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벼락 맞은 탑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로 다시 나오자, 해리는 덤블도어를 제일 가까운 바위 위로 끌어올린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리는 물에 흠뻑 젖어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축 늘어진 덤블도어를 부축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을 집중하며 목적지인 호그스미드를 떠올렸다. 그리고 최대한 덤블도어의 팔을 꽉 붙잡은 채, 두 눈을 감고 그 끔찍한 압박감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해리는 눈을 뜨기도 전에 이미 순간이동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짭짤한 소금 냄새와 바닷바람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해리와 덤블도어는 호그스미드의 어두운 하이가 한가운데에서 물을 뚝뚝 흘리면서 덜덜 떨고 있었다. 해리는 순간 양편에 늘어선 가게들에서 수많은 인페리우스들이 그를 향해 기어 나오는 끔찍한 상상에 사로잡혔지만,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둘러보니 고요한 거리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가로등 몇 개와 2층 정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이외에는 오직 깜깜한 어둠 속에 정적만이 감돌 뿐이었다.
“우리가 해냈어요, 교수님!”
해리는 간신히 속삭였다. 갑자기 가슴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우리가 해냈어요! 호크룩스를 가져왔어요!”
덤블도어는 그에게 기댄 채 비틀거렸다. 해리는 자신의 미숙한 순간이동 때문에 덤블도어가 균형을 잃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저 멀리서 비치는 가로등 불빛을 통해 덤블도어가 더욱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단다.”
경련을 일으키는 덤블도어의 입술 사이로 희미하게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 마법약은…… 별로 몸에 좋은 게 아니었어…….”
그 순간 덤블도어가 땅 위에 털썩 쓰러졌고, 해리는 덜컥 겁이 났다.
“교수님…… 괜찮아요, 교수님. 곧 나아지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해리는 도움을 청하려고 애타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덤블도어를 한시라도 빨리 학교 병동에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맴돌 뿐이었다.
“학교로 돌아가야만 해요, 교수님…… 폼프리 부인이…….”
“아니다.”
덤블도어가 속삭였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스네이프야……. 하지만 잘 모르겠구나……. 학교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
“알겠어요, 교수님. 제가 근처를 좀 돌아다니며 교수님이 잠시 계실 만한 곳을 찾아보겠어요. 그런 다음에 빨리 달려가서 폼프리 부인을…….”
“세베루스…… 세베루스가 필요해…….”
덤블도어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스네이프를 데려오죠. 하지만 잠시 교수님을 혼자 남겨 두고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제가…….”
하지만 해리가 움직이기도 전에, 황급히 달려오고 있는 발소리가 들렸다. 해리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군가 그들을 보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뒤를 돌아보자, 용이 수놓인 비단 실내복을 입고 굽 높은 털 실내화를 신은 로즈메르타 부인이 그들을 향해 어두운 거리를 허둥지둥 달려오고 있었다.
“침실 커튼을 치다가 네가 순간이동으로 나타나는 걸 보았단다! 정말 다행이구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그런데 알버스가 어디 편찮으신 거니?”
로즈메르타 부인이 걸음을 멈추고 숨을 헐떡거리며,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덤블도어를 내려다보았다.
“다치셨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로즈메르타 부인, 제가 학교에 가서 도움을 청하고 오는 동안, 교수님을 스리 브룸스틱스에 좀 모셔도 될까요?”
“너 혼자서 학교에 갈 수는 없어! 넌 아직 모르고 있구나. 아직 보지 못했……?”
“교수님을 부축하게 좀 도와주세요.”
해리는 부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저와 함께 교수님을 안으로 모시고…….”
“무슨 일이 있었소?”
덤블도어가 물었다.
“로즈메르타, 뭐가 잘못되었소?”
“알버스, 그…… 그게 어둠의 표식이…….”
로즈메르타 부인이 호그와트가 있는 쪽 하늘을 가리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공포가 해리를 엄습했다……. 해리는 돌아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있었다. 뱀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초록색의 번쩍이는 해골…… 죽음을 먹는 자들이 어딘가 들어가서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반드시 남기고 가는 그 표식이 학교 위의 하늘에 걸려 있었다…….
“저게 언제 나타났소?”
덤블도어가 물었다. 그는 해리의 어깨를 아플 정도로 꽉 움켜쥐면서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몇 분 전쯤에 나타난 게 분명해요. 고양이를 밖으로 내보낼 때만 해도 없었는데, 2층으로 올라갈 때 보니…….”
“당장 학교로 돌아가야겠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로즈메르타…….”
덤블도어는 아직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지만, 이 상황을 통제하려는 듯 말했다.
“이동수단이 필요하오. 빗자루라든가…….”
“술집 뒤에 두 자루가 있어요.”
로즈메르타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얼른 가서 가져올까요?”
“아니오. 해리가 할 겁니다.”
해리는 당장 지팡이를 들었다.
“아씨오 로즈메르타의 빗자루!”
1초도 안 돼서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술집 문이 벌컥 열렸다. 뒤이어 빗자루 두 개가 서로 경주하듯이 해리를 향해서 쌩 날아왔다. 그리고 해리의 허리 높이쯤에 딱 멈추어 서서 공중에 둥둥 뜬 채 부르르 떨었다.
“로즈메르타, 마법부에 전갈을 좀 보내 주시오.”
덤블도어가 가까이 있는 빗자루에 올라타면서 부탁했다.
“어쩌면 호그와트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니……. 해리, 투명 망토를 입도록 해라.”
해리는 호주머니 속에서 투명 망토를 꺼내어 뒤집어쓴 다음 빗자루에 올라탔다. 해리와 덤블도어가 땅 위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를 때, 로즈메르타 부인은 벌써 가게 안으로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성을 향해서 빠르게 날아갔다. 해리는 혹시라도 덤블도어가 떨어질라치면 붙잡을 태세를 하고 곁눈질을 했다. 하지만 어둠의 표식이 덤블도어에게 각성제가 된 모양이었다. 그는 빗자루 위에 몸을 숙인 채, 어둠의 표식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의 긴 은빛 머리카락과 수염이 밤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해리도 저 앞에 있는 해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독기를 내뿜는 거품처럼 두려움이 몸속에서 부글부글 부풀어 오르면서 그의 가슴을 무겁게 압박해 왔다. 추위도, 고통도,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학교를 얼마나 오래 떠나 있었던 걸까? 론과 헤르미온느, 지니의 행운은 지금쯤 효력을 다했을까? 학교 위에 걸린 저 표식이 그들 중 한 사람 때문에 생긴 건 아닐까? 혹시 네빌이나 루나가? 아님 다른 D.A. 회원이? 만약 그렇다면……. 그 친구들에게 안전한 침실을 벗어나서 복도를 순찰하라고 지시 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 아니었던가……. 또다시 친구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 것일까?
그들이 얼마 전에 걸어갔던 구불구불하고 어두운 오솔길 위를 날아가고 있을 때, 해리는 귓전에서 요란하게 윙윙거리는 밤바람 소리 속에서 덤블도어가 또다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해리는 그들이 성을 둘러싼 담을 넘어서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왜 빗자루가 덜그럭거리며 떨렸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이 그대로 재빠르게 날아 들어갈 수 있도록 덤블도어가 자신이 성 주변에 쳐 놓았던 마법을 해제한 것이다. 어둠의 표식은 성에서 제일 높은 천문탑 바로 위에서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기서 살인이 일어났단 뜻일까?
덤블도어는 벌써 요철 모양의 성벽을 넘어서 착륙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해리도 그 옆으로 내려간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성벽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성 안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으로 들어가는 문도 굳게 잠겨 있었다. 몸싸움을 벌이거나 목숨을 내건 싸움을 했던 흔적도, 쓰러진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해리가 그들의 머리 위에서 사악하게 번쩍거리고 있는, 뱀의 혓바닥이 달린 초록색 해골을 올려다보며 덤블도어에게 물었다.
“저게 진짜 어둠의 표식일까요?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가……. 교수님?”
어둠의 표식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초록색 불빛 속에서 해리는 덤블도어가 검게 변해 버린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가서 세베루스를 깨우거라.”
덤블도어는 희미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에게 설명하고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 외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리고 절대 망토를 벗지 않도록 해라. 난 여기서 기다리 마.”
“하지만…….”
“내 말을 따르겠다고 맹세했었지, 해리. 어서 가라!”
해리는 재빨리 나선형 계단으로 들어가는 문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둥근 문고리에 막 손을 가까이 가져갔을 때, 문 저쪽에서 마구 달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얼른 덤블도어를 돌아보았다. 그는 해리에게 물러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해리는 지팡이를 뽑아 들고 뒤로 물러났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왔다.
“엑스펠리아르무스!”
즉시 해리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성벽에 몸을 털썩 부딪히며 그대로 쓰러져서는 흔들거리는 조각상처럼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엑스펠리아르무스’는 동작 그만 주문이 아닌데…….
그때 어둠의 표식이 비추는 불빛 아래에서 덤블도어의 지팡이가 성벽 너머로 포물선을 그리며 휙 날아가는 것을 보고 해리는 비로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덤블도어는 무언 주문을 걸어서 해리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주문을 날리느라, 간발의 차이로 자신을 방어할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덤블도어는 종잇장처럼 새하얀 얼굴로 성벽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기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지팡이를 빼앗아 간 상대를 조용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좋은 저녁이구나, 드레이코.”
말포이는 재빨리 다른 사람이 없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눈길이 또 다른 빗자루에 쏠렸다.
“여기 또 누가 있지?”
“그건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말이구나. 혼자 일을 꾸미고 있는 거냐?”
해리는 표식에서 흘러나오는 초록색 광채 속에서 말포이의 시선이 다시 덤블도어에게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아니.”
말포이가 대답했다.
“내 뒤에는 동지들이 있다. 오늘 밤 당신의 학교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들어왔거든.”
“이런, 이런.”
덤블도어는 마치 말포이가 야심에 찬 과제를 계획서라도 제출한 듯이 감탄을 했다.
“아주 훌륭하구나. 마침내 그자들을 학교 안으로 불러들일 방법을 찾은 거로구나, 그렇지?”
“그렇다.”
말포이가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바로 당신의 코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당신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지!”
“대단하구나.”
덤블도어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지금 그자들은 어디 있는 거냐? ……넌 지원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구나.”
“당신의 경비대원들과 맞닥뜨려서 지금 아래층에서 싸우고 있어.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어쨌든 내가 먼저 왔어……. 나…… 나는 할 일이 있거든.”
“그렇구나. 그렇다면 할 일을 해야지, 얘야.”
덤블도어가 다정하게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해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투명한 육체 속에 갇힌 채, 그저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서 있어야만 했다. 해리는 저 멀리서 죽음을 먹는 자들이 내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 앞에서는 드레이코 말포이가 알버스 덤블도어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지만 덤블도어는 놀랍게도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레이코, 드레이코, 너는 살인자가 아니잖니.”
“당신이 어떻게 알지?”
말포이가 즉각 쏘아붙였다.
하지만 말포이는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유치한지 곧 깨달은 것 같았다. 어둠의 표식에서 흘러나오는 초록색 불빛 속에서도 말포이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신은 내 능력을 잘 모르는 군.”
말포이가 좀 더 세게 나왔다.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당신은 모른다고!”
“오, 아니야. 난 알고 있단다.”
덤블도어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넌 케이티 벨과 론 위즐리를 죽일 뻔했지. 그리고 1년 내내 점점 더 필사적으로 나를 죽이려고 노력했었어. 드레이코, 미안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모두 미약하기 짝이 없었단다……. 솔직히 너무 보잘것없어서, 나는 과연 네가 진심으로 그럴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지.”
“진심이었어!”
말포이가 독살스럽게 소리쳤다.
“나는 1년 내내 이 일에 매달렸고, 오늘 밤 드디어…….”
저 아래 성 내부 깊숙한 곳으로부터 고함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말포이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구나.”
덤블도어는 슬슬 대화를 이끌어 갔다.
“그런데 네 말로는…… 그러니까 죽음을 먹는 자들을 우리 학교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고 했는데, 솔직히 나는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는지 모르겠구나……. 어떻게 한 거지?”
하지만 말포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해리처럼 마비라도 된 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어쩌면 너 혼자서 일을 끝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덤블도어가 말을 걸었다.
“너의 지원군이 내 경비대원들에게 격퇴를 당하면 어떻게 할 거냐? 혹시 너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오늘 밤 이 성 안에는 불사조 기사단 단원들도 와 있단다. 사실 넌 굳이 도움이 필요 없을 게다……. 지금 난 지팡이조차 없으니까 전혀 나를 방어할 길이 없지.”
말포이는 그저 그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알겠다.”
덤블도어는 아무런 말도 없이 움직이지도 않고 서 있는 말포이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그자들이 오기 전에 혼자서 행동하기가 두려운 게로구나.”
“난 두렵지 않아!”
말포이가 핏대를 세우며 악을 썼지만, 여전히 덤블도어를 해치려고 달려들지는 않았다.
“두려워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
“왜 그렇지? 난 네가 날 죽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드레이코. 살인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그럼 네 동지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나 좀 해 보렴. 어떻게 그 자들을 학교 안으로 몰래 불러들였지? 그 방법을 알아내는 데 꽤 시간이 걸린 것 같구나.”
말포이는 소리를 지르거나 토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느라 애쓰는 표정이었다. 그는 덤블도어를 노려보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그의 지팡이는 덤블도어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포이가 입을 열었다.
“몇 년 동안 아무도 쓰지 않고 버려둔 망가진 ‘사라지는 캐비닛’을 고쳐야 했지. 작년에 몬태규가 들어갔다가 실종되었던 그 물건 말이야.”
“아하.”
덤블도어가 입에서 신음 소리에 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잠시 눈을 꼭 감았다.
“아주 영리하구나……. 내가 알기로 그 캐비닛은 또 다른 한 짝이 있지?”
“보진과 버크 가게에 있지.”
말포이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두 캐비닛이 일종의 통로로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나는 몬태규를 통해 알아냈어. 그가 호그와트에 있는 캐비닛 속에 들어갔을 때, 어딘지 알 수 없는 중간 지대에 갇혔었는데, 어떤 때에는 학교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어떤 때에는 가게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고 했지. 마치 캐비닛이 학교와 가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고 했어. 하지만 아무도 자기가 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거야……. 결국 그는 순간이동 시험을 통과하지도 못한 주제에, 간신히 순간이동 마법을 써서 그곳을 빠져나왔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더군. 그렇지만 오직 나만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어. 심지어 보진도 몰랐는데 말이야. 그 망가진 캐비닛을 고치면 호그와트로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는 사실을 오직 나 혼자만이 깨달았다고!”
“정말 대단하구나.”
덤블도어가 중얼거렸다.
“결국 내 도움으로 죽음을 먹는 자들이 보진과 버크 가게에서 학교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게로구나……. 대단히 영리한 계획이야, 아주 영리해……. 그것도 네가 말한 대로, 바로 내 코 앞에서 그런 일을 벌이다니…….”
“그래.”
말포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덤블도어의 칭찬을 통해 용기와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맞아, 그렇고말고!”
“하지만 그 캐비닛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을 때가 있었겠지? 그래서 나에게 저주받은 목걸이나 독약이 든 꿀술 따위를 보내는, 그런 서툴고 잘못된 방법에 의지하려고 했었구나. 결국 목걸이는 엉뚱한 사람의 손에 들어갔고, 꿀술은 사실상 내가 마실 가능성이 거의 없었는데 말이야…….”
“그랬지.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 일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채지 못했잖아, 안 그래?”
말포이가 빈정거렸다. 이제 덤블도어는 다리에 힘이 다 빠진 듯, 성벽에서 조금 미끄러져 내렸다. 해리는 자신을 꼼짝 못하게 묶어 두고 있는 마법에서 벗어나려고 잦은 몸부림을 다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나는 네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어.”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그런데 왜 날 막지 않았지?”
말포이가 따졌다.
“막으려고 했단다, 말포이. 스네이프 교수가 내 지시에 따라서 널 감시하고 있었어.”
“스네이프 교수는 당신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던 게 아니야. 그는 내 어머니와 약속을 했어…….”
“물론 스네이프 교수는 너에게 그렇게 말했었지, 드레이코. 하지만…….”
“그자는 이중 첩자야, 이 멍청한 늙은이야! 그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당신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게 아니야!”
“드레이코, 그 점에 있어서는 우리의 의견이 분명히 다른 것 같구나. 종종 있는 일이지. 나는 스네이프 교수를 신뢰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흥, 그렇다면 당신의 힘이 약해진 거겠지.”
말포이가 이죽거렸다.
“그는 나에게 수없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었어. 자기가 모든 영광을 독차지하고 싶었을 테니까. 뭔가 좀 해 보고 싶었던 거겠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니?’, ‘그 목걸이로 뭘 해 보겠다고 하는 거니? 그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었어. 그 때문에 모든 게 들통날 뻔했다’ 등등. 하지만 난 내가 필요의 방에서 뭘 하고 있는지 그자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어. 아마 그자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 보면 모든 상황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되겠지. 그리고 어둠의 마왕이 가장 총애하는 부하의 자리를 내주게 되겠지.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가 될 거라고! 하잖은 존재 말이야!”
“그래서 아주 기쁘겠구나.”
덤블도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힘들게 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기를 원하게 마련이지. 그렇지만 너에게도 틀림없이 공범자가 있었을 거야. 누군가 호그스미드에 있고…… 케이티에게 그 목걸이를 넘겨줄 수 있는 사람…… 아하…….”
덤블도어가 졸음이 밀려드는 사람처럼 다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랬구나…… 로즈메르타. 그녀가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린 지 얼마나 된 거지?”
“드디어 그걸 알아차린 거야, 그래?”
말포이가 비웃었다.
그때 성 아래에서 또 다른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좀 더 크게 들려왔다.
말포이는 초조한 표정으로 힐끗 뒤를 돌아보더니, 덤블도어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덤블도어가 말을 계속했다.
“가엾은 로즈메르타가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아무나 혼자 들어오는 호그와트 학생에게 그 목걸이를 넘겨주었던 거로구나? 그리고 그 독약이 든 꿀술도……. 그래, 그렇고말고. 로즈메르타만이 슬러그혼에게 술병을 보내기 전에 널 대신해서 독약을 탈 수 있었겠지. 그게 나에게 보내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믿고서 말이야……. 그래, 딱 들어맞는군…… 딱 들어맞아. 가엾은 필치는 당연히 로즈메르타의 술병까지 검사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설명 좀 해 보렴. 로즈메르타와는 어떻게 연락을 취했던 거냐? 이 학교로 들어오고 나가는 연락 수단들은 모두 감시를 당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마법의 동전을 썼지.”
말포이는 계속 떠들어 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술술 털어놓았다. 하지만 지팡이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와 그 여자가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전갈을 보낼 수가 있었지.”
“그건 작년에 ‘덤블도어의 군대’라고 자칭하던 모임에서 사용했던 비밀 연락 수단이 아니었느냐?”
덤블도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이 가볍기만 했다. 하지만 해리는 그가 벽에서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맞아, 그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지.”
말포이가 입술을 실룩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꿀술에 독약을 타는 아이디어는 바로 그 잡종인 그레인저에게서 얻었지. 그 계집애가 도서관에서 필치가 마법약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고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거든.”
“내 앞에서 그런 모욕적인 표현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덤블도어가 조용히 타일렀다. 그러자 말포이가 사납게 웃어댔다.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판에 내가 ‘잡종’이란 말을 쓴다고 귀에 거슬린다는 거야?”
“그래,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발이 옆으로 약간 미끄러지면서, 그가 다시 똑바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았다.
“드레이코, 너는 날 죽이려고 한다면서, 이미 몇 분이나 흘렀는지 모르겠구나, 여기에는 우리 단 두 사람밖에 없고, 난 지금 네가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란다.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구나…….”
뭔가 쓰디쓴 것을 맛본 사람처럼 말포이의 입술이 무의식적으로 뒤틀렸다.
“그럼 오늘 밤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꾸나.”
덤블도어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약간 의아스럽단다……. 너는 내가 학교를 비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물론 그랬을 거야…….”
덤블도어가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했다.
“로즈메르타가 내가 떠나는 걸 보았으니, 너의 그 천재적인 동전 연락망을 이용해서 너에게 귀띔을 해 주었겠지.”
“바로 맞혔어.”
말포이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신이 그저 한잔하러 갔다고만 말했지. 곧 돌아올 거라고…….”
“그래, 분명히 한잔하긴 했지……. 그럭저럭…… 돌아왔고…….”
덤블도어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나를 잡을 덫을 놓기로 했던 게냐?”
“우리는 탑 위에 어둠의 표식을 만들어 놓기로 했지. 누가 살해당한 줄 알고 당신이 빨리 돌아오도록 말이야. 그리고 멋지게 성공했지!”
말포이가 말했다.
“글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국 아무도 살해당한 사람이 없다는 거냐?”
“누군가 죽긴 죽었어.”
그 말을 하는 말포이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지는 것 같았다.
“당신네 사람들 중 한 명이었어……. 너무 어두워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 시체를 밟고 지나왔어……. 당신이 돌아올 때,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거든. 오직 당신의 그 불사조 패거리들만이 길을 가로막았지.”
“그래, 그랬겠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때 밑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더욱더 커다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덤블도어, 말포이, 그리고 해리가 서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바로 그 나선형 계단 위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의 보이지 않는 가슴속에서 그의 심장이 소리 없이 쿵쾅 뛰었다……. 누군가 죽었다고……. 말포이가 그 시체를 타 넘었단 말이지……. 하지만 도대체 누구일까……?
“이제 시간이 별로 없구나. 이 길 아니면 저 길뿐이다.”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꾸나, 드레이코.”
“선택이라고!”
말포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지금 지팡이를 들고 이 자리에 서 있단 말이야! 당신을 죽일 거라고!”
“얘야, 우리 더 이상 허세는 부리지 말도록 하자꾸나. 네가 날 죽일 작정이었다면, 내 지팡이를 빼앗자마자 곧바로 해치웠을 게다. 네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썼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려고 손을 멈추지는 않았을 거야.”
“나에게 다른 선택이란 없어!”
말포이가 악을 썼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덤블도어만큼이나 하얗게 질렸다.
“난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해! 그가 날 죽일 거라고! 그가 우리 가족을 모두 죽일 거야!”
“네 입장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다 이해한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내가 왜 지금까지 널 직접 만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니? 그건 내가 널 의심한다는 사실을 볼드모트 경이 눈치 채게 되면, 네가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볼드모트의 이름을 듣자 말포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혹시라도 그자가 너에게 레질리먼시를 쓰고 있을지 몰라서, 나는 네가 맡은 그 임무에 대해 뻔히 알면서도 너에게 감히 말하지 못했던 거란다.”
덤블도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 마침내 서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아직까지 넌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어. 네가 해친 사람은 아무도 없잖니. 정말 다행스럽게도 네가 뜻하지 않게 피해를 준 사람들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지……. 내가 널 도와 줄 수 있단다, 드레이코.”
“아니, 그럴 수 없어.”
지팡이를 쥔 말포이의 손이 매우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어. 그는 내가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날 죽일 거라고 말했어.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드레이코, 정의의 편으로 오너라. 그럼 우리는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감쪽같이 널 숨겨 줄 수 있단다. 게다가 오늘 밤에 불사조 기사단 단원들을 보내서 네 어머니도 똑같이 숨겨 줄 수 있어. 네 아버지는 아즈카반에 있으니 지금 당장은 무사할 테고……. 때가 되면 우리가 네 아버지도 보호해 줄 수 있어……. 드레이코, 정의의 편으로 오너라. 넌 살인자가 아니야…….”
말포이가 덤블도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이미 여기까지 해냈어, 안 그래?”
말포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자들은 내가 이 일을 하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난 여기 살아 있어……. 그리고 당신은 내 손안에 있고 말이야……. 지팡이를 쥔 사람은 바로 나야……. 당신의 목숨은 나에게 달렸어…….”
“아니, 드레이코.”
덤블도어가 조용히 타일렀다.
“지금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나란다. 네가 아니야.”
말포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입을 벌리고서 지팡이를 쥔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순간 해리는 얼핏 그 지팡이가 떨어지는 걸 본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천둥처럼 요란하게 들리더니, 순식간에 검은 망토를 입은 네 사람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성벽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바람에 말포이는 옆으로 밀려났다. 해리는 여전히 눈도 깜짝하지 못하고 온몸이 마비된 채, 이 낯선 네 사람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아래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것 같았다.
한쪽 입가를 추켜올린 채 괴상한 미소를 짓고 있는 땅딸막한 남자 하나가 킬킬거렸다.
“덤블도어가 꼼짝없이 궁지에 몰렸군!”
그자는 여동생인 듯한 땅딸막한 여자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이빨을 드러내며 신나게 웃었다.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빼앗겼군! 덤블도어가 혼자 있어! 잘했다, 드레이코. 정말 잘했어!”
“잘 있었나, 아마커스.”
덤블도어가 마치 다과회에 온 손님을 맞이하듯이 태연하게 인사를 했다.
“알렉토도 데려왔구먼……. 여전히 매력적이야…….”
여자가 다소 신경질적인 웃음소리를 냈다.
“그런 시시한 농담을 하면 죽는 마당에 무슨 도움이 될 것 같은가?”
“농담이라고? 아니, 아니지. 예의라고 해 두세.”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해치워 버려.”
해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는 남자가 명령을 내렸다. 덩치가 크고 팔다리가 껑충한 그 남자는 회색 머리카락과 구레나룻이 마구 헝클어져 있었고, 죽음을 먹는 자들이 입는 검은 망토가 불편해 보일 만큼 몸에 꽉 죄었다. 그의 목소리는 해리가 마치 개가 짖는 듯이 몹시 귀에 거슬렸다. 해리는 그자에게서 오물과 땀, 피 냄새가 뒤섞인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때가 꼬질꼬질한 그의 손에는 누런 손톱이 길게 자라 있었다.
“펜리, 자네인가?”
덤블도어가 물었다.
“맞아.”
상대방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날 보고 싶었나 보지, 덤블도어?”
“아니,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없군.”
그레이백이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의 턱 아래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자, 그레이백은 천천히 음흉하게 입술을 핥았다.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 덤블도어.”
“그렇다면 자네는 보름달이 뜨지 않을 때에도 사람들을 공격한단 말인가? 그거 참 보기 드문 일인데……. 인육에 맛을 들여서 한 달에 한 번 그것을 맛보는 것으로는 이제 성에 안 차는 모양이로군?”
“맞아.”
펜리 그레이백이 말했다.
“그래서 충격을 받았나, 덤블도어? 겁이 나는 건가?”
“글쎄, 솔직히 좀 역겨운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군.”
덤블도어가 쏘아붙였다.
“그리고 여기 있는 드레이코 군이 자네와 이 모든 사람들을 학교로 초대했다는 사실이 좀 충격적이긴 하네. 그의 친구들이 지내고 있는 이 학교에 말일세…….”
“내가 부른 게 아니야.”
말포이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그는 펜리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자가 있는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저 자가 올 줄은 나도 몰랐어…….”
“호그와트로 여행을 간다는데 내가 빠질 수는 없지, 덤블도어.”
그레이백이 그르렁대며 말했다.
“물어뜯을 목덜미가 있는데 그 기회를 어찌 놓치겠어……. 그 맛있는 걸…….”
그레이백은 누런 손톱으로 앞니 사이를 쑤시며 덤블도어에게 눈독을 들였다.
“후식으로 당신을 먹어 주지, 덤블도어.”
“안 돼.”
네 번째 죽음을 먹는 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자의 얼굴은 몹시 험상궂고 사나워 보였다.
“우리는 지시를 받았어. 이 일은 드레이코가 해야만 해. 자, 드레이코, 빨리 서둘러라.”
말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덤블도어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덤블도어는 평소보다 훨씬 더 창백하고 기운 없는 얼굴로, 거의 성벽 바닥까지 미끄러져 내려앉아 있었다.
“어찌되었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 같은데!”
한쪽 입가가 올라간 남자가 여동생의 킬킬거리는 웃음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말했다.
“이 꼬락서니 좀 보라지. 이게 어찌된 일인가, 덤비?”
“오, 저항할 힘도 약해지고 반사 신경도 둔해진 거지, 아마커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한마디로 나이가 든 거라네……. 언젠가는 자네에게도 닥칠 일이야……. 그것도 운이 좋을 경우에 말이지만…….”
“그게 무슨 소리지?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죽음을 먹는 자가 갑자기 사납게 소리를 질렀다.
“덤비, 네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입만 살아서 떠들 뿐, 정작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아무것도 말이야! 어둠의 마왕께서 왜 너 같은 걸 죽이려고 그토록 애를 쓰시는지 모르겠군! 어서, 드레이코, 당장 없애 버려!”
바로 그때 아래층에서 또다시 격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저자들이 계단을 막았다! 리덕토! 리덕토!”
해리의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결국 이 네 명은 상대를 모두 해치운 것이 아니라, 단지 싸움을 피해서 탑 꼭대기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들리는 소리로 봐서는, 그들 뒤에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온 것이 분명했다.
“드레이코, 지금이야. 어서 서둘러!”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화를 내며 재촉했다.
하지만 말포이는 목표물을 제대로 겨누지도 못할 정도로 심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내가 끝내 주지.”
그레이백이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며 두 팔을 쭉 뻗고 덤블도어에게 다가갔다.
“안 된다고 말했지!”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불이 번쩍하면서 늑대인간이 쿵 하고 나가떨어졌다. 성벽에 몸을 부딪힌 늑대인간은 비틀거리면서 포악한 표정을 지었다. 해리의 심장이 어찌나 터질 듯이 거세게 고동치던지, 그가 덤블도어의 마법에 걸려서 꼼짝하지 못하고 거기 서 있는 걸 어떻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만 있다면, 망토 밑으로 주문을 쏠 수 있을 텐데…….
“드레이코, 어서 해치워라. 아니면 옆으로 비켜서. 우리 중에 한 사람이…….”
여자가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성벽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다시 벌컥 열리더니, 그 자리에 스네이프가 나타났다. 그는 지팡이를 한 손에 움켜쥔 채 새까만 눈으로 성벽에 몸을 기대고 축 늘어져 있는 덤블도어부터 잔뜩 화가 난 늑대인간을 비롯한 네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과 말포이까지 쭉 훑어보았다.
“스네이프, 문제가 생겼어.”
땅딸막한 아마커스가 입을 열었다. 그의 눈과 지팡이는 한결같이 덤블도어를 향해 있었다.
“이 녀석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그때 누군가가 부드럽게 스네이프의 이름을 불렀다.
“세베루스…….”
해리는 오늘 저녁에 겪은 그 어떤 일보다도 이 목소리에 가장 놀라고 겁이 났다. 생전 처음으로 덤블도어가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말포이를 거칠게 옆으로 밀쳐 냈다. 다른 세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은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늑대인간조차도 기가 죽은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한동안 덤블도어를 응시했다. 냉혹한 그의 얼굴 구석구석에는 증오와 혐오가 역력하게 배어 있었다.
“세베루스…… 제발…….”
스네이프는 지팡이를 들더니 곧장 덤블도어를 겨누었다.
“아바다 케다브라!”
스네이프의 지팡이 끝에서 초록색 섬광이 발사되더니 덤블도어의 가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해리의 공포에 가득 찬 처절한 비명 소리는 한 마디도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몸이 마비된 채, 허공으로 팍 솟아오르는 덤블도어를 빤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아주 잠깐 동안 덤블도어는 번쩍이는 해골 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더니 마치 헝겊으로 만든 커다란 인형처럼 성벽 너머로 천천히 떨어져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