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볼드모트 경의 요구
폼프리 부인의 간호 덕분에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해리와 론은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곧바로 병동을 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블러저에 맞고 쓰러진 사람과 독살을 당할 뻔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이점을 톡톡히 누렸는데,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은 것은 헤르미온느와 론이 다시 친해졌다는 사실이었다. 헤르미온느는 심지어 그들을 아침 식사하는 데까지 데려다 주면서
지니와 딘이 싸웠다는 소식을 전해 주기도 했다. 순간 해리의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던 괴물이 희망의 냄새를 맡고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두 사람이 뭐 때문에 싸웠는데?”
해리는 될 수 있는 한 태연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쓰며 물었다. 그들이 막 접어든 7층 복도에는 아주 키가 작은 여학생
한 명이 발레용 짧은 스커트를 입은 트롤이 수놓아진 벽걸이용 양탄자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 그 여학생은 6학년 학생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들고 있던 묵직한 놋쇠 저울을 떨어뜨렸다.
“괜찮아!”
헤르미온느가 상냥하게 말하며 그 여학생을 도와주려고 얼른 앞으로 달려갔다.
“자…….”
헤르미온느는 부서진 저울을 지팡이 끝으로 툭 치면서 주문을 외었다.
“레파로.”
그 여학생은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도 없이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그들이 자기를 지나쳐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
켜보았다. 론이 힐끗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이지 요즘 애들은 어째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아.”
“그 여자 애한텐 신경 쓰지 마.”
해리가 다소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지니와 딘은 왜 싸운 거야, 헤르미온느?”
“어…… 맥클라건이 블러저로 널 맞히는 걸 보고 딘이 웃었대.”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솔직히 꽤 웃겼을 거야.”
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혀 웃기지 않았어!”
헤르미온느가 발끈 화를 냈다.
“아주 끔찍했다고! 쿠트와 피크스가 해리를 붙잡지 못했더라면 아주 심각하게 다쳤을지도 몰라!”
“그랬구나. 하지만 그것 때문에 지니와 딘이 헤어질 필요는 전혀 없는데…….”
해리는 여전히 태연한 척 보이려고 애를 쓰며 말했다.
“아니면 아직도 사귀고 있는 거니?”
“그래, 사귀고 있어. 그런데 너, 그 일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거니?”
헤르미온느가 캐묻는 듯한 시선으로 해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난 그냥 우리 퀴디치 팀이 또다시 엉망이 될까 봐 걱정돼서 그래!”
해리가 황급히 변명을 했지만,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바로 그때 다행히도 뒤에서 “해리!”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해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헤르미온느의 시선을 피해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어…… 안녕, 루나.”
“널 만나러 병동에 갔었어.”
루나가 가방 안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네가 벌써 나갔다고 하더라…….”
루나는 초록색 양파처럼 보이는 것과 커다란 얼룩 독버섯 하나, 그리고 꼭 고양이 집 깔개처럼 보이는 것들을 한 무
더기 꺼내어 론의 손 위에 올려놓더니, 마침내 더러워진 양피지 두루마리를 찾아서 해리에게 건네 주었다.
“너한테 이걸 전해 주라고 하시더라.”
그 작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보자마자, 해리는 그것이 덤블도어의 다음 번 수업 초대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늘 밤이야.”
해리는 양피지를 펼쳐 보더니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즉시 말해 주었다.
“지난 번 시합 때 정말 해설 잘하더라!”
론이 루나에게 다시 초록색 양파와 독버섯 그리고 고양이 집 깔개를 돌려주며 말했다. 루나가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날 놀리는 거지, 그렇지? 다들 내가 형편없었다고 하던걸.”
루나가 말했다.
“아니야, 정말이야!”
론이 진지하게 말했다.
“내 생애에 그보다 더 재미있는 해설은 없었어! 그건 그렇고, 이건 뭐니?”
론이 양파처럼 보이는 것을 눈앞으로 들어 올리며 물었다.
“어, 그건 거디루트야.”
루나가 고양이 집 깔개와 독버섯을 다시 가방 속에 쑤셔 넣으며 대답했다.
“갖고 싶으면 가져. 난 몇 개 더 있으니까. 그게 걸핑 플림피(얼룩덜룩한 반점이 있는 물고기의 한 종류. 《신비한 동물 사전》 참조
: 역주)를 막는 데 아주 효과가 탁월하거든.”
루나는 거디루트를 손에 쥔 채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론을 남겨 두고 가 버렸다.
“루나가 점점 마음에 든단 말이야.”
다시 대연회장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면서 론이 말했다.
“걔가 약간 정신이 나간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참 쓸만…….”
갑자기 론이 입을 꾹 다물었다. 라벤더 브라운이 잡아먹을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리석 계단 밑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안녕.”
론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서 가자.”
해리는 헤르미온느에게 귓속말을 하면서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라벤더 브라운의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까지
똑똑히 들렸다.
“오늘 퇴원한다고 왜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거야? 그리고 왜 쟤가 너랑 같이 있는 거지?”
30분쯤 후에 론은 약간 시무룩하고 짜증 난 표정으로 아침 식사 자리에 나타나더니 라벤더와 나란히 앉았다. 하지만
해리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동안 말을 주고받는 걸 전혀 볼 수 없었다. 반면 헤르미온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
하게 굴었지만, 한두 번 그녀의 얼굴에 뜻 모를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해리는 보았다. 하루 종일 헤르미온느는 유달리 기분
이 좋은 것 같았다. 심지어 그날 저녁에 휴게실에서 해리의 약초학 작문 숙제를 한번 봐주겠다(다시 말해서 숙제를 끝내 주겠다
고)고 선뜻 나서기까지 했다. 론이 해리의 숙제를 베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헤르미온느는 해리에게 절대
로 숙제를 도와주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텨 왔었다.
“정말 고마워, 헤르미온느.”
해리는 이렇게 말하며 그녀의 등을 얼른 톡톡 두드리고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8시가 가까웠다.
“그만 가 봐야겠어. 안 그러면 덤블도어 교수님과의 수업에 늦을 것 같아…….”
헤르미온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한심하다는 듯 말도 안 되는 문장 몇 개에 X표를 쫙 치고 있었다. 해리는 씩 웃으
며 서둘러 초상화 구멍을 빠져나와 교장실로 향했다.
‘초콜릿 슈크림’ 이라고 암호를 말하자, 이무기는 껑충 뛰어 옆으로 비켜났다. 나선형의 계단을 한 번에 두 칸씩 성큼성큼 뛰어 올라간 해리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순간, 안에 있는 시계가 정각 8시를 알렸다.
“들어와라.”
덤블도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해리가 문을 열려고 손을 내밀었을 때, 안에서 누군가가 손잡이를 돌리더니 문을 열었다.
트릴로니 교수였다.
“아하!”
트릴로니 교수는 눈을 껌벅이며 돋보기 너머로 해리를 바라보더니 과장된 몸짓으로 해리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탄성을 질렀다.
“저를 무례하게 당신 사무실에서 내쫓으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군요, 덤블도어!”
“친애하는 사이빌.”
덤블도어가 약간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을 무례하게 내쫓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해리와는 선약이 되어 있었고, 당신과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을
뿐이오.”
“좋아요.”
트릴로니 교수는 몹시 감정이 상한 듯한 말투였다.
“당신이 남의 자리를 빼앗은 그 늙은 말을 내쫓지 않겠다면 그렇게 하세요……. 아마도 저는 제 재능을 더 잘 인정해 주는
학교를 찾아봐야 할 것 같군요.”
트릴로니 교수는 해리를 밀치고 방을 나가, 나선형 계단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에 계단 중간쯤에서 발을 헛딛고
비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트릴로니 교수가 질질 끌리는 숄에 걸려 넘어진 모양이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문을 닫고 앉거라, 해리.”
덤블도어가 다소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그의 지시에 따랐다. 평소처럼 덤블도어의 책상 앞에 앉았을 때, 그들 사이에는 또다시 펜시브와 소용돌이치는 기억으로 가
득 찬 조그만 크리스털 병 두 개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트릴로니 교수님은 아직도 피렌체 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는 걸 못마땅해하시는군요?”
해리가 물었다.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점술 수업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골칫거리가 되어 가고 있단다. 나는 그 과목을 한 번도 공부해 본적이 없었거든
. 이제 와서 피렌체에게 추방당한 숲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고, 사이빌 트릴로니더러 떠나라고 할 수도 없어. 우리끼리
니까 하는 말이지만, 사이빌은 성 밖에 나가면 자기 처지가 얼마나 위험하게 될지 전혀 모르고 있단다. 너와 볼드모트에 대
해서 자기가 예언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니까 말이다. 물론 그 사실을 그녀에게 일깨워 주는 건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난 생각한단다.”
덤블도어는 깊이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교직원 문제는 신경 쓰지 마라. 우리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으니까. 우선, 내가 지난번 수업을 끝마
칠 무렵에 너에게 내 주었던 과제는 어떻게 되었느냐?”
“아!”
해리는 아차 싶었다. 순간이동 강의에다가 퀴디치 시합, 론의 음독 사건, 그리고 두개골 골절 사고, 반드시 드레이코
말포이의 속셈을 알아내겠다는 생각 등등으로 인해서 덤블도어가 슬러그혼 교수로부터 알아내라고 했던 기억에 대해
서는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약 수업이 끝나고 슬러그혼 교수님께 여쭤 보았는데, 절대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하셨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알겠다.”
마침내 덤블도어가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해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해리는 꼭 엑스레이로 투시를 당하는 것 같
은 기분이 들었다.
“네가 이 문제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니? 네가 가진 모든 재능을 다 발휘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 기억
을 알아내기 위해서 모든 계략을 남김없이 다 썼다고 생각하느냔 말이다.”
“글쎄요…….”
해리는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다. 기억을 알아내기 위해 그가 했던 단 한 번의 시도가 갑자기 창피할 만큼 하잘것없이 느껴졌던
것이다.
“론이 실수로 사랑의 묘약을 먹었던 날, 제가 론을 데리고 슬러그혼 교수님을 찾아갔을 때, 교수님의 기분만 잘 맞춰 드리
면 어쩌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효과가 있었니?”
덤블도어가 물었다.
“저…… 아니요. 론이 독약을 마시는 바람에…….”
“그일 때문에 당연히 기억을 알아내는 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겠지. 너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위험에 처했는데
내가 더 이상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니. 하지만 일단 위즐리 군이 완전히 회복될 거라는 사실이 확실해졌을 때, 나는 네가
그 과제에 대해 다시 신경을 쓰기를 바랐었다. 그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내가 분명히 너에게 알려 주었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그 기억이야말로 다른 어떤 기억보다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너의 머릿속에 심어 주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단다.
그 기억이 없으면 우리는 시간 낭비만 하게 되는 거란다.”
해리는 부끄럽고 수치스런 생각에 온몸이 화끈 달아오르며 진땀이 났다. 덤블도어는 언성을 높이거나 화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해리는 그가 차라리 호통이라도 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이 싸늘하고 실망스런 목소리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었다.
“교수님.”
해리는 약간 자포자기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 문제에 대해 신경 쓰지 않거나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다른…… 다른 일들이 좀 있어서…….”
“내 머릿속에 다른 일들이 있었단 말이지.”
덤블도어가 그의 말을 대신 끝내 주었다.
“알겠다.”
두 사람 사이에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해리와 덤블도어 사이에서 이토록 불편한 침묵이 흐른 적은 없었다. 이따금씩 덤블도어의
머리 위에 걸려 있는 아르만도 디펫의 초상화에서 나지막이 코 고는 소리만이 들릴 뿐, 숨 막히는 정적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해리는 이상하게 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꾸만 몸이 오그라드는 것처럼 위축되는 기분을 느꼈다. 마침내 더 이상
침묵을 견딜 수 없게 된 해리가 입을 열었다.
“덤블도어 교수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진짜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교수님께서 제게 하
려고 시키지도 않으셨을 거라는 사실을 제가 진작 깨달았어야 했어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구나, 해리.”
덤블도어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네가 이 일을 최우선으로 할 거라고 기대해도 되겠지? 그 기억을 가지지 못한다면, 오늘 밤 이후 우리
의 만남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게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수님.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
해리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럼 지금은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자꾸나.”
덤블도어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이제 우리가 지난번에 했던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 어디까지 했는지 기억하고 있니?”
“네, 교수님.”
해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볼드모트가 아버지와 조부모를 죽이고 모핀 삼촌이 그런 것처럼 일을 꾸몄어요. 그런 다음 호그와트로 돌아와서 슬
러그혼 교수님께 호크룩스에 대해서 무…… 물었어요.”
해리는 창피해서 슬며시 말을 더듬었다.
“아주 잘했다.”
덤블도어가 칭찬했다.
“혹시 기억하고 있니? 이 수업을 처음 시작하던 날, 내가 너에게 앞으로 우리는 추측과 추론의 영역으로 들어갈 거라고 말
했던 것을 말이다.”
“예, 교수님.”
“나도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나는 너에게 볼드모트가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의 행적에 대한 나의 추론을 뒷
받침해 줄 수 있는 분명한 사실들만 보여 주었단다. 안 그러냐?”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단다.”
덤블도어가 말을 이었다.
“점점 더 기억들이 애매모호하고 이상해질 거야. 소년 시절의 리들에 대한 증거를 찾는 일도 힘들었지만, 성인 된 볼드
모트에 대한 기억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단다. 사실 그가 호그와트를 떠난 이후의 행적
에 대해서 완전한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볼드모트 자신 이외에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남아 있을지 의심스럽구나.
그렇지만 너에게 보여 주고 싶은 기억이 마지막으로 두 개 남았단다.”
덤블도어가 펜시브 옆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작은 크리스털 병 두 개를 가리켰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그 기억들로부터 끌어낸 결론들이 과연 그럴듯한지에 대해서 너의 의견을 듣고 싶단다.”
덤블도어가 자신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자, 해리는 호크룩스에 대한 기억을 알아내라는 숙제를 못한 것
이 더욱더 부끄럽게 여겨졌다. 덤블도어가 두 개의 병 중에 하나를 들어서 불빛에 비춰 보며 살펴보는 동안, 해리는 죄책감
을 느끼며 의자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부디 네가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데 싫증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아주 흥미로운
기억들이거든.”
덤블도어가 말했다.
“첫 번째 기억은 호키라고 하는 아주 늙은 집요정에게서 얻은 것이란다. 하지만 호키가 목격한 장면들을 보기 전에,
먼저 볼드모트 경이 어떻게 호그와트를 떠났는지 간략하게 설명부터 해야겠구나.
너도 예상했겠지만, 볼드모트 경은 치르는 시험마다 모두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7학년 가지 올라갔단다. 그리고 그의
동급생들은 저마다 호그와트를 졸업한 후에 어떤 직업을 택할지 결정하기 시작했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장이자
수석 학생이고 학교 특별 공로상 수상자인 톰 리들이 뭔가 특별한 일을 하리라고 기대했어. 내가 알기로는 슬러그혼을
비롯한 몇몇 교수들은 그에게 유력한 연줄도 소개해 주고 자리도 얻게 해 주겠다고 하면서 마법부에 들어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단
다. 하지만 그는 모든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나중에 교직원들은 볼드모트가 보진과 버크 가게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는 사
실을 알았지.”
“보진과 버크 가게요?”
해리가 어리둥절해서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 보진과 버크 가게.”
덤블도어가 조용히 되풀이하여 말했다.
“호키의 기억을 보고 나면, 왜 그가 그 자리에 매력을 느꼈는지 알게 될 게다. 하지만 그것은 볼드모트가 제일 먼저
선택했던 직업이 아니었지. 당시에는 거의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볼드모트는 처음에 디펫 교수를 찾아가서 호그와트의
교수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어. 나는 당시 교장인 디펫 교수로부터 그 말을 직접 들은 극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였단다.”
“여기에 남고 싶어 했단 말인가요? 왜죠?”
해리는 더욱더 놀라울 뿐이었다.
“디펫 교수에게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 생각에 볼드모트는 다른 어떤 인간에 대해서보다도 이 학교에 대해서 더 커다
란 애착을 느꼈던 모양이다. 호그와트는 그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자기 집처럼 느낀 최초이자 유일한 장소
였으니까 말이다.”
이 말을 듣자 해리는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자기가 호그와트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성이 고대 마법의 본거지라는 점이었지. 틀림없이 볼드모트는 이 학교를 거쳐 간 다른 어떤 학생들
보다도 많은 호그와트의 비밀을 알아냈을 거야.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파헤쳐야 할 수수께끼와 개발할 마법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 번째 이유는 교수가 되면 젊은 마법사들과 마녀들에게 엄청난 영향력과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슬러
그혼 교수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당시 한창 전성기였던 슬러그혼은 교수라는 직업이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몸소 보여 주고 있었거든. 물론 볼드모트가 여생을 호그와트에서 보낼 작정이었을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세력을 모으는 데에는 쓸만한 자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군대를 만들어 시작하는 출발
지로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자리를 얻지는 못했지요?”
“그래 얻지 못했단다. 디펫 교수는 열여덟 살은 너무 어리니 몇 년 후에도 여전히 교수가 되고 싶다면 그때 다시 지원해 보
라고 말했지.”
“그 문제에 대한 교수님 생각은 어떠셨나요?”
해리가 약간 머뭇거리며 물었다.
“잠시 마음이 불안했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나는 아르만도에게 그의 요구를 거절하라고 충고했었지. 하지만 너에게 설명해 준 것처럼 구체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단다
. 디펫 교수는 볼드모트를 아주 총애했고, 그의 정직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난 볼드모트 경이 이
학교로 돌아오는 걸 원치 않았어. 특히 힘이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절대 반대였지.”
“볼드모트는 무슨 자리를 원했죠? 무슨 과목을 가르치고 싶어 했나요, 교수님?”
하지만 해리는 덤블도어가 말해 주기 전에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이란다. 당시에는 갈라티 메리쏘우트라는 나이 든 교수가 가르치고 있었는데, 거의 50년 동안 호그
와트에 계셨던 분이지.”
결국 볼드모트는 보진과 버크 가게로 갔단다. 그를 높이 평가했던 교직원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그처럼 앞날이 창창한 마
법사가 그런 가게에서 일을 한다는 건 시간 낭비라고 충고했지. 하지만 볼드모트는 단순한 보조 직원이 아니었어. 예의
바르고 잘생긴 데다가 총명하기까지 한 그는 금방, 오직 보진과 버크 가게와 같은 곳에서만 가능한 아주 특별한 일을 맡
게 되었지. 해리, 너도 알다시피 그 가게는 희귀하고 강력한 마법의 힘을 지닌 물건들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거든. 가게
주인들은 볼드모트에게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보물들을 팔도록 설득하는 일을 시켰고, 그는 그런 방면에 아주 비상한 재
능을 가지고 있었지.”
“어련했겠어요.”
해리는 말을 참지 못하고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
“자, 그러면…….”
덤블도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집요정 호키의 기억을 들을 시간이로구나. 그는 헵시바 스미스라고 하는 아주 나이가 많고 돈이 많은 마녀 밑에
서 일을 했단다.”
덤블도어가 지팡이로 병을 톡 치자 코르크 마개가 쑥 빠졌다. 그는 소용돌이치는 기억을 펜시브에 쏟아 부으며 말했다.
“먼저 가거라, 해리.”
자리에서 일어난 해리는 또다시 돌 대야 안에서 찰랑거리고 있는 은빛 액체 속으로 얼굴을 담갔다. 그리고 텅 빈 어둠
속으로 추락한 끝에 어느 거실에 착륙했다. 그의 눈앞에는 뚱뚱하고 늙은 부인이 앉아 있었는데, 공들여 매만진 빨간색 가
발을 쓰고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밝은 분홍색 망토를 입고 있어서, 마치 줄줄 녹아내리고 있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연상시
켰다. 부인은 보석이 박힌 작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커다란 분첩으로 이미 새빨갛게 칠해진 뺨 위에 붉은 연지를 덕지덕
지 덧바르고 있었다. 한편 해리가 이제껏 보아온 집요정 중에서 가장 늙고 조그만 집요정 하나가 부인의 퉁퉁한 발에 꽉
조이는 비단 슬리퍼를 신기고 있었다.
“호키, 서둘러!”
헵시바가 거만하게 명령했다.
“그 사람이 4시에 온다고 했단 말이야. 이제 겨우 2분밖에 안 남았어. 그 사람은 절대 늦는 법이 없거든!”
부인이 분첩을 집어넣었을 때, 집요정도 몸을 세우고 일어났다. 요정의 키는 헵시바가 앉아 있는 의자 바닥에 겨
우 닿을 정도였고, 종잇장 같은 피부는 요정이 토가(고대 로마 시민들이 입었던 긴 겉옷 : 역주)처럼 걸치고 있는 얇고
찢어지기 쉬운 천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나 어때?”
헵시바는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며 여러 각도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감탄하듯이 바라보았다.
“아주 아름답습니다, 마님.”
호키가 끽끽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리는 아마도 호키의 고용 계약서에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반드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라도 적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헵시바 스미스는 아름다움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딸랑딸랑 현관 종소리가 나자, 여주인과 집요정이 동시에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어서, 어서, 그가 왔어, 호키!”
헵시바가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자, 집요정은 황급히 거실을 나갔다. 거실 안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최소한
열두 번쯤 걸려 넘어지지 않고서는 무사히 안으로 들어오기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윤이 나는 작음 함이 잔뜩 들어 있
는 캐비닛들과 금박 무늬가 새겨진 책들로 가득한 상자들, 지구본과 천구의들이 놓인 선반들, 놋쇠 용기에 담긴 화려한 화분
들이 가득 들어찬 이 방은 꼭 마법 골동품 상점과 온실을 합쳐 놓은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에 집요정이 키가 큰 젊은 남자를 데리고 다시 들어왔다. 해리는 한눈에 그가 볼드모트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 학창 시절보다 약간 더 길게 기른 머리 모양과 야윈 두 뺨이 수수하게 까만 양복만 걸친 그의 모습과 전
체적으로 아주 잘 어울렸고, 그 때문에 그는 훨씬 더 미남으로 보였다. 그는 이미 수차례 이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
듯, 복잡한 거실 안을 쉽사리 지나가더니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서 헵시바의 통통하고 작은 손에 입을 맞추었다.
“부인을 위해 꽃을 가져왔습니다.”
그가 이렇게 속삭이자, 어디선가 장미 꽃다발이 불쑥 나타났다.
“이런 장난꾸러기 같으니라고. 이러면 못써요!”
늙은 헵시바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해리는 부인이 이미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빈 꽃병을 준비해 놓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톰, 정말이지 당신 때문에 이 늙은이 버릇만 나빠진다니까. 어서 앉아요, 앉아……. 호키는 어디 갔지? 아…….”
집요정이 작은 케이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쏜살같이 방 안으로 뛰어들더니 주인마님의 팔꿈치 옆에 내려놓았다.
“마음껏 들어요, 톰.”
헵시바가 말했다.
“당신은 우리 집 케이크라면 사족을 못 쓰잖아. 그래, 어떻게 지냈어? 얼굴이 좀 창백해 보이는걸. 그 가게에서 아무
래도 자넬 너무 부려 먹는 것 같아. 내가 입이 닳도록 말했건만…….”
볼드모트가 기계적으로 미소를 짓자, 헵시바도 좋아서 헤벌쭉 입이 벌어졌다.
“그래, 이번에는 또 무슨 구실로 날 찾아온 거지?”
헵시바가 속눈썹을 깜박거리며 물었다.
“버크 씨께서 도깨비들이 만든 갑옷에 대해 더 좋은 가격을 제시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볼드모트가 말했다.
“500갈레온 정도라면 공정한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이 내시는 거라고…….”
“아이, 그렇게 서두르지 마. 자꾸 그러면 당신이 그깟 시시한 물건들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생각할 거야!”
헵시바가 토라진 듯 입을 삐죽거렸다.
“전 그일로 이 댁을 방문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입니다.”
볼드모트가 조용히 대답했다.
“전 그저 하찮은 심부름꾼에 불과하니까요, 부인. 그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지요. 버크 씨는 저더러 여쭤 보
라고 하셨는데…….”
“버크 씨! 흥, 제까짓 게!”
헵시바는 작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당신에게 보여 줄 게 있어. 버크 씨에게도 절대로 안 보여 줬던 거야! 비밀을 지켜 줄 거지, 톰? 내가 이런 걸 갖고
있다고 버크 씨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내가 당신에게 이걸 보여 준 걸 그자가 알면, 날 들들 볶고 못살게 굴 거야
. 난 버크에게, 아니 그 누구에게도 이걸 절대 팔지 않을 거니까! 하지만 톰, 당신이라면 이 물건의 역사적인 가치를 알아줄
거야.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지 계산이나 하는 게 아니라…….”
“저는 헵시바 양께서 보여 주시는 거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보고 싶습니다.”
볼드모트가 조용히 대답하자, 헵시바는 또다시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호키한테 가져오라고 시켰는데……. 호키, 어디 있는 거야? 리들 씨에게 우리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보여 드리고 싶구나……
. 아니, 아직 거기 있으면 그냥 둘 다 가져오도록 해.”
“여기 있습니다, 마님.”
집요정이 끽끽거리며 말했다. 해리는 아래위로 포개진 가죽 상자 두 개가 마치 저절로 둥둥 떠가듯이 방 안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물론 왜소한 몸집의 집요정이 상자를 머리 위에 인 채, 탁자들과 쿠션들, 발받침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
가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자…….”
집요정에게서 건네받은 상자들을 무릎 위에 내려놓은 헵시바는 제일 위에 있는 상자를 열 자세를 취하면서 기쁨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톰, 당신도 틀림없이 좋아할 거야……. 오, 내가 이걸 당신에게 보여 준다는 사실을 우리 집안 사람들이 안다면……
당장 빼앗으려고 들걸!”
헵시바는 뚜껑을 열었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앞으로 다가간 해리는 정교하게 세공을 한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작
은 황금 잔 같은 것을 보았다.
“톰, 이게 뭔지 알겠어? 한번 들어서 자세히 봐!”
헵시바가 속삭였다. 볼드모트는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을 뻗어서 푹신한 비단 천에 감싸인 잔의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 해리는 순간 그의 까만 눈동자에서 붉은 광채가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탐욕스런 표정이 묘하게 헵시바의
얼굴에도 똑같이 떠올랐다. 다만 그녀의 조그만 눈은 잘생긴 볼드모트의 얼굴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오소리로군요…….”
볼드모트가 잔에 새겨진 문장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 잔은…….”
“헬가 후플푸프의 것이었지. 당신도 잘 아는 군. 정말 똑똑하기도 하지!”
헵시바가 터질 듯한 코르셋이 요란스럽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을 앞으로 기울여 훌쭉한 볼드모트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내가 헬가의 먼 후손뻘 된다는 말을 당신에게 안 해 줬던가? 이것은 대대로 우리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보물이야.
정말 아름답지, 안 그래? 게다가 모든 마법의 힘이 바로 이 잔에 숨겨져 있다는 말도 있지. 하지만 난 한 번도 시험해 본
적이 없어. 그냥 여기에다 안전하게 잘 보관할 뿐이야…….”
헵시바는 볼드모트의 기다란 손에서 잔을 도로 낚아채더니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그녀는 그 일에 너무나 열중
한 나머지, 잔을 빼앗기는 순간 볼드모트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 그럼…….”
헵시바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호키는 어디 있지? 오, 그래, 거기 있구나. 이제 이 상자를 가져가렴, 호키.”
집요정이 명령에 따라 잔이 담긴 상자를 들고 가자, 헵시바가 무릎 위에 놓인 훨씬 더 납작한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톰, 당신은 아마 이게 훨씬 더 마음에 들 거야.”
헵시바가 속삭였다.
“이리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자기. 그래야 잘 볼 수 있지……. 물론 버크는 내가 이걸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바로 그 사람에게서 샀으니까. 하지만 내가 죽고 나면 틀림없이 이 물건을 되사고 싶어서 안달할 거야…….”
헵시바는 섬세한 줄 세공이 들어간 걸쇠를 열고 상자 뚜껑을 젖혔다. 부드러운 붉은색 벨벳 깔개 위에 로켓이 달린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이번에는 권하지도 않았는데, 볼드모트가 먼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어 들더니 불빛 쪽으로 높이 치켜들고 자세히 살펴 보았다.
“슬리데린의 표식이요.”
볼드모트가 조용히 말했다. 뱀 모양의 S자 장식이 불빛을 받아 선명하게 빛났다.
“맞았어!”
헵시바는 자신의 목걸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볼드모트를 보며 좋아했다.
“이걸 얻기 위해서 내 팔다리를 한 짝씩 내놓기라도 해야 할 정도로 출혈이 컸어. 하지만 이런 진짜 보물을 그냥 놓
쳐 버릴 수는 없었지. 반드시 내 수집품으로 가져야만 했으니까. 버크는 거지꼴을 한 어떤 여자한테서 그걸 샀다는데,
틀림없이 어디서 훔쳤을 거야. 하지만 이 보물의 진짜 가치는 몰랐겠지…….”
이번에는 분명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이 말을 들은 볼드모트의 눈동자에서 빨간 광채가 번뜩였다. 그리고 해리는 볼드모
트가 손가락 관절이 새하얘지도록 목걸이 줄을 꽉 움켜 쥐는 것을 보았다.
“내 장담하지만 버크는 그 여자에게 겨우 몇 푼 쥐여 주었을 거야. 하지만 이건…… 정말 예쁘지, 안 그래? 게다가 여기
에도 온갖 마법의 힘이 담겨져 있지. 물론 내가 안전하게 잘 보관하고 있지만 말이야…….”
헵시바는 목걸이를 다시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해리는 순간 볼드모트가 그것을 돌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
만 잠시 후에 목걸이는 그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푹신한 붉은색 벨벳 깔개 위에 다시 놓였다.
“톰, 이제 다 봤어. 즐거운 시간이 되었기를…….”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헵시바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얼빠진 미소가 희미하게 사라졌다.
“자기, 괜찮은 거지?”
“오, 괜찮습니다.”
볼드모트가 조용히 말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마 불빛 탓에 잘못 본 거겠지…….”
헵시바가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해리는 그녀도 볼드모트의 눈동자에서 붉은 광채가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것을 본 모
양이라고 짐작했다.
“호키, 이걸 가지고 가서 다시 잠가 놓아라……. 평소처럼 마법도 걸어 놓고…….”
“이제 떠날 시간이다, 해리.”
작은 집요정이 상자를 들고 뒤뚱뒤뚱 사라지자, 덤블도어가 속삭였다. 그는 또다시 해리의 팔꿈치를 꽉 움켜쥐었
고, 두 사람은 어둠 속을 지나서 교장실로 돌아갔다.
“이 짧은 사건이 있은 지 이틀 후에 헵시바 스미스는 죽었단다.”
덤블도어가 자리에 앉으며 해리에게도 앉으라고 의자를 가리켰다.
“집요정 호키는 여주인이 저녁에 마시는 코코아에 실수로 독약을 탔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었지.”
“그럴 리가 없어요!”
해리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덤블도어가 말했다.
“분명히 이 죽음과 리들 가족의 죽음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들이 있지. 양쪽 모두 누군가가 그 죄를 대신 뒤집어썼고, 그
사람은 자기가 그 일을 저질렀다는 분명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호키도 자백을 했나요?”
“자기가 주인마님의 코코아에 뭔가를 넣었다는 걸 기억해 냈는데, 그것이 설탕이 아니라 치명적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독약으
로 드러났지.”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결국 호키가 의도적으로 살해한 것이 아니라, 너무 늙어서 착각을 했던 걸로 결론이 났단다.”
“볼드모트가 호키의 기억을 조작한 거예요. 모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래, 내 결론도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동의했다.
“모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법부는 처음부터 호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어.”
“호키가 집요정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거예요.”
해리가 말을 받았다. 헤르미온느가 세운 S.P.E.W. 모임에 대해서 이토록 강한 공감을 느껴 보기는 처음이었다.
“바로 그거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호키는 나이도 많았고, 코코아에 뭔가를 넣었다는 사실도 인정했지. 마법부에 있는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조사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 모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서 호키가 숨을 거두기 전에 이 기억을 간신히 얻어 낼
수 있었단다. 물론 호키의 기억은 볼드모트가 그 잔과 목걸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증명하
지 못했지만 말이다.
호키가 유죄 판결을 받았을 무렵, 헵시바의 집안 사람들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가장 소중한 보물 두 개가 사라졌다는 사실
을 알아차렸단다. 하지만 헵시바는 항상 자신의 수집품들을 여기저기에 숨겨 놓고 철저히 보관했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이 이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 그들이 잔과 목걸이가 모두 사라졌다는 확신을 얻기 전에, 보진과 버크
가게에서 일했던 직원이자 헵시바를 그토록 자주 찾아와서 그녀의 넋을 홀딱 빼앗았던 그 젊은이는 직장을 그만 두고 어디론
가 사라졌어. 그의 주인들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단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갑작스런 행방불명
에 그저 놀랄 뿐이었어. 그 후로 아주 오랫동안 톰 리들을 보거나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없었단다.
자, 이제…… 너만 괜찮다면 해리, 나는 잠시 이 이야기를 멈추고 여기서 네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점에 대해
서 말해 주고 싶구나. 볼드모트는 또 다른 살인을 저질렀다. 리들 가족을 죽인 뒤 그동안 다른 살인을 저질렀는지 안 저질렀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네가 방금 보았듯이, 이번에는 복수 때문이 아니라 뭔가를 손에
넣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어. 볼드모트는 그 얼빠진 가엾은 노부인이 그에게 보여 준 두 개의 전설적인 전리품을 갖고 싶었던
거야. 한때 고아원에서 다른 아이들의 물건을 훔쳤듯이, 그리고 모핀 삼촌의 반지를 훔쳤듯이, 이번에는 헵시바의 잔과 목걸이를
훔쳐서 달아난 거지.”
“하지만…….”
해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정신 나간 짓이 아닐까요……. 단지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 직장도 내버리고 모든 위험을 다 무릅쓰다니요…….”
“네가 보기에는 정신 나간 짓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볼드모트에게는 그렇지 않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나는 이 물건들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네가 정확하게 이해하길 바란다, 해리. 물론 너도 볼드모트가 그
목걸이를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이 갈 게다.”
“목걸이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잔은 왜 가져갔죠?”
해리가 물었다.
“그건 호그와트를 세운 또 한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볼드모트는 여전히 학교에 대해서 커다란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호그와트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물건에
대한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던 거지.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었겠지……. 수업을 계속하면서 너에게 그 이유를 말해 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제 네가 우리를 위해서 슬러그혼 교수의 기억을 빼내 오기 전까지, 내가 너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마지막 기억만이 남았구나
. 이 기억과 호키의 기억 사이에는 10년이란 시간 간격이 있단다. 그 10년동안 볼드모트가 뭘 했는지에 대해서는 오직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
덤블도어가 펜시브에 마지막 기억을 쏟아 넣자, 해리는 또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누구의 기억인가요?”
해리가 물었다.
“내 기억이란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이윽고 해리는 덤블도어의 뒤를 쫓아서 찰랑거리는 은빛 물질 속으로 뛰어들었고, 지금 막 떠났던 바로 그 교장실에 다시 착
륙했다. 교장실에서는 퍽스가 횃대 위에 앉아서 즐겁게 지저귀고 있었고, 책상 뒤에는 지금 해리 옆에 서 있는 덤블도어와
아주 흡사하게 생긴 덤블도어가 앉아 있었다. 물론 그 덤블도어의 양쪽 손은 다친 데 없이 멀쩡했고, 얼굴에 있는 주름살도 좀
더 적었다. 현재의 교장실과 과거의 교장실 사이에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의 교장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는 것
이었다. 파르스름한 눈송이들이 창밖 어둠 속에서 휘날리며 바깥 창틀에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젊은 덤블도어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과연 그들이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덤블도어는 들어오라고 말했다.
순간 해리는 헉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볼드모트가 방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의 모습은 해리가 거의 2년 전에 커
다란 솥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던 그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아직은 뱀처럼 눈도 빨갛지 않았고, 얼굴도 가면을 쓴 것
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잘생겼던 톰 리들도 아니었다. 그의 이목구비는 꼭 화상을 입어서 뭉그러진 것처
럼 윤곽이 흐릿해지고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의 흰자위에 이제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붉은 핏발이
서 있었다. 다만 아직 동공은, 해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세로로 가늘게 쭉 찢어진 모양이 아니었다. 볼드모트는 길고 검은 망
토를 입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어깨 위에 쌓여 반짝이는 눈만큼이나 창백했다.
책상 뒤에 앉아 있는 덤블도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미리 약속된 방문임에 틀림없었다.
“잘 있었나, 톰.”
덤블도어가 태연하게 인사를 했다.
“자리에 좀 앉겠나?”
“고맙습니다.”
볼드모트는 덤블도어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보아하니 해리가 방금 떠나온 바로 그 자리인 것 같았다.
“교수님께서 교장 선생님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볼드모트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약간 더 높고 차가웠다.
“훌륭한 선택이지요.”
“자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덤블도어가 빙그레 웃었다.
“한 잔 마시겠나?”
“주시면 고맙지요. 꽤 먼 길을 왔거든요.”
덤블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금은 펜시브를 보관하고 있는 캐비닛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곳은 술병들로 가득차 있
었다. 덤블도어는 볼드모트에게 포도주 한 잔을 건네주고 자기 앞에 놓인 잔에도 한 잔 따른 다음, 다시 책상 뒤로 가서 앉았다.
“그래, 톰…… 무슨 일로 이토록 반가운 발걸음을 해주었나?”
볼드모트는 선뜻 말을 꺼내지 않고 포도주만 홀짝거릴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저는 ‘톰’ 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요즈음 제 이름은…….”
볼드모트가 말했다.
“나도 자네가 뭐라고 불리는지는 알고 있다네.”
덤블도어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을 끊었다.
“미안하지만 나에게 자네는 언제나 톰 리들일 뿐일세. 그게 늙은 선생들의 어쩔 수 없는 고질병 중 하나지. 선생들이란 자기가
같았던 학생들의 햇병아리 시절을 절대 잊지 않는 법이거든.”
덤블도어는 무표정한 볼드모트를 향해 잔을 높이 들어 건배를 청했다. 해리는 방 안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
다. 덤블도어가 볼드모트의 새 이름을 사용하길 거절했다는 것은, 곧 이 만남의 주도권을 볼드모트에게 결코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해리는 볼드모트도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학교에 남아 계시다니 놀랍군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볼드모트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 같은 마법사가 왜 학교를 떠나려고 하지 않으시는지 항상 궁금했죠.”
“글쎄…….”
덤블도어가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나 같은 마법사에게는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지식을 전수하고 그들이 실력을 연마하도록 도와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건 없다네
.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자네도 한때 가르치는 일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은데…….”
“그건 아직도 그렇습니다.”
볼드모트가 말했다.
“단지 궁금해서 말이죠. 어째서 그토록 자주 마법부로부터 정책에 대한 문의도 받으시고 두 번이나 장관 직을 권고받으셨던
분이…….”
“사실은 지난번에 세 번째로 권고를 받았다네.”
덤블도어가 말을 가로챘다.
“하지만 마법부는 나에게 결코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라네. 이것도 우리 사이의 공통점이지.”
볼드모트는 미소도 짓지 않은 채 고개를 숙여 포도주를 다시 홀짝거렸다. 이제 덤블도어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긴 침묵을 깨뜨
릴 생각조차 하지 않고, 기대에 찬 유쾌한 표정으로 볼드모트가 먼저 입을 열기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디펫 교수님께서 기대하셨던 것보다는 제가 좀 늦게 돌아오긴 했지만, 어쨌든 전 다시 돌아왔습니다. 옛날에 디펫 교수님
께서 제가 맡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말씀하셨던 그 자리에 다시 지원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제가 덤블도어 교수님을 찾아온
것은 이 성에 다시 돌아와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이곳을 떠난 뒤
로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했는지 교수님도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어떤 마법사들도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이 학교 학생들에게 보여 주고 말해 줄 수 있습니다.”
덤블도어는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잔 너머로 볼드모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다네. 자네가 우리 곁을 떠난 뒤로 얼마나 많은 걸 보고 많은 일을 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네.”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톰, 자네가 한 일들에 대한 소문들이 자네의 옛날 학교에까지 흘러 들어오고 있다네. 그중 절반은 참으로 믿기 힘든 안타까운 소문
들이었지.”
볼드모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위대함이란 언제나 질투심을 일으키고, 질투심은 악의를 낳고, 악의는 거짓말을 낳기 마련이죠. 덤블도어 교수님도 잘 아
실 텐데요.”
“자네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자네는 ‘위대함’ 이라고 부르나, 그래?”
덤블도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이죠.”
대답을 하는 볼드모트의 눈이 빨갛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새로운 시도를 해 왔습니다. 전 세상 그 누구보다도 먼 곳까지 가서 마법의 지평을 넓혀 왔습니다.”
“특별한 종류의 마법에 대해서만 그랬겠지.”
덤블도어가 조용히 그의 말을 정정했다.
“특별한, 다른 세계의 마법입니다. 교수님은…… 제 말을 용서해 주시길…… 불행히도 모르는 분이죠.”
처음으로 볼드모트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싸늘한 미소는 분노한 표정보다도 훨씬 더 사악하고 위협적이었다.
“케케묵은 논쟁이긴 합니다만…….”
볼드모트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제 방식의 마법보다 강력하다는 교수님의 유명한 말씀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잘못된 곳에서만 찾았나 보구먼.”
덤블도어가 대꾸했다.
“그렇다면 제가 새로운 탐사를 시작하기에 여기 호그와트보다 더 좋은 곳은 없겠군요?”
볼드모트가 얼른 말을 받았다.
“제가 돌아오는 걸 허락하시겠습니까? 제 지식을 교수님의 학생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해 주시겠습니까? 제 자신과 제 재능을
교수님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지시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덤블도어가 눈썹을 치켜떴다.
“그렇다면 자네의 지휘에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소위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고 지칭하고 다닌다는 그자들은 어떻게 되
는 건가?”
볼드모트는 덤블도어가 그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해리는 볼드모트의 눈이 또다시 이
글이글 불타고, 가늘게 밴 자국 같은 콧구멍에서 뜨거운 숨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제 친구들은 제가 없어도 잘해 나갈 것입니다.”
잠시 후에 볼드모트가 대답했다.
“자네가 그 사람들을 친구로 여긴다는 말을 들으니 기쁘군. 나는 그들이 거의 노예와 같은 위치에 있는 줄 알았는데.”
덤블도어가 말했다.
“잘못 아신 겁니다.”
볼드모트는 전혀 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늘 밤 호그스 해드에 가도 노트, 로시에르, 뮬시버, 돌로호브, 그런 자들이 모여서 자네를 기다리는 모습을 발견
하지 못하겠구먼? 참으로 헌신적인 친구들이야. 이 눈 내리는 밤에 자네와 함께 여기까지 여행을 하다니 말일세. 단지 자네가
무사히 교사 직을 얻을 수 있도록 행운을 빌어 주기 위해서 왔단 말이지…….”
자신과 함께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까지 덤블도어가 상세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볼드모트에게는 전혀 반가운 소식
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는 굴하지 않고 즉시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 언제나 정말 모르시는 게 없군요.”
“오, 아닐세. 단지 이 지역의 술집 주인들과 친하게 지낼 뿐이지.”
덤블도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 톰…….”
덤블도어는 빈 잔을 내려놓더니, 특유의 버릇대로 양손의 손가락 끝을 모으며 의자에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앉았다.
“우리 솔직히 말해 보도록 하세. 도대체 오늘 밤 부하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찾아와서, 자네가 원하지 않는다는 걸 뻔히 다
아는 자리를 달라고 하는 이유가 뭔가?”
볼드모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가 원하지 않는 자리라니요? 정반대입니다, 덤블도어 교수님. 저는 진심으로 그 자리를 원합니다.”
“오, 자네는 호그와트로 돌아오고 싶겠지. 하지만 열여덟 살 때나 지금이나 가르치는 걸 원하지는 않아. 자네가 찾고
있는게 뭔가, 톰? 왜 단 한 번이라도 솔직하게 요구하지 않는 거지?”
볼드모트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자에게 자리를 주기가 싫으시다면…….”
“물론 주지 않을 걸세.”
덤블도어가 딱 잘라 말했다.
“아마 자네도 내가 그걸 허락하리라고는 단 한 순간도 기대하지 않았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찾아와서 부탁을 한
걸 보면, 뭔가 목적이 있는 게 틀림없어.”
볼드모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노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서 톰 리들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지막 대답인가요?”
“그렇다네.”
덤블도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겠군요.”
“그래, 없다네.”
덤블도어의 얼굴은 짙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고작 옷장을 태워서 자네를 겁주고 자네의 잘못을 사과하도록 만들 수 있었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지. 하
지만 톰, 그럴 수 있다면 좋겠구나……. 그럴 수 있다면…….”
해리는 아무 소용 없는 줄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조심하라고 소리칠 뻔했다. 분명히 볼드모트의 손이 호주머니와 지팡이를
향해 움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볼드모트는 휙 돌아서서 문을 닫고 사라졌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손이 다시 자신의 팔을 붙잡는 것을 느꼈다. 곧 그들은 거의 같은 장소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창틀
에는 눈이 쌓여 있지 않았고, 덤블도어의 손은 또다시 검게 쪼그라들어 있었다.
“왜죠?”
해리가 덤블도어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다짜고짜 물었다.
“왜 돌아왔을까요? 그 이유를 알아내셨나요?”
“몇 가지 짐작 가는 바는 있단다. 하지만 짐작할 뿐이야.”
“무슨 짐작이죠?”
“해리, 네가 슬러그혼 교수의 기억을 알아내면 그때 말해 주마.”
덤블도어가 말했다.
“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갖게 되면, 아마도 모든 게 분명하게 밝혀지겠지…….”
하지만 해리는 여전히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덤블도어가 문 쪽으로 걸어가서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는데
도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또다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과목을 가르치려고 했나요? 볼드모트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는데…….”
“분명히 그자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고 싶어 했단다. 그 짧은 만남 이후로 벌어진 일들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내
가 볼드모트를 거절하고 난 이후로, 어둠의 마법 방어술 선생이 1년을 넘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