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동굴
짭짤한 바다 냄새와 파도 소리가 밀려왔다. 부드럽고 시원한 산들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해리는 달빛이 가득한 바다와 별들이 총총히 박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불쑥 튀어나온 검은 바위 위에 서 있었는데, 발밑에서는 파도가 포말을 뱉어 내며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깍아지른 듯이 매끈한 검은 절벽이 바로 뒤에 탑처럼 높이 솟아 있었다. 주변에는 해리와 덤블도어가 서 있는 곳과 같은 커다란 바위 덩어리들이 몇 개 있었는데, 아마도 언젠가 저 절벽 표면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았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모래 한 줌도 없이 바다와 바위만 있는 풍경은 황량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니?”
덤블도어가 물었다. 아마도 과연 이곳이 소풍을 나오기에 적합한 장소인지 해리의 의견을 묻는 것 같았다.
“고아원에서 이런 곳으로 아이들을 데려왔단 말인가요?”
해리가 물었다. 소풍을 나오기에 이보다 더 안 좋은 장소는 찾으려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해 여기는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우리 뒤에 서 있는 저 절벽을 따라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마을이 하나 있지. 내 생각에 바닷바람도 좀 쐬고 파도 구경도 하기 위해 아이들을 거기로 데려갔던 것 같다. 아니, 이 장소를 찾아온 사람은 아마 톰 리들과 그의 어린 희생자들이 처음이었을 거야. 아주 뛰어난 산악인이 아니라면, 보통 머글들은 이 바위를 오를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배를 타더라도 저 절벽에는 가까이 갈 수가 없지. 주변의 물살이 아주 위험하거든. 리들은 절벽을 기어 내려갔을 거라고 짐작된단다. 밧줄보다는 마법이 유용했겠지. 그리고 겁먹는 모습을 보고 즐기려고 다른 어린아이 두 명을 함께 데리고 갔던 거야. 그 여행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겁을 먹었겠지, 그렇지 않니?”
해리는 다시 한 번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하지만 그자의 최종 목적지이자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여기서 조금 더 가야 한단다. 자, 어서 가자.”
덤블도어는 해리에게 바위 가장자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곳에서부터 바위가 들쭉날쭉하게 파인 틈을 딛고서 저 밑에 있는, 반쯤 물에 잠긴 바위들까지 내려가면 좀 더 절벽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려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덤블도어는 상처 입은 손 때문에 약간 어려움을 겪으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밑에 있는 바위들은 바닷물에 젖어 매우 미끄러웠다. 해리는 차고 짭짤한 물보라가 얼굴에 부딪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루모스.”
절벽에 가장 가까운 바위에 도달하자, 덤블도어가 주문을 외었다. 순간 그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곳에서 몇 발자국 아래쪽에 있는 바다의 시커먼 수면이 수천 개의 노란색 불빛으로 반짝거렸다. 덤블도어의 옆에 있는 검은 바위의 표면도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보이니?”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좀 더 높이 치켜들며 조용히 물었다. 해리는 절벽의 갈라진 틈새로 검은 물살이 소용돌이치며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물에 좀 젖어도 괜찮겠지?”
“괜찮습니다.”
해리가 대답했다.
“그럼 투명 망토를 벗거라. 지금은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함께 물에 뛰어들자꾸나.”
갑자기 덤블도어가 젊은 사람처럼 민첩한 동작으로 바위에서 뛰어내려 바다 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그리고 불이 켜진 지팡이를 입에 문 채 완벽한 평형으로 절벽의 틈새를 향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해리도 망토를 벗어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다음, 뒤를 따랐다.
바닷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물이 스며든 옷이 빵빵하게 부풀면서 자꾸만 그를 밑으로 끌어당겼다. 해리는 짭짤한 소금기와 해초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바다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후에, 깜빡거리는 불빛을 향해 힘차게 헤엄쳐 갔다. 그 불빛은 이제 절벽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면서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갈라진 틈새는 곧 어두운 통로로 이어졌다. 해리는 만조 때가 되면 이 곳에 물이 가득 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끌미끌한 통로 사이의 간격은 겨우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빛을 발하는 덤블도어의 지팡이가 지나갈 때마다 젖은 타르처럼 번쩍거렸다. 조금 들어가다 보니, 통로가 왼쪽으로 휘어져서 절벽 깊숙한 곳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뒤를 따라서 계속 헤엄쳐 갔다. 가끔씩 추위로 마비된 그의 손끝에 거칠고 축축한 바위가 스쳐갔다.
그때 저 앞에서 물 밖으로 나가는 덤블도어의 모습이 보였다. 물에 젖은 그의 은발 머리와 검은 망토가 번쩍거렸다. 곧이어 그곳에 도착한 해리는 커다란 동굴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했다. 그는 계단을 올라갔다. 흠뻑 젖은 그의 옷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물 밖으로 나와 싸늘한 공기가 닿자, 걷잡을 수 없이 온몸이 떨렸다.
덤블도어는 동굴 한가운데에 서서, 지팡이를 높이 치켜든 채 몸을 천천히 돌리면서 벽과 천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래, 바로 여기다.”
덤블도어가 중얼거렸다.
“그걸 어떻게 하세요?”
해리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알 만한 마법이 걸려 있구나.”
덤블도어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해리는 이렇게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이유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도 마법을 감지했기 때문인지 도대체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덤블도어를 지켜보았다. 그는 해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여기는 단지 대기실. 입구일 뿐이야.”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말했다.
“우린 더 안쪽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가 가는 길에는 자연이 만든 장애물이 아니라, 볼드모트 경의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덤블도어는 동굴 벽으로 다가가더니, 해리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검게 변한 손가락 끝으로 벽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을 가능한 한 넓게 더듬거리며 동굴 안을 오른쪽으로 두 번 돌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걸음을 멈추고 한 지점 위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더듬던 그는 마침내 우뚝 서서 손바닥으로 그 지점의 벽을 꽉 눌렀다.
“바로 여기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이리로 들어가야 한다. 입구가 숨겨져 있었구나.”
해리는 덤블도어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아냈는지 묻지 않았다. 단지 바라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이런 놀라운 일들을 해내는 마법사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쾅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거나 연기를 풀풀 풍기는 것이 실력보다는 오히려 미숙함을 드러내는 징표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해리도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던 것이다.
덤블도어는 동굴 벽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더니 지팡이로 바위를 겨누었다. 잠깐 동안 바위 위에 아치 모양의 선이 나타나면서 마치 갈라진 바위틈 뒤에서 강력한 빛이라도 새어 나오는 것처럼 하얗게 달아올랐다.
“해내…… 서, 셨군요!”
해리가 추위에 이를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치 모양의 선이 사라지더니 여느 때처럼 단단하고 거치 바위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덤블도어가 뒤를 돌아보았다.
“해리, 미안하구나. 깜박 하고 있었단다.”
덤블도어는 지팡이로 해리를 겨누었다. 순식간에 해리의 옷이 마치 타오르는 불 앞에 걸어 놓았던 것처럼 따뜻하고 보송보송해졌다.
“고맙습니다.”
해리가 인사를 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벌써 단단한 동굴 벽을 향해 돌아서서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마법을 쓰려고 하지 않고, 바위 위에 뭔가 아주 흥미로운 글씨라도 쓰여 있다는 듯이 가만히 서서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 해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집중하고 있는 덤블도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숨이 막힐 듯이 긴장된 2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덤블도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 믿을 수가 없군. 너무 유치해.”
“어떻게 된 건가요, 교수님?”
“내 생각에는…….”
덤블도어가 부상을 입지 않은 손을 망토 안에 넣더니 해리가 마법약 재료들을 썰 때 사용하는 것 같은 은으로 된 단검을 꺼냈다.
“이 문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뭔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할 것 같구나.”
“대가라고요?”
해리가 되물었다.
“이 문에다가 뭔가를 바쳐야만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내 생각이 맞다면, 피를 바쳐야 할 것 같구나.”
“피라고요?”
“그래서 너무 유치하다고 말했던 거란다.”
덤블도어는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볼드모트가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수준 이하의 인간임을 알고 몹시 실망한 것 같았다.
“물론 너도 알겠지만, 이런 생각은 적이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 힘을 약화시키도록 만들려는 의도에서 나온 거란다. 또다시 볼드모트 경은 육체적인 손상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거야.”
“그렇군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피할 수만 있다면…….”
고통이라면 더 이상 반갑지 않을 만큼 충분히 경험을 해 본 해리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때로는 피할 수 없는 법이지.”
덤블도어가 소매를 뒤로 젖히고 부상당한 손의 팔뚝을 드러냈다.
“교수님!”
덤블도어가 칼을 치켜드는 순간, 해리가 황급히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해리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을 잃었다. 더 젊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더 적합하다고?
하지만 덤블도어는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순간 은빛 섬광이 번뜩이더니 붉은 피가 솟구쳤다. 바위 위에 번쩍거리는 검붉은 핏방울이 점점이 뿌려졌다.
“고맙다, 해리.”
덤블도어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팔뚝에 깊이 베인 상처 위로 지팡이 끝을 갖다 댔다. 그러자 스네이프가 말포이의 상처를 치료했을 때처럼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하지만 너의 피는 나의 피보다 훨씬 더 소중하단다. 아, 이제 이 장애물이 해결된 것 같구나, 그렇지 않니?”
하얗게 빛을 발하는 아치 모양의 선이 또다시 벽 위에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선 안쪽으로 피 묻은 바위가 사라지면서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드러났다.
“내 뒤를 따라오너라.”
덤블도어가 아치문을 걸어 들어가자, 해리도 얼른 자기 지팡이를 꺼내어 불을 밝히고는 그의 뒤를 쫓아갔다.
그들 눈앞에 기괴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들은 커다랗고 검은 호숫가에 서 있었는데, 그 호수가 어찌나 광대했던지 해리는 그 끝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동굴 또한 너무나 높아서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저 멀리 호수 한가운데쯤일 거라고 짐작되는 곳에서 신비로운 초록색 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거울처럼 고요한 호수 표면에 반사되고 있었다. 그 초록색 불빛과 두 개의 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제외하면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그들이 들고 있는 작은 불빛은 기대했던 것만큼 그다지 멀리까지 비추지 못했다. 동굴 안의 어둠은 보통의 어둠보다도 훨씬 더 짙고 강력했던 것이다.
“잠시 둘러보자꾸나.”
덤블도어가 속삭였다.
“잘못해서 물에 발을 디디지 않도록 조심해라.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덤블도어는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해리는 그 뒤를 바싹 따라갔다. 호숫가를 빙 둘러싸고 있는 좁은 바위 기슭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저벅저벅하는 발 소리가 동굴 안에서 메아리쳤다. 그들은 계속해서 걸어갔지만, 주위 풍경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한쪽 옆으로는 거친 동굴 벽이 쭉 뻗어 있었고, 다른 한쪽으로는 거울처럼 잔잔한 검은 호수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으며, 바로 그 한가운데에 신비로운 초록색 불빛이 광채를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해리는 이 동굴과 동굴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침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교수님?”
마침내 해리가 침묵을 깨뜨리며 말했다.
“여기에 호크룩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그래, 분명히 있어. 문제는 그걸 어떻게 손에 넣느냐 하는 거지.”
“그렇다면…… 그냥 소환 마법을 써 보는 게 어떨까요?”
해리는 이 말을 하면서도 참 한심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능한 한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다.
“물론 그래도 되겠지.”
앞서 가던 덤블도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해리는 거의 그와 부딪힐 뻔했다.
“네가 직접 해 보지 그러니?”
“제가요? 아……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요구였지만, 해리는 목청을 가다듬고 지팡이를 높이 든 채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아씨오 호크룩스!”
순간 쾅 하는 폭발음 같은 소리와 함께 5~6미터쯤 떨어진 검은 호수 속에서 뭔가 커다랗고 창백한 것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해리가 그게 뭔지 제대로 보기도 전에 첨벙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시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거울처럼 잔잔하던 수면이 일렁이며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해리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서다가 벽에 몸을 부딪혔다. 간신히 덤블도어를 향해서 다시 돌아설 때까지도 그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저게 뭐였죠?”
“내 생각에는 아마도 우리가 호크룩스를 가져가려고 하면, 저런 것이 작동되도록 되어 있는 것 같구나.”
해리는 호수를 돌아보았다. 수면은 다시 빛나는 검은 거울처럼 고요했다. 일렁이던 잔물결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해리의 심장은 여전히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교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함부로 호크룩스에 손을 대려고 했다가는 분명 무슨 일인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었지. 어쨌든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해리, 덕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간단하게 알아냈구나.”
“하지만 아직도 그게 뭐였는지 모르잖아요.”
해리는 불길할 정도로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들’이 뭔지 모른다고 말해야겠지. 틀림없이 하나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럼 계속 걸어가 볼까?”
덤블도어가 말했다.
“교수님?”
“왜 그러니, 해리?”
“혹시 호수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호수 속으로? 그런 일은 우리가 아주 운이 나쁠 경우에나 일어나겠지.”
“호크룩스가 호수 바닥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오, 아니다……. 호크룩스는 저 한가운데에 있을 게다.”
덤블도어는 호수 중앙에서 빛나고 있는 신비로운 초록색 불빛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기로 가기 위해서 호수를 건너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럴 것 같구나.”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대왕 뱀이나 물귀신, 켈피(말 모양의 수중 괴물. 《신비한 동물 사전》 참조 : 역주), 요정 따위의 온갖 수중 괴물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호라!”
덤블도어는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 번 멈춰 섰다. 이번에 해리는 정말로 덤블도어와 부딪히고 말았다. 그 바람에 해리는 시커먼 호수 가장자리에서 휘청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덤블도어가 부상당하지 않은 손으로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겨 주었다.
“미안하구나, 해리. 내가 미리 주의를 주었어야 하는데 말이야. 벽 쪽으로 꼭 붙어 서도록 해라. 드디어 그 장소를 찾은 것 같구나.”
해리는 덤블도어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두운 호숫가 기슭은 어디가 어딘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모두 똑같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뭔가 다른 것을 찾은 모양이었다. 이제 그는 돌벽이 아니라 텅 빈 허공을 손으로 마구 더듬기 시작했다. 마치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오호!”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만족스런 탄성을 질렀다. 그의 손은 해리가 볼 수 없는 뭔가를 허공에서 꽉 잡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호수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버클 달린 신발 끝이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바위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것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덤블도어는 한 손으로 허공에서 뭔가를 꼭 손에 쥔 채, 다른 손으로 지팡이를 들어서 그 끝으로 주먹 쥔 손을 탁 쳤다.
그 즉시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굵은 청동색 쇠사슬이 나타났다. 덤블도어가 붙잡고 있는 그 사슬은 호수 깊숙한 곳에서 뻗어 나온 것이었다. 그가 지팡이로 사슬을 탁 치자, 사슬은 뱀처럼 그의 손 안에서 스르르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더니 땅 위에 똬리를 틀며 내려앉았다.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바위 벽에 부딪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시커먼 호수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뭔가가 끌려 나왔다. 해리는 입을 딱 벌린 채, 작은 배 한 척이 유령처럼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슬처럼 청동색 빛을 발하는 그 배는 잔물결 한 번 일으키지 않고 해리와 덤블도어가 서 있는 기슭을 향해서 조용히 다가왔다.
“교수님은 이 배가 거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해리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마법은 언제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란다.”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그때 배가 기슭에 살짝 부딪혔다.
“때로는 아주 뚜렷한 흔적을 남기기도 하지. 나는 톰 리들을 직접 가르쳤던 사람이야. 누구보다도 그의 방식을 잘 알고 있지.”
“저…… 저 배는 안전할까요?”
“오, 내 생각에는 안전할 것 같구나. 볼드모트는 언제라도 자신의 호크룩스를 찾으러 오거나 없애 버리려고 할 때를 대비해서, 저 호수 밑에 자신이 넣어 둔 괴물들의 분노를 사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호수를 건널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놓아야만 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 저 볼드모트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기만 하면, 물속에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까요?”
“물론 어느 순간 저들이 우리가 볼드모트 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덤벼들 위험성이 있다는 걸 각오해야겠지. 하지만 지금까지는 잘해 온 셈이야. 어쨌든 배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저들은 왜 우리가 배를 끌어올리도록 내버려 두었을까요?”
해리가 물었다. 그들이 호수 기슭을 출발해 나아가자마자 시커먼 물속에서 촉수들이 불쑥 솟아오르는 장면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다.
“볼드모트는 틀림없이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마법사가 아니라면 이 배를 발견할 수 없을 거라고 자신했을 게다.”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게다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배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극히 희박한 가능성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겠지. 저 앞에 오직 자신만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장애물들을 설치해 놓았다는 걸 염두에 두고서 말이지. 그럼 어디 그의 생각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해 보도록 할까? “
해리는 배를 내려다보았다. 그 배는 몹시 작았다.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배가 아닌 것 같은데요? 교수님과 제가 함께 탈 수 있을까요? 그럼 너무 무겁지 않을까요?”
덤블도어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볼드모트는 무게가 아니라 오히려 얼마나 강력한 마력이 이 호수를 건너가느냐 하는 데에 신경을 썼을 게다. 아마 이 배에는 한 번에 오직 한 명의 마법사만이 배를 타고 건널 수 있도록 마법이 걸려 있을 게다.”
“그렇다면……?”
“해리, 너는 마법사 축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구나. 아직 미성년인 데다 자격도 얻지 못했으니까. 볼드모트도 설마 열여섯 살짜리 꼬마가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겠지. 나의 능력에 비한다면 네 능력은 감지되지도 않을 게다.”
이런 말들은 해리의 사기를 북돋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덤블도어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볼드모트가 실수를 한 거지, 해리. 실수한 게야……. 원래 나이가 들어 젊은이들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어리석고 부주의해지는 법이란다……. 이번에는 네가 먼저 가도록 해라. 물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덤블도어가 한쪽 옆으로 비켜서자, 해리는 조심스럽게 배 위에 올라탔다. 뒤이어 배에 오른 덤블도어는 사슬을 배 바닥 위로 감아올렸다. 두 사람이 타기에는 배가 너무 비좁았다. 해리는 편안하게 앉지 못하고 무릎을 배 밖으로 배놓은 채 몸을 잔뜩 웅크려야만 했다. 뱃머리가 부드럽게 수면을 가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배는 마치 투명한 밧줄에 의해 호수 가운데로 연결된 것처럼 빛을 향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동굴의 벽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파도가 없다는 사실 한 가지만 빼면, 꼭 드넓은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고개를 숙이고서 그의 지팡이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있는 검은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배는 유리처럼 매끄러운 수면 위에 깊은 골을 만들며 커다란 물살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로 그때, 수면 아래에서 대리석처럼 하얀 것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해리의 눈에 들어왔다.
“교수님!”
해리가 소리쳤다. 겁에 질린 그의 목소리가 고요한 호수 위에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왜 그러니, 해리?”
“물 속에서 손 하나를 본 것 같아요. 사람의 손이었어요!”
“그래, 그랬을 게다.”
덤블도어가 태연하게 말했다. 해리는 사라져 버린 손을 찾으려고 물속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속이 울렁거리면서 토할 것만 같았다.
“혹시 그게 물속에서 불쑥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하지만 덤블도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해리의 의문이 풀렸다. 지팡이 불빛이 수면의 또 다른 부분을 비추며 지나가는 순간, 이번에는 얼굴을 위로 한 채 둥둥 떠다니는 사람의 시체가 바로 물 아래에 보였던 것이다. 그의 부릅뜬 두 눈은 거미줄이라도 쳐진 것처럼 희멀건 했고, 그의 머리카락과 긴 망토는 안개처럼 시체 주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여기 시체들이 있어요!”
해리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매우 날카로워져서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인 것 같았다.
“그렇구나.”
덤블도어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것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지금은’ 이라니요?”
해리가 물에서 시선을 떼고 덤블도어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것들이 그저 우리 밑을 평화롭게 떠다니고 있는 한은 괜찮다는 말이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한낱 시체를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단다, 해리. 그건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젓은 짓이지. 물론 내심 어둠과 죽음 모두를 두려워하는 볼드모트라면 내 말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또다시 볼드모트의 어리석음이 드러났구나. 우리가 죽음과 어둠을 두려워하는 건 단지 그것이 미지의 것이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다.”
해리는 덤블도어와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온통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 시체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들 중 하나가 불쑥 덤벼들기라도 하면…….”
해리는 가능한 한 덤블도어처럼 태연하고 흔들림 없는 어조로 말하려고 애를 썼다.
“혹시 제가 호크룩스를 불러내려고 했을 때, 호수에서 시체 하나가 튀어나왔던 게 아닐까요?”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아마 우리가 호크룩스를 손에 넣고 나면, 저것들은 지금처럼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게다. 하지만 어둠과 추위 속에서 사는 대부분의 생물들이 그러하듯이, 저것들도 빛과 열기를 두려워한단다. 그러니까 필요한 순간이 되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게야.”
덤블도어는 어리둥절한 해리의 표정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불 말이다, 해리.”
“아…… 그렇군요.”
해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서, 여전히 배가 거침없이 다가가고 있는 초록색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려움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죽은 자들이 우글거리는 거대한 검은 호수……. 트릴로니 교수를 만나고,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펠릭스 펠리시스를 주었던 일이 아득히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해리는 문득 친구들과 좀 더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올 걸 하는 후회를 했다. 게다가 지니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는데…….
“거의 다 왔다.”
덤블도어가 활기찬 어조로 말했다.
과연 초록색 불빛이 훨씬 더 크게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 분이 흐르자, 배가 뭔가에 살짝 부딪히더니 멈추어 섰다. 해리는 처음엔 그게 뭔지 잘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불이 밝혀진 지팡이를 높이 쳐들어 본 후, 그곳이 호수 가운데에 매끄러운 바위로 이루어진 작은 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라.”
해리가 배에서 내릴 때, 덤블도어가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었다.
그 섬은 덤블도어의 사무실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넓적한 검은 돌 위에는 초록색 불빛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불빛은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해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일종의 등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받침돌 위에 펜시브와 아주 흡사하게 생긴 돌 대야가 놓여 있고, 거기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돌 대야에 가까이 다가가자, 해리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돌 대야를 들여다보았다. 대야 안에는 인광을 발하는 에메랄드빛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뭐죠?”
해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어쨌든 피와 살보다도 훨씬 더 꺼림칙한 것 같구나.”
덤블도어가 검게 변한 손 위로 망토와 소맷자락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화상을 입은 손가락 끝을 뻗어서 그 액체의 표면을 만지려고 했다.
“교수님, 안 돼요. 만지지 마세요!”
“만지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단다.”
덤블도어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니? 이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구나. 너도 한번 해 보렴.”
해리는 대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안에 담긴 액체를 만져 보려고 했다. 하지만 뭔가가 그의 손길이 닿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었다. 아무리 세게 손을 밀어 넣어 보아도, 그의 손가락은 단단하고 강력한 공기 같은 것에 부딪힐 뿐이었다.
“해리, 저리 비켜서거라.”
덤블도어는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더니 액체의 수면 위로 이리저리 복잡하게 흔들며 소리 없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하지만 액체가 약간 더 밝게 빛나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덤블도어가 마법을 거는 동안, 해리는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내리자, 해리는 비로소 말을 걸어도 될 것 같았다.
“교수님은 호크룩스가 이 안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단다.”
덤블도어는 대야 안을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에메랄드빛 액체의 매끈한 수면 위에 거꾸로 비쳤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찾을 수 있을까? 이 약 속에 손을 넣을 수가 없으니 말이야. 사라지게 하거나 반으로 가르거나 떠내거나 빨아들일 수도 없고, 변신술을 쓰거나 마법을 걸 수도 없고, 그 밖에 다른 어떤 수를 써도 이 약의 성질을 바꿀 수가 없구나.”
덤블도어는 거의 멍한 표정으로 다시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고는 허공에 대고 다시 한 번 휘두르자 어디선가 크리스털 잔이 그의 손 안에 나타났다.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이 마법약을 마셔 버려야 한다는 것뿐이구나.”
“뭐라고요?”
해리가 소리쳤다.
“안 돼요!”
“아니, 내 생각은 그렇단다. 대야 밑바닥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걸 전부 마셔 버리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혹시…… 그러다가 목숨이라도 잃게 되면……?”
“오, 그런 일은 없을 게다.”
덤블도어는 태연하게 말했다.
“볼드모트 경이 이 섬까지 온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해리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또다시 모든 사람들에게서 선한 면만 보고 싶어 하는 덤블도어의 정신 나간 고집이 발동한 것일까?
“교수님.”
해리는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애를 쓰면서 말했다.
“교수님, 우리가 지금 상대하는 자는 바로 볼드모트예요…….”
“미안하구나, 해리. 내가 말을 잘못했다. 그자가 이 섬까지 온 사람을 단번에 죽이려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했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덤블도어가 자기 말을 정정했다.
“틀림없이 그들을 가능한 한 오래 살려 두어서 자기가 설치해 놓은 방어막을 어디까지 뚫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했을 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들이 이 대야를 그토록 비우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고 싶었을 거야. 볼드모트 경은 자신의 호크룩스에 대해서 자기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해리는 다시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덤블도어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살짝 이마를 찌푸린 채, 에메랄드빛 액체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틀림없이 이 약은 내가 호크룩스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방해라는 쪽으로 작용을 하겠지. 나를 마비시키거나, 내가 여기에 왔는지 그 이유를 잊어버리도록 만들거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을 거다. 아니면 다른 어떤 식으로는 나를 꼼짝하지 못하도록 만들겠지. 해리, 혹시 그런 경우가 생기면 내가 반드시 이 약을 다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너의 임무다. 설사 내가 싫다고 거부하는 한이 있더라도, 넌 이 약을 내 입에 다 쏟아 부어야만 해, 알겠니?”
대야 위로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들의 얼굴이 기묘한 초록색 불빛을 받아 파리하게 빛났다.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함께 가자는 초대를 받았단 말인가? 덤블도어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줄지도 모르는 마법약을 그의 입에 강제로 부어 넣기 위해서……?”
“명심해라.”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데려올 때 어떤 조건을 내걸었는지.”
해리는 대야에서 반사된 빛을 받아 초록색으로 변해 버린 덤블도어의 푸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만약에…….”
“넌 내가 내리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니?”
“그랬습니다, 하지만…….”
“혹시 위험이 따를 수가 있다고 내가 미리 너에게 경고하지 않았니?”
“그랬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럼 됐다.”
덤블도어는 또다시 소매를 뒤도 젖히더니 빈 잔을 들었다.
“내 명령대로 하거라.”
“왜 제가 대신 그 약을 마시면 안 되는 거죠?”
해리가 안타깝게 물었다.
“그건 내가 훨씬 나이도 많고, 더 지혜롭고, 더 쓸모없기 때문이란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다, 해리. 네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서 내가 이 약을 끝까지 마실 수 있게 도와줄 것을 약속 하는 거지?”
“그렇지만…….”
“믿어도 되겠지?”
“하지만…….”
“해리, 약속해라.”
“저…… 저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해리가 무언가 더 말을 하기도 전에, 덤블도어는 마법약 속으로 크리스털 잔을 집어넣었다. 순간 해리는 부디 잔이 마법약 속으로 들어갈 수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크리스털 잔은 그 어떤 것도 통과하지 못했던 수면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잔이 가득 채워지자, 덤블도어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해리, 너의 건강을 빌며.”
그리고 덤블도어는 잔을 비웠다. 해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두 손으로 대야의 가장자리를 어찌나 세게 잡았던지, 손가락 끝이 마비되어 감각이 사라질 정도였다.
“교수님?”
덤블도어가 빈 잔을 내려놓자, 해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기분이 어떠세요?”
덤블도어는 두 눈을 꼭 감고서 머리를 흔들었다. 해리는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덤블도어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다시 크리스털 잔을 대야 속에 집어넣고 약을 떠서 들이켰다.
덤블도어는 말없이 세 번째 잔을 비웠고, 다시 네 번째 잔을 절반쯤 마시다가 비틀거리며 대야 위로 쓰러졌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서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님?”
해리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말 들리세요?”
덤블도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의 얼굴은 깊은 잠에 빠져 무시무시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처럼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잔을 잡고 있던 손이 풀리면서 약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해리는 얼른 손을 뻗어 크리스털 잔을 똑바로 붙잡았다.
“교수님, 제 말 들리세요?”
해리는 큰 소리로 다시 한 번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동굴 안에 메아리쳤다.
덤블도어는 숨을 헐떡거리며 해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해리는 이처럼 겁에 질린 덤블도어의 목소리를 지금껏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싫어…… 그러지 마…….”
해리는 그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구부러진 코와 반달 모양의 안경, 그에게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해리는 뭘 어떻게 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싫어…… 그만두고 싶어…….”
덤블도어가 신음했다.
“그만두시면 안 돼요, 교수님.”
해리가 말했다.
“계속 마셔야만 해요. 기억나세요? 계속 마셔야만 한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잖아요. 여기 있어요…….”
해리는 어떻게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몸서리치게 밉고 싫었지만, 덤블도어가 남은 약을 다 마실 수 있도록 억지로 잔을 그의 입에 갖다 대고 약을 쏟아 부었다.
“안 돼…….”
해리가 잔을 다시 대야에 집어넣었을 때, 덤블도어가 애원하며 말했다.
“싫어…… 싫어…… 날 보내 줘…….”
“괜찮아요, 교수님.”
해리가 손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여기 있잖아요.”
“그만 해, 그만 해.”
덤블도어가 신음 소리를 냈다.
“네…… 네…… 이것만 마시면 끝나요.”
해리는 거짓말을 하면서 덤블도어의 벌어진 입 속으로 또다시 잔에 담긴 액체를 쏟아 부었다.
덤블도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죽음 같은 시커먼 호수를 가로질러 텅 빈 동굴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안 돼, 안 돼, 안 돼……. 난 할 수 없어, 할 수 없다고……. 제발 그만둬……. 싫단 말이야…….”
“괜찮아요, 교수님. 괜찮다니까요!”
해리가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의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서 여섯 번째 잔을 제대로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대야는 이제 겨우 반쯤 비어 가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무사하실 거라고요. 이건 현실이 아니에요. 이건 분명히 현실이 아니라고요. 자, 이걸 드세요. 어서 이걸 드세요…….”
덤블도어는 해리가 해독제라도 준 것처럼 순순히 그 잔을 받아 마셨다. 하지만 다 마시고 나자, 걷잡을 수 없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모두 내 잘못이야. 모두 내 잘못이라고.”
덤블도어가 흐느끼며 말했다.
“제발 그만 멈춰 다오. 이제 보니 내가 틀렸어. 오, 제발 멈춰 다오. 절대로…… 절대로…… 그걸 다시…….”
“이것만 마시면 끝나요, 교수님.”
해리는 일곱 번째 잔을 기울여 덤블도어의 입 속으로 약을 부어 넣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덤블도어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온몸을 잔뜩 움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손을 마구 휘두르는 바람에 하마터면 해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잡고 있는 잔을 엎을 뻔했다. 덤블도어가 신음하며 중얼거렸다.
“그들을 해치지 마라. 그들을 해치지 마. 부탁이야. 내가 잘못했어. 대신 나를 해쳐라…….”
“여기, 이걸 드세요. 어서 드세요. 괜찮아지실 거예요.”
해리는 절망적으로 잔을 권했다. 덤블도어는 이번에도 그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그는 눈을 꼭 감은 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벌렸다.
덤블도어는 또다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쓰러졌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땅을 마구 내려쳤다. 해리는 다시 아홉 번째 잔을 채웠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안 돼…… 그건 안 된다…… 그건 안 돼. 내가 뭐든 다 할 테니…….”
“그냥 마시세요, 교수님. 단숨에 들이켜세요…….”
덤블도어는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 어린아이처럼 그 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시더니, 몸속에서 불이 나는 듯 다시 비명을 질렀다.
“이제 더 이상 싫어, 제발 그만 해…….”
해리는 열 번째 잔을 채웠다. 크리스털 잔이 대야의 바닥을 긁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거의 다 되었어요, 교수님. 이걸 드세요. 어서요…….”
해리는 덤블도어의 어깨를 붙잡아 주었다. 덤블도어는 다시 잔을 들어 약을 들이켰다. 해리는 또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덤블도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차라리 죽여 다오! 나를 죽여 줘! 그만 해, 그만 하라니까! 차라리 죽고 싶구나!”
“교수님, 여기 있어요. 어서 드세요…….”
덤블도어는 잔을 비우자마자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나를 죽여라!”
“여기…… 이거면 끝나요.”
해리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것만 드세요. 이제 곧 끝날 거예요……. 끝날 거라고요!”
덤블도어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벌컥벌컥 잔을 들이켜더니, 크게 숨을 한 번 내쉬고는 그대로 얼굴을 땅에 박고 고꾸라졌다.
“안 돼요!”
또다시 잔을 채우려고 일어섰던 해리는 잔을 대야 속에 떨어뜨리고서 소리를 지르며 덤블도어 옆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 등을 대고 눕게 했다. 덤블도어는 안경을 비스듬하게 걸치고서 입을 헤벌린 채, 힘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안 돼요!”
해리는 덤블도어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안 돼요! 돌아가시면 안 돼요! 이건 독약이 아니라고 말씀 하셨잖아요. 정신 차리세요. 레너바이트!”
해리가 덤블도어의 가슴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며 소리쳤다. 반짝하고 붉은 섬광이 튀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레너바이트! 교수님…… 제발…….”
덤블도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해리는 가슴이 뛰었다.
“교수님, 어떠세요……?”
“물…….”
덤블도어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물이요…… 알았어요.”
해리는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해리는 벌떡 일어나서 대야 속에 떨어뜨린 잔을 다시 집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대야 밑바닥에 황금 로켓이 놓여 있는 것이 언뜻 보였다.
“아구아멘티!”
해리는 지팡이로 잔을 탁 치면서 외쳤다.
곧 잔에 맑은 물이 가득 찼다. 해리는 덤블도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의 머리를 받치고는 잔을 그의 입술에 갖다 대었다. 하지만 잔이 텅 비어 있었다. 덤블도어는 신음 소리를 내며 숨을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히…… 잠깐만요……. 아구아멘티!”
해리는 다시 지팡이로 잔을 겨누며 소리쳤다. 순식간에 맑은 물이 또다시 잔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덤블도어의 입가로 가져가자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교수님, 저도 애쓰고 있어요. 애쓰고 있다고요!”
해리가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하지만 덤블도어의 귀에 가연 그의 말이 들리기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덤블도어는 앞으로 쓰러져서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해 가쁜 숨을 거세게 몰아쉬고 있었다.
“아구아멘티…… 아구아멘티…… 아구아멘티!”
다시 한 번 잔은 채워졌다가 비워졌다. 이제 덤블도어의 숨소리가 점차 희미해졌다. 해리의 머릿속이 공포로 혼란스러워졌다. 해리는 본능적으로 이제 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바로 볼드모트가 원래 의도한 바였던 것이다.
해리는 바위 가장자리로 황급히 몸을 돌려 몇 발짝 나가 잔을 호수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잔 가득히 담았다. 그 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교수님…… 여기요!”
해리는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갔지만, 덤블도어의 얼굴에 물을 쏟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왜냐하면 잔을 잡지 않은 그의 팔에 느껴지는 싸늘한 감촉은 하얀 손이 그의 손목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 손의 주인은 바위 너머에서 천천히 그를 뒤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제 호수의 수면은 더 이상 거울처럼 잔잔하지 않았다. 호수는 마구 요동을 치기 시작했고, 해리의 시선이 닿는 곳 어디에서나 하얀 머리와 손들이 검은 물 밖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었다. 움푹 꺼지고 허연 눈을 부릅뜬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들이 바위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검은 호수 전체에서 시체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해리는 매끄럽고 축축한 섬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그의 팔을 움켜쥐고 있는 인페리우스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소리쳤다. 인페리우스는 그의 팔을 놓더니 검은 물속으로 다시 풍덩 떨어져 버렸다. 해리는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미 더 많은 인페리우스들이 바위 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뼈만 앙상한 손가락으로 미끄러운 바위를 악착같이 움켜쥐면서, 얼어붙은 텅 빈 눈으로 오직 해리만을 응시한 채, 물에 흠뻑 젖은 누더기 옷을 질질 끌며 다가왔다. 훌쭉한 그들의 얼굴은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패트리피쿠스 토탈루스!”
해리가 또다시 뒷걸음질 치면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예닐곱 명의 인페리우스들이 풀썩 쓰러졌지만, 뒤이어 더 많은 인페리우스들이 그를 향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임페디멘타! 인카서러스!”
그중 몇 명이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한두 명은 밧줄에 묶였다. 하지만 뒤를 이어 바위를 기어 올라온 다른 인페리우스들은 쓰러진 시체들을 그냥 밟고 다가왔다. 해리는 미친 듯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섹튬셈프라! 섹튬셈프라!”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들의 누더기 옷 사이로 얼어붙은 살갗 여기저기에 쫙쫙 깊이 베인 상처들이 드러났지만, 피는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시들어 빠진 두 손을 앞으로 쭉 내민 채, 무감각하게 저벅저벅 걸어올 뿐이었다. 계속해서 주춤주춤 물러서던 해리의 등 뒤에서 시체처럼 싸늘하고 뼈만 남은 가느다란 팔이 불쑥 나와 그를 껴안았다. 그리고 해리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천천히 호수를 향해 끌고 가기 시작했다. 해리는 더 이상 도망칠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꼼짝없이 물에 빠져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도 마치 볼드모트의 쪼개진 영혼 한 조각을 지키는 시체 호위병이 되는 것이다.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팍 하고 불길이 치솟았다. 빨갛고 노란 불꽃이 원을 그리며 바위 주위를 감싸자, 해리를 꽉 움켜쥐고 있던 인페리우스들이 비틀거리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감히 불길을 뚫고 물속으로 다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만 해리를 놓아 버렸다. 쿵 하고 땅에 떨어진 해리는 바위 위에 쭉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팔을 긁히고 말았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일어나서 지팡이를 치켜들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덤블도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들을 둘러싼 인페리우스들만큼이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키가 크고 당당했다. 그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지팡이를 횃불처럼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이 마치 거대한 올가미처럼 그들 모두를 뜨거운 열기로 휘감고 있었다.
인페리우스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불길로부터 달아나려고, 좌충우돌 서로 몸을 부딪히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덤블도어는 돌 대야 바닥에 있는 로켓을 집어 들더니 망토 안에 감추었다. 그리고 말없이 해리를 향해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덤블도어가 해리를 데리고 다시 배로 돌아가는데도, 불길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인페리우스들은 그들의 사냥감이 도망치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황한 인페리우스들은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불길에 둘러싸인 채 호수 가장자리에 이르자, 앞을 다투어 검은 호수 속으로 다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해리는 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순간 덤블도어가 배에 올라 탈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덤블도어가 배에 올라타면서 약간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덤블도어는 그들을 보호해주고 있는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데 온 힘을 다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덤블도어를 붙잡고 배에 앉을 수 있게 부축해 주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모두 안전하게 서로 붙어서 자리를 잡고 앉자, 배는 섬을 떠나 검은 호수 위를 가로질러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불길이 배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물 밑에서 우글거리는 인페리우스들은 다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못했다.
“교수님…….”
해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깜박 잊었어요. 불 말이에요. 저것들이 자꾸 다가오니까 그만 겁에 질려서…….”
“그럴 만도 하지.”
덤블도어가 중얼거렸다. 해리는 꺼질 듯이 희미한 그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쿵 하고 살짝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배가 기슭에 닿았다. 해리는 얼른 배에서 뛰어내린 후 서둘러 돌아서서 덤블도어를 부축해 주었다. 땅에 올라서자, 덤블도어는 힘없이 지팡이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곧바로 불길이 사라졌다. 하지만 인페리우스들은 더 이상 호수에서 기어 나오지 않았다. 작은 배는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배와 연결된 사슬 또한 쨍그랑쨍그랑 소리를 내며 호수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덤블도어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동굴 벽에 몸을 기댔다.
“힘이 없구나…….”
덤블도어가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
해리가 얼른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놀랄 만큼 파리해진 덤블도어의 안색과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 못내 걱정스러웠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 저에게 기대세요…… 교수님.”
해리는 덤블도어의 성한 팔을 자신의 어깨 위에 걸치고, 그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한 채 호숫가를 따라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아주 잘 만든 보호 마법이었어…….”
덤블도어가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아주 잘했다, 해리……. 정말 잘했어…….”
“지금은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해리는 덤블도어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지고 그의 말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지자 몹시 두려웠다.
“힘을 아끼세요, 교수님……. 곧 여기서 나갈 거예요…….”
“아치문이 다시 닫혔을 거야……. 내 칼…….”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까 바위에 긁혀 상처가 났거든요.”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딘지만 말씀해 주세요…….”
“여기다…….”
해리는 아까 긁혀서 상처가 난 팔을 바위에 문질렀다. 피의 제물을 받자, 아치문이 즉시 열렸다. 그들은 동굴 밖으로 나왔다. 해리는 덤블도어를 부축한 채, 절벽 틈새 안으로 가득 밀려 들어온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교수님, 우린 무사할 거예요.”
해리는 자꾸만 되뇌었다. 허약한 목소리로라도 중얼거리던 덤블도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더욱더 겁이 났던 것이다.
“거의 다 왔어요. 제가 순간이동을 해서 모시고 갈 수 있어요……. 아무 걱정도 하지 마세요…….”
“해리 난 걱정하지 않는다.”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물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 기운이 돌아온 것 같았다.
“네가 내 곁에 있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