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장 (143/194)

제16장

혹한의 크리스마스

   “그러니까 스네이프가 말포이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했단 말이지? 진짜로 도움을 주겠다고 했단 말이지?”

   “그 질문을 한 번만 더 하면, 이 양배추를 찔러 버릴 거야…….”

   해리가 말했다.

   “그냥 확인해 보려는 것뿐이야.”

   론이 말했다.

   그들은 버로우 저택의 부엌 싱크대 앞에 단둘이 서서 위즐리 부인을 위해 산더미처럼 쌓인 양배추의 껍질을 벗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 앞에 보이는 창문 밖으로는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래, 스네이프가 그 자식에게 도와주겠다고 했다니까!”

   해리가 소리쳤다.

   “스이프는 말포이의 어머니에게 그를 지켜 주겠다는 맹세를 했다고 말했어. 깨뜨릴 수 없는 맹세라나 뭐라나…….”

   “깨뜨릴 수 없는 맹세라고?”

   론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니, 그럴 수는 없어……. 확실해?”

   “그래, 확실해. 그런데 그건 왜 물어?”

   해리가 물었다.

   “그러니까…… ‘깨뜨릴 수 없는 맹세’ 는 절대로 깨뜨릴 수 없는 거야.”

   “그 정도야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어. 그런데 만약 그걸 깨뜨리면 어떻게 되는데?”

   “죽어.”

   론이 간단하게 말했다.

   “내가 다섯 살 때, 프레드와 조지가 나에게 그 맹세를 시키려고 한 적이 있었어. 그래서 하마터면 거의 할 뻔했지. 내가 프레드와 손을 잡고 맹세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우릴 본 거야. 아빠는 미친 듯이 화를 냈어.”

   론이 추억에 잠기는 듯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아빠가 엄마처럼 무섭게 화를 낸 건 그때 딱 한 번뿐이야. 그때 이후로 프레드는 자기 왼쪽 엉덩이가 예전처럼 성하지 못하다고 그러거든……..”

   “그래, 그래. 프레드의 왼쪽 엉덩이 이야기는 그만 하고…….”

   “방금 뭐라고 했지?”

   프레드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쌍둥이들이 부엌 안으로 들어왔다.

   “어이, 조지, 이것 좀 봐. 얘들이 칼을 사용해서 이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네. 아이고, 장하기도 하지.”

   “나도 두 달 하고 며칠만 더 있으면 열일곱 살이 된다고! 그럼 나도 마법을 쓸 수 있어!”

   론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조지가 부엌 식탁 앞에 앉아 식탁 위에 발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네가 올바른 칼 사용법 시범을 보이는 걸 실컷 구경할 수 있겠구나. 아이고, 저런!”

   “형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론이 칼에 베인 엄지손가락을 빨며 벌컥 화를 냈다.

   “두고 봐. 내가 열일곱 살만 되면 그땐…….”

   “그래,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마법 실력으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해 다오.”

   프레드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상상하지 못한 실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론.”

   조지가 끼어들었다.

   “지니한테서 들은, 너랑 어떤 젊은 아가씨에 관한 이야기야말로 그렇던데? 그 아가씨 이름이 뭐라더라? 우리가 들은 정보가 틀리지 않다면, 라벤더 브라운이라고 했던가?”

   론은 다소 붉어지기는 했지만, 그다지 불쾌하지 않는 얼굴로 다시 양배추를 향해 휙 돌아섰다.

   “형들 사업이나 잘하셔.”

   “거 대답 한번 상냥하군.”

   프레드가 말했다.

   “네가 우리 사업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 몰랐구나. 아니,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말이지…….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여학생이 사고를 당하거나 뭐 그런 건 아니야?”

   “뭐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토록 머리가 이상해질 수가 있겠어. 어, 조심해!”

   바로 그때 위즐리 부인이 방으로 들어오다가 론이 프레드를 향해 칼을 던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하지만 프레드는 태연하게 지팡이를 한 번 까딱하더니 날아오는 칼을 종이비행기로 바꿔 버렸다.

   “론!”

   위즐리 부인이 화가 나서 소리를 꽥 질렀다.

   “또다시 칼을 던지는게 내 눈에 띄기만 해 봐라!”

   “안 그럴게요. 정말이에요.”

   론은 숨을 씩씩거리며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산더미 같은 양배추를 향해 돌아섰다.

   “프레드, 조지, 미안하지만 리무스가 오늘 밤에 여길 온다는구나. 비좁더라도 오늘 밤엔 빌이랑 같이 자야겠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지가 순순히 대답했다.

   “찰리는 집에 오지 않을 거니까 해리와 론은 그대로 다락방을 쓰도록 하고, 플뢰르가 지니와 한방을 쓰게 되면…….”

   “거참, 지니의 크리스마스 정말 볼 만하겠군.”

   프레드가 중얼거렸다.

   “그러면 모두들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어쨌든 각자 침대 하나씩은 차지하게 되겠지.”

   위즐리 부인이 약간 골치 아프다는 듯이 말했다.

   “퍼시는 그 꼴 보기 싫은 얼굴을 안 내밀 게 확실하죠?”

   위즐리 부인은 고개를 돌린 채 대답했다.

   “그래. 네 형은 마법부 일이 바쁠 거야.”

   “아니면 세상에서 제일가는 멍청이거나…….”

   프레드가 빈정거리자, 위즐리 부인은 부엌을 나가 버렸다.

   “둘 중 하나겠지. 자, 그럼 우린 그만 나가 보실까, 조지.”

   “도대체 형들 둘은 뭘 하는 거야?”

   론이 따졌다.

   “이 양배추 벗기는 것 좀 도와줄 수 없어? 형들은 간단하게 지팡이를 쓸 수 있잖아! 그럼 우리도 이 일에서 해방되고 말이야!”

   “아니, 그렇게는 안 되겠다.”

   프레드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법을 쓰지 않고 양배추 벗기는 일은 인격 수양에 아주 중요하거든. 머글들이나 스큅들이 얼마나 힘들게 이 일을 하는지 깨닫게 해 주니까…….”

   “게다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말이다, 론.”

   조지가 그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던지며 얼른 말을 이었다.

   “칼을 던지거나 해서는 안 되는 법이야. 한 가지 더 알려 주자면 우린 마을로 갈 생각이란다. 내 카드 속임수를 진짜 마법만큼이나 굉장하다고 생각해 주는 어여쁜 잡화점 점원 아가씨를 만나러…….”

   “제기랄.”

   론은 눈 덮인 마당을 걸어 나가는 프레드와 조지의 모습을 쳐다보며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형들이 10초만 도와주면 우리도 같이 갈 수 있었을 텐데.”

   “난 안 돼.”

   해리가 말했다.

   “여기 있는 동안 나돌아 다니지 않겠다고 덤블도어 교수님과 약속했어.”

   론은 양배추를 몇 개 더 벗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스네이프와 말포이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덤블도어 교수님께 말씀드릴 거니?”

   “물론이지.”

   해리가 대답했다.

   “그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한테든 이야기할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은 그중 1순위이지. 네 아버지와도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볼 생각이야.”

   “말포이가 실제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를 못 들은 게 정말 안타깝다.”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잖아, 안 그래? 중요한 건, 말포이가 스네이프한테까지도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이야.”

   잠시 침묵이 흘렀고, 론이 다시 말을 꺼냈다.

   “하지만 모두들 뭐라고 말할지 너도 잘 알잖아? 우리 아빠나 덤블도어 교수님, 전부 말이야. 틀림없이 스네이프가 진짜로 말포이를 도와주려고 했던 게 아니라 말포이의 속셈을 알아내려고 했던 거라고 말할 거야.”

   “스네이프가 말하는 걸 못 들어서 그래.”

   해리가 딱 잘라 말했다.

   “아무도 그렇게 연기를 잘할 수는 없어. 설사 스네이프라도 말이야.”

   “그래…… 그냥 그렇단 얘기야.”

   론이 우물거렸다. 해리가 인상을 쓰며 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넌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지?”

   “그럼, 그렇고말고!”

   론이 황급히 대답했다.

   “정말로 그래! 하지만 어른들은 모두 스네이프가 기사단의 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잖아, 안 그래?”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사실이야말로 그가 발견한 새로운 증거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박이 될 수 있음은 이미 짐작한 바였다. 벌써 헤르미온느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스네이프는 분명 말포이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도와주는 척했을 거야, 해리…….”

   하지만 그건 단지 그의 상상일 뿐, 사실은 헤르미온느에게 그가 엿들은 사실을 이야기해 줄 기회조차 없었다. 해리가 슬러그혼의 파티장으로 되돌아갔을 때 헤르미온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잔뜩 화가 난 맥클라건이 그 사실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그가 휴게실로 갔을 때 헤르미온느는 이미 침실로 올라간 다음이었다. 다음 날 해리와 론은 아침 일찍 버로우로 떠났기 때문에, 헤르미온느에게 간신히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고는, 방학이 끝나고 돌아오면 아주 중대한 뉴스가 있을 거라는 말만 겨우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과연 그의 말을 들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바로 그때 해리의 등 뒤에서 론과 라벤더가 전혀 말이 필요 없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헤르미온느조차도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말포이가 분명히 무슨 일을 꾸미고 있으며, 스네이프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해리는 이미 론에게 수차례 그랬던 것처럼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라는 말을 너무나 당당하게 헤르미온느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즐리 씨는 크리스마스 전날에도 마법부에서 늦게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해리는 좀처럼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위즐리 가족과 손님들이 거실에 모여 앉았다. 지니가 어찌나 요란하게 장식을 해 놓았는지 거실은 꼭 색종이 사슬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트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천사는 정원의 땅신령인데, 프레드가 크리스마스 만찬에 쓸 당근을 뽑다가 자기 발목을 깨무는 것을 잡아온 것이었다. 이 사실은 프레드와 조지, 해리, 론만이 알고 있었다. 온몸에 금칠을 하고 작은 발레복을 억지로 끼워 입은 땅신령은 기절 마법에 걸린 채 등에 작은 날개를 붙이고서 모든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해리는 발에 털이 복슬복슬 나고 벗겨진 머리통이 꼭 울퉁불퉁한 감자처럼 생긴 이 녀석만큼 징그러운 천사는 난생처음이었다.

   그들은 다 함께 위즐리 부인이 제일 좋아하는 가수인 셀레스티나 와베크의 크리스마스 특별 방송을 듣기로 했다. 커다란 목재 무선 오디오에서는 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플뢰르는 셀레스티나가 시시하다고 생각했는지 한쪽 구석에서 큰 소리로 계속해서 떠들어댔고, 그 때문에 위즐리 부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계소해서 지팡이로 볼륨을 높이는 바람에 셀레스티나의 노랫소리는 점점 더 커져 갔다. ‘강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 찬 냄비’ 라는 강한 재즈풍의 곡이 흘러나오는 것을 틈타, 프레드와 조지는 지니와 함께 폭발카드 놀이를 시작했다. 론은 한 수 배우고 싶은 듯 남몰래 빌과 플뢰르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야위고 추레한 몰골을 한 리무스 루핀은 벽난로 옆에 앉아서 골똘히 불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셀레스티나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오, 와서 내 냄비를 저어요

     제대로만 저어 준다면

     난 그대를 향한 강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끓어올라

     오늘 밤 그대를 따뜻하게 덥혀 주리라.

   “우리가 열여덟 살이었을 때, 이 곡에 맞추어 춤을 췄었는데!”

   위즐리 부인이 뜨개질감으로 눈시울을 훔치며 말했다.

   “당신도 기억나죠, 아서?”

   “으응?”

   사추마(오렌지처럼 생긴 작고 씨 없는 과일 : 역주) 껍질을 까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던 위즐리 씨가 대답했다.

   “어, 그래……. 정말 훌륭한 곡이오…….”

   위즐리 씨는 힘겹게 몸을 좀 펴고는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해리를 바라보았다.

   “미안하구나.”

   위즐리 씨는 무선 오디오를 향해 까닥 고개짓을 하며 말했다. 이제 셀레스티나의 노래는 후렴구로 접어들고 있었다.

   “곧 끝날 거야.”

   “괜찮습니다.”

   해리가 씩 웃으며 말했다.

   “마법부 일로 계속 바쁘신가 봐요?”

   “굉장히 바쁘단다.”

   위즐리 씨가 대답했다.

   “그래도 성과만 있으면 괜찮겠는데, 지난 두 달 동안 우리가 체포한 세 명 중에서 한 명이라도 진짜 죽음을 먹는 자가 있을지 솔직히 의심스럽구나. 해리 어디가서 이런 얘기는 하지 말거라.”

   위즐리 씨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은 표정으로 재빨리 덧붙였다.

   “슽탠 션파이크를 아직도 붙잡고 있는 건 아니겠죠?”

   해리가 물었다.

   “안타깝지만 그렇단다.”

   위즐리 씨가 대답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스크림저 장관에게 직접 스탠에 대한 탄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단다. 실제로 그자를 취조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자가 이 사추마만큼이나 죽음을 먹는 자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인정할 텐데……. 하지만 윗사람들은 일이 진전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길 원하지. ‘세 건의 체포’ 가 ‘세건의 잘못된 체포와 석방’ 보다는 훨씬 더 그럴듯하게 들리니까…….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최고 기밀 사항이란다…….”

   “아무 말도 안 할게요.”

   해리는 다짐을 했다. 그러고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셀레스티나 와베크가 다시 ‘당신은 마법으로 내 마음을 가져가 버렸네’ 라는 발라드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위즐리 씨, 저희들이 학교로 떠나기 전에 제가 기차역에서 말씀드렸던 거 기억하시죠?”

   “나도 조사를 해 보았단다, 해리.”

   위즐리 씨가 즉시 대답했다.

   “말포이네 집에 가서 수색을 했는데, 망가진 것이든 성한 것이든 거기 있지 말아야 하라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어.”

   “예, 저도 알아요. 《예언자 일보》에서 읽었어요……. 그런데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좀 더 중요하기도 하고요…….”

   해리는 말포이와 스네이프에게서 엿들은 이야기를 전부 위즐리 씨에게 들려주었다. 해리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루핀도 이쪽으로 약간 고개를 돌리고는 한 마디 한 마디 주의 깊게 듣는 것 같았다.  해리가 말을 마치자, 방 안에는 오직 셀레스티나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만 가득했다.

     오, 가엾은 내 마음, 어디로 갔을까?

     마법에 걸려 내 곁을 떠났네…….

   “해리, 혹시 이런 생각은 안 들었니? 스네이프가 그냥 그런 척하는 거라는……?”

   위즐리 씨가 말을 꺼냈다.

   “말포이의 속셈을 알아내기 위해 도움을 주는 척한단 말이죠?”

   해리가 재빨리 대꾸했다.

   “예,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걸 어떻게 장담하죠?”

   “그건 우리의 소관이 아니야.”

   갑가지 루핀이 끼어들었다. 그는 이제 벽난로를 등진 채, 위즐리 씨를 가운데 두고 해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믿는다면, 우린 모두 믿어야만 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덤블도어 교수님이 왜 스네이프에 대해서 잘못 아신 거라면요…….”

   “사람들이 여러 차례 그런 말을 했었지. 이건 네가 덤블도어 교수님의 판단을 믿느냐 못 믿느냐에 달려 있어. 나는 그분을 믿고, 따라서 세베루스도 믿는단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도 실수를 하실 수 있어요. 교수님 입으로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요?”

   해리가 따졌다. 그리고는 루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선생님은…… 진짜로 스네이프를 좋아하세요?”

   “난 스네이프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루핀이 대답했다.

   “정말이야, 해리. 난 진실을 말하는 거야.”

   해리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루핀이 덧붙였다.

   “아마 우리는 절대로 친한 친구 사이가 되지는 못할 거야. 제임스와 시리우스 그리고 세베루스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너무 많은 앙금이 남아있어. 하지만 내가 호그와트에 있던 1년 동안 세베루스가 나를 위해서 매달 울프스 베인 마법약을 만들어 주었던 걸 절대로 잊을 수는 없어. 그 약이 어찌나 완벽했던지 보름달이 뜰 때마다 겪어야 했던 그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지.”

“하지만 스네이프는 선생님이 늑대인간이란 사실을 ‘우연히’ 노출시켜서 결국 학교를 떠나게 만들었잖아요!”

루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실은 어떻게든 결국 들통이 났을 거야. 물론 그자가 내 자리를 원했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었지. 하지만 약을 만들면서 나에게 얼마든지 더 큰 해를 입힐 수도 있었어. 그런데도 나를 무사히 지켜 주었지. 난 그걸 고마워해야 해.”

   “덤블도어 교수님이 뻔히 지켜보고 계시는데 감히 약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는 없었을 거예요!”

   해리가 소리쳤다.

   “넌 그자를 미워하기로 작정한 사람같구나, 해리.”

   루핀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해한다. 네 아버지인 제임스나 네 대부인 시리우스처럼, 너도 뿌리 깊은 편견을 물려받았어. 어쨌든 네가 아서와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덤블도어 교수님께도 말씀드리거라. 하지만 그분께서 이 문제에 대해서 너와 똑 같은 의견이실 거라고는 기대하지 말아라. 심지어 네 말에 별로 놀라지 않으실지도 몰라. 어쩌면 덤블도어 교수님의 명령으로 세베루스가 말포이를 조사한 것인지도 모르지.”

     ……이제 당신이 제 가슴을 산산히 부숴 놓았으니

     부디 다시 돌려주세요!

   셀레스티나는 날카로운 고음을 길게 끌면서 노래를 마쳤고, 무선 오디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위즐리 부인도 열렬히 그 박수 갈채에 동참했다.

   “이제 끙났어?”

   플뢰르가 요란스럽게 떠들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끙찍했어.”

   “그럼 다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볍게 한 잔씩 할까요?”

   위즐리 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에그노그(우유와 설탕이 들어간 달걀술 : 역주) 마실 분?”

   “요즘 뭐하고 지내셨어요?”

   해리가 루핀에게 물었다.

   위즐리 씨는 에그노그를 가지러 서둘러 나가고 다름 사람들 모두 기지개를 펴며 각자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밑에서 숨어 지냈단다.”

   루핀이 대답했다.

   “말 그대로 땅 밑에서 지냈어. 그래서 편지도 못 썼던 거란다, 해리. 너에게 편지를 보내면 내 정체가 탄로날지도 물라서.”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 동료들과 함께 지냈거든. 나와 똑 같은 사람들 말이야.”

   루핀이 설명했다.

   “늑대인간들 말이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해리를 보자, 루핀이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늑대인간들 거의 대부분이 볼드모트의 편에 섰거든. 덤블도어 교수님은 첩자를 원했고, 그 일에는 바로 내가…… 적격이었지.”

   루핀은 다소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리더니, 자신도 그걸 깨달았는지 좀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불평을 하는 건 아니야. 꼭 필요한 일이었고, 나말고 누가 더 그 일을 잘할 수 있겠어? 하지만 그자들의 신뢰를 얻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 늑대인간들은 평범한 마법사 사회를 피해서 도둑질을 하거나 때로는 살인을 하며 살아가는데, 나는 아무래도 마법사들 틈에서 살아가려고 애쓴 티가 났지.”

   “늑대인간들이 어쩌다가 볼드모트를 좋아하게 되었죠?”

   “볼드모트의 지배하에서라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거야?”

   루핀이 말했다.

   “그리고 그 밑에서 나오겠다고 그레이백과 맞서 싸우기도 힘들고…….”

   “그레이백이 누구죠?”

   “그 이름을 못 들어 봤니?”

   루핀은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불끈 쥐었다.

   “펜리 그레이백은 아마도 오늘날 살아 있는 가장 사나운 늑대인간일 거야.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물어서 전염시키는걸 자신의 평생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놈이지. 마법사들을 능가할 만큼 많은 늑대인간을 만들어 내고 싶어 해. 볼드모트는 그에게 협조에 대한 대가를 약속했단다. 그는 특히 어린아이들을 전문으로 하는데, 어린애를 물어서 부모로부터 떼어 놓고 기르면 마법사들을 증오하게 된다고 주장하지. 볼드모트는 그레이백을 시켜 사람의 아들이나 딸을 물게 하겠다고 협박을 하는데, 대개는 아주 효과가 좋아.”

   루핀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문 것도 바로 그레이백이었어.”

   “뭐라고요?”

   해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럼, 선생님이 어렸을 때 그랬단 말인가요?”

   “그래, 우리 아버지가 그자의 성미를 건드렸거든.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공격했던 늑대인간의 정체도 모르는 채, 심지어 그자를 불쌍하게 생각하기까지 했었어. 늑대로 변할 때의 기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자도 다만 어쩔 수 없이 그러는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그레이백은 그게 아니었어. 보름달이 뜰 때면, 그자는 일부러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목표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지. 모든 걸 철저한 계획하에 하는 거야. 볼드모트는 늑대인간들을 군대로 조직하기 위해서 바로 그자를 이용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 늑대인간들은 피를 볼 자격이 있고 보통 사람들에게 복수를 해야만 한다는 그레이백의 주장에 맞서서, 내 특기인 합리적 논쟁이 썩 먹혀들어갔다고는 말할 수 없구나.”

   “하지만 선생님도 보통 사람이에요!”

   해리가 강력하게 주장했다.

   “단지…… 그냥…… 좀 골칫거리가 있을 뿐이죠.”

   루핀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가끔 널 보면 제임스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니까. 제임스도 사람들 앞에서 그 일을 두고 ‘털 달린 조그만 골칫거리’ 라고 부르곤 했지.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버릇 나쁜 토끼라도 기르고 있는 줄 알았지 뭐야.”

   루핀은 좀 더 밝아진 표정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위즐리 씨가 내민 에그노그 잔을 받아 들었다. 한편 해리는 갑자기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방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오랫동안 루핀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 떠올랐던 것이다.

   “혹시 혼혈 왕자라는 이름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세요?”

   “혼혈 뭐라고?”

   “왕자요.”

   해리는 루핀이 뭔가 알아채는 기색을 보이지 않을까 해서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법사 세계에 왕자라는 건 없어.”

    루핀이 싱끗 웃으며 말했다.

   “그게 네가 앞으로 쓰기로 한 호칭이냐? ‘선택받은 자’ 라는 호칭만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거예요!”

   해리가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혼혈 왕자는 호그와트에 다녔던 학생인데, 그 사람의 옛날 마법약 책을 제가 가지고 있거든요. 그 사람은 그 책에다 온통 주문들을 써 놓았어요. 자기가 고안해 논 주문들을 말이죠. 그중 하나가 레비코푸스 주문인데…….”

   “오, 내가 호그와트에 다니던 시절에 그 주문이 엄청 인기를 끌었지.”

   루핀이 추억에 잠겨 중얼거렸다.

   “5학년 때 몇 달 동안은 발목을 붙잡혀 허공에 거꾸로 매달리지 않으면 어딜 나다니지도 못할 정도였단다.”

   “제 아빠도 그 주문을 썼었죠.”

   해리가 말했다.

   “펜시브에서 아빠가 스네이프에게 그 주문을 쓰는 걸 봤어요.”

   해리는 전혀 대수롭지 않게 그저 툭 내뱉는 말처럼 태연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자신할 수는 없었다. 루핀이 다 할겠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던 것이다.

   “그래, 하지만 네 아빠만은 아니었어. 방금 말했지만 그 주문이 대단히 유행을 했거든…… 주문들도 유행에 따라 왔다가 사라진다는 걸 너도 알 거다.”

   “하지만 제가 듣기론 선생님이 학교에 다닐 때 그 주문이 만들어진 것 같은데요?”

   해리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꼭 그런 건 아니야.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주문이란것도 유행을 타니까.”

   루핀은 해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제임스는 순수 혈통이었어, 해리.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자기를 ‘왕자’ 라고 불러 달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단다.”

   해리는 더 이상 태연한 척 구는 것을 포기하고 끈질기게 물었다.

   “그럼 시리우스가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선생님은요?”

   “물론 아니지.”

   “오.”

   해리는 타오르는 불꽃을 멍하니 응시했다.

   “전 그냥 그럴 줄 알았죠. 사실 마법약 수업 시간에 그 왕자가 아주 많은 도움이 되고 있거든요.”

   “그 책이 얼마나 오래된 거지, 해리?”

   “몰라요. 그건 확인해 본 적이 없어서.”

   “왕자가 언제 호그와트에 다녔는지 알면 무슨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르겠구나.”

   루핀이 말했다.

   루핀의 말이 끝나자, 플뢰르가 셀레스티나의 ‘강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 찬 냄비’ 를 흉내내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들 일제히 위즐리 부인의 표정을 힐끔 살피고는, 그것을 그만 잠자리에 들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해리와 론은 지붕밑 론의 침실로 기어 올라갔다. 그곳에는 해리를 위해 간이침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론은 거의 자리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해리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방을 뒤져서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리저리 책을 뒤적인 결과, 마침내 제일 앞페이지에서 책이 출간된 연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50년 전에 나온 것이었다. 50년 전이라면 그의 아버지나 아버지의 친구들은 호그와트에 있지도 않았을 때였다. 몹시 실망한 해리는 책을 다시 가방 안에 던져 넣고 불을 껐다. 그리고 늑대인간과 스네이프. 스탠 션파이크, 그리고 혼혈 왕자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뒤척이다가 결국 서서히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들과 늑대에게 물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찬, 뒤숭숭한 잠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얘가 장난을 치나…….”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해리는 침대 발치에 불룩해진 양말 한 짝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해리는 안경을 쓰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작은 유리창은 눈이 쌓여 완전히 가려져 있었고, 그 앞에서는 론이 침대에 똑바로 앉아서 두꺼운 황금 사슬처럼 생긴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그게 뭐야?”

   해리가 물었다.

   “라벤더가 보낸 거야.”

   론이 불쾌한 어조로 투덜거렸다.

   “설마 나더러 진짜 이걸 목에 걸라는 건 아니겠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본 해리는 푸하하 웃고 말았다. 사슬 끝에 다음과 같은 커다란 황금 글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내 사랑

   “멋진걸. 아주 고급이야. 프레드와 조지 형들 앞에 그걸 꼭 걸고 나가 봐.”

   해리가 말했다.

   “형들에게 말하기만 해 봐.”

   론은 보이지 않게 베개 밑으로 목걸이를 감추었다.

   “그, 그, 그땐…….”

   “내 앞에서 말을 더듬는 거니? 내가 정말 그럴까 봐?”

   해리가 씩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걔는 어떻게 내가 이런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할 수가 있지?”

   론은 꽤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허공에 대고 혼자 중얼거렸다.

   “음, 잘 생각 해 봐. 네가 ‘내 사랑’ 이란 글자를 목에 걸고 버젓이 사람들 앞에 나가고 싶다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는지 말이야.”

   해리가 말했다.

   “글쎄…… 사실 우린 별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서……. 대개는 주로…….”

   론이 머뭇거렸다.

   “껴안고 쓰다듬기만 했지.”

   해리가 대신 말했다.

   “그래, 맞아.”

   론은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헤르미온느가 맥클라건이랑 사귀는 게 사실이니?”

   “난 몰라. 슬러그혼 파티에 둘이 함께 오긴 했는데, 그리 잘되는 것 같진 않았어.”

   해리가 대답했다.

   그러자 론은 훨씬 밝아진 얼굴로 자기 양말 속을 계속 파헤쳤다.

   해리가 받은 선물은 커다란 스니치가 앞에 수놓아진, 위즐리 부인이 손수 짠 스웨터와 쌍둥이 형제가 보내온 위즐리 형제의 신기한 장난감 가게의 물건이 담긴 커다란 상자, 그리고 ‘주인님께, 크리처로부터’ 라고 적힌 딱지가 붙은 약간 축축하고 곰팡내 나는 소포 꾸러미였다.

   해리는 그 꾸러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과연 이걸 열어도 될까?”

   “위험한 게 들어 있을 리는 없을 거야. 우리가 받는 우편물들은 여전히 마법부에서 검사를 하니까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서도 론 역시 의심스런 눈길로 꾸러미를 바라보았다.

   “난 크리처에게 뭔가 보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대개 꼬마 집요정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니?”

   해리가 조심스럽게 꾸러미를 쿡 찌르면서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그렇게 하더라. 괜한 죄책감부터 느끼지 말고 먼저 그게 뭔지나 확인해 보자.”

   론이 말했다.

   잠시 후 해리는 꽥 비명을 지르며 간이침대에서 후다닥 뛰쳐나왔다. 꾸러미 속에는 굵은 구더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끝내 주네.”

   론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신경 많이 썼네.”

   “그랟 그 목걸이보단 나아.”

   해리가 톡 쏘아붙이자, 론의 얼굴이 금세 딱딱하게 굳어졌다. 

   모두들 새 스웨터를 입고 크리스마스 점심 식탁 앞에 모여 앉았다. 플뢰르(부인은 그녀를 위해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와 위즐리 부인만이 예외였다. 부인은 작은 별 모양의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 반짝반짝 빛나는 최신식의 짙은 푸른색 마녀 모자와 눈에 번쩍 띄는 금 목걸이를 자랑스럽게 걸고 있었다.

   “프레드와 조지가 이걸 선물했단다! 정말 예쁘지 않니?”

   “이제 우리 양말을 직접 손으로 빨아 보니, 갈수록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조지가 점잖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거기 파스닙(미나리과의 식물 : 역주) 좀 건네주실래요, 리무스?”

   “해리, 머리에 구더기가 있어.”

   지니가 킬킬거리며 구더기를 떼 주려고 식탁 너머로 몸을 숙였다. 해리는 갑자기 목더미에 전율을 느꼈지만, 그건 구더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우, 끙찍해.”

   플뢰르가 과장되게 살짝 몸서리를 쳤다.

   “맞아, 정말 그렇지?”

   론이 맞장구를 쳤다.

   “고깃국물 좀 줄까, 플뢰르?”

   플뢰르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론은 둥둥 떠다니는 고깃국물 그릇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빌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고깃국물은 다시 거꾸로 솟더니 순순히 그릇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꼭 통스처럼 덩렁대네.”

   빌에게 감사의 키스를 하고 난 플뢰르는 론에게 핀잔을 주었다.

   “통스도 항상 물겅응 쓰러뜨리는뎅…….”

   “안 그래도 ‘귀여운’ 통스에게 오늘 오라고 초대를 했었단다.”

   위즐리 부인이 괜히 당근을 탁 하고 세게 내려놓더니 플뢰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데 오지 않았어. 혹시 최근에 통스와 이야기해 본 적 있나요, 리무스?”

   “아니요. 요즘엔 거의 아무도 안 만났거든요. 하지만 통스는 자기 가족에게 갔겠지요, 안 그래요?”

   루핀이 대답했다.

   “흠…….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통스는 왠지 혼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작정인 것 같았어요.”

   위즐리 부인이 말했다.

   위즐리 부인은 마치 통스 대신 플뢰르를 며느리도 맞이하게 된 것이 모두 루핀의 탓인 양 짜증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해리는 자기 포크로 빌에게 칠면조 고기를 열심히 먹여 주고 있는 플뢰르를 보면서, 위즐리 부인이 승산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통스에 관해서 궁금한 점이 하나 떠올랐다. 패트로누스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사람, 루핀이 아니면 어느 누구에게 그걸 물어보겠는가?

   “통스의 패트로누스 모습이 달라졌어요.”

   해리가 루핀에게 말했다.

   “스네이프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죠? 패트로누스가 왜 변하는 거죠?”

   루핀은 때마침 칠면조 고기를 씹고 있었기 때문에 꿀꺽 삼킨 후에야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가끔 그렇기도 해…… 커다란 충격이나…… 감정의 변화로 인해서…….”

   “아주 덩치가 큰 네발짐승이었어요.”

   갑자기 떠오른 어떤 생각에 크게 충격을 받은 해리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설마…… 그건……?”

   “아서!”

   그때 위즐리 부인이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손으로 심장 부근을 꽉 누르며 부엌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서…… 퍼시예요!”

   “뭐라고?”

   위즐리 씨가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들 재빨리 창문 족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니는 더 잘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분명히 퍼시 위즐리가 햇빛에 뿔테 안경을 번쩍거리며 눈 덮인 마당을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아서, 퍼…… 퍼시가 장관님과 함께 오고 있어요!”

   과연 해리가 《예언자 일보》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 약간 다리를 절뚝이며 퍼시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사자 갈기 같은 그의 회색 머리카락과 검은 망토는 하연 눈이 묻어 희끗희끗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위즐리 씨와 위즐리 부인 조차 넋 나간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마주 보고 있는데, 뒷문이 열리더니 퍼시가 거기에 서 있었다.

   한동안 고통스런 침묵이 흐른 후, 퍼시가 딱딱한 어조로 인사를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어머니.”

   “오, 퍼시!”

   위즐리 부인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퍼시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루퍼스 스크림저는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문가에 서서 이 감동적인 광경을 빙그레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불쑥 찾아온 걸 부디 용서하십시오.”

   위즐리 부인이 눈물을 닦으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를 돌아보자, 스크림저가 입을 열었다.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었는데, 집에 잠깐 들러서 여러분들 얼굴을 한 번 보지 않고는 도저히 그냥 갈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퍼시는 어머니 이외의 다른 가족들과는 인사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서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위즐리 씨와 프레드, 조지는 돌처럼 굳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서 들어와서 앉으세요, 장관님!”

   위즐리 부인이 모자를 매만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저…… 칠면조 고기나 아니면 푸딩이라도 좀……. 그러니까 제 말은…….”

   “아닙니다, 아니에요, 몰리.”

   스크림저가 말했다.

   해리는 두 사람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장관이 먼저 퍼시에게 부인의 이름을 물어보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전 방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웬만하면 절대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퍼시가 너무나도 여러분 모두를 보고 싶어 하는 바람에…….”

   “오, 퍼시!”

   위즐리 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퍼시에게 다가가 키스를 했다.

   “저희는 5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퍼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는 정원이나 한 바퀴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전 정말이지 방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 혹시 누군가 이 집의 멋진 정원을 구경시켜 주실 분이 있을까요? 아, 저기 있는 젊은이가 식사를 끝낸 모양이군요. 자네가 나와 함께 잠시 산책하지 않겠나?”

   순간 식탁 주위의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모두의 시선이 스크림저에서 해리에게로 옮겨졌다. 해리의 이름을 전혀 모른다는 듯이 구는 스크림저의 태도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지니나 플뢰르, 조지지의 접시도 깨끗이 비어 있는 마당에 굳이 정원을 함께 산책할 상대로 해리를 고른 것이 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네, 그러지요.”

   해리가 침묵을 깨고 대답했다.

   해리는 속지 않았다. 근처를 지나던 길이었다느니, 퍼시가 가족들을 보고 싶어 했다느니 하는 스크림저의 온갖 변명에도 불고하고, 그들이 찾아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 게 분명했다. 결국 스크림저는 해리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괜찮아요.”

   해리는 의자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는 루핀 앞을 지나가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괜잖다니까요.”

   위즐리 씨도 뭔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하자, 해리가 다시 한 번 덧붙였다.

   “좋아!”

   스크림저는 해리가 먼저 문밖으로 나가도록 비켜서면서 말했다.

   “그럼, 우린 정원을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그런 다음 퍼시와 저는 떠나도록 하지요, 계속 이야기 나누십시오, 여러분!”

   해리는 잡초가 무성하고 눈으로 뒤덮ㅇ인 위즐리네 정원을 향해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스크림저는 약간 절뚝거리며 그와 나란히 걸었다. 오러 사무국의 국장을 지냈던 사람답게 전투의 상흔을 지닌 거친 인상이, 중산모자를 쓴 뚱뚱한 퍼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멋지구나.”

   정원 담장 앞에서 걸음을 멈춘 스크림저는 눈 덮인 잔디밭과 형체를 구별할 수 없는 잡초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정말 멋있어.”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스크림저가 자길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후에 스크림저가 운을 뗐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네를 만나고 싶었다네. 자네도 그걸 알고 있었나?”

   “아니요.”

   해리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네, 아주 오래전부터였어. 하지만 덤블도어가 자네를 어찌나 철저히 보호하던지.”

   스크림저가 말했다.

   “물론 당연한 일일세. 자네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당연하고 말고……. 특히 마법부에서 일어났던 그 일은…….”

   스크림저는 해리가 뭔가 말해 주기를 기다렸지만 해리가 꿈쩍도 하지 않자,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장관이 된 이후부터 줄곧 자네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고 싶어 했다네. 하지만 덤블도어가, 물론 충분히 이애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지 못하게 했지.”

   해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온 사방에 소문들이 떠돌고 있어!”

   스크림저가 말했다.

   “글쎄, 우리 두 사람 다 그 소문들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는 모르는 바가 아니지. 예언이라느니…… 자네가 ‘선택받은 자’ 라느니 하는 말들…….”

   해리는 이제 스크림저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덤블도어와 자네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의논한 적이 있을 것 같은데……?”

   해리는 거짓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는 꽃밭 주위에 잔뜩 찍힌 꼬마 땅신령의 발자국과 프레드가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 발레복을 입혀서 세워 놓은 땅신령을 붙잡았던 자리에 남아 있는 격투의 흔적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마침내 진실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완전한 진실은 아닐수도 있지만 말이다.

   “네, 의논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군, 그랬어…….”

   스크림저가 중얼거렸다.

   해리는 곁눈질로 스크림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자기를 쳐다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얼어붙은 철쭉 밑에서 머리를 불쑥 내민 땅신령에게 정신을 팔고 있는 척했다.

   “그래, 덤블도어가 무슨 말을 했지, 해리?”

   “죄송합니다만 그건 교수님과 저 사이의 일입니다.”

   해리는 가능한 한 상냥하게 대답하려고 애를 썼다. 스크림저의 목소리 또한 가볍고 다정했다.

   “오, 그렇겠지. 신뢰의 문제일 테니까. 나도 자네더러 비밀을 누설하라는 건 아닐세. 그건 아니지…… 아니야……. 사실 자네가 ‘선택받은 자’인지 아닌지 하는 게 진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해리는 잠시 동안 그 말을 곰곰히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무슨 말씀인지 전 통 모르겠습니다, 장관님.”

   “아, 물론 자네에게는 아주 굉장히 중요한 문제겠지.”

   스크림저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마법사 전체를 놓고 보면…… 모든 게 생각하기에 달려 있어, 안 그런가? 사람들이 뭘 믿느냐, 그게 가장 중요하단 말일세.”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서서히 이야기의 요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굳이 스크림저의 말을 거들어 주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철쭉 밑에 있는 땅신령은 이제 철쭉 뿌리를 파헤치며 벌레를 찾고 있었다. 해리는 땅신령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네가 ‘선택받은 자’ 라고 믿고 있네.”

   스크림저가 말을 이었다.

   “자네를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물론 ‘선택받은 자’ 든 아니든 간에, 자넨 영웅일세, 해리! 자네가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과 맞서 싸운 것이 도대체 몇 번인가?”

   스크림저는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 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자네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상징이라는 걸세, 해리.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을 없앨 수 있는, 심지어 그런 운명을 타고난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당연히 사람들의 사기는 올라가는 법이지. 그러니 나로서는 일단 자네가 이런 사실을 깨닫고 마법부 편에 서서 모든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이 자네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군,”

   이제 겨우 벌레 한 마리를 잡는 데 성공한 땅신령은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벌레를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해리가 오랫동안 아무 대답이 없자, 스크림저는 해리에게서 땅신령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참 재미있는 녀석들이지, 안 그런가? 그런데 해리, 자네의 대답을 듣고 싶군.”

   “전 장관님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해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법부 편에 서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

   “오, 성가신 일은 전혀 없을 거라네. 내 약속하지.”

   스크림저가 말했다.

   “이를 테면 가끔 자네가 마법부에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보여서 사람들에게 올바른 인상만 심어 주면 된다네. 그리고 물론 자네가 마법부에 있는 동안, 나의 후임으로 오러 사무국 국장이 된 가웨인 로바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을 걸세. 돌로레스 엄브릿지에게 들었는데, 자네가 오러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하더군. 그런 일쯤이야 아주 쉽게 주선할 수가 있다네…….”

   해리의 뱃속이 분노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렇다면 돌로레스 엄브릿지가 아직도 마법부에 남아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결국 장관님은 제가 마법부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으신 거로군요?”

   해리가 마치 몇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못 박아 두려는 듯이 말했다.

   “자네가 좀 더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모두들 사기가 올라갈 걸세, 해리.”

   스크림저는 해리가 그렇게 빨리 말귀를 알아들어서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선택받은 자’…… 이건 모두 사람들에게 희망을, 그러니까 뭔가 아주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제가 계속해서 마버부를 들락날락 한다면요…….”

   해리는 여전히 우호적인 목소리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제가 마법부에서 하는 일들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글쎄…….”

   스크리저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야 그렇지. 사실 부분적으로는 그런 이유도…….”

   “아뇨, 제 생각은 달라요.”

   해리가 명랑하게 말했다.

   “저는 마법부에서 하는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스탠 션파이크를 감금해 두는 것 같은 일 말이죠.”

   스크림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바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자네가 그런 일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네.”

   스크림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해리처럼 분노를 감추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은 아주 위험한 때이고,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네. 자넨 겨우 열여섯 살밖에 안 됐으니…….”

   “덤블도어 교수님은 저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으시죠. 하지만 그분도 스탠이 아즈카반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걸요.”

   해리가 말을 이었다.

   “장관님은 스탠을 희생양으로 삼고 계세요. 절 마스코트로 삼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이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마침내 스크림저가 다정한 척 애쓰는 기색도 없이 냉행한 어조로 말했다.

   “알겠다. 너는 네 영웅인 덤블도어처럼 마법부와 관계를 끊겠단 말이지?”

   “전 이용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법부에 봉사하는 것이 너의 의무라고 말 할 거야!”

   “그렇겠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감옥에 집어넣기 전에 그 사람이 진짜로 죽음을 먹는 자인지 조사하는 것이 장관님의 의무라고 말하겠죠.”

   해리는 서서히 감정이 격해졌다.

   “장관님은 바티 크라우치와 똑 같은 짓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도대체 장관님 같은 사람들은 뭘 제대로 하는 적이 없군요, 안 그런가요? 퍼지 씨는 바로 자기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도 모든 게 다 잘되고 있는 척하더니, 이제 장관님은 엉뚱한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고는, ‘선택받은 자’ 가 당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쓴단 말인가요?”

   “그럼 자네가 ‘선택받은 자’ 가 아니란 말인가?”

   스크림저가 말했다.

   “’선택받은 자’ 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장관님 입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요?”

   해리가 실소를 터뜨리며 빈정거렸다.

   “어쨌든 장관님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텐데요.”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어. 실언을 했군.”

   스크림저가 황급히 변명을 했다.

   “아뇨, 솔직하셨던 거죠.”

   해리가 말했다.

   “제게 하신 말씀 중에서 유일하게 솔직한 말이었어요. 장관님은 제가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으시잖아요. 다만 볼드모트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고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제가 도와주기만을 바라시죠. 하지만 전 결고 잊지 않았어요, 장관님…….”

   해리는 오른쪽 주먹을 들어 올렸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해리의 손등에는 돌로레스 엄브릿지가 살 위에 억지로 새겨 넣게 했던 글씨 자국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볼드모트가 돌아왔다는 걸 알리려고 했을 때, 장관님께서 절 옹호해 주신 기억은 전혀 없군요. 작년에는 마법부가 저와 친구가 되고 싶어 안달하지 않았죠.”

   두 사람은 발밑의 얼어붙은 땅처럼 싸늘한 침묵 속에 서 있었다. 한편 마침내 벌레를 끌어내는 데 성공한 땅신령은 철쭉 덤불 밑에 몸을 기댄 채, 만족스럽게 그것을 쭉쭉 빨아먹고 있었다.

   “덤블도어의 꿍꿍이가 뭐지?”

   스크림저가 느닷없이 퉁명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호그와트를 비우고 어딜 가는 거지?”

   “저도 몰라요.”

   해리가 대답했다.

   “설사 안다고 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겠지, 안 그런가?”

   스크림저가 물었다.

   “예, 말하지 않을 거예요.”

   해리가 대답했다.

   “좋아,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통해서 알아봐야겠군.”

   “한번 해 보시죠.”

   해리가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장관님은 퍼지 씨보다는 훨씬 현명하신 것 같으니, 그분의 실수를 교훈 삼아 뭔가를 배우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퍼지 씨는 호그와트에 간섭을 하려고 했었죠. 그리고 이제 그 분은 더 이상 장관이 아니에요.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은 변함없이 호그와트의 교장 선생님이시죠. 제가 장관님이라면 덤블도어 교수님을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긴 침묵이 흘렀다.

   “덤블도어가 널 철저하게 세뇌시켜 놓은 게 확실한 것 간군.”

   철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스크림저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덤블도어의 사람이라 이거지, 포터?”

   “예, 그래요.”

   해리가 말했다.

   “그 점이 확실해졌으니 다행이네요.”

   해리는 마법부 장관에게서 휙 돌아서서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 Ⅲ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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