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장 (144/194)

제17장

슬러그혼의 기억

   새 해가 되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오후, 해리와 론, 지니는 호그와트로 돌아가기 위해서 부엌 벽난로 옆에 줄지어 서 있었다.

 마법부에서 학생들을 안전하고 빠르게 학교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플루 가루 네트워크 특별 접속 통로를 개설 했던 것이다. 

위즐리 씨와 프레드, 조지, 빌, 플뢰르는 모두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혼자 배웅을 하던 위즐리 부인은 헤어지는 순간이 되자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사실 요즘 들어 위즐리 부인은 감정이 예민한 상태였다. 크리스마스 날 퍼시가 안경에 으깬 

파스닙을 정통으로 맞고(프레드와 조지, 지니는 서로 가기가 한 짓이라고 주장했다) 쌩하니 집을 뛰쳐나간 이후부터

0 툭하면 눈물을 보이기 일쑤였다. 

  “울지 마세요, 엄마.”

   지니가 자기 어깨에 기대어 흐느끼는 엄마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별일 없을 거예요…….”

   “그래요. 저희들 걱정은 하지 마세요.”

   론은 엄마가 자신의 뺨에 눈물 젖은 키스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퍼시 걱정도 좀 그만 하세요. 그런 한심한 녀석이 뭐 대수라고 그러세요?”

   위즐리 부인은 해리를 품에 안으며 더욱더 슬프게 흐느꼈다. 

   “반드시 몸 조심하겠다고 약속해 주렴……. 시끄러운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전 항상 조심하고 있어요, 위즐리 부인.”

   “해리가 대답했다,

   “전 조용하게 사는 게 좋아요, 잘 아시잖아요.”

   위즐리 부인이 울다말고 큭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럼 너희들 모두 착하게 굴어야 한다.”

   해리는 에메랄드 불꽃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호그와트!” 하고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위즐리네 부엌과 위

즐리 부인의 눈물 젖은 얼굴이 언뜻 보이더니, 곧 이글거리는 불길이 그를 집어삼켰다. 해리는 빠른 속도로 빙

글빙글 회전하면서 다른 마법사들의 집 안 풍경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지만, 그것들은 제대로 보기전에 시야에

서 휙휙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 회전 속도가 느려지더니 그는 맥고나걸 교수의 사무실 벽난로 안에서 멈춰 섰다. 

맥고나걸 교수는 벽난로 안에서 기어 나오는 해리를 흘끗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여전히 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안녕, 포터. 양탄자에 재가 너무 많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예, 교수님.”

   해리가 안경을 똑바로 고쳐 쓰고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는데, 론이 빙빙 돌며 나타났다. 그

리고 마침내 지니까지 도착하자, 세 사람은 맥고나걸의 사무실에서 몰려나와 그리핀도르 탑으로 

향했다. 해리가 복도를 지나가면서 정문 밖을 내다보았을 때, 버로우의 정원보다는 눈이 훨씬 두

껍게 쌓인 운동장 너머로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저 멀리 해그리드가 그의 오두막 앞

에서 벅빅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싸구려 장식.”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 앞에 도착하자, 론이 자신 있게 암호를 외쳤다. 평소보다 얼굴이

 조금 창백해 보이는 그녀는 론의 큰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야.”

   

“뚱뚱한 여인이 말했다.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새 암호를 대야 해. 그리고 제발 소리 좀 지르지 마라.”

   

“하지만 저희는 학교에 없었는데 무슨 수로 암호를……?”

   “해리! 지니!”

   

망토에 모자, 장갑까지 낀 헤르미온느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들을 향해 바쁘게 다가왔다.

   “난 두세 시간 전에 도착했어. 해그리드와 벅빅…… 아니 위더윙즈를 잠깐 보고 오는 길이야.”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니?”

   “응. 별별 사건들이 다 있었지, 루퍼스 스크림저가…….”

   론이 냉큼 대답했다.

   “해리, 너에게 줄 게 있어.”

   헤르미온느는 론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싹 외면하면서 해리에게 말했다.

   “오, 잠깐만. 암호는 ‘금주’ 야.”

   “바로 그거야.”

   뚱뚱한 여인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초상화 구멍을 열어 주었다.

   “왜 저러지?”

   해리가 물었다.

   “크리스마스 때 과음을 한 거지 뭐.”

   헤르미온느가 눈알을 굴리며 앞장서서 학생들로 넘쳐 나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뚱뚱한 여인과 친구인 바이올렛이 저 아래 마법 교실 복도에 있는 술 취한 수

도사들의 그림에 들어가서 포도주를 잔뜩 퍼마셨거든. 그건 그렇고…….”

   헤르미온느는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덤블도어의 필체가 적힌 두루마리를 꺼냈다.

   “잘됐다.”

   양피지를 펴자마자, 해리는 내일 저녁에 덤블도어와의 다음 수업이 있을 예정이라는 내용을 읽고 좋아했다.

   “교수님께 할 말이 아주 많았는데…… 그리고 너에게도 말이야. 잠깐 앉자.”

   하지만 그 순간 “로~오옹 로~오옹!” 하고 커다랗게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라벤더 브라운이 

어디선가 달려 나와 론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이 킬킬거렸는데 헤르미온느도 깔깔 웃더니 말했다.

   

“저기에 빈자리가 있다. 같이 앉을래, 지니?”

   “아니, 난 딘과 만나기로 약속했어.”

   지니가 대답했다. 해리는 지니의 목소리가 왠지 심드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서로 꼭 들러붙어 서서 레슬링 경기라도 하는 것처럼 열렬히 포옹하고

 있는 론과 라벤더를 남겨 둔 채, 빈 테이블을 찾아갔다.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냈니?”

   “뭐, 괜찮았어.”

   헤르미온느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특별한 일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 ‘로~오옹 로~오옹’ 네에서는 어땠니?”

   “좀 이따 말해 줄게.”

   해리가 말했다.

   “그런데 헤르미온느, 너 혹시 화해할 생각은…….”

   “아니, 그렇겐 못해!”

   헤르미온느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크리스마스도 지났고 해서…….”

   “오백 년이나 묵은 포도주를 한 통이나 퍼마신 건 뚱뚱한 여인이지 내가 아니야, 해리. 

어쨌든 네가 말하려고 했던 중요한 소식이란 게 뭐야?”

   계속 입씨름을 하기에는 헤르미온느의 태도가 너무나 단호했기 때문에, 해리는 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그만 포기 하고 말포이와 스네이프 사이에서 엿들었던 대화 내용을 모두 들려주었다.

   해리가 이야기를 끝내자, 헤르미온느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이런 건 아닐까?”

   “말포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스네이프가 그를 도와주려는 척했단 말이지?”

   “그래, 맞아.”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론의 아버지와 루핀도 그렇게 생각하더라.”

   해리가 못마땅한 듯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걸로 말포이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은 증명된 셈이지, 너도 그 점은 부인하지 못 할 거야.”

   “맞아. 그건 그래.”

   헤르미온느가 천천히 대답했다.

   “그리고 말포이는 볼드모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거야. 다 내가 말했던 대로지!”

   “흠…… 하지만 사실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볼드모트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잖아?”

   해리가 얼굴을 찌푸리며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건 그렇지만…… 스네이프는 분명히 ‘네 주인’ 이라고 말했어. 볼드모트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글쎄…….”

   헤르미온느가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 그의 아버지가 아닐까?”

   헤르미온느는 라벤더가 론을 간질이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한 채, 멍하니 생각에 잠겨서 교실 저편을 바라보았다.

   “루핀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셔?”

   “썩 좋은 건 아니야.”

   해리는 늑대인간들에 대한 루핀의 임무와 그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너는 펜리 그레이백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니?”

   “그럼, 물론이지.”

   헤르미온느가 놀란 듯이 소리쳤다.

   “너도 들어 봤어, 해리!”

   “언제? 마법의 역사 시간에? 내가 그 수업을 전혀 듣지 않는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아니, 아니, 마법의 역사 시간 말고 말포이가 그 이름을 들먹이며 보진 씨를 위협했잖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녹턴 앨리에서 말이야. 기억 안나? 말포이가 보진 씨에게 그레이백이 자기네 집안의 오랜 친

구라면서 보진 씨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자가 확인할 거라고 말했잖아!”

   해리가 입을 딱 벌리고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깜박 잊고 있었어! 이제 이걸로 말포이가 죽음을 먹는 자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말포이가 그레이백과 연락이 닿아서 그자에게 지시를 내릴 수가 있겠어?”

   “그래, 뭔가 수상해.”

   헤르미온느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어쩌면…….”

   “오, 그만 해.”

   해리가 짜증을 냈다.

   “이건 달리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어!”

   “글쎄…… 하지만 그냥 위협하는 소리일 수도 있잖아.”

   “넌 정말 못 말리겠구나.”

   해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가 옳은지 두고 보자…… 반드시 네가 한 말을 취소하게 될 거야, 헤르미온느. 마법

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아 참, 난 루퍼스 스크림저와도 한판 말다툼을 벌였었어…….”

   결국 두 사람은 사이좋게 마법부를 욕하면서 그날 저녁을 보냈다. 헤르미온느 또한 론

과 마찬가지로, 작년에 마법부가 해리에게 그런 짓을 해 놓고선 이제 와서 도움을 청하다니 정말 뻔뻔스럽다고 생각했다.

   새해의 첫 수업은 6학년 학생들에게 깜짝 놀랄 희소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밤새 휴게실 

게시판에 커다란 공고문이 나붙었던 것이다.

순간이동 강의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거나, 8월 31일까지 열일곱 살이 되는 

학생은 마법부의 순간이동 담당 강사로부터 12주간의 순간이동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강의에 참가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밑에 이름을 적어 주세

요(수강비 : 12갈레온).

   

해리와 론은 게시판 주위에 몰려들어 차례로 공고문 아래에 이름을 적으려고 난리 법석인 학

생들 틈에 끼었다. 론이 막 헤르미온느 다음으로 이름을 적으려고 깃펜을 꺼내는 순간, 라

벤더가 론의 등 뒤로 살그머니 다가와서 손으로 그의 눈을 가리더니 까르르 웃으며 속삭였다.

“내가 누구게, 로~오옹 로~오옹?”

해리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헤르미온느는 벌써 횅하니 걸어가고 있었다. 론과 라벤더 옆에

 남아 있기 싫었던 해리는 얼른 그녀의 뒤를 따라갔는데 놀랍게도 론이 금방 초상화 구멍을 

넘어서 쫓아왔다. 귀까지 새빨개진 론은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헤르미온느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걸음을 빨리 하더니 네빌과 함께 걸어갔다.

“그러니까 순간이동은…….”

론의 방에서 방금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이 명백하게 담긴 어조로 해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식은 죽 먹기일 거야, 그렇지?”

“글쎄, 난 잘 모르겠어.”

해리가 대답했다.

“혼자서 하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덤블도어 교수님을 따라서 순간이동을 할 때에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어.”

“네가 벌써 그걸 해 봤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구나. 그나저나 한 번에 시험을 통과해야

 할 텐데……. 프레드와 조지도 그랬거든.”

론은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찰리는 떨어졌었잖아, 안 그래?”

“맞아, 하지만 찰리는 나보다 덩치가 크잖아.”

론이 양팔을 뻗으며 고릴라 흉내를 냈다.

“그래서 프레드와 조지도 그 이야기는 잘 안 해……. 적어도 찰리 앞에서는 말이야.”

“그런데 진짜 시험은 언제 칠 수 있는 거지?”

“열일곱 살이 되자마자 바로 응시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는 3월이면 돼!”

“그렇구나. 하지만 여기서는 순간이동을 할 수 없잖아, 이 성 안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게 중요한거지.”

순간이동을 하게 된다는 사실에 흥분한 사람은 론만이 아니었다. 그날 하루 종일 곧 있을 강의에

 대한 얘기로 학교가 떠들썩했는데, 대부분이 마음대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어.”

시무스가 손가락을 튕기며 순간이동을 하는 시늉을 했다.

“우리 사촌 퍼거스는 순전히 날 약 올리려고 순간이동을 한다니까. 어디 두고 보자. 내가 반드

시 복수해 줄 테니. 그때부터 녀석은 행복 끝, 불행 시작이야…….”

행복한 미래에 대한 공상에 빠진 시무스는 다소 열성적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는 바람에, 오늘 마]

법 수업의 과제인 맑은 샘물을 만들어 내는 대신 긴 호스 같은 물줄기를 발사시키고 말았다

. 천장을 스치고 떨어진 물줄기는 플리트윅 교수의 얼굴로 철퍼덕 쏟아졌다.

“해리는 벌써 순간이동을 해 봤대.”

지팡이를 휘둘러 몸을 말린 플리트윅 교수가 “나는 마법사이지 막대기를 휘두르는 

비비 원숭이가 아니다” 라는 문장을 쓰게 하여 약간 무안해하는 시무스에게 론이 소곤거렸다.

“덤…… 어…… 어떤 사람이랑 같이 했다더라고. 그러니까 동반 순간이동 말이야.”

“우와!”

시무스가 나지막이 탄성을 질렀다. 시무스와 딘, 네빌은 순간이동의 느낌이 어떤지 들으

려고 머리를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날 오후 내내 해리는 순간이동의 느낌을 묻는,

 다른 6학년 학생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만 했다. 해리가 그 기분이 얼마나 불쾌

한지 설명했을 때, 모두들 흥미를 잃기는커녕 오히려 경탄을 금치 못하는 것 같았다. 해리

는 저녁 8시 10분전이 될 때까지 여전히 꼬치꼬치 캐묻는 질문에 답변을 하다가 덤블도어

의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도서관에 반납할 책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간신히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등불이 환하게 밝혀진 덤블도어의 방에서는 역대 교장 선생님들의 초상화들이 액자 안에서

 얌전하게 코를 골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또다시 펜시브가 준비되어 있었다. 덤블도어는

 펜시브의 양쪽을 잡고 있었는데, 오른쪽 손은 여전히 화상을 입은 듯이 검게 변해 있

었다. 상처가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해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

게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고 덤블도어가 말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의논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가 스네이프와 말포이에 대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덤블도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크리스마스 때 마법부 장관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예”

해리가 대답했다.

“장관님이 저를 썩 좋아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렇구나.”

덤블도어가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은 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해리, 우리는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고 싸워 나가야만 한단다.”

해리가 씩 웃었다.

“장관님은 마법부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제가 마법사 사회를 향해 말해 주길 원했죠.”

덤블도어가 미소를 지었다.

“너도 알겠지만, 그건 원래 퍼지의 생각이란다. 마지막 재임 기간 동안 퍼지는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 네가 자기를 지지해 주기를 바라면서 널 만나고 싶어 했어.”

“작년에 그런 짓을 해 놓고도 말인가요? 엄브릿지는 또 어떻고요?”

해리가 화를 냈다.

“나는 코넬리우스에게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단다. 하지만 그가 자리에서 물려

난 후에도 그 생각만은 그대로 남았지. 스크림저가 마법부 장관에 임명된 지 불과 몇

 시간도 안돼서 나와 만났는데, 너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더구나.”

“그래서 언쟁을 하신 거로군요!”

해리는 불쑥 말을 내뱉고 말았다.

“《예언자 일보》에 그런 기사가 실렸었어요.”

“가끔은 《예언자 일보》가 진실을 전할 때도 있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정말 가끔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 그게 우리가 언쟁을 벌인 이유란다. 

그런데 마침내 루퍼스가 너와 단둘이서 만날 방법을 찾았던 모양이로구나.”

“장관님은 제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덤블도어의 사람’ 이라고 비난했어요.”

“그 사람 참 무례하구나.”

“그래서 저는 그렇다고 말씀드렸어요.”

덤블도어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해리의 뒤에서 불사조 퍽스가 낮

고 부드럽게 노래하고 있었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빛나는 파란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드는

 것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얼른 자기 무릎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덤블도어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지극히 침착했다.

“해리, 정말 감동스럽구나.”

“스크림저는 교수님이 호그와트를 비우고 어디에 가시는지도 알고 싶어 했어요.”

해리는 여전히 무릎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래, 그 사람은 그걸 알고 싶어서 안달이 났단다.”

덤블도어가 이젠 아주 쾌활한 어조로 말했기 때문에, 해리는 다시 고개를 들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내 뒤를 미행하려고까지 했었단다. 아주 재미있었지. 도울리쉬에게 내 뒤를 밟

게 했거든. 안된 일이었지. 나는 이미 한 번 도울리쉬에게 주문을 건 적이 있었으니까. 이

번에도 미안하긴 하지만 또다시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그럼 마법부에서는 아직도 교수님이 어딜 가시는지 모르나요?”

해리는 혹시나 이 흥미로운 화제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까 하는 희

망을 가지고 물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래, 그렇단다. 그리고 너 역시 아직은 알 때가 아닌 것 같구나. 자, 이제 달리 할 말이 없으면 수업을 계속해 볼까……?”

“사실은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해리가 말을 꺼냈다.

“말포이와 스네이프에 관한 거예요.”

“스네이프 교수님이라고 해라, 해리.”

“예, 교수님. 그러니까…… 슬러그혼 교수님의 파티에서 두 사람이 말하는 걸 엿들었어요

. 사실은 제가 두 사람의 뒤를 미행했었거든요…….”

덤블도어는 덤덤한 표정으로 해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해리가 말을 마친 후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었다.

“해리, 나에게 말해 줘서 고맙다. 하지만 그 일은 그만 잊어 버리도록 해라. 내 생각에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구나.”

“중요하지 않다고요.”

해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따라 말했다.

“교수님, 혹시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아니다, 해리. 타고난 이해력 덕분에 네가 한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덤블도어는 다소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어쩌면 너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리

라 믿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가 날 믿어 준 것은 고맙다. 하지만 분명히 장담하건대, 

네가 방금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나를 놀라게 할 만한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단다.”

해리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안고 말없이 덤블도어를 쳐다보며 않아 있었다. 도대체 이

게 무슨 일인가? 덤블도어가 정말로 스네이프에게 말포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라

고 지시를 했단 말인가? 그래서 해리가 방금 그에게 한말을 이미 스네이프로부터 모두 들었단 

말인가? 아니면 그 이야기를 듣고 몹시 걱정을 하면서도 겉으로 안 그런 척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교수님…….”

해리는 부디 자신의 목소리가 침착하고 공손하게 들리기를 바랐다.

“교수님께서는 아직도 확실하게 믿고 계신 거군요……?”

“그 문제에 대해서라면 충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여러 번 대답을 했던 것 같구나.”

하지만 덤블도어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인내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들렸다.

“내 대답에는 변함이 없다.”

“당연히 그래야지…….”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잠을 자는 척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덤블도어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이제, 해리, 수업을 계속하도록 하자. 오늘 저녁에는 너와 더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고 싶구나.”

해리는 강한 반발심을 느끼며 앉아 있었다. 만약 해리가 끝까지 화제를 바꾸지 않겠다고 하면

, 계속해서 말포이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면 어떻게 될까? 해리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덤블도어가 고개를 저었다.

“해리, 심지어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에조차 이런 일들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모른단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의 조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

“저는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해리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그건 네 생각이 옳다. 왜냐하면 진짜 중요하니까.”

덤블도어가 쾌활하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나는 너에게 두 가지 기억을 보여 줄 거란다. 두 가지 모두 굉장히 힘들게 얻은 것

이지. 특히 두 번째 기억은 내가 수집한 기억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이 믿고 털어 놓은 이야기가 푸대접 받은 것에 대해서

 화가 풀리지 않았지만, 더 이상 따져 봤자 별다른 소득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저녁에 우리는 톰 리들의 이야기를 계속할 거란다.”

덤블도어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난 수업 시간에는 톰 리들이 호그와트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했었지. 그가 자신이 마법사란 말을 듣

고 몹시 흥분했던 것, 다이애건 앨리까지 함께 가 주겠다는 내 제안을 거절했던 것, 그리고 내가 그에

게 입학하고 나서 도둑질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거다.

이제 새학기가 시작되었고, 중고 교복을 입은 조용한 소년 톰 리들은 다른 1학년들과 함께 기숙사

 배정을 받기 위해서 줄을 섰단다. 그리고 분류 모자를 머리 위에 올려놓자마자 슬리데린 기숙사로 배정을 받았지.”

덤블도어는 낡은 분류 모자가 꼼짝도 하지 않고 놓여 있는, 그의 머리 위쪽 선반을 향해 검게 변한 손을 흔들었다.

그 유명한 기숙사의 창립자가 뱀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리들이 얼마나 금방 알아차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아마도 바로 그날 저녁이었을 거라고 짐작된단다. 그런 사실은 톰 리들을 더욱 자극하고 의기양양하게 만들었지.

혹시 톰 리들이 기숙사 휴게실에서 파셀통그 능력을 과시하여 슬리데린 친구들을 겁주거나 환심을 샀는지는 모르겠

지만, 어쨌든 학교 교수들은 전혀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지. 그는 거만하거나 공격적인 면을 절대로 겉으로 드러

내지 않았어. 잘생긴 데다가 비범한 능력을 지닌 고아 소년인 그는 거의 학교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부터 자연스

럽게 교수들의 관심과 동정을 한 몸에 받았지. 그는 예의 바르고 조용하고 지식에 목말라 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 거의 모든 교수들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단다.”

“그렇다면 교수님들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나요? 고아원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어땠는지?”

해리가 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다. 비록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예전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고 새로운 인생

을 살겠노라고 결심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던 거지.”

덤블도어는 말을 멈추더니, 입을 열고 뭔가 말하려는 해리를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해리는 믿을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숱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끝까지 믿어 주려고 하는 덤블도어의 성향을 다

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로 그를 믿으신 건 아니셨어요. 안 그런가요, 교수님! 리들이 그 일기장에서 나왔을 때 저에게 이렇게

 말 한 적이 있어요. ‘덤블도어 교수는 다른 교수님들만큼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거든’ 이라고 말이죠.”

“차라리 그가 믿을 만한 상대라는 걸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 두자꾸나.”

덤블도어가 말했다.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나는 그 아이를 계속 주시해서 보기로 결심했었고, 그렇게 했단다. 하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그 아이를 관찰하면서 그다지 많은 사실을 알아냈다고 할 수 없구나. 그 아이는 나에 대해서 굉장히 방어적이었거든.

 분명히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알게 된 것에 흥분한 나머지 나에게 너무 많은 말을 했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 애는 또

다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조심했단다. 하지만 자기가 흥분해서 떠들어 댄 말들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었

고, 코올 부인이 나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지. 그렇지만 아주 분별력이 뛰어나서, 수많은 내

 동료 교수들을 매료 시켰듯이 나를 매료시켜 보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의 주변에는 추종하는 친구들이 몰려 들었어.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일단 그 아이들을 친

구라고 부르기는 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리들은 분명히 그들에 대해서 아무런 애정도 갖고 있지 않았단다. 그 친

구들은 학교 내에서 일종의 사악한 매력을 발휘했지. 보호를 받고 싶어 하는 약자에서부터, 명성을 나눠 가지고 

싶어 하는 야심가, 보다 세련된 방식의 잔인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지도자에게 맹목적으로 이끌린 악당에 이르기

까지 그야말로 온갖 잡다한 사람들의 집합체였어. 한마디로 죽음을 먹는 자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었단다. 

실제로 그들 중 일부는 호그와트를 졸업한 후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되었지.

리들이 철저하게 통제했기 때문에 그들의 악행은 한 번도 발각된 적이 없었단다. 그들이 호그와트에 다니던 7년

 동안 고약한 사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단 한 번도 확실하게 꼬투리를 잡힌 적은 없었지. 물

론 그중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은 ‘비밀의 방’ 이 열리고 그로 인해서 여학생 한 명이 목숨을 잃은 일이었단다

. 너도 알다시피, 해그리드가 애꿎게 그 죄를 뒤집어썼지.

나는 호그와트 시절의 리들에 대해서 별로 많은 기억을 찾을 수가 없었단다.

덤블도어가 부상당한 손을 펜시브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 시절에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 겁에 질려서 그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지. 내가 알아낸 사실들은

 그가 호그와트를 떠난 이후에, 오래된 기록들을 뒤지거나 머글이나 마법사나 그 밖에 증인이 될 만한 사람들 

모두를 탐문하고, 속임수에 넘어가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소수의 사람들을 추적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것이란다.

내가 간신히 증언을 하도록 설득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리들은 자신의 태생에 대해서 병적으로 집착했다고 한

다. 물론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지. 고아원에서 자랐으니 당연히 자기가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을 테니까. 그는 트로피 방에 있는 상패들이나 오래된 학교 기록에 남아 있는 반장들의 명단, 심지어 마법

사들의 역사책에서까지 아버지 톰 리들 1세에 대한 자취를 찾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단다. 결국 그는 자기 아

버지가 호그와트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 내 생각에 톰 리들이 자기 이름을

 버리고 볼드모트 경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때까지 무시해 왔던

 어머니의 집안을 조사하기 시작했지. 너도 기억 하겠지만, 허약한 인간들처럼 그토록 수치스럽게 죽음을 맞이

했다면 절대 마녀였을 리가 없다고 톰 리들이 생각했던 바로 그 여인 말이다.

그가 가진 실마리라고는 ‘마볼로’ 라는 이름 하나뿐이었단다. 고아원을 운영하던 사람들을 통해서 그것이

 그의 외할아버지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었지. 결국 그는 마법사 가문에 대한 옛날 책들을 힘들게 뒤진

 끝에, 슬리데린의 후손들이 생존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여름에 그는 매년 돌

아가던 고아원을 떠나서 곤트 가의 친척들을 찾아 나섰단다. 자, 해리, 이제 일어서겠니…….”

덤블도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리는 은빛 기억이 소용돌이치는 작은 크리스털 병을 또다시 들고 있는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이 기억을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이었단다.”

덤블도어가 펜시브에 광택이 나는 물질을 쏟아 부으며 말했다.

“이 기억을 경험하고 나면, 너도 내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될 게다. 이제 가 볼까?”

해리는 돌 대야로 다가가서 얼굴이 기억의 표면에 닿도록 순순히 허리를 숙였다. 허공 속으

로 끝없이 떨어지는 듯한 익숙한 느낌이 밀려오더니, 해리는 곧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

깜한 어둠 속에서 더러운 돌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그곳이 어디인지 깨닫는 데에는 몇 초쯤 걸렸고, 그때엔 이미 덤블도어도 그 옆에 내려와 서

 있었다. 곤트의 집은 해리가 여태껏 본 그 어느 곳보다도 심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

큼 더러워져 있었다. 천장에는 거미줄이 두텁게 쳐져 있었고, 마루에는 먼지가 뽀얗게 내

려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썩은 음식들이 지저분한 그릇들 사이에 널려 있었다. 그 방을

 비추는 유일한 불빛은 다 녹아 버린 한 자루의 양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머

리카락과 수염이 어찌나 덥수룩한지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입인지도 통 구별이 안 가는 

어떤 남자의 발치에 놓여 있었다. 그 남자는 벽난로 옆에 놓인 안락의자에 축 늘어져 있어

서, 해리는 잠깐 동안 그가 혹시 죽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쾅

쾅 두드리자, 그 남자는 화들짝 잠에서 깨어나더니 오른손으로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왼손으로는 칼을 움켜쥐었다.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지방에는 구식 등잔을 든 한 소년이 서 있었는데, 해리는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큰 키에 창백한 얼굴을 한, 검은 머리의 잘생긴 10대, 바로 볼드모트였다

   볼드모트는 천천히 오두막집 안을 훑어보더니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잠깐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잠시 후에 남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발치

에 뒹굴고 있던 수많은 빈 술병들이 마루 위를 떼굴떼굴 구르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너!”

   그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너 말이야!”

   그리고는 지팡이와 칼을 높이 치켜들고 술에 취한 채 리들을 향해서 덤벼들었다.

   “멈춰.”

   리들이 파셀통그로 말했다. 남자가 미끄러지면서 식탁에 부딪히는 바람에 더러운 그릇

들이 마루로 굴러 떨어져 와장창 깨졌다. 그는 리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긴 침묵 속에

서 두 사람은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말을 하느냐?”

   “물론 할 줄 알지.”

   리들이 이렇게 대답하며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뒤에서 문이 쾅 하고 닫혔다. 해

리는 두려운 기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볼드모트의 태도에, 분하지만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표정에는 오직 혐오감과 실망감만이 가득 차 있었다.

   “마볼로는 어디 있지?”

     리들이 물었다.

    “죽었다.”

    상대편이 대답했다.

    “죽은 지 몇 년 되었을걸.”

    리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넌 누구냐?”

    “난 모핀이다.”

    “마볼로의 아들인가?”

    “그렇고말고…… 그런데……”

    모핀은 리들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지저분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옆

으로 넘겼다. 그때, 해리는 그가 오른손에 마볼로의 검은 돌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난 또 그 머글 녀석인 줄 알았지.”

    모핀이 중얼거렸다.

    “그 머글 녀석이랑 정말 똑같이 생겼군.”

    “무슨 머글 말이냐?”

    리들이 날카롭게 말했다.

    “내 여동생이 홀딱 반했던 그 머글 녀석 말이다. 저 길 건너 커다란 집에 사는 그놈 말이야.”

    모핀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갑자기 마룻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너는 그 리들 녀석이랑 정말 똑같이 생겼어. 하지만 그 자식은 이제 더 늙었겠지? 생각해 보니 너보다 훨씬 더 늙었을

거야…….”

    모핀은 어지러운 듯 약간 비틀거렸지만, 식탁 가장자리를 꼭 붙잡고 버텼다.

    “그 자식이 돌아왔더군.”

    모핀은 얼이 빠져 중얼거렸다.

    볼드모트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이리저리 따져 보듯이 모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그가 돌아왔나?”

    “아, 그놈이 그녀를 버렸어. 그리고 그 애는 그런 일을 당해도 싸! 더러운 머글과 결혼을 하다니!”

    모핀이 또다시 마루에 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도망치기 전에 도둑질까지 했어! 그 목걸이는 어디 있지? 슬리데린의 목걸이는 어디 갔냐고?”

    볼드모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핀은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칼을 마구 휘두르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망할 것이 우리 집안을 더럽혔어! 그런데 넌 누구지? 누구기에 감히 여길 들어와

서 이것저것 캐묻는 거야? 다 끝났어…… 다 끝났다고…….”

    모핀은 약간 비틀거리며 시선을 돌렸고, 볼드모트가 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그 순간, 볼드모

트의 등잔과 모핀의 촛불이 동시에 꺼지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덮쳐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덤블도어는 해리의 팔을 꽉 붙잡았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다시 현재로 되돌아왔다. 캄캄한 어

둠속을 지나온 해리는 덤블도어의 방의 부드러운 노란색 불빛에도 눈이 부셨다.

    “이게 다인가요?”

    해리가 즉시 물었다.

    “왜 캄캄해진 거죠? 무슨 일이 일어났었나요?”

    “모핀이 그 이후부터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덤블도어가 해리에게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손짓을 하며 말했다.

    “다음 날 깨어났을 때, 그는 홀로 마루 위에 쓰러져 있었단다. 마볼로의 반지는 사라진 채 말이야.

    한편 리틀 행글턴 마을에서는 하녀 한 명이 저택의 거실에 시체 세 구가 쓰러져 있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큰길을 달려가고 있었지. 톰 리들 1세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였어.

    머글 당국에서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 내가 아는 한 머글들은 오늘날까지도 리들 가

족이 왜 죽었는지 그 사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단다. 아바다 케다브라 저주는 대개의 경우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거든……. 내 앞에 앉아 있는 딱 한 사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덤블도어가 해리의 상처를 향해 고갯짓을 하며 덧붙였다.

    “다른 한편 마법부에서는 이것이 마법사의 소행임을 즉시 알아차렸지. 또한 리들 저택

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전과가 있는 반-머글주의자 한 명이 산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살

해당한 가족 중 한 명을 공격한 죄로 이미 한 번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는 자였지.

    그래서 마법부는 모핀을 소환했어. 그리고 베리타세룸이나 레질리먼시를 써서 애써 추궁

을 할 필요조차 없었지. 모핀은 그 자리에서 살인을 인정하고, 오직 살인자만이 알 수 있

을만한 세세한 내용들을 술술 불었으니까. 그는 오랫동안 이런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려

 왔으며, 그 머글들을 죽여서 자랑스럽다고 말했어. 그리고 자기 지팡이를 넘겨주었는데, 

리들 가족을 살해라는 데 그것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금방 밝혀졌지. 모핀은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순순히 아즈카반으로 끌려갔어.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반지가 없어졌다는 사실뿐

이었지. ‘그걸 잃어버린 걸 알면 아버지가 날 죽일 거예요’ 모핀은 그를 체포한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했어. ‘그 반지를 일어버린 걸 알면 아버지가 날 죽일 거예요’ 그가 평생

 다시 한 말이라고는 오직 그것밖에 없었단다. 모핀은 마볼로의 마지막 유물을 잃어버린 것을 한

탄하며 여생을 아즈카반에서 보냈지. 그리고 그 담 안에서 생을 마친 다른 불쌍한 영혼들과 나란히 감옥 옆에 묻혔지.”

    “그렇다면 볼드모트가 모핀의 지팡이를 훔쳐서 사용한 건가요?”

    해리가 몸을 똑바로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 사실을 보여 주는 기억은 없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우리 스스로 충분

히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볼드모트는 그의 삼촌에게 기절 마법을 건 다음, 

지팡이를 훔쳐서 계곡을 지나 ‘길 건너 커다란 집’으로 간 거지. 그곳에서 볼드모트는 마

녀인 어머니를 버렸던 머글 남자를 죽이고, 그의 머글 조부모까지 모두 죽인 거야. 그렇

게 해서 무가치한 리들 가문의 마지막 혈통을 밀살시키고, 그를 원치 않았던 아버지에게 

손수 복수를 한 거지. 그런 다음 곤트의 오두막집으로 되돌아온 볼드모트는 복잡한 마법을

 부려서 삼촌의 머릿속에 가짜 기억을 집어넣었어. 그리고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모핀

 옆에 지팡이를 내려놓은 후, 그가 끼고 있던 오래된 반지를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그곳을 떠난 거지.”

    “그럼 모핀은 자기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걸 평생 몰랐나요?”

    “몰랐단다. 좀 전에 말했듯이 자신만만하게 허세를 부리며 범행을 자백했을 정도였으니까.”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 진짜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잖아요!”

    “그래, 하지만 그에게서 이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에는 고도의 레질리먼시 기술이 엄청나게 필요했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게다가 모핀이 이미 범죄를 인정한 마당에, 누가 굳이 모핀의 기억을 파헤쳐 보려고 했겠니?

 하지만 나는 모핀이 죽기 전 마지막 몇 주일 동안 그를 만날 수 있었단다. 그 무렵에 나는 볼드모

트의 과거에 대해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알아내려고 한창 애를 쓰고 있었지. 이 기억은 아주 힘들

게 뽑아낸 거야. 이 기억 속에 담긴 내용을 보고, 나는 그걸 이용해서 모핀을 아즈카반에서 나오게

 할 생각이었어. 하지만 마법부에서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모핀은 죽고 말았단다.”

    “어떻게 마법부에서는 볼드모트가 모핀에게 한 그 모든 짓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수가 있었죠?”

    해리가 분개하며 물었다.

    “당시에 그는 미성년자였잖아요, 안 그런가요? 그렇다면 미성년자의 마법 사용을 추적할 수 있었을 텐데요?”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 마법부는 마법 사용을 추적할 수 있지. 하지만 누가 그랬는지는 추

적하는 게 불가능하단다. 너도 공중 부양 마법 때문에 마법부의 추궁을 당한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게다, 사실 그 마법은…….”

    “도비가 한 거였죠.”

    해리는 그때 당한 일이 여전히 억울한 듯 투덜거렸다.

    “그렇다면 아무리 미성년자라고 해도, 성인 마법사의 집 안에서 마법을 부리면 마법부가 모른단 말인가요?

    “누가 그 마법을 썼는지는 절대로 알아낼 수가 없지.”

    덤블도어는 부아가 치밀어서 어쩔 줄 모르는 해리의 얼굴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마법부는 아이들이 집 안에 있는 동안에는 마녀나 마법사 부모들의 손에 그 책임을 맡길 수밖에 없단다.”

    “말도 안 돼요!”

    해리가 쏘아붙였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봤잖아요! 모핀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말이죠!”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이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모핀이 어떤 인간이었든지 간에,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죽을 만큼 그

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어쨌든 시간이 점점 늦어지니까 헤어지기 전에 또 다른 기억을 하나 더 보여 주고 싶구나…….”

    덤블도어는 윗도리 안쪽에서 또 다른 크리스털 병을 꺼냈다. 해리는 이 기억이야말로 그가 

수집한 기억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했던 덤블도어의 말을 기억하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해

리는 병에 든 내용물이 약간 굳기라도 한 것처럼 펜시브 안으로 잘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혹시 기억이 변질된 건 아닐까?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게다.”

    마침내 병을 다 비운 덤블도어가 말했다.

    “뭐가 뭔지 깨닫기도 전에 돌아올 테니까……. 그럼 일단 펜시브 안으로 들어가 볼까…….”

    해리는 다시 은색 표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앞에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아주 젊었을 때의 슬러그혼이었다. 해리는 머리가 벗겨진 슬러그혼의 모습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윤기 흐르는 지푸라기 색깔의 머리카락이 무성한 슬러그혼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마

치 머리 위에 초가지붕이라도 이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정수리에 갈레온 정도의 크기로 머리카

락이 없는 부분이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보다는 덜 무성한 그의 콧수염은 황갈색이었다. 

그리고 비록 화려하게 수를 놓은 조끼에 달린 금단추가 떨어져 나갈 듯이 팽팽해 보이긴 했지만, 

해리가 알고 있는 슬러그혼만큼 뚱뚱하지는 않았다. 슬러그혼은 작은 발을 벨벳 발받침 위에 턱

하니 올려놓고 편안한 안락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 앉아서, 한 손으로는 작은 포도주 잔을 들

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파인애플 설탕 절임 상자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해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덤블도어가 그의 옆에 나타났고, 해리는 자신이 슬러그

혼의 방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슬러그혼 주위에는 10는대 중반 정도 되는 여섯 명의 남학생

들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모두 그보다는 더 딱딱하거나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해리는 볼드

모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남학생들 중에서 가장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가장 느긋해 보였던

 것이다. 그는 오른손을 의자 팔걸이에 한가롭게 걸치고 있었는데, 해리는 그가 검은 돌이 

박힌 마볼로의 금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때 볼드모트는 이미 그의 아버지를 죽였던 것이다.

    “메리쏘우트 교수님이 퇴직하신다는 게 정말인가요, 교수님?”

    그가 물었다.

    “톰, 톰, 설사 내가 안다고 해도 너에게 알려 줄 수는 없단다.”

    슬러그혼은 비록 눈을 찡긋해서 그 효과를 반감시키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를 나무라는

 듯이 설탕 범벅이 된 손가락을 리들을 향해 흔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어디서 그런 정보들을 얻는지 정말 궁금하구나. 교수들 절반을 합친 것보다도 더 아는 것이 많으니…….”

    리들은 빙그레 미소만 지었지만, 다른 남학생들은 소리 내어 웃으면서 그에게 감탄하는 시선을 보냈다.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을 알아내는 너의 기이한 능력과 중요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

는 사려 깊은 태도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파인애플 설탕 절임을 보내 줘서 고맙구나

. 정확한 판단이었어.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란다…….”

    몇몇 학생들이 킥킥거리고 웃었을 때, 뭔가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방 전체가

 짙고 뿌연 안개로 가득 차더니 바로 옆에 서 있는 덤블도어의 얼굴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잠시 후, 안개 속에서 슬러그혼의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너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될 거야. 내 말을 명심해라.”

    그 순간 안개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일에 대

해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슨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해리가 어리둥절해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슬러그혼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황금 시계가 11시를 알렸다.

    “이런 세상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슬러그혼이 말했다.

    “얘들아, 이제 그만 가 보는 게 좋겠다. 안 그러면 우리 모두 곤란해질 수가 있어요. 

레스트랭, 내일까지는 작문 숙제를 내도록 해라. 안 그러면 징계를 당할 거야. 애버리, 너도 마찬가지다.”

    남학생들이 줄지어 나가자, 슬러그혼은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후 빈 유리잔을 들고 

책상 쪽으로 갔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가지 않고 뒤에 남아 있었다. 해리는 그가 슬러그혼

과 방에 단둘이 남으려고 일부러 꾸물거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톰, 조심해라.”

    뒤로 돌아선 슬러그혼이 아직도 그가 남아 있는 걸 보고 말했다.

    “취침 시간이 넘어서 침실 밖을 나다니다가 붙잡히고 싶지는 않겠지? 너는 반장이야…….”

    “교수님, 여쭤 볼 게 있습니다.”

    “그럼 얼른 물어보고 가거라, 어서…….”

    “교수님, 혹시…… 호크룩스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그러자 또다시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짙은 안개가 방안을 가득 뒤덮었고, 해리는 슬

러그혼도 볼드모트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오직 덤블도어만이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옆

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 조금 전과 똑같이 슬러그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퍼졌다.

    “난 호크룩스가 뭔지 전혀 모른다.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너에게 말해 줄 수 없어!

 이제 당장 여기서 나가거라. 그리고 또다시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말거라!”

    “자, 끝났다.”

    덤블도어가 해리 옆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갈 시간이다.”

    해리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덤블도어의 책상 앞에 깔린 양탄자 위로 돌아와 있었다.

    “이게 다인가요?”

    해리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덤블도어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기억이라고 말했었지만, 해리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뿌연 안개는 분

명히 수상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볼드모트가 질문을 던졌다가 대답을 얻지 못한 것 빼고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었다. 

    “너도 눈치를 챘을 게다.”

    책상 뒤에 다시 앉은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이 기억은 조작되었단다.”

    “조작되었다고요?”

    해리도 의자에 앉으며 되물었다.

    “그렇단다, 슬러그혼 교수가 자신의 기억을 바꿔 놓았어.”

    덤블도어가 말했다.

    “왜 그렇게 하신 거죠?”

    “자기가 기억하는 사실들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인 것 같구나.”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자신의 모습이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기억을 조작하려고 했던 거야. 나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장면을 지운 거지. 하지만 너도 알아차렸듯이, 솜씨가 어설펐던 게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지. 왜곡된 기억 밑에 진짜 기억이 아직도 감추어져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처음으로 너에게 과제를 내 주려고 한단다, 해리. 슬러그혼 교수를 설득

해서 진짜 기억을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 너의 과제란다. 틀림없이 그 기억은 우리가 얻은 

모든 정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게다.”

    해리는 덤블도어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교수님.”

    해리는 가능한 한 무례하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했다.

    “굳이 제 도움이 필요하진 않으시잖아요. 레질리먼시나 베리타세룸을 쓰시면 될 텐데…….”

    “슬러그혼 교수는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가진 마법사이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예상하고 있을 거다.”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그는 그 가엾은 모핀 곤트보다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오클러먼시를 구사하는 마법사

야. 게다가 거의 강제로 이 조작된 기억을 나에게 넘겨준 이후부터는 베리타세룸의 해독제를

 항상 가지고 다닐 게 분명하단다.

    그러니 슬러그혼 교수로부터 강제로 진실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이

득보다는 손실이 훨씬 더 많을 게다. 그리고 나는 그가 호그와트를 떠나길 원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슬러그혼 또한 여느 사람들처럼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너야말로 그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 것 같구나. 해리, 진짜 기억이 뭔지 알아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단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진짜 기억을 보고 난 이후에나 알게 되겠지

만 말이다. 그러니 행운을 빈다……. 잘 자거라.”

    갑작스런 작별 인사에 약간 놀란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녕히 주무세요, 교수님.”

    해리가 방문을 닫는 순간,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도대체 어째서 저 꼬마가 자네보다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하는 건지 통 모르겠군, 덤블도어.”

    “피니어스, 자네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네.”

    덤블도어가 이렇게 대꾸하자, 불사조 퍽스가 또다시 나지막하게 노래하는 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