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곤트의 집
그주의 나머지 마법약 수업 시간에도, 해리는 리바티우스 보레이지와 혼혈 왕자의 지시가 엇갈릴 때마다 계속 혼혈 왕자의 지시를 따랐다. 그 결과 네 번째 시간이 되었을 때, 슬러그혼은 해리의 재능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면서, 자신도 이렇게 뛰어난 학생을 가르쳐 본 적은 좀처럼 없었노라고 선언했다. 이 말을 듣고 론도 헤르미온느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비록 해리가 두 사람에게 자기 책을 같이 쓰자고 제안을 하기는 했지만, 론은 해리보다도 그 글씨체를 알아보는 데 훨씬 더 애를 먹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해리에게 그 내용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곤란했는데,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수상쩍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헤르미온느는 굳건하게 소위 ‘공식적인’ 제조법이라고 하는 것에 매달렸지만, 매번 혼혈 왕자의 것보다 형편없는 결과가 나오자 점점 심하게 성질을 부리곤 했다.
해리는 도대체 혼혈 왕자가 누구일지 살짝 궁금해졌다. 비록 그들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숙제 때문에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전부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냥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혼혈 왕자가 각주를 달아 놓지 않은 페이지가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각주들 중에는 마법약 만들기에 관한 것들은 물론이고, 왕자 자신이 직접 만든 주문처럼 보이는 것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그 사람은 여자일 수도 있어.”
토요일 저녁, 휴게실에서 해리가 이런 대목들을 론에게 지적해 주는 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말했다.
“여학생이 아니라는 법도 없잖아. 내가 보기에 그 글씨체는 남학생보다는 여학생 것에 더 가까워.”
“하지만 스스로를 혼혈 ‘왕자’ 라고 했어. 도대체 어떤 여학생이 왕자라는 별명을 쓰겠니?”
이 질문에 헤르미온느도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론이 손에 들고 있던 《재형상화의 원리들》에 대한 그녀의 작문을 휙 낚아채 갔다. 론은 지금까지 그걸 거꾸로 들고 읽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시계를 보더니 얼른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여덟 시 오 분 전이야. 나는 그만 가 봐야겠다. 덤블도어 교수님 수업에 늦겠어.”
“어머머!”
헤르미온느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행운을 빌어! 안 자고 기다리고 있을게. 교수님께서 뭘 가르쳐 주셨는지 우리도 듣고 싶어!”
“잘 하고 와.”
론도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은 초상화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텅 빈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하지만 트릴로니 교수가 홀로 뭐라고 중얼거리며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것을 보고, 얼른 조각상 뒤로 숨어야만 했다. 트릴로니는 손때가 잔뜩 묻은 듯한 카드 한 벌을 이리저리 섞고 패를 읽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스페이드 2, 갈등이로군.”
트릴로니는 해리가 몸을 웅크린 채 숨어 있는 곳을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스페이드 7, 나쁜 징조야. 스페이드 10, 폭력. 스페이드 잭, 검은 젊은 남자…… 아마도 곤란에 빠진 모양이군. 질문하는 자를 싫어하는 사람…….”
트릴로니는 갑자기 해리가 숨어 있는 조각상 바로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이럴 리가 없어.”
트릴로니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해리는 트릴로니가 다시 열심히 카드를 섞으며 걸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요리용 셰리주 냄새만이 감돌고 있었다. 해리는 트릴로니 교수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무기 하나가 벽에 붙어 서 있는 7층 복도에 이를 때까지 한 걸음도 쉬지 않고 내달았다.
“신맛 나는 사탕.”
해리가 암호를 말하자 이무기는 펄쩍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이무기 뒤의 벽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움직이는 나선형 계단이 나타났다. 해리가 계단에 발을 올려놓자, 계단이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면서 놋쇠 손잡이가 달린 덤블도어의 방 문 앞으로 그를 데려갔다.
해리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라.”
덤블도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해리가 교장실 안으로 들어가며 인사를 했다.
“아, 잘 지냈느냐, 해리. 어서 앉거라.”
덤블도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개학 첫 주를 잘 보냈는지 모르겠구나.”
“잘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해리가 말했다.
“벌써 징계를 받은 걸 보니 무척 바빴겠구나!”
“그게…….”
해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그다지 화난 기색이 아니었다.
“오늘 대신 다음 주 토요일에 징계를 받도록 내가 스네이프 교수님과 이야기를 해서 조정을 해 놓았다.”
“알겠습니다.”
스네이프의 징계보다도 훨씬 신경 쓰이는 문제들이 머릿속에 잔뜩 쌓여 있었던 해리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난 뒤, 덤블도어가 오늘 저녁 그와 무슨 수업을 할 작정인지 알 수 있는 단서라도 혹시 발견하지 않을까 싶어서 슬쩍 방 안을 둘러보았다. 원형의 사무실은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은제 기구들이 다리가 가느다란 탁자 위에 놓인 채, 연기를 뿜거나 윙 소리를 내며 빙빙 돌았다. 역대 교장 선생님들의 초상화들은 액자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덤블도어의 휘황찬란한 불사조 퍽스는 문 뒤에 있는 횃대에 앉아서 눈을 반짝이며 해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결투 연습을 하려고 자리를 치워 놓았다든가 한 흔적은 없었다.
“그래, 해리.”
덤블도어가 사무적인 어조로 말을 꺼냈다.
“틀림없이 이 수업…… 그러니까 더 좋은 단어가 생각나질 않는구나…… 아무튼 이 수업 시간 동안, 네가 너에게 뭘 가르칠 생각인지 무척이나 궁금했겠지?”
“네, 교수님.”
“볼드모트 경이 왜 15년 전에 너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네가 알게 된 지금. 나는 이제 너에게 좀 더 확실한 사실을 알려 줘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지난 학기가 끝날 무렵에도 저에게 모든 사실을 말씀해 주실 거라고 하셨잖아요.”
해리는 비난하는 듯한 어조를 감추지 못했다.
“교수님.”
해리가 뒤늦게 덧붙였다.
“그래, 그랬었지.”
덤블도어가 평온하게 말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너에게 말해 주었단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분명한 사실의 땅을 떠나서, 너와 내가 함께 혼란스런 기억의 늪지대를 여행할 것이다. 그래서 억측이 난무하는 거친 숲 속으로 들어갈 거야. 해리,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치즈 냄비의 시대가 왔다고 믿은 험프리 벨처럼 터무니없이 틀릴 수도 있단다.”
“하지만 교수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시죠?”
해리가 물었다.
“그렇다고 봐야지. 하지만 내가 이미 너에게 증명해 보인 것처럼, 나도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실수를 저지른단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날 용서하렴……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현명한 편인 만큼 실수도 더 크단다.”
“교수님.”
해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교수님께서 저에게 하시려는 말씀이 그 예언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그것이 제가…… 살아남는 데 도움을 줄까요?”
“예언과 아주 큰 상관이 있단다.”
덤블도어는 마치 해리가 내일의 날씨라도 물어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네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기를 나도 간절히 바란단다.”
덤블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상을 돌아 나와서 해리 옆을 지나갔다. 해리는 의자에 앉은 채, 열심히 몸을 돌려서 문가에 서 있는 캐비닛 위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덤블도어를 지켜보았다. 덤블도어가 다시 허리를 폈을 때, 그의 손에는 가장자리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낯익은 얕은 돌 대야가 쥐어져 있었다. 덤블도어는 펜시브를 해리 앞에 있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걱정스런 표정이구나.”
정말로 해리는 약간 불안한 시선으로 펜시브를 응시하고 있었다. 온갖 생각들과 기억들을 저장하고 보여 주는 이 이상한 장치는, 그의 예전 경험에 의하면 대단히 유익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난번에 그가 여기에 담긴 기억들 속으로 들어갔을 때, 원하는 것 이상의 사실들을 목격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그저 빙그레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나와 함께 펜시브에 들어갈 거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허락을 받고 가는 거야.”
“어디로 갈 건가요, 교수님?”
“밥 오그든의 기억을 따라 여행해 보자.”
덤블도어는 이렇게 말하면서 호주머니에서 소용돌이치는 은백색 물질이 담겨 있는 크리스털 병을 꺼냈다.
“밥 오그든이 누구죠?”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의 직원이었던 사람이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얼마 전에 죽었지. 하지만 그전에 내가 그 사람을 찾아내서 모든 기억들을 나에게 털어놓도록 설득했단다. 우리는 그가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에 찾아갔던 곳을 함께 따라갈 거란다.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거라, 해리……..”
하지만 덤블도어는 크리스털 유리병의 마개를 뽑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의 부상당한 손이 뻣뻣하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제가…… 제가 할까요, 교수님?”
“괜찮다, 해리…….”
덤블도어가 지팡이 끝을 마개에 대자, 코르크 마개가 뻥 하고 빠졌다.
“교수님 어쩌다가 손을 다치셨어요?”
해리가 동정심과 역겨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검게 변해 버린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해리,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구나. 아직은 아니야. 우리는 밥 오그든과 약속이 있단다.”
덤블도어는 병을 기울여 안에 담긴 은백색 물질을 펜시브 안에 쏟아 부었다. 액체도 가스도 아닌 그것은 펜시브 안에서 빙빙 소용돌이치며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네가 먼저 가거라.”
덤블도어가 대야를 향해 손짓을 했다.
해리는 깊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은백색 물질 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그의 말이 사무실 바닥에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빙빙 도는 어둠 속을 한없이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부신 햇살 속에서 눈을 껌벅거리고 있었다. 눈앞의 광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덤블도어가 그의 옆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키 큰 나무가 양옆으로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시골의 오솔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머리 위에는 물망초 꽃처럼 푸르고 눈부신 여름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그들 앞으로 3미터쯤 떨어진 곳에 키가 작고 퉁퉁한 남자가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그의 눈은 두더지 눈처럼 단춧구멍만 하게 보였다. 그 남자는 길 왼편 가시나무에 붙어 있는 나무판 이정표를 읽고 있었다. 해리는 이 남자가 틀림없이 오그든일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이 남자 한 명뿐이었고, 머글처럼 보이려고 애써 차려입긴 했지만 아무런 경험이 없는 마법사들이 흔히 저지르곤 하는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남자는 줄무뉘 목욕 가운 위에 프록코트(남성용 서양식 예복 중 하나 : 역주)를 걸치고 짧은 각반(발목에서 무릎 아래까지 돌려 감거나 싸는 띠 : 역주)을 차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가 이 괴상한 옷차림을 좀 더 자세히 뜯어볼 틈도 없이, 오그든은 오솔길을 따라서 활기차게 걷기 시작했다.
덤블도어와 해리는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나무 이정표 옆을 지나갈 때, 해리는 고개를 들어서 이정표의 화살표 두 개를 보았다. 하나는 그들이 왔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레이트 행글턴 8킬로미터’ 라고 적혀 있었고, 오그든이 가는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에는 ‘리플 행글턴 1.6미터’ 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은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머리 위로는 푸른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저 앞에는 프록코트를 입은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오솔길이 왼쪽으로 휘어지더니 가파르게 경사가 진 내리막길이 나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계곡이 그들 눈앞에 펼쳐졌다. 해리는 두 개의 가파른 언덕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마을이 틀림없이 리틀 행글턴일 거라고 짐작했다. 저 멀리 교회와 공동묘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계곡 너머의 반대편 언덕에는 드넓은 초록색 잔디밭에 둘러싸인 근사한 저택 한 채가 서 있었다.
오그든은 가파른 비탈길 때문에 어절 수 없이 종종걸음 치듯 내려가기 시작했다. 덤블도어도 발걸음을 재촉했고, 해리도 서둘러 보조를 맞췄다. 해리는 리틀 행글턴이 분명히 그들의 최종 목적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단지 두 사람이 슬러그혼을 찾아갈 때 그랬듯이, 왜 이렇게 먼 곳에서부터 걸어가야만 하는지, 그것이 지금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곧 그들이 마을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오솔길은 다시 오른쪽으로 휘어지고 있었고, 그들이 이 모퉁이를 따라 돌았을 때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 난 틈새로 막 빠져나가고 있는 오그든의 프록코트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덤블도어와 해리는 그의 뒤를 따라서, 방금 지나온 오솔길보다 더 키가 크고 무성한 나무들이 이어진 좁고 더러운 길을 걸어갔다. 그 길은 구불구불하고 바위투성이였으며, 군데군데 패인 곳도 많았다. 그리고 조금 전에 지나왔던 비탈길처럼 경사가 져 있었다. 그 길 아래 쪽으로 어두컴컴한 숲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잠시 후에 그 길은 넓어지며 작은 관목으로 이루어진 숲으로 이어졌고, 덤블도어와 해리는 지팡이를 꺼내는 오그든 뒤에서 잠깐 멈춰 섰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나무들은 어둡고 짙고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 초도 안 돼서 해리는 그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 반쯤 가려져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집을 짓기에는 참으로 이상한 장소인 것 같았다. 게다가 집 주위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둔 것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무들 때문에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곡 아래의 풍경도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해리는 과연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집 벽에는 온통 이끼가 끼어 있었고, 지붕을 덮은 타일들이 다 떨어져서 여기저기에 서까래가 드러나 있었다. 집 둘레에는 쐐기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거의 창문 높이까지 닿을 정도였으며, 작은 창문에는 먼지가 잔뜩 끼어 있었다. 저런 집에서는 아무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해리가 결론을 내리는 순간, 창문 하나가 삐거덕거리며 활짝 열렸다. 그리고 가느다란 연기나 김 같은 것이 창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마도 누군가가 요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그든은 조용히 그 집에 다가갔다. 해리가 보기에는 꽤 조심을 하는 것 같았다. 나무들의 어두운 그림자 아래로 들어서는 순간 오그든은 다시 걸음을 멈추고 현관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누군가 죽은 뱀을 문에 못 박아 놓았던 것이다.
이윽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누더기를 걸친 남자 하나가 제일 가까운 나무 위에서 뚝 떨어졌다. 그리고 오그든 앞에 딱 버티고 섰다. 오그든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다가 코트 끝 자락을 밟아서 그만 비틀하고 말았다.
“썩 물러가라.”
오그든 앞에 서 있는 그 남자의 덥수룩한 머리카락은 어찌나 때가 끼었는지 원래 색깔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이빨은 대여섯 개쯤 빠져 있었고, 작고 까만 두 눈동자는 제각기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매우 우스꽝스러운 외모였지만 전혀 웃기지가 않았다. 오히려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었다. 해리는 미처 뭐라고 말도 못하고 대여섯 걸음 더 뒤로 물러난 오그든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마법부에서 왔습니다…….”
“썩 물러가.”
“저……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오그든이 초조하게 말했다.
해리는 오그든이 굉장히 말귀가 어두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해리는 그 낯선 사람이 하는 말을 분명하게 알아 들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 남자는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다른 한 손으로는 피가 묻은 단검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넌 저자의 말을 알아듣겠지. 안 그러냐, 해리?”
덤블도어가 나지막이 물었다.
“예, 물론이죠.”
해리가 약간 당혹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런데 왜 오그든은 못 알아듣죠?”
하지만 해리의 시선이 또다시 문에 못 박힌 죽은 뱀에게 향한 순간,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었다.
“파셀통그(뱀의 언어를 말함 : 역주)로 말하고 있나요?”
“훌륭하구나.”
덤블도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누더기를 입은 남자는 한쪽 손에는 칼, 다른 한쪽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오그든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저, 이봐요…….”
오그든이 황급히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오그든은 코를 움켜쥐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누렇고 역겨운 점액질이 흘러나왔다.
“모핀!”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 든 한 남자가 현관문을 쾅 닫으며 오두막집에서 뛰쳐나왔다. 그 바람에 죽은 뱀이 처량하게 흔들거렸다. 이 남자는 누더기를 걸친 남자보다 키가 더 작았으며, 신체 비율이 이상하게 안 맞았다. 어깨가 너무 넓고 팔은 너무 길었던 것이다. 게다가 반짝거리는 갈색 눈에 짧게 깎은 빳빳한 머리카락과 쪼글쪼글한 얼굴 때문에 마치 힘이 세고 나이가 많은 원숭이처럼 보였다. 그 남자는 칼을 든 남자 옆에 와서 섰다. 칼을 든 남자는 땅에 쓰러진 오그든을 보고 낄낄거리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마법부라고?”
나이든 남자가 오그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요!”
오그든은 얼굴을 닦으며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당신이 곤트 씨인가요?”
“그렇소. 당신 얼굴을 공격했나 보군.”
곤트가 물었다.
“그래요. 저자가 그랬어요!”
오그든이 쏘아붙였다.
“당신이야말로 이곳에 들어왔다는 걸 알렸어야 했소. 안 그렇소?”
곤트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여긴 개인 소유의 땅이오. 제멋대로 여길 들어와서는, 내 아들이 자기 방어도 하지 않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마시오.”
“도대체 뭘 방어한다는 거죠?”
오그든이 간신히 두 발로 일어서면서 물었다.
“중뿔나게 남 참견하는 인간들. 침입자들. 머글들과 인간쓰레기들.”
오그든이 지팡이로 아직도 누런 고름 같은 것이 줄줄 흘러 내려오고 있는 자기 코를 겨누자, 당장 흐르던 것이 멈추었다. 곤트 씨는 모핀에게 중얼거렸다.
“집으로 들어가. 따지지 말고.”
이번에는 해리도 이 말일 파셀통그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하는 말을 분명히 알아들을 수는 있었지만, 쉭쉭거리는 이상한 소리라는 걸 구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그든의 귀에는 틀림없이 쉭쉭거리는 소리만 들렸을 것이다. 항의를 하려던 모핀은, 아버지가 위협적인 표정을 짓자, 마음을 바꾸고 이상하게 스르르 미끄러지는 듯한 걸음걸이로 오두막집을 향해 뒤뚱거리며 걸어갔다. 그리고 현관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 바람에 뱀은 또다시 처량하게 흔들거렸다.
“제가 여기 온 것은 바로 아드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곤트 씨.”
오그든은 코트 앞자락에 묻은 고름 자국을 마저 닦아 내며 말했다.
“방금 들어간 사람이 모핀이었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소. 저 아이가 모핀이오.”
노인이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당신은 순수 혈통이오?”
노인이 갑자기 사나운 어조로 물었다.
“그건 지금 일과는 아무 상관 없는 문제입니다.”
오그든은 쌀쌀맞게 딱 잘라 말했다.
갑자기 해리는 오그든이 존경스러워졌다. 하지만 곤트는 전혀 다르게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오그든의 얼굴을 노려 보더니 기분 나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제 생각난 건데, 당신처럼 뭔가가 질질 흐르는 코를 마을에서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소.”
“물론 그러시겠죠. 아드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했다면 말이죠.”
오그든이 지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일단 안에 들어가서 이 얘기를 계속하는 게 어떨까요?”
“안으로 들어가자고?”
“예, 곤트 씨. 이미 말씀드렸습니만, 저는 모핀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다. 미리 부엉이를 보냈습니다만…….”
“난 부엉이 같은 거 취급 안 해. 편지는 뜯어 보지도 않는다고!”
곤트가 투덜거렸다.
“그러시다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해서 불평하실 이유가 없겠군요.”
오그든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저는 마법사 법률의 심각한 위반 행위를 추적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아침 이른 시간에 바로 이곳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았어! 알았다고! 알았다니까!”
곤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저 빌어먹을 집으로 들어오게나. 그리고 마음대로 해!”
그 집에는 작은 방이 세 개 있는 것 같았다 제일 큰 방은 문 두 개로 다른 방과 연결되어 있었고, 부엌과 거실을 겸해서 쓰고 있었다. 모핀은 연기 나는 벽난로 옆에 놓인 더러운 안락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굵은 손가락으로 살아 있는 독사를 비틀며 파셀통그로 웅얼웅얼 노래를 읊조리고 있었다.
쉭, 쉭, 작은 뱀,
마루 위를 기어가네.
모핀에게 잘 보여라.
안 그러면 문에다 박아 버린다.
그때 열린 창문 옆의 한쪽 구석에서 뭔가 질질 끄는 소리가 났다. 해리는 방 안에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 떨어진 회색 드레스를 입은 한 소녀가 똑 같은 색깔의 지저분한 돌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시커먼 난로 위에서 김을 뿜고 있는 단지 옆에 있었는데, 꾀죄죄한 단지와 프라이팬이 놓여 있는 선반 근처를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힘없이 늘어져 있었으며, 평범해 보이는 얼굴은 창백하고 다소 우울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동자는 오빠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비록 두 남자보다는 약간 더 깨끗하게 보였지만, 이렇게 절망에 빠져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내 딸, 메로프요.”
오그든이 의아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자 곤트가 퉁명스런 어조로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오그든이 인사를 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잔뜩 겁먹은 눈길로 아버지를 흘끗 보더니, 돌아서서 선반에 놓인 단지들을 이리저리 옮기기 시작했다.
“곤트 씨.”
오그든이 이야기를 꺼냈다.
“본론부터 바로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댁의 아드님이신 모핀이 지난밤 늦게 한 머글 앞에서 마법을 사용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요란하게 쨍그랑하는 소리가 났다. 메로프가 단지 하나를 떨어뜨린 것이었다.
“당장 줍지 못해!”
곤트가 딸에게 호통을 쳤다.
“저거 봐라, 천한 머글들처럼 힘들게 마루 위에 엎드려 줍다니……. 지팡이는 두었다가 국 끓여 먹을래? 이 천하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애야!”
“곤트 씨, 제발!”
오그든이 충격을 받은 어조로 말했다.
이미 단지를 집어 들었던 메로프는 얼굴이 얼룩덜룩 새빨갛게 붉어지더니 또다시 단지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호주머니에서 지팡이를 뽑아 들고 단지를 향해 겨누더니, 황급히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단지는 쓩 날아가서 반대편 벽에 쾅 부딪히고는 반쪽이 나 버렸다.
모핀은 미친 사람처럼 마구 웃어 댔고, 곤트는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당장 고쳐 놔! 이 망할 계집애, 고쳐 놓으라고!”
메로프는 비틀거리며 방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하지만 그녀가 지팡이를 들기 전에, 오그든이 자신의 지팡이를 들고 단호하게 주문을 외웠다.
“레파로.”
단지는 즉시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잠깐 동안 곤트는 오그든에게 고함을 지를 듯한 기세였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은 듯했다. 그 대신 딸을 향해 빈정거렸다.
“마법부에서 나오신 친절하신 나리 때문에 무사한 줄 알아. 어쩌면 이분이 너를 내 손에서 데려가 주실지도 무르지. 더러운 스큅 계집애라도 괜찮으시다면 말이다…….”
메로프는 오그든에게 고맙다는 말도 없이 시선을 피한 채 떨리는 손으로 단지를 집어 들어 다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더러운 창문과 난로 사이의 벽에 등을 기댄 채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마치 돌벽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소망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곤트 씨.”
오그든이 다시 말을 꺼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제가 여기 찾아온 까닭은…….”
“아까 다 들었잖소!”
곤트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요? 모핀이 머글에게 마땅히 해 줄 일을 한 것뿐인데, 그게 무슨 대수요?”
“모핀은 마법사 법률을 어겼습니다.”
오그든이 냉정하게 말했다.
“모핀은 마법사 법률을 어겼습니다.”
곤트가 잔뜩 으스대는 어조로 가락을 붙여서 오그든의 말을 흉내 내었다. 모핀이 또다시 째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저 아이는 더러운 머글 녀석에게 한 수 가르쳐 줬을 뿐이오. 그런데 요즘에는 그게 불법이란 말이오?”
“네, 죄송합니다만 그렇습니다.”
오그든이 말했다. 그러고는 안쪽 호주머니에서 작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어 펼쳤다.
“그건 뭐요? 판결인가?”
곤트의 목소리가 점점 분노로 높아졌다.
“청문회를 열기 위해 마법부로 소환할…….”
“소환? 소환이라고? 감히 내 아들을 소환할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당신이 누구길래?”
“저는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 수사대의 대장입니다.”
오그든이 말했다.
“그럼, 우리는 무슨 거지발싸개라도 되는 줄 알아? 그래?”
곤트가 호통을 치며 오그든을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잔뜩 때가 끼고 누런 손톱이 자란 손가락으로 오그든의 가슴을 가리켰다.
“우리가 마법부가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는 그런 인간인 줄 알았어? 도대체 지금 누구를 상대로 떠드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이 더럽고 쬐끄만 머글 놈아!”
“지금 곤트 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오그든은 약간 경계하는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굳건히 말했다.
“그렇다!”
곤트가 으르렁거렸다.
잠깐 동안 해리는 곤트가 손가락을 세워 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가운뎃손가락에 끼고 있는 흉측한 검은 돌이 박힌 반지를 오그든의 눈앞에 흔들면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거 보여? 이게 보이느냔 말이다. 이게 뭔 줄 알기나 해? 이게 어디서 났는지 아느냐고! 수백 년 동안 우리 가문에 전해 내려온 거야. 까마득한 옛날부터 오직 순수 혈통만 지키며 이어져 온 우리 가문 말이다! 남들이 이걸 얼마에 사겠다고 했는지 니가 알기나 알아? 이 돌 위에 새겨진 이 피브렐 문장과 더불어 말이야!”
“제가 알 리가 없지요.”
오그든은 바로 자기 코앞에서 흔들리는 반지를 껌벅거리며 쳐다보았다.
“게다가 그건 요점을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곤트 씨. 당신의 아드님이 저지른…….”
그 순간 곤트는 분노로 악을 쓰며 딸을 향해 돌진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딸의 목을 향해 곤트의 손이 날아갈 때에는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 죽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 곤트는 딸의 목에 걸려 있는 황금 사슬 목걸이를 홱 잡아당기더니 딸을 오그든에게로 질질 끌고 왔다.
“이게 보이냐?”
곤트는 목걸이 끝에 달려 있는 묵직한 로켓(사진이나 기념품, 머리카락 따위를 넣어 목걸이 줄에 매다는 작은 케이스 : 역주)을 오그든에게 흔들어 보이면서 소리를 질러 댔다. 한편 메로프는 숨통이 막혀 입에서 거품을 내뿜으며 캑캑거리고 있었다.
“보입니다, 보여요!”
오그든이 황급히 말했다.
“슬리데린의 것이란 말이다!”
곤트가 악을 썼다.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것 말이다! 우리는 그분의 마지막 남은 후손들이야. 그런데 당신은 그런 우리들에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지?”
“곤트 씨, 따님을!”
오그든은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곤트는 이미 메로프를 놓아준 후였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아버지 옆을 피해서 한쪽 구석으로 도망쳤다. 그러고는 목을 문지르며 숨을 쉬느라 헐떡거렸다.
“그러니까!”
곤트가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마치 이로써 모든 논쟁을 덮어버릴 만한 대단히 복잡한 사실을 입증해 내기라도 한 듯한 기세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당신네 발톱에 낀 때라도 되는 듯이 말하지 말란 말이야! 모두가 마법사인 순수 혈통의 가문이라고……. 자네가 함부로 주둥이를 놀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야!”
그리고 곤트는 오그든의 발 앞에 침을 탁 뱉었다. 모핀은 또다시 미친 듯이 킬킬거렸다. 창문 옆에 웅크리고 앉은 메로프는 윤기 없는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모두 가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찍소리도 하지 않았다.
“곤트 씨.”
오그든이 끈질기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곤트 씨의 조상도 제 조상도, 지금 저희가 논의 하고 있는 이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저는 여기에 모핀 때문에 왔습니다. 지난반 늦게 모핀이 상대한 머글 때문이지요. 저희 쪽 정보에 따르면…….”
오그든은 들고 있던 양피지 두루마리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모핀은 그 문제의 머글에게 저주나 주술 마법을 써서, 대단히 고통스런 두드러기를 유발시켰다고 하더군요.”
모핀이 키득거렸다.
“조용히 해라.”
곤트는 파셀통그로 아들을 윽박질렀다.
“그러자 모핀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지?”
곤트가 당당하게 대들었다.
“당신들이 그 머글 놈의 더러운 얼굴을 멀끔하게 닦아 주었을 텐데? 그리고 그놈의 기억도 다시…….”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은 무방비 상태인 상대방에 대한 이유 없는 공격입니다.”
오그든이 말했다.
“아하, 처음 봤을 때부터 네놈이 친-머글주의자라는 걸 진작에 알아봤지.”
“이런 토론은 아무리 계속해도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오그든이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아드님의 태도로 보아,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눈곱만큼도 후회하지 않는 게 분명하군요.”
오그든은 다시 양피지 두루마리를 내려다보았다.
“모핀은 9월 14일에 열릴 청문회에 참석하여, 머글 앞에서 마법을 사용한 책임과 동일한 머글에게 상해와 정신적 충격을 입힌 것에 대한 질의에 응답할 것을…….”
오그든이 문득 말을 멈추었다. 짤랑짤랑하는 방울 소리, 따가닥따가닥하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 한바탕 웃어 대는 소리가 열린 창문을 타고 흘러 들어왔던 것이다. 분명히 이 집이 서 있는 잡목 숲 옆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아주 가깝게 지나가는 모양이었다. 곤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모핀은 쉭쉭거리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장이라도 덤벼들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메로프도 고개를 들었다. 해리는 그녀의 얼굴이 깜짝 놀랄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저런 흉측한 것이!”
한 아가씨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열린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마치 그녀가 방 안에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무척 또렷했다.
“당신 아버님께서는 왜 저 오두막집을 깨끗이 없애 버리지 않는 거죠, 톰?”
“우리 소유가 아니랍니다.”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계곡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우리 집안의 소유지만, 저 오두막집만은 곤트라고 하는 늙은 비렁뱅이와 그의 자식들 것이지요. 그의 아들은 완전히 돌았어요. 당신도 마을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들어 봤어야 했는데…….”
아가씨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방울 소리와 말발굽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모핀은 당장이라도 안락의자를 박차고 뛰어나갈 기세였다.
“앉아 있어!”
그의 아버지가 파셀통그로 경고하듯이 말했다.
“그런데 톰…….”
또다시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어찌나 가깝게 들리는지 그들이 집 바로 옆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가 잘못 봤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저 문에다 뱀을 못질 해 놓은 것 아닌가요?”
“하느님 맙소사, 당신 말이 맞군요!”
청년이 말했다.
“이 집 아들이 그랬을 겁니다. 제 정신이 아니라고 말했지요? 사랑스런 세실리아, 그쪽은 쳐다보지 말아요.”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다시 점차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
“사랑스런 세실리아라…….”
모핀이 여동생을 바라보며 파셀통그로 속삭였다.
“그 자식은 저 여자를 ‘사랑스런 세실리아’ 라고 부르는군. 그러니 그놈이 널 데려가긴 틀렸구나.”
순간 메로프의 얼굴이 송장처럼 하얗게 질려서, 해리는 그녀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줄 알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곤트가 딸과 아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파셀통그로 매섭게 물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모핀?”
“쟤는 그 머글을 쳐다보는 데 넋이 팔렸어요.”
모핀은 악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여동생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겁에 질려 죽을 것만 같았다.
“그 녀석이 지나갈 때마다 항상 마당에 나가서 울타리 틈새로 엿보았어요. 지난밤에도…….”
메로프는 제발 부탁이라는 듯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모핀은 사정없이 지껄여 댔다.
“창문에 매달려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놈을 기다렸어요,”
“창문에 매달려서 머글 놈을 쳐다봤다고?”
곤트가 조용히 이를 갈며 말했다.
이제 곤트 가족 세 사람은 오그든의 존재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오그든은 무슨 뜻인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쉭쉭 소리와 끽끽거리는 소리가 난무하는 이 새로운 사태 앞에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게 사실이냐?”
곤트는 살의가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으며, 잔뜩 겁에 질린 딸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
“내 딸이……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순수한 혈통을 물려받은 아이가…… 그 더럽고 추잡한 피를 가진 머글 놈을 좋아한단 말이냐?”
메로프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자꾸만 벽 쪽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 너무 겁에 질랴 입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제가 그 녀석을 혼내 주었어요, 아버지!”
모핀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그 녀석이 지나가는 걸 제가 혼내 주었죠. 온통 두드러기투성이가 된 녀석의 꼴이 별로 보기 좋지는 않았죠. 안 그래, 메로프?”
“이 쥐방울만 한 역겨운 스큅 계집애! 이 더러운 가문의 배신자 같으니라고!”
곤트가 그만 이성을 잃고 으르렁거리면서 두 손으로 딸의 목을 졸랐다.
그 순간 해리와 오그드은 동시에 “안 돼!” 하고 고함을 질렀다. 오그든은 지팡이를 들어 올리더니 “리라시오!” 하고 외쳤다. 그러자 곤트는 딸의 몸에서부터 휙 떨어져 나와 의자에 걸려 넘어져 바닥에 벌렁 나자빠졌다. 분노에 찬 고함 소리와 함께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모핀은 한 손으로는 피 묻은 칼을 휘두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지팡이로 닥치는 대로 저주를 퍼부으며 오그든을 향해 돌진했다.
오그든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덤블도어는 얼른 뒤를 쫓아가자는 몸짓을 했고, 해리는 귓전에 울리는 메로프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들으며 그 지시에 따랐다.
죽을힘을 다해 정신없이 도망치던 오그든은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오솔길로 달려 나가다가, 잘생긴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과, 그 옆에서 회색 말을 타고 가고 있던 아름다운 아가씨는 오그든의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말의 옆구리에 부딪혀 퉁 튕겨져 나간 오그든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곧 다시 허둥지둥 오솔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해도 될 것 같구나, 해리.”
덤블도어가 이렇게 말하며 해리의 팔꿈치를 잡아당겼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캄캄한 어둠 속을 가볍게 슝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단단히 바닥 위에 발을 디디며 이제는 어둑어둑해진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두막집에 있던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덤블도아가 지팡이를 휘들러서 램프에 불을 붙이고 있을 때, 해리는 당장 그것부터 물어보았다.
“메로프던가, 아무튼 이름이 뭐든지 간에, 그 여자 말이에요.”
“오, 그 여자는 살아남았단다.”
덤블도어가 책상 뒤에 가서 앉으면서 해리에게도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오그든은 순간이동으로 마법부에 돌아가서, 15분 만에 지원 병력을 이끌고서 다시 나타났지. 모핀과 그의 아버지는 끝까지 저항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제압을 당하고 오두막집에서 끌려 나가서 위즌가모트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단다. 이미 그전애도 머글을 공격한 전력이 있는 모핀은 아즈카반에서의 3년 형을 선고받았고, 오그든을 포함해서 서너 명의 마법부 직워들에게 상해를 입힌 마볼로는 6개월 형을 받았지.”
“마볼로라고요?”
해리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시 물었다.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기특하다는 듯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네가 금방 알아차리는 걸 보니 기쁘구나.”
“그럼 그 노인이……?”
“그래, 볼드모트의 외할아버지란다.”
덤블도어가 말을 이었다.
“마볼로와 그의 아들 모핀, 그리고 그의 딸 메로프는 집안의 사촌들끼리 결혼을 하는 관습 때문에 몇 세기 동안 점점 더 커져 온 폭력성과 정신불안 증세로 악명 높은, 아주 오래된 마법사 가문인 곤트 집안의 마지막 후손들이었다. 합리적인 이성의 결여와 화려한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낭비벽이 합쳐진 결과, 마볼로가 태어나기 몇 세대 전에 이미 집안의 황금은 다 탕진되어 버렸지. 그래서 그자는 네가 본 것처럼 고약한 성질 머리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의 도도한 자만심과 거만함에다가, 자기 아들만큼이나 아끼고 자기 딸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는 집안의 유물 한두 개만 지닌 채 가난과 비참 속에 버려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메로프가…….”
해리는 의자 앞으로 몸을 내밀어 덤블도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메로프가……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은 그 여자가…… 볼드모트의 어머니란 말인가요?”
“그렇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볼드모트의 아버지도 잠깐 보았는데, 혹시 네가 알아차렸는지 모르겠구나.”
“모핀이 공격했다는 그 머글 말인가요? 말을 타고 있던 그 남자?”
“그래, 아주 훌륭하구나.”
덤블도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사람이 바로 톰 리들 1세란다. 말을 타고서 곤트의 오두막집 옆을 지나다니곤 했던 그 잘생긴 머글 남자, 그래서 메로프 곤트가 남몰래 애정을 품고 뜨거운 열정을 키워 갔던 사람이지.”
“그렇다면 두 사람이 결국 결혼을 했단 말인가요?”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해리가 의아해하며 소리쳤다.
“네가 한 가지 잊고 있는 사실이 있는 것 같구나.”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했다.
“메로프가 마녀라는 사실 말이다. 아버지 때문에 겁에 질려 있을 때에는 아마도 메로프의 마력이 제대로 그 힘을 다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마볼로와 모핀이 안전하게 아즈카반에 갇혀 있게 되자, 메로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지. 그리고 틀림없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회복해서, 그녀가 18년 동안이나 겪어 왔던 그 끔찍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계획을 짤 수 있었을 거야.
너는 메로프가 무슨 수로 톰 리들이 그의 머글 여자 친구를 잊어버리고 대신 자신을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임페리우스 저주? 아니면 사랑의 묘약?”
해리가 추측을 해보았다.
“잘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여자가 사랑의 묘약을 썼울 거라고 생각한단다. 틀림없이 그편이 여자가 보기에 훨씬 더 낭만적으로 여겨졌을 테니 말이다. 아마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게다. 아주 무더운 날에 리들이 혼자 말을 타고 지나갈 때, 잠깐 들어와서 물이나 한 잔 마시고 가라고 청하는 것은 말이다. 어쨌든 우리가 방금 목격한 그런 일이 벌어진 지 몇 달 후에, 리틀 행글턴 마을은 엄청난 스캔들로 한바탕 뒤집어지게 된단다. 지주의 아들이 한낱 비렁뱅이의 딸인 메로프와 눈이 맞아 달아나 버렸을 때, 얼마나 엄청난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을지 너도 충분히 짐작이 갈 게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충격은 마볼로가 받은 충격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지. 딸이 식탁 위에 따끈한 식사를 차려 놓고 자신이 돌아오기를 충실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아즈카반에서 돌아온 마볼로는, 그 대신 두텁게 내려앉은 먼지와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는 딸아이의 작별 편지만을 발견했지.
내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마볼로는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딸아이에 대해 언급하거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없었단다. 하지만 딸아이의 도망으로 인한 충격이 아마도 그의 때 이른 죽음의 한 원인이 되었을 게다. 아니면 그저 자기 손으로 음식을 해 먹는 법을 결코 배우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몰라, 아즈카반에 있는 동안 몸이 많이 허약해진 마볼로는 모핀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어.”
“그럼 메로프는요? 그 여자는…… 그 여자는 죽었잖아요, 아닌가요? 볼드모트는 고아원에서 자라지 않았나요?”
“그래, 그랬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많은 부분을 추측에 의존해야만 한단다. 물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는 게 별로 어렵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두 사람이 몰래 도망쳐서 결혼을 한 지 몇 달도 채 안 돼서 톰 리들은 리틀 행글턴의 저택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단다. 아내도 없이 혼자 몸으로 말이야.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톰 리틀이 꼬임에 빠졌었다느니 사기를 당했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퍼졌지. 틀림없이 그 말은 그 자가 마법에 걸렸다가 이제 깨어났다는 뜻이었을 거야. 물론 그자는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두려워서 정확히 그런 표현까지는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메로프가 톰 리틀에게 속임수를 써서 마치 그의 아기를 가진 척했고, 그 때문에 그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된 모양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메로프는 진짜로 그의 아기를 가졌잖아요.”
“하지만 그건 두 사람이 결혼을 한 지 1년 뒤의 일이란다. 톰 리틀은 그녀가 아직 뱃속에 아기를 갖고 있을 때 떠났거든.”
“뭐가 잘못되었을까요? 어째서 사랑의 묘약이 계속해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을까요?”
“또다시 추측을 해 봐야겠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메로프가 마법의 힘으로 남편을 계속해서 속이는 걸 견딜 수 없었던 것 같구나. 그래서 사랑의 묘약을 더 이상 남편에게 쓰지 않기로 결심한 거야. 어쩌면 얼이 빠진 메로프가 지금쯤이면 남편이 자신을 진짜로 사랑하게 되었을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아기 때문에 남편이 자기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든지. 만약 그랬다면 메로프의 생각이 모두 다 틀렸던 거지. 남자는 그녀를 떠났고,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어ㅣ. 그리고 자기 아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단다.”
방 밖의 하늘은 잉크처럼 새까매졌고, 덤블도어의 방을 밝히는 등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밝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말했다.
“해리, 오늘 저녁에는 이걸로 충분한 것 같구나.”
“네, 교수님.”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좀처럼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교수님…… 볼드모트의 과거에 대해서 이런 걸 모두 다 아는 게 과연 중요할까요?”
“아주 중요하지. 내 생각은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게…… 이게 예언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모두 다 예언과 관계가 있단다.”
“알겠습니다.”
해리는 약간 혼란스러우면서도, 다시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떠나려고 하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라. 해리는 다시 돌아섰다.
“교수님, 교수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을 모두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말해 줘도 될까요?”
덤블도어는 잠깐 동안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그래, 위즐리 군과 그레인저 양이 충분히 믿을 만한 친구들이라는 것은 이미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해리, 두 사람에게 이 세상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단단히 부탁해 주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내가 볼드모트의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거나, 혹은 짐작하는 바가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면 결코 좋을 게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꼭 다짐을 받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해리가 다시 돌아서서 거의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문득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다리가 가느다란 탁자들 위에 부서질 것 같은 은제 기구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 한 곳에 금이 간 커다란 검은 돌이 박힌 흉측한 금반지 하나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이 반지는……?”
해리가 눈을 크게 뜨고 그 반지를 보며 물었다.
“왜 그러니?”
“교수님과 제가 슬러그혼 교수님을 찾아가던 그날 밤에 교수님께서 이 반지를 끼고 계셨어요.”
“그랬었지.”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것은…… 이것은 마볼로 곤트가 오그든에게 보여주었던 그 반지가 아닌가요?”
덤블도어가 고개를 숙였다.
“바로 그것이란다.”
“하지만 어떻게……? 그럼 지금까지 줄곧 이 반지를 가지고 계셨던 건가요?”
“아니란다. 아주 최근에 이 반지를 얻게 되었지.”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내가 네 이모와 이모부네 집으로 너를 데리러 가기 며칠전에 말이다.”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손을 다치신 그때쯤이겠군요?”
“그래, 바로 그때쯤이지, 해리.”
해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덤블도어는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교수님, 정확히 어쩌다가……?”
“너무 늦었구나, 해리!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듣게 될 게다, 잘 자거라.”
“안녕히 주무세요, 교수님.”