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장
새어나간 예언
해리 포터가 지니 위즐리와 사귄다는 소식은 수많은 사람들, 특히 주로 여학생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 후로 몇 주가 지나는 동안, 예전과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떠도는 소문 따위에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끔찍스런 어둠의 마법과 관련된 일로 인해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그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행복한 일로 인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그를 멋지게 변화시켰던 것이었다.
“해리 오빠는 사람들이 차라리 이 문제를 가지고 떠들어 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겠지.”
지니가 말했다. 그녀는 휴게실 바닥에 앉아서 해리의 다리에 몸을 기댄 채 《예언자 일보》를 읽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세 번씩이나 디멘터의 습격이 있었는데도, 로밀다 베인이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오빠 가슴에 히포그리프 문신이 있다던데 그게 사실이냐고 나에게 물어보는 것뿐이니.”
론과 헤르미온느가 동시에 배꼽을 잡고 웃어 댔다. 하지만 해리는 두 사람을 무시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사실은 헝가리 혼테일(용의 한 종류 : 역주)이라고 말해 줬어.”
지니가 신문을 한 장 넘기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그게 훨씬 더 남자답잖아.”
“눈물 나게 고맙다.”
해리가 씩 웃었다.
“그럼 론한테는 무슨 문신이 있다고 했어?”
“피그미 퍼프. 하지만 어디 새겼는지는 말 안 했어.”
헤르미온느가 데굴데굴 구르며 정신없이 웃어 대자, 론이 인상을 썼다.
“조심해.”
론이 경고라도 하듯이 해리와 지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내가 허락은 했지만, 다시 취소할 수도 있으니까…….”
“허락이라고?”
지니가 코웃음을 쳤다.
“도대체 언제부터 론 오빠가 내 일에 허락을 하고 말고 했지? 게다가 마이클이나 딘보다는 차라리 해리가 낫겠다고 말한 건 바로 오빠였잖아.”
“그래, 그랬지.”
론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두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서로 껴안거나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한해서야.”
“이 비열한 위선자! 오빠랑 라벤더는 어땠는데! 한 쌍의 뱀장어처럼 아무 데서나 나뒹굴었으면서!”
지니가 따졌다.
하지만 6월이 되면서, 론의 관용을 시험할 일도 별로 없게 되었다. 해리와 지니가 함께 있을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지니는 O.W.L.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니가 도서관에 틀어박혀 지내던 어느 날 저녁, 해리는 휴게실 창가에 앉아 약초학 숙제를 끝내려고 하였지만, 사실은 점심시간에 지니와 함께 호숫가에서 보냈던 꿈 같은 시간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헤르미온느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론과 해리의 사이에 기어들어 앉았다.
“해리, 너랑 할 말이 있어.”
“뭔데?”
해리가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바로 전날에도 헤르미온느는 지니가 시험에 대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할 이 마당에 제발 지니를 좀 방해하지 말라고 그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었던 것이다.
“소위 혼혈 왕자란 자에 대해서야.”
“오, 또 시작이야.”
해리가 신음 소리를 냈다.
“제발 그 이야기는 좀 그만둘 수 없겠니?”
해리는 감히 필요의 방으로 돌아가서 그의 책을 되찾아 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법약 수업 시간에 그의 성적은 현저하게 나빠졌다(하지만 지니를 좋아하는 슬러그혼은 우스갯소리로 그걸 모두 해리가 사랑의 열병에 걸린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스네이프가 아직도 왕자의 책을 손에 넣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스네이프가 그를 감시하는 동안에는 그 책을 지금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만 못 두겠는걸.”
헤르미온느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때까지는 말이야.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어둠의 마법 주문들을 취미 삼아 만드는지, 요새 내가 알아보는 중이야.”
“그는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아.”
“그리고? 그란 말이야? 누가 그 사람이 ‘그’라고 했지?”
“그 점에 대해서는 벌써 다 이야기 끝냈잖아.”
해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왕자라고, 헤르미온느! 왕자란 말이야!”
“바로 그거야!”
헤르미온느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호주머니에서 아주 오래된 신문 한 장을 꺼내어 해리가 앉아 있는 탁자 위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이걸 봐! 이 사진을 좀 보라고!”
해리는 구깃구깃한 신문을 집어 들고, 시간이 흘러 노랗게 변색된 움직이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론도 몸을 기울이고 그것을 쳐다보았다. 열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빼빼 마른 여학생의 사진이었다. 길쭉하고 파리한 얼굴에 눈썹이 짙은 그녀는 썩 예쁜 얼굴은 아니었는데, 어딘지 뚱하면서도 무뚝뚝해 보였다. 사진 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씌어 있었다.
에일린 프린스, 호그와트 곱스톤 팀의 주장.
“이게 뭐?”
해리가 그 사진에 딸려 있는 짤막한 기사를 대충 훑어보며 물었다. 학교 대항 시합에 대한 다소 시시한 내용이었다.
“이 여학생의 이름은 에일린 프린스였어. 프린스(‘prince’는 왕자라는 뜻 : 역주)라고, 해리.”
그들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해리는 비로소 헤르미온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돼.”
“뭐가?”
“넌 이 여학생이 혼혈 왕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오, 제발 그만 좀 해라.”
“왜 안 되는데? 해리, 마법사 세계에는 진짜 왕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건 그냥 별명이거나 누군가가 스스로 붙인 호칭이 아니라면, 진짜 이름일 수도 있다고, 안 그래?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만약 이 여자의 아버지가 프린스란 성을 가진 마법사고, 이 여자의 어머니가 머글이라면, 그럼 그때는 이 여자가 진짜 ‘혼혈 왕자’일 수도 있는 거야!”
“그래, 정말 천재적이다, 헤르미온느…….”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 어쩌면 이 여자는 자신의 반쪽이 프린스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걸 자랑스러워했을 수도 있어!”
“이봐, 헤르미온느. 여학생은 분명히 아니야. 딱 보면 알 수 있다고.”
“솔직히 말해서 넌 여학생이 그렇게 똑똑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5년 동안이나 너랑 같이 어울려 다녔는데, 어떻게 여학생이 그렇게 똑똑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겠니?”
해리가 발끈했다.
“그냥 글을 쓰는 방식을 봤을 때 그가 남자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거야. 구분이 간다니까. 네가 말한 그 여학생은 이 일에는 아무 상관이 없어. 도대체 그 기사는 어디서 난 거니?”
“도서관에서.”
헤르미온느가 뻔히 예상했던 대답을 했다.
“거기에 옛날 《예언자 일보》들이 다 보관되어 있거든, 어쨌거나 난 틈나는 대로 에일린 프린스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 거야.”
“마음대로 해.”
해리는 짜증이 났다.
“그럴 거야.”
헤르미온느가 대꾸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마법약 과목의 역대 수상 기록부터 살펴볼 거라고!”
헤르미온느는 초상화 구멍으로 다가가며 쏘아붙였다.
해리는 한동안 인상을 쓰며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다시 점점 더 어두워지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헤르미온느는 마법약 수업에서 네가 자기보다 잘하는 걸 도저히 두고 봐 줄 수가 없는 거야.”
론이 다시 《1,000가지 마법 약초와 곰팡이》책을 들여다보며 한마디 던졌다.
“넌 내가 그 책을 가져오고 싶어 하는 걸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론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왕자, 그 사람은 천재였어……. 게다가 위석에 대한 그의 언급이 없었더라면…….”
론은 손가락으로 목을 쓱 긋는 시늉을 했다.
“난 지금 여기 앉아서 너랑 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을 거야, 안 그래? 물론 네가 말포이에게 쓴 그 주문이 좋다는 건 아니지만…….”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해리가 재빨리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말포이는 말끔하게 나았잖아, 안 그래? 금방 다시 일어설 거야.”
“맞아.”
해리가 대답했다.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었다. 물론 아직도 그의 양심이 찔리긴 했지만 말이다.
“스네이프 덕분이지…….”
“그런데 이번 토요일에도 계속 스네이프에게 징계를 받아야 하니?”
론이 물었다.
“그래, 그 다음 토요일에도, 그리고 그 다음 다음 토요일에도.”
해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심지어 스네이프는 이번 학기 말까지 그 서류 상자들을 다 정리하지 못하면, 내년까지 계속할 거라는 암시까지 주고 있다니까.”
해리는 지니와 함께 보낼 시간도 부족한 판국에 징계로 또 시간을 빼앗기다니,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요즘 들어 혹시 스네이프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종종 들었다. 그가 매번 점점 더 늦게까지 해리를 붙잡아 두면서 해리가 이렇게 좋은 날씨와 그에 따른 갖가지 기회를 놓쳤음을 뜻하는 신랄한 말들을 내뱉곤 했기 때문이다.
그때 지미 피크스가 옆에 나타나는 바람에, 해리는 얼른 이런 불길한 생각들을 떨쳐 버렸다. 그는 해리에게 양피지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고마워, 지미……. 이거 봐, 덤블도어 교수님이 보내신 거야!”
해리는 잔뜩 흥분해서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 재빨리 훑어 보았다.
“교수님께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교장실로 오라고 하시는데!”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맙소사.”
론이 속삭였다.
“설마…… 교수님께서 그걸 찾으신 건 아니겠지?”
“어서 가서 뵙는 게 좋겠지?”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휴게실에서 빠져나간 그는 7층 복도를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가는 도중에 유일하게 만난 피브스는 맞은편에서 휙 날아와 늘 그렇듯이 해리에게 분필 조각을 던지며 성가시게 굴었다. 그는 해리가 날린 방어 주문을 살짝 피하더니 큰 소리로 낄낄거리며 웃었다. 일단 피브스가 사라지고 나자 복도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소등 시간이 겨우 15분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벌써 휴게실로 돌아가 있었다.
그때 비명 소리와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감히…… 네 녀석이이이이이!”
그 소리는 복도 근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해리는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지팡이를 손에 쥔 채, 소리 나는 쪽을 향해 황급히 달려갔다. 복도 모퉁이를 막 돌아섰을 때, 바닥에 큰대자로 뻗어 허우적거리고 있는 트릴로니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늘 겹겹이 걸치고 다니는 숄 중 하나가 그녀의 머리를 덮고 있었고, 옆에는 싸구려 셰리주 병 대여섯 개가 나뒹굴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깨져 있었다.
“교수님!”
해리는 얼른 앞으로 달려가서 트릴로니 교수를 일으켜 세웠다. 반짝이는 구슬 목걸이들이 그녀의 안경과 뒤엉켜 있었다. 트릴로니 교수는 큰 소리로 딸꾹질을 하면서 엉클어진 머리를 매만지고는 해리의 팔에 의지한 채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죠, 교수님?”
“질문 한번 잘했다!”
트릴로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우연히 본 불길한 징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 걷고 있었는데…….”
하지만 해리는 트릴로니의 말을 별로 귀담아듣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방금 알아차렸던 것이다. 오른쪽 벽에는 춤추는 트롤들의 벽걸이 양탄자가 걸려 있었고, 왼편으로는 매끄럽고 단단한 돌벽이 쭉 뻗어 있었다. 여기에 숨겨진 것은 바로…….
“교수님, 혹시 필요의 방에 들어가려고 하셨나요?”
“나에게 계시된 불길한 징조들은……. 뭐…… 뭐라고?”
트릴로니 교수가 갑자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필요의 방이요.”
해리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나…… 나는…… 이런…… 학생들이 그 방을 알고 있는지 몰랐구나.”
“모두 다 아는 건 아니에요.”
해리가 얼른 안심을 시켰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교수님께서 비명을 지르셨던 것 같았는데……. 꼭 다치신 것 같았어요…….”
“나는…… 그러니까…….”
트릴로니 교수는 방어적으로 어깨 위에 걸친 숄을 단단히 여미더니, 커다랗게 확대되어 보이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 방에…… 뭐…… 좀 개인적인 물건들을…… 놓아두려고…….”
그러더니 그녀는 ‘악의적인 비방’이 어쩌고저쩌고하며 몇마디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해리는 빈 셰리주 병들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방에 들어가서 저것들을 숨기실 수가 없었던 거로군요?”
해리는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혼혈 왕자의 책을 숨기려고 했을 때엔 방문이 순순히 열렸었던 것이다.
“아니, 그 방에 들어갔었단다.”
트릴로니 교수가 빈 벽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데 벌써 누군가가 그 방 안에 있었어.”
“누가 있었다고요? 누가요?”
해리가 물었다,
“그 방에 있었던 사람이 누군가요?”
“전혀 모르겠다.”
트릴로니 교수는 해리가 너무나 다급한 목소리로 따져 묻자, 약간 놀란 기색이었다.
“그 방에 들어갔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어. 내 평생 물건을 숨겨…… 아니, 그 방을 이용해 왔지만, 이런 일은 정말이지 처음이야.”
“목소리라고요? 무슨 말을 하던가요?”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트릴로니 교수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함성을 지르고 있었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고요?”
“그것도 아주 신이 나서 말이야.”
해리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남자던가요, 여자던가요?”
“언뜻 짐작하기에 남자 같았어.”
트릴로니 교수가 말했다.
“즐거워하는 목소리였나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였지.”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뭔가를 축하하는 것처럼 말인가요?”
“그래, 그거였어.”
“그런 다음에는요?”
“그런 다음에 내가 ‘거기 누구요?’ 하고 소리쳤지.”
“교수님 정도 되시면 굳이 듣지 않아도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해리가 약간 화가 나서 트릴로니에게 물었다.
“마음의 눈이라는 건 말이야…….”
트릴로니 교수가 숄과 주렁주렁 매달린 반짝이는 구슬 목걸이들을 똑바로 매만지면서 위엄 있게 말했다.
“함성 소리 같은 그런 세속적인 영역 너머의 문제들만 보는 법이란다.”
“알았어요.”
해리가 얼른 대답했다. 마음의 눈에 대한 트릴로니 교수의 연설은 전에도 실컷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목소리가 누구라고 대답하던가요?”
“아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
트릴로니 교수가 대답했다.
“갑자기 모든 게 캄캄해졌고, 그 다음에 정신을 차려 보니, 내가 방 밖으로 곤두박질쳐 있지 뭐냐!”
“그럼 꼼짝없이 당하기만 했단 말이에요?”
해리는 도저히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내가 말했잖니. 갑자기 모든 게 캄캄해졌다고…….”
트릴로니 교수가 갑자기 말을 뚝 멈추더니 수상쩍은 눈으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교수님께서 덤블도어 교수님께 직접 말씀드리는게 좋을 것 같아요.”
해리가 제안했다.
“덤블도어 교수님도 말포이가 뭔가를 축하하고 있었다는걸…… 아니, 그러니까 누군가가 교수님을 그 방에서 내동댕이쳤다는 걸 아셔야 해요.”
놀랍게도 트릴로니 교수는 이 제안을 듣자,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교장 선생님은 내가 자주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넌지시 밝히셨단다.”
트릴로니 교수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굳이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억지로 찾아다니지 않아. 덤블도어 교수님이 내 카드가 보여 준 경고들을 무시하기로 했다면…….”
뼈만 앙상한 트릴로니 교수의 손이 갑자기 해리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하고 또 해 봐도…… 카드를 어떻게 늘어놓아 봐도…….”
트릴로니 교수는 숄 밑에서 과장된 몸짓으로 카드 한 장을 뽑아 들었다.
“바로 이 벼락 맞은 탑 카드가 나왔지.”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엄청난 불행이야. 재앙 말이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그렇군요.”
해리가 또다시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 더욱더 교수님께서 교장 선생님께 그 목소리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모든 게 캄캄해지면서 방 밖으로 내던져진 것 하며…….”
“그렇게 생각하니?”
트릴로니 교수는 잠시 동안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이 겪은 이 작은 모험담을 누군가에게 다시 들려줄 수 있다는 데 솔깃해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전 지금 교장 선생님을 뵈러 가는 길이에요.”
해리가 말했다.
“교장 선생님과 약속이 있거든요. 저와 함께 가시면 되겠네요.”
“오, 정 그렇다면.”
트릴로니 교수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더니 빈 셰리주 병들을 다 주워서 근처 벽의 우묵하게 들어간 벽감 속에 세워놓은 푸른색과 하얀색이 섞인 커다란 꽃병 속으로 휙 던져 버렸다.
“네가 내 수업을 들었을 때가 그립구나, 해리.”
트릴로니 교수가 해리와 함께 걸으면서 활기차게 말했다.
“넌 절대로 대단한 예언가는 아니었지만…… 정말 멋진 예언 대상이었지.”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 동안 계속해서 죽을 거라는 말만 해 대는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 대상이 되었던 것은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솔직히…….”
트릴로니 교수는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그 늙은 말…… 아니, 미안하다, 그 켄타우로스가 카드 점에 대해서 과연 하나라도 아는 게 있을지 염려스럽구나. 나는 그자에게 예언자 대 예언자로서, 점차 다가오고 있는 대재앙의 분명한 징조들을 느끼고 있느냐고 물었어. 하지만 그자는 날 웃음거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 그래, 웃음거리 말이야!”
트릴로니의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높아졌다. 분명 술병을 뒤에 버리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독한 셰리주 냄새가 확 풍겨왔다.
“아마도 그 말은 내가 우리 고조할머니의 능력을 물려받지 못했다고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었겠지. 날 질투하는 자들이 몇 년 동안이나 그런 소문들을 퍼뜨려 왔어. 그런자들에게 내가 뭐라고 말하는지 아니, 해리? 만약 내가 내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었다면 어떻게 덤블도어 교수님이 이 위대한 학교에서 내가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겠느냐고 반박한단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나를 굳게 신뢰하면서 말이지.”
순간 해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뭐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덤블도어 교수님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트릴로니 교수가 감정에 복받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때 덤블도어 교수님은 내게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어. 당연하지……. 아주 깊은 감명을 말이야……. 그때 난 호그스미드에 묵고 있었는데, 사실 난 그 여관을 그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단다. 빈대가 있었거든. 어쨌든 숙박비가 아주 싸니까……. 덤블도어 교수님이 예의 바르게도 직접 내 방을 방문했었어. 그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 솔직히 말해서 그는 처음에 점술이란 분야에 대해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런데 갑자기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지. 그날 별로 많이 먹지 못했거든……. 그랬는데…….”
이제 해리는 처음으로 트릴로니 교수의 말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릴로니 교수는 그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 놓는 예언을 했었다. 그와 볼드모트에 관한 예언을…….
“무례하게도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우릴 방해했지 뭐냐!”
“뭐라고요?”
“그렇다니까.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어. 그런데 그 무뚝뚝한 술집 종업원이 스네이프와 밖에 서 있는 거야. 스네이프는 계단을 잘못 올라왔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횡설수설하더군. 하지만 난 그자가 나와 덤블도어 교수님의 면담 내용을 엿듣고 있다가 붙잡힌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어. 그때는 스네이프도 직장을 구하고 있는 중이었거든. 그러니 틀림없이 무슨 힌트라도 얻고 싶었을 거야! 어쨌든 그 후부터 덤블도어 교수님은 나에게 자리를 주려고 확실히 마음을 먹은 것 같더군. 아마도 나의 겸손하고 침착한 재능과 문 뒤에서 남의 말이나 엿들으려고 하는 그 무례하고 뻔뻔스런 애송이가 너무 현저하게 비교되어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난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해리? 얘야…….”
뒤를 돌아본 트릴로니 교수는 해리가 더 이상 그녀의 뒤를 따라오고 있지 않다는 걸 비로소 발견했다. 해리는 발걸음을 멈춘 채, 거의 3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해리?”
트릴로니 교수가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불렀다.
그의 얼굴이 어찌나 창백하게 질려 있던지, 그녀의 얼굴이 몹시 걱정스럽고 두려운 표정으로 변했다. 해리는 말뚝처럼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서,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드는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이토록 오랫동안 알지 못했던 그 한 가지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예언을 엿들은 자가 스네이프였다. 그 예언에 대한 정보를 볼드모트에게 넘겨 준 자가 바로 스네이프였던 것이다. 스네이프와 피터 페티그루가 함께 볼드모트로 하여금 릴리와 제임스, 그리고 그들의 아들을 추적하게 만든 것이었다.
“해리?”
트릴로니 교수가 또다시 해리를 불렀다.
“해리, 우리 둘이 교장 선생님을 뵈러 가기로 했잖니?”
“교수님께선 그냥 여기에 계세요.”
해리가 무감각해진 입으로 간신히 말했다.
“하지만 얘야, 난 필요의 방에서 내가 어떻게 공격을 당했는지 교장 선생님께 말씀 드리기로…….”
“그냥 여기에 계세요!”
해리가 화난 목소리로 되풀이하여 말했다.
해리는 깜짝 놀란 표정의 트릴로니 교수를 뒤로한 채, 그녀를 지나쳐서 모퉁이를 돌아 덤블도어 교수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이무기 한 마리만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해리는 이무기에게 암호를 외치고는 곧장 움직이는 나선형 계단을 한 번에 세 칸씩 성큼성큼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덤블도어의 방문을 살짝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때려 부술듯이 주먹으로 쾅쾅 두드렸다. 안에서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하지만 해리는 이미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 있었다.
불사조 퍽스가 고개를 돌렸다. 까맣게 반짝이는 퍽스의 눈동자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황금빛 저녁놀에 젖어 반짝거렸다. 덤블도어는 창가에 서서 운동장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팔에는 길고 검은 여행용 망토가 걸쳐져 있었다.
“자, 해리, 널 데려가겠다고 내가 약속했었지.”
잠깐 동안 해리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트릴로니와의 대화가 모든 생각을 그의 머릿속에서 몰아내 버려서, 그의 머리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저를…… 데려가신다고요?”
“물론 네가 원한다면 말이다.”
“제가 원한다면…….”
문득 해리의 머릿속에 애초에 왜 자신이 덤블도어의 방으로 부지런히 달려오고 있었는지, 그 이유가 떠올랐다.
“그럼 하나를 찾으셨나요? 호크룩스를 찾으신 건가요?”
“그런 것 같구나.”
분노와 원한의 감정이 충격과 흥분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한참 동안 해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두려울 게다.”
덤블도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렵지 않아요!”
해리가 즉각 소리쳤다. 그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호크룩스죠? 그건 어디에 있나요?”
“나도 어떤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그 뱀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다만 그게 여기서 수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어느 해안가 동굴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 같구나.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동굴을 찾으려고 애를 썼단다. 언젠가 톰 리들이 연중 행사로 소풍을 갔을 때, 고아원의 두 아이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겁을 준 적이 있었지. 기억나니?”
“네. 그런데 거긴 어떻게 방어가 되어 있죠?”
해리가 물었다.
“나도 모른단다. 여러 가지 추측은 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 생각들은 완전히 틀린 것일 수도 있지.”
덤블도어가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해리, 널 데려가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는 하겠지만, 너에게 이 일이 지극히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전 갈 거예요.”
덤블도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해리가 선뜻 대답했다. 스네이프에 대한 격렬한 분노로 인해서 뭔가 아주 무모하고 위험한 일을 하고 싶은 갈망이 몇 분 전마다 열 배는 더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이런 심정이 해리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는지 덤블도어가 창가에서 걸어오더니 은빛 눈썹 사이를 약간 찌푸리면서 해리의 얼굴을 좀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해리는 얼른 거짓말을 했다.
“왜 그렇게 화가 난 거냐?”
“화나지 않았습니다.”
“해리, 넌 언제나 오클러먼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구나.”
이 말을 듣자 갑자기 해리의 분노가 폭발했다.
“스네이프 때문이에요!”
해리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퍽스가 뒤에서 작은 소리로 울었다.
“모두 다 스네이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요! 그자가 문밖에서 엿듣고 볼드모트에게 그 예언에 대해서 말해 주었던 거예요. 트릴로니 교수님한테서 다 들었어요!”
덤블도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리는 저물어 가는 태양이 핏빛 노을 속에서 덤블도어의 얼굴이 약간 하얗게 질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덤블도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언제 알게 된 거냐?”
마침내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방금이요!”
해리는 고함을 지르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교수님은 그자가 여기서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내버려 두셨군요! 그자가 볼드모트에게 제 엄마와 아빠를 쫓으라고 말했는데도 말이죠!”
해리는 한바탕 몸싸움이라도 벌인 사람처럼 숨을 씩씩거리며,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덤블도어에게서 휙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뭔가를 때려 부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주먹 쥔 손을 문지르며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해리는 덤블도어에게 마구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와 함께 호크룩스를 파괴하러 가고 싶기도 했다. 덤블도어에게 스네이프 같은 인간을 믿다니 정말 어리석은 늙은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자기를 데려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해리, 제발 내 말 좀 들어 보렴.”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고함을 지르지 않고 참는 것만큼이나, 서성거리던 발걸음을 멈추는 것도 힘들었다. 해리는 입술을 깨물며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리고 덤블도어의 주름진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스네이프 교수는 끔찍한…….”
“그게 실수였다는 말씀은 저에게 하지 마세요. 그자는 문 뒤에서 엿듣고 있었단 말입니다!”
“제발 내 말을 끝까지 좀 들어 보렴.”
덤블도어는 해리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스네이프 교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단다. 트릴로니 교수가 한 예언의 앞 부분을 엿듣던 그날 밤까지만 해도, 그는 여전히 볼드모트 경의 수중에 있었어. 그러니까 당연히 주인에게 달려가서 자기가 들은 내용을 전했던 거야. 그 무엇보다도 자기 주인과 깊이 연관이 있는 예언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어. 아니, 알 수가 없었지. 볼드모트가 그때부터 뒤를 쫓은 그 소년이, 혹은 그 추적 과정에서 죽이게 될 소년의 부모들이 바로 스네이프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말이야. 그 사람들은 네 어머니와 아버지였지.”
해리는 냉소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그자는 시리우스를 미워했던 것처럼 제 아버지도 증오했어요! 교수님은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하셨나요? 스네이프가 증오했던 사람들 모두 결국에는 목숨을 잃었다는 걸?”
“볼드모트 경이 그 예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았을 때, 스네이프 교수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넌 전혀 모를 거다. 해리, 그거야말로 스네이프에겐 일생일대의 커다란 회한이 되었을 거야.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가 돌아온 거란다…….”
“하지만 그자는 오클러먼시에 아주 능하잖아요. 안 그런가요, 교수님?”
침착하게 말하려고 애쓰다 보니, 해리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볼드모트는 스네이프가 자기편이라고 믿고 있지 않은가요? 그런데 교수님은 어떻게 스네이프가 우리 편이라고 확신하실 수가 있는 거죠?”
덤블도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뭔가 마음을 결정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마침내 그는 단언하듯 말했다.
“나는 확신한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확실히 믿는단다.”
해리는 어떻게든 울분을 가라앉히려고 크게 심호흡을 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전 아니에요!”
해리는 다시 조금 전처럼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지금 그자는 드레이코 말포이와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단 말이에요. 바로 교수님의 코앞에서 말이죠. 그런데도 교수님은 여전히…….”
“해리,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걸로 알고 있다.”
덤블도어가 다시 엄한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
“나는 내 생각을 분명하게 말했다.”
“교수님은 오늘 밤에 학교를 떠나 계실 거잖아요! 스네이프와 말포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채 말이죠!”
“무슨 짓을 한단 말이냐?”
덤블도어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들이 정확히 무슨 짓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지?”
“전…… 그자들은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단 말이에요!”
해리가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트릴로니 교수님이 셰리주 병을 감추려고 방금 전에 필요의 방에 들어가셨었는데, 말포이가 함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소리를 들으셨대요! 그 녀석은 거기서 뭔가 대단히 위험한 물건을 고치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제 생각에 그 녀석은 마침내 그걸 고치는 데 성공한 거예요. 그런데도 교수님은 그냥 학교를 떠나시려고 하시니…….”
“이제 됐다.”
덤블도어의 어조는 조용했지만, 해리는 바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결국 그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버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너는 올해에 내가 아무런 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고 단 한번이라도 학교를 그냥 비운 적이 있다고 생각하니? 절대 그렇지 않다. 오늘 밤 내가 떠나고 나면, 또다시 별도의 보안 조치가 취해질 거야. 부디 내가 우리 학생들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말아 다오, 해리.”
“전 그게 아니라…….”
해리는 약간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그의 말을 딱 잘랐다.
“난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구나.”
해리는 말대꾸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꾹 참았다. 너무 지나치게 행동한 것 같아서 겁이 났다. 어쩌면 덤블도어와 함께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에 나와 함께 가고 싶으냐?”
“네.”
해리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좋다. 내 말을 잘 듣거라.”
덤블도어가 몸을 곧게 폈다.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단다. 너는 내가 어떤 명령을 내리든지 그 말에 즉시 복종해야 한다. 절대 질문을 해서도 안 돼.”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리, 내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뛰어’, ‘숨어’ 혹은 ‘돌아가’ 같은 그런 사소한 명령들에도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 내 말을 알아듣겠니?”
“저는…… 네, 물론입니다.”
“내가 너더러 숨으라고 하면 숨을 거지?”
“네.”
“도망치라고 하면 도망칠 거지?”
“네.”
“내가 너더러 날 두고 네 목숨부터 구하라고 하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
“저는…….”
“해리?”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겠습니다.”
“좋다, 그럼 이제 가서 네 투명 망토를 가져오거라. 5분 후에 현관 입구에서 만나자꾸나.”
덤블도어는 다시 돌아서서 불타는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태양은 지평선 위에서 루비처럼 붉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해리는 재빨리 교장실을 걸어 나가서 나선형 계단을 내려갔다. 갑자기 그의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평온해졌다. 이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휴게실로 돌아갔을 때, 론과 헤르미온느가 같이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니?”
헤르미온느가 얼른 물었다.
“해리, 너 괜찮니?”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러운 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난 괜찮아.”
해리는 짧게 한마디 던지고, 그대로 달려갔다. 쏜살같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침실로 들어간 그는 트렁크를 열고 호그와트 비밀 지도와 돌돌 말린 양말을 꺼냈다. 그런 다음 전속력으로 계단을 다시 뛰어 내려와서 휴게실을 달려가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헤르미온느와 론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시간이 별로 없어.”
해리가 숨을 헐떡였다.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투명 망토를 가지고 오라고 하셔서…….”
해리는 지금 무엇 때문에 어디로 갈 것인지 재빨리 설명을 해 주었다. 그는 헤르미온느가 겁에 질려 입을 딱 벌리는 것도, 론이 황급히 질문을 던지는 것도 모두 무시하고, 그대로 말을 쏟아 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너희들도 잘 알지?”
해리가 숨을 돌리더니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오늘 밤에 여기 안 계실 거야. 그러니까 말포이 녀석은 자기가 계획하고 있는 일을 다시 한 번 시도해 보려고 할 게 분명해. 아니, 그냥 듣기만 해!”
론과 헤르미온느가 뭔가 말을 가로막으려고 할 때마다, 해리는 버럭 화를 내며 그들의 입을 막았다.
“말포이 녀석이 필요의 방에서 신이 나서 함성을 질렀다는 사실을 알아냈어. 자, 여기…….”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손에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쥐여 주며 말했다.
“넌 그 녀석을 잘 감시하도록 해. 스네이프도 마찬가지야. D.A. 회원들 중에 모을 수 있는 아이들은 전부 동원하도록 해. 갈레온 연락 장치는 아직도 쓸 수는 있는 거지?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학교에 추가의 보안 조치를 취해 놓으셨다고 말씀하셨어. 하지만 거기에 스네이프가 끼어 있다면, 덤블도어 교수님의 보안 조치가 뭔지 잘 알고 있을 테니, 당연히 피하는 방법도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설마 너희들까지 감시를 하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거야.”
“해리…….”
헤르미온느가 겁에 질려 두 눈을 크게 뜨고 뭔가 말하려고 했다.
“지금 너희들이랑 입씨름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해리가 딱 잘라 말했다.
“이것도 받아.”
해리가 론의 손에 양말을 쥐여 주었다.
“고마워.”
론이 엉겁결에 인사를 했다.
“어…… 그런데 양말은 왜 필요하지?”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필요할 거야. 펠릭스 펠리시스야. 너희 둘이랑 지니랑 나누어 마셔. 나 대신 지니에게 인사 전해 주고 말이야. 이제 진짜 가야겠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기다리셔서…….”
“안 돼!”
론이 황급히 약이 담긴 작은 병을 꺼내자, 헤르미온느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우린 괜찮아. 네가 가져가. 너야말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어?”
“난 괜찮을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과 함께 가잖아.”
해리가 대답했다.
“난 너희들이 모두 무사했으면 해……. 제발 그런 표정 짓지 마, 헤르미온느. 그럼 나중에 보자…….”
해리는 황급히 초상화 구멍을 빠져나와서 현관 입구로 달려갔다.
덤블도어는 떡갈나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해리가 숨을 헐떡이며 돌계단 꼭대기에서 겅중겅중 뛰어 내려오자,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해리의 옆구리가 쿡쿡 쑤셨다.
“망토를 쓰도록 해라.”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리고 해리가 망토를 쓸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이제 가 볼까?”
덤블도어는 즉시 돌계단을 내려갔다. 바람 없이 잔잔한 여름 공기에 그의 여행용 망토는 거의 펄럭이지 않았다. 해리는 투명 망토를 쓴 채 부지런히 그를 쫓아갔다. 여전히 숨이 가쁘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교수님께서 떠나시는 걸 보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요?”
해리는 말포이와 스네이프를 염두에 두고 물었다.
“한잔하러 호그스미드에 가는 줄 알겠지.”
덤블도어가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가끔씩 로즈메르타에게 특별 주문을 하러 가거든. 아니면 호그스 해드에 가거나…… 혹은 가는 척하기도 하지. 진짜 목적지를 숨기기에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지.”
그들은 점점 더 어두워지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따스한 풀 냄새와 호수 냄새, 그리고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에서 태우는 나무 연기가 바람에 가득 실려 왔다. 뭔가 아주 위험하고 두려운 일을 하러 떠나고 있다는 게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교수님.”
길 앞쪽에 학교 교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해리가 조용히 속삭였다.
“순간이동을 할 건가요?”
“그렇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이제 순간이동을 할 줄 알겠지?”
“네. 하지만 테스트를 통과하지는 못했어요.”
해리는 솔직히 말하는 게 가장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가려고 하는 곳과 전혀 다른 엉뚱한 장소에 떨어져서 모든 일을 망치게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괜찮다, 이번에도 내가 도와주마.”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들은 교문을 나와서 호그스미드로 가는 어둑어둑하고 인적 없는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그들이 걸어가는 동안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아 하이가에 도착했을 때에는 완전히 밤이 되어 있었다. 가게들의 창문 너머로 불빛이 반짝거렸다. 그들이 스리 브룸스틱스에 가까이 다가가자, 시끄러운 고함 소리가 들렸다.
“당장 나가!”
로즈메르타 부인이 지저분하게 생긴 마법사 한 명을 강제로 끌어내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오, 안녕하세요. 알버스……. 늦게 나오셨군요…….”
“멋진 저녁이군요, 로즈메르타. 멋진 저녁이오……. 미안하지만 난 지금 호그스 해드로 가는 길이라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하지만 오늘 밤에는 좀 더 조용한 곳에 있고 싶구려.”
잠시 후에 그들은 모퉁이를 돌아서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도 호그스 해드의 간판은 삐거덕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술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굳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덤블도어가 주위를 살펴보며 속삭였다.
“우리가 오는 걸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으니……. 이제 네 손을 내 팔 위에 올려놓아라. 너무 꽉 잡을 필요는 없다, 해리. 나는 단지 네가 가는 길을 인도하는 것뿐이니까. 셋을 세겠다. 하나…… 둘…… 셋…….”
해리는 빙그르 돌았다. 꽉 조이는 질긴 고무관을 통과하는 그 끔찍한 느낌이 또다시 엄습했다. 해리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온 몸 구석구석이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세게 짓눌리고 있었다. 이제 정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의 몸을 압박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끈이 갑자기 탁 풀린 것만 같았다. 그는 시원한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신선한 공기를 가슴속 깊이 들이마시자, 짭짤한 소금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