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
알 수 없는 방
다음 한 주일 동안 해리는 어떻게 하면 슬러그혼으로부터 진짜 기억을 알아낼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했다. 하지만
별다른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결국 요즘 들어 뭔가 뾰족한 수가 없을 때마다 점점 자주 하게 되는 일이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 바로 지금까지 수없이 그래 왔듯이 왕자가 혹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책의 여백에 적어 놓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마법약
책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것이었다.
“그래 봐야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
일요일 밤 늦은 시각, 헤르미온느가 단호하게 말했다.
“헤르미온느, 그만 해.”
해리가 말했다.
“왕자가 아니었다면, 론은 지금쯤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걸.”
“네가 1학년 때 스네이프의 수업만 잘 들었어도 론은 무사했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지지 않고 맞섰다.
해리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방금 책의 가장자리에 ‘섹튬셈프라!’ 라고 휘갈겨 써 놓은 주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밑에는 ‘적에게 사용’ 이라는 흥미로운 글씨가 써 있었다. 해리는 당장이라도 시험해 보고 싶어서 손이 근질
근질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 앞에서 시험해 보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신 그 페이지의 귀퉁이를
살짝 접어 놓았다.
그들은 휴게실의 벽난로 앞에 앉아 있었다. 아직도 자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6학년 학생들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게시판에 순간이동 시험 날짜를 알리는 새로운 공고문이 나붙은 걸 보고 다들 흥분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험 날짜인 4월 21일 저이나 당일에 열일곱 살이 되는 사람들은 별도의 강의를 신청할 수가 있었는데, 특별 강의는 철저한
감독하에 호그스미드에서 실시될 예정이었다.
론은 이 공고문을 읽고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직도 순간이동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연 시험을 치를 수 있을
지 두려웠던 것이다. 지금까지 두 번 순간이동에 성공한 헤르미온느는 조금 자신이 있었다. 반면 앞으로 넉 달은 지나야 열일곱
살이 되는 해리는 준비가 됐든 안 됐든 시험을 치를 수가 없었다.
“어쨌든 넌 순간이동을 할 수 있잖아!”
론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7월이면 아무 문제 없이 시험을 치를 수가 있을 거야!”
“나도 딱 한 번밖에 못 해 봤어.”
해리가 론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바로 이전 강의 시간에서야 마침내 사라졌다가 고리 안에 다시 나타나는 데 성공
했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순간이동 시험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보낸 론은 이제야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벌써 끝내 놓은
대단히 까다로운 스네이프의 작문 숙제를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해리는 디멘터들과 맞서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한
스네이프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해 놓았기 때문에 당연히 나쁜 점수를 받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
았다. 지금은 슬러그혼의 기억을 알아내는 게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이다.
“해리, 내가 말했잖아. 그 멍청한 왕자는 그 문제를 푸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라고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더 큰소리로 잔소리를 퍼부었다.
“자기가 원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시키는 방법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그것은 임페리우스 저주야. 하지만 그건 불법이니까
…….”
“그래, 나도 다 알아. 제발 그만 좀 해.”
해리는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다.
“그래서 뭔가 다른 걸 찾고 있는 거잖아. 덤블도어 교수님 말씀으로는 베리타세룸도 소용이 없다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마법약이나
주문 같은 게 있을텐데…….”
“넌 지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거야.”
헤르미온느는 물러서지 않았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오직 너만이 그 기억을 얻어 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 그 말은 바로 너라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슬러그혼 교수님을 설득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에게 몰래 약을 먹이거나 그런 건 아닐 거야. 그건
어느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교전 중’ 이라는 단어의 철자를 어떻게 쓰지?”
론이 양피지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손에 든 깃펜을 마구 흔들며 물었다.
“B-U-M-‘ 은 아닐 텐데?”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론의 숙제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점치는 의식’ 도 O-R-G’ 로 시작되지 않아. 도대체 네가 쓰는 그 깃펜은 뭐니?”
“프레드와 조지의 자동 철자 수정 깃펜인데…… 효력이 다 떨어졌다 봐.”
“그래, 분명 그런 것 같다.”
헤르미온느가 론이 쓴 작문의 제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해야 할 숙제는 ‘디멘터 대처법’ 이지, ‘더그보그(늪지에 사는 마법 생물, 《신비한 동물 사전》
참조 : 역주) 대처법’ 이 아니거든. 그리고 언제부터 네 이름이 ‘루닐 웨즐립’ 으로 바뀌었니? 난 미처 몰랐는걸.”
“오, 안 돼!”
론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양피지를 내려다보았다.
“설마 이 숙제를 전부 다 다시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지 마. 고칠 수 있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숙제를 자기 앞으로 바싹 끌어당기더니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사랑해, 헤르미온느.”
의자 뒤로 벌렁 몸을 기댄 론이 피곤한 듯이 두 눈을 비비며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얼굴이 약간 빨개져서는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런 말 하다가 라벤더한테 들키지나 마시지.”
“안 그럴 거야.”
론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 채 말했다.
“아니,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몰라……. 그럼 라벤더가 나랑 헤어지려고 할 텐데…….”
“걔랑 그렇게 끝내고 싶으면 왜 네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지 않는 거니?”
해리가 물었다.
“너 한 번도 누군가를 차 본 적 없지?”
론이 말했다.
“너랑 초는 그냥…….”
“그래, 그냥 멀어졌지.”
해리가 말을 끝냈다.
“나랑 라벤더도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론은 우울하게 중얼거리면서,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지팡이 끝으로 틀린 단어들을 탁탁 치자 단어들이 저절로 고쳐지는 모
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내가 그만 끝내고 싶다는 기색을 보이면 보일수록 라벤더는 점점 더 착 달라붙는걸. 이건 마치 대왕 오징어랑 사귀는
기분이야.”
“여기 있어.”
20분 후에 헤르미온느가 론의 숙제를 돌려주었다.
“너무너무 고마워.”
론이 말했다.
“그런데 결론 부분 좀 쓰게 네 깃펜 좀 빌려 줄래?”
한편 혼혈 왕자의 필기에서 쓸 만한 것을 하나도 찾아내지 못한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전에 시무스가 스네이프와 그의 숙
제에 대해 투덜거리며 침실로 올라간 뒤로, 이제 휴게실에는 그들 세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불꽃이 탁탁거
리는 소리와, 론이 헤르미온느의 깃펜으로 디멘터들에 대한 마지막 구절을 써 내려가는 소리뿐이었다. 해리는 혼혈 왕자의 책을
탁 덮고 하품을 했다. 바로 그때…….
펑!
헤르미온느가 짧게 비명을 질렀고, 론은 완성한 숙제에 온통 잉크를 엎질렀다. 동시에 해리가 “크리처!” 하고 소리쳤다.
집요정이 마디진 발가락에 코가 닿도록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주인님께서 말포이 도련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규칙적으로 보고하라고 하셔서 크리처가 왔습니다.”
펑!
곧이어 찻병 보온 덮개를 머리에 삐딱하게 쓴 도비가 크리처 옆에 나타났다.
“도비도 도왔어요. 해리 포터!”
도비는 적의에 찬 눈길을 크리처에게 던지며 꽥꽥거렸다.
“크리처는 도비에게 말했어야만 했어요. 해리 포터를 찾아 갈 거라고 말이에요. 그래야 둘이서 함께 보고를 드릴 수
있으니까요!”
“이게 무슨 일이야?”
헤르미온느는 아직도 집요정들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정이었다.
“해리, 어떻게 된거지?”
해리는 잠시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헤르미온느가 항상 집요정 말만 나와도 예민하게 굴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녀에게는 크
리처와 도비를 시켜서 말포이를 미행하게 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말이지…… 집요정들이 나를 위해서 말포이 뒤를 미행하고 있거든.”
해리가 설명했다.
“밤이나 낮이나.”
크리처가 끽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비는 일주일 동안 한잠도 안 잤어요, 해리 포터!”
도비가 서 있는 자리에서 몸을 휘청거리며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헤르미온느의 안색이 싹 달라졌다.
“한잠도 안 잤다고, 도비? 하지만 해리, 설마 도비에게 잠도 자지 말라고 시킨 건 아니…….”
“아니야, 당연히 그런 말은 안 했어.”
해리가 황급히 말했다.
“도비, 잠은 자도 되는 거야, 알았지? 그런데 혹시 뭔가 알아냈니?”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더 이상 끼어들기 전에 얼른 물었다.
“말포이 도련님은 순수 혈통에 딱 어울리는 고상한 행동만 하셨어요.”
크리처가 즉시 대답했다.
“그분의 모습은 제 여주인님의 섬세한 골격을 연상하게 하고 그분의 거동은 마치…….”
“드레이코 말포이는 못된 소년이에요!”
도비가 화가 나서 꽥꽥거렸다.
“나쁜 소년…… 나쁜 소년…….”
이렇게 말한 도비는 찻병 보온 덮개 모자 끝에 달린 방울에서부터 양말 끝까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마치 불
속에 뛰어들기라도 할 것처럼 벽난로를 향해 달려갔다. 이 일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해리는 재빨리 도비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도비는 잠시 팔다리를 버둥거리더니 곧 축 늘어졌다.
“고마워요, 해리 포터…….”
도비가 헐떡거리며 말했다.
“도비는 아직도 옛날 주인님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기가 힘들어요…….”
해리가 그를 놓아주자, 도비는 찻병 보온 덮개 모자를 똑바로 고쳐 쓰고 크리처를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
“크리처는 드레이코 말포이가 집요정에게 좋은 주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만 해!”
“그래, 말포이에 대한 너의 사랑 타령 따위는 이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해리가 크리처를 꾸짖었다.
“빨리 그 녀석이 어딜 가는지나 말해!”
크리처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꾸벅 인사를 하더니 말했다.
“말포이 도련님은 대연회장에서 식사를 하시고 지하 침실에서 자을 주무시고 다양한 수업에 참석하시고…….”
“도비, 네가 말해 봐.”
해리가 크리처의 말을 도중에서 딱 가로막았다.
“그 녀석이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지는 않니?”
“해리 포터 주인님.”
끽끽거리는 소리로 말하는 도비의 공처럼 커다란 두 눈이 벽난로 불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도비가 알아낸 바로는 말포이 학생은 아무 규칙도 어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남의 눈에 뜨일까 봐 굉장히
조심하고 있어요. 그는 규칙적으로 다양한 학생들과 7층에 찾아가곤 하는데, 다른 학생들이 망을 보고 있는 동안 그
는 방에 들어 가요…….”
“필요의 방이야!”
해리는 《상급 마법약 만들기》 책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그런 그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녀석이 몰래 들어가는 데가 바로 거기였던 거야! 거기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로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그 녀석이 지도에서 사라졌던 거라고! 생각해 봐! 비밀 지도에서 필요의 방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비밀 지도를 만든 사람들도 필요의 방이 거기 있는 줄 전혀 몰랐을 거야.”
론이 말했다.
“그 방이 지닌 마법의 능력 중 하나일 수도 있지.”
헤르미온느가 추측했다.
“필요하다면 위치 추적이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나 봐.”
“도비, 혹시 안으로 들어가서 말포이가 뭘 하는지 보지는 못했니?”
해리가 간절하게 물었다.
“아니요, 해리 포터. 그건 불가능해요.”
도비가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해리가 당장 반박했다.
“작년에 말포이는 우리 D.A. 본부에 들어왔었어, 그러니까 나도 안으로 들어가서 말포이가 뭘 하는지 볼 수 있을
거야. 문제 없어.”
“내 생각은 달라, 해리.”
헤르미온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멍청한 마리에타가 떠들어 대는 바람에 말포이는 우리가 그 방을 무슨 용도로 쓰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어, 안 그래? 그때
말포이는 그 방이 D.A. 본부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우리 본부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넌 말포이가 필요의 방에
들어갔을 때, 그 방이 뭐가 되는지 모르잖아. 그러니 그 방에게 무엇으로 변하라고 명령할 수가 없어.”
“그래도 무슨 수가 있을 거야.”
해리는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
“정말 잘했어, 도비.”
“크리처도 잘했어.”
헤르미온느가 상냥하게 말했다. 하지만 크리처는 고마워하기는커녕 붉게 핏발이 선 커다란 눈을 휙 돌리며 천장을 바라보면서
끽끽거렸다.
“머글 태생인 주제에 크리처에게 말을 걸다니……. 크리처는 못 들은 척할 거야.”
“그만 나가.”
해리가 크리처에게 호통을 치자, 크리처는 마지막으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순간이동 마법으로 사라졌다.
“너도 가서 잠을 좀 자는 게 좋겠다, 도비.”
“고맙습니다, 해리 포터 주인님.”
도비가 신이 나서 꽥꽥거리더니 펑 하고 사라졌다.
“정말 잘됐지?””
집요정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돌아보며 열에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우린 말포이가 어디를 가는지 알아낸 거야! 이제 그 녀석은 독 안에 든 쥐야!”
“그래, 정말 잘됐어.”
론은 거의 완성한 숙제 위에 쏟아진 잉크를 닦아 내려고 애를 쓰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헤르미온느는 론의 숙
제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더니 지팡이로 잉크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포이가 다양한 학생들과 거기 올라간다는 건 또 무슨 소리지?”
헤르미온느가 중얼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가담하고 있는 걸까? 말포이에게는 자신의 계획을 알려 줄 만큼 믿을 만한 친
구들이 많을 것 같지 않은데…….”
“그래, 그것 참 이상해.”
해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그 녀석이 크레이브에게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거든……. 그렇다면 그 녀석이 말한 것은……
고작해야…….”
해리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졌다. 해리는 벽난로 불을 골똘히 들여다보았다.
“이런,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너무나 뻔한 일이잖아, 안 그래? 저 아래 지하 교실의 큰 통에 가득 담겨 있었어. 그러니 수업 시간에 아무 때나 슬
쩍 훔쳐 내는 건 일도 아니었을 거야.”
“뭘 훔쳐 낸다는 거야?”
론이 물었다.
“폴리주스 마법약 말이야. 말포이는 슬러그혼 교수님이 마법약 수업 첫 시간에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폴리주스를
훔쳤던 거야……. 말포이를 위해서 망을 봐줄 친구들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어……. 고작해야 크레이브와 고일뿐이
라고……. 그래, 이제 모든게 맞아떨어지는군!”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벽난로 앞을 왔다 갔다 하며 걷기 시작했다.
“걔들이라면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으니까, 말포이 녀석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그냥 시키는 대로
할 거야……. 하지만 말포이는 걔들이 필요의 방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겠지. 그
래서 걔들한테 폴리주스를 먹여서 다른 사람처럼 보이도록 모습을 바꿨던 거야. 말포이가 퀴디치 시합 날 사라졌을 때
함께 있던 그 여학생 두 명이…… 그래! 바로 크레이브와 고일이었어!”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저울을 고쳐 주었던 그 조그만 여학생이 바로……?”
헤르미온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틀림없어!”
해리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외쳤다.
“틀림없다니까! 그때 말포이는 그 방안에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 여학생, 아니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아니 그
녀석이 누군가 밖에 있으니까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말포이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저울을 떨어뜨렸던 거라고! 두꺼비 알을 떨
어뜨렸던 그 여학생도 마찬가지야! 우린 계속 그 녀석 옆을 지나가면서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거야.”
“말포이가 크레이브와 고일을 여학생으로 변신시켰단 말이야?”
론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그래서 걔들이 요즘 그렇게 우거지상을 하고 다녔구나……. 하긴 그 두 녀석들은 말포이에게 싫다는 말도 못
했을 거야.”
“그래, 그랬겠지. 그랬을 거야. 말포이가 어둠의 표식을 보여 주었다면 말이야, 안 그래?”
해리가 말했다.
“음…… 어둠의 표식이 있는지는 아직 모르잖아.”
헤르미온느는 또다시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간신히 말린 론의 숙제를 돌돌 말아서 론에게 건네주며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두고 보면 알겠지.”
해리는 자신만만했다.
“그래, 어디 두고 보자.”
자리에서 일어난 헤르미온느가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하지만 해리, 네가 너무 흥분하기 전에 미리 충고하는데, 우선 필요의 방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 못하면, 너는 그 방에
들어갈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설마 그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헤르미온느가 어깨에 가방을 둘러메며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넌 지금 슬러그혼 교수님의 기억을 알아내는 일에만 집중 해야 한다는 걸 말이야. 그럼 잘 자.”
해리는 약간 기분이 상해서 침실로 올라가는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여학생 침실로 들어가는 문이 닫히자마자, 해리는 얼른
론을 향해 돌아섰다.
“네 생각은 어떠니?”
“집요정처럼 그렇게 순간이동이나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론이 도비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딴소리를 했다.
“그럼 순간이동 시험쯤은 일도 아닐 텐데…….”
그날 밤 해리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몇 시간 동안이나 뒤척거리며 말포이가 필요의 방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지,
내일 그가 그 방에 들어가면 뭘 발견하게 될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헤르미온느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말포이가 D.A.
본부에 들어올 수 있었다면 틀림없이 자기도 말포이의 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만남의 장소일까? 은신처
? 창고? 작업실? 온갖 생각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맴돌더니, 마침내 잠이 든 후에도 계속해서 말포이가 슬러그혼으로 변하고 슬러
그혼이 스네이프로 변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 내내, 해리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 전의 자유 시간 동안, 필요의
방에 들어가 볼 작정이었다.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옆에서 그 방에 들어갈 계획을 계속 소곤거리는데도, 끝까지 아무런 관심
도 보이지 않았다. 헤르미온느가 마음만 먹으면 큰 도움을 줄 거라고 기대했던 해리는 좀 약이 올랐다.
“이거 봐.”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방금 우편 배달 부엉이에게서 받은 《예언자 일보》를 펼쳐 들고 얼굴을 가리지 못하도록, 얼른 한 손
을 신문 위에 올려놓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난 슬러그혼 교수님의 일을 잊은 게 아니야. 하지만 어떻게 그 기억을 알아내야 할지 전혀 방법을 모르겠다고. 그러니 뭔가
묘안이 떠오를 때까지 말포이의 속셈을 좀 알아보면 안되는 거야?”
“난 벌써 말했어. 슬러그혼 교수님을 설득해야만 한다고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이건 그를 속이거나 마법을 걸어서 될 문제가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벌써 그렇게 했을 거야. 괜히
필요의 방 주변을 얼씬거리고 다니기보다는…….”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손 밑에서 《예언자 일보》를 홱 잡아 빼더니 1면을 펼쳐 들었다.
“”어서 가서 슬러그혼 교수님이나 찾아. 그래서 그의 착한 천성에 호소해 보란 말이야.”
“누구 우리가 아는 사람이라도……?”
헤르미온느가 머리기사를 훑어보고 있을 때 론이 말을 걸었다.
“맞아!”
헤르미온느가 너무나 서슴없이 대답하는 바라에 해리와 론은 먹던 음식이 목에 걸릴 뻔했다.
“하지만 괜찮아, 죽은 건 아니니까! 먼던구스가 체포돼서 아즈카반으로 갔대! 인페리우스인 척하면서 강도짓을 하려다가 그
랬나 봐……. 그리고 옥타비우스 페퍼라고 하는 사람이 실종되었어……. 오, 끔찍하기도 하지. 아홉 살 된 소년이 자신의
조부모를 살해하려다가 체포되었네. 아마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린 것 같다는군…….”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아침 식사를 끝냈다. 그러고나서 헤르미온느는 곧장 고대 룬 문자 수업을 들으러 갔고, 론은 휴게
실로 가 버렸다. 스네이프가 내준 디멘터들에 대한 숙제의 결론 부분을 아직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해리는 7층에 있는,
정신 나간 바르나바가 트롤들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 수놓인 양탄자 맞은편의 긴 벽으로 향했다.
해리는 일단 복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투명 망토를 뒤집어썼지만 괜한 헛수고였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보니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해리는 말포이가 방 안이나 방 밖 어느 곳에 있을 때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
았지만, 적어도 첫 번째 시도에서만큼은 열한 살 짜리 소녀로 변신한 크레이브와 고일의 존재로 인해서 성가신 일이 벌어질 염려
는 없었다.
해리는 필요의 방이 감추어져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두 눈을 감았다. 작년에 이미 해 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
고 있었다. 해리는 온 힘을 다하여 정신을 집중한 채 생각했다.
나는 말포이가 여기서 뭘 하는지 봐야 한다……. 나는 말포이가 여기서 뭘 하는지 봐야 한다……. 나는 말포이가
여기서 뭘 하는지 봐야 한다…….
문 앞을 세 번 왔다 갔다 한 후에, 해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눈을 떠서 앞을 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는 여전히 묵묵부답인 텅 빈 벽만이 길게 뻗어 있을 뿐이었다.
해리는 앞으로 걸어가서 시험 삼아 벽을 한번 밀어 보았다. 돌벽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좋아.”
해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로군.’
해리는 잠깐 골똘하게 생각한 끝에 또다시 눈을 감고 온힘을 다해 정신을 집중했다.
나는 말포이가 몰래 드나드는 그곳을 봐야만 한다……. 나는 말포이가 몰래 드나드는 그곳을 봐야만 한다…….
세 번 왔다 갔다 한 후에, 해리는 기대에 가득 차서 눈을 떴다.
여전히 문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 이제 그만 나타나라고.”
해리는 벽을 향해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 정도면 분명하게 명령한 건데……. 좋아, 정 그렇다면…….”
몇 분 동안 골똘히 생각하던 해리는 다시 한 번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드레이코 말포이에게 제공하는 바로 그곳이 되어라…….
해리는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끝낸 후에도 곧장 눈을 뜨지 못하고, 펑 하고 문이 나타나는 소리라도 들리기를 바라는 듯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성 밖 멀리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살그머니 눈을 떴다.
여전히 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해리가 욕설을 퍼붓는 순간,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뒤를 돌아보니, 한 무리의 신입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복도 모퉁
이를 돌아서 도망치고 있었다. 유난히 입이 험한 유령과 마주쳤다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해리는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드레이코 말포이가 그 방 안에서 뭘 하는지 봐야만 한다’ 는 뜻의 문장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나는 대로 다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헤르미온느의 말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방은
절대로 해리를 향해 문을 열어 주려고 하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짜증이 치밀어 오른 해리는 투명
망토를 벗어 가방에 쑤셔 넣고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들으러 갔다.
“또 늦었군, 포터.”
해리가 촛불이 밝혀진 교실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을 때, 스네이프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핀도르 10점 감점이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노려보면서 론의 옆 자리에 가서 털썩 앉았다. 학생들 전반 정도가 아직도 자리에 서서 책을 꺼내거나 물건
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해리가 그들보다 그다지 많이 늦은 것도 아니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디멘터에 관한 작문을 걷겠다.”
스네이프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팡이를 흔들자, 스물다섯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가 둥둥 날아가서 그의 교탁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
“부디 이번 숙제는 지난번에 여러분이 제출한 시시껄렁한 임페리우스 저주에 저항하는 법보다는 낫기를 바란다. 그걸 읽느
라 아주 힘들었으니까. 뭐지, 피니간?”
“교수님,”
시무스가 물었다.
“계속 궁금했는데요, 인페리우스와 유령의 차이가 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예언자 일보》를 보니 인페리우스에 대한 이야
기가 나와서요.”
“아니, 그렇지 않다.”
스네이프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교수님,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었는데…….”
“피니간 군, 자네가 앞에서 말했던 그 기사를 정말로 읽었다면, 소위 인페리우스라고 하는 것이 먼던구스 플레쳐라는 더러운
좀도둑에 불과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스네이프와 먼던구스가 한편인 줄 알았는데……. 먼던구스가 체포되었는데 스네이프가 흥분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해리가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포터가 이 주제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모양이군.”
스네이프가 갑자기 교실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까만 눈은 해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포터에게 인페리우스와 유령의 차이점을 말해 달라고 부탁해 볼까?”
학생들 전체가 해리를 돌아보았다. 해리는 재빨리 슬러그혼을 찾아갔던 그날 밤에 덤블도어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저...... 그러니까…… 유령은 투명하고…….”
해리가 입을 열었다.
“오, 아주 훌륭하군.”
스네이프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말을 가로막았다.
“포터, 지난 6년간의 마법 교육이 자네에게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잘 알겠군. ‘유령은 투명하다’ 니.”
팬시 파킨슨이 째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킥킥거렸다. 몇몇 다른 학생들도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비웃고 있었다. 해리
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네, 유령은 투명합니다. 하지만 인페리우스들은 죽은 시체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단단하고…….”
“다섯 살짜리도 그 정도 설명은 할 수 있다.”
스네이프가 빈정거렸다.
“인페리우스라는 것은 어둠의 마법사가 주문을 걸어 다시 움직이게 된 시체를 말한다. 살아 있지는 않지만 마법사의 명령에
따라서 인형처럼 조정된다. 반면 유령이란, 지금쯤 여러분도 알고 있겠지만 육체를 떠난 영혼이 세상에 남기는 흔적으로, 포터가
아주 현명하게 우리에게 지적해 주었듯이 당연히 투명하다.”
“하지만 해리가 한 말은 그 둘을 구별하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한 정보입니다!”
론이 큰소리로 말했다.
“어두운 골목에서 그중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이 단단한 몸을 지녔는지 아닌지 한번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실례지만 그대는 육체를 떠난 영혼의 흔적인가요?’ 라고 물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순간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스네이프가 한 번 노려보자 그 웃음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린핀도르 추가로 10점 감점이다.”
스네이프가 말했다.
“로날드 위즐리, 자네에게서 학문적인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찌나 단단한지 1
센티미터도 순간이동을 못하는 학생이니 말할 것도 없겠지.”
“안 돼!”
헤르미온느가 발끈해서 대들려고 하는 해리의 팔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쓸데없는 짓이야. 결국 또다시 징계만 받게 될 거야. 그냥 가만히 있어!”
“이제 교과서 213쪽을 펴라.”
스네이프가 조롱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크루시아투스 저주에 관한 처음 두 단락을 읽도록.”
론은 수업 시간 내내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라벤더는 론과 해리를 쫓아와서(그녀가
다가오는 순간 헤르미온느는 거짓말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침을 튀기며 론의 순간이동 능력을 조롱한 스네이프를 욕했지만,
오히려 론의 성질만 더 돋운 것 같았다. 론은 라벤더를 뿌리치고 해리와 함께 먼 길을 돌아 남학생 화장실로 도망쳐 버렸다.
“하지만 스네이프 말이 맞아, 안 그래?”
1~2분 동안 금이 간 거울을 빤히 들여다보던 론이 불쑥 말을 꺼냈다.
“과연 내가 시험을 쳐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어. 순간이동 방법을 조금도 터득하지 못하고 있잖아.”
“호그스미드에서 별도의 강의를 받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는 게 좋겠어.”
해리가 이성적으로 충고했다.
“어쨌든 그 한심한 고리 속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것보다는 더 재미있을 거야, 만약 그때도 여전히…… 그러니까…… 네
가 바라는 것만큼 실력이 늘지 않으면, 시험을 연기 하면 되지 뭐, 여름 방학이 끝난 후에 나랑 같이 시험을 치르자. 머틀,
여긴 남학생 화장실이야!”
그들 뒤에 있는 칸막이 화장실에서 스르르 떠오른 여학생 유령은 두껍고 하얀 안경 너머로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허
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오, 너희 두 사람이구나.”
여학생 유령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굴 기다리고 있는 거야?”
론이 거울 속에 비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도 아니야.”
머틀은 우울하게 자기 턱의 여드름을 짜면서 말했다.
“그 사람은 날 다시 보러 돌아오겠다고 말했어. 하지만 너도 날 불쑥 찾아오겠다고 말했었지.”
머틀은 비난하는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몇 달이 지나고 또 몇 달이 지나도 널 다시 볼 수는 없었어. 난 그걸 통해서 남학생들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말
아야 한다는 걸 배웠어.”
“난 네가 여학생 화장실에서 사는 줄 알았는데?”
해리가 물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그곳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조심해 왔던 것이다.
“맞아.”
머틀이 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곳에 가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야. 언젠가 네 욕실로 찾아가서 널 만난적도 있었잖아, 기억나?”
“물론, 생생히 기억하지.”
해리가 대답했다.
“난 그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머틀은 처량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너희 둘이 떠나고 나면, 그가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 우리는 공통점이 아주 많았으니까…… 그 사람도 분명히
그걸 느꼈어…….”
머틀은 희망 어린 눈길로 문 쪽을 쳐다보았다.
“너랑 그 사람이랑 공통점이 많다는 게…….”
론은 이제 꽤 재미있어 하는 듯 보였다,
“그 사람도 하수도 속에서 산다는 뜻이니?”
“아니야.”
머틀은 타일이 깔린 낡은 화장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 사람이 아주 예민하다는 뜻이야. 그 사람도 사람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 그래서 그는 외로웠고, 이야기할 사람
이 아무도 없었지. 하지만 자기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우는걸 두려워하지 않았어!”
“그럼 여기에도 우는 남학생이 있단 말이야?”
해리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린 남학생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눈물이 그렁그렁한 머틀의 작은 눈동자는 이제 대놓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론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난 그의 비밀을…….”
“설마 무덤까지 가져갈 생각은 아니겠지?”
론이 코웃음을 쳤다.
“아마 하수구까지 가져가겠지.”
분노를 못 이긴 머틀은 울부짖으며 변기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바람에 물이 변기 양옆으로 넘쳐서 바닥까지 흘렀다.
머틀을 괴롭히고 나니 론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네 말이 맞아.”
론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며 말했다.
“시험을 칠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우선 호그스미드에서 특별 강의를 들어야겠어.”
다음 주말이 되자, 론은 헤르미온느를 비롯하여 2주일 후에 열일곱 살이 되어 시험을 치르게 되는 다른 6학년 학생들과 합류
했다. 해리는 마을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그들을 다소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호그스미드를 방문할 기
회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참으로 오래간만에 맑고 투명한 하늘을 볼 수 있는 쾌청한 봄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
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필요의 방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지 말고 곧장 슬러그혼 교수님의 사무실로 가서 그 기억이나 알아내는 게 어때?”
해리가 현관복도에서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자, 당장 헤르미온느가 면박을 주었다.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해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 주일 내내 마법약 수업 시간이 끝날 때마다 일부러 늦장을 부리
면서 슬러그혼과 단둘이 남게 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렸지만, 마법약 교수는 매번 어찌나 빨리 지하 교실을 떠나는지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그의 사무실도 두 번이나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심지어 두 번째로 찾아
갔을 때에는 안에서 오래된 축음기 소리를 황급히 낮추는 기척까지 분명하게 들렸다.
“슬러그혼 교수님은 나랑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단 말이야, 헤르미온느! 그는 내가 다시 그의 기억을 알아내려고 애쓰
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리고 절대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을 작정이라고!”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야 해, 안 그래?”
바로 그때 평소처럼 비밀 탐지기를 휘두르고 있는 필치 앞을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이 몇 걸음 다가
왔기 때문에, 해리는 혹시라도 그 참견쟁이의 귀에 자기 말이 들어갈까 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
느에게 행운을 빌어 준 후에, 돌아서서 다시 대리석 계단을 올라갔다. 헤르미온느가 뭐라고 말하든 간에 앞으로 한두 시간
은 필요의 방을 찾는 일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일단 현관 복도를 벗어나자, 해리는 호그와트 비밀 지도와 투명 망토를 가방에서 꺼냈다. 먼저 몸을 감춘 그는 지도를 톡
톡 치며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라고 중얼거리고 나서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일요일 아침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저마다 자기 기숙사 휴게실 안에 머물러 있었다. 한쪽 탑에는 그리핀도르, 또 다른 쪽
탑에는 래번클로, 지하에는 슬리데린, 그리고 부엌 근처 지하에는 후플푸프 여기저기 한두 명만이 도서관 근처를 배회하거
나 복도를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운동장에도 몇 명이 있었고…… 그리고 저기 7층에는 단 한 사람, 그레고리 고일뿐이
었다. 필요의 방이 있다는 표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지만, 해리는 그 점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고일이 밖에서 망
을 보고 있다면, 지도가 그 사실을 알든 모르든 방이 열려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쏜살같이 계단을 뛰어 올라
간 해리는 복도 모퉁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걸음을 늦추고, 헤르미온느가 2주 전에 친절하게 도와주었던 바로 그 무거운 놋쇠 저울
을 든 조그만 여학생을 향해서 살금살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학생의 바로 뒤에 이르렀을 때, 허리를 낮게 숙이고
속삭였다.
“안녕…… 너 참 예쁘구나.”
고일은 공포에 찬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저울을 휙 내던지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그리고 저울이 와장창 부
서지는 소리가 복도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모습을 감추었다. 해리는 큰 소리로 웃으며 돌아서서 텅 빈 벽을 마주대하고 섰다.
지금쯤 벽 뒤에서는 누군가가 밖에 있다는 걸 알아챈 드레이코 말포이가 감히 모습을 나타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얼어붙은
사람처럼 서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해리는 말포이를 손에 넣었다는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한 기분을 느끼면서, 지금까지
자기가 시도해 보지 않은 주문들이 뭐였을까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런 희망적인 분위기는 얼마 가지 않았다. 말포이의 속셈을 알아내야 한다는 자신의 소원을 30분 동안이나 온갖 문장
으로 수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벽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좌절감을 느꼈다. 말
포이가 바로 저기 코앞에 있는 게 분명한데, 자기는 여전히 그 녀석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실낱 같은 증거 하나 잡지 못하
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해리는 벽을 향해 돌진해서 힘껏 발길질을 했다.
“아이쿠!”
해리는 발가락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쪽 발가락을 붙잡은 채 한 발로 겅중겅중 뛰었다. 그 바람에 투
명 망토가 스르르 흘러내렸다.
“해리?”
해리는 한쪽 다리로 급하게 돌아서다가 그만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놀랍게도 통스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이 복도를 종종 순찰하곤 하는 사람과 같은 태도였다.
“여기서 뭘 하세요?”
해리가 허둥지둥 다시 몸을 일으키며 물어보았다. 어째서 통스는 항상 그가 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에만 발견하게 되는걸까?
“덤블도어 교수님을 뵈러 왔어.”
통스가 말했다
해리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못 봐줄 지경이라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마른 모습에, 쥐색 머리카락은 축 늘어져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사무실은 여기가 아닌데요.”
해리가 말했다.
“이 성의 반대편, 이무기 뒤에…….”
“나도 알아.”
통스가 말을 가로막았다.
“교수님은 거기 안 계셨어. 틀림없이 어딜 또 가신 것 같아.”
“그래요?”
해리가 멍든 발을 조심스럽게 다시 마루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혹시 교수님이 어디 가셨는지 알아요?”
“몰라.”
통스가 대답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왜 만나려는 건가요?”
“특별한 일은 아니야.”
통스가 무의식중에 망토의 소매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난 그냥 교수님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실 것 같아서……. 소문을 들었거든……. 사람들이 자꾸만 다치고…….”
“저도 알아요. 전부 신문에 났더라고요.”
해리가 말했다.
“어린아이가 자기 조부모를 다 죽이려고 하고…….”
“《예언자 일보》는 종종 시류에 뒤처질 때가 많아.”
통스는 해리가 하는 말을 전혀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최근 들어 기사단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너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없었니?”
“이젠 아무도 없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시리우스가 그 일을 당한 뒤로는…….”
해리는 통스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보았다.
“죄송해요. 저는 그냥…… 그가 보고 싶어서…….”
해리가 어쩔 줄 모르고 더듬거렸다.
“뭐라고?”
통스는 마치 그가 한 말을 한 마디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럼…… 나중에 보자, 해리…….”
통스는 휙 돌아서더니 복도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해리는 곧 다시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필요의 방에 들어가려는 노력을 계속했지만, 이미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다. 마침내 배도 고프고 머지않아 론
과 헤르미온느가 점심 식사를 하러 돌아올 거라는 생각이 들자, 해리는 그만 하던 일을 포기하고 부디 말포이가 겁에 질
려 몇 시간 동안 밖으로 못 나오기만을 바라면서 복도를 떠났다.
해리는 벌써 이른 점심 식사를 반쯤 끝내고 있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대연회장에서 만났다.
“내가 해냈어. 뭐, 어쨌든 비슷하게!”
론은 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신나게 떠들었다.
“마담 퍼디풋의 찻집 밖으로 순간이동을 해야 했는데, 약간 지나쳐서 스크리벤샤프트의 깃펜 가게까지 갔지 뭐야. 어쨌
든 움직이긴 했어!”
“잘됐다.”
해리가 말했다.
“넌 어땠어, 헤르미온느?”
“오, 헤르미온느야 당연히 완벽하지 뭐.”
헤르미온느가 대답하기도 전에 론이 나섰다.
“신중함인지 신성함인지 나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완벽하다고 우리 모두 강의 끝나고 간단하게 한잔하러 스리
브룸스틱스에 갔었는데, 거기서 트와이크로스가 헤르미온느에게 수작 거는 소리를 너도 들었어야 했어. 조만간 청혼이라도
할 기세더라…….”
“그래, 넌 어떻게 됐니?”
헤르미온느가 론의 말을 무시하며 물었다.
“줄곧 필요의 방 앞에 있었어?”
“응.”
해리가 대답했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누굴 만났는 줄 아니? 바로 통스야!”
“통스라고?”
론과 헤르미온느가 깜짝 놀라며 동시에 소리쳤다.
“그래, 덤블도어 교수님을 뵈러 왔다고 말하기는 하는데…….”
해리가 통스와 나눈 대화를 전부 이야기해 주고 나자, 론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말이지…… 통스가 살짝 맛이 간 것 같아. 마법부에서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제정신이 아니야.”
“약간 이상하긴 하다.”
헤르미온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통스는 학교를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왜 갑자기 자리를 비우고 덤블도어 교수님을 뵈러 왔을까? 심지어 교수님께서
학교에 계시지도 않을 때 말이야.”
“문득 생각난 건데 말이야…….”
해리가 망설이며 말을 꺼냈다. 왠지 자기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가 좀 어색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는 그보다는 차라리 헤르미온느의 소관이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통스가 어쩌면…… 그러니까…… 시리우스를 사랑했을 거란 생각 안 드니?”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나도 몰라.”
해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내가 시리우스 이름을 말했을 때, 통스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뻔했어. 게다가 통스의 패트로누스가 커다란 네발짐승으
로 바뀌고……. 난 혹시 그게…… 알잖아…… 시리우스가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야…….”
“그럴 수도 있지.”
헤르미온느가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왜 통스가 덤블도어 교수님을 뵈러 성 안까지 불쑥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는걸. 설령 그게 통스가 성에 들어
온 진짜 이유라고 해도…….”
“그래서 내가 아까 말했잖아, 안 그래?”
론이 입 안 가득 으깬 감자 요리를 쑤셔 넣으며 소리쳤다.
“통스는 살짝 맛이 갔다고.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여자들이란 쉽게 이성을 잃는 법이지.”
론이 해리에게 세상일을 다 아는 사람처럼 충고했다.
“하지만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한마디 했다.
“로즈메르타 부인이 노파와 치료사 그리고 밈뷸러스 밈블토니아에 대한 농담에 웃지 않는다고 해서 30분 동안이나 부루퉁하
게 앉아 있을 ‘여자’ 가 과연 있을지는 모르겠네.”
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