나 남았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스럽고 한심하고 바보 같았다..... 하지만 어쨋든 손가락에 난 이 날카로운 상처가 그를 좌절시켰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리는 한 번도 상처 치료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이 그의 마법 교육에 있어서 심각한 결함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당장 실행해야 할 계획들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했다. 나중에 헤르미온느에게 상처 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해리는 커다란 휴지뭉치를 가져다가 쏟아진 차를 최대한 말끔하게 닦아 냈다. 그러곤 침실로 돌아가서 문을 쾅 닫아 버렸다.

해리는 학교 트렁크를 바닥까지 싹 비우느라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6년전 처음 학교 트렁크를 싼 이후로 처음이었다. 매 학기가 새로 시작될 때마다, 그저 가방에서 위에 있는 내용물의 4분의 3만 덜어내고, 나머지 온갖 잡동사니들은 그냥 바닥에 내버려 둔채, 새로 산 물건들을 다시 채워 넣곤 했던 것이다. 덕분에 트렁크 바닥에는 낡은 깃펜이니 바싹 마른 딱정벌레 눈알이니 더 이상 맞지 않는 양말 한 짝 등이 굴러 다니고 있엇다. 방금 전에도 이 잡동사니 속에 손을 넣었다가 오른손 네번째 손가락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얼른 빼 보니,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이제 좀 더 조심스럽게 작업을 계속했다. 다시 트렁크 옆에 무릎을 끓고 앉아 바닥을 조심조심 더듬었다. ‘케드릭 디고리 이겨라’, ‘포터는 야비하다’란 글씨가 희미하게 교대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옛날 배지와 금이 가고 망가진 스니코스코프, 그리고 R.A.B.라는 서명이 적힌 쪽지가 감추어져 있는 황금 로켓을 끄집어낸 끝에, 비로소 손에 상처를 입힌 날카로운 물건을 찾아낼 수 잇었다. 해리는 한눈에 그 물건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5센티미터 길이의 유리 조각으로, 세상을 떠난 대부 시리우스가 준 마법 거울이었다. 해리는 그것을 옆에 내려놓은 다음, 또 다른 파편이 없는지 조심스럽게 트렁크 안을 뒤졌지만, 대부의 마지막 선물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잘게 부서진 유리 가루만이 제일 바닥에 깔린 잡동사니들에 달라붙어 모래알처럼 반짝거렸다.

해리는 몸을 일으키고 앉아서 손가락에 상처를 입힌 날카로운 거울 조각을 살펴보았다. 거울 표면에는 자신의 밝은 초록색 눈동자만이 반사되어 보일 뿐이었다. 해리는 그날 아침에 받아서 읽지도 않은 채 침대에 던져 놓은 <예언자 일보>위에 거울 조각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트렁크 바닥에 남은 나머지 잡동사니들을 향해 맹렬하게 덤벼듦으로써, 깨어진 거울의 발견이 불러일으킨, 애타는 그리움과 쓰라린 후회와 가슴 아픈 기억들의 갑작스런 홍수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애썻다.

쓸모없는 물건들은 버리고, 앞으로 필요한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따로 구별하면서 트렁크를 완전히 비우는 데에는 다시 한 시간이 더 걸렷다. 교복과 퀴디치 운동복, 냄비, 양피지, 깃펜, 그리고 교과서 대부분은 두고 가기 위해서 한쪽 구석에 쌓아 놓았다. 해리는 과연 이모와 이모부가 이 물건들을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아마 무슨 끔찍한 범죄의 증거라도 되는 양, 한밤중에 몰래 태워 버릴 것이다. 머글 옷과 투명망토, 마법약 제조도구, 몇권의 책, 해그리드가 예전에 준 사진첩, 편지 뭉치, 그리고 지팡이는 낡은 배낭속에 다시 넣었다. 배낭 앞주머니에는 호그와트 비밀지도와 R.A.B.서명이 있는 쪽지가 담긴 로켓을 넣었다. 이 목걸이는 이 자리에 들어가는 명예를 누릴만한 가치가 있엇다. 실제로 값나가는 물건이라서가 아니라(사실 일반적인 의미로 보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가 컸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눈처럼 하얀 부엉이 헤드위그와 나란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신문 더미 뿐이었다. 올여름 프리벳가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에 한 장씩 배달된 것이었다.

해리는 마루에서 일어나서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신문을 뒤적거리면서 한 장 한 장씩 쓰레기 더미위로 던져도 헤드위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이 들었거나 혹은 잠든 척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요즘 새장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시간을 제한 했기 때문에, 헤드위그는 화가 나 있었다.

신문 더미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자 해리는 차츰 속력을 늦추었다. 그리고 여름을 보내러 프리벳가로 돌아온 직후에 배달되었던 신문을 찾아보았다. 그가 기억하기론, 그 신문의 1면에는 호그와트의 머글 연구 과목 선생인 채러티 벌베이지의 사임에 관한 짤막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마침내 그 신문을 발견하자 해리는 10면을 펼쳐들고 책상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찾던 기사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알버스 덤블도어를 기억하며

-엘피아스 도지

알버스 덤블도어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열한 살때였다. 그날은 우리가 호그와트에 입학한 첫날이었다. 그와 내가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 우리 둘다 자신이 왕따라고 느꼇기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에 들어오기 직전 드래곤 수두에 걸렸고, 전염성이 없어진 후에도 곰보자국이나 푸르스름한 얼굴색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를 꺼렸다. 한편 알버스는 원치 않는 악명을 짊어지고 호그와트에 들어왔다. 불과 1년 전에 그의 아버지 퍼시발이 세 명의 어린 머글들에게 잔인하고 널리 알려진 공격을 가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알버스는 절대로 자기 아버지(결국 아즈카반에서 세상을 떠났다)가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부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간신히 용기를 내어 그에게 물어보았을때, 알버스는 아버지가 죄를 지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 비극적 사건에 대해서 그 이상 언급하는 것은 거부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햇지만 말이다. 사실 어떤이들은 그의 아버지의 행동을 높이 칭송했고, 알버스 역시 반 머글주의자일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오해였다. 알버스를 알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증언하듯이, 그는 반 머글적인 성향을 눈곱만큼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반대로 머글들의 권리에 대한 확고한 지지때문에 그 후로 수년 동안 많은 적들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불과 몇 달이 지나자, 알버스의 아버지의 명성은 아들의 유명세에 가려 빛을 잃기 시작했다. 1학년을 마칠 무렵에는, 그는 결코 반 머글주의자의 아들이 아니라 오직 호그와트 학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학생으로 기억될 뿐이었다. 우리 중에서 그의 친구가 되는 특권을 누린 학생들은, 그가 항상 기꺼이 베풀어 주는 도움과 격려는 말할 것도 없고, 모범적인 그의 행동으로 인해서 많은 덕을 보았다. 나중에 알버스는, 이미 그 시절부터 남을 가르치는 일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꼇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그는 학교에서 주는 상을 모두 휩쓰는데 그치지 않고, 곧 당대에 가장 유명한 마법사들과 정기적으로 서신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중에서 유명한 연금술사인 니콜라스 플라멜과 저명한 역사학자인 바틸다 백셧, 그리고 마법 이론가인 아달버트 와플링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그가 쓴 여러 논문들은 <오늘날의 변신술>,<마법의 난제들>,<실용 마법약>등의 학술 잡지에 실렸다. 덤블도어의 장래는 별처럼 창창해 보였다. 문제는 오직 그가 언제 마법부의 장관이 되느냐 하는 것 뿐이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가 장관이 될 때가 되었다는 말이 종종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알버스는 단 한 번도 장관 자리에 대한 야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우리가 호그와트 생활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었을때, 알버스의 동생인 애버포스가 입학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달랐다. 애버포스는 결코 학구적이지 않았고, 알버스와는 달리 합리적인 토론보다는 결투를 통해서 갈등을 해결하기를 더 좋아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추측하듯이, 두 형제가 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토록 서로 다른 두 소년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사이좋게 지냈다. 사실 애버포스 입장에서 말하자면, 알버스의 그늘 밑에서 사는 것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항상 알버스 보다 뒤쳐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친구가 되는 데 꼭 뒤따르는 위험요소였으니, 동생이라고 해서 더 유쾌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알버스와 내가 호그와트를 졸업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당시 전통이었던 세계 여행을 함께 떠나기로 계획했다. 각자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서기 전에, 다른 나라의 마법사들을 만나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이 우리를 방해했다.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날 밤에, 알버스의 어머니인 켄드라가 돌아가신 것이다. 이제 알버스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생계를 이어갈 유일한 책임자가 되었다. 나는 여행을 연기하고 켄드라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조의를 표했다. 그런 다음 혼자서 외로운 여행길에 올랐다. 돌봐야 할 어린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얼마 안 되는 금화를 물려받은 알버스는 더 이상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날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교류가 뜸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어쩌면 눈치없게도, 알버스에게 여행 중에 본 놀라운 일들에 대해 자세히 써서 보냈다.그리스에서 키메라들을 만나 간신히 도망친 이야기며 이집트 연금술사들이 하는 각종 실험에 대해서까지 말이다. 반면 알버스의 편지에는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었다. 분명 그토록 명석한 마법사에게는 짜증이 날 정도로 지루한 하루하루였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이 끝날 무렵, 나만의 여행에 푹 빠져 있던 내게 너무나 끔직한 소식이 전해졌다. 덤블도어에게 또 다른 비극이 닥쳐온 것이다. 바로 그의 여동생인 아리애나의 죽음이었다.

비록 아리애나가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기는 했지만, 어머니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어 잇달아 찾아온 불행은 두 형제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알버스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모든 사람들-나도 그 운 좋은 사람들 중 하나인데-은 아리애나의 죽음과 그에 대해 알버스가 느끼는 개인적인 죄책감(물론 그의 잘못은 전혀 아니지만)이 그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고국으로 돌아온 나는 일찍부터 어른들의 고통을 경험한 한 젊은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알버스는 전보다 훨씬 말수도 줄고 더 어두워져 있었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한것은, 아리애나의 죽음이 알버스와 애버포스의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어 주기는 커녕 서로 더 소원해지게 했다는 사실이었다(얼마 지나자 소원함은 사라졌다. 몇 년후에 그들은 비록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분명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관계가 되었다.). 알버스는 그때부터 부모님이나 아리애나에 대해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고, 친구들도 그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계속된 업적에 대해 쓰려면 깃펜이 몇 개는 더 필요할 것이다. 그가 위즌가모트의 의장으로 있는 동안 남긴 수많은 판례들에서 보여 준 지혜는 물론이고, 용의 피를 사용하는 열두 가지 방법의 발견을 비롯하여 마법 학계에 기여한 헤아릴수 없이 많은 공헌들은 다음 세대에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1945년에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가 벌였던 마법 대결을 능가할 만한 시합은 없다고 말한다. 이 대결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은, 이 비범한 마법사 두 사람이 결투를 벌이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경외에 대해 쓰곤 했다. 덤블도어의 승리와 그에 따라 마법 세계에 나타난 여러가지 결과들은 마법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것은 국제 비밀 법령의 도입이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의 몰락에 필적할 만한 것이었다.

알버스 덤블도어는 결코 자만하거나 허영을 부리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서든지, 아무리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해도, 장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일찍 가족을 잃은 경험이 그에게 위대한 인류애와 세상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을 키워 주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와 나누었던 우정을 그리워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상실은 마법사 세계가 잃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역대 호그와트 교장들 중에서 덤블도어야말로 가장 커다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가장 커다란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란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평생 살아온 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내가 처음 그를 만났던 그날에 드래곤 수두에 걸린 어린 소년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던 그 모습 그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언제나 더 커다란 선을 위해 노력하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해리는 신문을 다 읽은 후에도 멍하니 추모기사 옆에 실린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낯익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신문에 난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해리를 꿰뜷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슬픔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그의 마음을.

해리는 평소 덤블도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추모기사를 읽고 나니, 그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해리는 덤블도어 역시 어린 시절이나 청년 시절을 보냈을 거라는 상상을 단 한번도 해 보지 않았다. 웬지 덤블도어는 해리가 알았던 그 모습 그대로, 머리가 하얗게 센 기품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났을 것 같았다. 십대 시절의 덤블도어를 상상하는 것은 멍청한 헤르미온느나 온순한 폭탄 꼬리 스크루트를 상상하는 것 만큼이나 어색하고 이상했다.

해리는 한 번도 덤블도어에게 과거를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랬다면 틀림없이 기분이 어색했을 것이고, 심지어 무례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덤블도어가 그린델왈드와 전설적인 대결을 펼쳤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는데도, 해리는 덤블도어에게 그 대결이 과연 어떠했는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덤블도어의 다른 유명한 업적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어제나 해리의 과거, 해리의 미래, 해리의 계획.... 해리, 해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자신의 장래가 아무리 커다란 위험에 처해 있고 불확실하다 해도, 덤블도어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걸 묻지 못한 것은 참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를 놓쳐 버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가 덤블도어에게 딱 한 번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웬지 덤블도어가 솔직히 대답하지 않았다는 의심이 드는 딱 한 가지 질문이기도 했다.

“교수님은 이 거울을 보면 뭐가 보이나요?”

“나? 두꺼운 양모 양말 한 켤레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지.”

몇 분 동안의 생각에서 깨어난 해리는 <예언자 일보>에서 추모 기사를 오려 내어 조심스럽게 접었다. 그리고 <실용 방어마법과 사용법>의 초판본 안에 끼워 넣었다. 그런 다음 남은 신문들을 버릴 쓰레기 더미에 던져 넣고 방 안을 향해 돌아섰다. 방은 훨씬 더 말끔해 보였다. 남아 있는 것은 침대에 얌전히 놓여 있는 오늘 날짜 <예언자 일보>와 그 위에 놓인 깨진 거울뿐이었다.

해리는 방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리고 거울 조각을 밀쳐놓고 신문을 펼쳐 들었다. 오늘 아침 일찍 우편 배달 부엉이게게 돌돌말린 신문을 받았을때, 머리기사만 대충 흟어보고 볼드모트에 대한 기사가 한 줄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한쪽으로 밀쳐 두었던 것이다. 해리는 마법부가 <예언자 일보>에 볼드모트의 기사를 싣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 했다. 그러므로 이제야 아침에 보지 못하고 놓쳤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1면 하단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덤블도어의 사진위로 작은 표제가 실려 있었다.

덤블도어-드디어 진실이 밝혀질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당대에 가장 위대한 마법사라고 생각했던 불완전한 천재의 충격적인 이야기, 다음 주에 전격공개. 리타 스키터는 은빛 수염을 기른 온화한 현자라는 덤블도어의 대중적 이미지를 걷어 내고,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방탕했던 젊은 시절, 평생에 걸친 불화 그리고 무덤까지 가지고 간 추악한 비밀들을 낱낱이 밝혀낸다. 왜 그는 마법부의 장관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단지 평범한 교장으로 남아야만 했는가? 불사조 기사단이라고 알려진 비밀 조직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덤블도어는 실제로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가?

이와 같은 의문들과 그 밖의 여러 의문들에 대한 대답이 새로 출간되는 충격적 전기,<알버스 덤블도어의 삶과 거짓말>(리타 스키터 지음)에서 명쾌하게 밝혀진다. 관련기사 베티 브레이스웨이트의 독점 인터뷰, 13면에 계속

해리는 신문을 펼쳐서 13면을 찾아보았다. 또 다른 낯익은 얼굴이 실린 사진 한 장이 그 지면의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었다. 정성 들여 구불구불하게 손질한 금발에 보석 박힌 안경을 쓴 여자가 이빨을 다 드러내며 분명 제 딴에는 애교있는 미소라고 여겼을 표정을 짓고 있엇다. 그리고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해리는 최대한 이 구역질나는 모습을 무시하려고 애를 쓰며, 기사를 읽어내려 갔다.

개인적으로 만난 리타 스키터는 무자비하기로 유명한 그녀의 글이 주는 인상보다는 훨씬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아늑한 자택의 현관 복도에서 나를 반갑게 맞은 그녀는 곧장 나를 부엌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따뜻한 차와 파운드케이크 한조각을 내놓았다.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가십을 한 보따리 풀어 놓는 것도 잊지않았다.

“물론 덤블도어는 전기 작가들의 꿈이죠.”

스키터가 말했다.

“그토록 갖가지 사건으로 가득 찬 긴 생애를 살았으니까요. 분명히 제 책을 시작으로 해서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올 거예요.”

분명 스키터는 출발이 빨랐다. 9백페이지에 달하는 그녀의 전기는 지난 6월에 덤블도어가 수수께끼 같은 죽음을 맞이한 뒤로 불과 4주만에 완성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이토록 초특급으로 일을 해닐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오, 당신도 저만큼이나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해 왔으니, 마감일에 맞추어 기사를 쓰는 것이 제2의 천성처럼 몸에 배었을 거예요. 저는 마법 세계 전체가 이 사건의 전모를 간절히 원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그 요구를 충족시켜 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나는 위즌가모트의 특별고문이자 알버스 덤블도어의 오랜 친구인 엘피아스 도지의 널리 알려진 발언을 언급했다. 그는 “스키터의 책은 개구리 초콜릿 카드만큼의 진실도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자 스키터는 고개를 젖히고 큰 소리로 웃었다.

“오, 깜찍한 노인네! 몇 년 전인가 인어들의 권리에 대해서 그와 인텨뷰를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아, 가엾어라. 완전 노망난 사람 같았어요. 우리가 원더미어 호수(잉글랜드 북서부에 있는 잉글랜드 최대호수:역주)바닥에라도 앉아 있는 줄 아는지 계속해서 저더러 송어(‘trout'에는 ’송어‘와 ’짜증나는 여자‘라는 뜻이 있음:역주)를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녀의 책이 부정확하다는 엘피아스 도지의 비난은 여기저기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연 스키터는 불과 4주라는 짧은 시간이 덤블도어의 길고 비범한 생애를 완전히 그려 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이, 참”

스키터는 내 손마디를 다정하게 살짝 내려치며 활짝 미소지었다.

“겔레온 한 보따리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는지 당신도 나만큼이나 잘 알잖아요. ‘안 되요’란 말을 막는데 특효약이죠. 게다가 예리하고 훌륭한 속기 깃펜도 있고요! 어쨋든 덤블도어에 대한 험담을 제공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니까요. 당신도 알겠지만 세상 사람들 전부 덤블도어를 그렇게 대단하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사람들의 심기도 엄청나게 많이 건드렷죠. 늙고 교활한 도지도 그 높은 히포그리프에서 떨어질 수 있어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기자들이 기꺼이 자기 지팡이와도 맞바꿀 그런 소식통과 제가 만났거든요. 그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공식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었는데, 덤블도어가 가장 난폭하고 소란스런 젊은 시절을 보낸 때 그와 아주 가까이 지냈답니다.”

스키터의 전기에 대한 사전 광고를 보면, 덤블도어가 흠 없는 삶을 살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이 될 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음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키터가 밝혀낸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무었이었을까?

“오우, 베티, 괜한 소리 말아요. 사람들이 책을 사기도 전에 나더러 제일 흥미로운 대목을 다 말해 버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스키터는 깔깔 웃었다.

“하지만 분명히 약속드릴 수 있어요. 아직도 덤블도어가 그의 흰 수염처럼 결백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이 번쩍날 거에요! 덤블도어가 그 사람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덤블도어 자신이 젊은 시절에 어둠의 마법에 손을 댄 적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걸요?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그토록 관용을 호소해 온 마법사가 젊은 시절에는 전혀 너그럽지 못했다는 사심도! 그래요, 알버스 덤블도어는 수상한 집안내력은 말할 것도 없고 지극히 어두운 과거를 지녔어요. 그리고 그걸 감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죠.”

나는 스키터에게 덤블도어의 동생인 애버포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잇는지 물었다. 15년전 그가 부적절한 마법 사용으로 위즌가모트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은 작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오, 애버포스는 그 더러운 똥구덩이의 일각일 뿐이죠.”

스키터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염소들이랑 빈둥대며 놀기 좋아하는 동생이라든가. 머글들을 병신으로 만든 아버지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그보다 훨씬 더 심한 거예요. 어쨋든 덤블도어는 두 사람 모두 조용히 덮어 둘 수는 없었죠. 양쪽 다 위즌가모트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저의 흥미를 끈 쪽은 오히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었어요. 그래서 약간 파헤쳐 본 결과, 엄청난 범죄의 온상을 발견했죠.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9장에서 부터 12장에 걸쳐 읽으시게 될거에요.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덤블도어가 어쩌다가 코를 부러뜨리게 되엇는지에 대해서 절대 말하지 못했던 것도 당연하다는 겁니다.”

집안의 비밀은 그렇다고 해도, 스키터는 수많은 마법의 발견을 이룬 덤블도어의 명석함까지 부인할 것인가?

“머리는 좀 있는 사람이었죠.”

스키터가 인정했다.

“비록 요즘 들어 과연 그가 이룩했다고 주장하는 모든 업적들이 전적으로 그의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는 하지말 말이죠. 제가 이책의 16장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아이버 딜론스바이는 덤블도어가 그의 논문을 ‘표절’했을 때, 자신은 이미 용의 피를 사용하는 여덟가지 방법을 발견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래도 덤블도어의 어떤 업적들은 그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린델왈드를 패배시킨 그 유명한 사건은 어떤가?

“오, 드디어 그리델왈드 이야기를 꺼내 줘서 기쁘군요.”

스키터가 감질나게 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덤블도어의 그 요란한 승리를 순진하게 바라 보았던 사람들은 폭탄선언을 듣게 될 거예요. 어쩌면 그것도 똥 폭탄을 말이죠. 참으로 더러운 일이죠.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전설적인 엄청난 대결이 진짜 있었다고 너무 확신하지 말라는 겁니다. 제 책을 읽고 나면, 사람들은 결국 그린델왈드가 지팡이 끝에 마법으로 불러낸 하얀 손수건을 달고 조용히 걸어 나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겁니다.”

스키터는 이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대신 우리는 틀림없이 다른 무엇보다도 더욱 그녀의 독자들을 매혹시킬 인간관계로 화제를 돌렸다.

“오, 그래요.”

스키터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이 책의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포터와 덤블도어의 관계를 밝히는 데 할애했어요. 사실 그것은 대단히 불건전하고 심지어 사악한 관계로 알려져 왔지요. 독자 여러분이 그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원한다면, 역시 제 책을 사 보셔야 할 거예요. 하지만 덤블도어가 처음부터 포터에 대해 비정상적인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과연 그것이 그 소년에게 정말 이익이 되는 일이었는지는, 글쎄요, 두고 봐야겠지요. 포터가 누구보다도 힘든 사춘기를 보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니까요.”

나는 스키터에게 아직도 해리와 연락이 되느냐고 물었다. 작년에 스키터는 해리와의 인터뷰로 명성을 날렸다. 그 획기적인 인터뷰에서 포터는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독점 공개한 바 있다.

“오, 그럼요. 우리는 꽤 긴밀한 유대를 맺어 왔거든요.”

스키터가 말했다.

“가엾은 포터에겐 진정한 친구가 거의 없어요. 게다가 우리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인 트리위저드 시합 때 만났잖아요. 저는 아마 해리 포터의 참모습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살아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일 거예요.”

그 말은 자연스럽게 덤블도어의 마지막 순간을 둘러싸고 아직도 떠돌고 있는 수많은 소문들로 이어졌다. 스키터는 덤블도어가 죽을 때 그 자리에 포터가 있었다고 믿고 있는가?

“글쎄요. 너무 많은 이야기는 해 드릴 수가 없네요. 모두 다 제 책에 적혀 있어요. 하지만 호그와트 성의 내부 목격자들은 덤블도어가 쓰러졌는지 누군가 덮쳤는지, 아니면 떠밀렸는지 어쨋든 그런 직후에, 해리가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걸 보았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포터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했지요. 해리가 원한을 품은 것으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죠. 과연 모든 게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 일까요? 그거야 마법사 사회에서 결정할 일이죠. 일단 제 책을 읽어 본 다음에 말이죠.”

이 흥미로운 발언을 끝으로, 나는 스키터와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스키터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될 책을 쓴것만은 확실하다. 한편 덤블도어의 수많은 추종자들은 머잖아 자기네 영웅에 대해서 어떤 사실이 드러날 것인지 두려움에 떨 것이다.

해리는 기사를 마지막 줄까지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멍하니 신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역겨움과 분노가 토할 듯이 밀려올라왔다. 해리는 신문을 돌돌 뭉쳐서 있는 힘껏 벽을 향해 던져 버렸다. 신문 뭉치는 이미 넘쳐 나는 쓰레기통 근처에 쌓아 놓은 폐품 더미 위로 떨어졌다.

해리는 무턱대고 방 안을 성큼성큼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괜히 텅 빈 서랍을 열어 보기도 하고 책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기도 하면서,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 거의 의식이 없었다. 그의 머리속에서는 리타의 기사에 나온 구절들이 뒤죽박죽 떠오르며 자꾸만 맴돌았다.

저는 이 책의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포터와 덤블도어의 관계를 밝히는 데 할애했어요..... 사실 그것은 대단히 불건전하고 심지어 사악한 관계로 알려져 왓지요.....덤블도어 자신이 젊은 시절에 어둠의 마법에 손을 댄 적이 있어요.....대부분의 기자들이 기꺼이 자기 지팡이와도 맞바꿀 그런 소식통과 제가 만났거든요.....

“거짓말이야!”

해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창문 너머로 잔디 깍는 기계를 다시 작동시키려고 멈춰 서 있던 이웃집 사람이 불안한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해리는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 바람에 깨어진 거울이 춤추듯 흔들렸다. 해리는 거울을 집어 들고 손가락 사이로 빙글빙글 돌렸다. 덤블도어와, 리타 스키터가 그의 명예를 더럽히기 위해서 꾸며 낸 거짓말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순간 아주 밝은 푸른색이 번쩍했다. 해리는 그 자리에서 꼼작도 하지 못했다. 이미 베인 손가락이 다시 거울의 깔쭉깔쭉한 가장자리 위로 미끄러졌다. 헛것을 본 것이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해리는 어깨 너머로 힐끗 뒤를 돌아 보았다. 하지만 벽은 페투니아 이모가 고른 그 끔찍한 복숭아 색 그대로였다. 거울에 비칠만한 푸른색이 나는 것은 전혀 없었다. 해리는 다시 거울 조각을 들여다 보았다. 자신의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만이 빤히 마주 보고 있을 뿐이었다.

헛것을 본 것이다.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돌아가신 교장선생님에 대해서 줄곧 생각을 하다보니, 그런 상상을 한것이다. 이 세상에 단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그것은 알버스 덤블도어의 빛나는 푸른 눈이 두 번 다시 해리를 꿰뜷듯이 바라보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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