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펠릭스 펠리시스
다음 날 아침 첫 시간에 해리는 약초학 수업이 있었다. 아침 식사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엿들을까 봐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덤블도어와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수업을 들으러 온실로 가면서 채소밭을 지나는 동안 모든 걸 자세히 들려주었다. 주말 내내 사납게 불던 바람은 마침내 기세가 꺾이고, 기분 나쁜 안개가 다시 사방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은 온실을 찾는 데 평소보다 조금 애를 먹었다.
“우와, 생각만 해도 으스스하다. 소년 시절의 그 사람이라니.”
세 사람이 이번 학기의 연구 대상인 비틀린 스네어갈러프 나무토막을 둘러싸고 앉아서 각자 보호용 장갑을 끼기 시작했을 때, 론이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왜 덤블도어 교수님이 너에게 이 모든 기억들을 보여 주는지 잘 모르겠어. 물론 굉장히 흥미롭고 다 좋긴 한데, 그래서 뭐가 어쨌단 말이지?”
“그야 모르지.”
해리가 고무 보호막을 끼우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은 이 모든 게 아주 중요하고, 나중에 내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어.”
“나는 아주 멋진 일인 것 같은데.”
헤르미온느가 진지하게 말했다.
“볼드모트에 대해서 가능한 한 많은 걸 알아야 한다는 건 너무나 지당한 일이야. 그렇지 않다면 그의 약점에 대해서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어?”
“지난번 슬러그혼 교수님의 파티는 어땠니?”
“오, 꽤 재미있었어. 정말이야.”
헤르미온느는 이제 보호용 안경을 쓰고 있었다.
“슬러그혼 교수님은 저명한 졸업생들에 대해서 한참을 떠들었어. 그리고 눈꼴이 실 정도로 맥클라건에게 아양을 떨더라. 그게 다 그 아이의 인맥이 빵빵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교수님이 내놓으신 음식은 진짜로 맛있었어. 참, 그웨녹 존스와 인사도 시켜 주셨어.”
“그웨녹 존스?”
보호용 안경을 쓴 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웨녹 존스 말이야” 홀리헤드 하피스 팀의 주장인 사람?”
“그래, 맞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여자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거기! 이제 그만 떠들고 입 다물어요!”
스프라우트 교수의 팔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주한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온 스프라우트 교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너희들은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지? 다른 학생들은 모두 시작했는데 말이야. 네빌은 벌써 첫 번째 씨주머니를 땄단 말이다!”
세 사람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과연 저쪽에 얼굴 한쪽을 여기저기 심하게 긁힌 네빌이 입술에서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 기분 나쁘게 펄떡펄떡 고동치는, 포도송이만 한 크기의 초록색 물체를 손에 움켜쥐고 앉아 있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저희들도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론이 얼른 대답했다. 그리고 스프라우트 교수가 다시 돌아서자마자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머플리아토 주문을 써 보자, 해리.”
“아니, 그럼 안 돼!”
늘 그렇듯이 헤르미온느는 혼혈 왕자와 그의 주문 이야기만 나오면 강하게 반발하며 즉시 반대하고 나섰다.
“자, 어서…… 이제 그만 우리도 시작하는 게 좋겠다…….”
헤르미온느가 한심스런 눈길로 다른 두 명을 바랍자, 그들은 일제히 깊은 한수을 내쉬며 그들 가운데에 놓여 있는 비틀린 나무토막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무토막은 순간 갑자기 되살아나더니, 꼭대기에섭터 길고 가시가 있는 들장미 넝쿨 같은 줄기들이 뻗어 나와 휙휙 감기자, 론이 정원용 가위로 탁 쳐서 쫓아 주었다. 해리는 한 쌍의 줄기들을 유인해서 서로 뒤엉키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촉수처럼 생긴 줄기들의 한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헤르미온느가 용감하게 그 속으로 팔을 집어넣자, 구멍은 마치 덫처럼 그녀의 팔을 꽉 물어 버렸다. 해리와 론이 다시 구멍을 열려고 줄기를 당기고 비틀고 한 끝에, 헤르미온느는 네빌의 것과 똑같이 생긴 씨주머니를 손에 쥔 채 다시 팔을 뺄 수 있었다. 동시에 가시가 달린 줄기들이 순식간에 안으로 움츠러들더니, 그저 평범한 죽은 나무둥치 같은 것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중에 내 집이 생기게 되면 난 정말이지 절대로 이런 것을 정원에서 기르지 않을 거야.”
론이 보호용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고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그릇 좀 줘.”
헤르미온느가 펄떡거리는 씨주머니를 쥔 손을 멀리하면서 말했다. 해리가 그릇을 넘겨주자, 그녀는 역겹다는 표정으로 씨주머니를 얼른 그릇 안에 떨어뜨렸다.
“토할 것처럼 굴지 말고, 다들 즙을 짜내도록 하세요! 신선할 때 제일 효과가 좋으니까 말이에요!:
스프라우트 교수가 소리쳤다.
“그런데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나무토막이 방금 그들을 공격했던 일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이, 조금 전에 중단했던 그들의 대화를 다시 이어갔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 모양이더라. 해리, 이번에는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갈 재간이 없을거야. 왜냐하면 나더러 네가 한가한 저녁이 언제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거든. 그러니 반드시 네가 올 수 있는 날 밤으로 파티 날짜를 잡겠지.”
해리가 신음 소리를 냈다. 한편 양손으로는 씨주머니를 붙잡고 그릇 안에서 터뜨리려고 애를 쓰던 론은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온 힘을 다해서 마구 씨주머니를 짓누르면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것도 순전히 슬러그혼이 총애하는 제자들만을 위한 파티겠네, 안 그래?”
“그래, ‘민달팽이 클럽’ 만을 위한 파티야.”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순간 씨주머니가 론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끈 빠져나가더니 온실 유리에 철썩 부딪힌 다음, 다시 튕겨 나가 스프라우트 교수의 뒤통수를 때리면서 그녀의 낡고 누덕누덕한 모자를 나려버렸다. 해리는 얼른 달려 나가 씨주머니를 주워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헤르미온느는 한창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론, ‘민달팽이 클럽’ 이란 이름은 내가 지은 게 아니야!”
“ ‘민달팽이 클럽’ 이라…….”
론은 딱 말포이에게나 어울릴 법한 비웃음을 실실 흘리며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거 참 안됐구나. 부디 즐거운 파티가 되길 바란다.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아예 맥클라건이나 꼬셔 보지 그러니? 그럼 슬러그혼이 너희를 한 쌍의 왕 달팽이와 여왕 달팽이로 만들어 줄 텐데…….”
“슬러그혼 교수님이 손님을 데려와도 된다고 했어.”
헤르미온느는 왠일인지 발그스레하게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난 너에게 같이 가자고 말할 작정이었는데, 네가 정 그렇게 한심하게 생각한다면 굳이 부탁하지는 않을게!”
해리는 문득 씨주머니가 좀 더 멀리까지 날아갔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이 두 사람 옆에 머쓱하게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 두 사람 옆에서, 해리는 씨주머니가 담겨 있는 그릇을 붙잡고서 생각해 낼 수 있는 한 가장 시끌벅적하고 야단스런 방법들을 총동원하여 씨주머니를 열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이 나누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여전히 너무나 똑독하게 그의 귀에 들어왔다.
“나를 초대할 생각이었다고?”
론의 목소리가 갑자기 180도 달라졌다.
“그래.”
헤르미온느가 토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맥클라건과 잘해 보라고 했으니까…….”
해리가 모종삽으로 탄력 있는 씨주머니를 열심히 두들기는 동안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론이 나지막이 말했다.
해리는 씨주머니를 친다는 걸 그만 그릇을 쳐 버렸고, 그 바람에 그릇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레파로.”
해리는 황급히 지팡이로 깨진 조각들을 툭툭 치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릇은 다시 멀쩡하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와장창하는 소리에 비로소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되더니, 당장 스네어갈러프 씨주머니의 즙을 짜내는 올바른 방법을 찾겠다며 《세계의 식육 나무》 책을 뒤지느라 난리였다. 한편 론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왠지 흐믓한 것 같았다.
“그걸 이리 좀 줘 봐, 해리.”
헤르미온느가 부산스럽게 말했다.
“이거 보면 뭔가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라고 되어 있어.”
해리는 씨주머니가 담긴 그릇을 헤르미온느에게 넘겨주고 론과 함께 보호용 안경을 쓴 다음, 다시 나무토막과 씨름하는데 몰두하였다.
해리는 그의 목을 조르려고 사납게 덤벼드는 가시넝쿨들과 싸우면서 이건 그다지 놀랄 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만간 이렇게 되리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와 초는 이제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는커녕 눈길만 스쳐도 당황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만약 론과 헤르미온느가 서로 데이트를 시작했다가 깨지기라도 한다면……? 그래도 그들의 우정은 지속될 수 있을까? 해리는 3학년 때 그들이 몇 주일 동안이나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지냈던 일을 떠올렸다. 멀어진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다리를 놓아 주려고 애를 쓰는 역할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그들이 깨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만약 두 사람이 빌과 플뢰르 사이처럼 된다면……? 그들은 함께 있는 것이 이만저만 쑥스럽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자신은 빠져 줘야 되는 걸까?
“좋았어.”
론이 소리쳤다. 헤르미온느가 간신히 첫 번째 씨주머니를 터뜨리는 순간, 론이 나무토막 안에서 두 번째 씨주머니를 꺼냈던 것이다. 이제 그릇 안에는 연한 초록색 애벌레처럼 보이는 씨앗들이 바글거렸다.
나머지 수업 시간은 더 이상 슬러그혼의 파티에 대한 말을 하지 않고 지나갔다. 해리는 다음 며칠 동안 두 친구를 좀 더 주의 깊게 지켜보았지만, 론과 헤르미온느는 평소보다 약간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 이외에는 전혀 달라진 구석이 없었다. 해리는 결국 파티 날 밤이 되어 어둑어둑한 슬러그혼의 방에서 버터 맥주를 잔뜩 마신 후에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걱정거리들이 많았다.
케이티 벨이 성 뭉고 병원에 들어가고 나서 전혀 퇴원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해리가 9월부터 그토록 공을 들여 훈련시킨 강력한 우승 후보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은 추격꾼 한 사람이 부족한 형편이었던 것이다. 케이티가 곧 돌아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그 자리를 비워 두고 있었지만, 슬리데린과의 개막전이 서서히 다가오면서, 이제는 케이티가 시합 때에 맞춰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해리는 도다시 그리핀도르 전체를 대상으로 선수 선발 테스트를 치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결국 해리는 퀴디치가 아닌 다른 이유에서 무거운 심정을 안고 변신술 수업이 끝난 후에 딘 토마스를 한쪽 구석으로 불렀다. 학생들 대부분은 교실을 떠나고, 노란 새 서너 마리만이 짹짹거리며 교실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건 전부 다 헤르미온느의 작품으로, 다른 학생들은 누구 하나 허공에서 깃털 하나도 불러내지 못했다.
“혹시 아직도 추격꾼을 하고 싶니?”
“물론이지! 그럼!”
딘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 순간, 해리는 딘의 어깨 너머로 시무스 피니건이 뿌루퉁해서 책을 가방 속에 마구 쑤셔 넣은 것을 보았다. 해리가 딘에게 선수로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고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는 시무스가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팀을 위해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선발 테스트 때 딘이 시무스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래, 그럼 하는 거다. 오늘 저녁 일곱 시에 연습이 있어.”
해리가 말했다.
“알았어.”
딘이 소리쳤다.
“잘 가라, 해리! 우와, 당장 지니에게 말해 줘야지!”
딘은 해리와 시무스만 남기고 쏜살같이 교실을 달려 나갔다. 헤르미온느의 카나리아들 중 한 마리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휙 스치고 지나가면서 시무스의 머리 위에 새똥을 똑 떨어뜨렸지만, 어색한 침묵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케이티의 대타 선정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은 시무스만이 아니었다. 해리가 자기 반 친구들 두 명을 퀴디치 팀 선수로 선발한 사실을 두고, 휴게실 여기저기서 다들 입방아를 찧었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보다 훨씬 더 심한 말들도 참고 견뎌 왔기 때문에 해리는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아무래도 다가오는 슬리데린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만약 그리핀도르가 이긴다면 기숙사 전체가 그를 비난했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훌륭한 팀인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고 입을 모아 떠들어 댈 거라는 것을 해리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합에서 지게 된다면…… 그때는…… 이보다 훨씬 더 지독한 말들을 들어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그 날 저녁 해리는 하늘을 나는 딘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지니와 드멜자와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몰이꾼인 피크스와 쿠트도 날로 실력이 향상되고 있었는데, 오직 한 사람, 론이 문제였다.
해리는 론이 자신감도 부족하고 초조감에 시달리는 기복이 심한 선수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시즌 개막전이 서서히 다가오자 불행하게도 그의 지병이 다시 도지는 것 같았다. 여섯 골을 연달아 허용한 다음부터 -대부분 지니가 날린 골들이었는데- 론의 솜씨는 점점 더 거칠어지더니, 끝내는 다가오는 드멜자 로빈스의 입을 주먹으로 갈기고 말았다.
“사고였어. 미안해, 드멜자. 정말 미안해!”
사방에 피를 뚝뚝 흘리며 지그재그로 땅을 향해 내려가는 드멜자의 등에 대고 론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난 그냥…….”
“겁에 질렸었겠지.”
지니가 발끈 화를 내더니 드멜자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서 퉁퉁 부은 그녀의 입술을 살펴보았다.
“론, 이 멍청아, 드멜자가 어떻게 됐는지 좀 보라고!”
“내가 치료해 줄게.”
두 여학생 옆으로 내려운 해리는 드멜자의 입술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에피스키” 하고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지니, 론을 멍청이라고 부르지 마. 넌 이 팀의 주장도 아니잖아…….”
“오빠가 너무 바빠 보이길래, 론을 멍청이라고 불러 줄 틈도 없는 것 같아서 그랬어.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
해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다들 위로 올라가. 어서 가자…….”
전체적으로 이번 연습은 그들이 한 학기 동안 했던 연습들 중에서 최악이었다. 그렇지만 해리는 시합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이 마당에 정직한 것만이 최선의 방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들 잘했어. 틀림없이 슬리데린을 납작하게 눌러 버릴 수 있을 거야.”
해리가 씩씩하게 말했다 추겨꾼들과 몰이꾼들은 자신의 실력에 꽤 만족한 표정으로 탈의실을 떠났다.
“오늘 난 완전히 죽 쒔어.”
마지막으로 지니가 탈의실 문을 닫고 나가자, 론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그렇지 않았어.”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내가 선발한 최고의 파수꾼이야. 론, 너의 단 한가지 문제점은 너무 예민하다는 거야.:
해리는 성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용기를 복돋아 줄 수 있는 말들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마침내 2층에 도달했을 쯤에는, 론이 약간 기운을 되찾은 기색이었다. 하지만 해리가 벽걸이 양탄자를 열고 늘 지나다니던 그리핀도르 탑으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뜻밖에도 딘과 지니가 마치 접착제로 붙여 놓은 듯 서로 바짝 달라붙어서 열렬하게 키스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러자 해리의 뱃속에서 뭔가 커다랗고 비늘이 달린 것이 살아 움직이며 속을 박박 긁어 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피가 왈칵 머리로 몰리는 것 같더니, 모든 생각이 머릿 속에서 싹 사라지면서 오직 딘을 흐믈흐믈한 젤리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는 잔인한 충동만이 가득 찼다. 이 갑작스런 광기와 한창 싸우고 있는데,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희미하게 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딘과 지니가 서로 몸을 떼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뭐야?”
지니가 말했다.
“나는 내 여동생이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얼싸안고 뽀뽀하는 꼴은 눈 뜨고 못 봐!”
“오빠들이 훼방 놓기 전까지 여긴 아무도 다니지 않는 통로였어!”
지니가 쏘아붙였다.
딘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며 해리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해리는 싸늘하게 바라만 보았다. 방금 그의 마음속에서 태어난 괴물이 딘을 당장 팀에서 쫓아내라고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저…… 지니…… 그만 휴게실로 돌아가자…….”
딘이 말했다.
“너나 가! 난 우리 잘난 오라버니와 얘기 좀 해야겠어!”
딘은 그 자리를 모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듯 얼른 그곳을 떠났다.”
“좋아.”
지니가 긴 빨간색 머리카락을 휙 뒤로 젖히면서 론을 똑바로 째려보았다.
“다시 한 번 이 점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내가 누구랑 데이트를 하든, 누구랑 무슨 짓을 하든, 그건 오빠가 전혀 상관할 문제가 아니라고.”
“그렇지 않아!”
론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사람들이 내 동생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다니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어?”
“뭐라고 떠드는데?”
지니가 지팡이를 꺼내 들고 고함을 질렀다.
“똑바로 말해! 뭐야?”
“지니, 론의 말에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야…….”
해리의 마음속 괴물은 론의 말이 천 번 만 번 지당하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지만, 해리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아니, 아니야!”
지니는 해리에게 발끈 화를 냈다.
“자기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누구랑 키스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저러는 거라고! 자기가 해 본 키스라고는 고작해야 뮤리엘 이모랑 한 게 전부였으니까!”
“입 닥치지 못해!”
론은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서 아예 흙빛이 되었다.
“싫어, 그렇게는 못하겠어!”
지니가 이성을 잃고 악을 써 댔다.
“플렘을 볼 때마다 혹시 그 여자가 뺨에 키스라도 해 주지 않을까 하고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꼴 다 봤어. 불쌍하기도 하지! 자기가 한 번이라도 누구랑 데이트를 하고 포옹이라도 해 봤으면, 남들이 그러는 걸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론까지 자기 지팡이를 뽑아 들자, 해리는 재빨리 두 사람 사이를 가로 막았다.
“자기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모르면서 까불지 마!”
론은 씩씩거리면서, 이제 두 팔을 쫙 벌린 채 지니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해리를 피해서 지니를 똑바로 쳐다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단지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하지 않을 뿐이라고!”
지니가 별 웃기는 소리 다 듣겠다는 듯이 깔깔 웃으면서 해리를 옆으로 밀쳐 내려고 했다.
“그래서 피그위존이랑 키스했어? 아님 베개 밑에 감추어 둔 뮤리엘 이모 사진이랑 키스했어?”
“너!”
해리의 왼쪽 팔 밑으로 한 줄기 주홍색 불빛이 쭉 뻗어 나가더니 아슬아슬하게 지니를 살짝 비켜갔다. 해리는 론을 벽쪽으로 밀쳤다.
“바보같이 굴지 마.”
“해리는 초 챙이랑 키스했어!”
지니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악을 썼다.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빅터 크룸과 키스했다고! 그게 무슨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듯이 구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 그러니까 오빠의 경험 수준은 겨우 열두 살짜리 꼬마 정도밖에 안 되는 거라고!”
이 말을 남기고 지니는 요란하게 발소리를 쿵쿵 내면서 사라져 버렸다. 해리는 얼른 론을 놓아주었다. 그의 얼굴 표정이 당장 살인이라도 저지를 기세였던 것이다. 두 사람이 숨을 헐떡거리며 그렇게 서 있을 때, 필치의 고양이 노리스 부인이 모퉁이 뒤에서 나타나 긴장을 깨뜨렸다.
“가자.”
필치의 질질 끄는 발소리가 들려오자, 해리가 재촉했다.
“야, 저리 비켜!”
론이 한 꼬마 여자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아이가 겁에 질려 펄쩍 뛰면서 두꺼비 알이 든 병을 떨어뜨렸다.
유리병이 와장창 깨졌지만, 그 소리는 해리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리는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눈앞이 어지러웠다. 벼락에 맞은 기분이 틀림없이 이것과 비슷할 것이다.
‘이건 단지 지니가 론의 여동생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 지니가 론의 여동생이니까, 그래서 딘과 지니가 키스하는 게 보기 싫었던 거야…….’
해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자신과 지니가 키스하고 있는 모습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슬며시 떠오르자, 가슴속의 괴물이 기분좋게 가르릉거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론이 양탄자 커튼을 활짝 젖히고 들어와서 해리를 향해 지팡이를 뽑아 들고, ‘신의를 저버린 놈’ 이라느니 ‘내 친구인 줄 알았는데……’ 라느니, 뭐 이런 말을 마구 퍼부어 대는 광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근데 헤르미온느가 크룸과 정말 키스했을까?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 앞에 도착했을 때, 론이 뜬금없이 물었다. 해리는 괜한 죄책감에 흠칫 놀라면서, 론이 침입해 들어오지도 않고 오직 그와 지니, 단둘이 있는 그 호젓한 복도에 대한 상상을 황급히 떨쳐 버렸다.
“뭐라고?”
해리가 우물거렸다.
“어…… 그게…….”
솔직한 대답은 ‘그래’ 였지만, 해리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론은 해리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서 최악의 대답을 읽은 것 같았다.
“딜리그라우트.”
론은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를 향해 우울하게 중얼거렸고, 두 사람은 초상화 구멍을 통해서 휴게실로 들어갔다.
론도 해리도 더 이상 지니나 헤르미온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내내 두 사람 도두 거의 말이 없다가, 각자 자기들만의 생각에 몰두한 채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해리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침대 기둥에 씌워진 천으로 된 덮개를 올려다보며 지니에 대한 그의 감정은 순전히 오빠로서의 애정일 뿐이라고 자기 자신을 타일렀다. 그들은 여름 내내 퀴디치 게임을 하고 론을 놀려 대고 빌과 플렘에 대해 농담을 하면서, 진짜 오빠와 동생처럼 한집에서 살지 않았던가? 게다가 지니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다. 그러니 보호 감정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지……. 그녀를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지니에게 키스를 한 딘 녀석을 갈가리 찢어 놓고 싶은 것도……. 아니지…… 그렇게 각별한 우애는 자제해야만 해…….
론이 요란하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다.
‘지니는 론의 동생이야. 론의 여동생이란 말이야.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상대라고…….’
해리는 자기 자신에게 단단히 타일렀다. 그는 이 세상 무엇 때문이라도 론과의 우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해리는 베개를 탁탁 쳐서 좀 더 편안하게 만든 다음, 생각이 자꾸만 지니에게로 향하는 것을 애써 막으면서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해리는 밤새도록 몰이꾼의 방맘이를 치켜들고 달려드는 론에게 쫓기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다음 날 아침, 다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정오쯤 되자, 차라리 현실 속의 론과 꿈속의 론을 바꾸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론은 지니와 딘을 완전히 무시할 뿐 아니라, 얼음처럼 싸늘하고 조소 어린 무관심으로 아무 영문을 모르는 헤르미온느의 마음까지 상하게 했다. 게다가 하룻밤 사이에, 폭탄 꼬리 스쿠르트처럼 까다롭고 툭하면 성질을 내는 사람으로 완전히 변해 버린 것 같았다. 해리는 하루 종일 론과 헤르미온느를 화해시키려고 별짓을 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헤르미온느는 잔뜩 열이 받아서 침실로 가버렸고, 론도 겁에 질린 몇몇 신입생들에게 왜 자기를 쳐다보냐며 괜한 트집을 잡으면서 신경질을 부리다가 남학생 침실로 휙 들어가 버렸다.
새롭게 나타난 론의 공격성이 며칠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자, 해리는 몹시 걱정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론의 파수꾼 실력은 갈수록 더 형편없어졌고, 론은 그럴수록 더 사나워져서, 마침내 시합 바로 전날 가진 마지막 퀴디치 연습 경기에서는 추격꾼들이 친 골을 단 한 개도 막아 내지 못해 놓고서, 괜히 모든 사람들에게 온갖 포악을 다 떨다가 끝내는 드멜자 로빈스를 울게 만들었다.
“입 다물고 걔 좀 가만히 내버려 둬!”
손에 육중한 방망이를 들기는 했지만 키가 겨우 론의 3분의 2 정도밖에 안 되는 피크스가 소리를 질렀다.
“그만들 둬!”
해리가 악을 썼다. 무서운 얼굴로 론이 있는 쪽을 노려보고 있는 지니를 발견하고, 문득 지니가 박쥐 귀신 주문의 명수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해리는 더 이상 일이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해 재빨리 공중으로 날아 올라갔던 것이다.
“피크스, 가서 블러저들을 정리하도록 해. 드멜자, 기운 내. 오늘 아주 잘했어. 그리고 론…….”
해리는 팀의 다른 선수들이 전부 듣지 못하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넌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긴 하지만, 다른 선수들을 계속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너를 팀에서 내보낼 거야.”
해리는 순간 론에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론이 모든 전의를 다 상실하고 빗자루 위에 축 늘어져 버린 것이다.
“난 그만둘래. 내가 너무 한심해.”
“넌 한심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만두면 안 돼!”
해리가 론의 망토 앞자락을 붙잡고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컨디션만 좋으면 넌 무슨 골이든 다 막아 낼 수 있어. 넌 단지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뿐이야!”
“지금 내가 정신병자라고 말하는 거야?”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던 론은 그만 힘없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당장 파수꾼을 찾을 시간이 없다는 거 나도 알아. 그러니까 내일 시합은 그냥 뛸게. 하지만 우리 팀이 지게 되면, 아마 틀림없이 그렇게 되겠지만, 난 내 발로 팀을 나갈 거야.”
해리가 무슨 말을 해도 론의 결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 내내 줄곧 론의 사기를 높여 주려고 별별 짓을 다 해 봤지만, 론은 오직 헤르미온느에게 퉁명스럽고 쌀쌀맞게 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날 저녁 휴게실에서도 해리는 끈질기게 론을 설득했지만, 만약 론이 그만둔다면 팀 전체가 망연자실할 거라는 그의 호언장담은 한 쪽 구석에 모여 앉아서 기분 나쁜 표정으로 론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군거리고 있는 팀의 다른 선수들 때문에 무색해졌다. 마침내 해리는 다시 화를 내면 론이 골을 막겠다는 의지에 불타는 도전적인 자세로 돌아서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해 보았지만, 이 전략 역시 격려하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다. 론은 변함없이 풀 죽고 기운 빠진 모습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해리는 불이 꺼진 뒤에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일 있을 시합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이번이 주장으로서의 첫 번째 시합이기도 했고, 비록 드레이코 말포이에 대한 자신의 의혹을 아직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퀴디치 시합에서만큼은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론이 최근 몇 번의 연습 때 보여 준 것처럼 계속 그런 식으로 경기를 한다면, 승리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론이 사기를 되살릴 수 있는 무슨 방도만 있다면……. 론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합을 할 수 있게 만들 수만 있다면……. 론에게 정말로 최고의 날이 되리라는 확신을 심어 줄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갑자기 반짝하고 해리의 머릿속에 한 가지 해답이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에는 늘 그렇듯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슬리데린 학생들은 그리핀도르 팀의 선수들이 대연회장에 들어설 때마다 휘파람을 불며 야유 섞인 함성을 질렀다. 해리가 천장을 힐끗 올려다보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렀다. 좋은 징조였다.
온통 붉은색과 황금색 일색인 그리핀도르 테이블은 해리와 론이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해리는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론은 힘없이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기운 내, 론!”
라벤더가 소리쳤다.
“넌 끝내 주게 잘할 거야, 난 알아!”
론은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차 마실래? 커피? 호박 주스?”
해리가 론에게 물었다.
“아무거나 줘.”
론이 우울하게 토스트 조각을 한 입 베어 먹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잠시 후, 헤르미온느가 식탁을 향해 걸어오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동안 론의 쌀쌀맞은 태도에 완전히 지쳐 버린 헤르미온느는 그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었다.
“오늘 두 사람 기분은 어때?”
헤르미온느가 론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좋아.”
한창 론에게 호박 주스를 건네주는 일에 몰두하고 있던 해리가 대답했다.
“자, 여기 있어. 론, 쭉 마셔.”
론이 주스를 막 입에 가져다 대려고 하는 순간,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론, 그거 마시지 마!”
해리와 론이 동시에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래?”
론이 물었다.
해리는 자기 눈이 의심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네가 그 마실 것에 뭔가를 넣었잖아.”
“뭐라고?”
해리가 딴청을 부렸다.
“못 들은 척하지 마. 내가 다 봤어. 지금 방금 론의 주스에데 뭔가를 넣었잖아. 지금도 네 손에 그 병을 쥐고 있으면서!”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해리가 얼른 작은 병을 호주머니 속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론, 네가 경고했지. 마시지 마!”
헤르미온느가 깜짝 놀라며 또다시 만류했다. 하지만 론은 잔을 들어 올리더니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헤르미온느,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마.”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해리의 귀에만 들리도록 깊숙이 허리를 낮춘 채 속삭였다.
“그러다가 퇴학을 당할 수도 있단 말이야. 네가 이런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해리!”
“그렇게 말하는 넌?”
해리가 나지막이 쏘아붙였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혼동 마법을 걸지 않으셨던가?”
헤르미온느는 사납게 쿵쿵거리며 식탁 저쪽으로 가 버렸다. 해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헤르미온느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헤르미온느는 퀴디치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해리는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는 론을 돌아보았다.
“시간이 다 됐어.”
해리가 활기차게 말했다.
경기장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들의 발밑에서 서리 맞은 풀들이 버석거렸다.
“날씨가 이렇게 좋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렇지?”
해리가 론에게 물었다.
“응.”
론은 하얗게 얼굴이 질리고 어딘가 아픈 표정이었다.
지니와 드멜자는 벌써 퀴디치복으로 갈아입고 탈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완벽해.”
지니가 론을 무시하며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슬리데린의 추격꾼인 베이시가 어제 연습을 하다가 블러저에 머리를 맞아서, 오늘 경기에 못 나온데! 그거보다 더 신나는 일은 말포이도 아파서 못 나온다는 거야!”
“뭐라고?”
해리가 휙 몸을 돌려서 지니를 쳐다보았다.
“그 녀석이 아프다고? 무슨 일이지?”
“나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한테는 아주 잘 된 일이야.”
지니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대신 하퍼가 나온다는군. 걔는 나랑 같은 학년인데, 완전 돌머리야.”
해리는 모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주홍색 선수복을 갈아입으면서도 해리의 마음은 퀴디치 경기가 아닌, 다른 먼 곳에 가 있었다. 전에도 말포이가 부상 때문에 경기를 할 수 없다고 주장을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슬리데린에게 더 유리하게 경기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자기 대신 다른 선수를 내보내려고 하는 것일까? 정말로 아픈 걸까? 아니면 꾀병을 부리는 걸까?
“수상쩍은걸, 안 그래?”
해리가 목소리를 낮춰 론에게 속삭였다.
“말포이가 시합에 안 나온다니 말이야.”
“우리한텐 좋은 거지, 뭐.”
론은 약간 기운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게다가 슬리데린 최고의 득점왕인 베이시스도 안 나온다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아니, 잠깐!”
론이 갑자기 파수꾼 장갑을 끼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해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왜?”
“나…… 너 혹시…….”
론이 두려움과 흥분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잔뜩 숨죽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마신 그 호박 주스에…… 설마…… 너…… 아니겠지?”
해리는 그저 눈썹을 한 번 추겨올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분 후면 시합이 시작될 거야. 그러니 어서 부츠를 신는 게 좋겠다.”
그들은 요란한 함성과 야유로 떠나갈 듯한 운동장으로 걸어 나갔다. 경기장 한쪽 끝은 온통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다른 한쪽은 초록색과 은색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후플푸프와 래번클로 학생들도 많이 나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해리는 이 시끄러운 박수 소리와 고함 소리 속에서도 루나 러브굿의 그 유명한 사자 머리 모자의 사나운 울음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해리는 나무 상자 안의 공을 풀어 놓을 준비를 하고 서 있는 주심, 후치 부인 앞으로 걸어갔다.
“주장들은 서로 악수하세요.”
후치 부인이 말하자, 해리와 슬리데린의 새로운 주장인 어쿠하트는 서로 손을 꽉 쥐었다.
“모두들 빗자루에 올라타세요. 호루라기 소리에 경기를 시작합니다! 셋…… 둘…… 하나……!”
호루라기 소리와 동시에 해리와 다른 선수들이 일제히 얼어 붙은 땅을 박차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운동장 주변을 한 바퀴 빙 돈 해리는 한쪽 눈으로는 저 밑에서 지그재그로 날아다니는 하퍼를 계속 주시하면서 스니치를 찾아보았다. 그때 평소의 경기 해설자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네, 저기 가는군요. 포터 선수가 올해에 구성한 팀을 보고 모두들 놀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로날드 위즐리 선수가 지난해에 파수꾼으로서 변변치 않은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당연히 팀에서 탈락될 거라고 많은 사람들은 예견했었지요. 아, 물론 팀의 주장과 개인적으로는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유리하게 작용했겠지만…….”
경기장 저쪽 끝에 앉은 슬리데린들은 야우와 박스로 이 말에 열렬하게 반응했다. 해리는 빗자루 위에서 목을 길게 빼고 중계석을 살펴보았다. 들창코에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금발 머리 소년이 그곳에 서서, 한때 리 조던의 것이었던 마법 확성기에 대고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해리가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후플푸프의 선수, 자카리아스 스미스였다.
“오, 슬리데린이 골을 넣으려는 첫 번째 시도를 하고 있군요. 어쿠하트 선수가 운동장을 질주합니다……. 그리고 슛!”
해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위즐리 선수가 막아 냈습니다. 네, 저 선수는 가끔 운이 정말 좋더군요…….”
“맞았어, 스미스. 론은 행운아야.”
해리는 혼자 씩 웃으며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스니치를 찾아서 온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추격꾼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경기 시간이 30분쯤 지났을 때, 그리핀도르는 60대 0으로 앞서 가고 있었다. 론은 골 몇 개를 거의 장갑 끝으로 아슬아슬하게 막아 내기도 하면서 완벽한 방어를 하고 있었고, 지니는 그리핀도르가 득점한 여섯 골 중에 혼자서 네 골을 집어넣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위즐리 남매가 오직 해리와 친하다는 이유 때문에 선수가 되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대던 자카리아스 스미스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대신 피크스와 쿠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실 쿠트는 몰이꾼이 될 만한 그런 체격은 아닙니다.”
자카리아스는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몰이꾼들은 대개 근육이 훨씬 더 많죠…….”
“저 녀석에게 블러저를 한 방 먹여 줘!”
해리는 쿠트의 옆을 슝 날아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쿠트는 씩 웃기만 하더니, 맞은편 방향에서 해리 옆을 지나고 있던 하퍼를 향해 다음번 블러저를 날렸다. 블러저가 목표물에 맞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자, 해리는 쾌재를 불렀다.
그리핀도르는 경기를 술술 풀어 나갔다. 그들은 차근차근 점수를 올려 갔고, 경기장 맞은 편 끝에서는 론이 여유 있게 골을 막아 내고 있었다. ‘위즐리는 우리의 왕’ 이라는 옛날 애창곡을 큰 소리로 다 함께 부르며 특별히 멋지게 막아 낸 골에 대해 환호하자, 이제 론은 실실 미소까지 지으면서 하늘에 높이 떠서 지휘를 하는 시늉까지 했다.
“저 자식은 오늘 자기가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어디선가 가시 돋친 목소리가 들리더니, 하퍼가 일부러 세게 와서 부딪히는 바람에 해리는 하마터면 빗자루에서 떨어질 뻔 했다.
“저 동족의 배신자 말이야…….”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화가 나서 아우성을 쳤지만 때마침 후치 부인이 등을 돌리고 있었다. 부인이 다시 돌아섰을 때는 이미 하퍼가 쏜살같이 날아가 버리고 난 후였다. 해리는 욱신거리는 어깨 통증을 참으며, 반드시 저 녀석을 뒤에서 들이받아 버리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쫓아갔다.
“슬리데린의 하퍼 선수가 스니치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자카리아스 스미스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포터 선수가 보지 못한 뭔가를 발견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런 멍청한 놈이 있나. 해리는 생각했다. 하퍼와 자기가 부딪히는 것도 못 봤단 말인가? 하지만 다음 순간, 해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스미스의 말이 맞았다. 해리의 생각이 틀렸던 것이다. 하퍼가 괜히 쏜살같이 솟구쳤던 것이 아니라, 해리가 보지 못한 뭔가를 보았던 것이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스니치가 저 위에서 빠르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해리는 더욱더 속력을 냈다. 귓가에서 세차게 윙위거리는 바람 소리에 스미스의 목소리는 물론 관중들의 함성까지 모두 묻혀 버렸다. 하지만 하퍼는 그보다 앞서 있었다. 그리핀도르는 겨우 100점을 앞서 있을 뿐이었다. 하퍼가 먼저 스니치를 잡으면 그리핀도르는 지게 된다. 이제 하퍼는 스니치를 바로 코앞에 두고 손을 쭉 뻗고 있었다…….
“야, 하퍼!”
해리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말포이 대신 시합에 나오는 대가로 그 녀석에게 얼마를 받았지?”
해리는 어째서 그런 말이 자기 입에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움찔한 하퍼는 스니치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놓치더니 그대로 쭉 지나가 버렸다. 해리는 펄쩍 날아서 그 팔락거리는 조그만 공을 붙잡았다.
“잡았다!”
해리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 손에 스니치를 높이 치켜든 채, 빙그르 돌아서 다시 땅을 향해 돌진했다. 상황을 파악한 관중들 사이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와 경기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지니, 어딜 가는 거야?”
달려와 부둥켜안는 다른 선수들 틈에 끼어 허공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던 해리가 소리쳤다. 하지만 지니는 그들 옆을 지나, 전속력으로 날아가더니 온 힘을 다해서 중계석에 쾅 부딪쳤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웃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동안, 그리핀도르 선수들은 자카리아스가 밑에 깔려서 버둥대고 있는 무너진 나무 더미 옆에 내려앉았다. 해리는 지니가 화를 내는 맥고나걸 교수에게 명랑하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브레이크 거는 것을 깜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선수들의 포옹에서 풀려난 해리는 깔깔 웃으면서 지니를 잠시 껴안았다가 금방 놓아 버렸다. 그리고 지니의 눈길을 슬슬 피하면서, 대신 론의 등을 탁탁 두드려 주었다. 그동안의 불화를 말끔히 씻어 버린 그리핀도르 선수들은 허공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거나 응원석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나란히 팔짱을 끼고 경기장을 떠났다.
“시무스가 그러는데, 휴게실에서 파티가 있을 거래!”
딘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가자, 지니, 드멜자!”
탈의실에는 론과 해리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막 나가려고 하는 순간, 헤르미온느가 들어왔다. 그녀는 손으로 그리핀도르 스카프를 비비 꼬면서 몹시 초조하지만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리 너하고 할 말이 있어.”
헤르미온느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슬러그혼 교수님이 불법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잖아.”
“그래서 뭘 어쩌려고? 일러바치기라도 할 거야?”
론이 덤벼들었다.
“너희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니?”
해리는 웃고 있는 얼굴을 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뒤를 돌아 옷걸이에 망토를 걸었다.
“우리가 무슨 얘길 하는 건지 너도 잘 알잖아!”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너는 아침 식사 시간에 론의 주스에 행운의 마법약을 탔다고! 펠릭스 펠리시스를 말이야!”
“아니, 난 안 그랬어.”
해리가 두 사람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틀림없이 그랬어, 해리. 그래서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린 거라고. 슬리데린 선수들이 시합에 못 뛰는 일이 생기고, 론은 모든 골을 다 막아 내고 말이야!”
“난 안 집어넣었어!”
해리가 활짝 웃으면서 윗도리 호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더니 헤르미온느가 오늘 아침에 해리의 손에서 봤던 그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방 안에는 황금색 약이 가득 들어 있었고, 코르크 마개는 여전히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난 그저 내가 그랬다고 론이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네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약을 타는 척했지.”
해리가 론을 바라보았다.
“넌 행운이 따를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모든 골을 막아 낼 수 있었던 거야. 사실은 모두 너 혼자 해낸 거지.”
해리는 약병을 다시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내 호박 주스에 진짜 아무 것도 안 들어 있었던 거야?”
론이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날씨도 너무 좋고…… 베이시도 경기에 못 나오고…… 그런데 내가 정말로 행운의 마법약을 안 마셨단 말이지?”
해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론은 한동안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헤르미온느에게로 얼굴을 홱 돌리더니 그녀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너는 오늘 아침에 론의 주스에 펠릭스 펠리시스를 탔어. 그래서 론이 모든 골을 막아 냈던 거야!”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봐! 난 혼자서도 얼마든지 골을 막아 낼 수 있어, 헤르미온느!”
“나는 네가 못할 거라는 말은 한 번도 안 했어. 그리고 론, 너도 그 약을 마셨다고 생각했잖아!”
하지만 론은 이미 어깨에 빗자루를 멘 채 헤르미온느를 지나 문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 버린 후였다.
“어…….”
해리는 갑작스런 침묵에 어쩔 줄 몰랐다. 자신의 계획이 이렇게 엉뚱한 결과를 불러올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 그럼…… 우리도 파티에 갈까?”
“너나 가!”
헤르미온느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다.
“이제 정말 론에게 질렸어.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더니 헤르미온느도 요란하게 탈의실을 나가 버렸다.
해리는 축하한다고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 틈을 헤치며 성을 향하여 운동장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몹시 무거웠다. 해리는 론이 시합에서 이기게 되면, 론과 헤르미온느가 당장 화해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도대체 헤르미온느에게 론이 화가 난 이유는, 그 일이 얼마나 오래전에 일어났느냐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네가 빅터 크룸과 키스했다는 그 사실 자체 때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해리가 도착했을 때, 그리핀도르 축하 파티는 이미 한창 무르익어 있었지만, 헤르미온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리가 나타나자 또다시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축하 인사를 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를 둘러쌌다. 해리는 세세한 경기 분석을 하려고 덤벼드는 크리비 형제들과, 그를 빙 둘러싸고서 해리가 무슨 말만 하면 자지러지게 웃으며 눈을 연신 깜빡거리는 수많은 여학생들을 뿌리치느라 한참 후에야 론을 찾으러 나설 수 있었다. 마침내 그와 함께 슬러그혼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가고 싶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로밀다 베인에게서 간신히 빠져나온 해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음료수 테이블을 향해서 가던 중, 어깨 위에 피그미 퍼프인 아놀드를 얹고 지나가는 지니와 딱 마주쳤다. 지니의 뒤쪽에는 크룩생크가 기대에 찬 울음소리를 내며 뒤쫓아 오고 있었다.
“론을 찾고 있는 거야?”
지니가 조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론은 바로 저기 있어. 비열한 위선자 같으니라고!”
해리는 지니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방 전체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론은 누구 손이 누구 손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라벤더 브라운과 바싹 붙어 있었다.
“아예 얼굴을 먹어 버릴 기세야, 그치?”
지니가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능숙해지려면 노력깨나 해야 할 것 같아. 어쨌든 훌륭한 경기였어, 해리.”
지니가 그의 팔을 톡톡 두드리자, 해리는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니는 버터 맥주를 더 마시러 가 버렸다. 크룩생크는 샛노란 눈을 아놀드에게서 떼지 못하며 그녀의 뒤를 종종거리며 따라갔다.
해리는 아무래도 론을 쉽사리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초상화 구멍이 닫히는 게 보이면서 덥수룩한 갈색 머리털이 눈앞을 휙 지나간 것 같은 생각이 든 해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로밀다 베인을 잽싸게 피해서 달려가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를 열고 나갔다. 바깥 복도는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
해리는 문이 잠겨져 있지 않은 첫 번째 교실에서 그녀를 찾았다. 교탁 위에 홀로 앉아 있는 헤르미온느의 머리 주위에는 짹짹거리는 노란 새들이 작은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해리는 이런 순간에조차 헤르미온느의 마법 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안녕, 해리.”
헤르미온느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연습 중이었어.”
“그래……. 정말…… 음…… 멋지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해리는 혹시다로 헤르미온느가 론을 못 보고, 그저 파티가 너무 시끄러워서 밖으로 나온 거라면 다행일 텐데 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데, 헤르미온느가 어색할 정도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론은 축하 파티가 꽤 즐거운 모양이더라.”
“어…… 그래?”
해리가 머뭇거렸다.
“괜히 론의 모습을 못 본 척하지 마. 아예 감출 생각도 않던걸, 안 그래?”
그때 뒤에서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해리는 깔깔 웃으며 라벤더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론의 모습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오.”
론이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보더니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어머나.”
라벤더는 키득거리면서 얼른 교실 밖으로 나가더니 문을 닫아 버렸다.
무시무시하게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헤르미온느는 그녀를 외면하는 론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론은 어색함과 허세가 뒤섞인 묘한 태도로 큰소리를 쳤다.
“어이, 해리! 네가 어디 갔나 했지!”
헤르미온느가 교탁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노란색의 작은 새들이 아직도 짹짹거리며 그녀의 머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마치 깃털이 달린 괴상한 태양계 모형처럼 보였다.
“라벤더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말했다.
“네가 어디로 가 버렸나 궁금해할 거야.”
헤르미온느는 천천히 문을 향해서 똑바로 걸어갔다. 해리가 론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니, 더 이상 험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옵푸그노!”
문 쪽에서 날카로운 외침 소리가 들렸다.
해리가 얼른 돌아보니 사나운 표정의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로 론을 겨누고 있었다. 순간 작은 새 떼들이 통통한 황금 총알처럼 론을 향해 돌진했다. 론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새 떼들은 닥치는 대로 론의 살점들을 물어뜯고 할퀴었다.
“이것들 좀 떼어 봐!”
론이 안타깝게 부르짖었지만, 헤르미온느는 마지막으로 원망에 가득 찬 시선을 힐끗 던지더니 문을 열고 사라져 버렸다. 해리는 교실 문이 쾅 닫히기 전레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