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장 (139/194)

제12장

은잔과 오팔 목걸이

   덤블도어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지난 몇 주일 동안 해리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딱 두 번 볼 수 있었다. 덤블도어는 더 이상 식사 시간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해리는 덤블도어가 이따금 며칠씩 학교를 비우는 것 같다는 헤르미온느의 생각이 맞다고 확신했다. 혹시 해리와 약속했던 수업마저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덤블도어는 그 수업이 예언과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해리는 왠지 마음이 든든하고 기운이 났었는데, 이제는 약간 버림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10월 중순쯤 되었을 때, 이번 학기 들어서 처음 맞이하는 호그스미드 주말 방문일이 돌아왔다. 해리는 학교 주변을 둘러싼 보안 조치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이 마당에 호그스미드를 방문하는 게 가능할까 걱정했지만, 예정대로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기뻤다. 다만 몇 시간 만이라도, 학교 운동장을 벗어난다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었다.

   방문일 아침에 해리는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하늘은 폭풍이 몰아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 때까지 해리는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평소에는 침대에서 뒹굴면서 교과서를 읽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 않았다. 그런 행위는, 론의 말대로라면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헤르미온느를 빼고는 어느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꼴 사나운 짓으로, 헤르미온느는 단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을 뿐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혼혈 왕자의 《상급 마법약 만들기》만큼은 아무리 봐도 교과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책을 꼼꼼히 읽으면 읽을수록, 해리는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슬러그혼 교수로부터 극진한 총애를 받게 만들어 준 유용한 힌트와 요령들뿐만 아니라, 여백에 마구 휘갈겨 써져 있는 상상력 넘치는 간단한 저주들과 주술들은 새까맣게 지워져 있거나 다시 고쳐 쓴 흔적으로 미루어 보아, 왕자 자신이 직접 생각해 낸 것임이 틀림없었다.

   해리는 벌써 왕자가 직접 고안한 주문들을 몇 개 시도해 보았다. 거기에는 발톱을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빨리 자라게 하는 주술(복도에서 크레이브에게 이 주술을 걸어 보았는데, 요절복통할 결과를 낳았다)과, 입천장에 혀를 딱 들러붙게 만드는 저주(아무것도 모르는 아구스 필치에게 두 번 써 보았는데, 모든 학생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유용한 주문인 머플리아토가 있었다. 이 주문은 가까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귀에 뭔지 알 수 없는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 주문 덕분에 해리는 교실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엿들을 염려 없이 마음 놓고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마법이 재미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오직 헤르미온느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만약 해리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머플리아토 주문을 쓴다면, 자기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해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서 책을 옆으로 돌린 채, 휘갈겨 써 놓은 주문 하나에 대한 지시 사항을 좀 더 자세히 읽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마도 왕자는 이 주문 때문에 꽤 고심을 한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 지워진 자국과 고쳐 쓴 흔적이 많이 있었지만, 마침내 한쪽 구석에 조그만 글씨로 다음과 같이 휘갈겨 써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레비코푸스(N-vbl)

   바람과 진눈깨비가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고 네빌이 드르렁드르렁 떠나가라 코를 골고 있는 동안 해리는 괄호 안에 든 글자를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N-vbl’ 이라…… 이건 ‘무언(non-verbal)’ 을 뜻하는 게 틀림없었다. 해리는 자신이 과연 이 특별한 주문을 실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아직도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스네이프가 잠깐잠깐 언급하는 무언 주문들을 다루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자는 이제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스네이프보다 훨씬 더 뛰어난 교사였다.

   해리는 딱히 뭔가를 겨냥하지도 않은 채, 그저 지팡이를 허공에 까딱 휘두르며 머릿속으로 “레비코푸스!” 하고 중얼거렸다.

   “아아아아아악!”

   불꽃이 번쩍하면서 방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론이 내지른 비명 소리에 모두들 잠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해리는 기절할 듯이 놀라서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내던져 버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갈고리가 그의 발목을 잡고 들어 올린 것처럼, 론이 허공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미안해!”

   해리가 소리쳤다. 딘과 시무스는 배꼽을 잡고 웃어 댔고,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네빌은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일어섰다.

   “잠깐만…… 내가 다시 내려 줄게.”

   해리가 더듬더듬 찾은 마법약 책을 움켜 쥐고 미친 듯이 책장을 넘기며 주문이 적혀 있던 곳을 찾으려고 애썼다. 마침내 그곳을 찾아낸 그는 그 주문이 적혀 있는 바로 그 아래에 깨알 같은 글씨로 써 있는 단어 하나를 해독해 냈다. 그리고 부디 이 단어가 저주를 푸는 주문이기를 빌면서, 온 힘들 다해서 머릿속으로 “리베라코푸스!” 하고 중얼거렸다.

   또다시 불꽃이 번쩍하더니, 론이 침대 위로 쿵 떨어졌다.

   “미안해.”

   해리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딘과 시무스는 여전히 깔깔거리며 박장대소를 했다.

   “내일부턴 차라리 그냥 자명종을 맞춰 줘.”

   론이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들은 위즐리 부인이 손수 떠 준 스웨터를 몇 겹씩 단단히 껴입고, 망토와 목도리, 장갑까지 챙겼다.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론은 해리의 새로운 마법이 굉장히 재미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너무나도 재미있어 한 나머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헤르미온느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불꽃이 번쩍하더니 내가 침대로 쿵 떨어졌지 뭐야!”

   론이 연신 입 속으로 소시지를 쑤셔 넣으며 씩 웃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이 일화를 듣는 동안 미소 한 번 짓지 않다가, 찬바람이 쌩쌩 부는 표정으로 해리를 비난하듯이 쳐다보았다.

   “그럼 혹시 이 주문도 네 마법약 책에 나왔던 거니?”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보며 인상을 썼다.

   “넌 항상 지레짐작해서 최악의 결론만 내리는구나, 안 그래?”

   “그 책에 있는 거 맞아?”

   “음…… 맞아, 그런데 그게 어때서?”

   “그래서 너는 누군가가 손으로 써 놓은 알려지지도 않은 주문들을 마구 시험해 보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구경하려고 했단 말이지?”

   “손으로 써 놓은 게 어째서 문제가 된다는 거야?”

   해리는 나머지 다른 질문을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고 일단 트집부터 잡았다.

   “왜냐하면 그건 마법부의 정식 인증을 받은 마법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지.”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리고 해리와 론이 눈알을 굴리는 걸 보자 또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게다가 이 왕자가 좀 수상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그러자 해리와 론이 동시에 그녀에게 소리쳤다.

   “그냥 장난일 뿐이야!”

   론이 소시지 위로 케첩 병을 거꾸로 흔들면서 투덜거렸다. 

   “그냥 장난이었다고, 헤르미온느. 그게 다야!”

   “발목을 붙잡아서 사람을 거꾸로 매다는 게 장난이라고?”

   헤르미온느가 따졌다.

   “도대체 세상에 어떤 사람이 그런 마법을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거지?”

   “프레드와 조지 있잖아.”

   론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그런 부류의 사람인가 보지. 그리고 또…….”

   “우리 아빠.”

   해리가 불쑥 말했다. 방금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뭐라고?”

   론과 헤르미온느가 동시에 소리쳤다.

   “우리 아빠가 이 마법을 사용했었어.”

   해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내가…… 아니 루핀 선생님이 말해 주었어.”

   마지막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 해리는 그의 아버지가 스네이프에게 이 주문을 쓰는 것을 직접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그 펜시브 속으로 떠난 특별한 여행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놀라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혹시 혼혈 왕자라는 사람이……?

   “네 아빠가 그 주문을 사용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지…….”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하지만 네 아버지만은 아니야. 혹시 네가 잊었을까 봐 하는 말인데, 우리는 여러 사람이 그 주문을 사용하는 걸 보았어. 허공에 사람을 거꾸로 매달거나, 꼼짝없이 잠든 상태에서 허공을 둥둥 떠다니게 하는 거 말이야.”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빤히 쳐다보았다. 퀴디치 월드컵 대회에서 보았던 죽음을 먹는 자들의 행위를 떠올리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론이 해리를 거들고 나섰다.

   “그거랑 이건 달라.”

   론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자들은 그 주문을 좋지 않은 일에 사용했지만, 해리와 그의 아버지는 그냥 웃기려고 한 거야. 네가 그 왕자를 싫어하는 건 말이야, 헤르미온느…….”

   론은 소시지로 헤르미온느를 똑바로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건 그 사람이 너보다 마법약 과목을 더 잘하기 때문이야.”

   “이건 그거랑 아무 상관도 없어!”

   헤르미온느가 두 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강력하게 항변했다. 

   “나는 그냥 뭐에 쓰는지도 모르는 주문을 마구 쓰는 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제발 그 ‘왕자’ 라는 말을 쓰지 마. 그 사람이 정말 무슨 왕자님이라도 되나? 내가 장담하는데 그건 그냥 바보 같은 별명일 게 분명해. 게다가 내가 보기에는 별로 좋은 사람 같지도 않다고!”

   “난 도대체 네가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해리가 발끈해서 대들었다.

   “만약 그자가 초창기 죽음을 먹는 자라도 된다면, 자기 입으로 자기가 ‘혼혈’ 이라고 버젓이 떠들고 다녔겠어, 안 그래?”

   이렇게 말하는 순간, 해리의 머릿속에는 자기 아버지가 순수 혈통의 마법사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얼른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고민하도록 하자…….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순수 혈통은 아니야. 순수 혈통의 마법사는 별로 남아 있지 않으니까 말이야.”

   헤르미온느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아마 그자들 대부분이 순수 혈통인 척하는 혼혈들일 거야. 그자들이 증오하는 것은 오직 머글 태생뿐이라고. 그자들은 너와 론이 가입을 하겠다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걸.”

   “하늘이 두 쪽 나도 그자들이 나를 죽음을 먹는 자로 받아 들이는 일은 없을 거야!”

   론이 분해서 펄펄 뛰었다. 그 와중에 그가 헤르미온느를 향해 휘두르던 포크에서 소시지 조각이 휙 빠져나가 어니 맥밀란의 머리에 가서 맞았다.

   “우리 가족들은 전부 그들에게 있어서 동족의 배신자들이야!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그건 머글 태생만큼이나 나쁜 거라고!”

   “그자들이 퍽이나 날 받아들이고 싶어 하겠다.”

   해리가 빈정거렸다.

   “그 작자들이 날 그렇게 해치우려고 애쓰지만 않았더라면 우린 좋은 친구가 되었을 텐데 말이야.”

   이 말에 론이 웃음을 터뜨렸다. 헤르미온느 마저도 마지못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때 지니의 등장으로 그들의 관심이 그녀에게 쏠렸다.

   “이봐, 해리, 너에게 이걸 가져다주라는 부탁을 받았어.”

   양피지 두루마리 위에는 가느다랗고 비스듬한 낯익은 글씨체로 해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마워, 지니……. 이건 덤블도어의 다음번 수업 통지야!”

   해리가 재빨리 양피지를 펼쳐서 내용을 읽어 보더니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월요일 저녁이야!”

   해리는 갑자기 마음이 밝아지고 가벼워졌다.

   “호그스미드에 우리랑 같이 갈래, 지니?”

   해리가 물었다.

   “나는 딘이랑 함께 가기로 했어. 거기서 만나겠지.”

   지니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자리를 떠났다.

   필치는 평소처럼 떡갈나무 현관문 앞에 떡 버티고 서서, 호그스미드 방문을 허락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필치가 비밀 탐지기로 모든 사람들을 세 번씩이나 조사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보통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도대체 우리가 어둠의 마법 물건을 밖으로 몰래 가지고 나간다 한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롱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길고 가느다란 비밀 탐지기를 힐끔 쳐다보며 따졌다.

   “우리가 뭘 가지고 들어오는지 그거를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론은 그 시건방진 말대꾸 때문에 탐지기로 뺨을 몇 번 더 쿡쿡 찔리고 나더니, 진눈깨비와 폭풍 속으로 걸어 나갈 때까지도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호그스미드까지 걸어가는 길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해리는 목도리로 눈 밑까지 콩콩 둘러쌌지만, 맨살이 드러나는 부분은 금방 칼로 에는 듯이 쓰라리고 무감각해졌다. 마을로 가는 길은 매서운 바람을 맞아 허리를 꼬부리고 가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해리는 차라리 따뜻한 휴게실에서라면 훨씬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낸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몇 번이나 후회했다. 마침내 호그스미드에 도착했을 때, 종코의 장난감 가게를 판자로 막아 놓은 것을 보고 해리는 이번 외출이 결코 즐겁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론은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허니듀크를 가리켰다. 다행히도 그 가게의 문은 열려 있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비틀거리며 론의 뒤를 다라서 사람들이 붐비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탕 냄새가 감도는 따뜻한 공기가 그들을 감싸자, 론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오후 내내 여기서 꼼짝도 하지 말자!”

   “오, 우리 해리가 아닌가!”

   그들의 등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이런!”

   해리가 중얼거렸다.

   세 사람이 고개를 돌려 보니, 슬러그혼 교수가 커다란 털모자에, 그에 어울리는 목에 털이 달린 외투를 입은 채, 커다란 파인애플 설탕 절임 봉지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거의 가게의 4분의 1은 그가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 그동안 자네가 놓친 나의 작은 만찬이 벌써 세 번째일세!”

   슬러그혼이 해리의 가슴을 다정하게 쿡쿡 찌르며 말했다. 

   “그러지 말게나, 우리 해리 군. 난 꼭 자네를 만찬에 참석시키고 말 거라네! 그레인저 양은 그 만찬을 좋아하지, 안 그런가?”

   “네.”

   헤르미온느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그 만찬은 정말…….”

   “그런데 왜 안 온 거지, 해리?”

   슬러그혼이 물었다,

   “저, 저는 퀴디치 연습이 있었습니다, 교수님.”

   사실은 슬러그혼이 그에게 작은 보라색 리본이 장식된 초대장을 보낼 때마다, 일부러 만찬 시간에 맞춰 퀴디치 연습 시간을 잡곤 했었던 것이다. 이것은 론이 따돌림을 당한 것이 아님을 알려 주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항상 맥클라건과 자비니 사이에 꼼짝없이 끼어 앉아 있을 헤르미온느를 상상하며 지니와 함께 한바탕 웃곤 했다.

   “그렇군, 그토록 열심히 연습을 한다니, 첫 번째 시합에서 반드시 자네가 승리하기를 기대하겠네!”

   슬러그혼이 말했다.

   “하지만 잠깐씩 쉬는 것도 절대 해가 되지 않는 법일세. 자, 그럼 월요일 저녁은 어떤가? 아마 자네도 이런 날씨에 연습을 하고 싶지는 않을 텐데…….”

   “죄송합니다, 교수님. 저는…… 저…… 그날 저녁에 덤블도어 교수님과 약속이 있어서요.”

   “이런 또 운이 나빴군!”

   슬러그혼이 과장되게 소리쳤다.

   “아, 그렇다면……. 어쨌든 언제까지나 나를 피할 수는 없을 걸세, 해리!”

   슬러그혼은 마치 진열해 놓은 바퀴벌레 떼라도 보듯이 론에게 한 번 힐끗 눈길을 던지더니, 위풍당당하게 손을 흔들며 가게를 뒤뚱뒤뚱 걸어 나가 버렸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다음번에는 빠져나갈 수 없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너도 알잖아……. 만찬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가끔은 꽤 재미있을 때도 있어…….”

   하지만 다음 순간 헤르미온느는 론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는 얼른 말했다.

   “어머, 저기 봐. 초대형 설탕 깃펜을 만들었네. 몇 시간은 충분히 가겠는걸!”

   헤르미온느가 화제를 바꾼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해리는 이 새로운 초대형 설탕 깃펜에 대해서 평소보다 훨씬 더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론은 계속해서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헤르미온느가 다음에는 어디를 가고 싶으냐고 물어도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스리 브룸스틱스에 가자.”

   해리가 제안했다.

   “거기라면 따뜻할 거야.”

   그들은 목도리로 얼굴을 둘둘 감고 허니듀크를 나왔다. 달콤하고 따뜻한 허니듀크에 있다가 나오니, 매서운 바람이 마치 칼날처럼 그들의 얼굴을 에었다. 거리는 한산한 편이었다. 괜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들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 앞에 스리 브룸스틱스 가게 밖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만이 예외였다. 한 사람은 키가 무척 크고 호리호리했다. 빗물이 흘러 내리는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고 열심히 바라본 결과, 해리는 그 사람이 호그스미드에 있는 또 다른 술집인 호그스 해드에서 일하는 종업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가 좀 더 갂ㅏ이 다가가자, 그 술집 종업원은 외투를 목 주위로 더욱 단단히 여미며 가 버렸다. 좀 더 키가 작은 사람만이 혼자 남아 팔 밑에 낀 뭔가를 더듬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갔을 때, 해리는 비로소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먼던구스!”

   흰 다리에 땅딸막하고, 긴 빨간 머리가 마구 헝클어진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오래된 가방을 툭 떨어뜨렸다. 그러자 가방이 활짝 열리면서 고물상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전부 끌어 모은 듯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 안녕, 해리.”

   먼던구스 플레처는 왠지 허점을 찔린 듯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어…… 내가 좀 바빠서.”

   그는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허둥지둥 땅에 떨어진 물건들을 끌어 모아 가방 속으로 다시 집어넣기 시작했다.

   “이 물건들은 팔려고요?”

   해리는 땅에 떨어진 온갖 잡동사니를 허겁지겁 주워 담는 먼던구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 다 입에 풀칠이나 하려고 하는 짓이지.”

   먼던구스가 말했다.

   “그거 이리 내!”

   론이 허리를 숙이더니 은으로 만든 뭔가를 집어 들었다.

   “잠깐만……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것 같은데…….”

   론이 천천히 말했다.

   “고맙구나!”

   먼던구스가 론의 손에서 재빨리 작은 잔을 낚아채더니 가방 속으로 쑤셔 넣었다.

   “자, 그럼 나중에 보자, 아이쿠!”

   해리가 먼던구스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술집의 벽 쪽으로 세게 떠밀었다. 해리는 한 손으로 그를 꽉 붙잡은 채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그거 시리우스의 집에서 가져온 물건이죠?”

   해리가 거의 코와 부딪힐 정도로 먼던구스에게 얼굴을 바싹 갖다 대고 속삭였다. 찌든 담배와 술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숨결이 확 느껴졌다.

   “거기 찍힌 것은 블랙 가문의 문장이에요.”

   “나…… 나는…… 그게 뭔지……?”

   먼던구스는 얼굴빛이 보라색으로 변하면서 뜻 모를 소리를 지껄여 댔다.

   “무슨 짓을 한 거예요? 그가 죽던 날 밤, 다시 돌아가서 그곳을 털었나요?”

   “나는…… 아니…….”

   “해리, 그러면 안 돼!”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먼던구스는 이제 얼굴이 완전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 순간 뭔가가 쾅 하고 부딪혔고, 해리는 먼던구스의 목을 조이고 있던 자신의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먼던구스는 숨을 캑캑거리며 몰아쉬더니 때를 놓치지 않고 땅에 떨어진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펑 하며 순간이동을 하여 자취를 감추었다.

   해리는 먼던구스가 사라진 곳을 찾기 위해 그 자리를 빙빙 돌면서, 있는 대로 크게 욕설을 퍼부었다.

   “당장 돌아와! 이 도둑놈아……!”

   “그래 봐야 소용없어, 해리.”

   어디선가 통스가 나타났다. 생쥐 같은 회색 머리카락은 진눈깨비를 맞아 흠뻑 젖어 있었다.

   “지금쯤 먼던구스는 아마 런던까지 날아갔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소리를 질러도 아무 소용이 없어.”

   “그자가 시리우스의 물건을 훔쳤어요. 훔쳐 갔다고요!”

   “그래, 그만 진정해라.”

   통스는 이 소식을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 같았다.

   “너희들 이러다가 감기에 걸리겠다.”

   통스는 스리 브룸스틱스의 문 안으로 들어가는 세 사람을 지켜보았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해리는 또다시 분통을 터뜨렸다.

   “그자가 시리우스의 물건을 훔쳐 내고 있었다니!”

   “나도 알아, 해리. 그래도 제발 고함 좀 지르지 마. 사람들이 전부 우릴 쳐다보잖아.”

   헤르미온느가 소곤거렸다,

   “어서 가서 자리나 잡아. 내가 마실 것을 가져다줄게.”

   헤르미온느가 몇 분 후에 버터 맥주 세 병을 손에 들고 그들 자리로 돌아왔을 때에도, 해리는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기사단에서는 왜 먼던구스 한 사람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거야?”

   해리는 분노에 치를 떨며 두 사람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적어도 그자가 본부에 있으면서 옮길 수 있는 물건은 뭐든지 훔쳐 내는 짓 정도는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잖아?”

   “쉬잇!”

   헤르미온느는 혹시 누구 엿들은 사람은 없는지 사방을 둘러 보며 다급하게 해리의 입을 막았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가까운 곳에 마법사 두 사람이 앉아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해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지 멀지 않은 자리에 자비니가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축 늘어져 있었다.

   “해리 나라도 화가 날 거야. 그자가 훔친 물건이 바로 네 것이니까…….”

   해리는 버터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동안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의 저택이 그의 소유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그건 내 물건이야!”

   해리가 중얼거렸다.

   “그러니 그 작자가 날 보고 반가워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지! 덤블도어 교수님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말씀드릴 거야. 세상에서 먼던구스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덤블도어 교수님 딱 한 분뿐이니까 말이야.”

   “좋은 생각이야.”

   헤르미온느가 소곤거렸다. 해리가 조금씩 진정되는 기색을 보이자, 몹시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론, 넌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니?”

   “아무것도 아니야.”

   론이 화들짝 놀라며 바에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해리는 론이 아까부터 허리가 잘록하고 매력적인 술집 종업원 로즈메르타 부인과 눈을 마주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론은 오랫동안 이 부인을 흠모해 왔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이 나중에는 파이어위스키까지 더 마시게 만들겠지.”

   헤르미온느가 벌처럼 톡 쏘아붙였다.

론은 그녀의 빈정거림을 못들은 척하고 맥주만 홀짝홀짝 들이켰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더 품위 있게 보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시리우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시리우스가 그 은제 술잔을 엄청나게 싫어했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헤르미온느는 론과 바를 번갈아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톡톡 치고 있었다. 마침내 해리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병을 다 비우자 헤르미온느가 얼른 말했다.

“그럼 이걸로 하루를 마감하고 그만 학교로 돌아갈까?”

맞은편의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즐겁지도 않은 외출인 데다가, 날씨가 갈수록 더 험학해져서 더 이상 술집에 남아 있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시 망토의 옷깃을 단단히 세우고 목도리를 칭칭 두른 다음 장갑을 꼈다. 그리고 술집을 나서는 케이티 벨과 한 친구의 뒤를 따라서 하이가로 다시 올라갔다. 얼어붙은 진창길을 따라서 호그와트로 터벅터벅 돌아가고 있을 때, 해리는 문득 지니를 떠올렸다. 지니는 틀림없이 딘과 함께 그 행복한 연인들의 소굴인 마담 퍼디풋의 찻집에 오붓하게 앉아서 밀담을 속삭이고 있었을 테니, 그들이 지니를 만나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해리는 얼굴을 찌푸리며 회오리치는 진눈깨비를 피해 고개를 잔뜩 수그린 채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갔다.

   잠시 후에 해리의 귀에 케이티 벨과 그녀의 친구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을 타고 전해져 오는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커져 갔다. 해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두 여학생은 케이티가 손에 들고 있는 뭔가를 두고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건 너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야, 린느!”

   해리는 케이티가 이렇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오솔길의 모퉁이를 막 돌아서고 있었다. 진눈깨비가 점점 더 사납고 거세게 몰아쳐서 해리의 안경이 뿌옇게 흐려졌다. 해리가 막 장갑 낀 손을 들어서 안경을 닦는 순간, 린느가 케이티의 손에 있는 꾸러미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케이티가 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꾸러미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케이티가 허공으로 붕 솟아올랐다. 하지만 론이 그랬던 것처럼 발목이 공중에 매달리는 우스꽝스런 자세가 아니라, 마치 새가 날아오르는 듯이 두 팔을 우아하게 쫙 펼친 자세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뭔가 섬뜩했다……. 케이티의 머리카락은 맹렬하게 몰아치는 바람에 마구 휘날렸다. 그녀의 두 눈은 꼭 감겨 있었고, 그녀의 얼굴은 공허하고 무표정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그리고 린느는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서서 멍하나 지켜보았다.

   땅에서 2미터가량 솟아올랐을 때, 갑자기 케이티가 무시무시한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음이 분명했다. 케이티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또 질렀다. 린느도 함께 비명을 지르며 케이티의 발목을 붙잡고 어떻게든 땅으로 끌어내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도 그녀를 도와주려고 황급히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이 케이티의 발목을 붙잡자마자, 그녀는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버렸다. 해리와 론은 간신히 그녀를 붙잡는 데 성공했지만, 너무나 심하게 발버둥 치는 바람에 계속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이 케이티를 바닥에 눕히자, 그녀는 사지를 마구 내저으며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여기 있어!”

   해리는 울부짖는 바람 속에서 다른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가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게!”

   해리는 죽을힘을 다해서 학교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 케이티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해리는 오솔길의 모퉁이를 전속력으로 돌다가 뒷다리로 서있는 거대한 곰 같은 것과 쾅 부딪히고 말았다.

   “해그리드!”

   울타리 위로 나자빠진 해리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며 숨가쁘게 말했다.

   “해리!”

   무성한 눈썹과 수염 위에 하얗게 진눈깨비가 앉은 해그리드는 털이 북슬북슬하고 커다란 비버 가죽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롭을 보고 오는 길이야. 요즘은 너무 잘 지내서…….”

   “해그리드, 저기 다친 사람이 있어요. 아니면 저주를 받은 건지…… 뭐……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뭐라고?”

   해그리드가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 속에서 해리의 말을 알아 듣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저주를 당한 사람이 있다니까요!”

   해리가 악을 썼다.

   “저주라고” 누가 당했단 말이냐? 론은 아니지? 혹시 헤르미온느냐?”

   “아니에요. 걔들은 아니에요. 케이티 벨이에요. 이쪽이에요…….”

   두 사람은 오솔길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케이티를 둘러싸고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케이티는 아직도 땅에 쓰러져서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고, 론과 헤르미온느, 린느는 다 함께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물러서!”

   해그리드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살펴보마!”

   “케이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린느가 흐느꼈다.

   해그리드는 잠깐 동안 케이티를 살펴 보더니, 아무 말 없이 허리를 숙여서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리고 성을 향해서 쏜살같이 달려가 버렸다. 고막을 찢는 듯한 케이티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사나운 바람 소리만이 주변을 맴돌았다.

   헤르미온느는 울고 있는 케이티의 친구에게 재빨리 다가가서 어깨를 감싸 안았다.

   “네가 린느지, 그렇지?”

   여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이 그냥 갑자기 일어났니? 아니면……?”

   “저 꾸러미가 찢어졌을 때 일어났어.”

   린느가 울먹거리며 땅 위에 떨어진 갈색 종이 꾸러미를 가리켰다. 진눈깨비에 젖은 종이 꾸러미가 반으로 찢어져서 뭔가 초록색의 반짝거리는 물건이 드러나 있었다. 론이 허리를 숙이더니 그것을 집어 들려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해리가 얼른 그의 팔을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만지지 마!”

   해리는 웅크리고 앉았다. 화려하게 장식이 된 오팔 목걸이가 종이 밖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전에도 이걸 본 적이 있어.”

   해리가 그 물건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오래전에 보진과 버크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물건이야. 그 상표에는 저주가 걸려 있다고 쓰여 있었어. 케이티가 이 물건을 만진 모양이야.”

   해리는 린느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주체할 수 없이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케이티가 어떻게 이 물건을 손에 넣었니?”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가 싸웠던 거야. 케이티가 스리 브룸스틱스의 화장실에서 그걸 가지고 나오더니, 호그와트에 있는 누군가를 위한 깜짝 선물이라고 하는 거야. 자긴 그걸 전해 줘야만 한다고 했어.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케이티가 왠지 좀 이상했어……. 오, 설마, 오 설마……. 케이티는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려 있었던 것이 틀림없어. 그런데 난 그걸 알아채지도 못했으니!”

   린느는 또다시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몸을 마구 떨었다. 헤르미온느는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누가 그걸 케이티에게 주었는지 말해 주지 않던, 린느?”

   “아니…… 말해 주지 않았어……. 난 케이티에게 멍청한 짓 하지 말라고, 그걸 학교로 가지고 가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케이티는 내 말을 듣지 않았어……. 그래서…… 그래서 난 그걸 빼앗으려고 하다가…… 그만…….”

   린느가 절망스럽게 울부짖었다.

   “그만 학교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헤르미온느가 린느의 어깨를 감싸 안고 말했다.

   “케이티의 상태가 어떤지도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자, 어서…….”

   잠깐 동안 망설이던 해리는 얼굴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더니,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론을 무시한 채,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감싸서 집어 들었다.

   “이걸 폼프리 부인에게 보여 줘야 할 거야.”

   해리가 말했다.

   그들은 앞서 가는 헤르미온느와 린느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해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학교 운동장에 들어섰을 때, 해리는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감추지 못하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말포이는 이 목걸이에 대해서 알고 있어. 이 물건은 4년 전에 보진과 버크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거야. 그때 나는 말포이와 그의 아버지를 피해 숨어 있었는데, 말포이가 이 물건에 눈독을 들이는 걸 똑똑히 보았어. 우리가 그 녀석의 뒤를 밟았을 때, 그가 사려고 했던 바로 이 물건이었던 거야! 말포이는 이 물건을 기억했고, 그래서 그걸 사러 들어갔던 거지!”

   “난 잘 모르겠어, 해리.”

   론이 주저했다.

   “보진과 버크 가게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니까……. 그리고 저 여학생이 케이티가 이걸 여자 화장실에서 가지고 나왔다고 하지 않았니?”

   “그 여학생은 케이티가 화장실에 갔다가 그걸 가지고 돌아왔다고 말했어. 그러니까 케이티가 꼭 화장실 안에서 그 물건을 받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맥고나걸 교수님이다!”

   론이 경고했다. 해리가 고개를 들어 보니, 과연 맥고나걸 교수가 휘몰아치는 진눈깨비를 뚫고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서 돌계단을 종종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해그리드 말이, 너희 네 사람이 케이티 벨에게 일어난 일을 목격했다면서? 너희들 모두 당장 내 사무실로 올라오너라!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게 뭐지, 포터?”

   “케이티가 만졌던 물건이에요.”

   해리가 말했다.

   “세상에, 맙소사.”

   맥고나걸 교수는 기절할 듯이 놀라며 해리에게서 얼른 그 목걸이를 빼앗았다.

   “아니, 아니에요, 필치. 이 아이들은 나와 함께 갈 거예요!”

   맥고나걸 교수가 황급히 덧붙였다. 필치가 비밀 탐지기를 손에 높이 치켜들고 현관 복도를 가로질러 신나게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목걸이는 당장 스네이프 교수에게 전해 줘요. 하지만 절대 만지거나 하면 안 돼요. 꼭 목도리로 잘 싸서 가져가도록 해요.”

   해리와 다른 학생들은 맥고나걸 교수의 뒤를 따라서 계단을 올라 그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눈보라에 유리창이 흔들리며 덜커덕 소리를 냈다. 벽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도 방 안은 여전히 썰렁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문을 닫고 황급히 책상 뒤로 가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그리고 아직도 흐느껴 울고 있는 린느를 마주 보았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맥고나걸 교수가 날카롭게 물었다.

   “린느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기 위해서 몇 번이나 말을 멈춘 끝에, 떠듬떠듬 맥고나걸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케이티가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꾸러미를 안고 돌아왔으며, 약간 이상하게 보였다는 것, 그리고 이 밝혀지지 않은 물건을 전달하는 문제를 두고 서로 옥신각신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국에는 꾸러미를 뺏고 빼앗는 몸싸움으로까지 번졌다는 것, 그러다가 끝내 꾸러미가 찢어졌다는 이야기까지 말했다. 그리고 나자 린느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알겠다.”

   맥고나걸 교수가 조금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

   “그만 병동으로 올라가 보거라, 린느. 그리고 폼프리 부인에게 충격을 받았을 때 먹는 약을 좀 달라고 하렴.”

   린느가 사무실을 떠나자,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케이티가 그 목걸이를 만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지?”

   “허공으로 붕 떠올랐어요.”

   헤르미온느나 론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헤 해리가 얼른 대답했다.

   “그러고는 마구 비명을 지르더니 풀썩 떨어졌어요. 그런데 교수님. 덤블도어 교수님을 좀 뵐 수 있을까요?”

   “교장 선생님은 월요일까지 출장 중이시다, 포터.”

   맥고나걸 교수는 왠지 움찔한 기색이었다.

   “출장 중이시라고요?”

   해리가 화가 난 어조로 되물었다.

   “그래, 포터. 출장 중이시라고 했다!”

   맥고나걸 교수가 쌀쌀맞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이 끔찍한 일에 대해서 할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나에게 말해도 된다!”

   아주 잠깐 해리는 망설였다. 맥고나걸 교수는 속내를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반면 덤블도어 교수님은 물론 여려가지 면에서 훨씬 더 두렵고 어려운 상대이긴 하지만, 아무리 황당한 추론이라고 해도 쉽게 무시해 버리거나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것은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조롱거리가 될까봐 걱정하고 있을만한 시간이 없었다.

   “제 생각에는 드레이코 말포이가 케이티에게 이 물건을 준 것 같아요, 교수님.”

   그의 한쪽 옆에 앉아 있던 론이 갑자기 몹시 당황하며 코를 문질렀다. 다른 편에 앉아 있던 헤르미온느도 해리와 거리를 두려는 듯이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딴청을 피웠다.

   “그건 아주 심각한 고발이구나, 포터.”

   맥고나걸 교수가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증거라도 있니?”

   “아니요, 하지만…….”

   해리는 보진과 버크 가게까지 말포이를 뒤쫓아 갔던 이야기와 그들이 엿들었던 말포이와 보진 씨와의 대화 내용을 맥고나걸 교수에게 털어놓았다.

   해리가 말을 마치자, 맥고나걸 교수는 약간 혼란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말포이가 보진과 버크 가게에 뭔가를 고쳐 달라고 맡겼단 말이냐?”

   “아니요, 교수님. 말포이는 그저 보진 씨에게 뭔가를 고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 달라고 했어요. 그걸 그 사람에게 맡기지는 않으려고 했지요.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바로 그때 말포이는 뭔가를 사기도 했거든요. 제 생각에는 그게 그 목걸이였던 것 같아요.”

   “너는 말포이가 비슷한 꾸러미를 들고 가게를 나오는 걸 보았니?”

   “아니요, 교수님. 말포이는 보진 씨에게 그 물건을 가게에 보관해 두라고만 말했어요…….”

   “하지만 해리…….”

   헤르미온느가 말참견을 했다.

   “보진 씨는 차라리 그 물건을 가지고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잖아. 그리고 말포이는 싫다고 했고…….”

   “그건 틀림없이 말포이가 그 물건을 만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거야?”

   해리가 화가 나서 말했다.

   “말포이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어. ‘내가 그걸 가지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남들이 어떻게 보겠어?’ 라고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지적했다.

   “그야, 보나마나 목걸이를 가지고 다니는 얼간이로 보였겠지,”

   론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오, 론.”

   헤르미온느가 완전히 포기했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 목걸이는 완전히 포장이 되어 있었을 거야. 그래야 몸에 닿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망토 속에 감추기도 쉬웠겠지. 내 생각에 말포이가 보진과 버크 가게에 보관해 놓은 것은 뭔가 꽤 시끄럽거나 부피가 큰 물건일 거야. 그걸 가지고 거리로 나가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거라는 걸 미리 짐작할 수 있는 그럼 물건 말이야. 게다가…….”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큰 소리로 강조해서 말했다.

   “나는 보진 씨에게 그 목걸이에 대해서 물어봤었어. 기억나니? 내가 그에게 말포이가 뭘 보관해 놓았는지 알아내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 목걸이가 거기 있는 걸 봤단 말이야. 그리고 보진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그 목걸이의 가격을 알려 주었어. 이미 팔린 물건이라든가, 임자가 있다든가, 뭐 그런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그때 넌 속이 뻔히 들여다보였어. 보진 씨는 5초도 안 돼서 네가 왜 거기 왔었는지 알아차렸을 거야. 그러니까 너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게 당연하지. 어쨌든 말포이가 당장 그 물건을 찾으러 오지도 않을 테고…….”

   “그만 해라!”

   헤르미온느가 다시 반박을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맥고나걸 교수가 몹시 언짢은 얼굴로 호통을 쳤다.

   “포터,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어서 정말 고맙구나. 하지만 말포이 군이 단지 이 목걸이를 팔았을지도 모르는 가게에 들렀다고 해서 그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다. 아마 수백 명의 사람들이 똑 같은 일을 했을 테니 말이다…….”

   “제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론이 중얼거렸다.

   “어쨌든 올해에 이곳에는 아주 철저한 보안 조치가 취해지고 있단다. 그러니 이 목걸이를 아무도 모르게 학교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었을 게다.”

   “하지만…….”

   “게다가 한 가지 더 있단다.”

   맥고나걸 교수가 이 논쟁에 못이라도 박겠다는 듯이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말포이 군은 오늘 호그스미드에 가지 않았단다.”

   해리가 입을 딱 벌리고 서서 맥고나걸 교수를 맥없이 쳐다보았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교수님?”

   “왜냐하면 말포이 군은 나와 함께 나머지 수업을 받았거든. 연달아서 두 번이나 변신술 숙제를 끝내지 못했단다. 어쨌든 의심나는 점을 이야기해 줘서 고맙구나, 포터.”

   맥고나걸 교수는 그들 앞을 걸어 나갔다.

   “하지만 나는 이제 병동으로 가서 케이티 벨을 살펴봐야겠다. 너희들 모두 오늘 하루 잘 보내거라.”

   맥고나걸 교수는 사무실 문을 열고 서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줄지어 사무실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해리는 두 사람이 맥고나걸의 편을 든 것에 대해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렇지만 론과 헤르미온느가 이번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당장 끼어들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케이티가 그 목걸이를 누구에게 주려고 했던 것일까?”

   다 함께 휴게실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론이 물었다.

   “신만이 아시겠지.”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피했어. 누구라도 그 꾸러미를 풀어 봤다면, 그 목걸이를 만지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은 여럿이야.”

   해리가 추측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일지도 몰라. 죽음을 먹는 자들은 덤블도어 교수님을 어떻게든 없애 버리고 싶어서 안달이니까. 당연히 제일 첫 번째 목표물이겠지. 아니면 슬러그혼 교수님일까? 덤블도어 교수님은 볼드모트가 진짜로 그 사람을 손에 넣고 싶어 한다고 하던데, 그런 사람이 덤블도어 교수님과 한편이 되었으니 유쾌하지는 않았을 거야, 아니면…….”

   “아니면 너일지도 몰라.”

   헤르미온느가 심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해리가 반박했다.

   “만약 그랬다면 케이티는 그냥 그 오솔길에서 돌아서서 나에게 곧장 주어도 되었을 거야, 안 그래? 나는 스리 브룸스틱스에서부터 줄곧 케이티 뒤에 있었단 말이야. 게다가 필치가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수색하고 있는 판국에, 호그와트 밖에서 꾸러미를 건네주는 게 훨씬 더 말이 되잖아? 나는 말포이가 왜 케이티에게 그걸 성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라고 했는지 그게 궁금해.”

   “해리, 말포이는 호그스미드에 없었다고 하잖아!”

   헤르미온느는 이제 진짜 짜증이 난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럼 공모자가 있겠지.”

   해리는 끝까지 우겼다.

   “크레이브나 고일 아닐까? 아니면, 생각해 보자……. 또 다른 죽음을 먹는 자일 수도 있어. 이제는 죽음을 먹는 자들과 합류 했으니까, 크레이브나 고일보다 훨씬 더 나은 패거리들이 많을 거야…….”

   론과 헤르미온느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쟤랑은 아무리 떠들어 봤자 내 입만 아프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딜리그라우트.”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 앞에 서서 헤르미온느가 낭랑하게 소리쳤다. 초상화는 앞으로 활짝 열리면서 그들이 휴게실로 들어가도록 해 주었다. 그곳은 학생들로 바글거렸고, 눈비에 젖은 옷 냄새가 가득했다. 많은 학생들이 나쁜 날씨 때문에 호그스미드에서 일찍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웅성거리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는 것을 보니, 아직까지 케이티가 당한 일에 대한 소문이 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별로 훌륭한 공격은 아니었어.”

   론은 아무렇지도 않게 난롯가의 제일 좋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1학년 학생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 저주 걸린 물건이 성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했잖아. 완전한 계획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야.”

   “네 말이 맞아.”

   헤르미온느는 론을 의자에서 발로 쿡 밀어내더니, 의자를 다시 1학년 학생에게 내주었다.

   “아주 잘 짜인 음모는 절대 아니었어.”

   “하지만 도대체 언제부터 말포이가 세계 최고의 전략가 대접을 받게 됐지?”

   해리가 불쑥 물었다.

   론도 헤르미온느도 해리의 질문을 묵살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