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비밀에 싸인 리들
다음 날 케이티는 마법 질병과 상해를 위한 성 뭉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때쯤에는 이미 케이티가 저주를 당했다는 소문이 학교 전체에 걸쳐 쫙 퍼져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그리고 린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케이티가 원래 의도했던 목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말포이는 알고 있을 거야, 너무 당연하잖아.”
해리가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해리가 ‘죽음을 먹는 자, 말포이’ 이론을 내세울 때마다, 못 들은 척 무시한다는 새로운 정책을 굳세게 고수하고 있었다.
해리는 덤블도어가 지금 어디에 있든지 간에 과연 월요일 저녁 수업 시간 때까지 돌아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통보가 없었기 때문에, 여덟 시 정각에 덤블도어의 방밖에 서서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덤블도어는 평소와 다르게 몹시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은 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그을리고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해리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또다시 책상 위에는 펜시브가 천장에 반짝거리는 은색 불빛을 반사하며 놓여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꽤 바빴던 모양이구나.”
덤블도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케이티가 당한 사고를 직접 목격했다고 하던데…….”
“예, 교수님. 케이티는 좀 어떤가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지. 하지만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단다. 살갖이 목걸이를 아주 살짝 스쳤던 것으로 밝혀졌지. 장갑에 눈곱만 한 구멍이 나 있었거든. 만약 그 목걸이를 걸었거나 맨손으로 집어 들었다면, 케이티는 바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게다. 다행히도 스네이프 교수가 급속도로 저주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왜 그자가 한 거죠? 왜 폼프리 부인이 하지 않았나요?”
해리가 즉시 물었다.
“건방진 녀석 같으니.”
벽에 걸린 초상화들 중에서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팔을 베고 엎드려 자는 척하던, 시리우스의 고조부인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블랙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있던 시절에는 호그와트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감히 학생들이 따지고 들게 내버려 두지 않았어.”
“그래요, 고맙구려, 피니어스.”
덤블도어가 얼른 진정시켰다.
“스네이프 교수는 폼프리 부인보다 어둠의 마법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단다, 해리. 어쨌든 성 뭉고 병원의 의료진들이 한 시간마다 나에게 진료 결과를 보내고 있으니, 조만간 케이티가 완쾌하리라고 기대하고 있단다.”
“이번 주에 어딜 다녀오셨나요, 교수님?”
해리는 자기가 너무 주제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냥 무시하고 질문을 던졌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도 똑 같은 생각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등 뒤에서 쯧쯧 혀차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던 것이다.
“지금 당장은 말할 수가 없구나. 하지만 적당한 때가 되면 너에게 말해 주마.”
덤블도어가 말했다.
“정말이세요?”
해리가 놀라서 반문했다.
“그래, 그럴 생각이다.”
덤블도어는 옷 안쪽에서 또 다른 은빛 기억이 담긴 병을 꺼내더니 지팡이 끝으로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그런데 교수님, 호그스미드에서 먼던구스를 만났어요.”
해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 그래. 나는 먼던구스가 네 유산을 우습게 보고 슬쩍 빼돌리고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단다.”
덤블도어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스리 브룸스틱스 밖에서 그자와 이야기를 나눈 이후, 먼던구스는 잠적해 버렸단다. 아마 나를 보는 게 두려웠던 모양이야. 하지만 더 이상은 시리우스의 옛날 재산을 빼돌리지 못할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니, 그 지저분한 잡종 영감탱이가 블랙 가문의 유서 깊은 가보들을 훔쳐 내고 있었단 말이야?”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발끈해서 소리치더니 액자 밖으로 걸어 나가 버렸다.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에 있는 자신의 초상화를 찾아간 것이 분명했다.
“교수님…….”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해리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맥고나걸 교수님께서 케이티가 부상을 당한 후에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렸는지 이야기하지 않으시던가요? 드레이코 말포이에 대해서요?”
“그래, 맥고나걸 교수가 네가 의심하는 바에 대해서 말해 주시더구나.”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그럼 교수님께선…….”
“나는 케이티의 사건에 조금이라도 연루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사람은 누구든지 모든 적절한 방법을 동원해서 조사를 할 작정이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나의 관심사는 우리의 수업이지, 해리.”
이 말을 듣자 해리는 약간 화가 났다. 만약 이 수업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어째서 첫 번째 수업을 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한참 있다가 두 번째 수업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해리는 더 이상 드레이코 말포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덤블도어가 펜시브에 새로운 기억을 부어 넣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다시 긴 손가락으로 돌 대야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물론 너도 기억하고 있을 게다. 우리는 지난 번에 볼드모트 경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들 중에서, 그 잘생긴 머글인 톰 리들이 그의 마녀 아내인 메로프를 버리고 리틀 행글턴에 있는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간 대목까지 보았었지. 메로프는 홀로 런던에 나아서 장차 볼드모트 경이 될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메로프가 런던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카락타쿠스 버크의 증언 덕분이지.”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버크는 우리가 방금 이야기한 그 목걸이를 판 바로 그 가게를 설립하는 데 일조한 사람이란다.”
덤블도어는 해리가 전에 보았던 것처럼, 펜시브에 담긴 내용물들을 마치 사금 찾는 이들이 금을 체에 걸러 내듯이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러자 은빛 소용돌이 속에서 왜소한 노인의 형체가 떠오르더니 서서히 펜시브 안을 맴돌았다. 그것은 유령처럼 은백색이었지만 투명하지 않았고 무성한 머리카락이 완전히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소. 우린 아주 흥미로운 상황에서 이 물건을 손에 넣었소. 크리스마스 바로 직전에 한 젊은 마녀가 가지고 왔지. 오, 벌써 수년 전 일이로군. 그 마녀는 돈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했소. 그건 딱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지. 다 떨어진 누더기 차림에 꽤……. 게다가 곧 아기를 낳을 몸이었소. 그 마녀는 이 목걸이를 슬리데린의 것이라고 말했지. 물론 그런 말은 우리가 만날 듣는 소리였소. ‘오, 이건 멀린의 것이에요. 그가 제일 아끼던 찻주전자였죠.’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내가 그 물건을 보았을 때, 거기에는 틀림없이 그의 표식이 찍혀 있었소. 그리고 몇 가지 간단한 주문이면 진실을 털어놓게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지. 어쨌든 그 물건은 거의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이었소. 그런데 그 마녀는 그 물건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눈치였소. 10갈레온을 받더니 좋아서 돌아가더구먼. 그야말로 우리 가게 역사상 최고의 흥정이었지.”
덤블도어가 또다시 펜시브를 세게 흔들자, 카락타쿠스 버크는 소용돌이치는 기억 속으로 다시 가라앉았다.
“그 마녀에게 겨우 10갈레온밖에 안 주었단 말인가요?”
해리가 분개했다.
“카락타쿠스 버크는 관대하기로 소문난 인물이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산달이 가까워 온 메로프가 런던에서 혼자 지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단다. 몸에 지니고 있던 단 하나의 소중한 재산, 마볼로가 목숨처럼 아끼던 가보들 중 하나인 그 목걸이를 팔아야 할 만큼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상태로 말이야.”
“하지만 그녀는 마법을 할 줄 알잖아요?”
해리가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음식이며 필요한 물건들을 마법으로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안 그런가요?”
“아, 아마 그럴 수도 있었겠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이건 내 생각인데…… 또다시 추측을 해 보는 거란다. 하지만 틀림없이 내 생각이 맞을 거야.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부터 메로프는 더 이상 마법을 쓰지 않기로 한 것 같다. 더 이상 마녀로 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물론, 보답받지 못한 사랑과 그에 따른 절망감 때문에 모든 능력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지. 충분히 그럴 수 있단다. 어쨌든 간에 네가 앞으로 보게 될 것처럼, 메로프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지팡이를 드는 것조차 끝내 거부했단다.
“그럼 아들을 위해 살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그 말을 듣자 덤블도어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혹시 볼드모트 경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에요!”
해리가 재빨리 부인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었잖아요, 안 그래요? 우리 어머니와는 다르잖아요.”
“네 어머니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단다.”
덤블도어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메로프 리들은 자신을 꼭 필요로 하는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지. 하지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그녀는 오랜 고통으로 너무나 허약해졌을 뿐더러 네 어머니와 같은 용기가 없었단다. 자,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서렴…….”
“이번에는 어디로 가나요?”
덤블도어가 책상 앞에 그와 나란히 섰을 때 해리가 물었다.
“이번에는 나의 기억 속으로 함께 갈 거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굉장히 상세하고, 만족스러울 만큼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될거다. 먼저 가거라, 해리…….”
해리는 펜시브 위로 몸을 숙였다. 그의 얼굴이 차가운 기억의 표면 속으로 들어가자, 그는 다시 어둠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불과 몇 초 후에 그의 발이 단단한 땅에 닿았다. 눈을 뜬 해리는 자신과 덤블도어가 번잡한 옛날풍의 런던 거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저기에 있단다.”
덤블도어가 밝은 목소리로 그들 앞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가리켰다. 그는 말이 끄는 우유 손수레 앞에서 길을 건너고 있었다.
젊은 알버스 덤블도어의 긴 머리카락과 수염은 적갈색이었다. 건너편 길가에 다다른 덤블도어는 보도 위를 씩씩하게 걸어갔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화려하기 짝이 없는 고전풍의 짙은 보라색 벨벳 옷을 입은 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옷이 참 멋지군요, 교수님.”
해리의 입에서 불쑥 이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그저 킬킬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두 사람은 젊은 덤블도어를 가까이 따라갔다. 그는 마침내 철 대문을 지나서, 높은 난간이 둘러쳐져 있는 음침하고 네모난 건물 앞에 있는 황량한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 문을 한 번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앞치마를 두른 꾀죄죄한 젊은 여자가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기 원장으로 알고 있는 코올 부인과 약속이 있습니다만…….”
“어…….”
덤블도어의 별난 옷차림을 보고 여자는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잠…… 잠…… 잠깐만요…… 코올 부인!”
여자는 고개를 돌려서 소리쳤다.
해리는 저 멀리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젊은 여자는 다시 덤블도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부인은 나오시는 중입니다.”
덤블도어는 검은색과 흰색 타일이 깔린 현관 복도를 걸어 들어갔다. 집 안 전체가 초라하기는 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해리와 나이 든 덤블도어는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현관문이 닫히기도 전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듯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부인이 그들을 향해 황급히 걸어왔다. 이목구비가 날카로운 부인의 얼굴은 못됐다기보다는 뭔가 걱정거리가 가득하다는 인상을 풍겼다. 부인은 고래를 돌려 또 다른 앞치마를 두른 보조원에게 연신 지시를 내리면서 덤블도어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 요오드를 2층 마사에게 가져다줘요. 빌리 스텁스가 자꾸 딱지를 뜯어서 말이야. 에릭 왈리는 침대에 온통 오줌을 싸 놓았더군, 무엇보다도 수두가 제일 큰일인데…….”
부인은 딱히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시선이 덤블도어에게 미치자, 부인은 우뚝 발걸음을 멈추고 마치 방금 기린이라도 한 마리 문지방을 넘어 들어온 것처럼 경악하는 표정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덤블도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코올 부인은 그저 입만 딱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 이름은 알버스 덤블도어입니다. 제가 약속을 청하는 편지를 보냈더니, 부인께서 친절하게도 오늘 저를 이곳으로 초대해 주셨지요?”
코올 부인은 여전히 눈만 깜박거렸다. 그러나 마침내 자기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는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오, 네, 저…… 그렇다면…… 제 방으로 가시는 게 좋겠네요.”
코올 부인은 응접실 같기도 하고 사무실 같기도 한 작은 방으로 덤블도어를 안내했다. 그 방은 현관 복도만큼이나 초라했고, 가구들도 모두 낡아서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부인은 덤블도어에게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의자 위에 앉을 것을 권유했고, 자신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책상 뒤에 앉아서 초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여기 온 것은, 편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톰 리들에 대해서 상의드리고 그의 장례를 결정 짓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가족이신가요?”
코올 부인이 물었다.
“아니요, 저는 교사입니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저는 톰에게 저희 학교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무슨 학교인데요?”
“호그와트라고 합니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어떻게 해서 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저희 학교는 톰이 저희가 원하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믿습니다.”
“졸업장 말씀이신가요?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톰은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않았는데요?”
“저…… 톰은 태어날 때부터 저희 학교 명부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누가 등록을 했지요? 부모님인가요?”
코올 부인이 까다로울 정도로 날카로운 여자라는 것은 분명했다. 덤블도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덤블도어가 벨벳 저고리의 안주머니에서 지팡이를 슬쩍 꺼내면서, 동시에 코올 부인의 책상 위에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 한 장을 얼른 집어 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 있습니다.”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고는 코올 부인에게 종이를 건너주었다.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분명하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코올 부인은 눈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앞으로 숙였다 하면서, 한동안 주의 깊게 그 텅 빈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완벽하게 절차에 맞는 것 같군요.”
부인은 만족한 듯이 말하며 종이를 돌려주었다. 순간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없었던 술병과 유리잔 두 개가 부인의 눈에 들어왔다.
“저…… 한 잔 드릴까요?”
부인은 갑자기 너무나도 고상한 어조로 말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덤블도어가 활짝 웃었다.
코올 부인이 술을 처음 마셔보는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부인은 두 잔 모두에 꽉꽉 차도록 술을 따르더니 자기 것을 단숨에 꿀꺽 마셔 버렸다. 그리고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처음으로 덤블도어에게 미소를 지었다. 덤블도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혹시 톰 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저에게 좀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아이가 여기 이 고아원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다.”
코올 부인이 술을 한 잔 더 마시며 대답했다.
“그 당시 일을 아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지요. 제가 여기서 막 이 일을 시작했을 무렵이었으니까요. 새해 전날이었는데, 매섭게 춥고 눈이 내리는 날이었어요. 지독한 밤이었죠. 그 당시의 제 나이 정도밖에 되지 않은 한 젊은 여자가 현관 계단을 비틀거리면서 올라왔어요. 물론 그런 사람이 처음은 아니었지요. 우리는 그녀를 받아 주었고, 그녀는 몇 시간 후에 아기를 낳았어요. 그리고 불과 한 시간 만에 죽고 말았죠.”
코올 부인은 새삼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다시 술을 한 모금 꿀꺽 들이켰다.
“그 여자가 죽기 전에 무슨 말을 남기지 않았나요?”
덤블도어가 물었다.
“예를 들어 그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라든가?”
“그거야 당연하죠. 그 여자도 그랬어요.”
코올 부인은 이제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앞에는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 주는 청중을 두고 완전히 신이 난 것 같았다.
“저는 그 여자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닮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 여자가 그러길 바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요. 그 여자는 결코 미인이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아이 이름을, 그의 아버지 이름에서 딴 ‘톰’ 과, 그녀의 아버지 이름에서 딴 ‘마볼로’ 를 넣어서 지어 달라고 했어요. 그렇다니까요. 정말 웃기는 이름이죠? 우리는 그 여자가 혹시 서커스단 출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 했다니까요. 어쨌든 아이의 성은 리들이라고 말했어요. 그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숨을 거두었지요.
어쨌든 우리는 그 여자가 말한 대로 그 아이의 이름을 지었어요. 그 가엾은 여자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톰이든 마볼로든 리들이든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찾으러 오지 않았어요. 가족이 전혀 없었지요. 그래서 그 아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고아원에서 자랐답니다.”
코올 부인은 거의 무의식중에 또다시 술을 한 잔 가득 따라서 마셨다. 높이 솟은 부인의 광대뼈가 불그스레하게 물들었다.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걔는 좀 이상한 아이예요.”
“그렇지요.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아기 때부터 좀 이상했죠. 절대로 우는 법이 없었어요. 그러고는 조금 더 자라자, 좀…… 과상해졌어요.”
“괴상하다니 어떤 식으로 말씀입니까?”
덤블도어가 공손하게 말했다.
“그게…….”
코올 부인이 잠시 뜸을 들였다. 술잔 너머로 덤블도어를 캐묻듯이 쏘아보는 부인의 날카로운 눈빛은 조금도 흐려지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댁의 학교에서 톰을 받아 주기로 한 거죠”
“예, 분명히 그렇습니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그 결정을 바꾸진 않겠지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 아이를 데리고 가시는 거죠? 무슨 일이 있어도?”
“예, 무슨 일이 있어도요.”
덤블도어가 진지하게 다짐했다.
부인은 그의 말을 믿을지 말지 망설이는 듯이 한동안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펴보다가, 결국 믿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불쑥 말을 내뱉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를 무서워해요.”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군다는 말씀인가요?”
덤블도어가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코올 부인이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좀처럼 그 아이가 그러는 현장을 잡을 수가 없어요. 여러 가지 사고들이 있었죠……. 아주 곤란한 일들이…….”
덤블도어는 그 말에 몹시 흥미를 갖는 것 같았지만, 코올 부인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부인은 또다시 술을 한 모금 꿀꺽 삼켰다. 장밋빛으로 물든 부인의 뺨이 더욱 붉어졌다.
“빌리 스텁스가 토끼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물론 톰은 자기가 안 그랬다고 하지만, 그리고 저도 그 녀석이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통 모르겠지만, 어쩼든 그렇다고 해도 설마 토끼가 스스로 대들보에 목을 매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겠지요. 물론입니다.”
덤블도어가 조용히 맞장구를 쳤다.
“그 녀석이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가서 그 짓을 했는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제가 좋아서 춤이라도 췄을 겁니다. 제가 아는 거라고는 그 전날 톰과 빌리가 말다툼을 했다는 것뿐이지요. 그리고…….”
코올 부인은 또다시 술을 홀짝 들이켰다. 이번에는 턱 밑으로 술이 조금 흘러내렸다.
“또 한 번은 여름 소풍을 나갔었지요. 저희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1년에 한 번 시골이나 바닷가로 소풍을 간답니다. 어쨌든, 소풍을 갔다 온 후부터 에이미 벤슨과 데니스 비숍이 비실비실하는 것이 영 시원치가 않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두 녀석에게 아무리 캐물어도 톰 리들과 동굴에 들어갔었다는 말밖에 안 하더군요. 톰은 그냥 동굴 탐험이었다고 맹세를 했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요. 어휴,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수없이 많았지요. 정말 이상한 일들이…….”
코올 부인은 또다시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뺨은 완전히 빨갛게 물들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또렸했다
“그러니 그 아이가 떠난다고 해서 섭섭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톰이 계속해서 학교에 있지는 않을 거라는 걸 부인도 알고 계시겠지요?”
덤블도어가 물었다.
“톰은 적어도 매년 여름에는 이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 그래요. 녹슨 부지깽이로 코를 한 대 얻어맞는 것보단 그편이 훨씬 낫지요.”
코올 부인은 딸꾹질을 하며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리는 술병의 3분의 2를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걸음걸이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부인의 모습을 보고 무척 감탄했다.
“아마도 톰을 한번 만나 보고 싶으시겠지요?”
“물론입니다.”
덤블도어 역시 일어나면서 말했다.
코올 부인은 덤블도어를 사무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더니, 마주치는 보조원들과 아이들에게 쉬지 않고 이런저런 지시 사항과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돌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모두 똑 같은 모양의 긴 회색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 그런대로 나쁜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자라기에는 참으로 음울한 환경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여깁니다.”
코올 부인은 두 번째 층계참을 돌아서 긴 복도의 첫 번째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똑똑 두 번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톰? 손님이 오셨단다. 덤버튼 씨라고 하신다. 아니, 죄송합니다, 던더보어 씨. 이분은 너와 이야기를 하려고 오셨어. 자, 그럼 나는 그만 나가 보마.”
해리와 두 명의 덤블도어가 그 방으로 들어가자, 코올 부인은 문을 닫고 나갔다. 낡은 옷장과 나무 의자, 그리고 쇠 침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아주 작고 쓸쓸한 방이었다. 한 소년이 책을 손에 쥐고 두 발을 앞으로 쭉 뻗은 채, 회색 담요 위에 앉아 있었다.
톰 리들의 얼굴에서 곤트 가족의 흔적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메로프의 마지막 소망이 이루어 진 것이다. 열한 살짜리 꼬마치고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까만 머리에 하얀 얼굴을 한 그는, 잘생긴 그의 아버지의 축소판 같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덤블도어의 기묘한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반갑구나, 톰!”
덤블도어가 손을 내밀며 앞으로 다가갔다.
소년은 망설이다가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덤블도어는 딱딱한 나무 의자를 리들 옆으로 끌어다가 앉았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꼭 병원의 환자와 문병객처럼 보였다.
“나는 덤블도어 교수란다.”
“’교수’ 라고요?”
리들이 되물었다. 그는 약간 경계하는 것 같았다.
“그건 ‘의사’ 같은 건가요? 여기는 뭐 때문에 오셨죠? 원장님이 저를 살펴보라고 보냈나요?”
소년은 그러면서 코올 부인이 방금 나간 문을 가리켰다.
“아니, 아니다.”
덤블도어가 빙그레 웃었다.
“난 그 말 안 믿어요. 날 감시하라고 보냈죠, 그렇죠? 진실을 말해!”
리들이 어찌나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마지막 말을 외쳤는지, 거의 충격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은 분명히 명령이었다. 전에도 이런 식으로 소리친 적이 꽤 많았던 것 같았다. 리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덤블도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아무런 방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다정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잠시 후, 리들을 노려보는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훨씬 더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벌써 말했잖니. 나는 덤블도어 교수란다. 그리고 나는 호그와트라고 하는 학교에서 일을 하지. 나는 너에게 우리 학교에 들어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찾아왔단다. 너의 새로운 학교 말이지. 물론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이 말을 들은 리들의 반응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사나운 표정을 지으면서 덤블도어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졌다.
“날 속일 수는 없어! 정신병원에서 왔지, 그렇지? ‘교수’ 라고? 그래, 물론 그렇겠지. 난 절대로 안 갈 거야, 알겠어?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은 바로 그 늙은 고양이야. 나는 에이미 벤슨이나 데니스 비숍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 아이들에게 물어봐! 그럼 말해 줄 거야!”
“난 정신병원에서 온 것이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끈기 있게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야. 네가 진정을 좀 하고 자리에 앉는다면, 내가 호그와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마. 물론 네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해도, 아무도 강요하지는 않을 게다.”
“강요해 보기만 하라지.”
리들이 빈정거렸다.
“호그와트는…….”
덤블도어는 리들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설명을 계속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학교로…….”
“난 안 미쳤어!”
“나도 네가 미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단다. 호그와트는 정신병자들을 위한 학교가 아니야. 거기는 마법 학교란다.”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두 눈만은 거짓말이라는 증거를 잡아내기 위해 기를 쓰는 듯이 덤블도어의 두 눈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마법이라고요?”
톰이 중얼거렸다.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내…… 내가 하는 게 마…… 마법인가요?”
“네가 뭘 할 수 있지?”
“온갖 걸 다 해요.”
리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서서히 생기가 솟아나더니 훌쭉한 그의 뺨이 붉어졌다. 이제 그는 마치 열에 들뜬 사람 같았다.
“저는 물건을 건드리지 않고도 움직이게 할 수 있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동물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도 있고요. 물론 훈련을 시키지 않고서도 말이죠. 저를 못살게 구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쁜 일을 겪게 할 수도 있어요. 제가 원하면 다치게 할 수도 있고요.”
갑자기 그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는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서 다시 침대 위에 앉더니 마치 기도를 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어요.”
리들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제가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었죠. 뭔가가 있다는 걸 항상 알고 있었어요.”
“그래 네 말이 맞아.”
덤블도어는 더 이상 미소를 짓지 않고, 리들을 똑바로 쳐다 보면서 말했다.
“너는 마법사거든.”
리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얼굴이 전혀 딴판이 되었다.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얼굴에 가득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인상이 더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각을 해 놓은 듯한 그의 이목구비가 더욱 거칠게 보이면서 마치 짐승처럼 잔혹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저씨도 마법사인가요?”
“그렇단다.”
“증명해 봐!”
리들이 즉시 말했다. 조금 전 “진실을 말해!” 하고 소리치던 것과 똑같이 명령조였다.
덤블도어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만약 네가 호그와트에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면…….”
“물론 그럴 거예요!”
“그렇다면 앞으로는 나를 반드시 ‘교수님’ 이나 ‘선생님’ 이라고 불러야 한단다.”
리들은 잠깐 동안 험악한 표정을 짓더니, 별로 달라진 기색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러니까 교수님, 부탁인데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해리는 틀림없이 덤블도어가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시범들은 호그와트에 가서도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으며, 지금은 머글들이 잔뜩 있는 건물 안에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리들에게 말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뜻밖에도 덤블도어는 양복 윗도리의 안주머니에서 지팡이를 꺼내더니 한쪽 구석에 있는 낡아 빠진 옷장을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지팡이를 흔들었다.
옷장이 펑 하며 불길에 휩싸였다.
리들은 깜짝 놀라서 펄떡 일어났다. 해리는 그가 분노와 충격으로 마구 울부짖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진 재산이 그 옷장 안에 들어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리들이 덤블도어를 돌아보는 순간, 불꽃이 사라지면서 멀쩡하게 서 있는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리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옷장과 덤블도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탐욕스런 표정으로 지팡이를 가리켰다.
“그런 건 어디서 얻을 수 있죠?”
“때가 되면 다 생길 거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런데 네 옷장에서 뭔가가 나오려고 하는 것 같은데.”
과연 옷장 안에서는 뭔가가 희미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으로 리들은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문을 열어 보렴.”
리들이 조금 망설이다가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더니 옷장 문을 열었다. 낡아 빠진 옷들이 걸려 있는 가로대 위의 선반에 작은 종이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공포에 질린 생쥐라도 몇 마리 들어 있는 것처럼 상가 달그락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꺼내 보렴.”
덤블도어가 지시했다.
리들은 흔들리는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는 불안한 얼굴이었다.
“그 상자 안에 뭔가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도 들어 있니?”
덤블도어가 물었다.
리들은 뭔가를 열심히 계산하는 듯한 표정으로 덤블도어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마침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교수님.”
“열어 보렴.”
덤블도어가 물었다.
리들은 뚜껑을 열고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린 채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침대 위에 쏟아 놓았다. 뭔가 흥미로운 것이 들었으리라 잔뜩 기대하고 있던 해리는 그저 사소한 잡동사니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요요, 은으로 만든 골무, 녹슬어 버린 하모니카 따위였다. 일단 상자 밖으로 나오자, 물건들은 달달 떨던 것을 멈추고 얄팍한 담요 위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원래 주인들에게 사과하고 물건들을 돌려주거라.”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다시 옷 속으로 집어넣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네가 돌려주었는지 아닌지 나는 다 알 수 있단다. 그리고 명심하거라. 호그와트에서는 절대 도둑질을 용납하지 않는단다.”
리들은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냉정하게 따져 보는 듯한 시선으로 덤블도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아무 감정도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네, 교수님.”
“호그와트에서는 마법을 사용하는 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제하는 법도 가르친단다.”
덤블도어가 계속 타일렀다.
“너는 틀림없이 우리 학교에서는 절대 가르치지도 용납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네 마법의 힘을 사용해 왔을 것이다. 물론 마법의 힘을 제멋대로 쓴 사람이 네가 처음도 아니고, 또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너는 이걸 반드시 알아야만 한단다. 호그와트에서는 학생들을 강제로 퇴학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마법부, 그래, 마법부라는 것이 있단다. 그 마법부에서는 앞으로 법을 어긴 사람들에게 훨씬 더 혹독하게 벌을 주기로 했단다. 모든 새로운 마법사들은 일단 우리 세계에 들어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법을 준수하겠다는 맹세를 해야 하지.”
“네, 교수님.”
리들이 또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란 불가능했다. 훔친 물건들을 다시 상자 안에 집어넣은 리들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물건들을 다 집어넣고, 리들은 덤블도어를 바라보며 뻔뻔스럽게 말했다.
“전 돈이 한 푼도 없어요.”
“그건 금방 해결될 수 있단다.”
덤블도어가 호주머니에서 가죽 돈주머니를 꺼냈다.
“호그와트에는 교복이나 책을 사는 데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기금이 있단다. 너는 아마 마법책이나 물건들을 중고로 사야만 할 거야, 하지만…….”
“마법책은 어디서 사죠?”
리들이 도중에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덤블도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묵직한 돈주머니를 받아 들고 두꺼운 금화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다이애건 앨리에서 사지.”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네게 필요한 책과 학용품들의 목록을 가져왔단다. 네가 이 물건들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마.”
“저랑 함께 가실 건가요?”
리들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물론이지. 너만 괜찮…….”
“전 필요 없어요.”
리들이 말했다.
“뭐든지 혼자서 하는 데 익숙해져 있거든요. 저는 런던 시내도 항상 혼자서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그 다이애건 앨리라는 곳은 어떻게 가죠? ……교수님?”
덤블도어의 눈빛을 알아채고 리들이 뒤늦게 덧붙였다.
해리는 아무리 그래도 덤블도어가 끝내 리들과 함께 가겠다고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시 놀랍게도 덤블도어는 리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의 목록이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고아원에서 리키 콜드런까지 가는 길을 정확하게 일러 준 다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찾을 수 있을 게다. 물론 머글들, 그러니까 마법사가 아닌 인간들은 찾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술집 주인인 톰을 찾아라. 너랑 이름이 같으니까 기억하기 아주 쉬울 거야.”
리들이 갑자기 성가신 파리를 쫓아내려는 사람처럼, 짜증스럽게 팔을 휙 내저었다.
“너는 그 이름이 싫으냐?”
“톰이란 이름은 너무 흔해요.”
리들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불현듯 자기 안에서 자꾸만 솟구쳐 올라오는 질문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그가 물었다.
“예, 아버지가 마법사였나요? 아버지 이름도 톰 리들이었다고 하던데.”
“미안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덤블도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마법사일 리는 없어. 그렇지 않으면 죽었을 리가 없으니까.”
리들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틀림없이 아버지가 마법사였을 거예요. 그럼…… 제가 필요한 물건들을 다 사고 나면…… 언제 그 호그와트에 가는 거죠?”
“자세한 내용들은 네 봉투에 든 두 번째 양피지에 다 적혀 있단다.”
덤블도어가 알려 주었다.
“9월 1일에 킹스 크로스 역에서 출발할 거다. 그 안에 기차표까지 다 들어 있단다.”
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덤블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악수를 청했다. 리들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런데 저는 뱀이랑 말을 할 수도 있어요. 시골로 소풍을 갔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됐죠. 뱀들이 저를 찾아와서 저에게 속삭였어요. 마법사들은 원래 다 그런 건가요?
해리는 리들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 자신이 지닌 가장 이상한 능력을 마지막 순간까지 말하지 않고 일부러 참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드문 일이란다.”
잠시 망설이다가 덤블도어가 말했다.
“하지만 가끔 그런 마법사가 있기도 하지.”
덤블도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말했지만, 눈으로는 리들의 얼굴을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성인 남자 대 소년으로서 한동안 서로를 빤히 쳐다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고는 잠시 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덤블도어는 문가에 가서 섰다.
“잘 있거라, 톰. 호그와트에서 보자꾸나.”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구나.”
머리가 하얗게 센 덤블도어가 해리의 옆에서 속삭였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또다시 캄캄한 어둠 속에서 둥둥 떠오르더니, 현재의 사무실 바닥에 안전하게 내려섰다.
“앉거라.”
해리 옆에 내려온 덤블도어가 말했다.
해리는 그의 말에 따랐다 그의 머릿속은 아직도 방금 본 광경들로 가득했다.
“그는 저보다 훨씬 더 빨리 그 사실을 믿더군요. 그러니까 교수님께서 그에게 그가 마법사라고 말씀하셨을 때 말이에요.”
해리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처음에 해그리드의 말을 믿지 못했거든요.”
“그래, 리들은 자신이 그러니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특별하다’ 는 사실을 기꺼이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럼 그때 아셨나요?”
“역사상 가장 위험한 어둠의 마법사를 만났다는 사실을 그때 내가 알고 있었느냐는 말이냐?”
덤블도어가 말했다.
“아니란다. 나는 그 아이가 장차 자라서 어떤 인물이 될 것인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단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사실이었지. 나는 호그와트로 돌아가서도 계속 그 아이를 주시했단다. 혹시 그 아이가 외톨이가 되거나 친구 없이 지내게 되면 뭔가 해 줘야만 할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그건 그 아이를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네가 들었던 대로, 리들의 능력은 그토록 나이 어린 마법사로서는 깜짝 놀랄 만큼 발전된 상태였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둡고 불길하게도 그 아이는 벌써 자신이 그런 능력을 조종했어. 그건 네가 보았던 대로, 철없는 마법사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수준이 아니었어. 그는 이미 다른 사람들과 맞서서, 그들을 조종하고 벌주고 겁주는 데 마법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던 거야. 목이 졸려 죽은 토끼나, 그가 동굴로 유인하여 끌고 간 어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는 대단히 암시적이었지……. 네가 원하면 그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게다가 파셀마우스(뱀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 역주)였어요.”
해리가 불쑥 말했다.
“그래, 그랬어. 그건 아주 드문 능력이야. 어둠의 마법과 관련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거지. 물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위대한 사람과 선한 사람들 중에도 파셀마우스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뱀의 말을 할 수 있는 능력보다는, 그가 보여 준 잔인성과 지배욕, 은밀함에 대한 본능이 더 신경 쓰이더구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덤블도어가 창문 너머로 캄캄해진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헤어지기 전에 말해 둘 것이 있는데, 해리, 우리가 방금 본 몇몇 장면들에 대해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장차 우리의 수업에서 토의하게 될 문제들과 커다란 연관성이 있으니까 말이다.
첫 번째로 내가 리들에게 ‘톰’ 이라는 그의 이름과 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말했을 때 그가 보인 반응을 너도 주목했는지 모르겠구나?”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들은 그와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분노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자신을 평범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말이다. 그 나이에도 벌써, 그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어 이름을 떨치고 싶어 했어. 그래서 너도 알다시피, 그자는 그 대화가 있은 지 불과 몇 년 후에 자기 이름을 버리고 ‘볼드모트 경’ 이라는 가면을 만들어서는 오랫동안 자신의 진짜 이름을 감추고 다녔단다.
또한 톰 리들이 이미 대단히 오만하고 음흉하며, 무엇보다도 친구가 없었다는 사실을 눈치 챘겠지? 그 애는 내가 다이애건 앨리까지 함께 가 주거나 도와주는 것도 원하지 않았단다. 모든 걸 혼자서 하는 편을 좋아했지. 어른이 된 볼드모트도 똑같아. 너는 많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저마다 자기가 볼드모트의 심복이라고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을 게다. 자기만이 그자와 가장 가깝고 그자의 심증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모두 착각이야. 볼드모트 경은 절대로 친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친구를 갖고 싶어 하지도 않는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리, 너무 졸려서 이 말을 그냥 흘려보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데, 어린 톰 리들은 전리품을 수집하는 걸 좋아했단다. 너도 그 아이가 자기 방에 감추어 놓은, 훔친 물건 보관함을 보았겠지? 그것은 자기가 특히 못된 마법을 써서 못살게 군 희생자들로부터 빼앗은 것인데, 일종의 기념품인 셈이지. 이런 까치 같은 습성(까치는 물건을 모으는 버릇이 있음 : 역주) 이 있다는 걸 명심하거라. 이 사실은 나중에 특히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거다. 자, 이제는 진짜로 자야 할 시간인 것 같구나.”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걸어 나가면서, 지난번에 마볼로 곤트의 반지가 놓여 있던 작은 탁자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반지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왜 그러냐, 해리?”
해리가 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고 덤블도어가 물었다.
“반지가 사라졌어요.”
해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하모니카나 뭐 그런 걸 갖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덤블도어가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해리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아주 예리하구나, 해리. 하지만 그 하모니카는 그냥 평범한 하모니카였단다.”
아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고 덤블도어는 해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해리는 그만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