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장 (138/194)

제11장

헤르미온느의 은밀한 도움

   과연 헤르미온느가 예상했던 대로, 6학년의 자유 시간은 결코 론이 처음에 기대했던 것처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날마다 주어지는 무시무시한 양의 숙제를 어떻게든 따라잡으려고 허덕거리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매일 시험 기간처럼 공부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업 그 자체도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해리는 요즘 맥고나걸 교수가 그들에게 하는 말을 절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헤르미온느까지도 맥고나걸 교수에게 다시 설명을 해 달라고 한두 번 부탁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리고 헤르미온느가 날로 점점 더 분개하는 사실이기도 했는데, 갑자기 마법약 수업이 해리가 가장 잘하는 과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다 혼혈 왕자의 덕분이었다.

   이제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에서뿐만 아니라, 마법과 변신술 수업에서도 무언 주문이 요구되었다. 해리는 종종 휴게실이나 테이블에서 친구들이 마치 변비약을 과용한 사람처럼 얼굴이 보라빛이 되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곤 했다. 그들은 물론 소리 내어 주문을 말하지 않고 마법을 거느라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므로 밖에 있는 온실로 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커다란 위안거리였다. 지금까지의 약초학 수업에서보다 훨씬 더 위험한 식물들을 다루기는 했지만, 적어도 독이 베네무스 텐타귤라가 등 뒤에서 와락 그들을 붙잡을 때에는 마음 놓고 큰 소리로 욕을 퍼부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과도한 숙제와 무언 주문 연습에 필사적으로 몰두한 나머지, 지금까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해그리드를 만나 보러 갈 시간조차 내지 못했다. 요즘 들어 해그리드는 식사 시간에도 교직원 테이블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그건 틀림없이 불길한 징조였다. 게다가 이따금 복도나 운동장에서 몇 번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에도, 무슨 까닭인지 번번이 그들을 보지 못하거나 그들의 인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찾아가서 해명을 해야만 해.”

   다음 토요일 아침 식사 시간에 헤르미온느가 교직원 테이블에서 텅 비어 있는 해그리드의 거대한 의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퀴디치 선수 선발 테스트가 있어!”

   론이 소리쳤다.

   “게다가 플리트윅 교수님이 내주신 아구아멘티 마법도 연습 해야만 해. 그건 그렇고, 도대체 뭘 해명한다는 거야? 설마 우리가 그의 그 한심한 수업을 혐오한다고 해그리드에게 말할 작정이야?”

   “우린 그 수업을 혐오하지 않았어!”

   헤르미온느가 반박했다.

   “널 위해 한마디 하자면, 난 그 폭탄 꼬리 스크루트 사건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고.”

   론이 우울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제야 너에게 하는 말이지만, 우린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거야. 넌 해그리드가 그 얼뜨기 동생에 대해서 하는 말을 못 들어서 그래. 우리가 계속 그 수업에 남았더라면, 꼼짝없이 그롭에게 신발 끈 매는 법이나 가르치고 앉아 있을 거라고.”

   “그렇지만 나는 해그리드와 말하지 않고 지내는 게 싫어.”

   헤르미온느가 샐쭉해서 고집을 부렸다.

   “퀴디치가 끝난 다음에 가도록 하자.”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달랬다. 물론 론과 마찬가지로 해리도 그들 인생에서 그롭이 없어야 훨씬 신상이 편할 거라고 생각 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해그리드가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전 내내 선발 테스트를 해야 할 거야. 꽤 많은 학생들이 지원을 했거든.”

   사실 해리는 퀴디치 팀의 주장으로서 첫 시험대에 오르기에 앞서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퀴디치 팀이 인기가 있는지 도통 모르겠어.”

   “오, 해리,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헤르미온느가 돌연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인기가 좋은 건 퀴디치 팀이 아니야! 바로 너라고! 지금 너는 최고의 관심 대상이라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최고의 인기 스타란 말이야.”

   그러자 론이 커다란 연어 덩어리가 목에 걸렸는지 웩웩거렸다. 헤르미온느는 잠깐 론을 향해 경멸에 찬 눈길을 던지고는, 다시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네가 진실을 말해 왔다는 걸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어, 안 그러니? 마법사 세계 전체가. 볼드모트가 다시 돌아왔다는 네 말이 옳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야. 게다가 지난 2년 동안 네가 진짜로 그 사람과 두 번이나 싸웠고, 두 번 모두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너를 ‘선택받은 자’ 라고 부르고 있어. 그런데도 왜 사람들이 너에 대해 열광하는지, 진짜로 그 이유를 너는 모르겠다는 거야?”

   해리는 갑자기 차갑고 비가 내리는 모습의 천장에도 불구하고 대연회장 전체가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마법부 사람들이 네가 정신 불안이고 거짓말쟁이라는 걸 입증하려고 애를 썼을 때, 너는 마법부의 그 모든 박해들을 다 견뎌 냈어. 네 손등에는 아직도 그 못된 여자가 네 피로 글씨를 쓰게 했을 때 생긴 상처가 남아 있잖아. 그런데도 너는 끝까지 네 주장을 굽히지 않았지…….”

   “나도 마법부에서 그 뇌의 촉수들이 날 붙잡았던 자리가 아직도 남아 있어. 이거 좀 봐!”

   론이 자기 소매를 겉어붙이며 말했다.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여름 동안 네 키가 더 자라서 다행이다.”

   헤르미온느가 옆에서 떠드는 론을 무시하며 말을 끝맺었다.

   “나도 키가 큰데…….”

   론이 뜬금없이 중얼거렸다.

   그때 우편 배달 부엉이들이 빗물로 얼룩덜룩해진 유리창을 통해서 휙 하고 날아 들어와,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 물방울을 흩뿌리며 내려앉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평소보다 더 많은 편지를 받았다. 걱정에 찬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소식도 듣고, 또 집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 주는 데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이번 학기가 시작된 이후로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 정기적으로 그에게 편지를 보내 주던 단 한사람은 이제 죽고 없었다. 해리는 가끔 루핀이 편지를 보내 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 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는 늘 실망뿐이었다. 그러므로 눈처럼 하얀 헤드위그가 다른 갈색 부엉이들과 회색 부엉이들 틈에서 빙빙 날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매우 깜짝 놀랐다. 헤드위그는 커다랗고 네모난 소포 꾸러미를 가지고 와서 그의 앞에 내려앉았다. 잠시 후에 똑같은 소포 꾸러미가 론의 앞에도 도착했다. 몸집이 작고 지칠 대로 지친 론의 부엉이 피그위존은 거의 꾸러미 밑에 깔려 죽을 지경이었다.

   “하!”

   소포 꾸러미를 풀자 플러러시와 블러트 서점에서 보낸 《상급 마법약 만들기》 새 책이 나오는 것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오, 잘됐구나.”

   헤르미온느가 제일 기뻐했다.

   “이제 그 낙서투성이 낡은 책은 돌려 줄 수 있겠다.”

   “미쳤니?”

   해리가 소리쳤다.

   “난 이 책을 절대로 돌려주지 않을 거야! 이봐, 내가 여러모로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해리는 《상급 마법약 만들기》 헌책을 가방에서 꺼내어 주문을 중얼거리며 지팡이로 책 표지를 탁 쳤다.

   “디핀도!”

   그러자 책 표지가 떨어져 나갔다. 해리는 새 책 표지에도 똑같이 주문을 걸었다(헤르미온느는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표지를 서로 바꾼 다음, “레파로!” 하고 중얼거리며 각각의 표지를 쳤다.

   그러자 이쪽에는 멀쩡하게 새 표지로 변장을 한 혼혈 왕자의 책이 나타났고, 저쪽에는 완전히 누가 쓰다가 버린 책처럼 보이는, 플러리시와 블러트 서점에서 온 새 책이 나타났다.

   “나는 슬러그혼 교수님에게 이 새 책을 돌려줄 거야. 뭐라고 불평할 수는 없을걸. 9갈레온이나 비용을 들였으니까.”

   헤르미온느는 샐쭉하더니 불만에 찬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세 번째 부엉이가 그날 나온 《예언자 일보》를 가지고 그녀 앞에 내려앉자, 그만 그 일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그녀는 재빨리 신문을 펼쳐서 1면을 살펴보았다.

   “누구 우리가 아는 사람이라도 죽었니?”

   론이 완전히 무덤덤한 어조로 물었다. 그건 헤르미온느가 신문을 펼쳐 들 때마다 론이 늘 재미 삼아 하는 소리였다.

   “아니, 하지만 디멘터들의 또 다른 공격이 있었어.”

   헤르미온느가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붙잡혔대.”

   “잘됐다. 누구야?”

   해리는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 아닐까 생각하며 물었다.

   “스탠 션파이크야.”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뭐라고?”

   해리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마법사 수송 차량인 구조 버스의 차장, 스탠 션파이크(21세)가 죽음을 먹는 자로서 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클래펌에 있는 그의 집을 급습한 결과, 션파이크는 어젯밤 늦게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스탠 션파이크가 죽음을 먹는 자라고?”

   해리는 3년 전에 처음 만났던 그 여드름투성이의 청년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아마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렸을 거야.”

   론이 합리적으로 추론했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야.”

   “그런 것 같지는 않아.”

   헤르미온느가 계속 신문을 읽으면서 말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그 사람은 술집에서 죽음을 먹는 자들의 비밀 음모에 대해서 떠들다가, 그 얘기가 다른 사람들의 귀에 흘러 들어가서 체포되었다고 나와 있어.”

   헤르미온느가 몹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만약 그 사람이 임페리우스 저주를 당했다면, 그자들의 계획에 대해서 함부로 떠들고 다닐 수 있겠어, 안 그래?”

   “그렇다면 자기가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과시하고 다니려고 했던 것 같은데.”

   론이 추측했다.

   “혹 이 친구가 바로 벨라들에게 수작을 걸면서, 자기가 장차 마법부의 장관이 되실 몸이라고 허풍을 떨었던 그 사람 아니니?”

   “맞아, 그랬었지. 하지만 스탠의 허풍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마법부에서 뭘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다.”

   해리가 말했다.

   “마법부는 자기들도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걸 거야.”

   헤르미온느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어……. 쌍둥이 패틸네 부모님이 그 아이들더러 그냥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는 거 너도 알지? 엘로이즈 미전은 벌써 학교를 떠났고 말이야. 어젯밤에 걔 아버지가 오셔서 데리고 가셨어.”

   “뭐라고!”

   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며 흥분했다. 

   “하지만 호그와트가 그 아이들 집보다 더 안전하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잖아! 여기에는 오러들도 있고, 특별 보호 주문들도 걸려 있고, 게다가 덤블도어 교수님도 계시잖아!”

   “교수님이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건 아닌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예언자 일보》 너머로 교직원 테이블을 힐끗 쳐다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너희들은 눈치 채지 못했니? 이번 주 내내 덤블도어 교수님의 자리도 해그리드의 자리만큼이나 자주 비어 있었어.”

   해리와 론은 교직원 테이블을 올려다보았다. 과연 교장 선생님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문득 해리는 일주일 전에 개인 지도를 받은 이후로 덤블도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생각에는 불사조 기사단과 관련된 중요한 일 때문에 학교를 비우신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잔뜩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렸다.

   “그러니까 내 말은…… 뭔가 심각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거지, 안 그러니?”

   해리와 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리는 세 사람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루 전에 끔찍한 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한나 아보트가 약초학 수업 시간 도중에 불려 나가 그녀의 어머니가 죽은 채로 발견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후로 한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분 후에 그들은 그리핀도로 테이블 앞을 떠나 퀴디치 경기장으로 향했고, 도중에 라벤더 브라운과 패르바티 패틸을 만났다. 쌍둥이 패틸 자매의 부모님이 쌍둥이를 호그와트로부터 데려가길 원한다는 말을 헤르미온느로부터 이미 들었기 때문에 해리는 단짝인 두 사람이 몹시 상심한 표정으로 서로 속삭이고 있는 것을 보고 전혀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리를 어리둥절하게 한 것은, 론이 두 사람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패르바티가 갑자기 라벤더를 팔꿈치로 쿡 찌르니까 라벤더가 얼른 고개를 들고 론을 향해 활짝 미소를 던진 것이었다. 론은 눈을 껌벅껌벅하며 그녀를 쳐다보더니, 뒤늦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론의 발걸음이 거의 뛰다시피 빨라졌다. 해리는 말포이가 자기 코를 부러뜨렸을 때 론이 웃지 않고 진지하게 대해 주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간신히 큰 소리로 웃고 싶은 유혹을 이겨 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냉랭하게 얼굴이 굳어서, 차갑고 뿌연 부슬비 속을 뚫고 경기장까지 가는 길 내내 썰렁하게 굴었다. 그리고 론에게 행운을 빈다는 한 마디 인사도 없이 관중석으로 가버렸다.

   해리가 예상했던 대로, 선발 테스트는 오전 내내 치러졌다. 끔찍하게 낡은 학교 빗자루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초조하게 움켜쥐고 있는 신입생들부터, 쌀쌀맞게 윽박지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학생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7학년 선배들에 이르기까지,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학생들 중 절반은 이 자리에 모인 것 같았다. 상급생들 중에는 덩치가 크고 머리카락이 뻣뻣한 남학생도 있었는데, 해리는 한눈에 그가 호그와트 급행 열차에서 만났던 학생임을 알아보았다.

   “우리, 그 늙은 민달팽이 선생의 객실에서 만났었지?”

   그 남학생이 학생들 틈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니 해리에게 악수를 청하며 자신만만하게 말을 걸었다.

   “코맥 맥클라건, 파수꾼이야.”

   “지난해에는 선발 테스트를 치지 않았었지?”

   해리는 떡 벌어진 맥클라건의 덩치를 유심히 바라보며, 이 친구라면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만 지켜도, 골대 세 개는 혼자서 너끈히 막아 낼 수 있겠는걸 하고 생각했다.

   “선발 테스트가 있는 날 나는 병동에 누워 있었어.”

   맥클라건이 꽤 으스대듯이 말했다.

   “내기에 이기려고 독시 알을 500그램이나 먹었거든.”

   “그렇구나.”

   해리가 말했다,

   “그럼…… 저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앉아 있는 자리와 가까운 운동장 가장 자리를 가리켰다. 순간 맥클라건의 얼굴 위로 불쾌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해리는 혹시 두 사람 모두 ‘늙은 민달팽이’ 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맥클라건이 무슨 특별 대접을 기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테스트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한 해리는 모든 지원자들에게 열 명씩 팀을 짜서 운동장 주위를 한 바퀴 빙 날아보라고 지시했다. 그것은 아주 현명한 결정이었다. 첫 번째 열 명은 모두 신입생들이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빗자루를 타고 날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한눈에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남학생 한 명 만이 간신히 몇 초 정도 허공에 떠 있을 수 있었는데, 자기가 날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란 나머지 금방 골대 하나를 들이박고 말았다.

   두 번째 팀은 열 명의 여학생들이었는데, 해리는 그렇게 아둔한 여학생들을 난생처음 만나 보았다. 그가 호루라기를 불자마자, 그 여학생들은 곧장 땅으로 떨어지더니 서로 붙잡고 깔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로밀다 베인도 그 여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결국 해리가 그만 운동장에서 나가 달라고 부탁하자, 여학생들은 오히려 신이 나서 자리를 떠나더니 관중석에 앉아 다른 지원자들을 하나하나 이러쿵저러쿵 찧고 까부는 데 열을 올렸다.

   세 번째 팀은 운동장을 반쯤 돌다가 중간에 연쇄 충돌을 일으켰다. 네 번째 팀은 대부분이 빗자루도 없이 빈손이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팀은 모두 후플푸프 기숙사의 학생들이었다.

   “그리핀도르 학생이 아닌 사람이 또 있으면,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 주세요!”

   슬슬 진짜로 열을 받기 시작한 해리는 큰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잠깐 정적이 흐르더니, 어린 래번클로 학생들 두 명이 키득키득 웃으며 운동장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마침내 두 시간 후에, 수많은 불평과, 불끈 울화가 치미는 수차례의 사건들 -그중에는 부서진 카미트 260 빗자루 하나와 부러진 이빨 대여섯 개가 포함되어 있었다-을 겪은 끝에 해리는 추격꾼 세 명을 선발했다. 선발 테스트를 뛰어난 실력으로 통과하고 팀에 복귀한 케이티 벨과 블러저를 요리조리 피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인 드멜자 로빈스라고 하는 신참, 그리고 모든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17점이나 득점을 한 지니 위즐리였다. 해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몹시 만족했지만, 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는 수많은 탈락자들을 상대로 고함을 지르느라 목이 완전히 쉬어 버렸다. 그리고 이제 선발 테스트에서 떨어진 몰이꾼들을 상대로 똑같은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이게 나의 최종 결정이야. 그리고 만약 너희들이 파수꾼 후보자들을 위해서 자리를 비키지 않는다면, 마법을 쓰도록 하겠어!”

   해리는 소리를 꽥 질렀다.

   해리가 선택한 몰이꾼들 중에는 프레드와 조지처럼 눈부시게 뛰어난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런 편이었다. 지미 피크스는 비록 키는 작지만 가슴이 떡 벌어진 3학년 학생이었는데, 어찌나 사납게 블러저를 갈겼는지 해리의 뒤통수에 달걀만 한 혹이 솟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리치 쿠트는 껑충하게 마르긴 했지만, 목표물을 잘 겨누었다. 이제 그들은 구경꾼들과 함께 관중석에 앉아서 나머지 선수들이 선발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사실 해리는 이쯤 되면 관중석도 비고 사람들의 이목을 받아야 하는 부담도 훨씬 줄어들 거라고 기대하고, 파수꾼 선발 테스트를 일부러 제일 마지막으로 미뤘던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시험에서 탈락한 모든 지원자들과 여유 있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구경을 나온 수많은 학생들까지 합세해서, 이제 관중석은 그 여느 때보다도 만원이었다. 파수꾼들이 차례차례 골대를 향해 날아 올라갈 때마다,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야유를 보내며 난리였다. 해리는 론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론은 항상 긴장하면 실수를 저지르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지난 학기의 마지막 시합 때 승리한 경험을 통해 그 병이 고쳐졌기를 바랐지만, 그렇지 않은 게 분명했다. 론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처음 다섯 명의 지원자들 중에는 두 개 이상의 골을 막아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코맥 맥클라건이 연달아 네 개의 페널티 킥을 막아 내자, 해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마지막에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슝 날아가 버리자, 관중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야유를 보냈다. 맥클라건은 이를 갈며 운동장으로 다시 내려왔다.

   드디어 클린스윕 11에 올라탄 론은 마음의 준비가 된 듯 보였다.

   “행운을 빌어!”

   관중석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틀림없이 헤르미온느일 거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뜻밖에도 라벤더 브라운이었다. 해리는 조금 후에 라벤더 브라운이 그런 것처럼, 자기도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주장으로서 좀 더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서 론이 시험을 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해리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론은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다섯 개의 페널티 킥을 연속해서 성공적으로 막아 냈다. 해리는 너무 기뻐서 사람들과 함께 환호하며 뛰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맥클라건에게 정말 안타깝지만 론이 그를 이겼다고 말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붉으락푸르락한 맥클라건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뒤로 물러섰다.

   “론의 여동생은 제대로 골을 날리지 않았어.”

   맥클라건이 악의에 차서 항의했다. 그의 관자놀이에는 해리가 종종 버논 이모부에게서 발견하곤 했던 것과 똑같은 퍼런 힘줄이 불끈 솟아 있었다.

   “일부러 약하게 골을 쳐 주었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해리가 딱 잘라 말했다.

   “론이 거의 놓칠 뻔한 유일한 골이었어.”

   맥클라건은 버티고 서 있는 해리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바싹 다가왔다.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안 돼.”

   해리가 거절했다.

   “넌 벌써 기회를 가졌어. 넌 네 골을 막아 냈고, 론은 다섯 골을 막았어. 그러니까 론이 파수꾼이야. 정정당당하게 이긴 거라고. 어서 내 앞에서 비켜!”

   해리는 순간 맥클라건이 그에게 주먹을 날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기만 하더니, 두고 보자는 식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쿵쿵 요란한 발 소리를 내며 가 버렸다.

   해리가 뒤를 돌아보자, 새로 선발된 선수가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 잘했어. 정말 멋지게 날더라…….”

   해리는 목에 메어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너무너무 잘했어, 론!”

   이번에는 진짜로 헤르미온느가 관중석에서부터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해리는 라벤더가 뚱한 표정으로 패르바티와 나란히 팔짱을 낀 채 경기장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한편 론은 무지무지하게 자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선수들과 헤르미온느를 향해 씩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왠지 평소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다음 목요일에 첫 번째 정식 연습을 하기로 시간을 정한 후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다른 선수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해그리드의 오두막을 향해 떠났다. 물기를 머금은 태양이 구름을 간신히 뚫고 나오면서 부슬비가 드디어 멈췄다. 해리는 엄청나게 배가 고팠기 때문에 해그리드의 오두막에 뭔가 먹을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 페널티 킥은 그만 놓치는 줄 알았어.”

   론이 신이 나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드멜자가 속임수를 썼거든. 너희도 봤겠지만 약간 블러저를 회전시켰지…….”

   “그래, 그래. 넌 아주 굉장했어.”

   헤르미온느는 즐거운 표정으로 맞장구를 쳐 주었다.

   “어쨌든 나는 맥클라건보다 더 잘했어.”

   론은 몹시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도 그 녀석이 다섯 번째 골에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육중한 몸을 날리는 거 봤지? 꼭 혼동 마법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니까…….”

   그 말을 들은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지는 걸 보고, 해리는 내심 깜짝 놀랐다. 하지만 론은 자기가 페널티 킥 하나하나를 어떻게 막아 냈는지 상세히 설명하느라 너무 정신이 팔려서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집 앞에는 거대한 회색 히포그리프인 벅빅이 밧줄에 매여 있었다. 벅빅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부리를 딱딱 부딪치며 커다란 머리를 그들 쪽으로 돌렸다.

   “오, 이런.”

   헤르미온느가 불안한 듯이 말했다.

   “난 아직도 얘가 좀 무서워, 안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 넌 저 녀석 위에 올라타기까지 했어, 안 그래?”

   론이 핀잔을 주었다.

   해리는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히포그리프와 똑바로 눈을 맞춘 채 공손하게 절을 했다. 잠시 후에 벅빅도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지냈니?”

   해리가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가까이 다가가서 털이 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도 시리우스가 보고 싶니? 하지만 여기서 해그리드와 함께 있으니 괜찮지, 그렇지?”

   “이봐!”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커다란 꽃무뉘 앞치마를 두른 해그리드가 감자 보따리를 든 채, 오두막집 옆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의 덩치 큰 사냥개 팽이 그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고 있었다. 팽은 벼락처럼 왕왕 짖어 대더니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왔다.

   “저리들 가거라! 손가락을 물지도 몰라! 오, 너희들이로구나.”

   팽은 헤르미온느와 론을 향해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귀를 핥으려고 날뛰었다. 해그리드는 아주 잠깐 동안 가만히 서서 그들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휙 돌아서서 문을 쾅 닫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상에!”

   헤르미온느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걱정하지 마.”

   해리가 단단히 각오를 한 표정으로 문을 향해 걸어가더니 문을 쾅쾅 두드렸다.

   “해그리드! 문 좀 열어 줘요! 할 말이 있어요!”

   오두막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열어 주지 않으면 문을 부셔 버릴 거예요!”

   해리가 지팡이를 꺼내며 소리쳤다.

   “어떻게 그런 짓을…….”

   “아니야. 난 할 수 있어!”

   해리는 단호했다.

   “뒤로 물러서…….”

   하지만 해리가 예상했던 대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문이 다시 왈칵 열렸다. 그리고 해그리드가 문간에 서서 그를 무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꽃무뉘 앞치마를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난 교수님이야!”

   해그리드는 해리에게 호통을 쳤다.

   “교수라고, 포터! 그런데 어떻게 감히 우리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오겠다고 위협을 할 수가 있지?”

   “죄송합니다, 교수님.”

   해리는 특별히 ‘교수님’ 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말하면서, 다시 지팡이를 옷 안으로 집어넣었다.

   해그리드는 기가 막힌 것 같았다.

   “도대체 네가 언제부터 나를 ‘교수님’ 이라고 불렀지?”

   “그럼, 해그리드는 언제부터 저를 ‘포터’ 라고 부르게 된 거죠?”

   “오, 거참 똑똑하구나.”

   해그리드가 으르렁거렸다.

   “아주 재밌어. 나보다 한 수 위라 이거지? 좋아, 어서 들어와, 이 배은망덕한 꼬마 녀석들…….”

   투덜투덜 성을 내면서도 해그리드는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 앞을 비켜 주었다. 헤르미온느는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해리의 뒤에 바싹 붙어서 얼른 들어갔다.

   “그래…… 무슨 일이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그의 거대한 나무 식탁 주위에 빙 둘러앉자, 해그리드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한편 팽은 얼른 해리의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려놓더니 그의 망토에 온통 침을 질질 흘려 놓고 있었다.

   “나한테 미안해서 왔니? 내가 쓸쓸하거나 뭐 그럴까 봐?”

   “아니요, 해그리드를 보려고 왔어요.”

   해리가 즉시 대답했다.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헤르미온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보고 싶었다고?”

   해그리드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 잘도 그랬겠지.”

   해그리드는 쿵쾅쿵쾅 발소리를 내며 거대한 놋쇠 주전자에 차를 끓이면서도, 연신 툴툴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고는 그가 만든 록 케이크(표면이 까칠까칠하고 딱딱한 과자 : 역주) 한 접시와 적갈색의 차가 담긴, 거의 양동이만한 찻잔을 세 사람 앞에 탕 하고 내려놓았다. 해리는 해그리드가 만든 음식이라도 사양하지 않을 만큼 배가 고팠기 때문에, 케이크 한 조각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해그리드.”

   헤르미온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해그리드는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마치 감자 하나하나가 그에게 엄청난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기세로 사납게 감자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우리는 정말로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잘 알잖아요?”

   해그리드가 또다시 큰 소리로 콧방귀를 뀌었다. 해리는 속으로 틀림없이 감자 위로 코딱지가 다 튀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저녁 식사 때까지 여기 있을 수 없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정말이에요!”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도 시간표를 맞출 수가 없었어요!”

   “그래, 그랬겠지.”

   해그리드가 또다시 빈정거렸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하게 철벅철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셋은 일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순간 헤르미온느는 가느다랗게 비명을 질렀고, 론은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멀찌감치 식탁 뒤로 달아났다. 방 한구석에는 지금까지 그들이 알아채지 못했던 커다란 통이 놓여 있었다. 통 안에는 가늘고 하얗고 꾸불꾸불거리는, 30센티미터 정도의 기다란 구더기 같은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뭐예요, 해그리드?”

   해리는 비위가 상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척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들리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먹고 있던 록 케이크를 얼른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커다란 굼벵이들이야.”

   해그리드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저것들이 자라면…….”

   론은 몹시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저것들은 더 자랄 수가 없어. 아라고그에게 먹일 거니까.”

   이렇게 말하더니, 해그리드가 느닷없이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눈물을 흘렸다.

   “해그리드!”

   헤르미온느가 당황스럽다는 듯이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구더기가 들어 있는 통을 피해서 식탁을 빙 돌아 달려갔다. 그리고 들썩거리는 해그리드의 어깨 위에 팔을 올려놓았다.

   “무슨 일이에요?”

   “그 녀석…… 때문이야.”

   해그리드가 딱정벌레 같은 검은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먹거렸다. 그리고는 앞치마로 얼굴을 닦았다.

   “아라고그 말이야……. 아무래도 죽을 것 같아……. 여름 내내 아팠는데…… 좀처럼…… 낫질 않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만약…… 만약 그 녀석이……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는데…….”

   헤르미온느는 뭐라고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해 당황스런 얼굴로 해그리드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지금 어떤 기분일지 짐작이 갔다. 해그리드가 그 사나운 새끼 용에게 아기 곰 인형을 선물해 주고, 빨판과 독침이 달린 거대한 전갈들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고, 짐승처럼 사나운 의붓 동생 거인을 설득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괴물을 좋아하는 해그리드라도 이번에는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말하는 대왕 거미 아라고그라니. 4년 전에 해리와 론은 금지된 숲 속 깊은 곳에 사는 그 녀석에게 잡혔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온 적도 있지 않은가.

   “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헤르미온느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인상을 쓰는 론을 무시하고 물었다.

   “없는 것 같구나, 헤르미온느.”

   해그리드는 강물처럼 펑펑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으려고 애를 쓰며 목이 매어 말했다.

   “있잖아, 그 거미족의 나머지 녀석들…… 그러니까 아라고그의 가족들 말이야……. 그 녀석들이 아라고그가 아프니까 좀 이상하게 굴어……. 조금 거칠어졌다고 할까…….”

   “맞아요. 우리도 그 녀석들의 그런 면을 좀 본 것 같아요.”

   론이 감정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니까 당분간 나 이외에는 아무도 그 녀석들이 사는 곳 근처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해그리드는 말을 마치고 나서 앞치마에 코를 세게 풀더니 고개를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헤르미온느……. 정말 큰 위로가 되었어.”

   그 뒤로는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 물론 해리와 론은 그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식인 거미에게 왕구더기를 먹여 주러 가겠다는 뜻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지만, 해그리드는 그들이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 주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 나도 너희들 시간표에 내 수업을 끼워 넣기가 어려울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

   해그리드가 아이들에게 차를 좀 더 따라 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설사 시간을 거꾸로 가게 하는 시계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우린 이제 그걸 쓸 수가 없어요.”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지난 여름 마법부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 있는 시간을 거꾸로 가게 하는 시계들을 전부 깨뜨려 버렸거든요. 《예언자 일보》에도 났었는데…….”

   “아, 그랬구나.”

   해그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별 도리가 없지……. 미안하다. 그동안 내가…… 음, 알겠지만…… 난 그냥 아라고그 때문에 너무 걱정이 돼서…… 그리고 좀 궁금했단다. 만약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님이 계속 그 수업을 가르치셨더라면 너희들이…….”

   이 말에 아이들 셋은 입을 모아서, 잠깐동안 해그리드를 대신해서 수업을 했던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는 정말 형편없는 선생님이었다고 강력하게, 하지만 진실하지 못하게 항변을 했다. 그 결과, 저녁 무렵 집 앞에서서 그들을 향해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는 해그리드의 얼굴은 한결 즐겁고 명랑해 보였다.

   “난 배고파 죽겠어.”

   오두막 집의 문이 닫히자마자 해리가 중얼거렸다. 세 사람은 캄캄하고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지나 서둘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리는 어금니 중 하나에서 불길하게 딱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나자 록 케이크를 더 이상 먹지 않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오늘 밤에 스네이프에게 징계를 받으러 가야하니까 저녁 먹을 시간도 별로 없어.”

   

   그들이 서 안으로 들어갈 때, 대연회장으로 들어가는 코맥 맥클라건이 눈의 띄었다. 그는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두 번이나 시도를 해야만 했는데, 처음에는 문틀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론은 고소한 듯이 일부러 큰 소리로 낄낄 웃으면서 그의 뒤를 따라서 연회장 안으로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팔을 붙잡아 슬그머니 뒤로 잡아당겼다.

   “왜 그래?”

   헤르미온느가 약간 방어적인 태도로 물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해.”

   해리가 약간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맥클라건이 아무래도 오늘 아침에 혼동 마법에 걸렸던 것 같아. 그런데 걔는 네가 앉았던 자리 바로 앞에 서 있었거든.”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래, 맞아. 내가 그랬어.”

   그녀가 속삭였다.

   “하지만 너도 맥클라건이 론과 지니에 대해서 함부로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어야만 했어! 아주 성질이 고약하다니까. 너도 걔가 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나왔는지 직접 봤잖아. 설마 그런 녀석이 팀에 들어오길 원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해리가 말했다.

   “나도 그건 아니야. 하지만 그건 부정한 짓이 아니었니, 헤르미온느? 넌 명색이 반장이잖아, 안 그래?”

   “오, 그만 조용히 해.”

   해리가 싱글싱글 웃으며 놀리듯이 말하자, 헤르미온느가 쏘아붙였다.

   “너희 둘이서 뭐 하냐?”

   론이 대연회장 밖으로 다시 나오더니 두 사람을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아니야.”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동시에 황급히 소리치며 론의 뒤를 따라 얼른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구운 고기 냄새에 굶주린 해리의 배가 요동을 쳤다. 하지만 그리핀도르 테이블 쪽으로 불과 세 걸음도 옮기기 전에, 슬러그혼 교수가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해리, 해리. 자네를 만나기를 고대했었네!”

   슬러그혼은 입이 찢어지도록 활짝 웃으며, 갈라진 콧수염 끝을 비비 꼬면서 불룩한 배를 더욱 불쑥 내밀었다.

   “저녁 식사 전에 자넬 만나고 싶었지? 오늘 밤 내 방에서 조그맣게 만찬을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나? 이제 막 떠오르는 스타들을 위해서 작은 파티가 열릴 예정이라네. 그러니까 맥클라건과 자비니, 그리고 매력적인 멜린다 보빈 양이 오기로 되어 있다네. 혹시 자네가 그녀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먼. 보빈 양의 집안은 대규모 약국 체인망을 소유하고 있다네. 아, 그리고 물론 그레인저 양도 함께 온다면 대단히 기쁘겠네.”

   슬러그혼은 그레인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말을 끝맺었다. 마치 론은 아예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그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저는 못 갑니다, 교수님.”

   해리가 즉시 거절했다.

   “스네이프 교수님께 징계를 받아야만 해서요.”

   “오, 이럴 수가!”

   슬러그혼의 얼굴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일그러졌다.

   “이런, 이런…… 난 자네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해리! 내가 세베루스와 잠깐 이야기를 해서 상황을 설명해야겠군. 틀림없이 내가 부탁하면 자네의 징계를 다른 날로 연기할 수 있을 거라고 믿네. 그럼 잠시 후에 두 사람은 다시 보도록 하지!”

   슬러그혼은 분주하게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슬러그혼이 스네이프를 설득할 리가 없어.”

   슬러그혼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되자 해리가 말했다.

   “게다가 징계가 이미 한 번 연기된 적이 있잖아. 그것도 덤블도어 교수님의 말씀이니까 그랬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림 한 푼어치도 없어.”

   “나는 제발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 혼자서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걱정을 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맥클라건을 생각하고 그런다는 걸 알아차렸다.

   “너 혼자는 아닐 거야. 틀림없이 지니도 초대를 받았을 테니까 말이야.”

   론이 뾰로퉁해서 말했다. 슬러그혼에게 무시를 당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세 사람은 그리핀도르 탑으로 향했다. 휴게실은 이제 막 식사를 끝낸 학생들로 몹시 복작거렸다. 그들은 간신히 빈자리를 찾아서 앉을 수 있었다. 슬러그혼을 만난 이후부터 계속 저기압인 론은 팔짱을 딱 낀 채 인상을 쓰며 천장만 노려보았다. 헤르미온느는 누군가 의자 위에 버려놓고 간 《석간 예언자 일보》를 집어 들었다.

   “무슨 새로운 소식이라도?”

   해리가 물었다.

   “별로 없어…….”

   헤르미온느는 신문을 펼쳐 들고 안쪽에 실린 기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머, 이거 봐. 네 아버지가 여기 나왔어, 론, 아니, 네 아버지는 무사하셔!”

   론이 기절할 듯이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덧붙였다.

   “그냥 네 아버지께서 말포이네 집을 수색했다는 기사가 실렸을 뿐이야. ‘죽음을 먹는 자의 거주지를 두 번째 수색하였지만만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가짜 방어 주문과 부적 수사및 압수국의 국장 아서 위즐리는 이번 가택 수색이 비밀 제보에 의한 것이었고 말했다.’”

   “그래, 내가 그랬어!”

   해리가 말했다.

   “내가 킹스 크로스 역에서 네 아버지께 말포이에 대해 말씀 드렸거든. 그 애가 보진 씨에게 뭔가를 고쳐 달라고 했다고 말이야! 만약 그게 그들 집에 없다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팔포이가 그걸 호그와트로 가져온 게 틀림없어.”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해리?”

   헤르미온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신문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학교에 오자마자, 우리 모두 샅샅이 수색을 받았잖아, 안 그래?”

   “그랬어? 난 안 그랬는데!”

   해리가 놀라서 반문했다.

   “오, 그래. 넌 물론 안 받았겠지. 네가 늦게 도착했다는 걸 깜빡했어……. 그래, 우리가 연회장으로 들어갈 때, 필치가 비밀 탐지기를 가지고 전부 다 검사를 했어. 크레이브가 쪼그라든 해골을 압수당해서 아는데, 어둠의 마법 물건은 무엇이든 즉시 발각되었을 거야. 그러니까 말포이는 그 어떤 위험한 것도 절대 가지고 들어올 수가 없었어!”

   잠시 말 문이 막힌 해리는 피그미 퍼프인 아놀드를 가지고 노는 지니 위즐리를 지켜보며 헤르미온느의 반대 의견을 피해 갈 만한 말을 궁리해 보았다.

   “그럼 누군가 부엉이로 그에게 보내 주었을 수도 있어.”

   “어머니나 누군가가 말이야.”

   “부엉이들도 모두 수색을 받아.”

   헤르미온느가 반박했다.

   “필치가 닥치는 대로 비밀 탐지기를 여기저기 쑤셔 대며 그렇게 말했어.”

   이번에는 정말 말문이 막혀서, 해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말포이가 위험한 물건이나 어둠의 마법 물건을 학교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해리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론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론은 팔짱을 끼고 앉아서 라벤더 브라운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혹시 말포이가 어떻게…….”

   “오, 그만둬, 해리.”

   론이 투덜거렸다.

   “이거 봐, 슬러그혼이 나와 헤르미온느를 그 한심한 파티에 초대한 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우리 두 사람 다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너도 잘 알잖아!”

   마침내 해리가 발칵 화를 냈다.

   “그래, 나야 아무 파티에도 초대받지 못했으니까.”

   론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잠이나 자러 가야겠다.”

   론은 기가 막혀서 빤히 쳐다보는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남겨둔 채, 쿵쿵 성난 발걸음으로 남학생 침실로 들어가는 문을 향해 가 버렸다.

   “해리?”

   갑자기 새로운 추격꾼인 드멜자 로빈스가 해리의 옆에 나타났다.

   “너에게 전갈을 가지고 왔어.”

   “슬러그혼 교수님의 전갈이니?”

   해리가 기대에 차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 스네이프 교수님의 전갈이야.”

   드멜자가 말했다. 해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늘 저녁 여덟 시 반에 징계를 받으러 교수님 방으로 오라고 하셨어. 어…… 네가 아무리 많은 파티에 초대받았다고 해도 상관없으시대. 그리고 마법약 수업 시간에 쓸, 성한 플로버웜들 속에서 썩은 것들을 골라내는 일을 할 거라고 미리 너에게 일러 주라고 하셨어……. 보호용 장갑은 준비할 필요가 없대.”

   “알았어.”

   해리가 우울하게 대답했다.

   “고마워, 드멜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