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장 (155/194)

제28장

왕자의 도주

해리는 자신 또한 한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럴 수는 없어……. 이건 아니야…….

“여길 빠져나가자, 어서.”

스네이프가 명령을 내렸다.

그는 말포이의 목덜미를 움켜쥐더니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성 안으로 그를 끌고 들어갔다. 그레이백과 잔뜩 흥분해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땅딸막한 남매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성 안으로 사라졌을 때, 해리는 이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벽에 몸을 의지한 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마법 때문이 아니라, 공포와 충격 때문이었다. 험상궂게 생긴 죽음을 먹는 자가 마지막으로 탑 꼭대기를 떠나서 성 안으로 사라지려고 할 때, 해리는 투명 망토를 휙 벗어 던졌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죽음을 먹는 자가 뭔가 단단한 것으로 등을 맞은 것처럼 앞으로 푹 고꾸라지며 밀랍 인형처럼 뻣뻣하게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해리는 그의 몸을 타 넘고 어두운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해리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다……. 덤블도어 교수님도 찾아야 하고 스네이프도 붙잡아야 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만약 이 두 가지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다면 지금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있을 텐데……. 덤블도어 교수님이 죽다니 그럴 수는 없어…….

해리는 나선형 계단의 마지막 열 칸을 겅중 뛰어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치켜든 채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섰다. 희미하게 불이 밝혀진 복도는 뽀얀 먼지로 가득했다. 천장이 절반쯤 무너져 내린 것 같았고, 그 앞에서는 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누가 누구와 싸우는 건지 채 분간을 하기도 전에 그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끝났다. 어서 가자!”

그리고 저 멀리 복도 끝을 돌아서서 사라지는 스네이프의 모습이 보였다. 스네이프와 말포이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그 싸움판 속을 잘도 뚫고 나가는 것 같았다. 해리가 그들의 뒤를 쫓아 돌진하자, 한창 싸움을 벌이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몸을 돌리더니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바로 늑대인간 그레이백이었다. 그는 해리가 지팡이를 들기도 전에 먼저 해리를 덮쳤다. 뒤로 벌렁 나자빠진 해리의 얼굴에 더럽고 헝클어진 그의 털이 와 닿았고, 피와 땀 냄새로 범벅이 된 악취가 해리의 코와 입을 막았다. 탐욕스런 뜨거운 숨결이 그의 목덜미에 닿는 순간…….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해리는 그레이백이 그의 몸 위로 푹 쓰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리가 온 힘을 다해서 늑대인간을 옆으로 밀쳐내는 순간, 초록색 불꽃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해리는 재빨리 몸을 숙여 피한 다음, 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한가운데로 돌진했다. 하지만 뭔가 질퍽하고 미끈거리는 것에 발이 걸려서 비틀거렸다. 바닥에는 시체 두 구가 피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은 채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자세히 살펴볼 겨를도 없이, 해리는 저 앞에서 불꽃 같은 붉은 머리가 휘날리는 것을 발견했다. 지니가 땅딸막한 죽음을 먹는 자, 아마커스에게 붙잡혀서 싸우고 있었다. 그자는 쉴 새 없이 저주를 날리고 있었고, 지니는 이리저리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커스는 재미있다는 듯이 킬킬 웃고 있었다.

“크루시오…… 크루시오…… 언제까지나 그렇게 춤을 출 수는 없을걸, 예쁜이…….”

“임페디멘타!”

해리가 소리쳤다.

그의 주문은 아마커스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는 돼지처럼 꽥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붕 날아가서 맞은편 벽에 쾅 부딪히고는 주르르 미끄러졌다. 그 앞으로 론과 맥고나걸 교수, 루핀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들은 제각기 죽음을 먹는 자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해리는 그들 너머로 덩치가 커다란 금발의 마법사와 맞붙어 싸우는 통스를 발견했다. 그 마법사는 사방으로 저주를 날리고 있었는데, 벽에 맞고 이곳저곳으로 튕겨 나온 저주 때문에 돌벽이 갈라지고 가까이에 있는 유리창이 박살났다.

“해리, 어디서 오는 거야?”

지니가 큰 소리로 물었지만, 대답할 틈이 없었다. 해리는 머리를 숙인 채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갔다. 저주 한 방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면서 폭발하자 돌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절대로 스네이프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반드시 스네이프를 잡아야만 해.

“저것들을 잡아!”

맥고나걸 교수가 고함을 질렀다. 해리가 휙 돌아보니 죽음을 먹는 자인 알렉토가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복도를 죽어라 달려가고 있었다 바로 그 뒤를 그의 오빠가 따라가고 있었다. 해리는 재빨리 그들을 쫓아 달려갔지만, 뭔가에 발이 걸려서 누군가의 다리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새파랗게 질려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네빌의 둥근 얼굴이 보였다.

“네빌, 너 괜찮……?”

“나…… 난 괜찮아.”

네빌이 배를 움켜쥐고 더듬더듬 말했다.

“해리…… 스네이프와 말포이가…… 도망쳤어…….”

“나도 알아. 내게 맡겨!”

해리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채, 한창 소동을 벌이고 있는 덩치가 커다란 금발의 죽음을 먹는 자를 향해 주문을 날렸다. 그자는 얼굴에 정통으로 주문을 맞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더니, 빙그르 몸을 돌리고는 비틀거리며 남매의 뒤를 따라 쿵쿵거리며 달아나 버렸다. 황급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해리는 전력을 다해 복도를 달려갔다. 등 뒤에서 쾅쾅 불꽃이 날아오는 것도, 돌아오라는 다른 사람들의 외침도, 바닥에 쓰러진 채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도 모두 무시한 채…….

해리는 미끄러지듯이 모퉁이를 돌아섰다. 피 묻은 운동화 바닥이 미끄러웠던 것이다. 스네이프는 벌써 저 만큼 앞서 출발한지 오래였다. 혹시 벌써 필요의 방에 있는 캐비닛 안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아니면 죽음을 먹는 자들이 다시 그 길로 되돌아가지 못하도록 기사단이 안전하게 조치를 취해 놓았을까? 텅 빈 복도를 정신없이 달려가는 해리의 귀에는 쿵쿵 울리는 자신의 발소리와 두방망이질하는 심장 박동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바로 그때 피 묻은 발자국 하나가 눈에 띄더니, 죽음을 먹는 자 중 한 명이 앞문을 향해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필요의 방이 봉쇄된 게 분명했다.

해리가 또 다른 모퉁이를 미끄러지듯이 돌아서는 순간, 저주 한 방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는 갑옷 뒤로 얼른 몸을 숨겼고, 저주를 받은 갑옷은 요란하게 폭발했다. 바로 그때 대리석 계단을 향해 저주를 날렸지만 계단 꼭대기에 걸려 있는 초상화에 맞고 말았다. 초상화 속에 있던, 가발을 쓴 서너 명의 마녀들은 아우성을 치며 옆에 있는 그림 속으로 도망쳤다. 해리가 부서진 갑옷 더미 뒤에서 뛰어나왔을 때, 더 많은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해리는 그 남매를 따라잡고 스네이프와 말포이를 좀 더 바짝 추격하게 되길 바라면서 지름길로 뛰어들었다. 지금쯤 그들은 제일 아래층에 도착했을 게 분명했다. 감추어진 계단 중간쯤에 있는 사라지는 층계를 잊지 않고 뛰어넘은 해리는 벽걸이 양탄자를 뚫고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는 후플푸프 학생들이 잠옷 바람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해리!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어! 누군가 어둠의 표식이 어쩌고저쩌고 떠들던데…….”

어니 맥밀란이 말을 꺼냈다.

“저리 비켜!”

해리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는 남학생 두 명을 밀치며, 전속력으로 계단을 향해 뛰어가서 대리석 계단을 구르듯이 달려 내려갔다. 떡갈나무 현관문은 부서진 채 활짝 열려 있었고 바닥 위에는 핏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벽 저쪽에는 잔뜩 겁에 질린 몇몇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는데, 그중 한두 명은 아직도 두 팔을 얼굴로 가리고 있었다. 거대한 그리핀도르의 유리 시계가 아직도 요란하게 덜걱덜걱 소리를 내면서 바닥 위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해리는 현관 복도를 가로질러 어두운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세 사람이 교문을 향해서 잔디밭을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교문을 넘으면, 그들은 순간이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림자의 윤곽으로 보아, 하나는 덩치 큰 금발의 죽음을 먹는 자였고, 그 앞은 스네이프와 말포이가 분명했다…….

해리는 그들의 뒤를 쫓아 힘껏 달려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해리의 폐를 찌르는 듯이 파고들었다. 저 멀리서 불빛이 번쩍하면서 순간적으로 그가 쫓는 무리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해리는 그 불빛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계속해서 달려갔다. 아직도 저주를 쏘아 맞히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또다시 불빛이 번쩍하면서 고함 소리가 났고, 그에 맞서는 섬광이 번쩍거렸다. 해리는 비로소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두막집에서 달려 나온 해그리드가 도망치고 있는 죽음을 먹는 자들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해리는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가 불에 데이는 듯이 쿡쿡 쑤시고 폐가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지만, 머릿속으로 안타깝게 부르짖으며 더욱더 속력을 냈다. 해그리드는 안 돼……. 해그리드마저 그럴 수는 없어…….

그때 뭔가가 해리의 등을 세게 강타했다. 해리는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양쪽 콧구멍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해리는 바닥을 뒹굴면서도, 방금 전에 그가 지름길을 이용해서 앞질렀던, 죽음을 먹는 자 남매가 그의 뒤를 바짝 쫓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지팡이를 쏠 준비를 했다.

“임페디멘타!”

해리는 주문을 외치면서 다시 몸을 굴려 캄캄한 운동장에 몸을 납작 엎드렸다. 기적적으로 그가 쏜 주문이 둘 중 하나에 명중했다. 주문을 맞은 자가 비틀거리며 나머지 사람을 덮쳐 둘 다 쓰러지고 말았다.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죽을힘을 다해 스네이프의 뒤를 쫓아갔다…….

불현듯 구름 뒤에 가려져 있던 초승달이 나타나면서, 달빛에 해그리드의 거대한 모습에 윤곽을 드러냈다. 금발의 죽음을 먹는 자는 이 사냥터지기에게 거듭해서 저주를 쏘아 대고 있었다. 하지만 해그리드가 엄청난 괴력과 거인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억센 피부가 그를 보호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말포이와 스네이프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교문을 지나서 순간이동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해리는 적과 싸우고 있는 해그리드를 그대로 휙 지나쳐서 스네이프의 등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소리쳤다.

“스투페파이!”

저주는 빗나가고 말았다. 붉은 섬광이 스네이프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스네이프가 “드레이코, 뛰어!”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돌연 몸을 돌렸다. 이제 그와 해리는 20미터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는 동시에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크루…….”

그러나 해리가 미처 주문을 다 끝내기도 전에 스네이프가 저주를 맞받아치는 바람에 해리는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해리는 빙그르 몸을 굴려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덩치 큰 죽음을 먹는 자가 등 뒤에서 소리쳤다.

“인센디오!”

해리의 귀에 쾅 하고 요란한 폭발음이 들리더니, 오렌지색 불꽃이 그들 머리 위로 춤추듯이 쏟아져 내렸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이 불길에 휩싸였던 것이다.

“팽이 저 안에 있는데…… 이 못된 놈!”

해그리드가 호통을 쳤다.

“크루…….”

해리는 훨훨 타오르는 불길 속에 모습이 드러난 형체를 향해 또다시 지팡이를 겨누며 소리쳤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이번에도 주문을 막아 냈다. 해리는 조롱하듯이 미소를 짓는 그를 볼 수 있었다.

“너는 절대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쓸 수 없어, 해리!”

스네이프는 이글거리는 불길과 해그리드의 고함 소리, 오두막집 안에 갇힌 팽의 울부짖는 소리가 가득한 혼란 속에서 소리쳤다.

“너에겐 그럴 만한 배짱도 능력도 없으니까…….”

“인카서…….”

해리가 목청을 높였지만, 스네이프는 간단하게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주문을 막아냈다.

“덤벼라!”

해리가 그에게 악을 썼다.

“어서 덤벼, 이 비겁한 놈아!”

“나더러 비겁한 놈이라고 했나, 포터?”

스네이프가 고함을 질렀다.

“네 아버지는 4 대 1이 아니면 절대 나에게 덤벼들지도 못했지. 넌 그런 작자를 뭐라고 부를 텐가?”

“스투페…….”

“네가 입을 다물고 생각을 감추는 법을 배울 때까지, 나는 막아 내고 막아 내고 또 막아 낼 것이다, 포터!”

스네이프가 다시 한 번 저주를 막아 내면서 조롱했다.

“자, 어서 가!”

스네이프가 해리의 뒤에 있는 덩치 큰 죽음을 먹는 자에게 소리쳤다.

“이제 그만 가야 해. 마법부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에!”

“임페디…….”

해리가 주문을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끔찍한 고통이 그를 엄습했다. 해리는 풀밭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누군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해리는 고통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았다. 스네이프는 그가 미치거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를 고문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안 돼!”

그때 스네이프의 성난 목소리가 들리더니, 고통이 갑자기 닥쳐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느닷없이 씻은 듯 사라졌다. 해리는 숨을 헉헉거리며 지팡이를 움켜쥔 채 캄캄한 풀밭 위에 몸을 웅크리고 쓰러졌다. 그의 머리 위로 어디에선가 스네이프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받은 명령을 잊어버렸나? 포터는 어둠의 마왕 것이다! 우리는 그를 그냥 두고 가야 한다! 어서 가라! 어서 가!”

덩치 큰 죽음을 먹는 자와 남매가 스네이프의 명령에 따라 교문을 향해 달려가자, 해리는 얼굴을 맞대고 있는 땅이 쿵쿵 울리는 것을 느꼈다. 해리는 분노가 너무나 치밀어 올라 제대로 고함조차 지를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죽든 살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다시 힘을 모아 일어선 해리는 스네이프를 향해 무작정 비틀비틀 걸어갔다. 지금은 볼드모트만큼이나 증오스런 저 남자를 향해서……

“섹튬……!”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까닥하자, 저주는 다시 튕겨져 나갔다. 이제 해리는 스네이프와 불과 한 발자국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스네이프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비웃지도 야유를 던지지도 않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비친 그의 얼굴은 오직 분노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해리는 온 힘을 다해 정신을 집중했다.

“레비…….”

“그만 둬, 포터!”

스네이프가 소리를 질렀다. 쾅 하는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해리는 또다시 붕 하고 뒤로 날아가서 바닥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지팡이마저 그의 손에서 튕겨 나가고 말았다. 해그리드의 고함 소리와 팽의 울부짖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스네이프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덤블도어가 그랬던 것처럼 지팡이도 없이 무기력하게 땅에 쓰러져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불타는 오두막집의 불꽃에 비친 스네이프의 창백한 얼굴은, 그가 덤블도어를 죽이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극도의 증오심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감히 내가 만든 주문을 나에게 쏜단 말인가, 포터? 그걸 만들어 낸 사람은 나, 바로 이 혼혈 왕자란 말이다! 그런데 네가, 네 비열한 아비처럼 내가 만든 주문으로 날 공격한단 말이지? 어림없는 짓이지……. 안 돼!”

해리가 지팡이를 향해 잽싸게 몸을 날렸지만, 스네이프가 주문을 쏘아서 지팡이를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날려 버렸다.

“날 죽여라.”

해리가 헐떡거리며 말했다. 더 이상 아무 두려움도 느낄 수 없었다. 오직 분노와 경멸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를 죽였던 것처럼 나를 죽여라, 이 비겁한 놈아!”

“닥쳐!”

스네이프가 미친 듯이 악을 써 댔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발광한 짐승처럼 무섭게 변했다. 마치 그들 뒤의 훨훨 타고 있는 오두막집 안에서 날뛰며 울부짖는 개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날 비겁한 놈이라고 말하지 마!”

스네이프가 휙 하고 허공을 내려쳤다. 순간 뭔가 하얗게 달아오른 채찍 같은 것이 해리의 얼굴을 후려치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그는 쾅 하고 뒤로 쓰러졌다. 그의 눈앞에 불빛이 번쩍거리고, 잠깐 동안 호흡이 완전히 멈춰 버린 것 같았다. 그때 머리 위로 퍼덕퍼덕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뭔가 거대한 것이 밤하늘의 별을 가렸다. 벅빅이 스네이프에게 덤벼든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그를 공격하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해리는 이 틈을 타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방금 전에 머리를 땅에 부딪힌 충격 때문에 아직도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죽음힘을 다해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거대한 괴물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그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해리는 벅빅이 그렇게 사납게 소리 지르는 것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가까스로 일어선 해리는 이제라도 다시 그의 뒤를 쫓겠다는 생각으로 애타게 지팡이를 찾았다. 하지만 손으로 잔디밭에 버려진 나뭇가지들을 더듬으면서도,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침내 지팡이를 찾아 돌아섰을 때에는, 교문 위를 맴도는 히포그리프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스네이프는 교정 안을 벗어나자마자 순간이동을 하여 사라지고 없었다.

“해그리드.”

해리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해그리드?”

그가 불타는 집을 향해서 비틀비틀 다가갔을 때, 거대한 몸집을 한 사람 하나가 팽을 들쳐 메고 불길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해리는 그가 무사한 데 대해 감사의 말을 부르짖으며 땅 위에 털썩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사지가 다 떨리고 마디마디가 쿡쿡 쑤셨다. 숨을 쉴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해리, 괜찮니? 괜찮은 거야? 말 좀 해 봐라, 해리…….”

수염이 덥수룩한 해그리드의 커다란 얼굴이 밤하늘의 별을 가리며 해리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해리는 개털과 나무가 불에 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 손을 내밀자, 그의 옆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팽의 살아 있는 몸뚱이와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 괜찮아요.”

해리가 헐떡이며 말했다.

“해그리드는요?”

“나야 물론 멀쩡하지……. 그 정도 공격으로는 끄떡도 없다.”

해그리드가 해리의 팔 밑으로 손을 뻗어 그를 번쩍 들어 올리자, 순간 해리의 발이 땅에서 붕 하고 떠올랐다. 해그리드는 그를 다시 똑바로 일으켜 세워 주었다. 해리는 해그리드의 한쪽 눈 밑에 난 깊은 상처로부터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눈은 빠르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오두막집의 불부터 꺼야겠어요. 아구아멘티 마법을 쓰면…….”

“그 정도 마법은 나도 안다.”

해그리드가 아직도 연기가 나는 분홍색의 꽃무늬 우산을 들고 소리쳤다.

“아구아멘티!”

우산 끝에서 물줄기가 발사되었다. 해리도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지팡이를 간신히 치켜들며 중얼거렸다.

“아구아멘티!”

해리와 해그리드는 마지막 불길이 사그라질 때까지 함께 오두막집에 물줄기를 퍼부었다.

“이만하길 다행이야.”

몇 분 후에 해그리드가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의 잔해를 둘러보며 희망적인 어조로 말했다.

“전부 다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다시 복구해 주실 수 있겠는걸…….”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해리는 뱃속이 타는 듯한 격렬한 고통을 느꼈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침묵 속에서 무시무시한 공포가 밀려들었다.

“해그리드…….”

“보우트러클의 양쪽 다리를 묶어 주고 있었는데, 그자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어.”

해그리드는 잿더미가 된 자신의 오두막집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한 채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그자들 때문에 보우트러클이 나뭇가지처럼 탈 뻔했어. 가엾은 어린 것들…….”

“해그리드…….”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일이냐, 해리? 죽음을 먹는 자들이 성에서 달려 나오는 걸 보긴 했는데, 도대체 스네이프는 그자들이랑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어디로 간 거지? 죽음을 먹는 자들을 쫓아간 건가?”

“그자가…….”

해리는 목청을 가다듬어야 했다. 연기와 두려움 때문에 목이 바싹 말랐던 것이다.

“해그리드, 그자가 죽였어요…….”

“죽였다고?”

해그리드가 눈을 크게 뜨고 해리를 내려다보며 큰 소리로 물었다.

“스네이프가 죽였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해리?”

“덤블도어 교수님을…….”

해리가 간신히 말을 이었다.

“스네이프가 죽였어요…… 덤블도어 교수님을…….”

해그리드는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의 얼굴은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이 멍한 표정이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어떻게 되셨다고, 해리?”

“돌아가셨어요. 스네이프가 교수님을 죽였어요…….”

“그런 소리 마라.”

해그리드가 퉁명스럽게 해리의 말을 부정했다.

“스네이프가 덤블도어 교수님을 죽이다니…… 그런 멍청한 소리가 어디 있니, 해리. 도대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예, 눈으로 보았어요.”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제가 보았어요, 해그리드.”

해그리드는 계속 머리를 흔들어 댔다. 그는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한 채, 오히려 해리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해그리드는 해리가 머리를 부딪힌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거나, 혹은 저주의 부작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틀림없이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스네이프에게 죽음을 먹는 자들과 함께 가라고 지시하셨을 거야.”

해그리드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니까 계속 정체를 숨겨야만 하겠지. 자, 그만 학교로 돌아가도록 하자꾸나. 어서, 해리…….”

해리는 대꾸하거나 설명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저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부들부들 떨릴 뿐이었다. 해그리드도 곧 진상을 알게 될 것이다……. 곧…….

성을 행해서 발길을 돌렸을 때, 해리는 성의 많은 창문들이 환하게 밝혀진 것을 보았다. 성 안에서 어떤 광경이 벌어지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사람들은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면서 죽음을 먹는 자들이 침입했다느니, 어둠의 표식이 호그와트 위에 나타났다느니, 누군가 살해당한 것이 분명하다느니 하고 서로 떠들고 있을 것이다.

활짝 열린 떡갈나무 현관문을 통해 환한 불빛이 흘러나와 잔디밭과 들어가는 길을 비추고 있었다. 사람들이 실내복 바람으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오면서 어둠 속으로 이미 사라져 버린 죽음을 먹는 자들의 흔적을 찾아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해리의 시선은 제일 높은 탑 아래의 땅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틀림없이 그곳 풀숲에 엉망진창이 된 검은 물체가 나동그라져 있는 것을 보게 되리라. 아직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눈에 뜨이지 않을 뿐이다. 해리가 덤블도어의 시신이 쓰러져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곳을 말없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때, 사람들이 그곳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 뭘 보고 있는 거냐?”

해리와 함께 성 앞까지 가까이 다가간 해그리드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팽이 그들의 발목 언저리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풀숲에 뭐가 쓰러져 있는 거지?”

해그리드가 날카롭게 한마디 덧붙이더니, 천문탑 아래를 향해서 걸어갔다. 그 주위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해리, 저기 보여? 바로 저 탑 아래? 그 망할 놈의 표식이 있는 바로 밑에 말이야……. 세상에…… 누군가 탑 밑으로 떨어진 건 아니겠……?”

순간 해그리드가 말을 딱 멈추었다.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생각이 든 것이었다. 해리는 묵묵히 해그리드를 따라갔다. 얼굴과 다리에 불과 30분 전에 얻어맞은 갖가지 종류의 저주 때문에 생긴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몸이 아니라, 마치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 아픈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직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만이 그를 꼼짝달싹할 수 없게 옥죄어 올 뿐이었다…….

해리와 해그리드는 꿈을 꾸듯이 멍한 상태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바로 그 앞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겼다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어버린 학생들과 교수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해리의 귀에 충격과 고통으로 가득 찬 해그리드의 시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해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 그는 덤블도어가 쓰러져 있는 자리에 이르자 그 옆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오직 주문을 건 사람이 죽었을 때에만 주문이 저절로 풀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덤블도어가 그에게 걸어 놓았던 동작 그만 주문이 갑자기 풀리는 순간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걸 직감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해리는 아직도 사지를 쭉 뻗은 채 뼈마디가 으스러져서 쓰러져 있는 덤블도어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는 해리가 만났던 가장 위대한 마법사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었다.

덤블도어의 눈은 조용히 감겨 있었다. 이상하게 벌어진 팔과 다리의 각도만 아니라면 그의 모습은 꼭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손을 뻗어서 구부러진 코에 걸쳐진 반달 모양의 안경을 똑바로 씌워 주었다. 그리고 그의 옷소매로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주었다. 그런 다음, 지혜로웠던 노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이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진실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고 애를 썼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덤블도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해리의 등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해리는 문득 자신의 무릎 아래에 뭔가 단단한 것이 깔려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수시간 전에 가까스로 훔쳐 냈던 로켓이 덤블도어의 호주머니에서 굴러 떨어져 있었다. 땅에 떨어졌을 때 부딪힌 충격 때문인지, 로켓의 뚜껑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겪은 해리는 더 이상 어떤 충격이나 공포, 슬픔도 느낄 수 없는 상태였지만, 로켓을 땅에서 집어 든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해리는 로켓을 손바닥 위에 놓고 뒤집어 보았다. 그것은 그가 펜시브에서 보았던 그 로켓만큼 크지도 않았고, 슬리데린 표식이라고 추측되는 S자의 문양은커녕 그 어떤 장식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더구나 사진을 넣는 자리에는 꼬깃꼬깃 접힌 양피지 조각이 쑤셔 넣어져 있을 뿐, 로켓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해리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양피지 조각을 꺼내어 펼친 다음 그의 등 뒤에 켜진 수많은 지팡이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어둠의 마왕에게

     자네가 이 글을 읽고 있을 때쯤이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 

  세상을 떠났겠지.

     그렇지만 자네의 비밀을 알아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자네에게 꼭 알려 주고 싶었다네.

     나는 진짜 호크룩스를 훔쳤고, 가능한 한 빨리 그걸 없애 버

   릴 작정이네.

     자네가 자네의 진정한 상대를 만났을 때, 다시 한 번 죽음과

   만나길 바라며,

      나는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걸세.

                                          -R.A.B.

해리는 이 종이에 적혀 있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했다. 이것은 진짜 호크룩스가 아니었다. 덤블도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손에 넣게 위해 그 끔찍한 약을 마시고 스스로 힘을 낭비한 것이었다. 해리는 손에 든 양피지 조각을 마구 구겨 버렸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릴 때, 등 뒤에서 팽이 구슬프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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