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엉뚱한 생일 소동
다음 날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덤블도어의 과제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물론 헤르
미온느가 아직도 경멸하는 표정으로 론을 한번 째려보고 나면 더 이상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
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 따로 붙잡고 이야기해야만 했다.
론은 해리가 슬러그혼에게서 그걸 알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슬러그혼 교수님은 널 총애하잖아.”
아침 식사 시간에 론은 달걀 프라이를 찍은 포크를 연신 흔들어 대며 말했다.
“네 부탁이라면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거야, 안 그래? 그의 어린 마법약 왕자에게 그럴
리가 없지. 오늘 오후 수업이 끝난 다음에 잠깐 남아서 여쭤봐.”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생각은 조금 비관적이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조차도 알아내지 못했을
정도라면, 슬러그혼 교수님은 절대로 진실을 밝히지 않기로 작정한 게 틀림없어.”
헤르미온느가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두 사람은 쉬는 시간을 틈타서 아무도 없는 눈 덮인 교정에 서 있었다.
“호크룩스…… 호크룩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걸…….”
“너도 못 들어 봤단 말이야?”
해리는 몹시 실망했다. 헤르미온느라면 호크룩스가 뭔지 그에게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굉장히 고난도인 어둠의 마법일 거야. 그렇지 않다면 볼드모트가 왜 그걸 알고
싶어 했겠어? 내 생각에 정보를 캐내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 해리, 어떻게 슬러그혼 교
수님께 접근할 것인지 아주 신중하게 생각해야겠어. 일단 전략부터 세워 봐…….”
“하지만 론은 나더러 오늘 오후에 마법약 수업이 끝나면 잠깐 남아 있다가…….”
“흥, 그래? 로~오옹 로~오옹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
헤르미온느가 당장 발끈하고 화를 냈다.
“언제 로~오옹 로~오옹의 판단이 틀린 적이 있었니?”
“헤르미온느, 이제 그만 좀 해.”
“싫어!”
헤르미온느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발목까지 쌓인 눈 속에 해리를 홀로 내버려 두고 쌩하니 가 버렸다.
요즘 들어 마법약 수업 시간은 괴롭기 짝이 없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한 책
상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헤르미온느가 냄비를 멀찌감치 끌고 가서 어니
옆에 바싹 붙어 앉더니, 해리와 론을 둘 다 모르는 척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너는 무슨 짓을 한 거니?”
론이 도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며 해리에게 속삭였다.
“자리에 앉아요, 자리에 앉아! 어서 빨리! 오늘 오후에는 공부할 게 많아요! 골파롯
의 세 번째 법칙이 뭔지 아는 사람? 아, 물론 헤르미온느 양이 대답해 봐요!”
헤르미온느는 속사포처럼 줄줄 읊어 댔다.
“골파롯의세번째법칙이란혼합성분의독약에대한해독제는반드시가각의성분에대한해독제의종합보다더많아야한다는것입니다.”
“정확하게 맞혔어요!”
슬러그혼이 활짝 웃었다.
“그리핀도르에 10점을 주겠어요! 자, 골파롯의 세 번째 법칙이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해리는 골파롯의 세 번째 법칙이 사실이라고 하는 슬러그혼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게 뭔지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헤르미온느
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슬러그혼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물론…… 우리가 스카핀의 탐색 주문에 의해서 마법약 성분들을 제대
로 파악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에요.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각각의 성분에 따라서
해독제들을 골라내는 그런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이 별도의 성분들을 거의 연금술
적인 과정에 의해서 변형시키는 촉매가 무엇인지 그걸 찾아내는 것이지요…….”
해리의 옆에 앉은 론은 반쯤 헤벌린 채, 멍하니 새로 산 《상급 마법약 만들기》 책에다
낙서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을 따라잡지 못해 헤매고 있어도 더 이
상 헤르미온느의 도움을 바랄 수 없다는 사실을 론은 자꾸만 까먹고 있었다.
“그러면……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서 내 탁자 위에 놓인 약병들을 하나씩 가져가도록
해요.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 이 독약에 대한 해독제를 만들어야만 해요. 그럼, 행운을 빌
어요. 그리고 보호용 장갑 끼는 걸 꼭 잊지 말도록!”
슬러그혼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헤르미온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슬러그혼의 교탁을 향해 반쯤 걸어갈 때까지도, 교
실에 있는 다른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리, 론 그리고 어
니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헤르미온느는 벌써 약병에 담긴 내용물을 냄비 안에 붓고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이번 과제에는 그 왕자가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정말 안타깝구나, 해리.”
헤르미온느가 허리를 펴며 명랑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관련된 법칙을 알아야만 할 거야. 요령이나 속임수 따위는 통하지 않아!”
은근히 약이 오른 해리는 슬러그혼의 교탁에서 집어 온 광택 나는 분홍 색깔의 독약을 냄
비에 쏟아 부은 다음, 불을 지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뭘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론을 슬쩍 쳐다보니, 그는 멍청한 표정으로 서서 해리가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정말 왕자가 아무 설명도 안 써 놓은 거야?”
론이 해리에게 슬쩍 물었다.
해리는 소중한 《상급 마법약 만들기》 책을 꺼내어 해독제 편을 펼쳐 보았다. 거기에는
골파롯의 세 번째 법칙이 헤르미온느가 암송한 것과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는 왕자의 필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왕자도 헤르미
온느처럼 이 법칙을 단번에 이해한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어.”
해리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헤르미온는 신나게 냄비 위로 지팡이를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리는 헤
르미온느가 하고 있는 주문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는 무언 주문을 완벽하
게 터득해서 더 이상 주문을 큰 소리로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니 맥밀란은 “
스페시얼리스 리벨리오!” 하고 냄비 위에 대고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그 말이 왠지 그럴듯하게
들렸으므로 해리와 론은 얼른 그를 따라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서 해리의 귓가에는 이 수업 최고의 마법약 제조자라는 그의
명성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첫 번째 교실 순찰에 나선 슬러그혼은 지금까
지 늘 그랬듯이 기쁨에 찬 탄성을 지를 준비를 하고 잔뜩 기대 어린 얼굴로 그의 냄비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가, 달걀 썩는 냄새가 코를 지르자 기침을 캑캑하며 허둥지둥 고개를 돌렸다. 헤르
미온느는 고소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마법약 수업 시간마다 항상 자기가 뒤쳐지는 것이 지극
히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녀는 이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어떤 방법으로 분리해 낸 독약 성분들을
열 개의 서로 다른 크리스털 약병에 제각각 따르고 있었다. 이 짜증스런 광경을 더 이상 보고 싶
지 않았던 해리는 혼혈 왕자의 책 위로 고개를 숙인 채 쓸데없이 책장을 이리저리 필요 이상으로 힘주어 넘겼다.
그러던 중 해리는 긴 해독제 목록 위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 휘갈겨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냥 위석을 목구멍 속에 쑤셔 넣어라
해리는 한동안 이 문장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오래전에 어디에선가 위석에 대한 이
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지 않았던가? 스네이프가 첫 번째 마법약 수업 시간에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위석이란 염소의 위에서 꺼낸 돌로, 가장 독한 독약으로부터도 생명을 구할 수 있지.”
그것은 골파롯 문제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게다가 스네이프가 계속 마법약 교사로 있었
다면 해리는 감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슨 수라도 써야 할 때
였다. 그는 황급히 재료 보관 찬장으로 가서 유니콘 뿔과 다른 약초 뭉치들을 옆으로 밀쳐 내
며 뒤진 끝에, 제일 뒤쪽에서 ‘위석’ 이라고 적혀 있는 작은 종이 상자를 찾아 끄집어냈다.
해리가 상자를 여는 순간, “여러분, 2분 남았어요!” 하고 외치는 슬러
그혼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자 속에는 돌멩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말린 신장처럼
보이는 쪼글쪼글한 갈색 덩어리가 대여섯 개 들어 있었다. 해리는 그중 한 개를
집어 들고 얼른 상자를 다시 찬장 속으로 넣은 다음, 자기 냄비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시간…… 종료!”
슬러그혼이 유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 다들 어떻게 했는지 좀 볼까? 블레이즈…… 도대체 뭘 만든 거지?”
슬러그혼은 다양한 해독제들을 살펴보면서 천천히 교실을 돌기 시작했다. 과제를
다 끝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헤르미온느조차도 슬러그혼이 자기 자리까지
오기 전에 몇 가지 성분들을 억지로 약병에 더 채워 넣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한편
완전히 자포자기한 론은 자기 냄비에서 뿜어 오르는 독한 연기를 마시지 않으려고 이리
저리 피하는 중이었다. 해리는 땀이 밴 손으로 위석을 꼭 쥔 채 차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그들의 책상 앞에 온 슬러그혼은 어니의 해독제 냄새를 몇 번 맡더니,
그만 인상을 쓰며 론 쪽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론의 냄비에 다가가자 들여다볼 것도 없이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해리, 자네 차례로군.”
슬러그혼이 말했다.
“그래, 자네 해독제는 어디 있나?”
해리는 불쑥 손을 내밀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위석을 보여 주었다.
슬러그혼은 10초쯤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리는 혹시 슬러그혼이 그에게
호통이라도 치지 않을까 잠깐 동안 걱정했다. 하지만 슬러그혼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자네 배짱 한번 좋구먼!”
슬러그혼이 위석을 집어 들더니 모든 학생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높이 치켜들었다.
“오, 자네 어머니와 정말 꼭 닮았어……. 그렇구먼……. 자넬 나무랄 수는 없지……. 위
석이야말로 여기에 있는 모든 독약에 대해서 해독제 작용을 하는 게 사실이니까!”
순간 코에 검뎅을 묻힌 채 진땀을 흘리고 있던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납빛이 되었다. 그녀
의 머리카락 뭉치를 비롯해서 52가지의 재료가 들어간, 반쯤 완성된 해독제가 슬러그혼의 등
뒤에서 천천히 끓고 있었지만, 슬러그혼은 오직 해리에게만 눈길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해리, 그 위석을 너 혼자서 생각해 낸 거니? 정말이야?”
헤르미온느가 이를 악문 채 물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마법약 제조자가 가져야 할 독창성이라고 할 수 있지!”
슬러그혼은 해리가 헤르미온느의 질문에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신이 나서 떠들었다.
“자기 어머니와 정말 똑같다니까. 릴리도 똑같이 마법약 제조에 관해 직관적인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지. 틀림없이 어머니에게서 그 재능을 물려받은 게야……. 그래,
해리, 네가 위석을 제출하겠다면 좋다. 물론 그걸 속임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 게다가 위석이 모든 독약에 대해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꽤 희귀한 것도 사실이
지만 어쨌든 좋아. 하지만 해독제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 두는 것도 아주 중요하단다…….”
그 교실에서 헤르미온느보다 더 분개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말포이뿐이었는데,
그는 심지어 고양이 배설물 같은 것을 앞질러서 온통 뒤집어쓰고 있었다. 해리는 그 꼴을
보자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해리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수업의 일등
자리에 오른 것에 대해서 분통을 터뜨리기도 전에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말았다.
“그만 소지품을 정리하도록 해요!”
슬러그혼이 소리쳤다.
“그리고 이 배짱 있는 행동의 대가로 그리핀도르에게 10점을 더 주겠어요!”
슬러그혼은 여전히 혼자서 싱글벙글 웃으며, 지하 교실 앞쪽의 교탁으로 뒤뚱뒤뚱 걸어갔다.
해리는 가방을 싸는 데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 꾸물거렸다. 론과 헤르미온느
는 그에게 행운을 빈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교실을 나가 버렸다. 둘 다 다소 뚱한 표정이었
다. 마침내 교실 안에는 해리와 슬러그혼, 단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어서 가거라, 해리. 다음 수업에 늦겠구나.”
슬러그혼이 용 가죽 서류 가방의 황금 걸쇠를 탁 닫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교수님…….”
이렇게 말을 꺼내며 해리는 어쩔 수 없이 볼드모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쭤 볼 게 있습니다.”
“그럼 얼른 물어보고 가거라, 어서…….”
“교수님, 혹시…… 호크룩스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순간 슬러그혼이 얼어붙은 듯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의 동그란 얼굴이 납작 가라앉는 것처
럼 보였다. 슬러그혼은 혀로 입술을 축이더니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혹시 호크룩스에 대해서 알고 계신지 여쭤 본 겁니다. 그러니까…….”
“덤블도어가 네게 그러라고 시켰구나.”
슬러그혼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상냥하기 짝이 없던
어조는 간데없고, 충격과 공포만이 가득했다. 슬러그혼은 떨리는 손으로 가슴에 달린 호주머니
를 더듬더니 손수건을 꺼내어 땀이 밴 이마를 닦아냈다.
“덤블도어가 너에게 그걸 보여 주었니? 그 기억 말이다. 그래? 그런 거야?”
“네.”
해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을 거라는 판단을 내리고는 바로 순순히 대답했다.
“그래, 그랬겠지.”
슬러그혼은 하얗게 질린 얼굴을 연신 손수건으로 두들기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해리, 내가 그 기억을 보았다면, 당연히……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난 아무 것도 몰라.”
슬러그혼이 힘주어 그 말을 되풀이했다.
“호크룩스에 대해서 말이다.”
슬러그혼은 용 가죽 서류 가방을 집어 들더니 손수건을 다시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고 교실 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교수님.”
해리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전 단지 그 기억 말고 뭔가 다른 것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어?”
슬러그혼이 말했다.
“그럼 네 생각이 틀린 거야, 알겠어? 틀린 거라고!”
슬러그혼은 소리를 꽥 지르며 마지막 말을 내뱉더니 해리가 입을 열 틈도 주지 않고, 지하 교실의 문을 쾅 닫고 가 버렸다.
해리가 이 참혹한 면담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을 때, 론도 헤르미온느도 전혀 동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헤르미온느는 아직도 해리가 정정당당하게 공부하지 않고서 일등을 차지
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다. 한편 론은 해리가 자기에게도 위석을 나눠 주지 않은 것 때문에 꽁해 있었다.
“우리 둘 다 그랬다면, 정말 우스꽝스러워 보였을 거야!”
해리가 화를 냈다.
“이거 봐, 나는 어떻게든 슬러그혼의 환심을 사서 볼드모트에 대해 물어봐야만 했었단 말이야, 안 그래?”
론이 그 이름을 듣고 얼굴을 찡그리자, 해리가 짜증스럽게 덧붙였다.
“오, 제발 이젠 좀 태연할 수 없니!”
자신의 실패와, 론과 헤르미온느의 태도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해리는 그 후로 며칠 동안 장
차 슬러그혼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다. 그리고 당분간 해리가 호크룩스에 대해
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슬러그혼이 믿도록 처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시 공격을 재개하기 전
에 먼저 슬러그혼을 안심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았던 것이다.
해리가 슬러그혼에게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자, 이 마법약 교수는 다시 평소처럼 해
리를 다정하게 대해 주었고, 그 문제는 잠시 잊어버린 것이 분명한 듯 보였다. 해리는 이번에는
퀴디치 연습 시간을 변경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는, 슬러그
혼의 작은 만찬 모임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좀처럼 초대장은 오지 않았다
. 헤르미온느와 지니에게까지 확인해 보았지만 두 사람 모두 초대를 받지 않았으며, 그들이 아
는 한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라는 대답뿐이었다. 해리는 혹시 슬러그혼이 겉으로는 모든 걸 잊
어버린 척할 뿐, 사실은 더 이상 해리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것은 아
닐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편 헤르미온느는 생전 처음으로 호그와트 도서관에서 정보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녀는 어
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위석을 가지고 속임수를 쓴 해리에게 화가 났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호크룩스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설명도 찾을 수가 없어!”
헤르미온느가 그에게 말했다.
“단 한 마디도 말이야! 금지 구역까지 살펴보고 심지어 잔혹하기 짝이 없는 마법약 제조법
이 적혀 있는 끔찍한 책들까지 뒤져 보았는데도, 전혀 없었다고! 내가 찾아낸 건 이게 전부야
. 《사악한 마법》의 서문에 실려 있는 것인데, 한번 들어봐. ‘창조된 마법들 중에서 가장
사악하기로 첫손가락을 꼽는 호크룩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설명하지도 않을 것이다……’
도대체 이럴 거면 이런 말은 왜 써 놓느냐고!”
헤르미온느가 씩씩거리며 그 오래된 책을 쾅 덮어 버리자, 책이 희미하게 울부짖었다.
“시끄러워!”
헤르미온느는 톡 쏘아붙이더니 그 책을 다시 가방 속에 쑤셔 넣었다.
2월이 되자, 학교 주변에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춥고 음산하고 축축한 날씨가 찾아왔다.
자줏빛이 감도는 회색 구름이 성 위에 낮게 드리웠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싸늘한 비로 인해서
잔디밭은 온통 미끈거리는 진흙탕으로 변했다. 결국 정규 수업 시간을 피해서 토요일 아침
으로 예정되었던 6학년 학생들의 첫 번째 순간이동 강의는 운동장 대신에 대연회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연회장에 도착했을 때(론은 라벤더 브라운과 함께 내려왔다), 그곳
에 있던 테이블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빗줄기가 쉴 새 없이 높은 유리창을 때리고, 머리
위에서는 마법이 걸려 있는 천장이 음침하게 소용돌이 치고 있는 가운데, 학생들은 각 기숙
사의 사감 선생님인 맥고나걸과 스네이프, 플리트윅, 그리고 스프라우트 교수 앞에 모였다
. 그리고 왜소한 마법사 한 명이 더 있었는데, 해리는 아마도 마법부에서 나온 순간이동 강사
일 거라고 짐작했다. 투명한 속눈썹과 성긴 머리카락, 그리고 왠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
버릴 것처럼 허약한 인상의 그 사람은 이상하게도 전혀 생기가 없어 보였다. 해리는 계속해
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길 반복하면 사람의 몸집이 저렇게 작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가냘픈
체격이라야만 마음대로 순간이동이 잘되는 것일까 궁금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학생들이 모두 도착하고 각 기숙사의 사감 선생님들이 조용히 하라고 외치자, 마법부에서 나온 마법사가 인사를 했다.
“내 이름은 윌키 트와이크로스입니다. 앞으로 12주동안 여러분의 순간이동 지도 강사로
근무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부디 여러분이 순간이동 시험에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포이, 입 다물고 잘 들어라!”
맥고나걸 교수가 큰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리자, 말포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화가
난 표정으로 크레이브 곁에서 떨어졌다. 둘이서 뭔가 귓속말로 떠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해리가 재빨리 스네이프를 힐끔 쳐다보니 그도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해리는 틀림없
이 말포이의 무례한 태도 때문이라기보다는 맥고나걸이 자기 기숙사의 학생을 지적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때쯤이면 많은 학생들이 시험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
트와이크로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겠지만, 원래 호그와트에서는 순간이동을 하는 것이 불
가능합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여러분이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한 시간
동안 오직 대연회장에 한해서만 마법의 장벽을 해제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
지만 대연회장 밖에서는 순간이동을 할 수 없으니 괜히 어리석은 시도는 하지 마십시오
이제 여러분 모두, 각자 자기 앞에 1.5미터 정도의 공간을 두고 서 보도록 하세요.”
학생들이 옆으로 흩어지면서 서로 몸을 부딪치거나 저리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들은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줄을 정리하고 자리다툼을 막기도 했다.
“해리, 너 어디 가니?”
헤르미온느가 물었지만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학생들 사이를 재빨리 헤집고 나갔다.
서로 앞에 서겠다고 다투는 몇몇 래번클로 학생들을 제자리에 세우기 위해서 꽥꽥거리고 있는 플
리트윅 교수 앞을 지나고 후플푸프 학생들에게 어서 정렬하라고 다그치는 스프라우트 교수 앞을
지나서, 어니 맥밀란 옆을 살짝 비켜난 끝에 해리는 간신히 말포이의 바로 뒤인 맨 뒷줄에 자리
를 잡았다. 해리와 1.5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말포이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틈을 타서 몹
시 사나운 표정으로 크레이브와 말다툼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나도 몰라, 알겠어?”
말포이는 해리가 바로 등 뒤에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크레이브에게 쏘아붙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뿐이야.”
크레이브가 뭔가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말포이는 벌써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봐. 내가 뭘 하든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크레이브, 너랑 고일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감시나 잘하면 되는 거야!”
“나 같으면 친구들에게 감시를 부탁할 때, 네가 뭘 하려는지 다 말해 주었을 거야.”
해리는 일부러 말포이의 귀에 들리게끔 큰 소리로 말했다.
말포이가 손으로 지팡이를 잡으면서 휙 돌아서는 바로 그 순간, 각 기숙사의 사감 네 명이
동시에 “조용히!”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다시 연회장 안은 조용해졌고, 말포이도 천천히 앞으로 돌아섰다.
“고맙습니다.”
트와이크로스가 말했다.
“자, 이제 그러면…….”
그가 지팡이를 흔들자마자, 나무로 만든 구식 고리가 모든 학생들 앞에 하나씩 나타났다.
“순간이동을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은 3D입니다!”
트와이크로스가 말했다.
“목적지(destination), 의지(determination), 신중함(deliberation)! 1단계. 모든
생각을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집중합니다.”
트와이크로스가 설명을 계속했다.
“지금의 목적지는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고리 안입니다. 이제 그 목적지에 정신을 집중해 보세요.”
모두들 다른 학생들이 고리 안을 쳐다보고 있는지 주위를 몰래 흘끔거린 다음 재빨리 트와이
크로스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해리는 둥근 고리 안의 먼지 낀 마룻바닥을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다
른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도대체 말포이가 무엇 때문에 감시를
필요로 할까 하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바람에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2단계.”
트와이크로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머릿속에 그린 그 장소로 가는 데 모든 의지를 모으도록 하세요! 반드시 그곳으로 들어가겠
다는 간절한 욕망이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퍼져 나가게 하세요!”
해리는 은밀히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의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어니 맥밀란이 온 힘
을 다해 고리에 정신을 집중하느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흡사 퀘이플 크기만 한 달
걀이라도 낳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킥 하고 웃음을 터뜨리다가 얼른 자신의 고리로 시선을 돌렸다.
“3단계.”
트와이크로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내가 지시를 내리면…… 그 자리에서 돌면서 허공속으로 빠져 드는 것을 느끼며 신중하
게 움직이도록 하세요! 자, 이제 나의 지시에 따라서…… 하나!”
해리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빨리 순간이동을 하라는 지시를 받자, 대부분의 학생
들이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둘!”
해리는 다시 고리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중요한 세 가지가 뭐였는지조차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셋!”
해리는 그 자리에서 빙그르 돌다가 중심을 잃고 그만 쓰러질 뻔했다. 해리뿐만이 아니었다.
대연회장 전체가 갑자기 비틀거리는 학생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네빌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
고, 발레를 하
듯이 발끝으로 빙빙 돌다가 고리 안으로 훌쩍 뛰어든 어니 맥밀란은 순간적으로
혼자 짜릿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자기를 보고 박장대소하고 있는 딘 토마스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트와이크로스는 애초부터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고리를 다시 똑바로 놓고 각자 원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세요…….”
두 번째 시도 역시 첫 번째와 다를 것 이 없었다. 세 번째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네
번째 시도를 할 때까지는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고통에 찬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고, 모든 학생들은 겁에 질려 일제
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후플푸프의 수잔 본즈가 고리 안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는데, 그녀의 왼
쪽 다리는 여전히 1.5미터쯤 떨어진 처음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각 기숙사의 사감 선생님들이 황급히 그녀에게 모여들었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보라색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흐느껴 울고 있는 수잔의 모습이 나타났다. 다리를 되찾긴 했지만 그녀
의 표정은 몹시 겁에 질려 있었다.
“완전히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윌키 트와이크로스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덤덤하게 설명했다.
“신체의 일부가 분리되거나 이탈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계속
해서 목적지에 정신을 집중하고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움직여야만 합니다.”
사뿐사뿐 앞으로 걸어 나온 트와이크로스는 두 팔을 쫙 뻗은 채 우아하게 빙그르르 돌더
니 망토 자락을 펄럭이며 사라졌다가 대연회장 제일 뒤쪽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3D를 꼭 기억하고서 다시 한 번 해 보세요. 하나, 둘, 셋!”
트와이크로스가 말했다.
한 시간이 다 지난 뒤에도 수잔의 몸이 분리되었던 흥미진진한 사건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트와이크로스는 전혀 실망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저
목 주위의 망토 옷깃을 단단히 여미면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모두들 다음 토요일에 봅시다. 목적지, 의지, 신중함, 3D를 잊지 마세요.”
그 말과 더불어 그는 지팡이를 흔들어 고리를 사라지게 한 다음, 맥고나걸 교수와 함께 연
회장 밖으로 나갔다. 그 즉시 학생들도 현관 복도를 향해 걸어가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넌 어땠니?”
론이 얼른 해리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나는 마지막 시도를 할 때 뭔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 발바닥이 욱신거리는 것 같더라니까.”
“네 운동화가 너무 작은가 보다, 로~오옹 로~오옹.”
그들 뒤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빈정거리며 웃고 있는 헤르미온느가 휙 하고 그 옆을 지나갔다.
“난 아무 느낌도 없었어.”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무시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야? 상관하고 싶지 않다니? 그럼 넌 순간이동을 배우고 싶지 않단 말이야?”
론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괜히 안달복달하지 않겠다는 거지. 난 날아가는 게 더 좋거든.”
해리는 어깨 너머로 계속 말포이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면서 현관 복도 쪽을 향해서 빠르게 걸어갔다.
“이봐, 좀 서두르자. 하고 싶은 일이 좀 있어…….”
론은 영문을 모르는 채, 어리둥절해하면서 해리를 따라 그리핀도르 탑까지 단숨에 뛰어갔다
. 도중에 잠깐 피브스 때문에 지체되기도 했는데, 피브스는 4층 문을 꼭 닫아 놓고 저마다 자기 바지
에 불을 붙이기 전에는 절대 못 지나간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해리와 론은 곧장 돌아서서 그들
의 비밀 지름길 중 하나를 이용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초상화 구멍 속을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좀 말해 볼래?”
론이 약간 숨을 헐떡거리며 물었다.
“저기 올라간 후에.”
해리는 휴게실을 지나서 남학생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 문으로 향했다.
그가 기대했던 대로, 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해리는 가방을 열고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론
은 조바심을 내며 지켜보고 있었다.
“해리…….”
“말포이가 크레이브와 고일한테 망을 봐 달라고 했어. 방금 크레이브와 말다툼하는 걸 들었거든.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아하!”
해리는 마침내 원하는 것을 찾은 듯, 네모나게 접은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백지처럼
보이는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펴더니 지팡이 끝으로 탁 치며 말했다.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아니면 말포이가 멍청이든지…….”
그러자 곧 양피지 위에 호그와트 비밀 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성의 각 층에 있는
모든 것들의 상세한 지도가 나타났고, 그 위를 움직이는 작고 까만 점들에는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표가 각각 붙어
있었다.
“말포이 찾는 걸 좀 도와줘”
해리가 재촉했다.
그는 침대 위에 지도를 올려놓고 론과 함께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말포이를 찾았다.
“찾았다!”
잠시 후에 론이 말했다.
“슬리데린 휴게실에 있어. 이거 봐…… 파킨슨과 자비니, 크레이브, 고일과 함께 있어…….”
해리는 잠깐 동안 실망해서 지도를 내려보고 있다가, 곧바로 기운을 차렸다.
“그래, 지금부터는 계속 이 녀석을 지켜봐야겠어.”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 녀석이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망을 보게 하고 어딘가로 숨어든다 싶으면, 즉시 투명 망토
를 입고 달려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내는 거…….”
해리는 침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네빌을 발견하고는 말을 뚝 멈췄다. 탄내를 풍기며 들어온
네빌은 허둥지둥 새 바지를 찾아 트렁크를 뒤졌다.
말포이를 붙잡겠다는 굳은 결심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다음 몇 주 동안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했다. 가끔씩 수업 시간 사이사이에 괜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도를 살
펴보았지만, 단 한 번도 말포이가 수상한 곳이 있는걸 발견하지 못했다. 크레이브와 고일이 평소보
다 훨씬 자주 성 안을 돌아다니고 때로는 아무도 없는 복도에 남아 있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
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말포이는 그들 근처의 어느 곳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지도상에
서 모습을 감추곤 했다. 그거야말로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였다. 해리는 말포이가 학교 운동장 밖으
로 나갔을 가능성까지 고려해 보았지만, 철통 같은 보안 장치가 성 안에 가동되고 있는 이 시기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지도 위에 나타난 수백 개의 점들 중에서 말포이
를 못 찾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대개의 경우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던 말포이와 크레이브
, 고일이 제각기 따로 다니는 것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겪게 되는 자연스런 현상인 것 같았다. 유
감스럽지만 론과 헤르미온느가 몸소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2월이 지나고 3월이 가까워 오고 있었지만, 비에다 바람까지 불기 시작한 것만 제외하면 날씨
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결국 다음번 호그스미드 방문이 취소 되었다는 공고문이 모든 기숙사
휴게실 게시판에 나붙자, 모두들 분개했다. 특히 론은 억울해서 펄펄 뛰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란 말이야!”
론이 투덜거렸다.
“내가 그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하지만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아니잖아. 케이티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케이티는 아직도 성 뭉고 병원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예언자 일보》는 호그와
트 학생들의 친척들 대여섯 명을 포함한 실종자 소식을 계속해서 싣고 있었다.
“이게 내가 기대할 거라곤 그 한심한 순간이동 강의뿐이구나!”
론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대단한 생일 선물이로군…….”
세 번째 강의쯤 되자 몇몇 학생들의 경우 그나마 신체 분리 정도는 해낼 수 있게 되었지만, 순
간이동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학생들은 윌키
트와이크로스와 그가 주장하는 3D에 대해서 극도의 반발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에 대해 갖가지 별명
을 만들어 냈는데, 그중에서 그나마 제일 점잖은 편에 속하는 것이 ‘돌대가리’ 나 ‘개 입냄새’ 니 하는 정도였다.
“생일 축하해, 론.”
3월의 첫날, 시무스와 딘이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가면서 내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해리는 론을 보고 인사를 했다.
“여기 선물이야.”
해리는 론의 침대 위로 선물 꾸러미를 던졌다. 침대 위에는 밤새 집요정들이 배달했을 거라고,
짐작되는 선물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고마워.”
론은 졸린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포장을 뜯었다. 침대에서 나온 해리는 트렁크를 열고 호그와
트 비밀 지도를 찾기 시작했다. 항상 쓰고 나서는 거기에다 감추어 놓았던 것이다. 트렁크 안에 있
는 물건들을 반쯤 꺼냈을 때, 해리는 행운의 마법약인 펠릭스 펠리시스를 감춰 놓은 돌돌 말린 양말들 밑에서 지도를 찾아냈다.
“찾았다.”
지도를 가지도 다시 침대로 돌아온 해리는 때마침 그의 침대 발치를 지나가고 있던 네빌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살짝 종이를 치면서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내 맘에 꼭 든다, 해리!”
론이 해리가 선물한 퀴디치 파수꾼용 새 장갑을 흔들며 좋아서 소리쳤다.
“별거 아니야.”
슬리데린 숙소 근처에서 말포이를 찾고 있던 해리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런…… 말포이가 자기 침실에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론은 계속 탄성을 지르며 선물 포장을 푸는 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론은 가장자리에 눈금 대신 이상한 무늬가 새겨져 있고 바늘 대신 작은 별들이 째깍째
깍 움직이는 육중한 금시계를 번쩍 치켜들며 소리쳤다.
“올해엔 선물이 꽤 짭짤한걸! 엄마랑 아빠가 나에게 뭘 보내 줬는지 봤니? 세상에, 내년이면 나도 성인이 되는 거야…….”
“멋있구나.”
해리는 시계를 한 번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한마디 던지고는 지도에 좀 더 머리를 처박고 들여
다보았다. 도대체 말포이는 어디 간 거지? 대연회장의 슬리데린 테이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자기 연구실에 있는 스네이프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침실이나 병동에 있는 것도 아닌데…….
“하나 먹을래.”
론이 우물우물거리며 냄비 모양 초콜릿 상자를 내밀었다.
“고맙지만 됐어.”
해리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말포이 녀석이 또 사라졌어!”
“그럴 리가 없잖아.”
론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침대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두 번째 초콜릿을 입 속에 쑤셔 넣었다.
“이봐, 서두르지 않으면 빈속으로 순간이동 강의를 들어야 할 거야…….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게 순간이동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론은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냄비 모양 초콜릿 상자를 잠깐 바라보더니,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는 또다시 초콜릿을 집어 먹었다.
해리는 아직 볼일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마지못해 “마법의 장난 끝” 하고 중얼거리면서 지
도를 톡 건드렸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옷을 갈아입었다. 말포이가 주기적으로 사라지
는 데에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해리는 그것이 뭔지 도대체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
걸 알아내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의 뒤를 미행하는 것이지만, 제아무리 투명 망토를 이용한다고
해도 실현 불가능한 생각이었다. 수업에다가 퀴디치 연습, 숙제와 순간이동 강의까지 있었기
때문에, 하루종일 말포이 뒤만 쫓아다녔다간 당장 자리를 비웠다는 게 들통 날 것이 분명했다.
“준비됐지?”
론에게 이렇게 말하고 침실 문을 향해 앞서 걸어가던 해리는 문득 론이 침대 기둥에 몸을
기댄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상하게 초점 없는 멍한 얼굴로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내다보
고 있었다.
“론, 아침 먹어야지?”
“나 배가 안 고파.”
해리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먹으로 가자고…….”
“그래, 그랬지. 어쨌든 같이 내려가기는 할게.”
론이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아침은 먹지 않을 거야.”
해리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찬찬히 그를 뜯어보았다.
“너, 냄비 모양 초콜릿 한 상자를 절반이나 먹어 치웠지, 안 그래?”
“그것 때문이 아니야.”
론이 한숨을 쉬었다.
“넌…… 넌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거야.”
“알았어.”
해리는 조금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열린 문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해리!”
갑자기 론이 그를 불렀다.
“왜 그래?”
“해리, 도저히 못 참겠어!”
“뭘 못 참겠다는 거야?”
해리는 슬슬 진짜로 걱정스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론이 안색이 창백하고 금방이라도 아
파 몸져누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
론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렸다. 뜻밖의 대답인 데다가 이런 이야기는 달갑지도 않았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지만 론까지 라벤더를 “라브, 라브” 하고 부르기 시작한다면, 그
꼴만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 때문에 아침 식사까지 안 한단 말이니?”
해리는 최대한 상식적으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애를 쓰며 말했다.
“그녀는 나란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거야.”
론이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네가 있다는 걸 걔가 왜 몰라?”
해리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줄곧 너랑 껴안고 쓰다듬고 해 왔잖아, 안 그래?”
그러자 론이 두 눈을 껌벅거리며 물었다.
“너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니?”
“너야말로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야?”
해리는 점점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로밀다 베인 말이야.”
론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한 줄기 투명한 햇살이 비춘 듯 그 말을 하는 론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마침내 해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 농담일 거야.”
“아무래도…… 해리…… 나 그여자를 사랑하나 봐.”
론이 목이 메어 말했다.
“오, 알았어.”
해리는 론에게 다가가서 그의 흐릿한 눈동자와 핼쑥한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난 그 여자를 사랑해.”
론이 숨을 헐떡이며 다시 말했다.
“너도 그 여자의 머리카락을 봤지? 비단같이 윤기가 흐르는 까만 머리카락……. 눈은 또
어떻고? 그 커다란 검은 눈동자…… 그리고 그녀의…….”
“웃기는 소리 좀 작작 해.”
해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면박을 주었다.
“장난은 이제 끝났어, 알았어? 이제 그만 하라고!”
해리는 휙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문을 향해 두 걸음쯤 걸어갔을 때, 느닷없
이 오른쪽 귓가로 주먹이 날아왔다. 비틀거리며 고개를 돌려 보니, 론이 주먹을 막 거두고 있
었다.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그는 또다시 한 방 날릴 기세였다.
해리는 본능적으로 호주머니에서 지팡이를 꺼내 반격을 가했다. 자기도 모르게 주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레비코푸스!”
또다시 발목이 낚아채여 허공으로 솟은 론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옷자락이 다 뒤집어져
흘러내린 채, 꼼짝없이 허공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렸다.
“도대체 무슨 짓이야?”
해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해리, 넌 그녀를 모독했어! 장난이라니!”
론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지 그의 얼굴은 천천히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너 미쳤니? 도대체 그게 무슨……?”
그때 해리의 시선이 론의 침대 위에 놓인 초콜릿 상자에 머물렀고, 순간 해리는 전속력
으로 달리는 트롤과 부딪힌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뭔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 냄비 모양 초콜릿은 어디서 났지?”
“그건 생일선물로 받은 거잖아!”
론이 소리를 질렀다. 론은 허공에서 천천히 돌면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도 하나 먹어 보라고 줬잖아, 안 그래?”
“그냥 마루 위에 놓여 있는 걸 집은 거지? 맞지?”
“내 침대에서 떨어진 거야. 이제 됐냐? 어서 날 풀어 줘!”
“이 멍청아, 그건 네 침대에서 떨어진 게 아니야! 아직도 모르겠어? 그건 내
거였다고. 내가 지도를 찾느라고 내 트렁크에서 그걸 꺼내서 던져 놓았던 거야. 그
냄비 모양 초콜릿은 로밀다가 크리스마스 전에 나에게 준 거였어. 거기에 사랑의 묘약이 들어 있었던 거라고!”
하지만 론은 해리가 한 말 중 단 한 단어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로밀다?”
론이 따라 말했다.
“로밀다라고 그랬니? 해리, 혹시 너, 그 여자를 아니? 그럼 나에게 좀 소개해 줄래?”
해리는 희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론을 쳐다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마음 한쪽에서는 -특히 아직도 얼얼한 오른쪽
귀 근처에서는- 론을 그만 내려 주고 약효가 떨어질 때까지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
니는지 구경을 해 보자는 생각이 강력하게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친구
였다. 잠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를 공격한 론을 저대로 로밀다 베인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다른 한쪽 뺨까지 얻어맞아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소개해 줄게.”
해리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제 그만 내려 줄게, 알았지?”
해리는 론을 마루 위로 쿵 하고 떨어뜨렸다(해리는 아직도 귓가가 욱신거렸기 때문
에 론도 이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론은 씩 웃으며 벌떡 일어났다.
“로밀다는 슬러그혼의 사무실에 있을 거야.”
해리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먼저 문을 향해 앞장섰다.
“로밀다가 왜 거기 있어?”
론이 허둥지둥 해리의 뒤를 따라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로밀다는 슬러그혼에게서 마법약 특별 수업을 받고 있거든.”
해리는 닥치는 대로 거짓말을 꾸며 댔다.
“그럼 나도 그녀와 함께 그 수업을 듣게 해 달라고 부탁해도 될까?”
론이 간절히 물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해리가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런데 라벤더가 초상화 구멍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해리로서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로~오옹 로~오옹!”
라벤더가 입을 삐죽거렸다.
“네게 줄 생일 선물이 있는데…….”
“날 좀 내버려 둬!”
론이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해리가 로밀다 베인을 소개해 준다고 했단 말이야!”
론은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초상화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 버렸다
. 해리는 라벤더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고 했지만, 도리어 놀리는 것처럼 보였
던 게 분명했다. 그들이 나가고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가 탁 하고 닫히는 순간 라벤더의
표정은 그보다 더 험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리는 혹시 슬러그혼이 아침 식사를 하러 갔으면 어떻게 하나 약간 걱정했지만, 다
행히도 사무실 문을 똑똑 하고 두드리자마자, 초록색 벨벳 가운과 거기에 어울리는 모자
를 쓴 슬러그혼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타났다.
“해리.”
슬러그혼이 웅얼거렸다.
“너무 일찍 찾아온 것 같구나……. 난 대개 토요일 아침에는 늦잠을 자는데…….”
“교수님, 방해를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해리는 가능한 한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한편 론은 까치발을 하고 서서 슬러그혼의 방 안을 들여다보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제 친구인 론이 실수로 사랑의 묘약을 먹었습니다. 해독제를 좀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원래 폼프리 부인에게 데려가야 하겠지만, 규칙상 위즐리 형제의 신기한 장난
감 가게의 물건은 금지된 거라서요……. 난처한 질문도 받게 될 테고…….”
“해리, 자네처럼 뛰어난 마법약 제조자가 친구에게 그 정도 치료약도 못 만들어 준단 말인가?”
슬러그혼이 물었다.
“저…….”
해리는 론이 이제 그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방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저는 사랑의 묘약에 대한 해독제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요. 제가 해독제를 다 만들 때쯤이면,
론이 무슨 심각한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때맞춰 론이 신음 소리를 내며 애원했다.
“그녀의 모습이 안 보이는 걸, 해리. 그가 그녀를 숨겨 놓은 거 아니야?”
“좀 날짜가 된 약이었나 보군?”
슬러그혼은 전문가다운 호기심을 가지고 론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더 오래 보관한 것일수록 약효가 강해질 수 있지.”
“그렇군요.”
해리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이제는 슬러그혼을 넘어뜨리고 들어가려 하는 론과 몸싸움을 벌여야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오늘이 이 친구의 생일이랍니다, 교수님.”
해리가 간청했다,
“좋아, 어서 들어오게. 어서 들어와.”
슬러그혼이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여기 내 가방에 필요한 재료들이 있지. 별로 어려운 해독제는 아니니까…….”
후덥지근하고 비좁은 슬러그혼의 방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가다가
숱 장식이 달린 발판에 걸려 넘어질 뻔한 론은 해리의 목을 붙잡고 간신히 균형을 잡으면서,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녀가 이 꼴을 보지 않았겠지? 그렇지?”
“그녀는 아직 안 왔어.”
해리는 론을 다독거리면서 슬러그혼이 약 보관함을 열고 작은 크리스털 병에 몇 가지 재료를 조금씩 섞는 걸 지켜보았다.
“다행이다.”
론이 열에 들떠 말했다.
“나 어때 보여?”
“아주 잘생겼다.”
슬러그혼이 안심을 시키듯 부드럽게 말하며 론에게 투명한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건네주었다.
“이걸 마시게. 흥분을 가라앉히는 음료수라네. 그녀가 왔을 때 침착한 모습을 보여 줘야지, 안 그런가?”
“좋은 생각이에요.”
론이 신이 나서 대답하며 해독제를 단숨에 꿀꺽꿀꺽 들이켰다.
해리와 슬러그혼은 가만히 그를 지켜보았다. 잠깐 동안 론은 그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그의 미소가 희미해지다가 사라지더니 공포에 가득 찬 표정이 떠올랐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온 거죠?”
해리가 씩 웃으며 말하자, 슬러그혼도 킬킬거리며 웃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교수님.”
“그런 말 말게나. 무슨 그런 말을…….”
슬러그혼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론이 넋 나간 얼굴로 옆에 있는 안락의자 위에 풀썩 쓰러졌다.
“기운을 돋우는 강장제, 지금 저 친구에겐 그게 필요해.”
슬러그혼은 온갖 마실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테이블로 부산하게 걸어갔다.
“버터 맥주도 있고, 포도주도 있고, 그리고 떡갈나무 통에 숙성한 꿀
술도 마지막 한 병이 남아 있다네……. 흠…… 크리스마스 때 덤블도어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었지……. 아, 그래…….”
슬러그혼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어차피 주지도 않았으니 덤블도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그럼
지금 이 병을 따서 우리 함께 위즐리 군의 생일 축하나 해 볼까? 실연의 고통을 잊
어버리는 데에는 좋은 술만 한 게 없는 법이지…….”
슬러그혼은 만족스러운 듯이 또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해리도 함께 웃었다. 슬러
그혼으로부터 진짜 기억을 알아내려 했던 첫 번째 시도가 참흑한 실패로 끝난 이후,
슬러그혼과 이렇게 오붓하게 있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대로 슬러그혼과
유쾌한 분위기를 끌고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떡갈나무 통에 숙성한 꿀술을 진탕 마시고 나면……
“자, 받게나.”
슬러그혼은 해리와 론에게 각각 꿀술 한 잔씩을 건넨 다음, 자기 잔을 높이 들었다.
“그럼, 생일 축하하네, 랄프!”
“론이에요.”
해리가 속삭였다.
하지만 론은 건배하자는 말도 못 들은 사람처럼 먼저 꿀술을 입 속에 털어 넣더니 꿀꺽 마셔 버렸다.
순식간에 해리는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슬러그혼은 그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네에게 더 많은…….”
“론!”
론이 잔을 툭 떨어뜨리더니 의자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다 말고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면서 입에서 부글부글 거품을 뿜었다
. 론의 눈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졌다.
“교수님!”
해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떻게 좀 해보세요!”
하지만 슬러그혼은 충격으로 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론은 몸부림을 치며 숨을 쉬지
못했고, 그의 피부는 새파랗게 변해 갔다.
“도대체…… 이게…….”
슬러그혼이 말을 더듬었다.
낮은 탁자 위를 휙 뛰어넘은 해리는 열려 있는 슬러그혼의 약 보관함으로 쏜살같이
뛰어가서 항아리며 주머니 따위를 닥치는 대로 끄집어냈다. 그동안에도 숨이 넘어갈 듯
이 헐떡거리는 론의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마침내 슬러그혼이 마법약 시간에
해리에게서 받은 말린 신장처럼 보이는 위석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다급하게 론의 곁으로 돌아온 해리는 억지로 그의 입을 벌리고 위석을 그의 목
구멍 안에 쑤셔 넣었다. 론은 부르르 몸을 떨며 크게 한 번 숨을 들이마시더니, 온 몸이 축 늘어지면서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